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민아이돌 프로듀스99-16화 (16/237)

# 16

심사무대.

호기 있게 첫 무대에 자원했던 대상프랜차이즈의 연습생들이 호된 심사평으로 멘탈이 부서지는 게 우리에게도 보이자, 이후 자진해서 먼저 심사를 보겠다고 나서는 연습생들이 없었다.

결국, 정해진 큐시트대로 등급심사가 진행되었는데, 우리 3명 중에서는 경태가 가장 빠른 11번째였고, 진욱이가 19번째, 내가 23번째였다.

[꼬르륵]

심사가 계속 진행되자 처음 녹화에 대해서 가졌던 긴장감이 줄어들었는데, 그러자 뱃속에서 먹을 것을 넣어달라고 난리가 났다.

“우린 진짜 한 것도 없는데, 벌써 오후 4시가 넘었네. 배 안 고프냐?”

“배고프지. 아침에 에너지바 하나 먹고 물 빼곤 아무것도 안 먹었는데. 아마 오늘 제대로 식사한 사람이 있을까?”

“없겠지. 그래도 일찍 들어온 사람들은 카메라샷을 제대로 받기라도 했지. 진짜 우린 뭔가 원샷 받은 것도 없고. 진짜 대기만 한 것 같다.”

처음 들어온 연습생들과 우리의 입장 시간은 차이가 컸다.

그만큼 자연스레 초반에 들어왔던 애들에겐 카메라가 많이 갈 것이고, 1위에 앉은 사람에게는 더 시선 집중이 되었을 터였다.

또 MC 이정이가 1위부터 9위까지 연습생들을 다시 한 번 주목할 수 있게 멘트를 했기에 확실히 초반 의자에 앉는 부분에서 어필하지 못한 게 너무 아쉬웠다.

그리고, 총 25개의 기획사 연습생들의 무대와 개인 참가 7명까지 해서 32개의 무대가 만들어지는데, 이 중에서 아마도 10개 미만의 무대만이 방송에 나갈 터였다.

즉, 지금 열리는 무대의 절반 이상은 제대로 방송을 타보지도 못하고 2~4초 정도의 영상자료로서 스쳐 지나가게 될 운명이었다.

경태의 순서가 다가오자 FD의 뒤를 따라갔고, 진욱이도 목을 먼저 풀기 위해 무대 뒤로 먼저 나갔다.

“네, 다음 무대 준비해주세요.”

“개인연습생 김경태입니다.”

“랩 파트네요. 음. 양날의 검이라고 할 수 있는 노래를 선곡했네요. 일단 들어 봅시다.”

[등 등등둥 등등 둥둥 등등등

Okay donkey yo~!

Is real true?

진짜로?

yeah! Okay donkey yo~!

Hey~ 라라라라랄~

10살 때부터 계획한 내 꿈은

누구나가 인정하는 으리으리한 집! yeah!

SYG에 들어가, 연중무휴 애완견처럼 이런, 저런 행사.

생방에 녹방에 공방에 당최 없는 노는 날!]

“네 잘 들었습니다. 이 노래가 ‘쇼미 더 달러’에서 경연곡으로 나왔기에 선곡을 한 거죠?”

“네. 그렇습니다.”

“그럼, 본인이 이 노래 불렀던 손민호와 목소리가 비슷하다고 생각해서 선곡했어요? 이 노래의 랩 스타일은 김경태 연습생의 목소리와 랩 스타일에는 전혀 안 맞는 곡이었어요.

몸에 안 맞는 옷을 입으면 불편하잖아요. 지금이 딱 그래요.

선곡이 좀 잘못되었어요. 아마도, 아직도 자신과 어울리는 게 어떤 스타일인지 모르는 것 같네요.”

경태는 나름대로 학원 선생님과 열심히 준비했는데도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

11번째 무대까지 해서 A등급이 나온 것은 단 2명밖에 없었는데, 대부분이 멘토 선생님에게 혹평이라고 할 만큼의 가혹한 말들을 들어야 했는데, 아마 방송 분량과 편집을 위해서 더 가혹하게 심사평가를 하는 것 같기도 했다.

“개인연습생 김경태 연습생의 등급을 발표하겠습니다.

....C등급입니다. 일단 김경태 연습생의 경우에는 랩의 기본은 잘 갖추어져 있어요. 하지만, 부산 출신이라 일반적인 딕션(Diction 발음)과는 좀 다르게 들리는 문제가 있네요.

