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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진료소-43화 (43/175)

43화 과잉 진료

베리타는 기가 막혔다. 강도 및 사기 경력 20년 차였지만, 이렇게 당돌한 놈은 처음이었다.

“미친 새끼. 아주 그냥 겁대가리를 상실했군. 말로는 안 통할 거 같다. 조져버려!”

순간 병풍 사내 중 하나가 암기를 쏟아냈다.

쉭쉭!

비수 두 개가 빠른 속도로 날아왔다. 목과 심장을 정확히 노린 한 수였다. 꽤 수준 높은 공격이었지만, 애석하게도 상대는 준이었다.

준은 손을 가볍게 휘둘렀다.

탁탁!

어느새 날아온 암기가 얌전히 그의 손에 들어가 있었다. 비수를 던진 사내는 물론, 나머지 두 악당들의 눈도 휘둥그레졌다.

“미친! 말도 안 돼!”

상식적으로 날아오는 비수를 맨손으로 잡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안티 마나 파우더까지 사용한 상황.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가?

준은 검날에 발려 있는 독을 살짝 맛봤다. 마치 소믈리에가 와인을 감별하는 듯 혀까지 굴리며.

그 장면을 지켜보던 악당들이 경악을 하며 입을 쩍 벌렸다.

“흐음. 고블린 독과 전갈 독을 섞었군. 7 대 3, 아니 6 대 4의 비율로. 너희들 이 독이 사람에게 어떤 작용을 하는지는 알고 던진 건가?”

“닥쳐! 이 괴물 같은 놈!”

“모르면 알려 줘야겠지?”

준의 손이 움직였다.

날아가는 것도 보이지 않았고, 바람을 가르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비수 두 개가 정확히 병풍 사내들의 다리에 박혔다.

푹푹!

“우억!”

“어어억!”

사내들이 바닥에 쓰러져 뒹굴었다.

사실 급소를 피했기에 충분히 버티고 설 수 있지만, 그들은 알고 있었다. 그 비수에 상당히 치명적인 독이 발려 있다는 것을.

준이 쓰러진 두 사람을 내려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제 서서히 근육과 신경이 마비될 거다. 5분 뒤면 좋은 곳으로 가 있겠지. 그 과정이 꽤 고통스럽다는 걸 기억해라. 어쨌든 축하한다. 그곳에서 새 인생을 살도록 해.”

하지만 병풍 사내들도 호락호락하진 않았다.

독을 소지하고 있으니 당연히 해독제도 하나씩 챙기고 있었다. 두 사내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안주머니에서 유리병을 꺼내 뚜껑을 열려 했다.

물론 그것도 계산에 들어가 있던 일.

준이 손가락을 튕겼다.

쨍! 째앵!

“안 돼!”

두 사내의 해독제가 허공으로 흩어졌다. 독 때문일까 아니면 겁에 질린 걸까. 사내들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살려 주십시오!”

“제발! 잘못했어요! 죽기 싫어! 여기 진료소니까 해독제가 있을 거 아냐!”

“그러니까 왜 잘못할 짓을 해서 그래?”

씨익 웃으며 준이 고개를 들었다.

눈앞엔 우두머리인 베리타가 남았다. 주춤 물러선 그는 이를 악물고 검을 휘둘렀다. 궤적이 제법 흉했다.

부웅!

첫 공격은 가볍게 옆으로 흘렸다.

“죽어!”

하지만 베리타의 실력도 제법이었는지, 바닥을 향하던 검의 궤적이 갑작스레 바뀌어 준의 옆구리를 노렸다. 상당한 수준의 연격이었다.

하지만 상대를 잘못 만나도 한참 잘못 만났다.

탁!

준이 맨손으로 검을 쥐었다.

베리타가 흠칫 놀랐지만, 그의 두 눈엔 독기가 남았다. 지금 이 자리에서 준을 죽이지 않으면 부하들은 물론 자신까지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죽어! 죽어! 죽어어엇!”

“시끄럽군.”

준이 검을 쥔 손에 살짝 힘을 주었다.

툭.

마치 나무젓가락 부러지듯 검날이 부러져 버렸다. 인간의 힘으로는 결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베리타는 결국 무릎을 꿇었다.

“말도…… 안 돼.”

안티 마나 파우더도 통하지 않았다. 준은 분명히 마나를 일으켰고, 해독제의 병을 깨부쉈다. 거기에 부하들까지 중독되어 생명이 위급한 상황에 맨손으로 검을 부수기까지.

베리타의 본능이 속삭였다.

지금은 그저 머리를 땅에 박는 수밖에 없다고.

“사, 살려 주십시오. 제발. 목숨만은.”

“그래야지. 여긴 진료소니까.”

“네?”

너무나도 쉽게 준이 받아들이자 베리타가 고개를 홱 들었다.

준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고 있었다. 베리타는 얼떨결에 그 손을 잡고 일어났다.

“대신 치료비가 좀 비쌀 겁니다.”

하마터면 오줌을 지릴 뻔했다.

