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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그녀와 그와 나-125화 (125/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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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창가로 비쳐든 한겨울 같지 않은 따사로운 햇살. 드넓게 펼쳐진 넓은 초원. 규칙적인 진동으로 약간씩 덜컹거림이 느껴지는 환한 기차 안. 바로 옆에서 들리는 고른 숨소리.

라희는 가만 고개를 기울여 옆으로 기댔다. 바흐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앉아 비스듬한 시선으로 기차 창밖에 스치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기대온 라희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 매만지는 손길이 느껴진다. 라희는 그의 품을 향해 더욱더 머리를 기울였다. 나른하게 들린 얼굴 피부 위로 따뜻한 겨울 햇볕이 스민다. 바흐는 그런 라희를 가만 내려다보다가 이내 들고 있던 휴대전화기로 시선을 던졌다.

그는 오늘 아침, 라희가 호텔 방에서 깨어나 눈 비비고 하품하던 때부터 무척 바빠 보였다. 룸서비스 조식을 먹고 난 후 대충 씻고 나서 호텔 체크아웃을 하고 바스로 향하는 열차에 오른 틈틈이 그는 휴대폰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가 하는 일의 특성상 인터넷과 전화만 연결되어 있다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거의 받지 않기 때문에 라희는 이동 중에 일하는 그를 흥미로운 눈길로 관찰했다.

"뭐 해요?"

라희가 궁금한 표정으로 묻자 그는 짧게 대답했다.

"일."

하지만 조용히 집중하던 지난 며칠과는 달리, 오늘은 바흐는 조금 다른 일을 하는 듯 보였다. 호텔 스위트에서 라희가 씻는 동안 욕실 너머로 얼핏 들려오는 그의 통화 소리는 평소 전화 걸던 자신의 회사가 아닌 제임스에게 두어 통, 그리고 런던에 있는 어딘가의 사무실로 전화하는 듯했다. 이후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는 동안 라희가 힐끔 건너다보던 그는 액정 화면 위로 손가락을 움직여 숫자 패드를 눌러 클릭하는 모양새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선물 거래를 처리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기차 안에서 조용히 흐르던 두 시간 남짓이 지나고, 마침내 목적지인 바스에 도착했다. 거의 십여 일 만에 다시 찾은 바스는 여전히 고풍스럽고 평온한 휴양지 모습 그대로였다. 그 사이 눈이 내렸었는지 거리의 곳곳은 듬성듬성 흩뿌려진 눈으로 뒤덮여 있었는데 포근한 날씨 때문인지 눈 덩어리의 끝부터 줄줄 녹아 길거리에 물이 흘렀다.

두 사람은 이내 택시에 짐가방을 싣고 사라의 집으로 향했다. 영국을 떠나 뉴욕으로 가기로 한 이상 홈스테이에마저 남은 짐을 챙기고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겨울을 지나 봄까지 머무르려 예정했던 곳이라 막상 갑작스레 떠나게 되니 기분이 묘했다. 택시 뒷좌석에 몸을 묻은 라희가 눈 덮인 바스 시내를 건너다보는 사이, 그가 손을 뻗어 마주 잡아왔다. 살갗에 닿는 따스한 온기. 라희도 맞잡은 그의 따뜻한 손을 놓지 않았다.

"어서오렴. 어서 와요 데이빗."

사라는 다정한 목소리로 현관문을 열어주며 반갑게 맞았다.

"그나저나 이렇게 떠나다니 정말 서운하구나."

런던에서 바스까지 오는 기차 안에서 사라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홈스테이를 나가겠다는 대강의 이야기를 전해준 터라 그녀의 목소리에서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기색이 묻어났다. 라희는 현관에 들어서 사라와 포옹했다.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어요. 사라."

"라일라. 정말 아쉽구나."

사라는 다시 라희를 안아 포옹하며 말했다. 엄마처럼 라희을 돌보아준 사라와 헤어지는 일은 간단히 작별 인사를 마치고 그저 돌아서면 될 거라 상상했던 머릿속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그래도,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게 마련이지. 자 안으로 들어가자꾸나. 조금 늦었지만, 런던에서 바스까지 오는 길에 배가 고플 거 같아서 점심을 준비해 두었단다."

사라가 맛있는 음식 냄새가 풍겨 나오는 집안을 가리키며 손짓했다. 라희의 뒤를 조용히 따르던 바흐가 택시 트렁크에서 내린 짐가방을 현관 안으로 들여놓자 갑자기 사라가 무언가를 발견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 루이비통 여행가방을 유심히 살피는 사라의 표정에는 의문이 떠올랐다.

"라일라의 짐가방이 어딘지 낯이 익은데요. 혹시, 방에 놓인 데이빗의 가방과 같은 종류 아니에요?"

