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
공개 평가무대 (1)
“야. 새벽 2시야 다들 잠 안 잘 거야? 내일 아침 9시부터 일정 있어.”
“넌 방송에 분량 나왔으니깐 그런 말이 나오지. 통편집된 우리는 잠이 오겠냐?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잠이 안 올 것 같다. 넌 먼저 가서 잠이나 자.”
보통 11시면 연습실도 사람이 없어서 불이 군데군데 꺼져야 하는 시간인데, 지금은 모든 연습실에 불이 켜져서 대부분의 연습생이 연습을 하고 있었다.
너무 늦은 시간까지 하는 게 과유불급이라는 생각에 방으로 왔는데, 6명이 정원인 방에 나와 한 명밖에 없었다.
“어? 소원이구나. 일찍 왔네. 다른 애들은?”
“아 시타형 다른 애들은 더 연습한대요. 첫 방 보고 잠이 오지 않는 것 같아요.”
“뭐 어쩔 수 없지. 난 자련다. 너도 빨리 자.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고 잠 안 자고 하면 안 돼. 시간이 허용하는 한도에서 밤 10시에서부터 새벽 2시까지는 무조건 잠을 자야 해. 그때가 호르몬이 많이 나오는 시간이라 그때 안자면 몸이 더 자라지 않을지도 몰라.
아니네. 넌 더 이상 안 자라도 되겠다.”
“하하 그래도 2~3cm만 더 컸으면 좋겠어요.”
“에잇 키 큰 기만자 녀석 난 잔다.”
씻으러 가면서 살펴보니 역시나 상위권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다 잠을 자는 것 같았다.
수면도 성적에 따라 극과 극으로 나누어지는 것 같았다.
*
*
“야! 너희 왜 이리 힘이 없어. 골반을 튕길 때는 더 강하게 튕겨야지.
어중간하게 하려면 댄스 연습하지 마!”
역시나 오늘 새벽 늦게까지 연습한 후유증이 곳곳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2시에 잠이 들어 7시에 일어난 나도 피곤한데, 다른 사람들은 더 피곤할 터였다.
밤샘한 사람도 있다 보니 확실히 어제보다는 몸이 다들 무거워 보였고, 김하영 멘토는 그런 컨디션 난조를 바로 알아보았다.
“이틀 후에 무대에 올라가는 애들이 이래서 되겠어? 점점 더 좋아져야 하는데, 어제 첫 방송 보고 힘이 이렇게 빠진 거야?
그 정도에 상처받는 멘탈로 뭘 하겠어? 응?!
내일 최종점검 때까지 다시 연습해와. B조 너네는 순위도 좀 더 낮다면서? 그럼 더 열심히 해야지! 정신 차려!”
웬만해서는 화를 잘 내지 않는 김하영 멘토가 목에 핏대를 세울 정도로 큰소리로 호통을 칠 정도였다.
“다음 A조! 해봐.”
B조가 물러난 자리에 우리만의 포지션을 잡고 바로 시작을 했다.
[믿어요!
우리가 딱 하루만 더 함께하면
모든 걸 잊을 수 있다는걸.
.
.
우리가 함께할 곳이 있다면
그곳이 바로 My paradise~
꽉 안아줘. 날 바라보고 안아줘
Hug me baby~
우리가 함께한다면 그 무엇보다 기쁠 거야
이런 내 마음을 알고 있니?
함께하고 안아 줬을 때의 그 마음을
Hug me baby~
Woo HA~! Let’s PLAY!
너의 느낌대로 시킨 대로 날 안아줘
몸에 맡겨 흘러가는 데로, 그게 우리의 Hug.
뭘 어떻게 하겠어? 그냥 고민 따윈 하지 마.
그냥 날 안아줘 Baby
우린 그냥 안으면 돼 Baby
걱정 따윈 하지 마. I Feel Good Baby.
.
.
“확실히 B조보다는 완성도가 좋네.
이틀 남았으니깐 굳이 고칠 부분을 찾는다면 딱 1개만 고치고, 1개를 보충하자.
먼저 고칠 것은 과거 경력 때문인지는 모르겠는데, 민호가 너무 눈치를 보고 있어.
정면에서 마주 보고 있으니깐 눈동자를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고 눈동자가 막 흔들리는 게 보여.
특히나 마이크 잡고 정면으로 부를 때는 정면을 봐야지 왜 땅바닥을 보고 있어?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말고 정면을 그대로 응시해. 이거 고쳐야 돼.
그 누구도 너에게 뭐라고 안 해. 자신감을 가져.
그리고, 보충해야 할 것은 원곡인 Hug Me 자체가 밝은 파스텔 톤 곡이야.
B조가 원곡의 감성을 그대로 가져왔다면 A조는 댄스적인 추가 작업을 했으니 곡의 첫 시작 색도 좀 바꾸는 게 어떨까? 바로 색을 바꾸는 게 힘들다면 그런 변경이 있다는 걸 상징하는 그런 안무라도 넣어봐.
