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
개인기 말입니까?
“오빠 오늘 운동 제대로 했어?”
“그래 학교에서도 팔굽혀펴기 3세트 했고, 집에 오자마다 또 한 세트 하고 좀 쉬고 있다.”
“그럼 막간을 이용해서 또 연습할 분량이 있어.”
“무슨 연습?”
“오빠도 알겠지만, 요즘의 방송계가 많이 바뀌었어. 그냥 바뀐 게 아니라 방송의 개념 자체가 달라졌어. 거기에 맞게 준비를 하려면 지금부터 연습해야 해.”
“방송이 변하긴, 뭐가 변한 건데?”
“허허 중딩 급식단에게 헛웃음을 나오게 하다니.
아니, 아이돌 준비한다는 사람이 그걸 모르면 어떻게 하자는 거임?
방송의 개념 자체가 바뀐 지 이미 오래되었다니깐. 그걸 모르면 안 되지.
예전 2000년대에는 가요톱10이라는 음악프로그램이 있었잖아.
그 음악프로그램에는 트로트 가수, 록 그룹, 발라드가수, 아이돌이 다 나왔고, 전 세대가 같이 보는 종합 음악프로그램이었잖아.
그런데, 지금은 달라졌어.
뮤직뱅크, 음악중심, 인기가요, 카운트다운, 더쇼, 쇼 챔피언 같은 음악프로그램은 이제 아이돌들만 나오는 아이돌 전문 음악방송이 된 거나 마찬가지야.
전 세계로 송출되는 아리랑 방송의 심플리 케이팝까지 치면 일주일 중에서 6일이나 공개방송 스케줄이 잡히는 방송환경이야.
좋게 이야기하면 K-POP 가수를 위한 음악방송이고, 나쁘게 말하면 아이돌 판인 거지.
진짜 가창력 좋고, 노래를 제대로 하는 가수는 유정열의 스케치북, 불멸의 명곡, 가면가왕 같은 음악방송에 나와서 방송을 하고 있고, 트로트는 이제 가요무대나 콘서트 7080이 전문 프로그램이 되었어. 열린음악회는 행사적인 성격이 강해서 모든 계열의 가수들이 다 나오긴 하지만, 말 그대로 열린음악회는 행사니깐 별도로 생각해야 하고.”
“자..잠시만, 넌 왜 이렇게 잘 아는 거냐? 뭐 따로 연구활동을 방과 후 학습으로 뛰는 거야?”
“오빠, 이게 이제는 기본이야 기본. 아이돌 좀 파는 애들에게는 기본적인 사항이야.
이렇게 음악 장르에 따라서 방송이 나누어진 게 비판할 부분도 있겠지만, 그렇게 또 안 좋게만 보는 건 또 아니거든.
그냥 음악의 장르가 다양해졌고, 그 세분화 된 장르에 맞추어 방송환경이 여러 가지로 질적, 양적으로 성장한 거로 보면 될 것 같아.
전문가들은 이렇게 다양해진 환경에서 이제 ‘소녀연대’나 ‘원던걸스’ 같은 전 국민이 다 아는 아이돌들이 나오기 힘든 환경이라고도 말해.
그렇다면, 이렇게 개념이 바뀌어 버린 방송에서 아이돌은 어떻게 살아남아서 TOP을 노려야 하는가 하는 원칙적인 질문이 나와야 한다고.”
“지혜야, 너 내 동생 맞는 거지? 왜 이렇게 낯설게 느껴진다냐? 전문가의 향기가 막 나네.”
“흠..흠..오빠가 몰라서 그렇지 내가 팬질을 좀 해왔거든. 굿즈도 좀 만들었고 나름대로 활동하는 곳에서는 네임드야.
하여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오빠가 제대로 아이돌이 되려면 입덕 포인트가 있는 아이돌이 되어야 해.
그 입덕 포인트의 대표적인 게 개인기지.
개인기가 있어야 개인 팬도 늘어나고, 예능 방송에 나갈 기회도 생기는 거야.”
“음악방송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웬 예능 방송이냐?”
“오빠, 이걸 알아야 해. 팬들에겐 아이돌을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가 아니야.
저 아이돌을 알고 있느냐와 그냥 모르는 듣보잡 인가만 있는 거야.
그 중간은 없어.
내가 알고 있는 아이돌이라면 좋아하거나 긍정적인 거야. 잘되면 응원을 해줘.
하지만, 모르는 아이돌 즉, 신인 아이돌이라면 입덕 포인트가 있어야 그 아이돌을 알게 되는 거야.
그런 게 없으면 웬만한 곡이나 퍼포먼스로는 어필이 안되는거야.
음악방송의 개념변화와 세분된 음악방송으로는 10대만 보는 음악방송에서 인기를 얻더라도 크게 대박이 나는 게 어렵고, 신인그룹이 기존의 팬층을 뺏어 오기가 힘들다는 말이야.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의 정답이 바로 예능 방송이야.
