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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칵테일파티(Cocktail Party)는 가장 많이 행해지는 파티로서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부담 없는 파티다. 칵테일을 중심으로 하는 식전 파티로서 여러 종류의 카나페를 곁들여 손님을 대접한다. 창립 기념, 환영 또는 환송, 개업 축하 등을 위하여 혹은 크리스마스나 신년에 주로 많이 열린다. 파티 시간은 오후 5~8시까지 저녁 식사 전이 보통이다. 참석자의 복장이나 시간도 제약받지 않기 때문에 편리한 사교모임이다.
라희는 칵테일 파티의 정의가 소개된 휴대폰 화면을 스크롤 하면서 고민에 잠겼다. 지금은 오후. 이제 곧 혜영을 만나러 L 갤러리로 가야 하는데, 무얼 입고 가야 할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미간을 좁히며 소파에서 몸을 일으킨 라희는 블루톤의 침실 옆 흰색 드레스 룸으로 향했다.
문이 활짝 열린 티파니 스위트의 커다란 드레스룸. 브라이덜 샤워(Bridal Shower:신부파티)용으로 주로 사용되는 티파니 스위트의 특성상 드레스룸은 공간이 넉넉한 편이었고 벽장과 갈아입은 옷을 비춰볼 수 있는 전면 거울이 비치되어 있다. 라희는 옷장 문을 열고 걸려 있는 옷들을 하나하나 살폈다.
지난번, 파크 에비뉴의 파티장에 얼떨결에 바흐를 따라 나섰을 때 입었던 검은색 드레스가 눈에 들어왔다. 확실히,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날 입었던 그대로 착용하면 될 것 같아서 언뜻 손이 가려 했으나, 이내 손을 내리고서 고개를 저었다.
소호 갤러리에서 열리는 파티라면, 예술가들이나, 예술에 관심이 있거나, 조예가 깊은 사람이 대다수 일터. 아무래도 억만장자들을 위한 사교파티는 아니지 싶었다. 괜히 이런 디자이너 드레스를 입고 가면 되려 평범하게 차려입은 사람을 사이에서 튈지도 몰랐다.
자의식이 강하지도, 남들에게 주목받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 성격. 그런 라희에게 화려한 블랙 러플 샤방한 드레스는 무리였다. 옷장을 들여다보며 한참을 고민하던 라희는 휴대폰을 손에 들고 꾹꾹 버튼을 눌렀다. 귀에 갖다 대고 기다리니 이내 규칙적인 신호음이 들려왔다. 몇 번의 신호음 끝에, 저쪽 편에서 전화를 받았다.
"어, 라희야."
"언니. 갤러리세요?"
"응. 뭐, 그렇지. 참, 언제 올 거니? 오늘 칵테일파티는 5시부터 시작이거든. 우리 그이가 지금 기분이 최고라서 진짜 재미있는 파티가 될 거야! 음식은 물론이고 칵테일과 샴페인도 추가로 넉넉히 주문해 두었어. 오늘 밤새도록 파티를 할지도 모르겠다."
"무슨 좋은 일 있으세요?"
혜영은 기분이 정말 좋은지 후훗, 하는 즐거운 웃음소리를 흘리다가 말했다.
"그게, 오늘 담당 딜러가 알려주었는데. 지난번에 말했다시피, 우리 그이는 런던에서 주로 활동해서 뉴욕은 처음이거든. 그런데 말이지, 지금 전시회가 시작되기도 전에 우리 그이 작품을 마음에 들어 한 수집가가 이번 전시작품 전체를 구매했대. 한마디로 완판이야. 소문이 여기저기 났는지 오늘 내내 입이 귀에 걸려서 기자들과 인터뷰하느라 아주 바쁘시단다."
"정말 축하드려요! 언니."
"그러게. 정말 결혼선물을 미리 받은 거 같은 기분인 거 있지. 그런데..?"
전화한 용건을 붇는 듯한 어조를 들은 라희는 재빨리 입을 열었다.
"아, 그게. 드레스코드가 혹시 있나 싶어서요. 뉴욕에서 칵테일파티는 처음이거든요."
"에이, 그런 게 어딨어. 그냥 편하게 입고 다니던 데로 입고와. 파티에 초대된 대부분이 예술계통 종사자들이라서 솔직히 아무렇게나 입어도 돼. 나중에 캐시랑 제프도 온다고 했으니까, 부담 갖지 말고 조금 늦게 와도 되겠다. 게네들 6시 이후에 온다고 했으니까. 낯선 곳이 뻘쭘하면 대충 시간 맞춰서 오던지."
"네, 언니. 그럼. 이따 뵐게요."
"그래. 그럼. 우리 그이랑 기다리고 있을게."
