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민아이돌 프로듀스99-20화 (20/237)

# 20

상과 벌

등급이 재조정된 이후 다시 연습실로 가려는데, MC 이정이가 보컬 담당 멘토인 김태운을 앞세우고 갑자기 나타났다. 뭔가 평소와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야! 잠시만! 다들 모여!! 다들 이리와!!”

안무를 담당하는 김하영 샘도 모르는 일인지 김태운에게 눈짓을 보냈지만, 덩치 큰 김태운샘도 그냥 MC 이정이를 가리키기만 했다.

“저 이정이 씨 A등급 연습생들은 지금 센터 투표를 하러 가야 하는데.”

“아, A등급 애들은 FD님 따라가. 나머지는 다들 줄 맞춰서 서.”

다들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갈 것 같은 느낌이라 등급 이야길 하며 웃던 애들의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다.

“너네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거야?

등급 재평가 영상을 보고 등급을 다시 평가하는데, 진짜 어이가 없더라.

이게 장난이야? 우리 프로그램이 그냥 예능이었다면 나도 웃어줬을 거야.

그런데, 지금 이 방송은 너희의 미래를 결정하는 방송이야.

너희 목숨이 걸린 거나 마찬가지라고. 이해가 안 되는 거야?

F등급이 되면 아예 카메라에 안 나올 수 있고, 뮤직비디오에서도 한 컷도 나오지 않을 수 있어.

너희 인생이 걸린 등급 재조정심사였다고.

그런데, 그런 등급 재조정 영상을 포기해? 녹화기회는 단 한 번밖에 없다고 이야길 했잖아. 그런데도 쉽게 포기하는 거야?

너희 목숨과 미래도 그렇게 쉽게 포기할 거야?

그렇게 쉽게 죽겠다는 마음가짐이면 때려치워 그런 마음가짐으로는 아이돌은커녕 뭘 해도 안 돼.

그리고, 래퍼는 랩 할거라고 보컬 노래 못해도 된다는 거야? 왜 춤만 춰?

랩만 하려고 했으면 ‘쇼 미더 달러’에 갔어야지 안 그래?

아이돌은 뭐든 다 잘해야 해. 그게 아이돌이야.

그런데, 왜 너희 인생을 너희 기준에 맞게 마음대로 재단해서 더 크게 될 가능성을 본인 스스로 망쳐버리는 거야?

가사도 제대로 못 외우는 사람은 진짜 할 마음이 있긴 있는 거야? 이틀이 넘는 시간 동안 가사를 못 외운 게 말이 되냐? 어?

아 열 받아. 어린 너네한테 막말하면 그 상처가 오래갈 걸 알기에 더 말은 안 할게. 하지만, 이건 알아둬라.

여기 있는 몇몇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될 기회를 그냥 날려버렸다는걸.”

MC 이정이가 화가 나서 막 쏘아붙이기는 했지만, 다 맞는 말이었다.

진짜 이 프로듀스 프로그램은 기획사에서도 B급 취급을 받던 연습생들이 한국은 물론 아시아 최고의 아이돌이 될 수 있게 만들어준 인생 최대의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었다.

뭐, 물론 지금은 다들 이 프로그램이 그렇게 대박이 날지를 모르고 있어서 무덤덤하겠지만, 프로그램 회차가 거듭될수록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고 인지도가 만들어지게 되면 그때는 이미 늦은 거였다.

“너희 이정이 누나가 화를 내고 했기에 난 더 이상 화를 안 낸다.

이정이 누나도 다 너희가 안타까워서 그런 거야 인마.

이정이 누나가 데뷔한 이후, 내가 GOS로 데뷔한 이후 얼마나 많은 연습생과 데뷔한 아이돌들이 있었겠냐?

그런 걸 누나가 다 지켜봤기 때문에 너희가 안타까운 거야. 그러니 더 분발해야 해.

그리고, 너희 F등급으로 떨어지거나 D, F등급의 하위 등급을 받았다고 해서 너무 슬퍼하진 마. 너희 인생이 D, F등급인 게 아니야.

방송 프로그램의 한 무대에서의 등급이니깐 너무 우울해 하진 말고.

다들 잘 할 수 있는 능력을 다 갖추고 있다고 난 생각해.

다음에 잘하면 되는 거야 알았지? 다들 할 수 있지?”

“네.”

“잘 안 들려! 더 힘차게! 다들 잘할 수 있지?”

“네엣!”

‘MC인 이정이가 화를 내고, 더 화를 낼 것 같은 곰 같은 김태운은 같은 남자니깐 연습생들을 달래주는 콤비네이션이네. 이것도 그러면 방송대본인 걸까?’

이런 채찍과 당근 수법이 대본으로 짜여 있는 것인지 궁금해서 더 관찰하고 싶었지만, 김하영 샘이 연습실로 애들을 빨리 보내버렸다.

다행히 우리 타이틀 곡인 ‘주인공’의 MV를 찍는 건 내일이었기에 하루 더 연습할 시간이 있었다. 연습실에 올라오니 조금 전 이정이에게 한소리 들은 것도 있고 해서 다들 열심히 했다.

