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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은 바스 시내를 빠져나와 외곽 길로 10여 분간을 달렸다. 그사이 차창 밖으로 스치는 도시의 모습은 사라지고 주위는 넓은 평원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조금 더 달리자, 인적 드문 아주 황량한 벌판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벌판 한가운데 긴 활주로와 거대한 격납고, 상층이 유리로 된 작은 관제탑 그리고 멀리 띄엄띄엄 세워진 낡은 2층 건물들이 보였다.
운전기사가 출발하기 전 목적지를 공항(Airport)이라고 말했지만, 일반적인 공항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저 휑뎅그렁한 넓은 평원에 비행장이 펼쳐진 모습이었다. 오가는 사람도 전혀 없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 라희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딱딱한 활주로 길에 눈길을 던지고 있을 때, 옆에서 그가 말했다.
"콜레른 비행장(Airfield)이야. 본래가 군사 기지였기에 군용이나 교육용으로 쓰이는 곳이지만 항공기 진출입이 가능한 공항 코드(ICAO Code)가 있어. EGUO(Colerne Airport). 당국의 허가 하에 공항으로 사용 가능하거든."
"공항(Airport)와 비행장(Airfield)은 다른가요?"
라희가 궁금한 표정으로 묻자, 그가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공공적으로 사용할 수 있고 상업시설까지 이용 가능한 곳이 공항이라면, 비행장은 단지 활주로를 사용할 수 있는 공간쯤 되겠지."
그러니까, 이곳은 평상시 공항으로 사용하지 않는 군용 비행장이라는 뜻이었다.
그의 대답을 들으며 창밖을 바라보는 동안 저 멀리 거대한 격납고에 시야가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흰색의 미끈하고 거대한 물체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홀로 황량한 활주로의 시작부분에 세워져 있는 큰 비행기였다. 유선형의 매끈한 외형에 측면에 둥그런 창이 8개가량 나 있고 중앙의 동체 뒤로 두 개의 둥그런 메탈 트림의 제트 엔진이 장착되어 있는 비행기의 꼬리 날개 부분에는 G650이라고 크게 적혀 있었다.
"비행기네요."
라희가 눈매를 좁히며 감탄하듯 중얼거렸다. 텅 빈 활주로 위에 덩그러니 세워져 있는 집채만 한 비행기 한 대의 모습은 굉장히 이질적면서 위풍당당해 보였다. 옆에 세워진 자동차 두 대와 비교해 볼 때도 위압적인 크기였다.
"……. 걸프스트림(Gulfstream)이군."
그가 작게 중얼거리는 것으로 보아 바흐 역시 처음 보는 비행기 같았다. 라희는 창에서 고개를 돌려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바흐가 예약했을 텐데, 왜 정작 본인은 비행기 기종조차 모르고 있었던 걸까.
"뉴욕에 간다고 알렸더니 제임스가 갑자기 제안해 처리한 내용이라서, 나 역시 개인 전용 전세기(private jet charter)는 처음이야. 보아하니 소원을 이룬 거 같군."
제임스가 신년 이후 어떻게든 바흐로 하여금 벌어들인 돈을 쓰게 하고 싶어했음을 일컫는 말 같았다. 처음은 뉴욕에 소유한 자신의 One 57 아파트를 떠넘길 계획이었는데, 바흐가 매입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부동산이 아닌 다른 쪽으로 돈을 쓰게 하려 한 모양이었다.
"와아..."
라희가 호화스러운 제트기를 살펴보며 놀라는 사이, 자동차는 비행장 정문 입구를 지나 뾰족한 철조망이 성기게 둘린 담 너머 제한 구역 안쪽으로 진입해 비행기 근처에 멈춰 섰다. 그러자 먼저 와 있던 자동차 두 대의 문이 열리더니 정장을 입은 서너 명의 사람들이 내려서 다가왔다.
"여권, 준비해 둬."
앞 유리창 너머를 바라보며 건네는 바흐의 말에 라희는 핸드백을 뒤져 여권을 꺼내 손에 쥐었다.
"아마 여기서 수속을 진행할 거 같군."
이내 운전기사가 뒷좌석을 정중히 열어주었다. 타고 있던 차량에서 내리자, 차가운 외기가 훅 느껴졌다. 기온차이로 몸을 조금 떨고 있자 옆에 선 바흐가 팔을 뻗어 어깨를 감싸 자신을 향해 끌어당겼다. 그의 품에 안기다시피 해 어색하게 고개를 들자, 정장을 입고 서 있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모두 남성으로 비지니스 수트의 깔끔한 차림에 질 좋은 가죽재질의 서류가방을 손에 들고 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미스터 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는 프라이빗 플라이(privatefly)사의 조셉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쪽은, 오늘 수속을 도와주실 영국 내무부(the Home Office) 소속 UKBA(UK Border Agency: 영국 출입국관리국)의 윌 로이스입니다."
