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민아이돌 프로듀스99-1화 (1/237)

# 1

시작.

“네, 윤소원님 노래 잘 들었습니다.

대중음악을 하는 제 입장에서 보자면 안정적인 음정이나 박자를 찾아 들어가는 에드리브도 좋았어요. 특유의 허스키 보이스도 괜찮았어요.

거기다 뮤지컬 쪽에서 활동하시던 분이니만큼 가지고 있는 두성이나 흉성과 가성을 조화롭게 쓰는 스킬은 굉장히 매력적이었습니다.

다만, 고음을 내질러야 할 때 올라가지 못하고 가성으로 전환 시켜버리는 부분이 좀 아쉽네요.”

“먼저 평해주신 윤찬신씨의 평처럼 고음 부분이 너무 아쉬워요. 개인적으로 작품을 같이 해보았기에 정말 기대를 많이 했는데, 아쉽네요.

3년 전인가 그리스(Grease)에서 같이 공연했을 때와 목소리가 너무 달라졌어요. 성대결절을 한번 겪었다고 하셨는데, 그 이후 목 관리가 전혀 안 된 것 같아요.

프로에게는 자기관리가 기본 중의 기본인데, 가장 중요한 목 관리를 하지 못하는 건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좋았던 만큼 아쉬움이 더 컸던 무대였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3년 전 뮤지컬 그리스(Grease)에서 함께했던 김정문 연출가의 아쉽다는 품평은 이미 내 귀에 ‘탈락이야’라며 외치는 것 같았다.

*

*

“네~! JTDC 가면싱어 시즌5!! 최종예심 4조 11명의 도전자 중에서 본선 32명에 진출하는 진출자를 발표하겠습니다.

아! 놀랍게도, 이번 4조에서는 본선에 진출할 진출자가 4분이나 계십니다.

이름을 호명 당하신 분은 앞으로 나오셔서 가면을 가져가시면 됩니다.

그럼! 제4조 첫 본선 진출자는...

괴물 같은 성량을 자랑하신 분입니다. 오솔레미오(O sole mio)를 부른 테너 ‘김.진.솔’!

김진솔 진출자는 ‘내가 바로 기본에 충실한 테너다!’라는 걸 보여주신 테너의 교과서 같은 좋은 무대였습니다.”

멋진 턱시도를 차려입은 테너 김진솔은 미소를 띠며 앞으로 나와 가면을 집어갔다.

“자 그럼 두 번째 진출자는...날카로운 창으로 찌르듯이 질러주는 창법의 락 스피릿~! 락커 ‘이.창.호!’

‘시빌위’의 보컬 김산하 씨와 유사한 목소리만큼이나 락 스피릿도 잘 보여주신 도전자였습니다.“

가죽 재킷을 입은 락커 이창호는 팔을 휘두르는 세레모니를 하며 앞으로 나와 가면을 한 손으로 집어갔다.

“이창호 씨 락커에 맞지 않게 굉장히 기뻐하네요 하하하”

“락이랑 안 맞는 오디션이라 떨어질 줄 알았어요~ 롹~스피릿~~ 에 엣~~피스~!”

“하하하. 락 정신이 투철한 이창호 씨였고요.

그럼 세 번째 본선 진출자는.... 달콤한 목소리로 사랑의 세레나데를 불러주신 행사이벤트 전문 가수 ‘홍.송.철’씨~!

결혼식과 청혼이벤트에서 사랑을 만들어 온 사랑전문가이시니 본선에서도 달콤한 세레나데를 부탁드립니다!”

“우후! 감사합니다. 모두가 사랑할 수 있는 그런 노래 들려드리겠습니다. 본선 감사드립니다!”

“자~ 그럼 4조의 마지막 본선 진출자는....

다년간 뮤지컬 계에서 좋은 연기와 노래를 들려주신....”

‘제발, 제발, 제발, 내가 되어라, 제발, 이게 내 마지막 기회라구...제발...’

두 눈을 감고 마음속으로 내 이름이 불리라고 계속돼내었다.

“뮤지컬 계에서 좋은 연기와 노래를 들려주시고 계시는 뮤지컬 계의 라이징스타 ‘이.요.한’!

노틀담의 곱추에서 작품의 안내자이자 해설자인 음유시인 그랭구아르역으로 우리에게 큰 감동을 안겨준 도전자였습니다.

나머지 분들은 안타깝게도 최종 탈락이 되셨습니다. 아쉽습니다.

탈락자분들은 무대를 내려가 주시면 됩니다.”

‘제길, 나도, 나도! 그랭구아르의 ‘대성당의 시대’를 불렀다구, 같은 노래를 불러서 이렇게 떨어지다니···.

