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허락과 준비.
“네, 작가님. 네. 네. 본방송 첫 촬영이 9월 27일 토요일이라고요?
네. 아. 그날 녹화가 늦어지면 숙식도 제공되는 거고요?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첫 녹화에서 품평 받을 심사 무대준비를 해서 9월 20일까지는 알려달라는 말이지요? 네. MR 준비 같은 건 그쪽에서 다 준비해주시니 정확한 곡만 정해서 알려드리기만 하면 되는 거지요?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부모님 동의서와 출연료, 교통비를 위해서 통장사본, 신분증 사본도 챙겨 가야 하고요? 네. 네. 알겠습니다.
홈페이지 사전투표와 사전촬영 영상은 내일 바로 공개가 된다니, 주위 사람들에게 알리고 홍보하겠습니다. 네.
준비하는 동안 모르는 게 있으면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사전촬영 이후 보름이나 지나서 작가에게 합격 연락이 왔는데, 실제 방송에 나가게 되는 첫 촬영일정과 준비물을 같이 알려주었다.
아마, 내가 기획사 소속이었다면 이렇게 전화가 오지 않고 기획사로 바로 통보가 갈 것인데, 개인연습생들에게는 작가들이 일일이 전화를 해서 서류와 무대준비에 대해서 알려주는 것 같았다.
전화를 끊고 나서야 내가 프로듀스 99에 진짜 출연한다는 것이 와 닿았다.
작가와 통화를 하는 중에 경태나 진욱이의 합격 여부를 묻고 싶었지만, 일단은 애들의 카톡을 기다렸다.
<까똑> 40분 넘게 기다리자 그제야 카톡이 왔다.
-퇘퇘 경퇘 : 야! 나 합격했다고 연락 왔는데, 너네는 합격 연락받았냐?
-존잘 진욱 : 당연하지, 일부러 너 톡 기다렸다. 소원이는?
-우리의 소원 : 나도 연락받았다. 그럼, 팀 부산 만들어지는 것이야?
-퇘퇘 경퇘 : 오예~ 우리 세 명 다 걸렸구나. 케헤헤 진짜 개 재수~ 캬하하
무대준비를 위해서 옷 사러 갈 건데, 다들 언제 시간 되냐? 울 엄마가 방송 나간다고 하니깐 옷 사라고 돈 주셨다.
-존잘 진욱 : 일단 무대콘셉트부터 정해지면, 내가 다니는 학원샘하고, 내일 만나서 무대준비 같이하기로 했다. 학원에서도 프로듀스 99에 나가는 애들 특강 무료로 해준다네. 의상은 일단 무대 컨셉 정해지면 그때 가자.
-퇘퇘 경퇘 : 오키. 나도 우리 샘하고 일단 상의해봐야겠다.
다행히, 3명 다 본 방송에 나간다고 하니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애들과 이야길 하다 보니 나에게는 둘과 다르게 두 가지 난관이 있었다.
첫 번째는 심사 무대를 같이 준비해줄 조력자가 나에게는 없다는 거였다.
경태나 진욱이처럼 학원에 다녔다면 무대에 대해서 조언을 받고 무대 컨셉에 대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터였는데, 그런 학원에 다니지 않다 보니 도움을 요청할 곳이 없었다.
두 번째 난관은 부모님의 허락이었다.
부모님께 오디션 방송에 나가는 것을 허락받아야 했는데, 내가 모델이 되겠다고 이미 한바탕 난리를 쳤기 때문에 허락이 쉽지만은 않아 보였다.
“엄마! 나왔어. 배고프니깐 라면 끓여 줘!”
“또 라면? 어제도 먹었잖아.
고3이라고 온종일 앉아있는데, 밤에 또 라면 먹으면 얼굴 부어서 공부 더 안 돼, 그냥 밥을 먹어.”
“아~ 그냥 라면 끓여 줘. 스트레스를 매운 국물로 풀고 싶어. 그러니깐 라면 끓여주고, 윤소원! 넌 방에 같이 있으면 집중 안 되니깐 거실에서 잠자.
윤지혜! 넌 이제 TV 볼 때 이어폰 끼고 봐! 알았어?”
늦게 야자를 마치고 온 형이 짜증을 내며 집으로 돌아왔는데, 이제 수능이 100일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보니, 신경이 엄청 날카로웠다.
‘그래! 형을 이용하면 쉽게 허락 맡을 수 있겠구나.’
화장실에서 씻고 나오는 형에게 수건과 갈아입을 옷을 호텔서비스처럼 가져다주고 식탁에 앉아 라면을 기다리는 동안 형의 어깨도 주물러줬다.
“우리 형 공부하는 데 내가 방해하면 안 되지. 이제 내가 그냥 잠뿐만 아니라 다른 거도 다 거실에서 할게. 형이 방 다 써.”
“야, 윤소원! 이거, 이거! 너 무슨 죄지었냐? 설마, 서랍에 내 비상금 들고 갔냐?”
“그런 거 아니거든요. 그냥 형이 수험생 스트레스 많이 받는 거 같아서 그러지. 엄마 내가 김치랑 깍두기, 단무지 반찬 다 꺼낼게.”
평상시 하지 않던 행동을 내가 하자, 형은 물론이고 엄마도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내었지만, 다들 그냥 넘어갔다.
<삑삑삐~!>
부산 남구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수학 선생님으로 있는 아버지가 형보다 더 늦게 집으로 왔는데, 아버지도 고3 담임이라 매일이 늦은 귀가였다.