"반갑습니다. 조셉, 로이스 씨. 저는 진욱 한이고 이쪽은 라희 송입니다."
공무원이 함께한 공적인 자리이니만큼, 바흐는 영국에서 비공식적으로 편히 부르던 영어 이름이 아니라 여권에 기재된 정식 이름을 밝혔다.
"원래대로라면 뒤편 VIP 라운지에서 수속을 해야 하지만, 보시다시피 여의치 않은 곳이라서 부득이하게 이곳에서 간이로 수속을 해야 하는 점 사과드립니다."
윌이 여권을 건네받아 수속을 하는 사이, 조셉이 상냥한 미소를 띠고 정중히 말했다. 바흐는 간단히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이내 빠른 비지니스 영어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규정, 사항, 절차 이런 말들이 오갔다. 모두 라희가 알 필요는 없는 말인데다가 특이한 단어들이어서 의미를 자세히 파악할 수 없었다.
그동안 라희는 고개를 돌려 바로 옆에 세워져 있는 비행기를 두리번거리며 관찰했다. 활짝 밑으로 열린 비행기 출입문에서 활주로를 향해 뻗어져 나온 계단이 펼쳐져 있는 모양새는 정말로 신기했다. 층높이는 보통 건물의 1층 높이 정도였다. 저 위를 올라가면 어떤 느낌일까 하는 생각도 잠시, 곧 정부 직원인 윌이 출국 스템프가 찍혀진 여권을 돌려주었다.
"그럼, 즐거운 여행 되시길 바랍니다."
윌은 공무원다운 사무적인 말투로 건조하게 말하고서 고개를 까닥여 인사한 후 뒤돌아 본래 타고 있었던 차량으로 돌아갔다. 그러자 조셉이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와 친절한 미소를 흘리며 비행기 승강용 계단으로 안내했다.
"저희 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쪽입니다. 계단 조심하십시오."
앞서 가는 바흐의 뒤를 따라 층계를 한 걸음 한 걸음 올라 절반에 이르자 양옆으로 뻗어나온 미끈한 철제 난간이 보였다. 어쩐지 들뜬 기분에 라희는 차가운 둥근 난간을 잡고 마저 남은 계단을 올랐다.
"탑승을 환영합니다. ( Welcome aboard.)"
기체에 오르자 입구 앞에 서 있던 단정한 검은색 스커트 정장을 입은 두 명의 승무원이 활짝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이어서, 조종실 문이 스르륵 열리더니 검은색 모자를 쓰고 제복을 입은 두 명의 남자가 나타났다. 각 제복의 어깨 견장에 금색으로 띠가 붙어있었다. 검은색 모자의 끝단에 황금 테가 둘려 있고 어깨에는 4줄 견장을 붙어 있는 이가 자신을 캡틴(captain: 기장)이라고 먼저 소개했고, 옆에 서 있던 3줄 견장은 코파일럿(co-pilot:부기장)이라고 소개했다.
"Hello and welcome aboard Mr. Han and Miss Song. My name is captain Tom and This is Sam. and Sera, Lisa. Nice to meet you."
(안녕하십니까. 탑승을 환영합니다. 미스터 한 그리고 미스 송. 내 이름은 캡틴 탐이고 이쪽은 샘, 세라, 리사 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Nice to meet you."
(만나서 반갑습니다.)바흐의 인사말에 기장은 환히 웃으며 말을 이었다.
"콜레른에서 뉴욕까지 대략 7시간 30분 정도 소요됩니다. 탑승하신 비행시간 동안 안전하고 편안하게 목적지까지 모시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기장의 말이 끝나자, 모두 밝은 표정으로 눈인사를 건넸다. 같이 동승했던 조셉이 활짝 웃으며 바흐와 라희에게 차례로 사교적인 악수를 건넸다.
"그럼, 비행을 시작해 볼까요. 저의 임무는 여기까지입니다.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두 분. 그럼 쾌적한 여행되시길."
조셉은 정중히 인사를 마치고 비행기 출입구를 나가려다 멈칫하더니, 품에서 고급스러운 하얀색 봉투를 꺼내 바흐에게 건넸다.
"참, 팔머 씨로부터의 메시지 카드를 전해 드린다는 것을 깜빡할 뻔 했군요. 여기 있습니다. 그럼."
조셉은 다시 인사하고 승강용 계단을 내려갔다. 기장과 부기장도 눈인사를 마치고 조종 칸으로 향했다. 조종실 문이 닫히자 밝은 미소를 보이는 승무원들이 자리를 안내했다.
"저는 세라입니다. 이쪽입니다."
비행기 문 부근의 앞쪽 부분은 승무원 실(crew compartment)이었다. 그곳을 지나 세라가 모던한 분위기의 하얀색 문을 활짝 열자, 탁 트인 공간이 나타났다.
