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 저택의 현관에 들어서자마자였으니까. 마트에서부터 미묘히 흐르던 열기는 집안이라는 공간을 만나자 마치 점화된 스파크처럼 팟, 하고 불꽃을 일으키며 두 사람을 휘감았다.
"흐읍..."
서로를 단단히 감싸 안고서, 정신없이 뜨거운 입술이 맞물렸다. 입술과 입술의 틈 사이로 더운 숨결이 넘나들며 뒤섞였다. 그리고 그안, 촉촉하고 말캉한 혀가 만나 진득한 타액속에 이리저리 얽히고 설켰다.
입안 가득 스미는 달큼한 내음. 코끝을 스치는 익숙한 체향. 귓가를 어지럽히는 서로의 거친 숨소리. 그 사이 정신없이 움직이는 입안 감미로운 감촉은 부드럽고 촉촉하기까지 하다.
달았다. 꿀처럼 달디달고, 연유처럼 진하고 농밀했다.
끈적이는 타액 속에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혀가 서로를 뜨겁게 옭아매며 깊이 빨아들였다. 있는 힘껏 빨아냈다가, 산들걸는 미풍처럼, 가벼운 깃털 끝처럼 약하게 빨아내며 비벼대니 찌릿찌릿한 감각이 허리 아래, 은밀한 곳까지 뻗쳐나갔다. 뜨거운 것이 고이는 기분.
"아..."
혀가 질척거리며 얽혀들어 감에 따라 뭉근하게 욕망으로 뭉친 아래가 저절로 조여든다. 배꼽 아래에서 시작된 열기가 너무 뜨거워 이젠 머릿속이 어질거렸다. 점차 눈앞이 흐려진다. 은밀하게 고여 있던 끈적하고 찐득한 뭔가가 서서히 내벽을 따라 흘러내리는 느낌.
라희는 열기를 이겨내기 위해 미간을 찡그리며 그의 목에 더욱 매달렸다. 발꿈치가 들리고 몸이 그에게 밀착될수록, 묵직한 살덩이의 체온을 아는 배꼽 아래가 순식간에 축축히 젖어갔다. 팬티 위 뜨끈하게 미끌거리는 감촉이 못내 거슬린다.
그가 허리를 잡고 있던 손을 쓸어내려 둥그스름한 엉덩이를 꽉 움켜쥐자, 거친 호흡 속, 가늘게 뜬 시야로 보이는 세상은 몽환적으로 일그러져 온통 얼룩졌다.
커다란 손이 엉덩이 결을 매만지며 손바닥을 활짝 쥐었다 폈다 할 때마다, 짜릿짜릿, 손아귀에 뭉개진 살덩이가 그의 뜨거운 체온에 형체도 없이 녹아내리는 같다.
내부에서 시작된 열기로 인해 전신의 피가 바짝바짝 타는 기분. 이미 촉촉하게 젖은 몸은 그가 주는 쾌락에 속절없이 흠뻑 적셔져 갔다.
입술 안쪽 여린 살이 맞비벼지면서, 아래에서는 감당할 수 없는 후끈한 열기가 피어올랐다. 힘있게 마찰되는 혀끝에서부터 짜릿거리는 느낌이 타고 흘렀다. 미끈한 혓바닥이 혀끝을 휘감아 올리자, 거기에서 불붙듯 시작된 스파크는 가슴 안쪽까지 타고 내려와 심장을 울리다가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하아, 아, 하..."
눈 밑까지 차오른 열기는 연신 뜨거운 숨을 흘리게 했다. 흠뻑 젖은 살덩이끼리 부딪치는 농밀한 접촉. 서로가 맞물려 비벼지는 질펀한 쾌감. 눈앞이 어질어질하도록 아찔한 쾌감에 서서히 적셔 들어간 몸이 그를 간절히 원했다.
