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민아이돌 프로듀스99-2화 (2/237)

# 2

회귀 (1).

“아니, 당신은 애가 하고 싶다는 걸 다 들어줄 거에요?”

“애가 모델 안 하면 아무런 꿈도 희망도 없다고 굶어 죽겠다고 3일째 물도 안 먹고 있는데, 그럼 죽게 놔둘 거야?

일단 뭘 좀 먹인 다음에 천천히 설득하자고.”

“자퇴서에 부모동의 싸인을 하라는데, 그럼 사인해줄 거예요?”

“일단 애 물이라도 좀 먹이고 그다음에 설득하자니깐....”

귓가에 엄마와 아빠가 다투는 소리가 들렸는데, 뭔가 이상했다.

약에 취한 듯 현기증이 나고 어지러웠는데,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모호했다.

[벌컥]

“야 윤소원! 시위한다고 밥 안 처먹고 하는 건 내 알 바 아니니깐 모르겠는데, 며칠째 안 씻어서 땀 냄새 쩌니깐 좀 씻어라.

같은 방 쓰는 내가 짜증 나서 방에 있기 싫으니깐. 좋은 말로 할 때 씻고 와라.”

‘형 목소리인데···. 왜 갑자기 들리는 거지···. 아까 뭔가에 부딪히는 느낌이 들었는데 뭐지?’

“형! 오늘이 며칠이야? 지금 몇 시야?”

“이게 미쳤네!

엄마! 소원이 미쳤는지 오늘 날짜 물어보고 시간 물어본다. 시계도 안 보이는 거 같다.”

형의 비꼬는 소리를 듣고서야 벽에 걸린 디지털 시계가 눈에 보였다.

방에 있는 시계는 대중목욕탕에서나 볼 것 같은 붉은색 LED로 시간을 알려주는 큰 디지털 시계였는데, 시간 밑에 날짜와 요일이 나오는 시계였다.

‘밤 10시에 1월 4일?’

“으응?”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려는데, 어지러워서 휘청했다.

넘어질 것 같아서 침대에 손을 짚었는데, 스마트폰이 보였다. 얼른 집어서 보니 내가 고등학생 때 쓰던 갠역시 4노트였다.

년 도를 확인하니 2015년 1월 4일 밤 10시이었다.

‘이때는 내가 서울 모델에이전시에서 테스트받은 후에 상담받고 계약서 들고 집에 왔던 때구나.

에이전시에서 군대 문제나 활동 문제로 고등학교를 자퇴하는 걸 추천해서, 자퇴서에 싸인해달라고 엄마, 아빠한테 생떼를 부리던 그때구나.

아무런 걱정도 고민도 하지 않았던, 가장 행복했던 그때로구나. 그래 그때구나...

꿈인가? 꿈이라면 다시는 깨지 말고 그대로 꿈에서 끝이 났으면 좋겠구나...’

“야! 윤소원 밥 안 먹어서 정신 놓은 거냐? 쳐 돌았네.”

아까 손을 짚은 그 모습 그대로 침대에서 무릎을 꿇고 있으니 형이 와서 발로 내 배를 밀었다.

“아 진짜 내 인생 신경 쓰지 마라!”

자동반사로 짜증 나는 말이 내 입에서 나왔다.

형의 발에 밀려 침대 옆 벽에 팔꿈치가 찍히자 아팠다.

‘응? 아파?’

“자! 윤소원 아들씨! 진짜 굶어 죽을 게 아니라면 물은 마시고 단식해라.”

아빠가 들고 온 물컵을 얼른 받아서 마셨다.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물이 정말 시원했다.

느낌이 아닌 아픈 통점(pain spot)에서의 통증이 팔꿈치에서 느껴지고, 목을 넘어가는 차가운 물에 의한 목과 입에서 느껴지는 감각은 이게 진짜 세상에서 느껴지는 그런 감각이었다.

내가 과거로 돌아온 건가? 그걸 확인하고 싶었다.

“아빠, 물도 먹고 밥도 먹을게요. 자퇴서 사인 안 해줘도 돼요.

엄마! 나 밥 줘!!! 배고파! 이제 자퇴한다고 안 할게!”

