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와 그녀와 그와 나-209화 (209/214)

209

13. 에필로그 32

점심은 37층 중식당에서 하기로 했다. 엄마가 L 호텔 차이니즈 레스토랑이 정말 유명하다며 관심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곧 도착할 테니 먼저 올라가 있으라는 연락을 받고 엘리베이터에 탔다.

"피곤해?"

어깨를 부드럽게 감싼 바흐가 물었다. 라희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조금요."

"오후 일정은 빨리 끝내야겠군."

바흐가 말을 하면서 어깨 위 손이 슬그머니 아래로 내려와 허리께를 잡았다.

"부인이 편히 쉴 수 있게."

나직이 속삭였는데, 쉴 수 있게 라는 말을 하며 허리 근처의 손가락 끝이 허릿골을 타고 가볍게 따라 내리다가 엉덩이 곡선까지 스쳤다. 은근한 지분거림. 이내 손바닥이 한쪽 엉덩이를 바짝 움켜쥐었다.

점심시간인지라 엘리베이터에는 둘밖에 없었지만, 엉덩이 아래를 쥔 뜨끈한 손바닥이 전해주는 야릇한 느낌에 서서히 열기가 뻗쳐올랐다. 분명히 에어컨의 시원한 바람으로 엘리베이터 안은 쾌적했으나, 둘을 감싼 주위 공기가 더웠다. 엉덩이를 서서히 손바닥으로 문지르면서 손끝으로 꾹 쥐는 감촉이 전해졌다.

"……!"

길고 곧은 손가락 하나가 엉덩이골 사이를 파고들자, 입안이 바짝 마른다. 혀끝으로 입술 안쪽을 문지르며 달뜬 호흡을 억누르는데 땡,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도착을 알리는 불이 켜졌다. 동시에 엉덩이를 쓰다듬던 손길이 얌전히 허리 위로 내려앉았다.

"어서 오십시오."

직원의 안내에 따라 오픈키친이 보이는 넓은 홀을 지나 별실 룸으로 이동했다. 걸어가는 내내 어쩐지 얼굴이 새빨개져 있을 거 같아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한쪽 벽이 통유리여서 탁 트인 종로가 내다보이는 룸에 들어서자, 바흐가 의자를 빼주었다. 일행이 도착하면 다시 들르겠다는 직원이 룸을 나가자, 겨우 고개를 빼꼼히 들었다.

중식당 특유의 둥근 테이블 위에는 4명분의 식기가 세팅된 모습이 보였다.

"흐음."

라희를 가만 바라보던 바흐가 허리를 감아왔다. 어젯밤은 밤샘의 여파인지, 집에 가자마자 그가 씻는 동안 그대로 곯아 떨어져 버렸는데, 그래서일까. 라희를 향한 깊은 눈매가 짙어져 있었다.

얼굴 위로 쏟아지는 곧은 시선에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자, 그가 손을 들어 깨물린 입술을 들췄다. 따스한 손끝이 입술을 부드럽게 쓸었다.

턱 끝이 자연스레 위로 들렸다. 바흐의 얼굴이 점점 가까워지나 싶었던 그때였다.

-달깍,

"어머! 전망이 너무 좋다!"

엄마가 호들갑스러운 목소리를 내며 별실 안으로 들어왔다. 뒤따라 들어오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역시, 유명하다더니 운치 있고, 멋있구나. 그렇지요? 여보."

도란도란 품평이 이어지는 사이, 주문한 코스요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기본 반찬으로 볶아서 소금을 뿌린 땅콩, 오이피클, 잘게 채 친 짜쌰이가 흰 그릇에 담겨 직사각형 나무 접시 위에 놓였다. 그 옆에 뚜껑 달린 중식 찻잔 안에 담긴 따스한 보이차가 나와서 뚜껑을 여니 특유의 연한 흙냄새를 풍겼다.

"특미 전채입니다."

