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
첫 녹화(2).
"자, 개인연습생분들 준비해주세요. 5분 후 대기실 나가서 화장실 들리고,
녹화장으로 바로 이동합니다."
FD의 알림에 다시 한 번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확인했다.
화장실을 다녀온 이후 음향 쪽의 스태프들이 일일이 한 명씩 붙어서 마이크를 달아주고, 제대로 전달되는지 확인을 했다.
"자, 여기서부터는 연습생분들만 들어가면 됩니다. 촬영 바로 시작됩니다."
"오! 긴장된다. 손 떨리는 거 봐."
촬영이 바로 된다고 하니, 갑자기 진욱이가 수전증이 걸린 것처럼 손을 덜덜 떨어댔다.
같이 들어가야 하는 개인연습생들을 둘러보니 어떻게 진행되는지 대충이나마 알고 있는 나만 괜찮았고, 다들 긴장해서 몸이 경직되었다는 게 티가 났다.
“다들 이렇게 굳으면 안 되지. 우리 다들 하이파이브! 하이파이브! 박수도 좀 치고!! 긴장하면 안 돼!! 다 잘되자! 심호흡도 좀 하고.”
어느 정도 다들 안정이 되자 그제야 움직였다.
거울이 붙어있는 통로로 들어가는데, 거울의 옆으로 두꺼운 매직펜이 비치되어있었고, 낙서 같은 글씨들이 옆면에 적혀있었다.
[연습 기간 4년 이제 데뷔하자. KJ] [대박 나자! 엄마 효도할게요]
[내가 주인공] [분량은 나의 것] [후회 없길] [밤꽃길만 걷자!]
[우리 끝까지 가자 화이팅. 라이크!]
옆면의 절반 넘게 글씨가 쓰여 있는 것으로 봐서는 대부분 의자는 사람들로 채워졌을 것 같았다.
"우린 뭐 적지?"
"팀 부산 우리가 우승하자! 이렇게 적어"
"오키."
7명의 연습생이 다 글을 남기자 촬영감독 옆에 있던 작가가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켜서 그쪽으로 움직였다.
"이건 뭐지?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의 연습생 등급을 표시하세요.' 헐."
"A부터 F까지 5등급 중에서 고르라고? 당연히 A가 좋은 등급이겠지? 앞에 있는 스티커를 이름표에 붙이면 되는 건가."
"이야, 이런 건 생각도 못 했는데, 왠지 소고기 품질등급 같은 느낌이다."
'이런, 내가 알던 방송이 바뀌었다.
전생의 방송에서는 바로 입장을 해서 의자에 착석했는데, 자체등급을
정하게 하는 것이 추가되었다.'
평상시 우리 3명만 있었다면 장난처럼 넌 Fail이라고 F등급을 서로 붙여주며 장난을 쳤겠지만, 다른 개인연습생들도 있었고, 카메라도 돌아가고 있어서 쉽게 움직여서 등급을 정하고 스티커를 붙이지 못했다.
"소원이 너는 뭐 붙일래?"
"음.”
벽에 붙어있는 알파벳 밑에 놓여있는 스티커의 두께를 살폈다.
‘중간인 C를 사람들이 많이 붙였구나. 다들 A를 붙이면 설친다고 어그로 먹을까 봐 튀지 않는 중간인 C를 많이 붙였구나. 그리고, F를 붙이게 되면 진짜 F등급이 되어 떨어질까 봐 안 붙였을 거고. 어떻게 할까. 흠.’
"난 D로 결정."
"응? 진욱이 너는 왜 D냐?"
"난 아이폰 쓰잖아. 대문자 D 앞에 땡땡이점 ':' 이거만 붙여도 :D 이렇게 웃는 얼굴이 되니깐. 웃으면서 내려가기 위해 난 D다."
"오~ 그럼 난 힙합 비보이를 꿈꾸니깐 B다."
"실력등급을 셀프진단해서 붙이라고 했더니 둘 다 제 맘대로야."
"그럼 넌 뭐 붙일 건데?"
"당연히, A지. 양손을 모아서 기도하는 모양이니깐 잘되겠지. A등급으로 어그로 끌어보마."
"게임 할 때도 탱커하더니 어그로 전담이네."
우리 3명이 스티커를 붙이자 다른 연습생들도 붙였는데, 역시나 B, C, D를
대부분 붙였다.
스티커를 붙이고, 통로를 지나자 주변이 확 트이면서 작은 피라미드같은 의자의 산이 나타났다.
“오옷! 대박! 무대 장난 아니다.”
“나 진짜 이런 거 처음 봐. 엄청나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십니까?”
탁 트인 무대로 나오자마자 의자에 앉아있는 5~60명의 연습생이 일어나서 인사를 했다.
우리도 얼떨결에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우와 개인연습생인데, 비주얼 장난 아니다. 모델인가?”
“저 2명은 키도 엄청 크네. 옆에 서면 안 되겠다.”
“알아서 피하자. 저 사람들 옆에 서면 그냥 동네 애들이 될 것 같아.”