“야! 기원아 아빠도 라면 딱 세 젓가락만 먹자. 냄새 좋네~
이런, 벌써 다 먹었네. 쩝. 마눌, 나도라면 좀...”
“아빠 제가 끓여 드릴게요. 아빠도 고춧가루에 식초?”
“콜! 씻고 나오마.”
엄마는 갑자기 내가 나서서 라면까지 끓이겠다고 하자 형과 같이 더 이상하게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형과 아버지가 먹고 남긴 설거지까지 내가 다 해버리자, 엄마와 아빠는 갑자기 집안일을 하는 내가 불안한지 용돈을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 할 정도였다.
“저기, 엄마, 아빠..”
“그래 네 이놈 무슨 사고 쳤냐? 괜히 안 하던 거 하고 말이야. 무슨 일이야? 형이 등록금 한다고 모아둔 비상금이라도 훔쳐 썼냐?”
형이 다시 방으로 가서 책상에 앉자 TV도 끌 수밖에 없는 조용한 거실에서 내 죄(?)에 대해 추궁이 이어졌다.
“아니, 그게 아니고, 이거 봐봐.”
“Nnet 국민 아이돌 – 프로듀스99? 여러분의 손으로 국가대표 아이돌을 뽑아주세요? 너, 서..설마 여기 나가고 싶다는 거냐?”
“헐, 오빠 모델이 안 되니깐 이제 아이돌이야? 그러면 서울에 있는 기획사에 들어가야 하는 거잖아?”
“두말할 거 없다. 전에 말했듯이, 학교 그만두고 서울 가서 기획사 들어가는 건 안 된다.”
“아니, 일단 말 좀 들어 봐봐. 기획사에 들어가는 게 아니고, 이 방송에 그냥 출연을 하는 거야. 그 방송 있었잖아. 슈퍼스타 오디션 K처럼 오디션 기간에만 합숙을 하는 거고, 방송이 끝나면 그냥 끝이야.
슈퍼스타 오디션 K처럼 우승하면 가수가 될 수 있기도 하지만...”
“슈퍼스타 오디션 K의 그 ‘두각’처럼 우승하면 가수데뷔 시켜주는 프로그램이구나.
그때 방송을 보니깐 이런 오디션 프로그램은 예선을 통과해야 하던데, 그건 통과했고?”
“네 아빠, 9월 말에 첫 방송 녹화가 들어가는데, 학교에 경태랑 진욱이도 합격해서 같이 서울로 가기로 했어요. 첫 녹화는 당일 녹화이고요.”
“흠. 확실히 기획사 들어가고, 학교 그만두고 하는 건 아니지?”
“네. 위로 올라가게 되면 합숙한다고 학교 결석을 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이게 9월 말에 첫 녹화고 12월 1월은 방학이라 그렇게 결석도 많이 안 할 거야. 그리고, 학교에서 방송 출연을 위한 결석은 공결처리를 해줘서 나중에 문제없게 해준 데.”
“진짜 공결처리 해준 데? 엄마가 확인해 본다.”
“진짜야. 아들 좀 믿어!”
“공결처리 된다면 뭐 문제는 없지. 이런 오디션 프로그램 말곤 언제 TV에 나가겠냐? 아빠는 찬성.”
“나도 찬성. 우승은 못 해도 오빠가 중간 이상은 할 거 같으니깐 내 친구들이랑 같이 문자투표 해줄게.”
“흠...”
“엄마, 내가 집에 있으면서 형이랑 같이 방을 쓰면 형이 더 스트레스받으니깐 내가 방송 출연으로 서울에 가 있고 하면 형에게 도움이 된다니깐.
그리고, 집에 있을 때는 내가 거실에서 조용하게 있을게. 응?”
“좋아, 윤지혜 폰으로 녹음해. 절대 학교 그만 안 둔다고, 녹음하면 허락해준다.”
“콜!”
역시나, 아빠는 쉽게 허락을 했고, 엄마도 고3인 형에게 도움이 조금이라도 된다는 말에 고민 끝에 허락을 해줬다.
거실에 홀로 누워서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서 과거 프로듀스 99에서 평가무대가 인상적이었던 것을 생각했다.
역시나 최고의 평가무대는 전 시즌을 통틀어도 시즌1에서 갓세정과 ‘구할단’으로 나중에 데뷔했던 멤버들이 같이 했던 무대였다.
최고의 완성도를 보여주는 무대였고, 그 4명은 올 A를 받으면서 초반 강력한 인상으로 최종 2명에 선정되기도 했었다.
그런 강한 인상을 초반 무대에 보여줘야 했기에 남자로 평가무대를 했던 아이돌들을 기억해 보려 했지만, 떠오르는 솔로 무대가 없었다.
뜻밖에 전 시즌을 다 생각해봐도 솔로로 나와서 인상 깊은 무대를 보여주었던 아이돌들이 없었다.
미소 왕자라 불리던 박진훈이나 시즌2에서 우승했던 강캐빈도 다들 팀으로 나와서 평가무대를 했기에 강한 인상을 주지 못했다.
‘과거에 솔로로 평가무대를 해서 엄청난 인지도를 만들었던 사람이 이렇게 없었나? 아, 맞다. 그 사람이 있었구나. 그래. 그 사람의 무대면 되겠다.’
평가무대를 뭐로 할지 결정이 되자 마음이 편해서 잠자리가 바뀌었음에도 꿀잠을 잘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