전화를 끊은 라희는 옷장에서 평소 즐겨 입던 블랙 스키니진과 간편한 긴소매 티셔츠를 꺼내 들었다. 평소처럼 입으면 될 것을 괜히 오버해서 생각했나 하는 생각에 실소가 머금어졌다.
혜영의 말대로 6시 이후에 느지막하게 가서 얼굴 좀 비추고 그림 좀 감상하다가....
'가만.'
라희는 고개를 갸웃하며 생각에 잠겼다. 오늘 바흐가 온다고 했던가. 될 수 있으면, 이라는 단서가 붙긴 했지만 평소 그의 언행으로 볼 때 모습을 보일 확률이 더 높았다. 그렇다면 그와 함께 갤러리에 있다가 호텔로 돌아오면 될 거 같았다.
흘깃, 고개를 돌려 테이블 위에 놓인 탁상시계를 보니 제법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간 뉴욕에 머물면서 그 유명한 브로드웨이나 타임스퀘어 쪽은 스쳐지나 듯 걸었을 뿐 찬찬히 구경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쪽에 들러서 관광객의 충실한 자세로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명소를 거닐다가 갤러리로 이동하면 시간이 얼추 맞을 거 같았다. 휴대폰 맵을 검색해보니 타임스퀘어까지는 도보로 30분 정도, 그리고 거기서 소호까지도 30분 거리였다. 아주 먼 거리도 아니고, 가는 길에 맨해튼 관광도 할 겸 해서 천천히 걷기로 했다.
"으드드드."
옷을 걸쳐입고 기지개를 길게 켠 라희는 걷기에 앞서 목과 몸을 비틀어 간단한 스트레칭을 했다. 그간 운동다운 운동을 전혀 하지 않아서인지 몸이 둔해진 느낌이었다. 깍지를 껴 팔을 길게 늘인 후, 긴 숨을 내쉬고 나서 마지막으로 현관 앞쪽에 걸려 있던 코트를 집어들어 호텔 룸을 나섰다.
***
어느새 어두워져 거리마다 조명을 환히 밝힌 맨해튼 소호(SOHO:South of Houston 휴스턴가 남쪽)는 석조 건물 즐비한 5번가와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작은 규모의 붉은 벽돌 건물이 다닥다닥 늘어선 가운데, 석조 건물이 드물게 보였다. 갤러리만 즐비할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실제 가보니 옷 가게, 카페, 레스토랑, 상점과 군데군데 갤러리가 혼재된 형태의 거리였다.
라희는 W 브로드웨이 거리를 걸어 내려오다가 사거리에 있는 하얀색 석조건물의 L 갤러리 간판을 발견하고서, 그쪽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제법 규모 있는 갤러리답게, 건물은 크고 넓었으며, 현관에서 힐끗 보이는 내부는 많은 사람으로 북적이고 있었다. 라희는 눈을 내려 손에든 꽃다발을 살펴보고서 갤러리 입구 유리문을 당겨 열었다.
"어머! 왔니!"
갤러리 안으로 들어서자 사람들 속에 섞여 있던 혜영이 밝게 인사하며 라희를 맞았다.
"언니. 축하해요."
라희가 건넨 꽃다발을 받아든 혜영은 꽃다발에 코를 묻고서 꽃향기를 맡으며 입매를 올렸다.
"뭘, 이런 것까지. 그냥 와서 얼굴만 비쳐도 되는데. 고마워. 안쪽으로 가자."
L 갤러리 내부는 여느 갤러리들처럼 전시실이 구획되어 3개의 룸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입구에서 조금 지나면 가장 큰 메인 전시실이라고 할 수 있는 1전시실이 나왔다. 당연하게도, 사람들로 붐비는 넓은 내부에는 긴 테이블 위에 갖가지 파티음식과 바텐더에게 즉석 해서 주류를 주문할 수 있는 스탠딩 바가 설치되어 있었다.
"자. 여기. 초코티니."
혜영은 바 위에 놓인 초콜릿 시럽 듬뿍 들어간 칵테일글라스를 권했다. 이제 생리기간도 아니어서 단 것이 그다지 절실하지 않은 사태라 라희는 고개를 저어 사양하고서 옆에 놓여 있던 화이트 와인잔을 들었다.
"오늘은 덜 달달한 이걸로 할게요."
"그럴래? 그래. 저쪽에 우리 그이."
혜영은 전시실 벽 근처에 대형 인물화 앞에 사람들로 둘러싸인 재하에게 라희를 데려갔다.
"오셨네요."
"축하드려요...."
라희가 호칭을 망설이며 서 있자, 혜영이 팔꿈치로 쿡 라희를 가볍게 치면서 넉살 좋게 말했다.
