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민아이돌 프로듀스99-25화 (25/237)

# 25

그리고, 마주친 현실.

“요즘은 어느 정도 아이돌 팬질 하는 애들은 허세가 많아져서, 저 애 내가 다 키웠잖아 하는 그런 자부심? 거만함 같은 게 있거든.

그런 팬질 취향의 변화에 발맞춰 가야지.”

“흠. 마치, 코질질 흘리는 찌질이를 내가 훈남으로 만들었다는 여자의 허세 같은 거구나.”

“어 아빠 맞아. 그 심리야. 그런데 그렇게 되면 내가 키운 아이돌이라는 마음도 강해져서 팬질의 수준이 확실히 달라.”

“그러면 사생팬 같은 그런 게 만들어지는 거 아니냐?”

“어머. 그러면 그거 안 좋은 거 아니니?”

“엄마. 구더기 무서워서 장 안 담글 거 아니잖아.

그래도 일단 떠야 해. 팬심이 강한 팬들이 따라붙어야 공항 패션이니 직캠이니 하는 영상들이 만들어져서 온라인에 콘텐츠화 되는 거고, 팬들을 입덕 시키는 거야.

하여튼, 요즘은 기획사에서 일부러 작업을 치는 것도 있지만. 팬심을 더 강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성장형 아이돌이 좋아. 어 오빠 인터뷰도 나온다.”

“오. 꼴찌인 99위이니 올라갈 것만 남았다는 인터뷰도 좋네. 짜식 책도 거의 안 읽는 게 말 잘하네.”

“이 인터뷰가 바로 우리 집안의 인성교육, 전인교육의 결과지. 이 아빠와 엄마의 엄격하고 예의 바른 가정교육이 저렇게 나타나는 거지. 교육자 집안의 아우라랄까 후후후.”

“아빠 말에서 교육자 집안만 인정!

소원이 친구 경태인가 진욱이라는 애도 같이 나갔다던데, 그 둘은 전혀 나오지 않네.”

“방송 말미인데, 나오지 않았으면 편집되었는가 보다. 아님 2화에 나오는 건가?”

[띠링], [띠링], [띠링], [띠링]

“헐. 내 친구들이 다들 오빠 팬 하겠데. 대박 내 친구들 마음을 움직였으면 일반 팬들도 다 움직인 거야.”

“어머, 나도 TV 본다고 무음 해두었더니 전화기에 카톡이랑 문자가 장난 아니네. 고모 집에서도 전화가 왔었네.

우리 학교 애들한테도 이야길 했더니, 우리 반 단톡방에서도 난리다.

어머머 친척밴드(BAND)도 난리다. 소원이 잘 나왔다고. 고맙다고 투표 좀 해달라고 링크를 올려야겠다.”

“난 남고라서 그런지 분명 우리 아들 나온다고 했는데도 우리반 단톡방은 조용하네. 쩝.”

“헐. 아빠. 소원이 이름도 네이버 실시간 순위에 있어.

1위가 프로듀스99, 2위가 류진율, 5위가 김민호, 19위에 소원이 이름도 있어. 죽이네. 캡쳐해야 겠다. 내 친구들한테도 자랑해야지.”

“오빠 실시간 캡쳐사진 나한테 보내줘. 친구들이 오빠 사진이랑 해서 다 페북이랑 트위터, 인스타 올려준 데. 진짜 오빠 대박 날 듯.

그런 의미에서 엄마! 카드 줘야지.”

“바빠 죽겠는데, 왜? 무슨 카드?”

“왜긴 왜야? 오빠 옷을 사야지. 네이버 실시간 19위에 잠시 있었지만, 그래도 네이버야 엄마.

이제 많은 사람이 오빠 알아볼 거고, 찍히는 사진이 다 인터넷에 올라올 거란 말이야.

그러니깐 이제 오빠도 코디, 헤어 관리를 받아야지. 부산에 온다고 KTX 기차 탈 때 역 패션, 비행기 탈 때 공항 패션 있잖아. 이제 오빠도 신경 써야 한다니깐.”

“공항 패션은 들어봤는데, 역 패션은 또 처음 들어보는데.”

“오빤 KTX 타고 오니깐 역 패션이지. 요즘 먹히는 남친바지라는 슬랙스 바지도 사고 셔츠도 사서 역이나 공항에 돌아가면서 입어야지.

이젠 지금처럼 후줄근하게 입으면 안 돼.”

“그러고 보니 그것도 그러네. 그래 여기 카드.