내일 최종 점검 때까지 해보고 안되면 그냥 보충 부분은 빼고 고칠 것만 고쳐서 점검받자. 알겠지?
이상 내 수업은 끝. 내일 보자.”
“네, 수고하셨습니다.”
*
*
“내가 지적받은 문제는 내가 어떻게든 고치도록 하마.
김하영 선생님이 충고해준 보충할 부분을 생각해 봤는데.
우리 무대 의상이 짙은 푸른색의 정장이니 첫 안무 도입부에 다들 이렇게 양손을 각기 다른 방향으로 뻗치고 서 있는 동작으로 마리오네트(marionette)처럼 꼭두각시의 몽환적인 느낌을 주는 게 어때?”
“오, 민호형 말대로 시작을 그렇게 하면 확실히 멋질 것 같아요. 그러면서 손을 내릴 때 안 주머니에 숨겨둔 붉은 장미를 꺼내어 던져 주는 건 어떨까요? 결국, 공개방송에 오시는 대부분은 여자일 거잖아요.
우리가 장미를 관객석으로 던져 준다면 그 장미를 차지하기 위해서 더 관객들의 흥이 오를 것 같은데.
붉은 장미의 붉은색이 상징하는 정열이라면, 기존 곡의 밝은 파스텔이 아닌 정열적인 장미의 이미지를 안겨 줄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어때요?”
“오! 소원이 아이디어 좋은데. 푸른색의 정장 안 주머니에서 꺼내지는 붉은 색의 장미. 뭔가 대치되는 컬러의 느낌도 있고 좋은데.”
“콜! 좋은데. 멋지겠어!
안주머니에서 장미를 꺼내 줄 때도 그냥 꺼내주지 말고 이렇게 왼손으로는 정장의 윗옷을 살짝 벌리고, 오른손으로는 천천히 꺼내주는 거지.
아, 그 살인의 추억에서 송강호가 애들에게 안주머니에서 감자 주먹 꺼내주는 거 알죠? 이렇게 먹어라! 하는 그 느낌.
그것처럼 손으로 장미꽃을 가리고 꺼내선 감자 주먹에서 장미가 나오듯이 펼치듯 밀어내는 거죠. 그러면서 살짝 웃어주는 입꼬리가 있는 냉정한 얼굴표정!”
“이야 대현이 아이디어 변태적인데, 감자 주먹에서 붉은 장미가 피어나듯이 내밀다니. 그러면서 살짝 웃으면 이거 묘하게 색정적이잖아.”
“아티스트 답네. 뭔가 병신 같지만 멋있는 것 같아. 감자 주먹과 붉은 장미라. 느낌 있네.
그럼 콜. 일단 장미 구해서 가시는 다 잘라서 다치지 않게 준비를 한번 해보자.”
우리 조의 분위기가 좋다 보니 누군가가 아이디어를 내면 거기에 의견을 내어 아이디어를 추가하고 또 추가하며 수정하다 보니 진짜 무대에서 제대로 연출이 된 퍼포먼스가 금방 만들어졌다. 이런 잘 풀리는 느낌이 너무 좋았다.
김하영 멘토의 주문사항에 급박하게 안무를 변경해서 연습하고, 소품으로 쓸 붉은 장미도 쉽게 구할 수 있었는지 스태프가 금방 구해주었다.
그리고, 직접 장미까지 던져가며 연습을 해보니 확실히 초반에 강한 인상을 주는 연출이었다.
“햐. 나의 이 무대 연출 재능이 나도 두렵네.
단순한 장미를 꺼내주자는 소원이의 아이디어를 이렇게 엄청난 연출력으로 임팩트를 만들어 버리니. 무대에서 이런 충격을 줄 수 있는 재능을 가진 내가 두려울 정도야.
감자와 장미. 뭔가 문학작품 같지 않냐?”
“형. 저도 형이 두려워요. 이런 말을 얼굴 붉히지 않고, 당당하게 하실 수 있는 사람이었다니. 두렵습니다요. 두려워요!”
“후후 아티스트의 마음을 소원이 네가 어떻게 알겠냐? 아~ 또 막 연출하고 싶은 무대 연출이 떠오르긴 하는데, 이건 너에게도 숨겨야겠어.
메모해둬야지. 내일 봐~!”
“민호 형은 알아가면 갈수록 여러 번 망했다는 과거 때문에 약간 소심한 거랄까 그런 게 살짝 보이는데, 대현이 형은 멀쩡하게 생겨서는 왕자병 말기 같은 그런 증상이 보이네.
소원이 너는 저런 이상한 병 같은 거 없지?”
“저도 당연히 저런 병이 있죠.”
“헐, 너도 저런 게 있는 거야?”
“네 전 더 무서운, 매력이란 병이 있죠. 환상의 병이라는 볼매~!”
“미친 너도 빨리 꺼지시고요~! 내일 최종점검 때 보자. 빨리 가 재섭써.”
“후훗 이미 일우 형은 저의 매력에 빠지신 겁니다. 내일봐요~!”