그 예능 방송에서 개인기로 화제 몰이를 해서 지명도를 얻어야 인기가 생기게 되는 거야.
예능 방송은 10대부터 60대까지 다 보는 거니깐, 예능 방송에서 빵! 떠버리면 바로 50대, 60대 할아버지 할머니도 다 알아보게 된다니깐.
그러면 바로 인지도가 올라서 예능 고정 꿰차는 거야.
그, 왕국의 아이들인가에 있던 ‘창희’ 같은 케이스를 봐.
오빤 왕국의 아이들인가 하는 애들 노래 아는 거 있어?”
나의 수준을 판단하겠다는 듯이 물어보는 동생의 질문에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왕국의 아이들인가 하는 아이돌의 노래가 떠오르지 않았다.
“전혀 모르겠다. 기억이 안나. 그런 그룹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야.”
“그런데, 창희는 알잖아. 맞지?”
“창희는 알지. 예능에 자주 나오니깐 잘 알지.”
“그거야. 아마 혼자서 예능 나와서 번 돈이 왕국의 아이들 해서 번 돈보다 더 많을걸. 그만큼 예능감이라는 게 큰 거야.
거기다 프로듀스 99에서 인기를 얻어서 데뷔한다고 해도 멤버가 9명이라면서?
아마 엄청난 대박이 나지 않는 이상 9명 모두가 예능 방송에 나가는 건 불가능할 거야.
아마도 예능 방송에 출연하는건 1~3명이 한계일 거야. 그렇다면 예능 방송에 나가기 위해 전 세대를 아우르는 개인기가 있어야 한다고.
오빠 뭐 할 수 있는 거 있어?”
“음..루치아노 파바로티(Luciano Pavarotti) 목소리 흉내 내기는 좀 할 줄 안다. 해볼까?”
“패~쓰~~ 듣기만 해도 재미없잖아. 핵노잼의 느낌이 팍! 나잖아.
다른 거. 성대모사 같은 건 없어?”
“음...”
“아니, 이 아빠도 있는 성대모사 개인기가 소원이 넌 없는 거야?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여러분 부탁~해요~~’ 어떠냐? 이덕화 많이 닮았지?
‘좋아~ 아주 좋아! 부탁해요~’ 어때 똑같지?”
“오~ 아빠 비슷해! 덕화 아저씨 느낌 난다.”
“오 그래? 이것도 비슷하다 봐봐라.”
지혜가 똑같다고 호응을 해주자 아빠가 벌떡 일어나 이상한 노래를 부르면서 벽을 손바닥으로 후려쳤다.
“지금 이 순간 여유로 다가와 날 부르는 그대~
멋진 남자~ 우후~, 멋진 여자~ 우후~
오라이~~ 팍~~! 어떠냐? 똑같지? 똑같지?”
“햐~ 이건 아닌데, 아빠가 예능감이 없는 건 아닌데, 너무 갔네! 너무 갔어. 무리.무리. 아빠 편집 각이야.”
편집 각이라고 놀리는 지혜의 말에 무안해진 아빠 얼굴을 보곤, 나와 엄마는 그게 더 재미가 있다고 한참을 웃었다.
“소원아. 그럼, 아까 루치아노 파바로티 흉내를 낼 수 있다고 했잖아. 그러면 트로트를 파바로티처럼 노래 비슷하게 불러보는 건 어때?”
“오. 엄마 그거 메리트 있겠다. 아이돌이 트로트를 성악처럼 부른다면 대중성이 있을 것 같은데, 오빠 한번 해봐.”
“무슨 노래? 요즘 유행하는 트로트가 뭐가 있지?”
“그 신율의 시곗바늘로 해봐. 신율도 키 크고 잘 생긴 트로트 가수야.”
엄마의 추천에 유튜브로 찾아서 들어 보니 처음 들어 보는데, 노래도 좋았고, 인기가 많은 트로트인 것 같았다.
몇 번을 불러보고 이리저리 바꾸어 보고는 부르기 시작했다.
<사는 게 뭐 별거 있더냐
욕 안 먹고 살면 되는 거지
술 한잔에 시름을 털고
너털웃음 한번 웃어보자 세상아
시곗바늘처럼 돌고 돌다가 가는 길을 잃은 사람아
미련 따윈 없는 거야 후회도 없는 거야.
아아아아아아 세상살이 뭐 다 그런 거지 뭐.>
“오빠 ‘시곗바늘부터 그런 거지 뭐’ 이 부분만 하는 게 딱 맞아.
노래 앞부분이 너무 루즈해. 루즈한 앞부분 빼고 바로 시곗바늘로 들어가야 해. 개인기 편집 허용 시간은 30초에서 1분 미만이야. 바로 하이라이트로 들어가야 해.
