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
주인공.
이번 생에서는 확실히 학원이나 전문가의 트레이닝을 받지 않았으니 거짓말은 아니었다.
물론, 전생에서는 많은 뮤지컬을 하며 선배들과 연출가들에게 엄청나게 욕을 들으며 뮤지컬 발성법과 가창력을 기르는 방법에 대해서 많이 배웠었다.
그리고, 그때 욕을 들으며 강하게 배워 체득했던 것들이 싱싱한 10대의 목에서 뿜어져 나왔으니 다들 놀랄만했다.
“유튜브로 배웠다면 거의 독학이나 마찬가지인데, 나쁜 버릇도 없고 정말 타고났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네요.
일단, 보컬 쪽으로는 더 할 말이 없고, 댄스도 한번 보죠.”
“보컬 담당인 내 입장에선 춤 안 춰도 이미 내 마음속의 A등급이야. 10대에게서는 볼 수 없는 감성이 목소리에 담겨있어.”
“그래도 댄스를 한번 보긴 봐야지. 음악 감독님 랜덤 음악 주세요!”
댄스 타임을 대비해서 내 나름대로 웨이브를 연습했고, 가수 Rain의 어깨를 이용한 멋져 보이는 댄스도 혼자서 연습을 해왔었다. 거기다 멘토들의 반응을 보고서는 어느 정도만 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댄스에 대한 자신감도 들기 시작했다.
“흠, 오랜만에 내 귀에 꽂히는 가창력을 가진 연습생인데, 좀 쉬운 댄스곡으로 줄까. 오 그래 이거면 요즘 가장 유명한 노래니깐 춤을 잘 추겠지. OK.”
댄스 심사를 위해 랜덤 곡을 담당하는 음악 감독이 PALY 버튼을 눌렀다.
[빰빰빰 밤밤밤~ 붐바스틱~! 알라규 뿜뿜뿜 빰밤밤 빰밤밤밤. 뿜바스틱~ 알라큐~]
“에?”
나름대로 준비했던 춤과는 전혀 다른 리듬의 노래가 나오자 머리가 하얗게 되어 버려서 준비한 춤이 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멘붕이 온 머리와는 다르게 몸은 알아서 움직이고 있었다.
자연스레 왼손 오른손을 각지게 만들어 움직이는 붐바스틱 클럽댄스가 나와버렸다.
전생에서는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서울로 올라와 숙소생활을 하며 모델라인 누나들과 형들을 따라서 유명하다는 클럽을 사흘이 멀다 하고 다녔었다.
새로 오픈하는 클럽의 경우에는 모델들을 섭외해서 푸쉬로 물관리 하며 플로어를 채웠는데, 나름대로 돈도 벌고 재미도 볼 수 있었다.
그때 클럽의 최고 음악이 바로 이 붐바스틱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때의 그 클럽댄스가 기억이 되어 있는지 자동으로 나와버렸다.
[에 베이비 에 베비~ 에 베비 후도망콩 후더베비~ 빰빰밤밤밤밤~]
‘그래 여기서 셔플타임이야!’
제대로 셔플을 밟아 보려는데, 심사가 끝났는지 음악이 끊겨버렸다.
“요즘 클럽에서 뜨는 노래이긴 한테 근본이 없는 춤이다 보니 뭔가 저렴한 느낌이네요. 춤 잘 봤어요.”
역시나 전통파 춤꾼인 MSM에서 온 이재원의 평가는 근본 없는 춤이라는 혹평이었다.
“신은 공평하네. 다른 거 다 주고 춤은 안 주셨구나.
신님 아까 뭐라고 해서 죄송해요~ 제가 잘못했어요~”
내 편이라 생각했던 GOS의 김태운마저도 편들어 주지 않았다.
*
*
“그럼, B등급?”
“아니, B로 하면 다른 애들의 춤을 못 따라갈 거에요.
마음 같아서는 D나 F를 줘서 춤을 좀 더 쉽게 배우고 기본기를 다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그러기엔 보컬이 너무 아깝고.”