겉보기에는 단순 입술과 입술을 맞대지고 혀가 오가며 맞물리는 키스일 뿐이었지만 실지 단순한 키스는 아니었다. 그 어떤 애무보다 짜릿하고 색정적이며 관능적이었으니까.
입안에 들어온 말캉한 살덩이를 애타게 눌러내려 문질문질대다가 날름 핥아 빨아들이자 달달한 타액이 입안 가득 흘러들었다.
애가 탄다.
내부에서 옴죽거리며 연신 용솟음치는 열기를 식히기에는 역부족이다. 깊이 빨면, 빨아낼수록, 게걸스레 탐해서 마시면 마실수록 바짝바짝 마르는 갈증은 더해져 갔다.
찐득거리는 달콤한 타액이 메마른 목구멍을 타고 흘러 가슴 안쪽까지 깊이 적셔주었지만, 아직 부족했다. 더, 조금만, 더. 그 아래, 쾌감을 갈구하며 일렁이는 뜨거운 속살을 해갈하기에는 어림없었다.
"흐...하..읍.."
라희는 턱을 들어올려 사르르 녹아버릴듯 부드럽게 말캉이는 혀를 감아내며 애타게 매달렸다. 매끌거리는 혀가 서로 맞물려 뭉근하게 눌려 비벼질때마다 입안과 아래에서 느껴지는 짜릿한 감촉이 미치게 좋았다.
입술이 양옆으로 깊게 맞물려 밀착되면서 서로의 혀와 혀가 만나 찐득하게 휘감아치다가 나릿하게 쓸어내리면, 아래가 숨도 쉴 수 없이 조여들었다가 온몸의 감각이 찌르르 달아올라 그를 향해 내달렸다. 흠뻑 젖은 근육이 뭉치는 욱씬한 감각. 묵직한 쾌감을 갈구하는 머릿속은 열기로 가득차 탁한 몽롱함에 진득하게 취했다.
그때, 엉덩이를 움켜쥔 손아귀의 힘이 풀리더니, 순식간에 허리를 타고 올라와 바지 버클을 풀어냈다. 툭, 풀린 바지 사이로 그의 손길이 젖은 곳을 찾아 더듬어 들어왔다. 검은 수풀을 헤치며 안쪽 뜨겁게 달아오른 속살로 곧장 다가왔다. 미끌.
"흣."
라희는 단단한 손끝이 닿자, 감당하지 못할 쾌감에 몸을 뒤틀어 움츠렸다. 잔뜩 오므려져 좁혀진 허벅지 사이로 파고들어와 끈적이며 젖어든 그곳에 질척하게 감기는 뜨거운 손끝의 감각.
점점 살갗을 깊이 눌러들어오며, 물기 젖은 속살에 감겨들어 좁은 길을 찾으려 헤집는 손끝의 감촉은 라희를 혀끝에 더욱 매달리게 만들었다. 혀와 혀가 거세게 맞물리면서 서로를 애타게 빨아냈다.
젖은 속살의 굴곡진 결을 미끈하게 매만지던 손끝은, 이내 뜨끈한 열기가 뿜어져 나오는 깊은 곳을 발견했다. 라희는 허리를 틀며 허벅지를 교차해 좁혔다. 그 압력에 아랑곳하지않고 대담하게 파고들어 살며시 끈적이는 입구를 더듬던 그때였다.
-지이이잉. 지이이이이이.
낮게 울리는 진동소리. 갑자기 그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때까지 서로를 끈끈하게 감싸 옭아매던 혀가 순식간에 풀리고, 입술이 아쉬워하며 떼어졌다. 격한 키스로 붉게 부풀어오른 입술 끝은 예민할대로 예민해져서 고개를 돌리는 약한 공기의 흐름에도 찌릿거리는 감각을 피워냈다.
"후..."
라희는 억눌렀던 호흡을 길게 뱉어냈다. 키스로 잔뜩 달궈진 입술의 열감을 가라앉히느라 안쪽으로 잘근 짓씹고 있는 사이, 미간을 내리 좁힌 바흐는 호주머니에서 폰을 꺼내들어 곧장 귀에 갖다댔다.
