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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진료소-146화 (146/175)

146화 공개 진료 (6)

아레스 공작이 진료를 받게 될 곳은 평소 연회장으로 사용되던 곳이었다. 많은 학생들이 참관을 하기 때문에 넓은 장소가 필요했다.

테이블과 장식품으로 꾸며져 있던 연회장은 쓸쓸한 느낌이 들 정도로 텅 비었다. 대신 준이 미리 준비시킨 의료기구가 들어서 있었다.

개중엔 환자의 몸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스캐너도 있었다.

왕립 병원에서 빌려온 스캐너는 마법공학 기술이 접목된 만큼 우수한 품질을 자랑하지만, 준이 만든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었다.

애초에 카이젤 드라케의 유품으로 만든 것과 차이가 없다면 이상하겠지만 말이다.

“공작 각하는?”

“환복 중이십니다. 곧 오실 겁니다.”

준은 일렬로 늘어선 학생들의 앞에 섰다. 그리고 엄숙히 말했다.

“잠시 주목. 다들 공개 진료는 처음일 거라고 생각한다. 의학의 발전이라는 명분이 있긴 하지만, 환자의 사생활이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되지. 즉, 환자는 많은 것을 감수하고 너희들에게 경험적 지식을 전파하려는 것이다. 그 점을 잊지 말고 최대한의 예를 갖추도록.”

“알겠습니다.”

모두가 한목소리로 말했다.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준이 몸을 돌렸다. 때마침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아레스 공작이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생각보다 많이들 모였군. 막상 이렇게 모여 있으니 긴장되는데.”

“불편하시다면 지금이라도 물리셔도 됩니다.”

“사내가 한 입으로 두말하면 곤란하지. 다들 의학부 학생들인가?”

“아닙니다. 다른 학부의 학생들도 섞여 있습니다.”

“다른 학부도?”

아레스 공작은 의아한 눈으로 준을 바라보았지만, 그는 의미심장한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왜냐고 묻지 않았다. 다 뜻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아레스 공작은 준을 완전히 신뢰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안 된다고 말할 때, 가능하다고 말해준 유일한 치유사였으니까.

“그럼 이제 시작하지. 난 뭘 하면 되나?”

“우선 약을 조제할 생각입니다. 배합이 끝나고 약을 달이려면 시간이 걸리니까, 그때 각하를 진찰하며 학생들에게 설명할 계획입니다. 잠시 기다려 주시지요.”

“뭐, 좋네. 기다리는 동안 차 한잔해도 되나?”

“투약 전에는 아무것도 드시지 않는 게 좋습니다.”

“몰래 마시고 올 걸 그랬군.”

혀를 찬 아레스 공작은 자리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준이 학생들 쪽으로 돌아섰다.

“지금부터 약초 배합을 시작할 거다. 질문 사항이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손을 들고 이야기하도록.”

준이 약초 배합 기구가 놓인 쪽으로 걸어가자 학생들도 따라 움직였다. 그곳엔 아그네스가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준이 아그네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소개가 늦었군. 이쪽은 아그네스 선생이다. 왕립 병원에서 치유사로 일하고 있지. 올해로 열아홉 살. 최연소 기록은 깨지 못했지만, 천재성을 입증하기엔 충분한 나이지. 잘 보고 배우도록 해.”

“안녕하세요.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천재성이라는 말에 깜짝 놀랐지만, 여러 학생들이 건네는 인사를 받아 주느라 당황할 틈이 없었다. 아그네스는 어색히 웃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아그네스예요. 강준 교수님과 함께 이번 진료에 참여하게 됐어요. 잘 부탁해요.”

한편으로는 뿌듯하기도 했다.

아카데미 출신도 아니고, 시골 마을에서 약초나 캐던 처지였는데 우수한 학생들에게 선배 대접을 받으니 마음이 설렜던 것이다.

우월한 지위를 차지해서가 아니었다.

오로지 하나.

지금까지의 노력과 시련이 헛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자, 그럼 아그네스 선생. 약초 배합을 시작하지.”

“예.”

아그네스가 약초꾸러미에서 약초를 꺼내 테이블에 늘어놓았다. 긴 테이블이라 약초를 따로따로 놓았고, 하나씩 자세히 살펴볼 수 있게 했다.

주변이 고요해졌다. 이제 진짜 공개 진료가 시작된 것이다.

그때, 알프하이겐 가문의 주치의가 나섰다.

“강준 교수. 시작하기 전에 약초를 한번 확인해 봐도 괜찮겠소?”

