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진료소-82화 (82/175)

82화 세금 징수 (1)

폴링은 당연히 호기심을 보였다.

그것은 사우던 가문을 향한 충성심과는 다른 것이었다. 가문을 떠나지 않더라도 준이 추진하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도울 수 있다. 드뇌르 백작이 그러라 지시했으니까.

“좋은 자리라 하시면?”

“금광을 개발해 볼까 합니다. 채광은 물론 제련까지 한 번에 할 수 있는 시설을 조성해 보려고요.”

“금광을요?”

폴링이 깜짝 놀라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곧 그는 입을 가리며 소리를 죽였다. 남이 들어서 좋을 만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남작님. 금광은 그렇게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자칫하다간 가산을 탕진하기가 쉽지요. 실제로 그렇게 몰락한 가문들도 많고요.”

“어찌 제가 그걸 모르겠습니까? 다 계획이 있으니 폴링 씨에게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거겠지요.”

“하긴, 남작님께서 그렇게 생각 없이 사업을 펼칠 분은 아니시긴 하지요.”

폴링의 생각이 깊어졌다. 지금까지 겪어본 준이라는 사내는 진중하면서도 사려가 깊었다. 허풍과는 전혀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남작위를 받고 엘누아르의 지배자가 되었다고 자만심이 생긴 것은 아니리라.

폴링이 다시 입을 열었다.

“실례이긴 합니다만, 그렇게 확신하시는 이유를 들을 수 있겠습니까?”

“직접 한번 확인해 보시지요.”

준은 일전에 채취한 금광석 샘플 중 작은 조각을 품에서 꺼내 폴링에게 건넸다. 그것을 확인한 폴링은 어깨를 들썩일 정도로 깜짝 놀랐다.

“오오! 이것은!”

지질학을 공부한 적이 있던 그는 그 광석이 무엇인지 대번에 알아챘다.

“이렇게 순도가 높은 금광석은 오랜만이군요! 설마 금맥을 발견하신 겁니까?”

“정말 운이 좋았죠. 가능하면 폴링 씨가 이번 채굴 사업을 지휘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매장량도 측정을 좀 하고 싶군요.”

“이거 정말 아쉽지만 당장은 어렵습니다. 진료소 건축이 슬슬 궤도에 들어서서 관리 감독을 더욱 철저하게 해야 하거든요.”

“급한 일은 아닙니다. 건축 일이 마무리되면 이쪽으로 합류하시죠. 그 정도는 충분히 기다릴 수 있습니다.”

“정말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폴링 씨가 비밀만 잘 지켜 주신다면야.”

어차피 소문이 나도 크게 상관은 없었다. 입구를 모두 통제해 놨기에 준이 아니라면 금광을 발견할 수 없다.

그리고 바로 채굴에 들어가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충분히 시간을 둬야 백작의 의심을 피할 수 있었다.

폴링이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다면 꼭 하고 싶습니다! 엘누아르 가문의 역사에 첫 페이지를 장식할 멋진 사업이 되겠군요. 저에게 그 기회를 주시다니 정말 감격스럽습니다!”

“준비가 되시면 우리 가문의 서기관에게 말씀을 해 주십시오.”

“오, 서기관께서 새로 오셨습니까? 인사를 드리지 못했는데. 어떤 분이 서기관직을 맡으셨습니까?”

“새로 온 건 아니고, 아그네스에게 서기관직을 맡겼습니다. 기왕 말이 나온 김에 가신으로 임명된 사람들에 대해 말씀을 드리는 게 좋겠군요.”

준은 엘누아르 가문의 가신들을 누구로 삼았는지 빠짐없이 폴링에게 말했다. 폴링은 금광을 발견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와 비슷한 수준으로 놀랐다.

스무 살도 되지 않은 시골 아이들이 한 가문의 중대사를 맡게 되었다는 게 너무나 파격적이었기 때문이다.

바이런이 기사단장직을 맡게 되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납득하기가 어려웠다.

“아니, 남작님. 그렇게 인선을 하셔도 되는 겁니까? 특히 서기관직은 경험이 풍부한 자로 임명을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만…….”

“하하하. 어떤 말씀인지 압니다. 하지만 한번 느긋하게 지켜보십시오. 녀석들이 어떻게 일을 처리해나가는지.”

“역시 뭔가 노림수가 있으신 거군요. 이거 호칭 정리를 다시 해야겠습니다.”

폴링이 허탈하게 웃었다.

자신은 일반 사무관이었고, 한참 어린 아그네스와 마리, 하룬은 준남작급 귀족이 되었다. 이제 그들에게 하대를 해서는 안 된다.

“크게 변하는 건 없을 겁니다. 녀석들을 가신으로 삼은 건 다른 이유도 있었기 때문이지요.”

“다른 이유요?”

“보통은 지위가 변하면 사람도 변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녀석들은 그러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지요. 많이 실수하고 좌절하겠지만 꽤 재미있는 영지가 될 겁니다.”