"Yes. This Is David Han."
(네. 데이빗 한입니다)탁하게 가라앉은 저음. 이내 전화기 너머 멋들어진 영국식 악센트가 들려왔다. 낯익은 목소리와 함께 저런 악센트로 말하는 사람은 딱 한명 밖에 없었다.
"제임스. 무슨일인가."
바흐가 불쾌한 음성으로 물었다. 전화기 너머 제임스는 뭐라뭐라 빠르게 말을 이었다.
"알겠네. 아니, 지금 맨해튼이 아니야. 음. 아니, 주말에는 없네.... 알겠네. 그래, 연락하지. 그럼."
띡. 그가 통화종료버튼을 길게눌러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선 천천히 숨을 내쉬고는 앞에 어색하게 서 있는 라희에게 시선을 던졌다. 서로의 눈빛이 마주치자, 희미한 미소가 오갔다. 화륵 달아오른 얼굴은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지만, 라희는 입술 끝을 동그랗게 오므려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메뉴는 어떤 것으로 먹을까요. 마침 점심시간인데."
바흐는 그런 라희를 가만 보고있다가 손을 들어 정수리 머리카락을 가볍게 흐트러트리고는 그대로 머리를 감싸 자신에게 끌어안았다. 얼굴 위로 후욱 끼치는 짙어진 체향. 라희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의 전신이 뿜어내는 농밀하고 짙은 욕망의 냄새가 코안 가득 들이차자 머리끝이 아찔할만큼 좋았다.
"든든히 먹어둬야하니, 스테이크가 좋겠지."
그의 낮은 중얼거림이 정수리 위로 내려앉자, 라희는 그의 가슴에 얼굴을 깊게 기대고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든든히 먹어야 한다는 그의 말에 마음속 깊이 동의를 표했다. 앞으로 남아 있는 주말은 충분히 길다.
***
-치이익.
무쇠 팬 속 뜨겁게 달구어진 기름 위에 손바닥만 한 둥근 고기가 놓이며 기름이 잘게 튀어 공기 중으로 부서지는 소리가 맛있게 들렸다. 그와 동시에, 스테이크가 구워지고 있는 바로 옆에 놓인 스탠 프라이팬에는 아까 마트에서 사온 손질된 채소가 초록색 오일을 흠뻑 두르고 나무주걱 아래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볶아졌다.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속 채소들은 선명한 녹색의 브로콜리, 싹 양배추, 알록달록 파프리카 믹스, 양파, 그리고 다진 마늘까지 모두 익어갔다. 색색이 먹음직스럽게 조화로운 채소들 위로 이내 후추가 듬뿍 들어간 스테이크 시즈닝 솔트가 뿌려졌다. 나무 주걱으로 몇 번 뒤섞자, 표면에 큼지막한 후추 덩어리를 묻히고서 익었다.
채소 볶음이 거의 완성되어 가자, 무쇠 팬 속에는 어느덧 앞 뒤로 튀기듯 구워진 노릇노릇한 안심 스테이크가 놓여 있었다. 스테이크를 굽던 무쇠팬 안에 고인 갈색 육즙을 볶은 채소에 쏟아 붓고서 골고루 저어주자, 근사한 냄새로 입맛을 돋우는 볶은 채소를 곁들인 안심 스테이크 한 접시가 뚝딱 만들어졌다. 옆에서 집중해서 보고 있던 라희에게는 이 모든 솜씨가 그의 능숙한 마법처럼 보였다.
"자."
바로 옆. 입을 딱 벌리고 서 있는 라희를 향해, 바흐는 스테이크와 채소가 담긴 넓은 접시를 내밀었다. 안에 담겨 있는 음식은 여느 스테이크 전문점 요리사의 솜씨라 해도 믿을 만큼 완성도가 높았다.
"와..."
라희는 손에 접시를 받아들고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흐를 바라보았다. 바흐는 입가에 희미한 미소 띠고서 말했다.
