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진료소-58화 (58/175)

58화 연회에서 일어난 몇 가지 일들 (1)

딸칵!

끼리릭―

공구를 쥔 준의 손은 거침이 없었다. 망가진 기어를 교체하고, 필요한 부품을 추가했다. 미리 준비한 부품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었다.

그의 총명한 눈빛은 곰 인형에게서 잠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열심이시네요. 이젠 막내까지 공략해 사우던 가문을 완전히 장악하겠다, 뭐 이런 건가요?」

릴리는 베개 위에서 턱을 괴고 준을 바라보았다. 준은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답했다.

“이것도 일종의 의료행위다. 진료는 단순히 아픈 몸을 치료하는 게 아니야. 사람의 마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그 모든 것을 포함하는 개념이지.”

「나중에는 무너진 성벽도 고칠 기세네요.」

“필요하다면.”

릴리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젠 아예 베개에 엎드려 준과 대화했다.

「그러다 바빠서 쓰러질까 걱정돼서 그러죠. 마지막 인생은 좀 편하게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처음에는 그럴 생각이었는데. 그러기엔 너무 멀리 온 것 같지 않아?”

「그건 그래요.」

사실 바스티엔 대공자를 치료한 것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구성원에 문제가 있다. 볼카누스에 이어 루치아가 강림했고, 철혈의 대공 카이엔까지 가세할 가능성이 있다.

한마디로 이제 무슨 일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게 되어 버렸다.

「늦었다고 생각될 때는 진짜 늦었을 때래요. 생각 잘 해 봐요. 이대로 잠적하는 게 좋을 수도.」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지.”

「피할 수 있잖아!」

준의 손이 멈췄다. 짧게 한숨을 내쉰 준이 공구를 내려놓았다.

부품이 모두 교체되었다. 준은 필요한 부분에 적당히 윤활유를 바른 뒤 마지막으로 놓친 부분이 없는지 육안으로 확인했다.

‘이 정도면 오작동 문제는 해결한 것 같고. 그나저나 대단한데? 열다섯 살짜리가 이걸 설계하다니.’

준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마법을 기계에 접목시킨 게 아니었다. 곰 인형에 약간의 지능을 부여한 수준이었다. 이것이 발전하면 거대한 전투 병기가 탄생할 것이다.

‘아직 이 세계의 문명이 거기까지 닿지는 않았지만, 곧 황금기가 도래할지도 모르겠어.’

준의 시선이 곰 인형의 중심부로 향했다. 연푸른빛을 머금은 얇은 기판이 보였다. 일종의 마나 회로인데, 바로 곰 인형에 지능을 부여하는 중요한 부위였다.

살펴보니 아직 걸음마 수준이었다.

준은 보다 진보한 마나 회로로 교체할까 생각했지만, 그만두었다. 왠지 그런 작업은 자신의 손으로 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간단히 동작 몇 개만 추가해 볼까? 설계상의 한계가 있어 복잡한 동작은 구현하지 못할 것 같으니.’

잠시 생각에 잠긴 준은 몇 가지 춤 동작을 떠올렸고, 그것을 마나 회로에 메모리했다.

방법은 간단하다. 머릿속에 떠올린 동작을 마나로 변환해서 주입하면 끝이다.

‘그리고 몇 가지 생활 동작도 넣고.’

루드밀라 공녀가 좋아할 만한 동작도 서너 개 추가했다. 메모리가 완료되고 준은 회로에서 손을 뗐다.

‘좋아. 이제 모두 끝이다.’

준은 총 열 가지의 춤 동작과 세 가지의 생활 동작을 입력했다.

작동 방법은 간단하다. 마법공학의 산물이기 때문에 주인의 의지가 닿으면 자동으로 반응하게 된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준은 곰 인형의 등을 닫았다.

「잘 움직일까요?」

“아무래도 한번 테스트해 보는 게 좋겠지?”

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곰 인형을 바닥에 놓았다. 테스트 모드로 변환한 상태라, 해피는 준의 마나를 느끼곤 자력으로 일어났다.

준은 아무도 없는 곳을 향해 허리를 굽혔다.

그러자 해피가 그 모습을 그대로 따라 했다. 이번엔 루드밀라 공녀가 했던 인사법을 재현했다. 역시나 아무 문제 없이 같은 동작을 따라 했다.

「그렇게 꼭 꼴불견스럽게 동작을 취해야 테스트할 수 있는 거예요?」

“테스트의 기본은 최대한 실제 조건에 맞게 해야 한다는 거다.”

「참 번거롭게 사시네…….」

준은 그녀의 말을 흘려듣곤 계속 테스트를 진행했다.

일단 멈칫하거나 어딘가 걸린 것 같은 증상이 깨끗이 사라졌다.

준은 해피에게 주먹을 내밀었다. 해피가 폴짝 뛰며 자신의 주먹을 준의 주먹에 부딪혔다. 새로운 인사법이었다.