혹시나 독극물이 섞여 있을 것을 대비한 처사였다. 그 뒤로 알프하이겐 가문의 장남과 차남이 팔짱을 끼고 쳐다보고 있었다.

“얼마든지 확인해 보시지요.”

가문의 주치의는 장갑을 낀 채로 조심스레 약초를 만졌다.

곧 그의 눈빛이 번뜩였다.

손끝에서 강력한 저항감이 들었던 것이다.

“가만. 이게 대체…….”

“무슨 문제라도?”

“아니. 그게 아니고. 약초가 상당히…… 아니 엄청나게 신선하군.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아서. 게다가 이 저항감은 뭐지?”

준에게 적대감을 가진 주치의였다. 그 때문에 자신이 문책을 받고 있으니까.

하지만 눈 앞에 펼쳐진 놀라운 광경은 그런 악감정조차 희미하게 만들었다.

그만큼 테이블에 늘어선 약초는 놀랍도록 신선했다.

“마법! 그래. 마법이 걸려 있군. 그것도 최상급의 보존 마법이.”

주치의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몇 번 휘저었다. 그리고 준을 매섭게 바라보았다.

“대체 당신은 뭐 하는 사람이오?”

“그 정도 실력은 있어야 아카데미의 교수 자격이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왕국의 미래를 책임질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니까요.”

“허…….”

주치의는 할 말을 잃었다. 반면 학생들은 상기된 표정으로 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한마디가 의학부 학생이라는 자부심을 느끼게 했다.

동시에 청원서에 서명을 하고, 수강 철회를 한 자신의 행동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이렇게 실력이 좋은 치유사에게 배울 수 없다면 대체 누구에게 배워야 한단 말인가.

그런 당연한 의문이 퍼져 나가고 있었다.

준은 멍하니 약초를 바라보기만 하고 있는 주치의를 향해 따갑게 물었다.

“검사는 끝나셨습니까?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만.”

“이상은 없는 것 같군.”

주치의가 물러서자 준이 다시 무대에 섰다. 실력 있는 치유사들의 기 싸움을 흥미진진하게 바라보던 학생들이 다시 집중했다.

“뜻하지 않게 시간을 허비해서 미안하네. 다시 시작하지. 약초 배합의 핵심은 신선도에 달려 있다. 크게 두 가지.”

준은 손가락 두 개를 하나씩 접으며 설명을 이어 나갔다. 모든 학생들이 숨소리를 죽이며 집중했다.

“약초를 채집할 때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을 조제하기 전까지 신선하게 보관하는 것이 핵심이다. 여기 있는 약초들은 그 두 가지 원칙을 철저히 지킨 것들이지. 가까이 와서 자세히 살펴보도록. 만지지는 말고.”

마치 그 소리를 기다렸다는 듯 학생들이 달려들었다. 한 발자국 물러선 거리에서 머리를 내밀었다. 여러 번 봐 왔던 흔한 약초들이었지만, 이렇게 신선하게 보존된 것은 처음이었다.

그때, 학생 하나가 손을 들었다.

“교수님. 이게 이번 치료제에 들어가는 약초의 전부입니까?”

“그래. 이게 전부다.”

“기존 아일라스식 항암제와 특별히 다를 게 없는 것 같은데요. 금장미가 추가된 것 외에는요. 금장미에 어떤 알려지지 않은 효능이 있는 겁니까?”

“좋은 질문이군.”

준의 칭찬에 학생은 미소를 지었다. 사실 대부분 궁금하던 것이었지만, 이렇게 입 밖으로 질문을 꺼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니까.

“금장미는 독소 해독에 탁월한 효능이 있다. 최상급의 금장미를 더해 약효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게 목표지. 큰 틀에서 다른 건 없다고 봐도 된다. 약재 하나가 추가된 것과 신선도로 승부를 보는 거니까.”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았다. 과연 약초를 하나 더하고 신선도를 극도로 끌어올린다고 해서 ‘신약’이라고 불릴 정도의 가치가 있는지를.

준은 표정만 봐도 그런 궁금증을 알 수 있었다.

“자네들이 품은 의문은 내가 사전에 공지한 새로운 치료법으로 해소될 거야.”

“어떤 방식으로 치료할 계획이십니까?”

“아일라스식 항암제는 정상 조직도 상하게 한다는 단점이 있다. 경우에 따라선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지. 하지만 내가 고안한 새로운 방법은 그 부작용을 없애 버릴 거다.”

“말도 안 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잠시 후에 확인하도록 하지.”

준은 여유 있게 웃으며 약초 배합을 시작했다.

배합이 끝난 약초는 아그네스가 꼼꼼히 달였다. 그 사이 준은 한옆에 놓인 칠판으로 자리를 옮겼다. 사람의 신체도와 주요 장기들이 그려져 있었다.

