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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진료소-10화 (10/175)

10화 수상한 냄새가 난다 (2)

준은 길을 따라 쭉 내려갔다.

한적한 시골길이 좋았다. 매번 지옥 불에 타오르는 길을 걷거나, 사람들로 북적이는 도시를 거닐었는데, 이런 것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준의 생각은 전혀 다른 곳으로 향해 있었다.

‘어떤 놈일까?’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위성을 날려 버린 존재.

그 존재에 대한 의문이 깊어졌다. 절대자에 가까운 준의 직감이 확신을 더해 주고 있었다. 이놈은 보통 놈이 아니라고.

그때 준의 어깨너머로 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뒷산에 있는 놈인 거 같은데, 어떤 세상 물정 모르는 무식한 도마뱀 아닐까요?」

“도마뱀이라.”

준은 뒤를 돌아 산을 살폈다. 그리 높지 않고 험준하지도 않은, 딱 평범한 마을 뒷산이었다.

“글쎄. 드래곤 레어가 있기엔 좋은 위치가 아니야.”

「혹시 모르지 뭐. 취향이 독특한 도마뱀일지 누가 알아요? 마스터처럼.」

“내 취향이 그렇게 이상하나?”

「변태까지는 아니지만, 뭐 이해할 수 없다는 면에서는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지 않겠어요?」

준은 가볍게 웃었다.

문득 릴리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계약을 맺었을 때는 쫑알거리는 게 그렇게 시끄러울 수 없었는데, 이제는 없으면 허전한 존재가 되었다. 그만큼 큰 활력소가 되고 있었다.

“강령술사일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지. 아무튼 위성이 있는 근처에 가 봐야겠어. 어떻게 부서졌는지 확인부터 해 봐야겠다.”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수도 있잖아요. 잠깐이지만 엄청난 에너지였다구요.」

“그건 나중에 생각할 문제고. 시작은 거기부터다. 잔해라도 찾을 수 있다면 다행이겠지.”

릴리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이 정도의 힘을 펼칠 줄 아는 자라면 마계에서 온 자거나 드래곤일 확률이 높다.

어느 쪽이든 준에게 큰 위협이 되지는 않겠지만, 준은 방심하지 않았다. 세상은 넓고 강자는 수두룩하니까.

지금은 힘이 온전히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 프라가라흐를 소환하지 못하는 상황이니 큰 싸움이 일어난다면 힘들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준은 움직였다. 부족한 부분은 경험으로 메꾸면 그만이니까.

“일단 마나를 숨겨야겠어. 릴리. 너도 가능하면 개입하지 마라.”

「알았삼~」

준은 자신의 힘을 완전히 숨겼다.

마을 주변의 몬스터를 조종하는 것은 둘째 치고, 자신의 위성을 한 방에 부숴 버렸다.

‘내 기운을 느끼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겠지.’

사실 위성을 가만히 뒀다면 준도 굳이 나서진 않았을 것이다. 적의가 없는 거니까.

하지만 상대는 위성을 박살 내면서까지 도발하고 있었다. 그것은 분명한 살의였고, 이대로라면 마을이 쑥대밭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다.

왠지 준은 그 시발점이 자신이 된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별일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뭐 있겠어요? 이런 외딴곳에 뭐가 있다고. 절대악도 마스터한테 탈탈 털린 마당에. 아무튼! 너무 마을에 퍼주지 마세요. 마스터는 너무 착해서 탈이라니까.」

“그냥 편히 쉬고 싶을 뿐이야. 방해받지 않고.”

「이런 마을은 널리고 널렸다고요. 망하면 다른 곳으로 이주하면 되지.」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이런 곳은, 흔치 않아.”

「무슨 근거로요?」

“직감.”

마을을 위해서 나서는 건 아니었다. 오랜만에 찾아온 자신의 안식을 방해하려는 자가 있다면, 가볍게 혼을 내줘도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바로 그때, 옆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무슨 혼잣말을 그렇게 하시나?”

릴리가 자연스레 사라졌고, 준이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풍채 좋은 사내였다. 좋다기보다는, 조금 지나치다는 느낌. 뱃살이 허리띠를 넘어 흘러내리고 있었다. 푸짐한 수염도 인상적이었다.

“별일 아닙니다. 잠깐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당신 새로 온 진료소 선생이지?”

“예, 강준입니다.”

준은 간결하면서도 정중하게 이름을 밝혔다. 그러한 태도가 사내에게 좋은 인상을 남긴 모양이다.

“하하핫! 그래. 내 이름은 호프만이야. 저 아래쪽에서 주점 겸 여관을 운영하고 있지. ‘호밀밭의 파수꾼’이라고. 이름 쥑이지?”

