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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진료소-97화 (97/175)

97화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찾는다 (2)

“신축 진료소 공사도 마무리되었으니, 슬슬 의약품 사업을 본격적으로 전개해 볼까 합니다.”

알파는 화제를 슬쩍 돌렸다.

지금은 무슨 말을 하든 좋은 결론이 나오진 않을 것 같았다. 분위기를 다시 환기시킨 후에 금광에 대한 건으로 넘어가리라 생각했다.

준이 차를 홀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공사가 끝났으니 계약서에 적힌 내용대로 계약을 이행해야겠지요. 그런데 그 전에 내용을 좀 조정했으면 합니다만.”

“계약서의 조항을 바꾸고 싶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난감하군요.”

알파가 사무적으로 대꾸했다. 계약서의 내용은 함부로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준은 너무나 쉽게 제안하고 있었다.

준이 말했다.

“당초 상비약을 우리 누아 마을에서 제조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이쪽을 아예 마이더스 상단에 위임하고 싶군요. 저는 조제법만 넘기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누아 진료소가 가져가는 수익이 적어질 텐데요? 저희가 제조를 대행하게 되면 그만큼 수수료가 더 붙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제가 수익을 걱정할 때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게 반문한 준은 씨익 웃었다.

알파는 그 웃음이 나올 수 있는 배경이 무엇인지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바로 대규모 금광.

한때 상비약은 각광받는 사업이었지만, 이제 준의 입장에서 그런 건 손만 많이 가는 사업이 되어 버렸다. 차라리 그 역량을 금광 채굴에 집중한다면 더욱 큰 수익을 얻을 수 있으니까.

“흐음. 확실히 영주님의 말씀도 일리가 있습니다. 지금은 금광 사업이 훨씬 더 가치가 있겠지요.”

“아닙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전 상비약 사업에 더 집중하고 싶습니다. 인간의 삶의 질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건 역시 의약품 사업이 아닐까 해서.”

“그렇다면 다행입니다만…….”

“하하하. 지부장님 말씀을 들어 보니 전 그리 신뢰받지 못하는 사람이었나 보군요.”

“그건 아닙니다. 오해를 하시는군요. 장사를 하다 보면 으레 생기는 그런 걱정들이라고 할까. 그러니 신경 쓰실 거 없습니다.”

알파는 여전히 의심을 지우지 못한 눈으로 준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믿음을 줄 필요가 있어 보였다.

준은 고개를 돌려 릴리에게 손짓했다.

“주인님. 부르셨어용?”

“내 진료실 책상 서랍에 갈색 대봉투가 있을 거야. 그것 좀 갖다 줘.”

“넹.”

고개를 꾸벅 숙인 릴리가 물러났다. 잠시 후 그녀가 커다란 대봉투를 들고 다시 응접실에 나타났다. 알파의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대체 저기에 무엇이 들어 있을까.

가정용 상비약을 만들어 켈세타 일대를 깜짝 놀라게 만든 주인공이었다. 게다가 최근엔 금광 개발을 빠르게 성공시켜 이목이 집중되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준의 일거수일투족에 기대와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준이 봉투에 손을 넣고 서류 더미를 꺼냈다. 그리고 서류를 바로 알파에게 넘겼다.

“한번 살펴보십시오.”

“잠시 실례를.”

서류를 받아 든 알파는 빠르게 그것을 살폈다.

읽으면 읽을수록 그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서류의 중반을 넘어서자 그의 표정엔 놀라움이 묻어나 있었다.

마지막 장을 넘긴 알파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올해 들어 제가 본 것들 중 가장 재미있는 서류로군요.”

그가 조용히 준을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꺼내고 싶은데 단어가 쉽게 골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서로를 바라본 채 시간만 흘렀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제가 치유학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아서 그러는데 이렇게 쉽게 다른 종류의 상비약을 금방 개발할 수 있는 겁니까? 위장약에 연고형 상처 치료제까지 추가됐군요.”

준이 넘긴 서류엔 위염 등 위장 질환에 효능이 있는 상비약과, 작은 상처가 났을 때 쉽게 치료할 수 있는 연고형 치료제가 들어가 있었다.

위장 쪽 상비약은 이미 예전부터 만들 생각을 가지고 있던 것이고, 연고형 치료제는 응급처치 키트에 영감을 받아 하위 버전으로 만들었다.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되고 있는 것이었지만, 내막을 모르는 알파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최근 의약품 사업이 각광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신약을 개발하는 것에 시간이 많이 들다 보니 결과가 대단히 늦게 나오는 편이었다. 게다가 모든 사업이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준은 종합감기약에 이어 새로운 약품의 조제법을 두 개나 바로 만들어 낸 것이다.