직원이 말하며 가져온 큰 접시를 각자의 앞에 놓았다. 어제 갔던 일식집이나, 전에 방문했던 P 레스토랑과 마찬가지로 애피타이저는 드문드문 놓인 한입 요리였다.

물론 중식이니만큼 메뉴는 동파육과, 해파리냉채, 라이스 쌈 등이었지만 모든 음식이 프렌치 코스요리를 따라가는 거 같아서 기분이 묘했다. 호텔이라서 그런가? 중식은 중식만의 푸짐한 일품요리 같은 특징이 있을 줄 알았는데, 조금 실망이었다.

"어머, 예쁘다 얘! 잘 먹을게요, 한 서방."

눈으로 인사한 아빠와 함께 젓가락을 든 엄마가 인사치레했다.

"예. 입맞에 맞으셨으면 좋겠군요."

"뭘요, 보기만 해도 이렇게 좋은데, 맛은 말할 것도 없겠지요. 어쩜 이렇게 보기 좋게 세팅했을까요. 호텔 요리는 뭔가 달라도 다르네요."

요리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는 가운데 차례로 런치 코스 요리가 놓였다. 한약 냄새가 물씬 풍기는 불도장이라는 따스한 국물요리가 나오고, 스테이크 같은 통 전복 요리가 나왔는데, 언뜻 보면 정말로 스테이크 같아 보였다.

둥그런 전복 살코기 위에 흥건한 소스와 곁들인 채소와 브로콜리 세팅 때문인지도 몰랐다. 전복 살을 나이프로 잘라 한 입 맛보니 살이 탱글탱글하니 맛은 있었다.

그다음으로 바닷가재 찜이 나왔는데, 엄마는 랍스터를 먹어보는 것이 처음이라며 신기해했다. 맛은 게살과 비슷하다는 평가를 내렸다. 마지막 식사요리인 짜장면, 기스면, 볶음밥을 각자 골라 먹었다.

"얘, 어우, 배부르다. 정말 잘 먹었어요. 우리 라현이도 같이 왔으면 좋을 텐데, 일하느라 바빠서. 지금쯤 밥은 먹으려나."

후식으로 나온 계절 과일을 포크로 찍어 먹으며 엄마가 말했다.

"라현이는 가까운 데서 일하니 알아서 챙겨 먹겠지. 돈 버는 애인데.

아빠가 핀잔을 줬다.

"오늘, 드레스 고른다고 했지? 한복하고."

아빠에게 입을 삐죽거리던 엄마가 화제를 돌렸다. 테이블 아래로 잡힌 손을 서로 만지작만지작 거리던 라희는 고개를 들고 어색하게 입매를 올렸다.

"으응."

"청첩장은? 늦어도 토요일까지는 도착해야 할 텐데."

"아, 오늘 저녁까지 주소 보내달라던데. 알아서 배송해준대."

"그래? 친척들 주소는 휴대전화기에 저장되어 있으니까 그거 적어 보내주면 되겠다. 나머지 동네 사람들은 집집마다 찾아가서 하나씩 돌려야지. 교인들하고. 아, 맞다 전세 버스도 예약해야 하는데."

엄마가 골치 아프다는 듯 미간을 찡그렸다.

"버스는 제가 보내드리겠습니다."

바흐가 정중히 말하자 엄마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럴래요? 어휴, 이렇게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하지만 않았어도 여유가 있게 차근차근 준비해야 하는데 정신이 없네요."

변명하듯, 중얼거렸지만 내심 기쁜 눈치였다.

"서울까지야 두 시간밖에 안 걸리니 버스 안에서 먹을 간식만 따로 준비하면 되겠네요.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요, 한 서방."

"아닙니다. 버스 대절할 때 그 부분까지 준비하라 지시하겠습니다."

"어우, 고맙기는 한데 그럼 내가 할 일이 없는데. 명색이 장모가 결혼식에 손 놓고 있어도 되나 모르겠어요. 그나저나, 예식장에서 다 알아서 해준다니까 정말 편하긴 한데, 아무래도 나중에 라현이때는 이렇게 편히 못하겠어서 걱정이네요. 한번 이리 편히 길들면 적응하기 힘들 텐데."