하지만, 여전히 인터뷰를 빙자한 방송 놀이에 빠져 연습 안 하는 애들도 여전했다. 어쩌면, 이런 연습 중간중간에 불러서 인터뷰하고 집중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도 방송을 통해 제대로 된 노력하는 인성을 가진 연습생을 골라내기 위한 방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

*

“안돼, 그러면 애들 상처받아.”

“아냐, TV 프로그램에서는 이제까지 늘 그렇게 낙오자 없이 했잖아.

그게 애들을 간절하지 않게 만든 원인이야. 그리고, 인기투표로 순서 정해서 순위 밖의 애들을 떨어지게 하는 게 더 상처 주겠구만.”

“아무리 그래도 F등급 애들을 아예 뮤직비디오에 안 내보내겠다는 건 문제가 있어. 정이야 한 번만 참아주라.

원래 다 같이 나가기로 했던 카운트 다운 음악방송에는 A등급 애들만 나가는 것으로 할게. 그러면 다른 애들도 자극이 될 거야.”

“싫다고! 그걸로는 부족해! 애들이 절박함이나 간절함이 없어. 좀 더 강한 충격요법이 필요해.”

“그렇다고 19명이나 되는 애들을 다 뮤직비디오에 출연을 안 시키면 문제가 있어. 기획사에서 따지면 내가 곤란해. 내 입장도 좀 봐주라.”

“아이씨! 짜증 나.”

평화로운 제주도로 내려가서 요가도 하고 해서 성격이 많이 유해졌다곤 하지만, 이정이의 예전 성격이 나와버리자 담당 PD도 쩔쩔매면서 이정이를 달래기 바빴다.

“저 누나, 그러면 이렇게 하죠.”

“뭐 어떻게?”

“일단, 뮤직비디오에 F등급은 못 나온다고 이야길 하죠.

그리고 A, B, C, D등급 애들만 해서 리허설을 한 번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다음 주 제작발표회와 농구장행사에 관해서 이야길 하면서 거긴 F등급도 같이 한다고 알려주는 거죠.

그러면, 진짜 할 마음이 있는 애들은 F등급이라도 연습을 할 거고, 에이 다음 주에나 되어야 무대에 설 수 있게 되었네 하면서 연습 안 하는 애들로 나누어질 겁니다.

그렇게 연습하지 않는 애들은 진짜 뮤직비디오에 출연을 안 시키는 거로 하죠. 그걸 방송에서도 미리 촬영한다면 기획사에서도 뭐라고 못할 겁니다. PD님 안 그래요?”

“어어 그렇게 하면 될 것 같네.”

“곰 같은 게 머리 똑똑한데.”

“아 누나 진짜! 곰이라고 하지 마라니까.”

“PD님 곰돌이 말 따라서 그렇게 바로 하죠.”

*

*

“뮤직비디오 리허설 전에 공지사항이 있어요.

먼저, 열심히 노력한 사람들에게는 그 노력에 따른 상을 주기로 했어요. 원래 모두가 같이 나가기로 했던 카운트다운 음악방송에는 A등급의 연습생들만 나가기로 했어요. 자신들의 노력으로 A등급을 획득한 연습생들에게는 그만큼의 상을 주기로 했습니다. 박수~!”

“우와~ 좋겠다. 카운트다운 음방이라니 부럽다.”

“데뷔전에 4대 음방에 나가게 되다니 대박인데.”

[짝짝짝]

“상이 있으면 당연히 벌도 있어야 하겠죠? 뮤직비디오에 모두가 출연하기로 했지만, 그렇게 하면 등급을 나눈 의미가 그렇게 크지 않겠죠?

그래서, 이번 뮤직비디오에는 F등급 연습생들은 출연하지 못합니다.

F등급의 연습생들은 아직 무대에 서서 무대의 주인공이 될 준비가 되지 못했어요. 그 준비가 되지 못했기에 무대에 서지 못하는 겁니다.

앞으로 더 분발해 주기 바랍니다. 그래야 제작발표회와 농구장 이벤트에 참여할 수 있을 겁니다.”

이정이의 공지사항을 들은 연습생들 중 F등급의 아이들은 충격에 빠져버렸다. 아예 무대에서 배제되어 버린다고 하자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어 버린 자신들이 부끄러워서 눈물을 보이는 아이들도 있었다.

‘전생의 방송에서는 없던 일이 또 벌어졌구나. F등급 연습생이 무대에 오르지는 못해도 무대 아래에서 촬영에 참여는 했었는데, 아예 배제를 해버리다니.’

“그리고, 우리 첫 공식 스케줄인 제작발표회와 농구장행사는 물론 뮤직비디오에서도 센터 자리에 설 사람이 방금 정해졌어요.

센터는 말 그대로 팀의 중심이자 팀의 얼굴이에요

사진을 찍으면 중심에 있고, 무대에 섰을 때도 그 중심에 있는 그 팀의 얼굴이자 대표예요.

국가대표 국민 아이돌을 뽑는 프로그램에서 센터라면 거기에 가장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야 할거에요.

