# 32
이면(裏面).
“아니 그게 무슨 말이야. 그렇게는 안 되지.
지금 우리 7명 중에서 나랑 태평이 빼고는 다들 원래 포지션이 랩이 아니잖아. 거기다, 다른 포지션에서 밀려서 온 거잖아.
그렇다면 원래 랩 포지션인 우리 2명이 더 혜택을 보는 게 맞잖아.”
“다른 포지션에서 밀려서 온 건 맞지만, 그런 특혜 준다는 규칙은 없잖아. 정당하게 7명이 다 경쟁을 해서 포지션을 정해야지. 먼저 왔거나, 원래 포지션이 랩이라고 센터포지션을 맞는 건 말이 안 되지.”
“뭐라는 거야? 그럽 원래 포지션이 랩도 아니면서 랩 포지션에서 센터를 하겠다는 거야?”
포지션 미션 시작 전에 MC 이정이가 분량이 없어서 불만이라면 경쟁해서 분량을 만들라는 말 때문인지 다들 숨기고 있던 욕망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첫 미션의 포지션을 정할 때는 다들 처음이라 눈치를 보고 서로 좋은 게 좋다고 팀을 위해 잘하는 사람을 밀어주는 분위기였는데, 이번 미션에선 본인의 순위를 올리기 위해 관객의 눈에 띄거나 분량에서 이득이 있는 센터나 메인 포지션을 잡는 것에 다들 욕심을 내었다.
그러다 보니 결국 팀원들 간에 큰 소리로 다툴 지경이 되었다.
‘이런 모습도 지금 다 녹화되고 있고, 이런 분란이 일어나는 부분이 방송을 타게 되면 100% 부정적인 이미지가 만들어질 텐데. 그렇게 되면 있던 팬들도 떨어져 나간다는 걸 모르는 건가?
오디션 프로그램은 무대에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 준비과정에 들어가는 편집도 큰 비중으로 나가는데, 아무리 무대 분량이 중요하다지만, 이렇게까지 할 이유는 없는데.’
“저 형들, 포지션은 첫 미션때 처럼 각각 하고 싶은 포지션에 대해서 지원하고 지원자들 간에 경쟁해서 하는 게 어떨까요?”
“그래, 그게 맞긴 맞지. 하지만, 넌 첫 미션 때 메인보컬 했잖아.
태평이는 센터였고, 너네는 이미 메인보컬, 센터 한 번씩 했잖아.
그래서 순위도 높은거고, 그러니 이번엔 너희가 양보해주면 안 되냐?”
‘순위가 낮은 형들이라 방출위기라서 올라가고 싶은 욕망은 이해가 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닌 거 같은데..그렇게 양보하고 할 것 같으면, 아예 순위도 돌아가면서 1위 하게 해달라고 해야 할 거 아닌가...경쟁이라는 말뜻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네, 환일이 형. 형 말대로 그렇게 하죠, 저는 센터 해봤으니 서브 랩 4번 할게요.”
“역시, 태평이는 이름처럼 태평하네. 소원이도 태평이처럼 양보할 거지?”
“네..네 그렇게 할게요. 저도 남는 곳으로 대충 넣어주세요.”
태평이 형이 이미 양보를 한다고 했기에 내가 뻗댈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나도 양보하는 그것 찬성할 수밖에 없었다.
‘빅턴의 SOBER’ 노래에는 8명이 배정되어 있었는데, 나와 태평이형을 포지션 경쟁에서 젖혀두곤 6명이 누가 센터를 할지, 메인을 할지 20분 넘게 난상토론이 펼쳐졌고,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먼저 양보해주겠다고 한 주태평과 눈이 마주쳤다. 싱긋이 나에게 웃어주는 태평형의 얼굴은 진짜 태평해 보였다.
순위가 14위라서 데뷔안정권도 아닌데, 싱긋이 웃는 모습이 이미 데뷔한 것처럼 너무나도 태평했다.
“저 형들, 이렇게 하다가는 내일까지도 결정이 날 것 같지 않은데, 그냥 투표로 뽑는 게 어떨까요?”
“넌 민호 형이 춤 가르쳐주고 하는 분량이 너무 좋아서 순위가 지금 계속 올라가니깐 그런 소릴 할 수 있지.
우리 입장 되어봐.
진짜 이정이 선생님 말씀처럼 분량을 만들기 위해 우린 이럴 수밖에 없어.”
‘지금 이렇게 싸우듯이 포지션 경쟁하는 것도 다 촬영되고 있고, 이런 안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건 오히려 역효과가 날 거다.
포지션 경쟁을 위한 공정한 경쟁이라면 좋은데, 이런 싸움은 안티팬만 생길 뿐이다.’라고 이야길 해주려고 했지만, 넌 순위가 높으니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나자 충고해줄 마음이 싹~ 사라져 버렸다.
“Yo! 다들 내 말 좀 들어봐. 리슨~!
다들 프듀에서 김민호, 김시타는 알지만, 내이름은 잘 몰라.
난 듣보잡이지만, 태평한 주태평!
너넨 지금 안태평~ No 태평!