폴링은 고개를 끄덕였다. 준이 만들려는 영지가 어떤 것인지 대강 감이 왔다.

그렇다 보니, 준의 그릇이 더욱 크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담지 못할 게 과연 있을까?

폴링은 처음으로 사우던 가문에서 진행하는 사업보다 준이 제안한 사업에 더 매료되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작님.”

폴링의 목소리가 조금 변했다. 원래 정직하고 바른 느낌의 목소리였지만, 이제는 충직함까지 묻어나 있었다.

준이 기다리고 있던 변화였다.

“말씀하시지요.”

“광산 사업은 준비 작업에 시간이 꽤 많이 소요됩니다. 인력도 많이 필요하고요. 틈틈이 구상해서 보고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얼마든지요. 저녁에는 늘 한가하니 아무 때나 찾아오십시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준은 악수를 청했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그런 의미가 담겨 있는 행동이었다. 폴링은 두 손으로 공손히 악수를 받았다.

그렇게 누아 마을 광산 사업의 첫 단추가 제대로 끼워졌다.

* * *

진료가 끝나자마자 기사단장 바이런이 진료소를 찾았다. 망토를 휘날리는 그 모습이 아직은 생경했지만 보기는 좋았다.

“주군. 잠시 시간 괜찮으십니까?”

“마침 진료가 모두 끝났군요. 앉으시죠.”

하지만 바이런은 자리에 앉지 않았다. 격식을 차린 채 보고를 시작했다.

“자경단의 개편이 모두 끝났습니다. 툴리앙, 알렉스, 배런 이 세 인원을 기사로 승격시키고 나머지를 견습 기사로 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와 하룬을 포함해 기사는 총 다섯 명이 되는 셈이지요.”

“그렇게 하시죠.”

준은 책상을 정리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과연 제대로 듣긴 한 건지 궁금할 정도였다. 그래서 바이런이 조심스레 물었다.

“너무 쉽게 결정하시는 것 아닐까요?”

“기사단의 운영은 단장의 고유 권한입니다. 저는 참고만 할 생각입니다. 운영은 지금처럼 알아서 해 주시길.”

“하지만…….”

“진료소에 환자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습니다. 카누 씨는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으시고. 무슨 말씀인지 아시겠지요?”

준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바이런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귀찮아하는 게 아니었다. 진료소를 찾은 환자들에게 우선순위를 두겠다는 말이었다.

그가 엘누아르의 지배자가 된 이후로 마을이 급격하게 바뀌고 있었다.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쳐흘렀다. 그 모든 것이 준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과연 그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문득 그런 궁금증이 들었다.

처음엔 그저 머리가 좋고 검도 제법 쓸 줄 아는 괴짜 치유사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숨기고 있는 게 한가득 있어 보였다.

“잘 알겠습니다. 주군. 앞으로는 간단히 보고만 올리도록 하지요.”

“참, 식사는 하셨습니까?”

“아직입니다.”

“마침 잘됐군요. 오신 김에 같이 저녁이나 드시죠. 아그네스가 솜씨 발휘를 한다고 하니까.”

“명을 받듭니다.”

바이런이 군례를 취했다. 밥을 같이 먹자는 것에도 이렇게 딱딱하게 나오니 준은 숨이 막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래도 이야기를 해야겠다.

“그리고 오해하지 말고 들어주셨으면 좋겠는데. 저를 너무 딱딱하게 대할 필요는 없습니다. 전 누아 마을의 허물없고 정이 넘치는 전통을 계승할 생각이니까요.”

“그럴 순 없습니다. 무릇 기사란 예법에 충실해야 하는 법이지요.”

“부하들 몸 하나 편하게 못 해 주는 주인이 무슨 주인입니까?”

그 정도로 세게 나오면 말귀를 알아들어야 하는데, 바이런은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았다.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한숨을 내쉰 준이 화제를 돌렸다.

“아무튼 광산 사업은 준비가 거의 끝났습니다. 적당한 책임자를 찾았습니다.”

“누구인지 여쭤도 될는지요?”

“사우던 가문의 사무관인 폴링 씨입니다. 우리 신축 진료소 현장을 맡고 계시기도 하지요.”

“사우던 가문의 사람이라면 좀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금광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이 계획보다 빠르게 드뇌르 백작의 귀에 들어가는 것을 경계해야 했다. 준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믿을 만한 사람입니다. 설령 소문이 퍼진다고 해도 금광의 위치를 모르는 이상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할 겁니다. 오히려 거짓을 고했다는 누명을 쓸 테니까.”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신축 진료소 공사가 거의 마무리되면 광산 사업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때라면 백작도 크게 의심하지 않을 테지요.”

그때, 저녁 식사 준비가 모두 끝났다는 목소리가 들렸다. 준과 바이런은 식당으로 움직였다.

먹기 좋게 익은 족발과 스튜, 그리고 호프만의 가게에서 얻어 온 빵이 잔뜩 놓여 있었다. 이 정도면 호화로운 만찬이라 할 수 있었다.