“네, 뭐.”

“반응이 그게 뭔가? 시시하게. 그런데 왕진이라도 가는 길인가?”

호프만의 시선이 준의 가방을 향해 있었다. 신기하다는 그런 눈빛이다.

“어제 자경단원 중 한 명이 부상을 당한 일이 있어서 확인차 나가 보려고 합니다. 훈련을 받고 나면 상처가 덧날 수도 있으니까요.”

“하긴, 바이런 그 친구 애들 굴리는 거 하나는 기가 막히게 하니까. 그런데 하룬 녀석 많이 다친 겐가?”

“독침을 맞은 것 외에 특별한 부상은 입지 않았습니다.”

“어! 독침을?”

호프만이 어울리지 않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통해, 준은 하룬의 평판을 짐작할 수 있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큰 상처는 아니니까. 합병증도 없었고 오늘 건강히 걸어 나갔으니까요.”

“다행이군그래. 예전에 아는 사람이 독침을 맞고 다리를 잘라 냈던 적이 생각나서 말이네.”

“이제는 그럴 일 없을 겁니다.”

“하하핫! 점잖은 친구인 줄 알았더니 제법 실력을 뽐낼 줄 아나 보군. 응?”

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신은 언젠가 떠날 사람이고, 보다 중요한 사람은 따로 있다.

“아그네스가 착실히 치유술과 약초학을 익히고 있습니다. 재능이 있어 유능한 치유사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그렇다면 마을 주민분들이 불편할 일도 없겠지요?”

“오. 그래? 역시 바이런의 딸인가. 하긴, 어릴 때부터 영특한 면이 있었지.”

의외라는 듯 준을 쳐다보던 호프만의 눈에 흥미가 돌았다. 오랜만에 함께 맥주를 마시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 남자 대 남자로서 말이다.

“진료 마치고 우리 가게에 한번 들르게. 시원한 맥주 한잔하자고. 내 특별히 대접하지. 대신 안주는 유료야.”

“때가 좋으면 한번 들르겠습니다.”

“살펴 가시게.”

호프만은 내려놓았던 통을 다시 양손에 쥐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뒤뚱거리는 걸음걸이를 보던 준이 그를 불러 세웠다.

“호프만 씨.”

“으응?”

“혹시 허리 쪽에 통증이 있지 않습니까? 어깨도 안 좋아 보이는군요.”

“어떻게 알았나? 허허, 귀신같은데! 안 그래도 요즘 허리랑 어깨가 아파서 일하기가 힘들어. 쯧, 나이 탓이겠지 뭐. 왕년엔 잘나갔는데 말이야.”

나이 탓은 아니었다. 걷는 방법이 잘못되어 있었고, 무게의 배분이 온전치 않았다. 진찰을 해 봐야 알겠지만 쉽게 고칠 수 있을 것 같았다.

준이 제안했다.

“제가 주점에 들르기 전에 호프만 씨가 먼저 진료소로 오셔야겠는데요? 이따 저녁에 시간을 비워 둘 테니 한번 오시죠.”

“오, 그렇군. 그걸 잊고 있었어. 새로운 선생이 오셨으니 한번 진찰을 받아 봐야지. 하하하! 그 생각을 못 했네. 그럼 수고하라고!”

고개를 살짝 숙인 준이 다시 목적지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 *

마을 한구석에 마련된 작은 훈련장.

퇴원하자마자 바이런에게 끌려 온 하룬은 뚱한 표정으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부상을 당했으니 오늘은 좀 쉬고 싶었는데, 하면서.

그러나 현실은 늘 욕망을 외면하는 법이다.

부웅― 부우웅―

검의 움직임이 전처럼 날카롭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어젯밤 일이 떠오르니 검에 힘이 실렸다. 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그네스가 밤새 간호해 준 일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엉망이군.”

“아! 죄송합니다!”

어느새 나타난 바이런이 꾸중하자 하룬이 검을 거두고 정자세를 취했다.

“무슨 생각을 하기에 검이 그렇게 무디냐?”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냥…….”

“세상에 아무것도 아닌 일은 없는 법이다.”

“죄송합니다.”

사실 작은 마을의 자경단에서 이렇게 격식을 차릴 필요는 없다.

자경단이란 말 그대로 마을을 지키는 집단.

기사단급의 규율이나 격식을 차릴 필요는 없지만, 바이런은 그것을 중시했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는 더더욱 아니었고.

다만 마을을 더 안전하게 지키고 싶었을 뿐이다. 검 끝을 날카롭게 유지하려면 한시도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바이런이 근엄히 말했다.