“헐, 저 흰색티셔츠 입은 사람 A 붙였다. 자신감 있는가 보네.”
‘역시나 1위부터 9위까지 의자는 이미 다 찼구나.
그리고, 카메라를 많이 받는 중간 부분도 다 차버렸고. 흠.’
“어디 앉지?”
“3명 같이 앉을 수 있는 자리는 몇 개 안 남았는데, 어디에 앉을래?”
“맨 끝으로 가자.”
“뭐? 맨 끝? 97, 98, 99번에 앉자고?”
“그래, 이미 좋은 자리는 다 앉아 버렸잖아. 저 자리가 좋아. 따라와.”
경태나 진욱이가 다른 의견을 말하기도 전에 내가 먼저 움직여서 99에 앉아 버렸다.
둘은 괜찮지 않다는 표정을 보여주며 억지로 옆에 와서 앉았다.
“야, 이름이나 사주 따라 사람인생이 달라지듯이 꼴찌나 마찬가지인 이 자리에 앉으면 우리 등수도 그렇게 될 것 같잖아. 찝찝하게 여기로 오다니.”
“아니라니까, 경태야 오히려 여기가 카메라에 자주 나오는 명당자리야.
봐봐. 우리가 통로 나와서 지나온 저 자리가 무대야.
그러면 심사위원은 어디에 있을까?”
“음. 아마도 무대 맞은편이니깐. 오호. 우리 앞쪽이겠네.”
“그래, 1층에 무대 맞은편에 심사위원석이 만들어져서 심사 무대를 보게 될 거야. 그러면 1층 중앙 부분은 심사위원 때문에 가려져.
하지만, 이렇게 1층 좌우 사이드는 심사위원 잡다 보면 자연스레 나오게 되어 있어. 특히나 마지막 자리인 99번 자리는 자연스레 보이게 된다고.
그러니, 허리 펴고, 이름표 잘 보이게 해서 리액션을 잘해 알았지?”
“이야, 제갈량 나왔네. 제갈량.”
경태와 진욱이에게는 이렇게 이야길 했지만, 사실 방송을 준비하면서 초반 1위 의자 선점을 하지 못할 경우의 수를 생각해서 고민했던 결과였다.
그리고, 어느 정도 예상했듯이 개인연습생들은 역시나 찬밥이라 초반에 입장하지 못했고, 준비했던 차선책을 사용한 것뿐이었다.
하지만, 나도 생각하지 못한 게 있었다. 우리가 녹화무대에 들어오기 전에 달았던 마이크를 생각하지 못하고 이런 숨겨진 전략을 말한 것이었는데, 음향감독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뭔가를 표시하는 걸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어, 빈스(VINX) 있는 갤럭시기획이다. 2명이네.”
주위의 연습생들이 다 일어나서 인사를 하자 우리 셋도 따라 일어나 인사를 했다.
인사를 하면서 주위를 둘러보며 아는 얼굴이 있는지를 살폈다.
‘박진훈은 저기에 있는데, 1위 했던 강캐빈이 없잖아.’
다시 자세히 두리번거리며 살피니 강캐빈과 같은 기획사였던, 눈물 많던 유지경은 있는데, 강캐빈이 없었다. 그리고 성이 특이했던 곤우성도 안보였고, 대만에서 왔던 지리에린 도 보이지 않았다.
이미 대부분 자리가 다 채워졌기에 전생에 데뷔했던 친구들이 한꺼번에 다 나올 리 없었다. 원래 있어야 할 사람들이 프로듀스 99에 나오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시기가 2년이나 빨라져서 그런지 있어야 할 사람들이 나오지 않았구나.’
어쩌면, 기획사의 에이스들이라 기획사에서 내보내지 않은 것일 수도 있었다. 이렇게 되면 전체적인 판이 다 바뀌게 될 것 같았다.
셀프 등급을 정해서 스티커 붙이는 것도 없었던 일이었는데 생겨버렸고, 있어야 할 사람들은 지금 없었다.
이젠 내가 기억하는 그대로 프로듀스 99가 진행될지 알 수 없었다.
“베타벡스? 처음 들어보는 기획사인데.”
“일본기획사야. MSM의 ‘소녀연대’나 ‘동방정기’가 일본에서 활동할 때 매니지를 해주는 기획사로 알고 있는데, 나름 일본에서는 TOP3 안에 드는 기획사래.”
“어, 이국적인 사람들이다. 오~ 멋지다.”
베타벡스에서는 4명이 나왔는데, 한 명은 라틴쪽 혼혈인지 눈이 찐했다. 어떻게 보면 아랍사람 같았고, 어떻게 보면 남미나 스페인 사람 같아서 묘한 매력이 있었다.
일본에서 왔는데도 비교적 정확한 발음으로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는 거로 봐서는 한국어 교육을 받은 것 같았다.
“오! JYG다.”
“빅4에서 나오다니. 대형 기획사니깐 다르겠지?”
“오! 이름표 위에 매직으로 No.1 적어놨다. 역시 대형 기획사 출신은 1위를 노리는 거네.”
“응? 루이스?”
“헐, 진짜 루이스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