딕션이 안 좋다 보니 딜리버리(Delivery 전달력)까지도 문제가 있는 것 같이 들려요. 특이한 딕션으로 하는 본인만의 정체성을 만든다면 문제가 없는데, 지금은 본인만의 개성과 스웩(Swag)이 느껴지질 않아요. 본인만의 스웩이 없다면 문제가 되는 그 부분을 고치는 게 오히려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이상입니다.”

“네. 감사합니다.”

늘 겉멋을 부리며 힙합 부심을 부리던 경태는 C등급이라는 결과에 작은 어깨를 더 움츠리며 무대를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왠지 선즙필승을 위한 판을 심사위원들이 깔아주는 것 같은 이 느낌은 뭐지.’

“윤소원 연습생? 23번째 순서이죠? 지금 뒤로 가서 준비해주세요.”

16번째 무대를 보고 있는데, FD가 와서 준비를 위해 무대 뒤에 마련된 곳으로 안내를 해줬다. 방송국의 메이크업 누나들이 다시 한 번 메이크업을 점검해줬고, 화장실도 다시 다녀왔다.

목을 풀고 있는데, 진욱이의 무대가 진행되는지 노래가 어렴풋이 들렸다.

진욱이는 Rain의 솔로 데뷔곡인 ‘안녕이란 말 대신’을 준비했는데, 키가 크고 짝 쌍꺼풀인 진욱이에게는 어울리는 곡이었다.

등급을 심사하는 멘토들의 목소리는 제대로 들리지 않아 진욱이의 등급을 알 수는 없었다.

“개인연습생 윤소원 연습생 백스테이지로 이동할게요.”

“태현아, 매니저 형이 이야기해주는데, 심사위원들이 잠이 오는지 눈이 몽롱하다고 하더라. 인사 최대한 크게 하자.”

“그래! 임팩트! 선맥엔터 잘하자 잘하자! 파이팅!”

그러고 보니, 중간에 한 번 쉬는 시간이 있었다곤 하지만, 멘토들이 가만히 앉아서 20번이 넘는 무대를 보고 있으니, 슬슬 몸도 지치고 정신력이나 집중력도 떨어질 시간이었다.

내 앞번호인 선맥엔터의 연습생들 말처럼 임팩트가 있어야 했다.

고민 끝에 신발과 양말을 벗어 던졌다.

“헐!”

내 뒤 순서인 연습생들은 갑자기 내가 신발을 벗고 맨발이 되자 깜짝 놀랐다.

“23번 윤소원 연습생 갈게요.”

“어머, 맨발이네.”

“맨발의 청춘이냐? 아니, 맨발인데도 키가 크네. 부럽다.”

“잘생겼다. 비주얼 센터합격이네. 그런데 노래가 이게 뭐야? 팝인가? 모르는 노랜데.”

일단 20번이 넘는 무대를 겪으며 지루해하는 멘토들의 주의를 끄는 것은 성공한 것 같았다.

“개인연습생 윤소원입니다.”

“윤소원 연습생 신발은 왜 벗었어요? 발 냄새가 심한가? 어디, 16살이라 무좀은 없을 것 같은데, 연습 기간이 총 한 달? 응? 이건 뭐지?”

“그게. 사실 기획사 오디션을 보는 친구 따라갔다가 아무런 준비도 없이 지원 원서를 적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연습 기간이라고 할만한 게 없습니다.

저는 학원이나 기획사에 소속된 연습생도 아니고, 제대로 선생님을 두고 보컬이나 댄스의 기초를 배워본 적도 없습니다.

운 좋게 예심을 통과해서 이 자리에 나왔지만, 몇 개월 혹은 몇 년씩 힘든 연습생 생활을 한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입니다.

아마도 제가 많이 부족할 수도 있고, 여러 연습생분과는 완전히 다를 수도 있습니다. 그런 부분을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엉뚱하고 귀엽네. 그런데, 또 특기가 노래야. 이 노랜 또 뭐야?

예심을 거쳐서 올라왔다는 건 또 뭔가가 더 있다는 거겠죠? 일단 노래를 들어 봅시다. 제주도에서 오래 있어서 그런지 난 이노래 제목도 모르겠네.”

내가 부를 노래의 전주가 들리자 멘토들과 뒤에 앉아있는 연습생들의 뭐지? 하는 눈빛들이 보였다. 울려 퍼지는 전자오르간의 전주가 확실히 특이했다.

[....Pierre apres pierre, jour apres jour

돌 위에 돌이 쌓이고, 하루 또 백년이 흐르고

De siecle en siecle avec amour

긴 세월 동안 인간은 사랑과 함께

IL a vus;elever les tours

자신의 손으로 세운 탑들이

Qu'il avait baties de ses mains

더 높아져 가는 것을 보았네.