거의 확신하는 듯 지적하는 사라의 말에 바흐는 간단히 긍정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예전에 같이 구입한 거죠."

"아.."

같이, 라는 말을 들은 사라는 그제야 뭔가 알겠다는 표정으로 바흐를 향해 싱긋 미소 지었다.

"어쩐지. 데이빗 같은 사람이 홈스테이로 머물다니 조금 이상하다 생각했어요. 아, 오해 말아요. 별다른 의미가 있는 말은 아니고."

사라는 주름진 눈가를 기울이며 잠시 말을 골랐다.

"데이빗은, 음. 홈스테이보다는 호텔이 어울리는 사람 같아 보였거든요. 첫날 가져왔던 샴페인도 그렇고요. 평범하게 대학교 다니는 학생들은 꿈도 꾸지 못하는 금액대의 술이잖아요."

사라는 밝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데이빗의 친구분들 역시 보통 사람들과는 친분이 없는 부류의 사람들이니까요. 데이빗이 우리 집에 찾아와 홈스테이하겠다고 밝혔을 때, 뭔가 다른 사연이 있겠거니 생각했는데. 역시 짐작이 맞았네요."

사라가 데이빗에게 어쩜 그리 감쪽같이 라희와 모른 체를 하고 지냈느냐며 장난스럽게 묻는 사이, 집안에 들어선 라희는 2층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고개를 들어 올려 가운데 방을 힐끔 바라보고서 사라를 향해 복잡한 표정으로 물었다.

"소피는요?"

"소피? 아."

사라는 미간을 조금 찡그리며 말했다.

"그 아가씨 요즘 울상이란다. 이야기하자면 상당히 길어. 자, 먼저 음식이 식기 전에 먼저 식당으로 가서 마저 이야기할까?"

라희와 바흐가 마주 보고서 식탁에 앉자, 사라는 분주히 움직여 테이블 위로 준비한 음식을 올려놓기 시작했다. 오븐에 구운 감자와 치킨, 크리미 시금치 파스타, 그리고 레몬즙을 듬뿍 뿌린 상큼한 칵테일 새우 샐러드가 보였다. 곁들여 마실 오렌지 주스까지 유리컵에 따라 각자의 앞에 올려놓은 사라는 같이 앉아 늦은 점심을 들기 시작했다.

윌버리 하우스와 런던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냐는 안부 인사로 시작한 대화는 이내 소피의 최근 소식으로 옮겨갔다.

"연말에 다 함께 윌버리 하우스로 떠나지 않았었니? 그러다 새해 전에 홀로 갑자기 돌아와 그날 오후에 홈스테이를 그만두고 나갔단다. 출퇴근이 편한 바스 시청 근처에 따로 플랫을 얻었다고 전해 들었는데..."

사라는 미간을 슬쩍 좁히며 말을 흐리다가 무언가를 떠올리듯 고개를 갸웃한 다음 덧붙였다.

"그런데 어제저녁에 방문한 찰스의 말에 의하면 뭔가 소피의 사정이 아주 복잡해졌다고 들었단다. 그간 인턴을 마치고 새해부터 시청에서 정직원으로 일하기로 했었는데 갑자기 위의 지시로 무기한 대기발령으로 바뀌었다지 뭐니. 거기다가 런던에서 발송된 법원 서류가 소피를 놀라게 한 것도 모자라 이어서 경찰에서 무슨 레터가 날아들었다던데. 연초부터 큰일을 겪는 게 아닌지 걱정되는구나. 비록 지금은 우리 집을 나갔다고 해도 한때나마 머물렀던 아가씨니까."

역시 예상 대로였다. 극진히 보살피던 애견 루퍼스를 잃은 제임스가 그간 부지런히 일을 서두른 모양이었다. 로드윌씨의 법률사무소에서 전담으로 일을 처리한다고 했으니 신속한 법적 대응이 이해가 갔다. 어차피 소피가 저지른 일에 대한 대가를 받는 것이기 때문에 라희는 사라의 걱정스러운 말을 넘기며 어깨를 가볍게 으쓱했다.

"그랬군요."

"찰스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란다. 소피를 마음에 두고 있던 눈치거든."

"저런."

라희는 소피의 본모습을 까맣게 모르는 찰스가 안타까운 나머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평범하고 착한 찰스가 하필, 태연한 얼굴로 극악무도한 끔찍한 일을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는 소피를 마음에 두고 있다니. 바스에 머물렀던 동안 찰스가 상냥하게 대해주었기 때문인지, 그가 걱정되었다. 거기다 따지고 보면 소피의 범죄를 도발한 책임도 없지는 않았기에 마음이 무거웠다.