"먹지."
넓은 10인용 대리석 식탁 위에는 스테이크가 담긴 접시와 과일, 오렌지주스, 식빵 그리고 스테이크 소스가 놓였다.
"어디서 배웠어요?"
식탁에 앉은 라희가 묻자, 그는 미간을 미미하게 좁히다가 입을 열었다.
"대학에서."
라희는 포크와 나이프를 들어 부드러운 안심 스테이크를 길게 썰었다. 이렇게 그가 만든 요리를 보고 있으려니, 지난여름 강남 오피스텔에서 바흐가 만들어 주었던 베이글 샌드위치가 생각났다. 유학시절 만들어 먹던 거라고 했었지. 그의 유학시절은 어땠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제가 다니는 대학에서는 이런 거 전혀 안 가르쳐주던데요. 어디 특별한 대학 다니셨나 본데요?"
"음."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긴 표정이었다. 스테이크를 보며 눈매를 좁히다가, 그다지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말투로 중얼거렸다.
"가난했으니까. 대부분 음식을 사 먹기보다는 재료를 사서 직접 만들어 먹는 편이었지."
그렇게 부자 고모님을 두고, 대체 왜 가난했을까. 다른 먼 곳도 아니고 뉴욕이 지척인 미국 동부의 예일대학교인데. 지도 상 예일대는 이곳 롱아일랜드 바로 위로 맨해튼에서 사우스 햄턴까지와 비슷한 거리였다. 리희가 호기심에 찬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자, 바흐가 말을 이었다.
"고모님께서는 기숙사비와 학비, 그리고 약간의 생활비를 보조해주셨는데, 그 당시 기숙사에 살지 않았어."
더는 물어보지 말라는 표정을 하고 있는 그에게, 선뜻 이어질 질문을 물을 수 없었다.
'어디에 살았는데요?'
대답은 아마도.
라희는 시선을 낮춰 앞에 놓인 스테이크를 묵묵히 먹었다. 이유진이 바흐를 따라 예일대에 진학한 사실은 이미 알고 있다. 뿔테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익히 들었으니까. 연적 앞에서 이성을 놓아버릴 정도로 사랑한 연인을 두고, 이유진이 다른 남자와 오래도록 만나 왔다면. 그리고 제프 말마따나, 무슨 회장이라는 남자가 갤러리까지 차려주었다면, 필시 돈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녀와요?"
머릿속 생각이 갑자기 말로 튀어나왔다. 자기도 모르게 던진 질문에 놀란 라희는 급히 입을 다물었다. 그때 들려왔던 뜻밖의 대답.
"그래."
정적 속에 나직이 울려 퍼진 깨끗한 긍정. 군더더기도 없다. 순간, 은근한 열기로 달아올라 있던 몸이 순식간에 차게 식었다. 마치, 아이스버켓을 한가득 뒤집어쓴 기분이었다. 머리를 식히며 뼛속까지 스며드는 한기.
라희는 스테이크 접시 위에 시선을 고정하고서 이리저리 눈을 굴리다가 긴 한숨을 목구멍 안쪽 깊이 삼켰다. 순식간에 새하얗게 비워진 머릿속 때문에 감각이 사라졌다. 지금 입안에 담긴 고기의 맛을 전혀 알 수 없었다. 그저 씹히고 있다는 질감만을 느낄 뿐.
굳게 다문 입술 끝이 잘게 떨리고, 낮아진 눈동자 안에 비친 흰 접시가 슬며시 흐려졌다. 머릿속에 연신 과거, 과거, 과거라는 단어가 열차처럼 길게 띠를 이루어 스쳐 지나갔다. 재차 심호흡한 라희는 고개를 숙인 채 겨우 입매를 끌어올려 말했다.
".......맛있어요. 이거."
라희를 가만 내려다보던 그는 아무 반응 없이 그저 평소와 같은 무거운 침묵을 지켰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