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와 그녀와 그와 나-207화 (207/214)

13. 에필로그 30

밤샘은 무리였나 보다. B4 사이즈의 칸칸이 줄 쳐진 빈 시험지를 앞에 두고 비몽사몽 간에 펜을 굴리다 보니 어느덧 점심시간이었다. 그 시간에 미처 밥 먹을 겨를도 없이 수마에 못 이겨 아무도 없는 강의실에서 고개를 박고 정신없이 쿨쿨 자다 눈을 뜨니 다시 시험지가 눈앞에 있었다.

단답형 질문에는 흐릿한 기억을 헤매며 펜을 굴려 바흐가 정리해 주었던 퀴즈 정답지에 나왔던 답을 긴가민가하며 적었다. 이후 논술형 질문은 다행히 그가 키워드라며 챕터마다 따로 한 번씩 읊어준 단어들은 모두 또렷이 기억나서 키워드를 띄엄띄엄 나열해 놓고 문장을 이어 완성했다.

어차피 논술형 채점은 특정 단어가 온전히 들어가야 정답 처리된다면서 시간 없으면 키워드만 열심히 외우라고 했었다. 바흐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언급해주었던 특정 단어들은 뿌연 안개 같은 머릿속에서 마치 잘 구워진 토스트 빵처럼 즉각즉각 튀어나왔다.

마지막 답안까지 주르륵 적고 강의실을 나와 터벅터벅 걸었다. 학생회관 1층에서 테이크 아웃 커피를 반쯤 기울여 마신 라희의 걸음은 맑게 갠 머릿속만큼이나 가벼워졌다. 지금 이 시간부터 완연한 자유. 내일부터 한 달간, 아침 일찍 일어나 서둘러 씻고 밥 먹고 학교에 갈 필요가 없는 여름방학이다.

“언니.”

등 뒤에서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수진이 활짝 웃으며 한 손에는 커피를 들고 서 있었다.

“시험은 잘 쳤어요? 기숙사 나간 뒤로 통 못 봐서 안 그래도 궁금하던 차였는데.”

“으응. 너는? 시험 잘 봤어? 아, 맞다. 한 과목이었지. 그거 아침 첫 교시 아니었어?”

“네. 당근 잘 쳤죠. 지금 기숙사에서 짐 싸다가 머리가 띵해서 커피 마시러 학관에 나온 거에요.”

계절학기가 끝났으니 집으로 내려갈 예정인가보다. 수진은 눈을 가늘게 뜨며 장난스럽게 입을 열었다.

“약혼자분과는 잘 지내고 있어요? 진짜 잘 생겼던데. 언니가 다른 남자 눈에 차지 않을 만하더라고요. 아주 포스가 후덜덜했어요.”

밤새 함께 고생해준 바흐를 떠올린 라희는 입매를 싱긋 올렸다. 이제 말해도 되지 않을까? 수진은 그나마 가까운 사이니까. 바흐와 함께 기숙사를 나온 것도 알고 있었다. 결혼식만 올리지 않았다 뿐이지 정상적인 관계로 함께 살고 있으니까.

“약혼자 아니야. 남편이야.”

“네에? 결혼했어요? 언제요?”

수진의 눈이 놀라 동그랗게 떠졌다.

“어, 혼인 신고만.”

“헐. 잘난 남자 미리 찜 해 놓으려고 수 쓴 거군요! 이렇다니까. 멋진 남자들은 일찍부터 죄다 임자가 있더라고요.”

수진이 짓궂게 놀리자 라희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가까운 곳 그늘진 벤치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이제 방학인데 무얼 할 거냐는 수진의 물음에 라희는 남편 따라 뉴욕으로 갈 거 같다고 답했고 수진은 뉴욕이라니 진짜 부럽다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넌 뭐할 건데?”

“음, 고향 친구들이랑 놀고, 가까운 일본이나 다녀오려고요. 실은 중국 쪽에 가 보고 싶은데 중국어는 문외한이라서 엄두가 안 나요. 일본어는 제2외국어로 고교 때 대충 배웠거든요.”

“누구랑 가?”

“고향 친구들이랑요.”

수진은 기대에 찬 얼굴로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을 평화롭게 올려다보았다. 살랑 바람 부는 나뭇가지 사이로 비쳐든 오후의 햇살이 수진의 얼굴 위로 잘게 부서져 내려앉았다.

고작 한 살 차이밖에 나지 않지만, 주말에 그 난리를 겪어서인지 세상 때 묻지 않고 구김살 없이 풋풋한 수진을 보니 자기도 모르게 빙그레 미소가 지어졌다. 그 나이대에 걸맞은 수진의 평온한 삶은 라희에게는 미처 가보지 못한 아련한 길이었다.

“그럼, 다음 학기에 봐요. 언니.”