외형은 전혀 변하지 않았지만 동작이 추가되며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준은 해피를 테스트 모드에서 일반 모드로 전환시켰다.

‘테스트도 완벽히 끝났고. 이제 다음 일을 진행해 볼까?’

아공간 창고를 열어 아까 던져 넣었던 마이더스 상단의 계약서를 꺼냈다. 그리고 차를 홀짝이며 자리에 앉아 천천히 넘겨 보았다.

‘계약 조건은 나쁘지 않군.’

수익 배분은 7 대 3, 7이 준의 몫이었다. 그리고 기타 부대비용은 모두 마이더스 상단이 부담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유통권 계약이라기보다는 신약 제조에 대한 투자 같은 느낌이다.

이 정도 제안이라면 알파라는 사내가 자신을 왜 시험했는지 알 것 같았다.

계약서를 끝까지 검토한 준은 시계를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밤 9시. 조금 아슬아슬한 시간이긴 하지만 일단 시녀를 호출했다.

“준남작님. 필요하신 거라도 있으신가요?”

손에 붕대를 감은 그 하녀는 처음보다도 훨씬 더 상냥하게 물어왔다.

“누아에서 온 손님들이 묵고 있는 숙소로 가서 아그네스를 좀 불러 주십시오. 자고 있다면 깨우지 않아도 됩니다.”

“아그네스 님이요. 알겠어요.”

잠시 후 아그네스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진료소가 아닌 곳에서 단둘이 대면하는 거라 그런지 약간 긴장한 것처럼 보였다.

“상단엔 잘 다녀오셨어요?”

“그래. 별일 없었지?”

“별일이 없진 않았지만, 결과적으로는 별일이 없었다고 해도 괜찮겠네요.”

“그게 무슨 소리야?”

아그네스는 맞은편에 앉아 시장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루치아와 자신에게 접근한 사내들이 하룬에게 혼쭐이 나서 도망갔다는 이야기였다.

준은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룬의 선에서 끝났기에 망정이지, 루치아에게 걸렸다면 적어도 어디 한두 군데는 부러졌을 테니까.

“누아에 있을 땐 몰랐는데, 하룬 녀석한테 은근 든든한 구석이 있더라고요. 실력이 정말 많이 는 것 같아요. 순식간에 제압해 버렸어요.”

아마도 마르다 던전에서의 경험이 컸을 것이다. 목숨을 건 결정을 했고, 얀센의 검이 그만큼 그를 성장시켰을 테니까.

아그네스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런데 이 늦은 시간에 무슨 일로 부르셨어요?”

“상의할 게 있어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마이더스 상단에서 다시 상비약 유통에 대한 계약 제의를 해 왔다.”

“그거…… 제 기억으론 전에 플랭크 씨가 제안했을 때는 거절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맞아. 그런데 이번엔 지부장이 직접 제안을 했다. 계약 조건도 나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상의하고 싶어서 불렀어.”

아그네스는 살짝 놀랐다. 그렇게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 것인데 왜 자신을 불렀을까?

“루치아 선생님과 말씀을 나눠 보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전…….”

견습이니까요, 라는 말이 생략되었다. 하지만 준의 생각은 달랐다.

“지금은 루치아 선생의 보조를 하고 있지만 내 조수는 너야. 그리고 상비약을 만든 건 너희들이고. 그 정도 권리는 있다고 생각한다.”

“선생님…….”

아그네스는 감동했다. 촉촉한 눈이 파르르 떨릴 정도로. 그동안의 노력이 헛되진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잠시 고민한 아그네스가 답을 꺼냈다.

“저는 계약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이유는?”

“상비약이 저렴한 가격으로 널리 판매되면 환자분들이 편하게 약을 드시고 더 빨리 나을 테니까요. 굳이 진료소까지 올 필요 없이.”

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아그네스의 말대로 그렇게 이상적으로 일이 전개되진 않을 터다. 일종의 이권 사업이니 잡음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준이 그녀에게 기대한 것은 보다 근본적인 부분이었다.

그녀는 돈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환자 중심의 사고를 하고 있었다. 핵심을 잘 짚었다고 생각했다. 돈과 명예를 추구하는 치유사들은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 있어도 진짜배기가 되기는 어려우니까.

상비약 유통 계약보다는 아그네스의 성장이 지금 준에게 있어 더욱 중요했다.

“좋아. 얘긴 잘 들었다. 그럼 네 의견대로 계약을 체결하도록 하마.”

“그렇게 바로 결정을 내리셔도 괜찮아요? 다른 분들 의견도 좀 들어 보는 게 좋을 거 같은데…….”

“본인의 판단을 좀 더 믿도록 해.”

준의 충고에 담담히 고개를 끄덕인 아그네스가 꾸벅 인사하고 방을 나섰다.

준은 펜을 들어 계약서에 몇 가지 수정 조항을 삽입했다. 본격적인 사업의 시작은 새 진료소가 완공된 이후로 잡았다. 알파가 이 조건을 수용한다면, 계약은 체결될 것이다.