"이번만이라도 수월하게 진행해주니 좋다 해야지, 사람이."

아빠가 다시 핀잔을 주자, 엄마는 입술을 뾰로퉁하게 내밀었다. 그러다가 무언가 생각난 듯, 바흐를 향해 입을 열었다.

"한 서방, 그런데 사돈 어르신들은 참석하시나요?"

"음."

바흐는 잠시 생각에 잠긴 눈치였다가 조용히 말했다.

"국내에 작은 삼촌이 계시기는 한데, 참석하실지는 모르겠습니다. 워낙 바쁜 분이라서요."

"에이, 그래도 큰 조카 결혼식인데 참석하시겠죠."

엄마가 넉살 좋게 말하자 바흐는 말없이 옅은 미소로 답했다.

"친척은 작은 삼촌 한 분뿐인가요?"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으니, 바흐가 예의 바르게 말했다.

"뉴욕에 고모님이 계시는데, 그곳에서 따로 결혼식을 올릴 예정입니다."

"결혼식이요? 또?"

"예. 회사 때문에 뉴욕에서도 생활해야 하는 만큼, 혼인 사실을 공식적으로 알리는 방법 중 결혼식이 가장 효율적이어서요. 고모님께서 진행해 주시기로 하셨습니다."

"어머, 우리도 뉴욕까지 가서 참석해야 하나요? 미국은 한 번도 안 가봤는데.“

"한국식 결혼식이라기보다는 사교 파티처럼 진행될 거라서, 두 분 편하실 대로 하시면 됩니다."

바흐의 말을 들은 엄마는 미국을 생각하며 설레여 하는 눈치였다. 지금 바흐가 한 말은 라희로서도 처음 듣는 말이어서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놀란 눈으로 바흐를 바라보자, 그가 시선을 따스이 맞추어왔다. 동시에 마주 잡은 손이 단단하게 붙들렸다.

***

“자, 신부님. 저희가 먼저 최근에 가장 인기 있었던 디자인으로 추려 왔답니다. 이 중에서 마음에 드시는 디자인으로 골라보시길 바랍니다.”

수지킴이 나란히 놓여 드레스가 빽빽이 걸린 이동식 옷걸이 두 개를 가리키며 말했다.

“뉴욕 맨해튼의 럭셔리하고 프라이빗한 감성으로 디자인된 수입 명품 드레스입니다. I 라인이나 H라인의 심플함을 원하신다면 이쪽 디자인을, A라인의 화려함을 선호하신다면 이쪽 디자인을 고르시면 됩니다.

소재는 공단 실크와 타프타 실크, 도비 실크, 더치 실크등 최고급이랍니다. 레이스는 프랑스와 벨기에 산, 스위스 산이에요. 비즈장식과 크리스털은 전부 수작업이지요. 림 아크라, 베라왕, 프로노비아스, 암살라, 케네스폴 등 유명 디자이너들의 컬렉션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점심을 마치고서, 일행은 모두 드레스 샵으로 이동했다. 원래 식전에 신랑은 신부 드레스를 보지 않는 것이 관습이라지만, 요즘은 드레스 디자인에 맞추어 턱시도를 골라야 하니 함께 고르시는 편이 나을 거라는 충고로 바흐와 부모님 모두 초이스 자리에 함께했다.

"꽃잎이 흩날리는 듯한 레이스가 페미닌 하면서도, 우아한 곡선을 자랑하는 머메이드라인 드레스도 선호하시고요, 아니면 위에는 크로스 튜브 탑이고 아래는 촤륵 퍼지는 A라인 드레스도 화사하니 아름답지요. 이쪽 디자인은 원단에 섬세한 주름을 잡아 유니크하게 디자인되었답니다. 화려한 비즈 포인트 장식이 돋보여 심심하지 않고요."