“그래. 일본 잘 다녀오고.”

“언니도요!”

밝게 손인사하는 수진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나서 곧바로 학교 밖 지하철로 향했다. 길 가에 놓인 쓰레기통에 빈 종이컵을 던져 넣고 막 돌아서려는데, 주머니 속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발신인은 엄마였다.

“라희니? 오늘 시험 친다며? 잘 쳤니?”

“어, …응.”

또 무슨 용건일까 싶어 말투가 조심스러워졌다.

“한 서방이 이번에 네 오빠 일로 애를 많이 썼는데, 아무래도 답례를 해야 할 거 같아서. 변호사 선임한 것도 그렇고, 우리 머물 방 잡아 준 것도 그렇고. 엄마가 이번 주에 만나서 밥 한번 산다고 말하긴 했었는데, 언제가 좋겠니? 편하게 주말까지 기다릴까 했는데, 오늘 한 서방이 안부 전화를 했거든, 말숙이 일이 완전히 해결 났다고 더는 걱정하지 마라더라. 그래서 아무래도 생각날 때 해치우는 게 낫지 싶어. 한 서방 보통 몇 시에 퇴근하니?”

“6시는 넘어야 집에 와.”

“가리는 음식은 없고? 지난번에 보니 식성은 좋더구나. 한정식으로 할까? 아니면 일식.”

한정식은 질색이었다. 뿔테 가족을 만난 곳과 말숙이를 만난 곳 모두 한정식집이었다. 애써 좋은 생각으로 덮으려 해도 안 좋은 기억이 너무 많았다. 당분간 한정식집을 쳐다보기도 싫었다. 바흐가 매운 것은 싫어하지만, 초밥은 싫어하지 않는다고 했으니까 아무래도 일식이 낫지 않을까?

“일식.”

“그래, 일식이면 네 오빠도 좋아해. 무난하게 엄마가 엊그제 묵었던 호텔 일식당에서 밥한 끼 사야겠다. 그 호텔 스위트룸을 난생처음 가봤는데 엄청 좋더라. 방도 넓고 쾌적하고.”

경찰서에서 가장 가까웠던 L 호텔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언제가 좋겠니? 엄마는 내일이나 모레, 빠를수록 좋은데, 마침 라현이네 집 청소도 해야 할 거 같고. 고 요망한 계집애 물건 싹 정리해서 치워버려야지.”

라희는 바흐에게 물어보고 연락 준다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시계를 보니 주식시장은 끝났을 시간이었지만, 혹시 일하는데 방해될지 몰라 문자로 남겼다.

이내 답신이 왔다. 내일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받은 라희는 엄마에게 전화할까 망설이다가 문자를 보냈다.

곧 내일 7시에 일식당에 예약을 걸어놓겠다는 답신이 왔다.

“하아…….”

바흐에게 합의금 1억을 빌리라던 오빠와 엄마를 또 봐야 한다는 생각으로 마음속에 먹구름이 몰려왔지만, 오빠 일로 인사치레를 하겠다는데 말릴 명분도 없었고 곧 바흐와 함께 뉴욕으로 떠나면 얼마간 볼일 없을 테니 빨리 맞닥뜨리고 헤어지는 편이 나았다.

***

“야.”

화요일 당일, 호텔 로비에서 만난 오빠는 일식당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라희에게 툭, 말을 건넸다.

“뭐.”

라희가 귀찮은 듯, 답하자 라현의 미간이 불쾌하게 좁혀 들어갔다.

“이게, 갈수록 버릇이 아주. 그냥, 하여튼, 내가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

별로 궁금하지는 않았지만, 마침 바흐도 일이 있어 조금 늦는다고 했고, 함께 엘리베이터에 탄 엄마와 아버지가 무슨 말이 이어지나 궁금한 표정으로 주의를 잔뜩 기울이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관심을 표했다.

“너, 지난번에 빚 있다고 했잖아. 매부에게 빌린 거.”

“어.”

“그거 진짜 다 갚을 거냐?”

“어.”

라희가 시큰둥하게 짧게 답했다. 또 무슨 속 터지는 이야기를 꺼낼 건지 답답하기만 했다. 라현이 뭔가 더 말을 이으려 할 때, 엘리베이터가 정지했다. 38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같은 층의 한정식 식당과 일식당이 보였다.

일행은 한자명패가 밝게 빛나는 블랙톤의 입구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무와 원목으로 인테리어된 실내를 지나 미리 예약해둔 방으로 안내받았다. 코너에 위치한 사각형 룸은 시원하게 트인 창 너머로 종로가 한눈에 내다보였다. 저 멀리 청와대까지 보였다.

“이야. 역시 도심 호텔이라 뷰가 다르구나. 여기 음식 가격대가 장난 아니겠는걸.”