찹찹한 심정의 라희가 입을 다물고 점심을 먹는 사이, 바흐와 사라가 뉴스에서 떠드는 신년 소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늘 그렇듯, 사라가 재잘재잘 이야기하는 것을 바흐는 조용히 경청했다. 라희도 사라의 이야기를 들으며 긴 디너 포크 사이로 녹색의 크림 파스타를 둥글게 말아 입에 넣어 묵묵히 식사를 마쳤다.

"사라, 저는 짐을 챙기러 위로 올라가볼게요."

접시를 비운 라희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사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렴. 오늘 떠나야하다니 정말 시간이 촉박하구나. 서둘러야 겠구나. 곧 날이 저물텐데, 어두워지면 아무래도 장거리 이동하는데 불편하니까. 런던으로 다시 돌아가니?"

"국제선 비행기를 타려면 아무래도 그래야하지 않을까요."

"하긴. 가장 가까운 브리스톨 국제 공항은 편수가 몇 없으니 런던이 아무래도 이용하기에는 편하겠구나."

라희는 식사를 마친 바흐와 함께 계단을 올랐다. 그들은 각자의 방으로 향했다. 꽤 오랜만에 제 방안에 들어선 라희는 앞으로 꾸릴 대강의 짐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는데 지난 세달간 영국에서 이리저리 옮겨다니던 짐인지라 워낙 단촐해서 전부 다 챙기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 같지는 않았다.

부지런히 옷장과 서랍을 열어 옷가지를 주워 담고, 공부했던 책 몇권과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모은 기념품, 그리고 방안 곳곳에 흩어져 있는 생활용품 등을 꼼꼼히 쓸어 담으니 어느새 방안은 처음 홈스테이하러 도착했던 그날과 마찬가지로 깨끗이 비워진 상태였다.

라희는 텅빈 방안을 훑어보며 생각에 잠겼다. 사람의 일이란 정말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듯해서 기분이 먹먹했다. 유진과 계약한후 내몰리듯 한국을 떠나 몇달간 숨죽여 지내면 될거라 생각했던 이곳 바스에 바흐가 찾아와서 이런저런 일을 겪었다. 다시 그와 어떻게든 지내게 되었을 때 그가 뉴욕으로 가면 그냥 가는대로 보낼거라 생각했는데 로드윌 갤러리에서 맞딱드린 유진이 따귀와 모욕적인 언사를 퍼부어 속을 뒤집어 놓은 바람에 자발적으로 영국을 떠나 바흐와 함께 뉴욕으로 향하다니.

-똑똑.

멍하니 생각에 잠겨있을때, 뒤에서 방문을 가볍게 두드리는 노크소리가 들렸다. 라희가 문고리를 돌려 열자, 역시 짐가방을 바닥에 세워두고 문 앞에 서 있는 바흐가 보였다.

"갈까."

그의 말에 라희는 방안을 다시한번 둘러보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가요."

라희는 그가 내민 커다란 손에 살며시 손을 얹었다. 그의 손에 이끌려 방을 나와 그가 짐을 현관으로 옮겨 놓는 동안 1층 소파에 앉아 사라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일을 마친 바흐가 다가와 물었다.

"피시 앤 칩스(Fish & Chips) 레스토랑은 어디가 괜찮습니까, 사라."

"어우, 당연히 바스 내에서는 씨푸즈(SEA FOODS)가 가장 유명해요. 피시앤 칩스 요리 경연대회에서 상을 받기도 했고, 무엇보다 1935년부터 운영된 유서깊은 레스토랑이거든요. 시내 쪽 킹스미드(Kingsmead)거리에 있답니다."

바흐가 유심히 듣고 있자, 사라는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지금 점심 먹은 지 두 시간도 되지도 않았고 곧 런던으로 떠나야 할 테니 아무래도 포장(take away)을 해야 할 텐데, 기차 안에서 먹기는 그렇고 런던에 도착하면 차게 식어버릴 텐데요. 식으면 모든 음식이 그렇듯 맛이 현저히 떨어진답니다. 차라리 런던에서 유명한 피시앤 칩스 레스토랑에 따로 들르는 편이 나을 거 같네요."

"그렇군요. 말씀 감사합니다."

바흐가 공손히 대답하자 사라는 라희와 하던 이야기를 이어서 하면서 이렇게 갑작스레 떠나니 너무 아쉽다면서 꼭 나중에라도 이메일을 보내거나 편지로 소식을 전하라고 신신당부했다. 라희가 그러겠노라고 말하며 작별의 말을 주고받는 사이 현관 초인종이 딩동, 하고 울렸다.

"도착했군요. 제가 불렀습니다."

