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민아이돌 프로듀스99-11화 (11/237)

# 11

시간 낭비냐?

“엄마! 의료 보험증 어디에 있어?”

“의료 보험증은 왜? 내일 병원 가려고?”

“아니, 뭐 좀 보려고.”

“큰방 서랍장에 있어. 그게 볼 게 뭐가 있다고.”

의료 보험증을 찾아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어디 보자. 일단 아빠꺼부터..역시 가입이 안 되어있구나. 재수!”

그랬다. 녹화가 시작되기 전임에도 분위기를 빨리 만들기 위해 사전투표창이 열렸는데, 1회 방송 말미에 나오는 순위를 위해서 일단 투표를 해야 했다.

내 아이디로 Nnet에 당당하게 로그인해서는 나에게 투표했다.

Nnet에 가입되어 있지 않은 엄마, 아빠의 주민등록번호로 가입을 하고, 핸드폰 인증을 받아서 나에게 투표를 했다.

“거기 이쁜 동생~ 너의 클릭이 필요한데, 이리로 좀 컴하시죠.”

“오빠. 이거 아이디 하나당 9명한테 투표할 수 있는 거지?”

“그래, 9명한테 투표 가능해.”

“그러면 다른 8명은 내가 투표할게.”

지혜는 마치 일생일대의 난제를 만난 듯이 위아래로 스크롤을 움직여가며 심사숙고하듯이 투표를 5분에 걸쳐서 했다.

“이거 매일 투표가 되니깐 내일도 투표할게. 여기 적힌 게 엄마, 아빠 아이디, 비번이지? 오빠 없을 때는 내가 대신해줄게.”

“역시 이쁜 동생이 마음도 착하네! 경태랑 진욱이도 오빠 친구니깐 투표 좀 해줘. 9명이니깐 괜찮지?”

“그 정도는 뭐 쉽지. 내일 우리 학교 애들한테도 해달라고 할게.

그러려면 약간의 햄버거 값이라고 해야 할까. 뭐 그런 거 있잖아...”

주먹을 살짝 쥔 손에서 엄지와 검지를 살살 비비고 있는 지혜를 보니 어쩔 수 없이 지갑에서 돈을 꺼내 지혜에게 줄 수밖에 없었다.

“헤헤. 매일 애들한테 오빠 투표해달라고 할게. 데뷔하자 윤소원~! 우유 빛깔 윤소원~!”

다음날 학교에 가서도 우리 반 애들에게 투표를 부탁했다.

우리 학교에서만 3명이 나가게 되자 아직 방송 전이라 화제성은 없었지만, 우리를 둘러싼 작은 사회에서는 화제가 되긴 되었다.

“소원아 넌, 심사 무대준비 다 했어?”

“어 다했으니깐 이렇게 너네랑 같이 옷 사러 나온 거지. 너희도 선생님이랑 무대 다 정했냐?

그런데, 경태 네가 찾는 힙합씬(Hip Hop Scene) 스타일의 옷이 부산에도 있어?”

“다 준비했지. 우린 혼자 준비하는 네가 걱정이었어.

부산에도 종류가 좀 부족해서 그렇지 힙합씬들 스타일 매장이 있긴 있지. 그런데, 옷은 서울에서 이미 샀어.

오늘은 모자 사려고. 서울에서 엄청난 옷을 찾았거든. 아마 첫 녹화 날 내 옷이랑 액세서리 보고 난리 날 거다.”

“나도 요즘 유행하는 어흥 셔츠 비슷한 걸 준비했는데, 다른 사람들이랑 겹치는 것도 생각해서 다른 걸 2개 더 챙겨 가려고.”

경태, 진욱이와 부산에서 나름 핫하다는 서면과 남포동, 백화점을 둘러보고 디자이너 샵까지 들려서는 경태의 머플러가 달린 모자와 진욱이의 특이한 컬러가 들어간 셔츠를 구매했다.

“소원아 너 진짜 무대에 청바지에 흰 티셔츠만 입을 거야?”

“그래 심플이지 뷰티플이잖냐. 아마 그날 다들 튀어 보이려고 난리 칠 거야. 아마 무대의상 자체가 기존 아이돌들이 입는 옷처럼 엄청 화려할걸.

그럴 때는 일부러 이렇게 심플하게 가야지 차별성이 있어서 눈에 띄지.”

“그것도 맞는 것 같네. 하지만, 우린 개인 무대라서 심플한 옷을 입으면 가뜩이나 혼자 서야 하는 무대인데 너무 밋밋하지 않을까?”

“그럴 수도 있지. 한데 난 준비한 무대랑 가장 맞는 게 심플한거라서.”

프로듀스 99에서는 화려한 무대의상이나 특이한 패션 감각을 보여주면서 어필하기 위해 다들 노력을 하지만, 방송국에서 주는 이름이 적힌 큰 종이를 배와 가슴 부위에 붙여야 하기에 그런 무대의상이나 패션 감각들이 별 소용이 없었다.

가슴과 배에 크게 붙은 이름표가 방송에 잘 노출되게 하는 게 가장 중요했다.

그래서, 경태와 진욱이에게 넌지시 심플하게 입으라고 에둘러 이야길 했지만, 둘 다 어떻게든 튀어야 방송에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을 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큰 이름표를 대 놓고 이야기해주고 싶었지만, 이야기해도 안 믿을 것 같았고, 믿는다고 해도 이걸 어떻게 예측한 것인지에 대해 말이 나올 것 같아서 말을 해줄 수 없었다.