Les poetes et les troubadours

시인들도 노래했네

Ont chante des chansons d'amour

인류에게

Qui promettaient au genre humain

더 나은 내일을 약속하는

De meilleurs lendemains

사랑의 노래를 불렀네

Il est venu le temps des cathedrales

대성당들의 시대가 찾아왔네

Le monde est entre Dans un nouveau millenaire

이제 세상은 새로운 천년의 시대를 맞이하지

L'homme a voulu monter vers les etoiles

하늘 끝에 닿기를 원했던 인간은

Ecrire son histoire Dans le verre ou dans la pierre

유리와 돌 위에 그들의 역사를 쓰네.....]

과거 프로듀스 101 방송이 대성공한 이후에 많은 방송국에서 여러 개의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졌었다. 심지어 중국과 대만에서도 유사한 프로그램이 만들어져서 저작권 문제가 생길 정도였다.

한국에서는 심지어 같은 요일, 같은 시간대에 서로 편성해서 서로서로 죽인 오디션 프로그램들도 있었다.

초창기 오디션 프로그램이 아닌 수십 개가 만들어진 ‘대 오디션시대’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많은 수의 오디션 프로그램 중에서 솔로로 심사 무대에 나와서 실시간 검색어 1위를 달성했던 케이스는 세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잘 없었는데, 그중에서 한국노래가 아닌 무대는 이 하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무대를 바탕으로 화제몰이를 하고 인지도를 올려, 10년 이상 승승장구했던 사람은 단 1명밖에 없었다.

과거 내가 오디션을 보았던 JTDC 가면싱어 1시즌에 나왔었던 ‘김은성’이었다.

그는 잘생긴 외모로 인해 실력이 가려졌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실력과 외모가 뮤지컬배우로서는 당대 최고였었다.

내가 회귀하기 전까지도 그는 팬들을 구름처럼 이끌고 다니는 최고의 뮤지컬배우였었다. 내가 뮤지컬배우로 있을 때 같이 무대에 서고 싶어 했던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다치기 전의 싱싱한 내 목은 뮤지컬배우 ‘김은성’을 대중들에게 각인시켰던 강렬한 그 무대를 그대로 재현해 주었다.

처음 내가 이 노래를 부르자, 멘토들은 이게 불어야 영어야? 하며 서로 이야기하며 부산을 떨었는데, 노래가 고음부에 들어서자마자 다들 조용히 내가 부르는 대성당들의 시대(le temps des cathedrales) 라는 노래에 귀를 기울이며 감상을 했다.

“난 맨 처음에 연습생 기간도 없는 애를 여기에 올린 것에 대해서 비주얼 때문에 나오게 한 거로 생각했어. 그래서 제작진에게 뭐라고 하려 했는데. 그런데, 제작진이 사람 볼 줄 아네. 연습생 기간이 없으면 어때? 프로듀스 99 방송에서 연습을 시키면 되지 뭐. 그러면 되겠네. 좋네. 잘생겼고. 호호호”

“누나 태세전환이 장난 아닌데요. 그런데, 진짜 지금까지 본 연습생 중에서 보컬 쪽에서는 최고다.

그런데, 진짜 트레이닝을 안 받았다고? 진짜라면 재능 몰빵인데.

키 크고, 잘생겼는데, 거기에 노래 재능까지 다 주면 어떡하라는 거야?

신님! 너무 불공평하잖아요.”

멘토 김태운은 하늘에 있는 신에게 이야기한다는 듯이 두 손을 모아 하늘을 향해 외치기도 했다.

“보컬 부분은 더 손댈 게 없어요. 비주얼 센터에 이런 보컬이면 지금 당장 뮤지컬 무대에 서도 되겠구먼. 지금 붙이고 있는 A등급 그대로. 아니 난 A+++등급!”

“그런데, 불어는 다 알고 하는 거야? 그런데 나이가 진짜 실화야?”

“윤소원 연습생. 진짜 보컬학원 같은 곳에 가본 적이 없어요?

그러면 혹시, 가족 중에 음악 전공하는 사람이라도 있어요?”

“학원은 가본 적이 없고, 그냥 유튜브에서 보컬 강의하는 동영상과 뮤지컬을 많이 봤습니다.

부모님은 교사로 근무하시는데, 음악 관련은 아니십니다.”

“그럼 뭐야? 괴물이야? 외계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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