의자에 앉은 라현이 창밖을 기웃거리며 중얼거렸다.

“너도 마음고생 했으니, 이왕 여기까지 온 거 몸 보신한다 생각하고 많이 먹어. 한 서방이 사장님이라서 대접하느라 격을 맞춘 거지 언제 우리가 이런 데서 먹어 보겠니. 어머, 이거 예쁘다.”

테이블 가운데 소복이 놓인 생화를 쓰다듬으며 엄마가 말했다. 엄마는 이내 왜색 물씬 풍기는 개인 접시를 살피다가 정갈한 나무젓가락을 집어 들며 신기해했다.

“그나저나 한 서방은 많이 늦는다니? 전화 한 번 걸어보렴.”

“아니, 얼마 안 걸릴걸. 사무실에서 일찍 출발했다고 연락 왔었거든.”

라희가 휴대전화를 손에 들고 막 통화버튼을 누르려 할 때, 똑똑, 문밖에서 정중한 노크소리가 들렸다. 이내 직원이 조용히 연 문안으로 바흐가 들어왔다. 부모님께 예의 바른 몸가짐으로 인사부터 건넸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뭘. 이리 와 어서 앉게.”

아빠가 권하는 자리에 앉은 바흐는 라희와 눈을 맞추고서 옅게 웃어 보였다.

“일행분 모두 도착하셨습니까, 예약하신 메뉴를 내올까요?”

바흐 뒤를 따라 들어온 직원이 문 앞에서 묻자, 바흐가 손짓으로 직원을 불렀다. 가까이 온 직원에게 그가 귀엣말로 뭐라 작게 속삭였다. 이내 직원은 고개를 숙이며 알겠습니다 라고 답하고 룸을 나갔다.

“무슨…?”

엄마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말끝을 흐리며 물었다. 바흐는 맞은편 엄마를 향해 별일 아닙니다, 라고 간단히 답했다. 그러자 바흐 옆에 앉은 라현이 한쪽 눈썹을 올리며 말했다.

“에이, 엄마, 돈 굳었네. 오늘 식사 매부가 내려나 봐. 엄마가 주문한 밤부 코스 말고, 오마카세로 교체 주문하던데.”

“어머. 이번은 우리가 대접하는 건데.”

짐짓 놀란 듯 말했으나 기뻐하는 기색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L호텔 일식당 최고 코스인 오마카세는 밤부 코스와 거의 두 배 가까운 가격 차가 났다. 바흐는 단정한 어투로 오늘은 제가 늦었으니 다음번에 얻어먹겠습니다고 답했다.

이내 똑똑, 노크소리와 함께 직원들이 룸 안에 음식을 서빙하기 시작했다. 첫 스타터로 검은 도자기 안 잘게 썰려 담긴 빙수 얼음 한가운데 꽃 모양으로 깍둑썰기한 후 샌드위치처럼 참치와 산마를 켜켜이 얹고 맨 위에 새카만 캐비어 알을 수북이 쌓아 장식한 3층짜리 참치 타르타르가 놓였다.

젓가락 끝으로 툭, 하고 부서트리자 네모난 분홍빛 살점과 새하얀 마가 캐비어 토핑으로 골고루 섞여들어 갔다. 입에 넣어 맛보니 입에 착 감겨드는 들큰한 간장과 톡 쏘는 은근한 와사비가 상큼했다.

“음…, 맛있다.”

엄마가 기분 좋은 비음 섞여 말하자, 바흐가 다행이군요 라고 답했다. 그다음은 전채 요리로 마치 프렌치 웰컴 요리 같이 한입 크기의 음식들이 각각의 특성을 돋보이게 해줄 그릇에 담겨 예술 작품처럼 한 접시에 전시되어 제공되었다.

일식이니만큼 게살, 주꾸미, 장어, 개불 등 해산물이 주인공이었다. 라희가 예쁜 크리스털 접시에 놓인 주꾸미를 집어들자, 바흐가 그 아래 깔렸던 얇은 흰색 살점을 젓가락으로 끄집어내 치웠다. 의아한 표정으로 보고 있으니 그가 낮게 중얼거렸다.

“소라.”

흰색 고깃덩이는 가늘게 슬라이스 된 소라였나 보다. 라희가 세심한 배려에 고마워하며 미소 짓자 바흐도 단정한 입매를 올려 답했다.

별 의미 없는 이야기가 두런두런 오가고 바흐가 간간이 답하는 가운데 이어지는 일식 코스는 같은 호텔 같은 층수 신관에 위치한 P 프렌치 레스토랑을 방불케 했다. 맑은 해물 국과 한입 거리가 나오고 아찔한 얼음조각으로 장식된 접시 위에 먹기 좋은 크기로 두툼하게 썰린 회가 잔뜩 나왔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딱딱한 빵으로 뒤덮은 수프 같은 해물 찜 요리가 나오고, 개인 화로에 구워먹을 수 있는 한우 채끝 구이와 함께 식사 메뉴로는 일식 우동과 정갈한 스시가 서브 되었다.