“그래도, 댄스가 전혀 안 되어 있으니 저 애를 위해서라도 F반에서 기초를 배우는 게 더 좋을 것 같은데, 어때?”
“그럼 본인에겐 쓴 약이겠지만, 더 도움이 될 것 같은 F로 결정”
“네 등급 결과가 나왔습니다. 윤소원 연습생의 등급은 F등급입니다.
윤소원 군의 특이한 경력 때문에 F등급에서 기초를 다지라는 의미에서 F등급을 줬어요. 댄스를 제대로 배우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네, 감사합니다.”
그래도 C등급은 줄지 알았는데, 아쉬웠다.
새로 주는 F등급의 스티커를 받아들고 무대를 내려오는데, 작가와 방송 카메라가 바로 다가왔다.
“윤소원 연습생 등급 인터뷰 딸게요. 이쪽에 앉으세요.
F등급인데, 등급 받은 소감을 이쪽 보고 이야기해주세요.”
“음. 아쉽죠. 그런데, 또 어느 정도는 수긍이 되긴 됩니다.
다음에는 꼭 A등급을 받을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모범적인 정답으로 어그로를 끌지 않게 대답을 했다.
“그럼, 윤소원 연습생은 댄스 심사 결과 때문에 F등급인데, 댄스만으로 A등급을 받은 이원섭 연습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을 하나요?”
아까 본 연습생 중에서 댄스만으로 A등급을 받은 연습생에 대해서 물어왔는데, 왠지 비교하길 원하는 질문이라 무슨 대답을 하든 편집되어 악의적으로 나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 제가 제 무대를 준비한다고 정신이 없어서 다른 분들 무대를 제대로 보지를 못했습니다. 제가 뭐라고 할 처지가 아닌 것 같습니다.”
“음. 그럼, 처음 무대에 입장할 때 아무도 앉으려고 하지 않는 꼴찌 번호라는 99번 의자에 망설임 없이 앉았어요. 왜 그렇게 했는지 알려줄 수 있나요?”
“아, 그건. 아마도 순위를 정하는 방송 프로그램이니 다들 1위를 하고 싶고, 윗자리에 앉고 싶어 할 게 뻔하잖아요.
그 누구도 99위 자리에 앉고 싶어 하지 않을 거예요.
그런데, 1위가 있으면 어쩔 수 없이 꼴찌도 있어야 하잖아요.
모두가 1위를 할 수 없으니깐요.
하지만, 1위는 소중하고 99위는 안 소중한 건 아니잖아요. 다들 소중한 연습생들인데.
프로듀스 99에 참여를 한 연습생들이면, 이미 다들 실력과 연습생으로서의 노력이 있었을 거예요. 전 정식 연습생이 아니다 보니, 제가 가장 노력이 부족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이 되었어요.
그리고 맨 아래이면 노력하는 만큼 위로 올라갈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더 내려갈 곳이 없잖아요. 그래서 꼴찌인 99위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렇다면 나름 전략적인 선택이었군요.
네 그럼 여기까지 등급 인터뷰 마칠게요.”
내 뒤 차례인 연습생이 무대를 내려오자 나의 등급 인터뷰는 그렇게 끝이 나 버렸다.
인터뷰에서 내 나름대로 정답이라고 할만한 답을 준비해서 이야길 했는데, 역시나 방송국 작가이다 보니 내가 99위에 앉은 것에 대한 전략적인 접근을 바로 알아챈 것 같았다.
‘짧은 시간인데도 바로 알아채다니 방송판도 무시무시하구만.’
원래 자리로 돌아오니 진욱이는 B등급, 경태는 C등급이었다.
“이상으로 등급평가를 마칩니다. 여러분 모두 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럼 등급현황은 A등급 7명, B등급 16명, C등급 20명, D등급 25명, F등급 31명입니다.