“서면도 버스킹 엄청 많이 하네. 그런데 실력은 고만고만한 것 같다.”

“실력 키우려고 나오는 거겠지. 처음부터 어떻게 다 잘하냐? 진욱이 너도 학원 가서 실력이 늘었다면서?”

“실력을 키우는 그런 목적이라면 버스킹 나와서 저렇게 따라부르기를 하면 안 되지. 저건 그냥 기성 가수들을 흉내 내는 거야.

버스킹에 나와서 자기 실력 보여주고, 자기만의 음악성을 보여주려면 그 전에 먼저 자기만의 음악성을 만들어야지 그 뭔가를 만들어 놓고 그걸 보여주기 위해 버스킹을 해야지.

우리 학원 샘말로는 버스킹 나오는 애들 대부분이 그냥 자기만족 얻으려고 나와서 음색이 좀 좋다거나 일반인들에게 잘 부른다는 소리 듣는 거로 만족하면서 끝이 난다고 하더라.

우리한테도 그렇게 버스킹 하려면 절대 하지 말라고 하더라.

자기가 창조한 게 아니라 남이 만들어둔걸 따라 하기 위해서 친구와 나와서 적당히 부르고 적당히 춤추고 하는 건 그냥 흉내 내기하면서 적당히 사는 거라고 엄청 디스하더라. 아무 의미 없는 짓이라고.”

“그래도 안 하는 거보다는 좋은 거 아니냐?”

“뭐, 아무것도 안 하는 거보다는 좋겠지.

하여튼 우리 학원 샘은 자기만의 창조한 음악성이 없다면 버스킹은 하지 마라더라.”

“진욱아, 그렇게 따지면 아이돌도 다 남들이 만들어 준 가사에, 곡을 받아서 안무가가 만들어 준 춤을 따라 추는 거야.

노래도 악보가 있지만, 느낌을 보기 위해 가이드 녹음된 노래를 듣고 따라 부르는 거잖아.

쩝..뭐 그래서 아이돌은 음악성이 없는 인 형딴따라 라고 부르는 건가.

역시 난 힙합으로 쇼미더 달러에 나갔어야 하는데. 쩝.”

“무슨, 아이돌은 완전히 다르지. 대부분의 버스킹이 기존 가수를 흉내를 내는 거라면, 아이돌은 새로운 문화를 재창조하는 거야.

작사가와 작곡가, 안무가, 가이드 가수가 만들어준 여러 콘텐츠를 모아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창조자로서 아티스트(Artist)라고 볼 수 있는 거지.”

“힙합씬에서 들었으면 열라게 디스 당할 말이다. 크흐흐 늦었는데 집에나 빨리 가자.”

경태와 진욱이의 말을 듣고, 늦은 밤까지 서면의 길 한복판에서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기 위해 버스킹을 하는 사람들을 보니 느끼는 게 많았다.

어떤 면에서는 진욱이의 말처럼 흉내 내기로 자기만족을 느끼며 음악가로서 창조할 수 있는 시간을 낭비하듯 버리는 일일 수도 있겠지만, 늦은 밤까지 나와서 노래를 집중해 부르는 걸 보니 단순하게 시간 낭비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자기들만의 예술혼이 있다는 힙합씬이나 전통의 락음악을 하는 기성 가수들의 입장에서는 아이돌을 하는 우리나 버스킹으로 가수들 따라 하기를 하는 사람들이나 다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쩌면 아이돌이 되기 위해 연습생을 하는 이 시간 자체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아직 제대로 음악이란 걸 안 해본 것 같지만, 참 어려운 것 같았다.

*

*

옷까지 다 정해지자, 생각했던 곡을 심사 무대에서 하겠다고 작가에게 메일을 보냈다.

“오빠, 청바지에 흰 티로 가는 거야?”

“그래, 아마도 다들 화려하게 튀려고 해서 나올 거니깐 난 그 반대로 심플하게 가려고.”

“음. 뭐 심플한게 오히려 눈에 띌 수 있어서 좋을 수도 있지만, 일단 다른 문제가 있네.

청바지에 흰티는 근육이 보여야 가산점이 있는 거야.

그래야 흰티와 어깨가 더 돋보이게 되는 거고. 그게 자연스레 멋이 되는 거야.

날짜가 촉박하긴 하지만, 일단 상체 근육운동부터 하자.

팔굽혀펴기 30개씩 3세트로 일단 오늘 밤부터 시작해야 해. 스텝 업!”

형이 오기 전이라 거실에서 헉헉거리며 팔굽혀펴기를 했다.

“지금 쉬면 안 되지, 팔도 쭉 다 뻗어야 하고, 어허! 이거 봐라. 팔이 벌어지면 안 된다고, 근육이 예쁘게 안 생겨요. 팔 각도를 줄이고. 그래 그렇게.”

“야..헉.헉..넌 어떻게 이런 걸 다 아냐? 아고 죽겠다.”

“유튜브에 다 나오잖아. 상체 탈의하고 운동하는 멋진 오빠들이 얼마나 많은데, 유튜브는 진짜 최고야! 짜릿해!”

암만해도 전생에서 기억하고 있던 동생과는 뭔가 달라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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