준은 빨간 분필로 암이 퍼져 있는 조직에 표시를 했다.

“보다시피 공작 각하의 암은 전신에 퍼져 있다. 폐와 간에 전이가 되었다면 말기라고 봐도 무방하지.”

준은 뺨에서 화살표를 그어 위와 간, 그리고 폐에 연결시켰다.

“뺨에 난 악성 흑색종이 이렇게 먼 곳에 위치한 장기까지 전이시켰다. 이런 경우를 원격 전이라고 한다. 치료가 불가능한 단계지. 하지만 여기서 발상을 조금 바꾸면 재미있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학생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의견을 교환했다. 준은 뒷짐을 진 채 잠시 기다려 주었다. 어떤 아이디어를 내는지 지켜보았다.

아무런 의견이 없자 준이 말했다.

“암 조직 자체는 크게 위험하지 않다. 문제는 암 조직이 점점 커져서 장기의 기능을 방해하는 데 있지. 즉, 암의 전이와 증식을 억제하기만 해도 환자는 일상생활을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작 각하의 연세와 기대수명을 고려해 본다면 나쁘지 않은 방법이지.”

“잠깐 언급하신 새로운 치료 방법이라는 게 그것과 연관이 있는 겁니까?”

“그래. 암 치료에서 환자의 체력은 매우 중요한 척도가 된다. 부작용을 최소화한다면 체력의 손실도 줄일 수 있지. 그럼 이제 눈으로 확인해 볼까?”

준은 스캐너가 준비된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레스 공작은 차분한 표정으로 자리에 누워 있었다.

씁쓸한 약의 향기가 풍겨오기 시작했다. 준은 아그네스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려 보았다. 별문제 없다는 신호였다.

“영상을 잘 보고 암 조직을 판별하도록.”

준은 스캐너를 조작해 아레스 공작의 암 조직을 모두 영상에 띄웠다. 학생들은 매서운 눈으로 필기를 하거나 준에게 질문을 던졌다.

하나하나가 소중한 기회였다. 그리고 준은 그 기회를 충분히 활용하게끔 도와주었다.

그렇게 질의응답은 계속 이어졌다.

준이 다른 교수들과 조금 다르다는 것을 깨달은 학생들은 서슴없이 질문을 던졌다. 그것도 모르냐는 비난이 날아올 법한 질문도 준은 친절하게 대답을 해 주었다.

개념의 이해가 다시 필요한 부분은 기초부터 차근차근 다시 짚어 주었다.

그러는 사이, 학생들이 준에게 품었던 의구심은 완전히 해소되었다.

몇몇 학생들은 돌아가는 즉시 청원서 서명을 철회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뒤였다.

“교수님. 약이 모두 준비되었어요.”

아그네스가 사발에 담긴 약을 가져왔다. 그녀는 냉기를 일으켜 먹기 좋은 온도로 맞췄다.

준이 약을 받아들고 아레스 공작에게 그것을 마시게 했다.

공작은 인상 하나 찌푸리지 않고 약을 단번에 들이켰다.

“잘하셨습니다. 이제 잠시 누워 주시지요.”

공작이 눕자 준이 손을 뻗어 마나를 일으켰다. 그 상태로 학생들을 돌아보며 설명을 했다.

“이제 새로운 치료 방법을 보여 줄 차례군. 모두 눈 크게 뜨고 잘 지켜보도록 해.”

준의 손에서 뿜어진 새하얀 빛이 공작의 몸에 흡수되기 시작했다. 마나가 흡수된 곳은 공작의 암 조직이 위치한 곳이었다.

학생들은 필기하는 것도 잊고 홀린 듯한 눈으로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마나로 암 조직을 없애는 건 불가능하지만, 약효를 특정 부위에 집중시킬 수는 있다. 그게 내가 고안한 새로운 치료법이다.”

“오오!”

학생들이 감탄을 흘렸다. 뒤에서 지켜보던 가문의 주치의는 망연자실한 표정이다. 그것만 보더라도 준의 치료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어느새 준은 나머지 한 손도 거들어 치료에 집중하고 있었다.

“으으음.”

공작이 나직한 신음을 흘렸다.

“어디 불편하십니까?”

“아니. 오히려 상쾌한 느낌이 드는군. 불편하던 속이 가라앉고, 기침이 나올 듯 간질간질한 느낌도 없어지고.”

“치료가 잘되고 있는 모양이군요.”

“과연?”

피식 웃은 공작은 다시 눈을 감았다. 준은 다시 치료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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