"와.."
라희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라희가 탑승한 G650, 정식명칭 걸프스트림(Gulfstream) G650, 의 내부는 지난번 경험해 본 퍼스트 클래스와 비교할 수조차 없었다. 비행기 내부가 아닌 것처럼 보였다. 벽에 둥그런 항공기용 창만 뚫렸다 뿐이지 마치 호텔의 스위트를 그대로 옮겨 놓은 분위기였다.
객실 문 바로 앞에는 2인용 넓은 가죽 좌석이 나란히 붙어 있었는데 테이블을 가운데 총 4개의 좌석이 열차 실내처럼 마주 보고 있었다. 의자는 전부 고급 가죽 소파처럼 푹신하고 편안해 보였다.
가운데 놓인 4인용 테이블 위에는 미리 샴페인과 와인잔 그리고 접시와 식기가 세팅되어 놓여 있었다. 그 옆은 대형 TV가 설치되어 있고 TV 아래로는 간이 선반이었는데 사과, 키위, 파인애플, 포도, 체리가 수북이 담긴 과일 바구니와 은색 버킷 안 투명한 각얼음에 박혀 차게 식힌 샴페인 두 병이 나란히 올려진 모습이 보였다.
4인용 테이블 좌석 뒤쪽 너머는 양옆 창가 쪽으로 각기 떨어진 퍼스트 클래스 크기 정도의 좌석이 4개 보였다. 그 너머는 벽으로 막혀 있었는데 또 다른 객실 공간인 듯 가운데 하얀색 문이 보였다.
"이제 기내에 착석하셔야 하는데요, 어느 쪽을 선호하십니까?"
세라의 말에 바흐는 라희에게 의견을 묻는 듯 바라보았다.
"저쪽..."
라희는 눈으로 테이블 자리를 가리켰다. 세라의 안내로 라희가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자, 맞은편에 바흐가 착석했다.
"마음에 들어?"
그가 나직하게 물었다. 라희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네."
지난번 갑작스레 타게 된 퍼스트 클래스도 놀라웠지만, 이제는 호화스러운 제트 비행기 한 대를 단둘이서 사용하는데 달리 뭐라 대답해야 한단 말인가.
"제임스가 옳았군. 반드시 좋아할 거라 장담했거든."
"아.."
라희는 아침에 욕실 너머로 들렸던 바흐의 통화 상대가 제임스였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이것 때문이었나 보다.
그때 객실 안으로 또 다른 승무원인 리사가 두손 가득 큰 쟁반 들고 들어왔다. 리사는 반 시간 전 바스에서 사온 피시앤 칩스 두 상자가 모두 담긴 것으로 보이는 대형 접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먹음직스럽게 튀겨진 두툼한 생선 스틱과 바삭해 보이는 감자 칩이 커다란 접시에 담겨 가득 쌓여 있었다.
"음료는 어떤 걸로 준비해 드릴까요. 샴페인, 와인, 맥주, 소다, 스파클링 워터, 미네랄 워터, 주스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리사의 물음에 뭐라 결정을 내릴 수 없었던 라희는 바흐를 힐끔 바라보았다.
"저는 샴페인을 주시고, 미스 송에게는 맥주가 좋겠군요. 피시 앤 칩스와 곁들이기에는 맥주가 나을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샴페인은 지금 따라 드리고 맥주는 곧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리사의 말이 끝나자마자, 옆에 서 있던 세라가 선반 위 차가운 샴페인 하나를 개봉해 잔에 따랐다. 그 사이 리사는 앞쪽 문으로 나갔다.
라희가 맥주를 기다리며 앞에 놓인 접시를 유심히 노려보는 사이 바흐는 샴페인 잔을 천천히 기울여 마셨다.
늦은 점심을 먹었지만, 막상 근사한 기름냄새를 풍기는 피시 앤 칩스를 앞에 두니 식욕이 동했다.
샴페인을 마시고 난 바흐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조용히 라희를 지켜보는 가운데, 라희는 포크를 손에 쥐고 노릇하게 튀겨진 도톰한 생선 튀김을 콕 찍어 입에 넣었다.
입술에 닿은 튀김은 이동하는데 소요된 시간 때문인지 갓 만든 것처럼 아주 뜨겁지는 않고 딱 먹기 좋은 온도로 뜨뜻하게 식어 있었다. 한입 베어 물자 바삭한 튀김 옷이 잇새로 부서지면서 안에 들어 있던 촉촉한 생선 살의 짭조름한 맛이 느껴졌다.
"어때?"
"맛은 있는데.."
라희는 다시 튀김을 입으로 가져갔다.
"음, 뭐랄까. 조금 평범하네요. 명절 때 먹는 두꺼운 동태 전이나 돈가스 집에서 먹을 수 있는 생선까스와 비슷한 맛이에요."