마지막 디저트로 계절과일 모둠과 달달한 일본식 젤리 같은 스낵을 집어먹으며 라현이 입을 열었다.

“매부, 아까 라희에게도 말을 했지만요.”

말? 무슨? 엘리베이터에서 한 말을 말하는 건가. 라희가 미간을 좁히며 오빠를 바라보자, 라현은 피식 가볍게 입매를 올렸다.

“제가 요 며칠 생각을 해봤는데 말입니다.”

“네.”

“라희와 결혼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오빠가 꺼낸 말은 정말 뜬금없었다. 시쳇말로 헐이었다. 라희가 놀라 눈을 깜빡이며 라현을 쏘아보자, 라현은 소리 없이 입 모양으로 말을 전했다.

‘친족상도례’

그러고는 시선을 돌려 엄마를 눈짓했다. 엄마는 이미 오빠가 이런 말을 할 것을 알고 있었다는 얼굴로 웃음 띠고 있었다.

아까 엘리베이터에서 바흐에게 빌린 오천만 원을 갚을 거냐고 물었던 이유였나 보다. 결혼하게 되면, 법률적으로 배우자에게 진 빚을 갚지 않아도 되니까. 빚을 없애려 오빠가 그렇게 길길이 날뛰며 반대하던 결혼을 추진하다니. 참으로 라현다운 무모하고 편리한 계산법이다.

“어차피, 저야 이번일로 당분간 결혼생각이 없으니. 매부와 라희가 먼저 결혼해도 무방할 거 같더군요. 지난번 시골집에서 들은 말도 있고 해서 저는 언제든 환영입니다. 마침 매부와 라희가 한집에서 살고 있기도 하니 이목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빠를수록 좋겠지요.”

오빠의 말을 들은 라희는 바로 바흐의 안색을 살폈다. 바흐는 잠시 눈을 낮춰 생각하는 눈치였다가 엄마와 아버지를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결혼은 당장에라도 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만, 결혼에 앞서 먼저 두 어른께 말씀드릴 사안이 있습니다. 저는 중학교 때, 부모님을 여의였습니다.”

“어머, 저런.”

엄마가 안타깝다는 듯이 짧게 혀를 차며 물었다.

“어쩌다가요?”

“빗길 교통사고였습니다.”

“에고. 그랬군요.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잃었으니 얼마나 마음고생이 컸을까요. 그래도 이렇게 잘 자라주어서 고맙네요.”

상투적인 위로의 말을 건네던 엄마는, 고개를 살며시 갸웃거리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런데 사돈어른께서 안 계시니, 이를 어쩐다. 결혼식을 올리려면 일단 집안 어르신을 만나서 결혼 준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야 수순이 일 거 같아서요.”

“그 점은 염려치 않으셔도 됩니다. 결혼식에 관한 사항에 대해서는 장모님께서 결정하시는 대로 따르겠습니다. 당사자인 저와 직접 상의해 주십시오.”

“그럼, 날짜는 언제로 할까요.”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엄마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바흐는 입매를 슬쩍 올리며 답했다.

“말씀드렸다시피, 당장에라도 하고 싶습니다. 속행으로 이번 주말은 어떨까요. 일요일이요.”

마치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한 즉각적인 답을 들은 엄마는 놀라 눈을 크게 뜨고 깜빡이다가 말했다.

“그건…. 너무 촉박하지 않나요? 식장도 예약해야 하고, 친지들에게 연락도 돌려야 하는데요.”

“식장은 오는 길에 이 호텔 연회실을 알아보니 일요일 오후가 비어 있더군요. 두 분만 괜찮으시다면, 바로 예약을 잡겠습니다. 호텔 담당 웨딩 플래너가 결혼식 일체를 책임지고 진행할 겁니다. 오늘이 화요일이니 앞으로 주말까지 친지분들께 연락하실 시간은 넉넉하지 않을까요.”

급작스러운 제안에 엄마는 고개를 돌려 아버지를 마주 보며 눈으로 의사를 물었다. 아버지는 괜찮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라현의 말대로 두 사람이 한 집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는 이상, 이목을 생각해서라도 빠른 편이 낫다고 판단한 듯했다. 딸 가진 부모입장에서는 남자 쪽만 듬직하다면 후에 변심하거나 잦은 다툼으로 애정 전선에 조금이라도 금이 가기 전에 확고히 관계를 다져두는 쪽이 백번 나았다.

“좋아요. 그렇게 합시다. 한 서방.”

단단히 결심한 듯한 엄마의 또렷한 확답을 들은 라희는 그저 멍했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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