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
첫 방송.
“소원아. 와 나 어제 잠을 한숨도 못 잤잖아.”
“왜? 오늘이 첫 방이라서?”
“그래 심장 떨려서 잠이 안 오더라.”
“그럼 그 시간에 연습을 더하던가. 이틀 전에 최코 샘한테 한소리 들었다면서?”
“아무 일도 손에 안 잡혀서 할 게 없더라. 그래서 잠자려고 누웠던 거야.
그리고, 최코 샘과는 음악적인 견해 차이로 그냥 서로 의견을 주고받은 거지. 내가 한소리 들은 거 아니거든?”
“뭐래? 진욱이가 너 한소리 듣고 울었다고 다 이야기 해줬구만.”
“아! 이진욱이! 우씌!”
“조용! 다시 옷매무새 점검해. 지금 다 같이 앉아서 시청하는 스냅사진 찍는다. 다들 정면보고.”
공개무대 3일 전 드디어 첫 번째 1회 방송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실제 방송이 되는 날 임에도 제작진은 우리에게 누가 방송에 나오고 누가 편집이 되는지 정보를 하나도 주지 않았는데, 그래서 모두들 방송에 대한 기대와 궁금증으로 오늘 오전부터 연습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나도 내가 노린 것들이 성공해서 분량을 따내었을지가 궁금했다.
다행히 실시간 온라인 순위는 제작진이 숨기지 않고 바로 알려줘서 내가 55위라는 건 알고 있는데, 과연 1회에서 내가 얼마나 분량을 따내고, 순위를 끌어 올릴 수 있을지도 걱정이 되긴 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합숙이 끝나고 나서도 절대 SNS에 글을 올리면 안 됩니다.
관련 없는 글을 올려도 사람들이 물어보고 하다 보면 실수로 스포일러를 할 수도 있는 것이라 아예 SNS에 글 자체를 쓰지 마세요. 아셨죠?
합숙 기간뿐만 아니라 아예 프로그램 촬영 기간 내내 전화기를 거두고 싶지만, 여러분을 믿기에 집으로 갈 때는 전화기를 드리는 겁니다.
다들 비밀엄수서약을 했으니깐 법적인 문제가 없게 꼭 부탁드립니다.
본인은 물론 여기 있는 동료들을 위해 SNS 자제를 부탁드립니다.”
“네 알겠습니다앗~!”
PD나 작가들이 귀찮을 정도로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하면서 SNS에 글 올리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비밀엄수서약까지도 다 했는데 아마도, 방송 후 통편집되거나 논란거리가 되더라도 SNS로 대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 같았다.
사실 논란이 되면 될수록 프로그램입장에서는 더 이득이었다.
무반응보다는 음해성 논란으로도 시청률은 오르기 때문이었다.
“오~ 앞 프로그램 끝나고 광고 시작하네.
오늘 부모님이 옷 가져다준다고 오셔서 핸드폰 좀 썼는데, 네이버랑 신문에 우리 광고 나오더라, 신문에 민호 형 센터기사보니깐 내가 다 뿌듯하더라.”
“광고 엄청 많네. 기다리다가 위장병 생기겠다.”
“다들 집에서 방송 보고 투표하라고 했지?”
“물론이지. 야야 시작한다!”
이정이의 목소리 같지 않게 낮게 깔린 목소리의 나레이션이 나오기 시작했다.
[연습생.
대한민국 및 외국에서 온 아이돌 연습생은 비공식적으로 10만 명이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다.
지난 3년간 데뷔한 아이돌 가수들의 평균 연습생 기간은 2년 4개월.
개인에 따라 짧으면 3개월 길면 6년의 연습생 기간을 가졌다.
연습생.
듣기엔 뭔가 있어 보이고, 밖에서 보기엔 화려하고 즐거울 것 같지만, 데뷔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아닌 신분.
연습 기간이 아무리 길더라도 데뷔를 100% 장담할 수 없는, 명확한 것이 하나도 없는 신세.
꿈을 가지고 오늘도 내일도 앞을 향해 가기 위해 노력하지만,
현실은 좁은 연습실에서 데뷔의 꿈을 먹으며 오늘도 땀 흘려 노력할 뿐.
이 흘리는 땀이 얼마나 더 흐르고, 얼마나 더 길어야 데뷔를 할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답이 없다는 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매일 밤 꿈을 꾸며 버틴다.
저 무대 위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이 나라는 꿈을...
무대 위의 저 자리가 내 자리라는 걸 확인받기 위해 지금도 꿈을 먹으며 포기하지 않고 나아간다. 그것이 연습생이다.]
나레이션과 비장미 넘치게 춤을 추는 연습생들의 얼굴들이 페이드 인(Fade in) 되며 MC 이정이의 얼굴이 나왔다.