너희도 태평하게 되면 그들처럼 환호받게 될 거야.
지금은 반응이 그렇게 좋지 않지만.
지금은 뭐 No 상관!
강한 나를 너희에게 보여줄 자신이 있어.
두고 봐. 모두 다 태평한 내 스타일을 알게 될 거야.
이게 나에게, 그리고 너희에게 가장 큰 만족을 줄 거야.
지금 내 순위 14위! 그래서 부담이 없어.
랩질 시작한 나이도 14살! 나이처럼 순위도 금방 오를 거야.
화를 내지 말고, 큰소리치지 말고, 흥을 내~! 우린 흥~ 많은 연습생!
다 같이!!
화를 내지 말고, 큰소리치지 말고, 흥을 내~! 우린 흥~ 많은 연습생!”
갑자기 태평 형의 프리스타일 랩이 쏟아져나오자, 큰소리로 다투던 연습생들이 멈출 수밖에 없었다.
뭔가 깨달은 게 있어서 다툼을 그만두었는지, 아니면, 태평 형의 랩소리에 다른 카메라들까지 다 우릴 찍자 그만둔 것인진 모르겠지만, 어떻든 포지션으로 인한 다툼은 멈추었다.
“민주주의가 왜 생겼겠어?
그냥 지원하는 포지션이 같은 사람이 있으면 그냥 투표로 결정하자. 그렇지 않으면 진짜 내일까지 서로 자신의 의견만 떠든다고 시간 다 갈 거야.
저기 봐 민호형 팀은 벌써 안무 짜고 있잖아. 포지션 정한다고 우리가 서로 다툴수록 시간만 줄어들고 다 망할 뿐이야. 이제 그만하자.”
연습실을 반으로 나누어서 한쪽을 쓰고 있던 민호 형의 댄스 포지션 팀은 벌써 안무를 짠다고 난리였다.
그제서야 위기감을 느낀 것인지, 개인을 위한 고집으로 포지션 배정에서 떼를 쓰던 형들도 투표로 정하는 것에 합의를 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리더는 주태평이 되었다.
*
*
“포지션을 정하는 부분에서 팀원들 간에 큰 소리로 언쟁이 있을 정도로 다들 자기 포지션에 대한 욕심을 내비쳤는데, 왜 자진해서 파트가 별로 없어서 인기 없는 서브 랩 5번으로 하겠다고 했나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안 되는데, 형들의 마음 상태가 날이 서 있어서 제가 뭘 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다들 비중 없는 서브 랩 5번을하기 싫어하길래 제가 한다고 했어요.
그리고, 저는 이번 미션이 각 포지션에 맡는 능력을 연습생 개개인들이 갖추고 있는지 확인하는 미션이라고 하지만, 결국 팀을 이루어서 무대에 오르고, 얼마나 팀의 완성도를 올리느냐가 전체적인 미션의 의도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개인 포지션도 중요하지만, 팀의 화합도 중요한 부분이고, 다들 분량 때문에 신경을 쓰는 것 같아. 그냥 제가 먼저 자원을 했습니다.
안 그러면 다들 하지 않으려는 랩 5번을 맡는 문제로 또 한 번 큰 소리가 날 뻔했거든요.
그러고 보니, 허~억! 서..설마, 일부러 이런 상황을 만들기 위해 오전에 이정이 선생님이 그런 경쟁을 유도하는 멘트를 날리신 건가요?”
“음. 그건 저도 잘 모르겠네요. 호호. 그럼 다음 질문으로...”
인터뷰를 진행하는 작가는 내 질문에 그냥 웃으며 ‘나도 잘 몰라’하고 넘어가며 주제를 변경했는데, 사회 경험 없는 고2인 10대 연습생이라면 몰랐겠지만, 사회에서 10년 넘게 일을 하며 눈치를 쌓았던 내 눈엔 당황해하며 다른 주제로 급히 넘어가려는 작가의 당황스러운 몸짓이 보였다.
그리고 그제야 이 포지션 미션은 개인 간의 알력이 생겼을 때 어떻게 대응하고 반응하는지를 확인하는 관찰 미션이기도 하다는걸 깨달았다.
1차 미션은 가장 기본이 되는 기본기를 확인해서 기본기가 모자라는 연습생들을 거르는 미션이었다면, 2차 미션은 포지션 미션이라고 해두고서는 실제로는 팀이 만들어졌을 때, 팀원 간의 알력이나 다툼을 어떻게 해결하는지를 연습생의 행동을 보면서 확인할 수 있는 미션이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해결책을 제시한 주태평과 기꺼이 포지션을 양보하며 착하게 보인 나의 행동이 방송에 나갈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좋은 이미지가 보이게 되면 결국 투표수로 돌아올 것 같았다.
‘앗싸 긍정 분량 확보!’
물론, 그런 상황에서 프리스타일 랩으로 상황을 반전시키고 어긋났던 팀워크를 다시 끌어올린 주태평은 만점일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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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미션의 숨겨진 정체를 알아챈 연습생이 몇 명쯤 될 것 같아?”
“음. 일단 확실히 눈치챈 연습생은 윤소원 연습생 한 명인 것 같아요.