준의 미소에서 한 줌의 살기도 느끼지 못했으니까. 거기에 존댓말까지.

베리타는 이제야 깨달았다.

순수한 무서움이란 바로 이런 거라고.

* * *

설거지를 하던 하룬이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뒤를 힐끔 돌아보았다.

“야.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았냐?”

“설거지하기 싫으면 그냥 싫다고 하지?”

“아니라고! 넌 왜 그렇게 애가 매사에 부정적이냐?”

“흥. 사실인걸, 뭐.”

아그네스가 핀잔을 주는 거야 하루 이틀 일이 아니라 면역이 되어 있었지만, 마리까지 한심한 표정으로 자신을 보는 건 견딜 수 없었다.

하룬의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이건 오해다. 분명 진료실 쪽에서 뭔가 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그릇을 닦던 아그네스가 뭔가를 떠올리더니 환하게 웃었다.

“그나저나 상단 사람들이 왜 온 걸까? 아파서 온 건 아니라고 했으니 뭔가 근사한 제안을 하러 온 건가?”

“근사한 제안이라니?”

“요즘 상비약 잘 팔리고 있잖아. 그걸 어떻게 해 보려는 걸지도 몰라. 이제 켈세타에서 선생님 모르는 사람이 없어질 거 같은데. 안 그래?”

“가능성 있지.”

그렇게 대꾸를 하면서도, 하룬은 진료실 쪽이 계속 신경 쓰였다.

사실 준이 결계를 펼쳤기에 소리가 식당까지 들리진 않았다.

정확히는 상황이 모두 종료된 이후에 난 잡소리였다. 예를 들어, 박힌 비수를 뽑을 때 병풍 사내들이 비명을 질렀다든가.

자경단에서 오래 훈련을 받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하룬이 그릇을 내려놨다.

“아무래도 가 봐야겠어. 그 사람들 처음 보는 사람이잖아? 왠지 느낌이 안 좋아.”

“그럴 필요 없다.”

때마침 준이 식당으로 들어왔다. 하룬은 괜히 나섰나 싶어 머쓱해졌다.

“감각이 좋구나. 그 소리를 듣다니. 역시 자경단의 에이스는 다르군. 아무튼 그건 그렇고, 지금 급환이 생겼다. 아그네스, 마리. 바로 진료실로.”

“급환이요?”

고개를 끄덕인 준은 식당을 나섰다.

앞치마를 벗은 두 소녀가 준을 따랐다. 덕분에 설거지는 온전히 하룬의 몫으로 남았다.

“뭔가 오해가 풀려서 다행인데…… 왜 이렇게 손해 보는 느낌이 드는 거지?”

한숨을 내쉰 하룬은 그릇을 벅벅 닦기 시작했다.

한편 진료실로 들어온 아그네스와 마리는 깜짝 놀랐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히 서 있던 병풍 사내들이 침상에 누워 앓는 소리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온몸이 창백했고, 호흡이 가빴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아그네스는 준과 베리타를 번갈아 보며 물었다. 베리타는 시선을 슬쩍 돌렸고, 준이 대답했다.

“환자가 우선이야. 일단 한번 진찰해 봐라.”

급환이 없는 곳이라 경험이 거의 없었다. 아그네스는 긴장했다.

하지만 처음 스캐너를 쥐었던 그때를 떠올렸다.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긴장이 풀리고 시야가 넓어졌다.

환자를 슥 훑은 아그네스가 바지의 찢어진 부분을 확인했다. 조심스레 찢어진 부위의 천을 들춰보았다.

“어? 자상이 있네요.”

상처 주변이 검붉게 오염되어 있었다. 일반적인 자상이 아니었고, 아그네스는 초급 치유술 개론서에 적힌 내용을 떠올렸다.

“중독이에요. 그쵸?”

“정답.”

“그런데 대체 이게 무슨 일이에요? 멀쩡하던 분들이 자상을 입고 중독이 되다뇨?”

“나중에 얘기해 주마.”

아그네스는 뭔가 미심쩍었다. 특히 베리타의 태도가 그랬다. 뭔가 죄를 지은 사람의 표정이었으니까.

만약 준이 상태 유지 마법을 걸지 않았더라면 병풍 사내들은 이미 절명했을 것이다. 마법이 걸려 있어서 아그네스는 중독이 된 환자를 충분히 경험할 수 있었다.

물론 당사자의 고통은 그만큼 길어진다는 부작용이 있지만.

“이제 약을 써서 해독을 해야 하는데, 이렇게 상처 주변이 검은색을 띠는 독은 상당히 강력한 독이라 좋은 약을 충분히 써야 한다. 상급 해독제를 만들어야 하지.”

이상하다? 중급 해독제로도 충분할 것 같은데.

하지만 아그네스는 준이 한 말이니 무슨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상급 해독제의 재료는 금장미와 여우꽃이라고 알고 있는데, 우리 진료소에는 없어요. 어떡하죠?”

“마침 내가 가지고 있던 게 있어.”