카메라가 줌 아웃되자 높은 단 위의 이정이를 둘러싸고 교복과 같은 옷을 입은 99명의 우리가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국민 프로듀서 여러분.
저는 국민 프로듀서 여러분을 대표해 이 자리에 선 ‘이정이’입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TV 앞에 계신 국민 여러분들이 국민 프로듀서가 되어 지금 여기 있는 99명의 소년을 위해 투표를 해주실 거라 믿습니다.
국민 프로듀서 여러분이 직접 뽑아주신 9명의 소년들이 역사에 없는 국가대표 국민 아이돌이 되어 데뷔를 할 수 있게 됩니다.
지금 이 99명의 소년 중에서 9명의 선택을 국민 여러분의 손에 맡기겠습니다. 99명의 모든 운명이 국민 프로듀서 여러분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모든 국민 프로듀서님들께 인사!”
“국민 프로듀서님 잘 부탁드립니다!!”
“자 그럼 지금부터 국민 프로듀서 여러분들께 투표방법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Nnet 홈페이지에 가입하시고, 프로듀스 99의 공식 홈페이지에 접속하세요.
그리고, 여러분이 선택한 연습생을 위해 투표버튼을 눌러주세요. 몇 번의 클릭이면 된답니다.
국민 프로듀서 여러분들이 직접 뽑아주신 9명이 최종 데뷔멤버가 되어 데뷔하게 되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만드는 아이돌이 보고 싶지 않으신가요?
매일 한 번의 투표기회가 주어지며, 한 번의 투표에 9명의 소년들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단 동일한 연습생에게는 중복투표를 할 수 없습니다.
지금 어서 빨리 Nnet에 가입해서 당신의 연습생에게 투표해주세요.
국민 여러분의 투표로 정해지는 상위 3명의 연습생에게는 매주 방송마다 베네핏이 주어지니 여러분의 투표로 연습생의 운명이 달라지게 됩니다.
어때요? 당신이 응원하는 연습생에게 투표할 마음이 생기셨나요?
그렇다면 지금 바로 당신의 소년에게 투표하세요~~!
투표가 없는 첫주에는 방송 전 인터뷰 영상과 사전 촬영 영상의 조회 수를 기반으로 순위가 결정되니 많은 조회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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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새끼들 밤꽃 냄새 오지겠네.]
[여기서 떨어지면 강제 입대시키면 내가 본방송 본다. 좃도 아닌 딴따라 새끼들 밤꽃 냄새나는 방송을 봐야겠냐? 걸그룹 내놓으라고.]
[엔넷 감을 잃었네. 3회 만에 조기 종영 각이다.]
“흠. 엄마 방송 실시간 검색을 보는데, 반응이 영 별로인데.”
“그런데 소원이는 언제 나온다고 했어?”
“오빠도 모른다던데. 의자에 앉는 건 거의 맨 끝에 나가서 분량이 없었데. 심사 무대를 기대한다고 했는데, 제작진이 이야길 안 해줘서 오빠도 알 수 없데.
출연하는 사람이 많다 보니 분량이 5분 이상 나오는 건 MC 보는 이정이 밖에 없을 거래.”
“그래? 그럼 엄마, 지혜야 우리 다른 거 보자 언제 나올지도 알 수 없는 거라며? 통편집될 수도 있는 거고, 그냥 내일 내려받아서 보자. 집중해서 봤는데, 통편집되었으면 그것도 좀 그렇잖아.”
“형이라는 게 동생이 TV에 나온다는데 녹화는 못 해줄망정 초 칠을 하고 있어. 이제 게임을 해도 뭐라고 안 할 테니까 방에서 게임이나 해.”
“게임도 별로...
놀려 먹을 소원이가 없으니깐 재미가 없네. 아빠는 언제 오신데?”
“이제 요 앞이라고 하니깐 금방 오시겠지. 지혜야 소리 좀 더 크게 해라. 애가 울면서 말하니깐 뭐라고 하는지 알아듣기 힘드네. 소원이도 저렇게 우는 거 아니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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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진율이의 선즙필승에 당했다. 진율이 자식 1위 의자에 앉아서 당당하게 해놓고는 인터뷰에서 바로 눈물 짰네.
재도 나처럼 노렸네. 노렸어. 분하다. 선빵에 당했어.”
내 옆자리의 경태는 자기보다 먼저 눈물을 흘리며 인터뷰를 하는 진율이에게 진 것 같다고 분해했지만, 대다수의 연습생은 진율이의 눈물 사연을 듣고는 감정이 이입되어 눈물을 글썽였다.
“제가 들어간 대상플랜차이즈에는 빛나는 별들이 많았어요.
가장 빛나던 회사에서 별들이 하나둘 떠나니 회사가 영롱한 빛을 잃어버렸어요.