“에휴 정신병 하나는 있어야 연예인 한다더니 다 왕자병 말기 환자네 미친.”
왕자병 환자들에게 질렸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방으로 돌아가는 일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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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점검 전에 내일 무대순서를 뽑기로 뽑는다.
A조, B조 중에서 어떤 조가 먼저 무대에 오를지는 조장들끼리 결정하고, 지금 이 뽑기는 선정 곡의 순서야. 어디 보자.
첫 무대는...EOS – 미녀와 야수
두 번째는...몬스터 – Bad Girl
세 번째는 동방정기 – Hug me 네 번째는....”
무대순서가 뽑혀서 나오는데, 8곡 총 16번의 무대 중에서 5번째나 6번째 무대라면 적당했다.
처음이나 두 번째 무대라면 공개방송의 분위기에 짓눌려져서 본 실력을 다 못 보여줄 수도 있었고, 반대로 중반부를 넘어선 8번째 순서의 무대쯤 되면 관객들의 집중력이 떨어질 때가 되기에 5번째 6번째 무대가 딱 좋았다.
“B조가 5번째 무대로 우리보다 먼저 하고 싶다는데, 그렇게 해줄까? 댄스 다음에 발라드를 하면 분위기가 내려가긴 하니깐. 너희 생각은 어때?”
“뭐 그렇게 해주죠. 발라드로 먼저 잔잔하게 저쪽이 깔아주고 그다음에 우리가 빠른 리듬으로 간다면 우리에게 더 집중될 거에요. 결론은 우리의 승리죠!”
“오케이. 그럼 그렇게 정하고 오마.”
“자 조장들끼리 상의해서 순서를 정했으니 리허설 들어갑니다. 내일 공개방송 전 최종 리허설이 있지만, 최종점검을 하는 마지막 무대니깐 다들 힘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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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장미를 저렇게 꺼낼지는 상상도 못 했다.”
“이야. 김하영쌤 안무는 확실히 느낌이 다르네요. 김민호 조를 너무 편애하는 거 아닙니까?”
“PD님 저 안무는 제가 한 거 아니에요. 안무나 동작들 다 쟤들이 다 짠 거지 전 그냥 뭘 좀 바꿔 보라고 충고해준 거 말곤 없어요.”
“에? 진짜예요? 그러면 더 대단한 건데요.
흠. 무대 경험이 많은 민호가 짠 건가? 감각이 있네. 안무에 포인트가 있어.”
“그렇죠? 포인트를 잘 잡는 것 같아요. 가서 돈 안 드는 칭찬이라도 해주고 와야겠네요.”
“우리가 지금 공연한 6개 조 중에서 선생님들에게 가장 많은 칭찬을 받았다. 더는 손 볼 거 없고, 내일 무대까지 컨디션이나 잘 관리 해란다.”
“그럼, 형 우리 오늘은 하루종일 이 옷이랑 구두를 신고 있는 게 어때요? 늘 맨투맨에 트레이닝복 입고 있다가 이렇게 정장에 셔츠 입으니깐 은근히 불편해서 몸이 좀 느려진 것 같거든요. 옷에 몸이 적응할 시간이 좀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오케이. 무슨 말인지 알겠어. 소원이 말대로 정장에 구두가 불편한 사람도 있으니깐 오늘은 연습도 이 옷에 구두 신고 계속하는 거로 하자. 자 다시 연습실로 가자. 완성도를 더 높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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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성. 웅성.]
“와! 아빠, 우리는 아예 공개방송 못 들어가는 거 아니에요? 공개방송 보러 온 사람들이 장난 아니게 많은데요. 1,000명 들어가는 공개홀이라던데, 이렇게 사람이 많으면 다 못 들어갈 것 같은데요.”
“그러게. 저기 안내원 있으니 물어보고 오마.”
“야, 게시판에 Vaxx 오빠들 스케줄 올라온 거 있어?”
“나 팬 페이지 등업 못해서 스케줄 게시판 안 봐져.”
“헐. 나도 그런데, 누구 Vaxx 오빠들 팬 페이지에서 스케줄 게시판 볼 수 있는 권한 있으신 분~! 스케줄 좀 봐주세요!”
“EOS 오빠들 내일 싸인회 일정 시간 변경되었다는데 아시는 분~”
“프듀 공방 끝나고 바로 청남대 축제 행사 같이 뛰실 분 구해요!”
‘뭐야? 그냥 공개방송 있으면 신청받아서 입장권 들고 오는 게 아닌가? 그리고, 팬 페이지랑 그런 것도 다 등업을 받아야 볼 수 있는 거야?
서로 정보 공유하는 어플 같은 게 있으면 될 것 같은데. 왜 저렇게 옛날 방식으로 정보를 주고받는 거지?’
서당대 경영학부의 오리엔테이션도 다녀오고 전공 서적도 미리 보고 있던 입장에선 뭔가 저런 팬들을 위한 서비스가 생각 날 듯 말 듯 했다.
“기원아 가족들은 이쪽이 아니란다. 저쪽이래. 어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