13년 전 과거로 돌아온 내 모습을 보고 싶어서 방을 나가 화장실로 뛰어갔다.

“봤느냐? 첫째야 이 아버지는 냉수 한 컵으로 반항하는 어린양을 갱생시켰노라! 이 아버지를 찬양해라!”

아버지인 윤정현은 고등학교 수학 선생님이자 한 가장의 아버지가 보이기 힘들 정도의 허세에 가득한 말을 하며 양손을 좌우로 뻗어 폼을 잡았다.

“믿습니다~! 믿고요~!

냉수 한 컵에 바로 씻으러 보내다니 우리 아버지 칭찬해~ 대단해요~!!!!”

엄마와 같이 거실에서 티브이를 보던 여동생 지혜가 잘했다고 아빠를 칭찬해 줬다.

“밤 10시에 밥을 차리라니, 뭐 그래도 자퇴 안 한다니 귀찮아도 특별히 해준다.”

3일 동안 단식하던 둘째가 자퇴도 안 하고, 단식도 그만둔다고 하니 중학교 국어 선생님인 엄마 최혜정은 귀찮아도 밥을 차리러 부엌으로 향했다.

‘내가 다시 돌아온 거구나, 고등학생 때의 나로 돌아왔구나.’

1월이라 옷을 벗고 거울을 보다 보니 쌀쌀해서 추웠지만, 그런 추운 것도 기분이 좋았다.

아무 고민 없이 부모님의 그늘에서 있을 수 있었던 학생 시절로 돌아온 것이었다.

원래라면 지금부터 부모님을 설득해서 1학년 겨울 방학이 되어서야 겨우 자퇴를 하고 내년부터 모델로 활동을 할 수 있었다.

‘무엇 때문에 내가 다시 돌아온 것이지? 왜? 무엇 때문에?’

드라마나 영화에서 본 시간 회귀를 내가 할 이유나 그런 일을 만들어 낼 만한 물건들을 생각했지만,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오빠! 밥 다 차렸어 빨리 밥 먹으러 나오래.”

“어어 그래!”

동생의 소리와 배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에 얼른 샤워를 하고 나왔다.

“그래, 진짜 자퇴 안 하는 거지? 진짜지?”

식탁에 앉아 숟가락을 들자마자 엄마가 확인받겠다는 듯이 물어왔다.

“그래, 나 자퇴도 안 할 거고, 모델도 안 할 거야. 일단 엄마 말대로 대학교 가고 나서 뭘 하든지 할게. 됐지?”

“그래, 그래 잘 생각했다. 천천히 꼭꼭 씹어 먹어. 국부터 먹고, 안 먹다가 갑자기 먹어서 체할라.”

모델계에서 유부녀와 놀아나서 퇴출당한 이후 부모님을 뵐 낯이 없어서 집에 잘 내려오지 않았는데, 뜨거운 밥이 입안으로 들어오자 가족의 품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게 실감이 났고, 이런 가족들이 있다는 것에 고마워서 눈물이 나왔다.

“어머! 얘 봐! 얘 봐! 밥 먹다가 운다 야!

지혜야 오빠 운다. 사진 찍어둬라! 두고두고 놀려먹게 어서 와서 찍어라.”

내가 운다는 소리에 핸드폰을 들고 뛰어온 지혜가 ‘진짜 우네!’ 하면서 사진을 찍을 때, 다시 돌아와서 가족의 따뜻함을 느낀 이 순간을 영원히 남기고 싶어서 왼손으로는 V자를 그리고, 눈물과 콧물을 흘리면서 입안의 밥을 씹어 먹으며 웃었다.

“뒈에박~! 오빠 단식하더니 미쳤는 갑따. 이건 동영상으로 찍어야겠다. 케헤헤 인스타 올리면 대박 날 듯.”

이때 동생 지혜가 찍은 사진과 동영상은 동생의 인스타와 가족과 고모 집, 외가집의 친척들끼리 만든 가족밴드에도 올려졌는데, 이 사진과 동영상으로 인해 설날과 추석 때 친척들에게 엄청 놀림을 받았고, 많은 시간이 지난 후 티브이 예능에서 스타 흑역사 사진대회에서 넘사벽으로 1등을 차지한 사진과 영상이 만들어진 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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