요즘은 어디를 가나 망해가는 회사다. 침몰하는 배다. 어서 빨리 빠져나가서 다른 회사로 가라고 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그리고 제가 회사의 대표님이 외삼촌이라고 하면 몰랐다고, 미안하다고 하죠.
이런 반응이 제가 있는 대상플랜차이즈의 현주소에요.
어릴 때 제가 본 외삼촌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신다고 즐거워하며 두 눈에선 빛이 반짝였어요.
지금은 그 반짝이는 빛이 외삼촌의 눈에서 많이 사라지셨어요.
저는 예전의 가장 빛나던 대상플랜차이즈에 다시 밝은 빛을 주고 싶고, 외삼촌이 눈을 반짝반짝하던 그때로 다시 만들고 싶어서 여기에 나왔어요.
그래서 1위 자리에 앉았던 거구요.
외삼촌과 회사에서 저에게 거는 기대가 큰 만큼 부응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되기도 해요. 하지만, 그런 압박을 이기며 넘어설 수 있게 노력을 할 겁니다.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인 것 같아요. 제가 감당해야 할 일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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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진율이라 소년가장이네. 1PICK 체크”
“지혜야 네가 그렇게 공부를 했으면 과고나 국제고 갔겠다.”
“큰오빠랑은 다르거든요. 작은 오빠랑 나는 공부와 친해지기 싫거든요.”
“어? 저기 소원이 나온다. 엄마! 소원이 심사 무대 나오니깐 빨리 와!”
늦게 온 남편의 야식을 챙기기 위해 부엌 식탁에 마주 앉아있던 부부는 단거리 육상선수들처럼 숟가락 젓가락을 들고 TV 앞으로 뛰어왔다.
“어머! 진짜네. 진짜 TV에 나오네. 화장은 또 왜 저렇게 진하게 했데?”
“엄마 저것도 연하게 한 거야. 나름 포마드 머리는 잘 올렸네.”
“노래 시작한다. 조용히 해봐.”
짧다고 하면 짧은 1분 30여 초가 지나가고 심사위원으로 앉아있던 멘토들의 칭찬에 어깨를 나란히 하고 TV를 보던 유정현, 최혜정 부부의 눈가도 촉촉해졌다.
“아니, 우리 소원이가 언제 저렇게 노래를 잘 불렀데? 집에선 연습도 안 하더니.”
“엄마가 시끄럽다고 밖으로 나가라고 했잖아.”
“이놈의 가시나가 확~! 조용히 안 해.”
“지혜야 팩폭은 좀 자제를 해야지. 엄마 명치 아플라.”
“올 초에 자퇴하고 서울로 간다는 걸 보냈어야 했나? 소원이에게 저렇게나 재능이 있었을지는 몰랐네. 아 춤도 추는구나.”
소원이의 고품격 노래를 듣고 집안에 가득했던 감동의 훈풍은 붐바스틱이 한 번에 휩쓸고 가버렸다.
“여보, 우리 소원이 댄스학원 끊어 줍시다. 안 되겠네.”
“그..그래야 겠네요. 내가 연예인 되는 거 무조건 반대를 하면서 그런 곳을 안 보낸 게 실수였네요.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 보내는 건데.”
“아냐, 아냐, 엄마, 아빠 이게 더 좋아.
사람들은 완벽한 걸 안 좋아해. 외모도 좋고 노래도 잘 부르고 춤도 잘 추면 엄친아라서 같은 동성에게는 재수 없다고 시달려.
지금처럼 춤이 부족한 게 더 좋아.
100%보단 99%가 끌리는 거고, 옷을 다 벗은 남자보단, 청바지만 입고 웃통 벗은 남자가 더 섹시한 법이야. 오빠가 머리를 써서 빅피쳐를 그린 것일 수도 있어.”
“이놈의 가시나 인터넷만 하루종일 하더니 이상한 것만 보고 못 하는 말이 없어 옷이 뭐? 웃통을 벗어? 아주 그냥!! 너 이제 인터넷 쓰는 시간 줄일 줄 알아.”
“아~ 엄마 그건 아니잖아.”
“엇, 소원이 F등급 받았네. 낙제인가. 큰일이네.
지혜야, 부산에 댄스학원 빨리 알아봐라.”
“아빠 그게 아니야. 지금 저 프로그램에 이재원이랑 춤 선생들 있잖아. 저 선생들보다 더 좋은 춤 선생은 없어. 저 사람들이 국내에선 최고의 강사진이야. 저기서 배워야 해.
저기서 발전하는 모습이 보여야 입덕 포인트가 생기는 거야.”
“진짜야?”
“그래 이제 대세는 일본처럼 같이 성장해 가는 성장형 아이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