“정말 놀랍습니다.”

“저희 진료소에는 우수한 인재들이 많으니까요. 아무튼 지부장님께서 놀랍다는 이야기를 하실 정도면 충분히 사업성이 있는 거라고 이해해도 괜찮겠지요?”

“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군요.”

“그럼 바로 생산에 착수해 주시지요.”

“그러겠습니다.”

서류를 가방에 넣으며 알파는 준의 혜안에 감탄했다.

조제법만 넘기는 것이 금광 때문이 아니라는 말을 이젠 믿을 수 있었다.

새로운 상비약이 두 개나 추가되었다면, 이곳에 생산시설을 만드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규모가 더 큰 기성 시설을 사용해야 한다.

고집을 부려 이쪽에서 생산시설을 만들고 약을 제조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시일도 오래 걸리고 예상 수익도 줄어들 것이다.

‘설마…… 이 모든 것을 계산한 것인가?’

알파는 순간 오한을 느꼈다. 눈앞의 사내에 대한 평가를 다시 내려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그는 프로였다.

평정을 되찾은 그는 찻잔을 비우고 그것을 테이블 위에 여유롭게 내려놓았다.

“이제 좀 다른 이야기를 해 보실까요?”

“얼마든지요.”

“단도직입적으로 여쭙겠습니다. 필로스 상단과 금광 관련 사업에 대해 이야기를 하셨다는데, 어떤 이야기를 하고 계신 건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글쎄요. 아무래도 사업 이야기다 보니 이해관계에 있는 분께 말씀드리기엔 필로스 상단 분들께 실례가 되는 게 아닌지 조심스럽군요.”

“저희도 자체 정보망을 가동하면 알아낼 수 있습니다. 수고를 덜고자 부탁드리는 거지요.”

준은 턱을 괴고 잠시 고민하는 척했다.

사실 이 모든 것은 연기였다.

그는 최대한 알파를 달뜨게 할 생각이었다.

“그전에 제 궁금증을 하나 해결해 주신다면.”

“무엇인지요?”

“마이더스 상단에서도 제 금광에 관심이 있는 겁니까?”

“물론이지요. 우리 상단만일까요? 아마 이름 있는 모든 상단에서 영주께 접촉을 할 겁니다. 시간문제지요.”

금광은 최고의 이권 사업이었다. 상단뿐만 아니라 각종 사업체에서 연락이 올 가능성이 컸다. 아직 소문이 널리 퍼지지 않았을 뿐.

준이 결정을 내린 듯 한숨을 내쉬었다.

“지부장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시니 어쩔 수 없군요. 말씀드리지요. 필로스 상단과는 금괴와 금광석 유통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와 독점 공급 계약을 맺고 싶어 하지요. 아직 몇 번 만나지 않아서 구체적인 논의는 되고 있지 않습니다.”

“역시.”

알파는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듣기로 이곳에 제련시설이 있다고 하던데. 금광석을 그대로 넘기시려는 겁니까?”

“생산량을 따라가지 못할 가능성도 있으니까 일부는 그렇게 해야 할 듯합니다.”

알파는 턱을 쓸어 만졌다. 이 정도까지 이야기가 되었다면 구체적인 계약 조건이 오갔을 가능성이 크다.

‘필로스 놈들. 얼마나 베팅을 한 거지?’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준이 소유한 금광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은 탓이다. 이럴 때는 직감이 최고였는데, 알파의 마음은 조급했다.

“앞으로 엘누아르 가문과는 파트너 관계로 일을 계속하고 싶군요. 상비약 사업은 성공이 분명합니다. 제가 보증하지요. 여기에 금광과 귀금속 사업까지 더한다면 서로에게 아주 큰 이익이 될 겁니다.”

“저도 그런 생각을 잠깐 했었습니다. 확실히 거래하던 상단에서 사업을 이어 간다면 좋은 점이 분명 있겠지요.”

준의 말에 알파의 표정이 한결 풀렸다. 하지만 준은 평소처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다음 주까지 구체적인 계약 조건을 명시해서 계약서를 한 부 보내 주십시오. 검토 후 따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썩 좋지는 않은 요구였다. 상단끼리 계약 조건을 놓고 비공개 경쟁을 시킨다는 말이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서둘러 돌아가서 다른 상단의 동향과 계약 조건을 조사한 후에 합리적인 조건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조사 자체에도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리하지요. 조만간 전령을 보내겠습니다.”

“벌써 가시려는 겁니까?”

“그래야지요. 영주께 만족을 드리려면 당분간 철야를 해야 할 듯해서.”