수지킴은 드레스를 하나하나 보여주면서 설명했다. 모두다 고가의 수입드레스로 멘트와 뷰잉에 각별히 신경을 쓰는 모습이었다.

“물결치는 상체 부분이 시선을 압도하면서, 유려한 실루엣이 인상적인 튤 소재의 드레스랍니다. 여성미를 극대화한 디자인이지요. 아래는 넘실거리는 트레인으로 우아한 드레프트가 멋지답니다.”

권해주는 드레스마다 대단히 아름다웠다. 새하얀 순백의 웨딩드레스는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시선을 매혹시켰다.

“한번, 시착해 보시겠습니까? 이렇게 보는 것과 실제로 입어보는 것은 느낌이 확 다르답니다. 신부님께서는 가슴이 있으시고 슬림하시니, 이렇듯 머메이드라인으로 퍼지는 드레스에다가 위는 시스루 원단으로 섹시한 분위기를 강조하는 건 어떨까요? 베라왕 드레스입니다.”

“그래, 입어보렴. 얼마나 예쁠까.”

수지킴이 권유했고 옆에서 엄마가 부추겼다. 바흐의 흡족한 눈길이 라희에게 머물자, 라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커튼이 둘리고 능숙한 손놀림의 헬퍼들이 드레스를 입히고 옷감을 매만졌다. 다시 커튼이 젖혀졌을 때, 엄마와 아버지는 반색했고 바흐는 곧은 눈길로 라희를 보며 미소 지었다.

“정말, 잘 어울리세요. 역시 예상대로 우아하고 아름다우십니다. 이쪽, 거울에 한 번 비춰 보시겠어요?”

드레스룸 한쪽 벽면을 차지한 커다란 거울에는 풍성한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낯선 여자가 서 있었다. 라희는 어색한 몸짓으로 쭈뼛거리며 어깨를 비틀어 드레스가 어울리는지 확인했다. 너무 화려한 디자인이라서 그런지, 조금 과했다.

“저기, 좀 더 심플한 편이….”

라희가 조심스레 말을 꺼내자, 엄마가 손사래를 치며 외쳤다.

“딱 좋다. 얘, 딸, 일생에 한번 드레스 입는거야. 최고로 화려하고 예뻐야지. 엄마 생각으로는 그 드레스로 하는 게 나을 거 같구나.”

“어이, 딸네미가 하자는 대로 해. 당신이 결혼하는 거 아니고 라희가 하는 거니까 잔말 말게.”

아빠가 핀잔을 주자 엄마는 눈을 흘겼다. 수지킴은 심플한 걸로요, 라고 중얼거리며 옷걸이를 들추다가 드레스 하나를 꺼냈다.

“최근 연예인들이 선택한 림 아크라입니다.”

이내 다시 커튼이 쳐지고 재빠른 손놀림으로 드레스가 바뀌었다.

“어머! 그건 더 예쁘다.”

가려진 커튼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라희를 향해 엄마가 소리쳤다. 그도 그럴 것이, 쇄골 뼈가 훤히 드러나는 튜브톱에 롱드레스 부분이 러플로 이루어져 청순한 느낌이 들면서도 풍부한 주름으로 볼륨감 있었다.

허리 부분에는 핑크빛 리본 띠가 둘리고 띠 위로는 스왈로브스키 크리스탈이 큼지막하게 박혀서 화려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풍기는 드레스였다.

“마음에 드는데?”

제 모습을 거울로 비춰보는 라희를 향해 바흐가 의견을 표했다. 라희 역시 같은 생각이어서, 드레스는 바로 선택되었다. 드레스 초이스 바로 다음은 턱시도였다.

“신랑님께서는 미남인데다가 키도 훤칠하시고 비율도 좋으셔서 두 분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그야말로 선남선녀라 보기 좋습니다.”