팬질 경력 5년, 예능시청 7년 차가 자신 있게 이야기 하는 거니깐 믿어봐!”
“이야! 편집 시간이나 포인트까지도 다 분석을 하는 거냐?”
“물론이지 이제는 무슨 프로그램에 아이돌 누가 나온다고 하면 대충 편집 각 따져서 몇 분 출연 예상이라고까지 팬 페이지에 올라와.”
“진짜 덕후들이 전문가구나. 대단하다.”
지혜의 말을 듣고는 다시 한 번 시곗바늘 노래의 하이라이트 부분을 여러번 해서 조언을 들었다.
“좋네. 이걸 오빠 개인기로 하면 되겠다. 굿.굿. 이거 먹힌다 진짜.”
“엄마는 ‘안동역에서’도 해주면 안 되냐?”
“그럼 레퍼토리가 다양해 지는 거니깐 한번 안동역에서도 연습해 볼게.”
노래를 들어보고 한번 불러보는데, 역시나 지혜가 또 편집하이라이트를 잡아 줬다.
“오빠!
안 오는 건지, 못 오는 건지
오지 않는 사람아~
안타까운 내 마음만 녹고 녹는다.
밤이 깊은 안동역에서!!
여기까지 부르고는 바로 멘트를 쳐야지.
‘우리 안동역에서 만납시다~~’ 하면서 트로트 가수들처럼 손을 흔들어 주면서 윙크 한 방 날려줘야지.
그게 포인트야 뽀인트~~!!”
“네네 전문가 동생님 리스펙트 합니다.”
“에헴. 일단 내일 집에 올 때 메로나 사와. 길가는 사람 길을 막고 물어봐.
이렇게 예능 프로듀싱도 해주고, 온라인 투표도 해주는 동생이 어디에 있어 응?”
“네에. 네에~ 맞습니다. 맞고요. 동생님 뭐 더 시킬 건 없으십니까요?”
“헤헷 또 생각나면 이야기해줄게. 다시 시곗바늘이랑 안동역 해봐 봐. 한 번 더 체크하자.”
학교에서는 음악 연습실이 없었고, 집에서는 형이 오기까지 1~2시간 정도밖에 없어서 제대로 음악 연습을 하기는 힘이 들었다.
그렇다고 소음에서 좀 자유스러운 해운대 백사장에서 하면 사람들이 많아서 사진이 찍힐 것 같았고, 노래방 갈 돈은 없고 해서 산에 올라가서 노래 연습을 하고 등산 겸 상체운동을 했다.
“돈 내고 하는 연습실보다 오히려 산에서 연습하는 게 좋네.
그런데, 프로듀스99에서 입장 순서에 따라 1위 자리에 도전할지 아닐지를 결정해야 하는데, 그 순서를 모르니 참 머리 아프네.”
초반 방송에서는 1위 의자에 도전하느냐 마냐에 따라 카메라 독점이 가능한데, 과연 내 입장 순서가 몇 번째일지가 궁금했다.
*
*
“흠. 이 애는 사전 촬영에서도 뮤지컬 노래 하더니 계속, 뮤지컬로 가려는 것 같네.
뮤지컬 소년이라.. 특이한 컨셉이긴 한데, 과연 이 특이한 곡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으려나. 뭐, 실력만 나온다면 절대 편집은 없을 것 같은데.”
“김 작가 심사 무대 선정이랑 준비 끝나면 이쪽도 좀 도와줘.”
“네네. 갑니다.”
프로듀스99에 참여한 기획사는 총 25곳이었고, 인원수에 따라 대기실을 줘야 하고, 메이크업을 지원해줘야 하는 출연자와 필요 없는 출연자를 정하는 일이 한창이었다.
“진짜 다른 프로그램보다 잔일이 더 많네요.
이거 시청률 4% 안 나오면 다음에는 절대 오디션 프로그램 하지 맙시다. 돈도 더 많이 들고 너무 힘들어요.”
“대신에 인기만 끌면 광고 붙일 타이밍이 더 많아지니깐 일단 참고 좀 해.
미리미리 촬영감독들에게 여기 6개 기획사 애들 주목 좀 해달라고 이야기 미리 좀 하고.
초반에 카메라 줬는데도 화제 몰이 안 되면 우리도 뭐 어쩔 수 없는 거지.”
“그것보단, 광고나 협찬이 우리 계획보다 잘 안 들어오는데, 우승 상금 없이 최종 선발되는 9명의 음반제작비 지원으로 결정하면 되겠습니까?”
“어쩔 수 없지 뭐. 합숙소 대관비와 멘토들 출연료만 해도 빠듯하다 진짜.
그리고, 스폰서 문제로 일정이 바뀌어서 녹화 다음 날에 바로 합숙이 시작되는 거로 바뀌었으니깐 다시 기획사에 다 통보하고 연락 다시 해서 확인해.”
“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