“머리를 비워라. 집중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이곳이 전쟁터였다면 넌 벌써 죽은 목숨이야.”

“하지만…….”

‘훈련일 뿐이잖아요’라는 말은 꺼내지 못했다. 그랬다가는 혼쭐이 날 게 분명했으니까.

열여덟. 한창일 나이다.

밖에서 일을 하거나 모험을 떠나도 좋을 나이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할 나이.

그 마음을 이해했는지, 바이런은 하룬의 어깨를 다독이곤 자리를 떠났다. 별다른 격려는 하지 않았지만 그 행동 하나에 하룬은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다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하압! 합! 핫!”

아직은 경험이 부족하고 어리지만, 누군가의 믿음에 배신할 정도로 어리석은 사람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아그네스의 안전을 지켜야 하는 임무를 맡았다. 친구 그 이상의 존재였기 때문에, 적어도 그녀를 지킬 수 없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책임감.

그것이 마을 사람들이 하룬을 믿고 의지하는 결정적인 이유였다.

물론, 지금 나타난 사람과는 거리가 멀지만.

“어? 선생님?”

하룬이 훈련을 멈추고 검을 허리춤에 갈무리했다. 준은 여유롭게 걸어오며 주변을 살폈다.

투박하지만 필요한 건 다 갖춘 좋은 훈련장이었다.

확실히 바이런이 규율이 좋은 기사단을 거쳤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재능이 없는 사람들도 이곳을 거치면 제법 잘 싸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룬이 한달음에 다가와 물었다.

“여긴 무슨 일이십니까?”

“상처가 어떤지 보러 왔다. 가볍긴 해도 일단 부상을 입었으니. 잠깐 쉴 수 있나?”

“예예. 그런 이유라면 뭐 단장님도 뭐라 하진 않으시겠죠.”

“무장을 풀어.”

하룬은 정강이 보호대를 푸르고 천을 올려 맨다리를 노출시켰다.

아그네스가 정성껏 감은 붕대가 보였다. 연습을 많이 한 티가 났다. 준은 가위를 꺼내 붕대를 능숙히 제거하고, 상처를 살폈다.

독소 때문에 변색된 곳이 많이 연해졌고, 상처는 완전히 아물어 있었다.

“나쁘지 않구나. 독 기운은 오늘 저녁이면 다 빠질 것 같고. 혹시 모르니 붕대를 좀 더 감고 있도록 해라. 불편하지는 않지? 어지럽다든지.”

“예. 뭐. 딱히 그런 건 없는데요. 근데 저 때문에 여기까지 오신 겁니까?”

하룬은 내심 기대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하지만 준은 그 기대를 산산이 부쉈다.

“그럴 리가. 볼일이 좀 있어서 오는 길에 들러 본 거야.”

“역시. 그럼 그렇지…… 그런데 무슨 볼일이신데요? 뭐 제가 도와 드릴 거라도?”

“잠깐 숲에 나가 볼 생각이다.”

“숲이요? 혼자서?”

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짐을 챙겼다. 그가 일어나자 하룬이 장비를 챙기고 허겁지겁 따라갔다. 준을 말리는 모양새로 붙들었다.

“잠깐만요! 혼자 나가시면 위험합니다. 제가 동행하죠.”

“걱정하지 말고 훈련이나 마저 해.”

“그러다 몬스터한테 당하면 어쩌시려고요? 어제도 고블린이 세 마리나 나오지 않았습니까!”

준이 백의를 슬쩍 거뒀다. 허리춤에 걸린 투박한 검이 보였다. 하룬이 깜짝 놀랐다. 자신이 알기로 준이 검을 찬 적은 없었는데.

“설마 검을 쓸 줄 아셨습니까?”

“못 쓴다는 말은 안 했는데?”

“그럼 그때는 왜…….”

씨익 웃은 준이 검을 꺼내 몇 번 휘둘렀다.

휘익! 쉭쉭!

아주 단순한 동작이었지만, 하룬은 다시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보다 훨씬 정련된 자세였기 때문이다. 하루 이틀 수련해서 될 모양새가 아니었다.

“헉.”

무엇보다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준의 검 끝이 자신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준이 검을 거뒀다.

“말도 안 돼. 이건 사기야! 사기라고!”

“열심히 연습해라. 치유사보다 검을 못 다루면 그거 나름대로 부끄러운 일이니.”

“그럴 순 없죠!”

기합을 단단히 넣은 하룬이 검을 빼 들고 다시 연습에 몰두했다. 좋은 자극이 된 것 같아, 준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그곳을 빠져나갔다.

바로 목적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목적지는 자신이 처음 눈을 뜬 바로 그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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