검은색 미끈한 턱시도를 입은 바흐와 나란히 서 있는 라희를 향해 수지킴이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엄마와 아버지도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턱시도를 입은 바흐와의 키 차이를 고려해 웨딩슈즈는 은은한 실버톤의 컬러가 예쁜 미들힐을 골랐다. 그다음은 헤어 스타일링이었다. 헤어 디자이너가 와서 드레스와 매치되는 스타일을 연출했는데, 청순한 느낌을 살리기 위해 일반적으로 쓰는 티아라 대신 꽃장식과 코르사쥬로 대체했다.

“신부님은 피부 톤이 맑고 피부결이 깨끗하셔서 색조화장을 최소화해 피부의 고유색을 살리면서 분홍빛 입술로 포인트를 주고 헤어스타일은 업스타일로 풍성하게 모아 올리면 되겠습니다. 시간이 촉박하니 신부님 피부관리는 2회 들어가고요, 목요일 내일과 토요일에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

헤어 스타일링 세팅을 모두 마치자, 부케 초이스 시간이었다.

“부케는 메인 플라워인 카라로 하시면 되겠네요. 이 디자인은 어떠세요?”

수지킴의 제안에 따라 디자인을 고르고서 옷을 도로 갈아입고 사무실로 돌아오니 실내에는 한복 명장이 대기 중이었다.

꼿꼿하고 완고한 표정의 한복 명장은 엄마를 시작으로 아버지와 바흐 그리고 라희의 치수를 재고서 조수가 가져온 비단 샘플 북으로 옷감과 디자인을 제안했다. 자리한 사람 모두 한복은 문외한인지라 명장이 추천하는 사항에 대부분 동의했다.

그중 엄마는 고름이 정중앙 있는 전통 한복이 올드해 보인다고 해서, 고름위치를 왼쪽으로 조금 바꿨다. 나이 들어 보이는 쪽이 싫다는 엄마를 위해 자수가 화려하게 들어간 분홍색 저고리에 약간 어두운 색상의 자줏빛 치마를 매치해서 화사하고 차분한 멋을 강조한 한복이 선택되었다.

“본식 당일 기초화장만 하시고 호텔로 이동해주세요. 아침 식사는 반드시 하시고 오셔야 합니다. 식이 진행될 때는 따로 식사하실 여유가 없으세요. 리허설 촬영은 금요일에 있습니다. 오전 9시까지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수지킴의 당부 어린 말을 뒤로하고 웨딩 사무실을 나섰다.

“이제 끝인가요?”

지친 라희가 묻자, 바흐가 허리를 감은 손에 힘을 주어 가녀린 몸을 끌어안으며 말했다.

“아직, 하나 더 남았어.”

바흐의 손에 이끌려 이동한 곳은 L 호텔 뒤편 L 백화점 A 관 2층이었다. 드비어스 매장에 들려, 바흐는 자신이 끼고 있는 것과 같은 디자인의 웨딩 밴드를 구입했다.

처음 방문한 명품 주얼리 샵에서 눈이 휘둥그레져서 주위를 둘러보는 엄마에게, 바흐가 장모님께도 반지를 사드리는 것이 요즘 추세라고 들었다면서 1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링을 선물했다. 엄마는 이런 반지는 머리털 나고 처음 받아본다며 입이 귀에 걸렸다.

아버지를 위해서는 R 시계를 선물로 구입해 드렸다. 아버지 역시 말로만 듣던 유명 명품 시계를 받아서 싱글벙글하다가 기분 좋게 차에 올라타 충주집으로 출발했다.

“드디어 끝났네요. 정말 긴 하루였어요.”

멀어지는 부모님 차를 향해 손을 흔들고 난 후, 라희가 피곤한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바흐는 그대로 허리를 안아 감으며 귓가에 속삭였다.

“일단, 부인이 휴식을 취하는 일이 우선이겠군.”

깊은 눈매 속 검은 눈동자가 눈짓하는 방향을 따라가 보니 오늘 온종일 시간을 보냈던 L 호텔이 보였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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