결제할 때마다 문자 날아오니깐 네 옷 사면 알아서 해. 이모도 전화 오네. 여보세요. 그래그래 너도 TV 봤지? 그러게 호호호호.”

“딸 좀 믿으라고. 걱정 말래두.”

지혜의 의미심장한 미소가 걸리긴 했지만, 소원이 옷을 산다는 말에 신용카드를 넘겨 줄 수밖에 없는 엄마였다.

“공개방송 날 아빠랑 오빠 가기로 했지?”

“그래 내 자취방에 짐 넣고 얼굴이나 볼 겸 가려고 했지.”

“그러면 아빠랑 오빠도 공개방송 갈 때 옷 좀 챙겨입어. 내가 옷 코디해줄게.”

“우리도 그런 걸 신경 써야 되는 거냐?”

“서..설마 아빠, 학교에서처럼 개량한복 입고 가려고 한 건 아니겠지?”

“헉, 어 어떻게 알았냐. 난 그냥 편하게 입고 가려고 했는데.”

“그라믄 안돼! 아빤 무조건 정장 입어. 큰오빠는 내가 옷 챙겨줄게. 연예인 가족도 사진 찍혀서 올라가니깐 잘 입어야 해.”

“저기, 딸! 아직 소원이 연습생이거든.”

“지금 내 전화기 보이지 카톡방에 라인까지 난리야. 이거 분명히 터진 거야. 오빠가 지금처럼 방송분량만 계속 따내면 무조건 데뷔 각이야. 데뷔!”

“확실해?”

“그래 확실해 무조건 데뷔 각이야!”

*

*

‘방송 끝나기 10여 분 남았구나.’

다행히 내가 노렸던 심사 무대와 인터뷰는 노린 그대로 방송분량을 뽑아내 주었다.

이 분량으로 인해 순위가 얼마나 오를지는 두고 볼 일이었지만, 초반부에 임팩트를 주겠다는 내 의도는 일단 성공적이라고 판단을 했다.

어느 정도 만족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방송에서 나오는 개인 인터뷰를 보고 눈물을 흘리는 애들도 있었고, 자신의 분량은 언제 나오는지 오매불망 기다리는 애들도 있었다.

“엇? 방송 끝이야? ‘주인공’ MV나오는데.”

“그럼 난 편집된 건가? 집에 본방송 꼭 보라고 했는데.”

“설마, 진짜 통편집이야?”

그제야 다들 자신이 편집된 것에 대해서 실감이 나는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뮤직비디오도 끝이 나고 방송 끝에 순위가 나오기 시작했다. 기존의 사전 투표결과로 내가 55위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순위도 궁금해서 화면이 뚫어지라 순위를 지켜봤다.

‘경태는 65위 진욱이는 79위구나. 둘 다 이러면 탈락권인데. 심사 무대나 인터뷰가 다 나오지 않으면 힘든데.’

“여러분! 지금 네이버 실시간 1위가 우리예요.”

거의 새벽 1시가 다 된 늦은 시간이다 보니 MC 이정이 대신 멘토 김태운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네이버 첫 화면이 뜬 패드를 들고 나타났다.

다들 잘 보이지도 않는 패드 화면을 보겠다고 몰렸다.

“오 진짜다! 프로듀스 99가 1위야. 엇 진율이가 실시간 검색어 6위에 있어.”

“민호 형도 11위에 있네. 이야. 대박!”

실시간 검색어에 우리가 나오고 있다는 것에 감탄했지만, 본인의 분량이 아예 통편집되어 기분이 가라앉은 연습생들은 분위기가 안 좋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너희 중에 몇몇은 아니, 대부분은 방송분량에 대해서 불만이 많을 거야.

아마도 가장 밝게 빛나는 본인을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하는 방송국 놈들이 편집을 잘 못 한 거로 생각하고 있을 거야.

사실 내가 이렇게 방송국 놈들이라고 욕을 하지만, 이 방송국 놈들이 또 기가 막히게 뜰지, 못 뜰지를 알아내는 놈들이야. 쓰레기인데 능력 있는 쓰레기들이야.

아마도 방송국 놈들이 편집을 잘못했다기보단, 가장 빛나는 사람이 나오게 만들었을 거야.

난 너희들 한명 한명이 눈부시게 빛나는 걸 직접 봤어. 이 자리의 모두가 다 같이 봤잖아.