농담조로 얘기했지만 그것은 진담이었다. 준은 먼 길을 찾아온 그를 직접 배웅했다.

그런데 그때 묘한 감각이 준을 자극했다.

‘이건 분명…….’

떠나가는 마차에서 눈을 떼고 그 기묘한 감각이 이끄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분명 마을 쪽이었다. 준의 두 눈이 한없이 깊어지고 있었다.

* * *

호프만의 주점 겸 여관인 ‘호밀밭의 파수꾼’은 오랜만에 한산했다. 그 와중에 낯선 남녀 한 쌍이 구석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남자는 건장한 체격에 검까지 착용하고 있어 흔한 모험가처럼 보였지만, 사실 그는 사우던 가문의 제2기사단장인 사이먼이었다.

예전의 얼굴과는 판이한 외형.

그는 눈앞에 앉아 있는 젊은 여마법사가 만들어 준 특별한 인피면구를 착용하고 있어서 아무도 그가 사이먼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언제 작전을 시작할 생각이죠?”

여마법사가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사이먼은 그녀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백작의 명령이 있었기에 꾹 참고 임무에 집중했다.

“일단 오늘 정찰을 나가 봐야지.”

“계획은?”

“당분간은 멀리서 지켜보는 정도로 분위기를 탐색한다. 우리의 직업은 보물 사냥꾼으로 하고. 그래야 의심을 받아도 쉽게 오해를 풀 수 있을 게야.”

“설마 모습을 드러낸 채로 광산과 창고를 둘러보려는 건 아니죠?”

“멀리서 지켜보는 건 상관없을 거야. 마침 근처에서 깊은 동굴을 하나 찾았다. 그곳 근방을 수색하는 척하며 동향을 살펴보자고.”

“그러죠.”

그렇게 결론이 나왔지만 여마법사 기린은 짜증스럽게 인상을 찌푸렸다. 사이먼은 그게 싫었다. 대체 뭐가 저렇게 불만이 많단 말인가.

“왜 그렇게 인상을 쓰지?”

“좀 신경 쓰이는 게 있어서.”

“뭔데?”

“엘누아르 가문에 마법사가 하나 있다고 들었어요. 이런 궁벽한 영지에 마법사가 있을 줄은…….”

“그래 봐야 수준 낮은 놈이겠지. 5서클에 도달한 마법사가 할 만한 걱정은 아니지 않나?”

대수롭지 않게 대꾸한 사이먼이 맥주를 한 번에 다 털어 넣었다.

먼 동방에서 온 기린은 촉망받는 마법사였다. 이렇게 젊은 나이에 5서클에 도달했다는 건 그만큼 재능이 있다는 말이었으니까.

하지만 기린은 뭔가 계속 불안했다. 누아 마을에 온 이후로 마나 서클이 미약한 진동을 울렸던 것이다.

“주인장! 여기 맥주 하나 더!”

그 사이 사이먼이 맥주를 한 잔 더 시켰다.

그 모습을 본 기린의 표정이 한층 더 일그러졌다.

“오늘 정찰을 나간다면서 왜 그렇게 술을 퍼마시는 거죠?”

“적당한 취기는 전투에 도움이 되거든.”

“방심은 필패의 지름길이죠.”

“젠장할! 원래 마법사들은 그렇게 성격에 모가 나 있나?”

순간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추가로 주문한 맥주를 준비하던 호프만이 깜짝 놀라 잔을 놓칠 정도로.

“글쎄요?”

“불평불만은 속으로 삭여라. 망할 입을 부숴 버리기 전에.”

“꼭 그렇게 말을 해야 하나요?”

“백작 각하의 명을 잊었나? 리더는 나다.”

기린의 눈에서 순간 살기가 일었지만, 그건 아주 잠깐이었다. 사이먼도 기사단장급 기사였다. 아무리 자신이 5서클 마법사라고 해도, 막상 전투가 시작되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사이먼도 마나 유저였으니까.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드뇌르 백작과의 관계였다. 어떻게든 끈을 유지해 요직에 진출하고 싶었다.

“알았어요. 조심하죠.”

“쯧. 진작 그럴 것이지.”

그제야 맥주가 준비되었다. 호프만을 무섭게 째려본 사이먼이 잔을 들고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딸랑!

그때,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왔다.

“컥! 쿨럭! 쿨럭!”

사이먼은 하마터면 마시던 맥주를 뿜을 뻔했다.

술집 안으로 들어온 누군가와 시선이 마주쳤는데, 그가 바로 준이었기 때문이다. 그 뒤로 릴리가 따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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