더 기분이 비참해지잖아···. 시발...’

속마음은 썩어들어가도 다른 탈락자들과 같이 씁쓸한 미소를 띠며 본선 진출자에게 박수를 쳐주었다. 그리고 탈락자들과 같이 무대를 내려왔다.

무대를 내려오는 발걸음이 무거워서 주저앉을 뻔했지만, 억지로 버텨냈다.

“성대결절 이후 제가 목 관리를 너무 잘못한 것 같습니다. 제가 잘못한 것이니 어쩔 수 없죠. 다음 시즌에는 목 관리를 제대로 해서 다시 도전하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파이팅~!”

애써 밝게 탈락인터뷰를 했지만, 사실 이번이 30살의 마지막 도전이었다.

개인 짐이 든 캐리어를 끌고 밖으로 나오니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이번에도 잘 안되면 그냥 부산에 내려가서 기술을 배우기로 지현이와 약속을 했지만, 막상 부산으로 내려가려니 마음이 무거웠다.

1년 넘게 보지 못했던 부모님과 형, 여동생이 생각났다.

부부 교사이던 부모님의 보호 아래 유복하게 컸던 옛날 생각에 가슴이 쑤시듯이 아팠다.

형과 여동생과 같이 아웅다웅하면서 살았던 부모님이 계신 부산 고향 집 생각에 눈물이 났다.

고1 때 키가 180이 넘고 얼굴도 그럴듯하게 생겼기에 등하굣길이나 부산 서면에서 여러 모델에이전시의 픽업을 받고 헛바람이 들었던 일과,

서울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큰 탑 에이전시와의 계약과 군대에 가지 않기 위해 부모님의 반대에도 고등학교를 자퇴한 일.

모델 일을 위해 서울에 올라와 1년차 치고는 빠르게 서울패션워크에 섰던 일, 5년 차로 어느 정도 지명도를 얻었을 때 연상의 유부녀 오너 디자이너와 바람이 난 일로 패션 쪽에서 매장되어 모델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일...

그래도, 화려하게 살기 위해서 배우가 되기 위해 방송가를 기웃거리다 내가 의외로 노래를 잘 부른다는 걸 알고 있던 무대 감독님의 제안으로 뮤지컬 오디션을 본 일.

184의 키와 얼굴 덕분에 발성의 기본도 안된 내가 뮤지컬 무대에서 라이징 스타로 불리며, 여러 조연을 연기하며 뮤지컬연기자로 여러 무대에서 즐거웠던 기억들...

젊은 혈기에 술과 담배, 절제하지 못하는 삶을 살다 성대결절로 내 목소리를 잃어버린 일...

그리고 다정했던 이들의 배신...

죽음의 나락에서 나를 살려주고 이제는 남은 인생을 함께할 ‘이지현’과의 만남.

이 모든 일이 한순간의 꿈처럼 내 머리와 가슴을 스쳐 지나갔다.

건널목에 서서 캐리어 가방을 두고 전화기를 꺼내었다.

오디션 동안 꺼두었던 전화기에는 지현이의 잘 되었냐는 카톡이 와 있었지만, 막상 지현이의 목소리를 들을 자신이 없어 애써 무시했다.

[뚜르르르루~ 뚜르르르루~ 뚜르르르루~ 딸칵]

“그래, 소원아!”

“네, 엄마 저에요. 이번에도 잘 안되어서 이제 그냥 부산 내려가려고요.

네, 네. 이제 이쪽 생활 접고, 성실하게 기술 배울게요. 저도 이제 일반사람들처럼 살게요. 헛된 꿈 꾼다고 인생 낭비해서 죄송해요....엄마, 그리고 미안해요....”

가면싱어 오디션에서 떨어진 상실감과 몇 개월 만에 통화하며 듣는 ‘다 괜찮다’는 엄마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한참을 서서 울었다.

눈물이 나니 눈치 없이 콧물도 따라 흘렀다.

흐르는 콧물을 닦기 위해 캐리어에서 티슈를 꺼낸다고 고개를 숙이느라 건너편에서 급하게 오는 SUV를 보지 못했다.

“어...어...어 차가 왜 이래! 브레이크가 안 들어, 시발! 급발진이다. 어 어어...비켜...안돼...”

[퉁투둑! 콰콱쾅!]

“아이고 사람 치었다. 누가 빨리 119에 신고 좀 해.

운전자도 다쳤는지 안 움직이네, 벽 받고도 계속 엔진이 돌고 있다. 이게 말로만 듣던 급발진이야?”

“헐, 사고 난 사람이 젊은 아재였던 것 같은데 안타깝네, 불쌍해서 어떻게 해....죽었는지 안 움직인다. 우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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