우리가 다 서로의 빛나는 모습을 본 거야. 그중에서 진짜 재능으로 눈이 부시게 엄청난 빛을 뿌리는 사람도 있었어. 그걸 방송국 놈들은 알아본 걸 거야.”

김태운의 말에 편집되어 방송에 나오지 못한 아이들도 어느 정도 수긍이 되는지 고개를 끄덕이고 하는 게 보였다.

곰 같은 그의 모습에 이런 달변가의 모습이 같이 있을 줄 몰랐었다.

몇 명은 감정이 북받치는지 울먹였다.

“그런데, 눈이 부시게 밝은 빛을 뿌리는 아이돌에 어울리는 재능 대신에 다른 색깔의 빛을 뿜어내는 재능을 가진 사람도 있을 거야.

이젠 너희들도 곰곰이 미래에 대해서 생각해볼 때야.

여기 있는 모두가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어. 하지만, 지금 이 자리의 99명 중에서 선택이 되는 건 가장 밝은 빛을 내는 9명뿐이야.

방송이 종료되고 그 9명에 선택되지 못했을 때를 냉정하게 고민해야 해.

내가 프로듀스99 프로그램의 멘토로 나간다고 하니깐, 나에게 재능이 없거나 그저 그런 아이들에겐 냉정하게 현실을 이야기해주는 게 그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는 더 좋을 거라고 충고를 해주더라.

그 사람 말대로 객관적으로 보면 그럴 수도 있어.

하지만, 본인의 인생이면 그게 객관적으로 판단해서 될까?

지금 이 자리도 본인의 주관으로 나온 거잖아.

내가 아무리 너희들의 멘토라지만, 멘토가 해줄 수 있는 건 없어. 그저 이 방송에서 9명이 팀을 만들어서 데뷔하는 것에서 끝이 나버려.

그 이후에 대해서는 우리 멘토들이 인생의 선배라지만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오로지 본인이 결정해야 하는 일이야.

내가 20년 가까이 이쪽 일을 하고 있지만, 연예계는 정말 냉정하고 잔인한 곳이야. 유명하고 인기가 있을 때는 앞에서 웃어 주지만, 인기가 없거나 무명이라면 무서울 정도로 사람을 무시해.

연예인이 된다는 건 힘든 일을 당해도 웃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해.

연예인의, 아이돌의 밝고 화려한 모습에 반해서 꿈만 쫓아서는 버틸 수가 없어.

냉정하게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나에게 진짜 재능이 있는지, 슬퍼도 웃으며 남을 위해 에너지를 줄 수 있고 사람들을 즐겁게 해줄 수 있는지를 한번 고민해 봐야 해. 그것이 가장 중요해.

자기 자신에게 그 재능이 있는 것 같다고 하면 그 재능을 믿어!

그리고 그 재능을 믿고 재능을 꽃피울 수 있는 노력을 해.

노력과 연습만이 너희의 재능을 빛나게 해줄 거고 그 재능이 너를 날아오르게 해줄 거다.”

이미 방송의 인터뷰 등에서 연습생들이 울면서 건드린 감수성이 김태운의 이 말에 다들 폭발을 해버렸다.

나도 눈물이 났고, 옆에 있던 경태는 꺼억꺼억 거리며 울 정도로 감정이 터져버린 것 같았다.

그러면서 주먹을 움켜줘는 것이 각오를 다지는 것 같았다.

*

*

“아 김태운이 저거 멋진 말을 하면서 방송국 놈들이 뭐야. 방송에 못쓰게 시리. 멋진 멘토와 눈물 흘리는 제자와 같은 연습생 애들 이거 완전 ‘죽은 시인의 사회’ 영화 느낌 나지 않냐? 그런 멋진 사제지간 그림 나올 뻔했는데.

말 좀 이쁘게 했으면 바로 이거 방송에 넣으면 될 건데. 아쉽다.”

“진짜 아깝네요. 인터넷용 비하인드 영상에라도 붙여넣을게요.”

“그래 그렇게라도 써라. 그냥 버리기엔 너무 아깝네. 시청률은 나왔어?”

“지금 들어온 게, 제일 빠른 KT, SK IPTV인데 집계 상으로는 2.5%, 2.9%랍니다.”

“흠. 나쁘진 않네. 아마 내일 공식 집계는 2% 후반이나 3% 초로 잡히겠네.”

“공개방송 이후에 영상 업로더들이랑 마케팅팀에서 일단 한번 작업해 준다고 하니깐 3회 이후에나 제대로 시청률이 오를 겁니다.”

“잘 돼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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