라희의 말에 바흐는 시선을 내려 음식을 가만 바라보았지만 시도하지는 않았다. 라희는 다시 포크로 생선 튀김을 하나 찍어 들었다.
"자요."
"음."
그가 내밀어 진 튀김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라희는 입가를 끌어올렸다.
"아, 해봐요."
성공.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튀김을 받아먹었다.
"어때요?"
"나쁘지 않아. 그나마 영국 음식 중에서 가장 낫다는 평가를 받은 거니까."
"저는 영국음식 대부분 입에 맞던데요."
"사라의 요리솜씨는 훌륭하지."
그래서 그런가? 라희는 전 세계 사람들이 경악해 마지않는 영국 음식에 딱히 불만이 없었다. 그럭저럭 먹을 만 했고, 사라의 요리들은 아주 맛있었다. 라희가 영국에서 먹었던 음식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리고 있는 사이, 리사가 다가와 시원해 보이는 맥주를 테이블 위에 건넸다. 맥주로 입안에 남아있던 짠맛과 기름기를 넘기고 나니 조금 개운한 기분이었다.
"곧 비행기가 이륙하오니 안전벨트를 매주시길 바랍니다. 저희는 앞쪽 격실에 대기하고 있다가 이륙이 완료된 후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혹시 급한 용무가 있으시면 좌석에 부착된 호출 버튼을 누르시면 됩니다."
안전벨트를 확인한 리사와 세라가 문을 닫고 격벽 너머로 모습을 감췄다. 그와 동시에 둥그런 창 너머로 보이는 비행기 계단이 서서히 들리면서 열렸던 출입구가 닫히면서 동체와 꼭 맞물렸다. 비행기는 활주로를 미끄러져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라희는 맥주를 마시며 고소한 감자 칩을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같은 튀김인데도 조금 느끼하게 느껴지는 생선보다는 담백하고 포슬포슬한 감자가 훨씬 나았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자, 비행기는 부드럽게 상공을 날았다. 창문 아래로 보이는 아담한 콜레른 마을이 차츰 작아지면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흐음."
옆에서 봉투를 개봉해 카드를 펼쳐 보던 바흐는 카드를 접더니 테이블 위로 던지듯 올려놓았다. 제임스가 보낸 카드인데, 대체 무슨 내용이길래 저런 반응일까.
"왜 그러세요?"
라희가 호기심을 보이며 물었다. 그러자 바흐는 하얀색 카드를 집어 라희에게 건넸다. 펼쳐서 보니 카드 안에는 정갈한 필기체로 이렇게 쓰여있었다.
-Welcome to join Mile High Club.
(Mile High Club의 가입을 축하하네.)그 아래의 메시지를 마저 읽은 라희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 As you already know, there is a double bedroom in the rear. Don't mess up the toilet. Have a lovely flight.
(알고 있겠지만, 비행기 뒤쪽에 더블 베드룸이 있네. 화장실을 난장 치지 말게. 사랑스러운 여행 되길.)베드룸? 화장실? 무슨 뜻이지. 라희는 맞은 편에 앉아 창밖을 내려다보며 샴페인을 기울이고 있는 그를 힐끔 쳐다보았다. 시선을 받은 바흐는 라희를 잠시 바라보더니 짧은 한숨을 쉬고서 턱짓으로 옆에 놓아둔 핸드백을 가리켰다.
"와이파이 되니까. 로렌스 스페리(Lawrence Sperry)."
검색해보라는 뜻이었다. 라희는 핸드백에서 휴대전화기를 꺼내 들어 검색창에 로렌스 스페리를 쳤다. 무심코 구글이 아닌 국내 포털로 검색했는데 결과물이 뜨자마자 유명한 사람임을 바로 알 수 있었다. 특히 마일 하이 클럽과 관련하여.
검색된 교양영어사전1에는 mile이라는 항목 안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 mile-high club은 "비행기에서 섹스를 한 사람들"이란 뜻이다.
창시자는 로렌스 스페리(Lawrence Sperry, 1892~1923)다. 그는 1916년 11월 뉴욕 시 근처에서 자동조종장치가 달린 소형 비행기를 타고 왈도 포크 부인(Mrs. Waldo Polk)에게 비행기 조종 훈련을 시켜주다가 그만 추락하고 말았다. 다행히 두 사람 모두 목숨은 건졌으나 구조대가 추락 현장에 갔을 때 그들은 모두 벌거벗은 상태였다. 스페리는 추락의 충격으로 옷이 벗겨졌다고 주장했지만, 그 말을 믿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mile (교양영어사전1, 2012.10.22, 인물과 사상사)
"........."
당황으로 갑자기 말을 잃은 라희를 향해 그는 옅은 장난기를 담은 목소리로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이런. 실망시키지 말아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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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