현관으로 다가가며 바흐가 말했다. 열린 현관문 앞에는 미끈한 검은색 메르세데스 벤츠와 단정한 검은색 제복을 입은 운전기사(chauffeur )가 서 있었다. 운전기사는 정중히 인사하고 집안으로 들어와 바흐가 현관 앞에 내려놓은 여행가방을 트렁크에 차곡차곡 옮겨 실었다.

"역까지 택시를 타고 가는 줄 알았는데요."

라희가 벤츠를 바라보며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그는 팔을 뻗어 라희의 어깨를 가볍게 감싸며 답했다.

"번거롭거든."

그래 봤자, 고작 여행용 트렁크 가방 2개에 작은 여행가방 2개 그리고 숄더백이 전부여서 함께 나눠 들면 될 텐데. 뾰로통한 표정의 라희와 눈을 맞춘 그에게 이끌려 운전기사가 열어준 넓고 쾌적한 뒷좌석에 앉았다. 사라의 따뜻한 배웅 속에 이내 차는 스르륵 집 앞을 떠나 출발했다.

차에 타기 전에는 이렇게 별스럽게 이동할 필요 없이 그저 평범한 택시를 타면 될 거라 속으로 투덜거렸는데 막상 편안하고 안락한 벤츠 S클래스 뒷좌석에 앉아 있으니 새삼 돈이 좋긴 좋구나 하는 속물적인 생각이 들었다.

미끄러지듯 도로를 주행하는 검은색 롱 휠 차량은 지금 달리고 있는지, 멈춰 있는지 모를 정도로 고요한 승차감을 자랑했다.

그의 옆 좌석에 앉은 라희가 창가에서 비쳐드는 오후 햇살에 눈살을 조금 찌푸리자, 바흐가 버튼을 눌러 창문 블라인드를 쳤다. 암막으로 빛이 완전히 차단되어서 더이상 거슬리지 않았다. 라희가 차량 내 편의 사양을 살펴보며 조금 놀라 하고 있는 사이, 그가 다시 버튼을 누르자 앉아 있던 좌석의 등받이가 뒤로 느슨하게 젖혀지면서 시트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편안한 뒷좌석에는 마사지 기능이 탑재 되어 있어 마주 닿은 허리와 등을 누르고 두드리는 촉감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낯선 감촉이 어색했지만, 수 분 내에 라희는 차량이 주는 안락한 호사에 적응했다. 이런 쾌적한 환경이 주는 편리에 익숙한 그가 좀처럼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는 이유가 이제는 조금 이해 갔다.

도로 위를 미끄러지듯 전진하던 차량은 바스역으로 향하는가 싶더니 방향을 달리해 시내로 진입했다. 조금 있으니 저 멀리 SEA FOODS 레스토랑의 푸른색 간판이 또렷이 보였다. 그 앞에 멈춰선 운전기사가 테이크 어웨이를 주문하러 밖으로 나가자, 라희는 바흐를 향해 조금 의문스러운 어투로 말을 건넸다.

"갑자기 피시 앤 칩스는.."

"이제 영국을 완전히 떠나는 거니까. 전에 먹고 싶다고 하지 않았었나?"

라희는 연말에 유람선 관람을 마치고 런던 탑 앞에서 저녁 식사로 뭘 먹고 싶으냐고 묻던 그에게 답했던 말을 떠올렸다. 확실히, 피시 앤 칩스를 먹어보지 못했기에 미련이 남아 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걸 기억하고 있다니. 그가 새삼 놀랍긴 했으나,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포장해 가도 사라의 말대로 런던에 도착하면 다 식어버릴 텐데요."

그는 손을 뻗어 라희의 작은 손을 긴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쓸어내며 말했다.

"우린 런던으로 가지 않아."

"네? 국제공항이 런던에.. "

라희는 의외의 대답에 조금 놀랐다.

"아, 그럼 브리스톨로 가나요?"

브리스톨에도 국제공항이 있다는 사라의 말을 떠올린 라희의 물음에 그는 말없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 사이 차를 나갔던 운전기사가 고소한 튀김 냄새 풍기는 음식 두 박스를 들고 되돌아왔다. 조수석 바닥에 내려놓은 튀김 박스는 양이 상당히 많아 보였다. 공항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식어버리면 맛이 없을 텐데 무슨 생각으로 저 많은 양을 주문한 것인지 도무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출발하기 전 더 필요하시거나 따로 지시할 사항은 없으십니까."

운전석에 앉은 운전기사가 안전벨트를 매며 룸미러를 향해 물었다.

"예."

바흐가 짧게 답했다. 라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운전기사와 바흐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대화를 주고받는 모양새가 바로 지척인 바스역을 의미하는 것 같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내 기어를 주행으로 바꾼 운전기사가 차량을 출발시키면서 정중히 목적지를 언급했다.

"그럼 콜레른 공항(Colerne Airport)으로 출발하겠습니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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