하지만 일이 그렇게 쉽게 풀릴까?

알 수 없는 일이다.

* * *

다음 날 아침, 준은 일찍 루드밀라 공녀의 방에 방문했다. 실례가 되지 않도록 조금 늦은 시간에 만남을 청했다.

“벌써 치료해 주신 거예요?”

루드밀라 공녀가 반색했다. 수리가 아니라 치료라고 표현한 것은, 아마 해피를 인형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서겠지. 어제 릴리가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이제 아프지 않을 겁니다. 한번 보시겠습니까?”

해피를 그녀에게 건넸다. 공녀는 마나를 일으켜 해피와 링크했고, 모든 동작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을 확인하고는 뛸 듯이 기뻐했다.

“역시 경의 치유술은 대단해요! 신의라는 호칭이 아깝지 않아요.”

“과찬이십니다.”

“그런데 마나 회로가 예전하고 좀 달라진 거 같은데요?”

직접 보여 주는 게 낫다고 생각해, 준은 해피의 앞에 주먹을 내밀었다. 곧 해피가 껑충 뛰어올라 자신의 주먹을 준의 주먹과 부딪혔다.

“우와! 귀여워!”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는지 루드밀라 공녀는 정말 기뻐했다. 몇 번을 그 동작을 따라하며 해피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경은 마법공학을 어떻게 배우게 됐어요?”

“독학으로 공부했습니다.”

“나중에 저도 좀 가르쳐 줄 수 있어요? 만들고 싶은 건 많은데 어려운 부분이 많아요.”

“기회가 된다면 얼마든지요.”

그보다 그녀에게 마리를 소개해 주면 어떨까 싶었다. 나이도 비슷하고, 루드밀라 공녀가 기계 쪽이 주력이라면 마리는 마법이 주력이니까. 나중에 둘이 합심한다면 대단한 물건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가 됐다.

“그럼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평온한 오후 보내시길.”

“잘 가요! 해피도 빠빠 해야지?”

루드밀라 공녀가 손을 흔들자, 해피도 준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 훈훈한 모습을 보니, 수리해 주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에서 나온 준은 수행 시녀에게 청했다.

“사우던 가의 주치의를 잠시 만나야겠는데, 안내를 좀 해 줄 수 있습니까?”

“예. 이쪽으로 오세요.”

잠시 후 준은 성 내부에 있는 진료실에 들어섰다. 사우던 가의 건강을 책임지는 곳인 만큼 인력이 풍부했고, 장비도 제대로 갖추고 있었다.

그곳의 책임자와는 구면이었다. 바로 도널드 경. 아직 해고되지 않은 게 좀 의외였지만, 어쨌든 그가 사우던 가의 주치의를 맡고 있었다.

준이 나타나자 도널드 경은 애매모호한 미소를 지었다.

“결국 여기까지 오셨군. 방문을 환영합니다.”

“별로 환영하는 표정은 아닌 거 같습니다만?”

“하하하. 경께서 오셨으니 제 자리가 위태로워지지 않겠습니까?”

농담조로 말했지만 반쯤은 농담이 아니었다. 준이 원하기만 한다면 자신의 자리를 뺏을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준이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진땀이 흘렀다. 조용히 있다 갈 것이지 대체 여기까지 왜 온 걸까?

준이 방문 목적을 꺼냈다.

“제가 듣기로 파비안 경께서 만성 두통을 앓고 계신다고 하던데.”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지요. 이 성에서는.”

“진료 기록을 볼 수 있겠습니까? 백작 각하께서 제게 치료를 명하셨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도널드가 직접 차트를 챙겨 왔다. 준은 선 채로 차트를 훑어보았다.

과연 사우던 가의 전용 진료실답게 진료 기록이 꼼꼼하게 작성되어 있었다. 도널드가 천재적인 악필이라는 사실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차트를 모두 훑어본 준은 인상적인 결론을 얻었다.

“아무런 이상이 없군요. 검사 결과도 모두 깨끗하고. 기록에 의하면 굉장히 두통이 심하신 거 같은데. 원인으로 짐작 가는 바가 있으십니까?”

“파비안 경께서는 다른 분들보다 예민한 편입니다. 아마 스트레스 때문에 그러신 건 아닐까 예상은 합니다만.”

“잘 알겠습니다. 말씀 고맙습니다.”

차트를 다시 넘겨준 준은 진료실을 나섰다. 바로 마이더스 상단으로 가서 알파를 만날까 생각했지만, 계약은 연회 이후로 미루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연회는 바로 오늘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밖에서는 한창 손님맞이가 진행되고 있었다.

주변 영지에서 귀족들을 태운 마차가 켈세타 성으로 속속 진입했다.

그리고 그중엔, 킹스턴의 지배자인 아마데우스 백작이 타고 있는 마차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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