그래서 A등급의 연습생들이 직접 투표로 센터를 뽑았어요.

우리를 대표할 우리들의 센터는... 타이탄엔터테인먼트의 ‘김민호 연습생’

김민호 연습생 잘 해줄 수 있죠?”

“아, 제가 될 줄 몰랐습니다. 아마도 나이가 많다 보니 친구들이 뽑아준 것 같습니다. 뽑아준 친구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센터에게는 당연히 또 혜택이 있어야 하겠죠? 3화 방송이 끝날 때 개인 베네핏 PR타임이 있을 겁니다. 자신을 알릴 수 있는 것을 준비해두세요.

자. 그럼 뮤직비디오 리허설 시작하겠습니다. A, B, C, D등급 연습생은 위치로 움직이고 F등급 연습생은 리허설을 보고 나서 연습실로 이동해서 연습하면 됩니다. 자! 다들 어서 빨리 움직입시다.”

뮤직비디오를 찍는 스튜디오는 99명이 들어가는 곳이다 보니 규모부터가 컸고 화려한 조명과 움직이는 무대로 인해 일반적인 음악방송의 무대와는 격이 달랐다.

그리고, 그런 무대에 서지 못하는 F등급의 연습생들은 무대의 맨 위에 단독으로 올라가서 춤을 추는 센터 김민호를 보고 부러워했고, 센터를 둘러싸고 단체 군무를 추는 다른 등급의 연습생들을 보곤 슬픔과 분노에 몸을 떨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F등급은 리허설을 한번 보곤 연습실로 발을 돌렸다.

*

*

“야 CCTV 보고 있어?”

“네, 누나 여기 9명은 무대에 서지 못해서 분해 하면서 제작발표회나 농구장 이벤트에선 제대로 하려고 연습을 하네요.”

“19명 중에서 9명은 그래도 정신이 제대로 박혀 있는 애들이었네.

저 9명은 네가 가서 구제해줘라.”

“네 착한 역할의 곰이 가겠습니다. 출격!”

“엇! F등급 애들이다. 무대에 세우려고 하는 건가?”

“리허설은 다했는데, 그럼 다시 해야 하는 건가? 피곤한데.”

같은 기획사의 연습생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서로 물었고, 결국 F등급 중에서도 몇 명만이 뮤직비디오 촬영에 참여한다고 알려줬다.

리허설은 이미 했기에 무대 밖 위치에서 참여를 하는 것이었지만, 촬영에서 완전히 배제되었다가 다시 참여하기로 한 F등급의 아이들은 그런 것은 상관없이 같이 참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뻐했다.

실제 촬영에는 교복 같은 단체복을 입고 촬영을 했는데, 리허설을 할 때 F등급의 몇몇은 울기도 했다.

뒤에서 보고 있는 나의 시선에도 A등급의 연습생들은 빛이 나고 있었다.

마치 무대 아래의 F등급은 물론 무대 위의 나머지 등급의 연습생들이 A등급의 연습생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다들 웃어! 표정 관리해야지. 민호 봐라. 활짝 웃잖아. 다들 웃어.

안 즐거워도 웃고, 즐거울 땐 더 웃어야 하는 게 아이돌이야.

지금 무대의 주인공은 너희야. 무대를 즐겨!”

*

*

“그럼 3일 후 보자~ 잘 가!”

뮤직비디오는 그렇게 해서 잘 찍었고, 합숙은 그렇게 끝이 났다.

나름대로 뮤직비디오를 찍을 때 카메라가 나를 찍는 것 같으면 열심히 윙크를 날렸지만, 제대로 그게 방송에 나올지는 확신을 하지 못했다.

“엄마 나 왔어!”

“어! 오빠 왔어? 엄마 아직 집에 안 왔는데, 엄마가 오늘 오빠 오면 재활용 쓰레기 꼭 치우래.”

“야! 며칠 만에 집에 왔는데, 그게 할 말이야?”

“오빠! 오빤 왜 그렇게 이기적이야? 이거 안 보여?”

“뭘?”

내가 화를 내며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동생에게 가자 동생은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이게 뭔데 이게 뭐라고 응? 어..어...그래 지혜야 오빠가 잘못했다.

하던 거 마저 해. 난 쓰레기 버리고 올게. 오빠가 참 경솔했다. 미안해.

하던 거 마저 해.”

“재활용 쓰레기 버리고 관리사무실에 가서 쓰레기봉투도 받아와 알았지?”

“그..그래..”

며칠 만에 집에 왔지만, 오자마자 쓰레기를 치운다고 쭈그려 앉아있는 게 짜증이 확 났다. 하지만, 가족들과 친구들의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적힌 종이를 들고 사이트에 로그인해서 나에게 투표하고 있는 지혜에게 뭐라고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오빠가 쓰던 ‘갠역시 탭’도 내가 쓴다.”

“야! 그건 내가 젤 아끼는 건데..그..그것도 잘 쓰세요.

투표에 잘 써주세요. 에혀...”

며칠을 고생하고 집에 왔지만, 어느새 집에서 나는 최고 ‘을’이 되어 있었다.

‘우씌! 내가 데뷔하기만 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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