나름대로 회사에서 연습생으로 트레이닝을 받았다곤 하지만, 바로 데뷔할만하다고 생각되는 연습생은 7명 정도밖에 없었습니다.
프로듀스99 프로그램은 9명의 데뷔 멤버를 뽑는다는 프로그램의 목표도 있지만, 이 프로그램이 끝이 나고 연습생들이 다시 회사로 돌아갔을 때 확실히 프로듀스99 프로그램을 통해서 성장했구나 하는 말을 들을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도 하나의 목표입니다.
그러니 본인 등급에 맞는 트레이닝을 열심히 따라주시기 바랍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99명의 연습생이 마스터해야 하는 프로듀스 99의 타이틀 곡을 공개하겠습니다. 노래 제목은 ‘주인공’입니다.”
‘에? 픽미가 아니라고?’
내가 고민할 새도 없이 전면의 대형 화면에서 10여 명의 남자 댄서들이 군무를 추기 시작했고, 전주가 흘러나오는데 전생에서 들었던 ‘Pick Me’나 ‘나야 나’가 아니었다.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저 무대는 좋은 거지.
지금을 놓치지 마, 너와 내가 연결되는 이 순간을
모두가 지금 이곳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야
우리의 꿈과 너의 꿈을 서로 나눌 이 순간
지금의 나를 알아보게 될 거야
지금의 우리를 알아가게 될 거야
지금이 아니면 어떻게 될지 몰라.
I want you take on me~!
너의 얼굴을 보며 더 밝은 꿈과 미래를 같이 보고 싶어.
나를 더 빛나게 도와줘~
take on me! 다시 나를 바라봐!
take on me! 더 빛이 날 거야!
take on me! 나를 느껴봐!
지금 무대 위의 주인공은 바로 우리야
지금 이 순간 주인공은 우리인 거야
같이 주인공이 될 마지막 한 사람
그건 바로 너야
Just You & I~]
“와~ 노래 좋아요! 굿굿!”
“노래 중독성 있는데. 느낌이 온다.”
“헐, 안무 빡센데, 저걸 어떻게 따라 하지? 그런데, 난 랩 파트인데 랩이 없는데.”
“그러네. 전형적인 댄스곡인데, 소원이는 안무 어려운 거 보고 아예 굳었네. 야 정신 차려!”
경태와 민욱이가 옆에서 뭐라고 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알던 그 프로듀스 프로그램과는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공전의 히트를 쳤던 ‘Pick Me’ 라는 노래가 있었기에 프로듀스 프로그램들이 성공할 수 있었다.
시즌 5까지 아니 중국의 리메이크 프로그램에서도 Pick Me 가 들어갔었고, 마법 주문처럼 ‘Pick Me’라는 가사는 프로그램의 성공을 가져다주었었다.
하지만, MC 이정이가 소개한 주인공 이란 노래에도 ‘take on me’ 로 데려가 달라, 뽑아가 달라는 의미가 있지만, 그 임팩트가 완전히 달랐다.
‘이러면 프로듀스99가 성공하지 못할지도 모르게 되었구나.’
“자, 여러분은 일주일간의 연습 후 재 등급을 받게 되고, 첫 무대로 ‘카운트다운쇼’에 오르게 됩니다. 물론, 등급에 따라 포지션과 카메라 노출도에 차이가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무대는 아마 실제 방송 1화의 마지막에 삽입될 겁니다.
방송의 마지막 무대에서 전곡이 나갈 때 계속 얼굴이 노출된다는 의미는 여러분들을 뽑아주실 팬들을 더 만들 수 있다는 말입니다.
당연히 A등급의 연습생들이 센터에 서게 됩니다. B, C, D그룹은 서브로 출연되며, F등급은 아직 무대에 설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의미로 백업 역할을 하게 됩니다.
특히나 센터 중의 센터라고 할 수 있는 최고의 연습생에게는 단독 파트가 주어지니 더 분발해 주시길 바랍니다. 자 그럼 바로 연습을 위한 합숙소로 출바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