"형부라고 불러. 그럼 되겠네. 우리가 여기서만 보고 안볼 사이도 아니고. 어차피, 조금 있으면 그렇게 될 테니까."
"아, 네. 언니. 전시회 오픈, 축하드려요. 형부."
재하는 형부라는 소리에 더 크게 활짝 웃으며 약간 으스대면서 말을 건넸다.
"뭘요.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 이 작품들, 이번 전시 이후로 못 보는 거 아시죠? 다신 없을 기회이니 감상 잘하시고요."
"네. 말씀 들었어요. 혜영 언니가 아까 입이 귀에 걸려서 말해 주던걸요."
"하하, 그렇군요."
재하가 멋쩍게 웃었다. 그때 뒤에 서 있던 사람들이 그에게 헛기침하며 눈짓을 보냈다. 잠시 앞으로 나와 라희와 짧은 인사를 나눈 재하는 곧 주위 사람들에 의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오늘 전시회의 주인공답게, 둘러싼 사람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해서 굉장히 바빠 보였다. 갤러리 실내를 감상하며 배회하는 사람들과는 조금 다르게, 고급스러운 정장을 차려입은 비지니스맨 분위기의 중년 남성과 날카로운 지적인 인상을 보이는 이들도 몇 보였다.
"이번 전시는 크기별로 배치를 했어. 1 전시실은 보다시피 대형 작품 위주이고, 2, 3전시실은 조금 더 작은 작품인데 감상하기에는 그쪽이 더 취향에 맞을 거야. 1전시실은 미술 평론가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파격적인 작품이 전시되어 있어서 호불호가 갈리거든."
혜영의 설명을 들으면서, 천천히 벽에 걸린 커다란 그림들을 둘러본 라희는 이내 2전시실을 거쳐 맨 구석의 3전시실에 다다랐다. 총 30여 점이라고 전시된 작품을 하나하나 소개해주던 혜영은 이내, 갤러리 직원이 부르는 소리에 자리를 비웠다.
라희는 와인잔을 기울이며 3전시실을 거닐었다. 총 8점의 그림이 걸려 있는 전시실에는 서너 명의 사람이 있었는데 라희와 마찬가지로 혼자 온 사람들이 대부분인듯, 서로에게 큰 관심을 두지 않고 덤덤한 표정으로 각자 그림 감상에 집중했다.
"어! 여기 있을 거라더니."
뒤쪽에서부터 반갑지 않은 남자 목소리가 들리자, 라희는 눈을 한번 감았다가 뜨고서 고개를 돌렸다. 예상대로 곱슬머리에 편한 옷을 걸친 제프가 라희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언니는요?"
라희가 퉁명스럽게 묻자, 제프는 어깨를 으쓱 올렸다.
"혜영 누님이랑 이야기 중이죠. 뭐."
"그쪽은, 오늘의 주인공인 재하 형부나 혜영 언니와 할 말 없어요?"
쏘아대듯 쌀쌀맞은 말투에 제프는 눈썹을 살짝 들어 올리며 시큰둥한 표정으로 답했다.
"우린 앞으로 질리도록 볼 사이인지라. 그나저나, 벌써 형부라고 불러요? 아직 식도 안 올렸는데."
"앞으로 안 볼 사이도 아니라서요. 호칭은 차차 익숙해져야죠."
"에이. 모르시는구나? 식장에 들어가서 결혼식 마치기 전까지, 사람 일은 알 수 없는 거에요. 로맨틱 무비도 안 봤어요? 결혼식 날 깨지는 거 많잖아요. 괜히 그렇게 형부형부 불러대면서 김칫국부터 마셨다가 헛물켠다고요."
"꼭 그러길 바라는 것처럼 말하네요? 얄밉게. 혜영 언니가 그쪽이 이런 말 하고 다니는 거 알아요?"
제프는 턱을 살짝 비틀더니 손에 든 칵테일 잔을 느리게 기울였다가 한 모금 마시고 나서 냉소적으로 말했다.
"그닥. 알아도 상관없고요. 없는 말 지어내서 하는 건 아니잖아요? 실제 그런 일이 왕왕 있다니까요."
힐끗, 라희에게 시선을 던지면서 제프는 대수롭지 않게 중얼거렸다.
"남녀간의 일이란 아무도 모른다고요. 조화가 오묘하다니까요. 그러니, 예식 마칠 때까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사람이란 말이죠. 유비무환. 백업( backup: 차선책)을 미리미리 챙겨두고 있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뒤통수 크게 맞는다죠. 그래서."
잠시 말을 끊은 제프가 잔뜩 쏘아보는 라희를 빙글 웃는 낯으로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어때요? 내 제안. 아직 유효한데."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