준은 족발의 상태를 확인했다. 색깔과 향이 좋았다. 얼마 전에 아그네스에게 조리법을 살짝 알려줬는데, 제법 훌륭하게 해낸 것 같다.

“먹기 좋게 잘 익은 것 같구나. 맛있어 보이는데?”

“드셔 보면 깜짝 놀라실걸요? 선생님이 만드신 것보다 배는 맛있을 거예요.”

“아그네스!”

그때 엄하게 꾸짖는 목소리가 들렸다. 바이런이었다. 아그네스가 국자를 손에 쥔 채로 얼었다.

“왜, 왜 그러세요?”

“너는 이제 엘누아르 가문의 사람이다.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버려라. 주군이라고 해야지!”

모두의 시선이 두 부녀에게 향했다. 과연 아그네스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기대를 하는 눈빛이었다.

왜냐하면 아그네스가 순순히 받아들이는 표정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버지. 여기는 진료소예요.”

“뭐?”

“주군이라는 호칭은 환자분들께 위화감을 줄 수 있어요. 몸도 마음도 편하게 해 드리는 곳이 진료소인데 그러면 안 되잖아요? 무엇보다도 진료소에서 가장 고귀한 호칭은 주군이 아니라 선생님이에요. 여긴 병을 치료하는 신성한 곳이니까요.”

바이런은 대꾸를 하지 못했다. 딸이 이렇게 정론을 펼칠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지켜보던 루치아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서기관 하나는 제대로 뽑았는데요? 왕도에 가서도 꿇리지 않을 언변인데?”

“됐고, 다들 식사나 하지.”

“잘 먹겠습니다!”

하룬의 숟가락질을 시작으로 여느 때와 같은 저녁 식사가 시작되었다.

철없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바이런은 내심 걱정이 됐다. 소꿉놀이도 아니고 이렇게 경험도 없고 어린아이들을 가신으로 삼다니.

하지만 준도 나름 생각이 있을 거라 여기곤 족발을 한입 베어 물었다.

바이런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오! 정말 맛있군! 대체 뭐로 만든 거지?’

소문대로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맛이었다. 바이런은 집중할 줄 아는 사내였다. 충언을 잠시 잊고 족발 공략에 심혈을 기울였다.

* * *

준은 엘누아르 가문의 구성안을 전령에게 보냈다. 이틀 후면 드뇌르 백작이 받아 볼 수 있도록.

이제 정말 진료소의 아이들이 준귀족이 된 것이다.

진료실로 돌아오니 아그네스가 책상에 앉아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었다. 준은 시간을 확인했다.

“시간이 늦었는데 올라가서 그만 쉬지 그러냐.”

“조금만 더 있다가요. 이 부분은 좀 더 봐야 할 거 같아요. 암 치료 사례들이 나와 있다고 들었어요.”

“초급 치유술 개론서에 그런 내용이 있었나?”

“중급 전공서예요. 루치아 선생님이 도움이 될 거라고 주셨어요.”

아직 초급 개론서도 익히지 않은 상태에서 중급 전공서를 보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어려운 용어가 많이 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그네스는 포기하지 않고 증례를 찾으려 노력했다.

‘역시 암영초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길 잘한 것 같군.’

아이러니하게도 카누의 병이 아그네스의 성장을 가속시키고 있었다. 만약 그가 완치된다면 아그네스는 정말 훌쩍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준이 왕진 가방을 들자 아그네스가 물었다.

“어디 다녀오시게요?”

“세금 징수하러 간다.”

“앗. 그거…… 정말 괜찮을까요?”

준은 서기관이 된 아그네스에게 세금 고지서 두 장을 발행하게 했다. 하나는 볼카누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카이엔의 몫이었다.

“앞으로 이런 일을 많이 해야 하니까 실습 삼아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그래도 볼카누스 씨는 우리 진료소에 도움을 많이 주고 계시잖아요. 세금을 내라고 하는 건 좀 가혹하지 않아요?”

“모든 영지의 사무는 공과 사를 구분하는 것으로 시작되지. 걱정하지 마. 그 친구 꽤 부자거든.”

아그네스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하늘같은 영주님의 명령이니 따를 수밖에.

준은 바로 진료소를 나서 볼카누스의 레어를 찾았다.

안으로 들어간 준은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살폈다. 뭔가 좀 다른 느낌이었다.

「다행히 전투의 흔적은 없네요. 반쯤 박살 나 있을 것 같았는데.」

“오히려 조금 안정된 것 같지 않아?”

「어? 그러네요. 예전이었다면 용암이 치솟고 땅이 흔들렸을 텐데.」

아직 후끈한 열기가 남아 있었지만, 볼카누스의 레어는 한층 더 안정적으로 변해 있었다. 그것이 카이엔이 만든 던전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준은 안식처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그 안에서 고성이 오가고 있었다. 한바탕 말싸움이 붙은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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