준이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엔 황금빛으로 빛나는 장미와 여우 꼬리처럼 흩날리는 잎사귀를 가진 꽃이 놓여 있었다. 처음 보는 약초들이었다.

“그럼 한번 만들어 볼게요. 평소처럼 가루 내서 뜨거운 물에 달이면 되겠죠?”

“거기에 월영초도 섞어. 세 잎 정도 넣으면 될 거다.”

월영초까지?

잠시 진지한 표정을 지은 아그네스가 조용히 준에게 귓속말했다.

“저기 선생님…… 저분들 진료비 감당할 수 있는 거겠죠? 월영초까지 넣으면 약값이 엄청 비싸지는데.”

“마이더스 상단 분들이라고 하셨으니 주머니 사정은 넉넉하시겠지. 돈보다 사람 목숨이 더 중요한 거 아니겠어?”

“그건 그렇죠.”

아그네스가 약초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 사이 마리가 소독약을 가져와 병풍 사내들의 상처를 소독했다. 그리고 능숙하게 붕대를 감았다.

그로부터 한 시간 후 상급 해독약 조제가 끝났다.

다시 진료실로 돌아온 아그네스가 깜짝 놀랐다.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병풍 사내들이 밧줄로 꽁꽁 묶여 있었던 것이다.

아그네스는 준을 바라보았다. 준은 웃으며 투약을 지시했다.

“뜨거우니까 천천히 마시세요. 곧 약효가 나타날 거예요.”

병풍 사내들은 혀가 데는 줄도 모르고 허겁지겁 해독약을 마셨다. 약효는 금방 나타났다. 창백했던 안색이 원래대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이제 착하게 살게요!”

이건 또 무슨 말일까. 아그네스는 고개를 갸웃했다.

준이 나섰다.

“자, 이제 정산을 해 볼까요? 진료비는 약제비까지 합쳐 2골드입니다.”

“뭐? 무슨 치료비가 그렇게…….”

준은 설명 대신 그냥 웃었다. 아까 손을 뻗을 때의 그 미소다. 식은땀을 흘린 베리타가 주머니에서 돈을 탈탈 털었다.

준을 돈을 받아 천천히 세어 보았다.

“13실버가 모자라는군요. 나머지는 외상으로 달아 놓지요. 죗값을 치르고 와서 다시 갚도록 하시죠.”

준은 굵은 밧줄로 베리타를 단단히 묶었다. 그는 반항하지 않았다. 반항해서 목숨을 잃느니 차라리 끌려가는 게 낫다.

때마침 밖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누아의 자경단원들이 들이닥친 것.

선두엔 바이런과 하룬이 있었다. 아그네스가 약을 만드는 사이 준은 하룬을 자경단 본부로 보냈었다.

“강도가 들었다고?”

“예. 이자들입니다. 상습 사기범들이 분명합니다. 켈세타나 왕도에 현상금이 걸렸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으니 한번 알아보시는 것도 좋겠군요.”

“다친 사람이 없다니 천만다행이구만. 그건 그렇다 치고, 대체 이놈들을 어떻게 잡았나?”

“아시잖습니까? 제가 다른 사람들보다 운이 좋다는 거.”

“그 소리 질리지도 않나?”

고개를 저은 바이런이 부하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곧 자경단원들이 악당들을 끌고 나갔다.

바이런이 따라 나가다 멈춰 섰다.

“이봐, 선생. 혹시 이놈들한테 현상금이 걸려 있으면 어떻게 할 텐가? 일단 자네가 잡았으니까 우선권을 주지.”

“자경단 발전 기금으로 쓰시죠. 전 진료비를 충분히 받았습니다.”

“진료비를? 허, 은근 독한 구석이 있다니까. 그새 삥을 뜯었나?”

“삥이라니 무슨 말씀을. 진료 행위에 대한 정당한 청구입니다.”

혀를 내두른 바이런이 따라 나갔다. 악당들이 빌빌거리자 힘차게 엉덩이를 걷어찼다. 비명이 들렸고, 그제야 악당들이 부지런히 걷기 시작했다.

뒤늦게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아그네스는 의자에 쓰러지듯 앉았다. 그렇게 위험한 상황일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선생님……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살짝 귀띔이라도 해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그랬으면 침착하게 치료를 하지 못했겠지. 여기에서는 하나만 기억해라. 환자를 치료하는 것. 그 외에는 신경 쓸 필요 없어. 진료소니까.”

세 직원들은 준의 한마디를 마음에 새겼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환자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마리는 친절히 접수를 받았고, 아그네스는 진료 도구를 준비했다.

그런데 준은 턱을 괴며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표정이 진지했다.

“아까 외상 달아 놓은 13실버…… 언제 받지? 생각해 보니 형량이 세게 나오거나 사형을 당하면 못 받잖아. 실수한 건가?”

끝까지 진지한 준의 얼굴을 보며 아그네스는 웃음을 터트렸다. 가끔 이렇게 엉뚱한 모습을 보여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렇게 오후 진료가 끝날 무렵, 준이 처리한 악당들에게 현상금이 걸려 있었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생각보다 큰 액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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