인터뷰 중에 바로 물어보던데요. 나머지는 인터뷰를 다 해도 그렇게 숨겨진 의도를 바로 물어본 연습생이 없었습니다.”
“영악한거 보단 눈치가 빠른 거네. 영악했으면 알면서도 물어보지 않고 모른 척했겠지.”
“네, 약삭빠른 여우이든, 눈치로 알아챈 너구리든, 아니면 진짜 착한 인성을 가졌든. 그건 잘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분쟁을 피하고 가장 현명한 방법으로 해결책을 찾는 연습생들이 누구인지는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결과를 확인했다면, 꽤 괜찮은 미션이었네.
그건 그렇고, 편집해서 논란거리로 만들 에피는 많이 챙겼어?”
“네, 몇 개 챙겼습니다.”
“좋아, 그럼 악마의 편집실력 한번 보자고, 당하는 연습생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뭐 어쩔 수 없잖아 우리도 살아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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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틴(eighteen) - Victory 연습실]
“난 사실 이 프로그램에 지원한 이유가 김시타가 지원했다는 이야길 듣고 따라서 지원한 거였어.
지금 이 포지션 미션곡을 선정할 때도 시타가 여기에 있을 거라는 생각에 이 곡으로 왔어. 그리고 진짜 시타가 있어서 정말 기뻤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이돌과 같은 팀으로 무대에 올라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난 충분해.
그러니, 그냥 제일 분량 없는 곳에 날 넣어줘. 그거면 돼.”
“최준영 넌, 이정이 쌤 말을 듣고도 그렇게 나오는 거야? 너 그러면 100% 분량 없어서 다음에는 방출이야.”
“괜찮아. 뭐, 세상엔 나 같은 사람도 있어야지. 난 괜찮아.
그저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충분해. 김시타와 같은 팀에 같은 무대에 설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난 괜찮으니까 그렇게 해줘. 헤헤.”
“어휴.. 욕심 없는 놈. 본인이 직접 이야기 한 거니깐 너 서브 4로 해둔다.
나중에 뭐라고 해도 소용없다. 그럼 다음 익환이 포지션은...”
“여기서 스톱! 최준영이 저 말 할 때, 김시타 얼굴 찍은 영상 있어?”
“네, 따로 3번 카메라가 김시타 계속 찍고 있었습니다.”
“그럼, 최준영 말할 때 화면 분할로 김시타 넣고, BL느낌으로 가자.
알렉스의 ‘숨겨왔던 나의 수줍은 마음 모두~’ 하는 그 노래 알지?”
“노래는 아는데, BL로요?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당연히 괜찮으니까 넣으라고 하는 거지.
세대별, 성별 세부 시청률 자료 나와서 확인했고, 인터넷 투표자의 성별, 세대별 결과도 다 확인했어.
우리 프로그램은 절대적으로 10대~30대 여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그런 언니들의 취향 중에서도 핵심은 BL이야.”
“반대로 동성애 느낌 난다고 항의하지 않을까요?”
“저얼대~ 네버! 그럴 일 없어. HOT 때부터 여자 팬들은 그룹 내 멤버들간의 BL에 열렬한 환호를 보냈어.
아마, 남자 아이돌이 다른 걸 그룹의 여자아이들과 데이트 하는 게 들통나면 욕을 엄청나게 먹고 팬들이 막 떨어지겠지만, 같은 남자 아이돌끼리 묘하게 만나고 있다고 하면 오히려 더 좋아하는 게 여덕 들이야.
그 여덕들이 우리 프로그램의 주 시청자고.
우상처럼 바라보던 김시타와 같은 무대에서 서게 되어 기쁘다고 이야길 하는 최준영은 진짜 순수한 아이돌에 대한 마음이겠지만, 그 마음을 우리가 삐딱하게 만들어야지.
그게 편집이야. 이 방송 나간 이후에 두고 봐.
동성애 의혹이 생기기도 하겠지만, 그 반대로 최준영의 인기는 더 오를 거야.”
“참 알다가도 모르겠는 게 덕심(德心)인거 같네요.”
“최준영처럼 포지션 양보하려 했던 애들 있었잖아. 팀 내 경쟁하면서 분란이 일어난 걸 보여주고, 착하게 양보하고 하는 애들을 주목받게 해줘.
그래야, 순수하게 아이돌 좋아하는 애들이 착한 아이돌이라고 좋아해.”
“네, 알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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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턴의 SOBER는 맨정신이라는 뜻인데, 사실 가사는 그 반대야. 맨정신으로 못 버티니깐 미치고 싶다는 그런 가사거든.
그래서 우리는 개사를 해서 관객들에게 맨정신으로 있지 말고, 우리로 인해 미쳐보라는 그런 가사로 개사를 했으면 해.”
“그래서 팀 이름도 맨정신의 반대인, ‘All Crazy’로 하자는 거야?”
“그래. 일단 다들 개사를 위해서 이 주제로 먼저 가사부터 적어보자.
랩이니깐 자작 랩으로 먼저 곡을 완성하고 안무를 하는 걸로 하자.
2시간 동안 다들 가사 적고 나서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