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코끝을 간질이는 고소하고 근사한 냄새가 어디선가 났다. 라희는 미간을 찡그리며 눈을 가늘게 떴다. 아침? 아니 한낮이다. 훤히 보이는 런던은 햇볕이 쨍쨍한 대낮이었다.
무슨 냄새지? 라희는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호텔의 스위트 룸. 킹사이즈보다 더 큰 사이즈의 침대에 홀로 누워있었다.
바흐는? 잠들기 전, 전신을 꽉 감싸 안아주던 따뜻한 몸이 떠올라 두리번거리던 라희는 문득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이내 얇은 침대보에 감겨있는 자신의 몸을 발견했다.
알몸.
황급히 침대 시트를 끌어당기려 몸을 움직이던 라희는 순간 전신을 관통하는 예리한 통증에 뻗으려던 팔을 거둬들였다.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감각.
끄응.
앓는 소리가 절로 새어나왔다. 간밤에 계속된 행위로 안 쓰던 근육이 놀라, 곳곳에서 통증을 호소했다. 몸이 말이 아니었다. 사방 군데가 저릿하고 우릿한 고통이 느껴졌다. 특히 아래는 계속 이어졌던 접촉으로 연약한 피부가 조금 까졌는지 화끈하면서 따끔거리기까지 했다.
"하아.."
도저히 이 상태로는 걷기는커녕, 당장 움직일 수조차 없다. 라희는 그냥 그대로 침대에 가만 누워 있었다. 움직임 없이 시체처럼 가만 누워있음에도 저릿하게 땅겨오는 자잘한 근육의 통증은 몸을 마냥 축 늘어져 가라앉게 만들었다.
'파스라도 사서 붙여야 하나?'
파스는 국내에서는 어디에서나 구할 수 있는 흔한 물건이지만, 런던에서는 보지 못했다. 특히나 붙이는 형태는 구경도 못 해봤고 치약 튜브처럼 생겨서 피부에 바르는 젤타입의 통증 완화제(pain & inflammation relief )는 몇 번 보긴 했었다.
'가만, 가장 가까운 약국이 어디지?'
라희는 곰곰이 머릿속을 되짚어보았다. 런던의 지도가 머릿속에 그려지다가 희뿌옇게 흐려졌다. 미간을 찡그리며 한참 생각을 골몰하던 라희는, 이내 약국 찾기를 깨끗이 포기했다. 영국에서 두 달간 고향 삼아 살았던 바스라면 몰라도 뜨내기 여행객이었던 생소한 런던 한복판이니 어디에 뭐가 있는지 당최 알 리가 없다.
-달깍.
한참을 천정만 바라보고 누워있는데, 침실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라희는 문 쪽으로 고개를 틀어 돌렸다.
"아."
바흐다. 그가 조금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마 쿨쿨 자고 있을 거라 예상했는데, 깨어있어서 그런 모양이었다. 라희와 눈이 마주친 그가 이내 침대로 가까이 다가왔다. 비록 옷은 어제 입어던 그 옷이었지만, 여느 때처럼 깔끔하게 차려입은 차림이었다.
"깨우려고 들어왔는데."
그는 침대 가에 서서 라희를 내려다보았다.
"나가지. 배고플 거 같아서, 룸서비스 시켰어."
잠을 깨운 고소한 냄새는 음식 냄새였구나. 아마도 바삭하게 구운 토스트나 빵. 라희는 누운 상태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고 일어나자마자 배는 고팠으니까. 음식이라는 소리가 기껍게 들렸다. 그런데..... 몸에 힘을 주자 놀란 근육이 길게 땅긴다.
침대 가장자리에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도 정작 라희가 도무지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그가 눈매를 좁히며 비스듬히 라희를 내려다보았다.
"..... 몸이... 조금."
시선을 받은 라희는 몸을 일으키려다가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 아프다. 간신히 얇은 이불을 손바닥으로 그러모아 쥐어 몸을 가리면서 누워있던 자리에서 비스듬히 허리를 세우려 움직였다. 그 모습을 유심히 살피던 그는 이내, 왜 그런지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바흐는 침대에서 몸을 돌려 곧장 옷장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호텔 가운을 꺼내왔다.
"자."
그가 건네주는 가운에 팔을 끼우려 움직이는데도 팔과 어깨 근육이 당기고 저려 상당히 힘들었다.
"흠."
그는 가운을 길게 펼쳐 라희가 입는 것을 도와주었다. 마침내 잔뜩 미간을 찡그린 라희가 가운을 입는 것을 성공하자, 몸이 위로 번쩍 들렸다.
"..아앗.."
그는 라희를 안아 들고 성큼성큼 걸어 침실을 나가 거실을 지나쳐 그 뒤쪽 12인용 식탁으로 데려갔다. 번쩍거리는 대리석 식탁 위에는 2인용 식사가 이미 차려져 있었다.
식탁의 가운데 갓 구운 바삭한 토스트가 삼각형 홀더에 접시처럼 층층이 꽂혀있었고, 그 옆으로는 크루아상, 롤빵, 디너롤, 바게뜨, 하드롤, 베이글 등 손바닥 절반만한 식전 빵이 가득 들어있는 빵 바구니가 놓여있었다.
그가 식탁 의자에 라희를 가뿐히 내려놓았다. 자리에 앉자 바로 앞에 뜨끈한 스프와 한입 크기로 썰린 과일 모둠 한 접시 , 그래놀라 시리얼, 여린잎 샐러드, 우유, 그리고 전 세계 호텔 어디에서나 먹을 수 있는 잉글리쉬 블랙퍼스트가 들어 있는 커다란 접시가 놓여있었다. 접시 안에는 부드러운 스크램블드 에그와, 베이컨, 소세지, 토마토, 구운 양송이버섯, 베이크드 빈스가 먹음직스럽게 담겨있었다.
"배고플 텐데. 먹지."
"......잘 먹겠습니다."
그는 포크를 들고 식사를 시작했다. 라희도 간신히 팔을 움직여 식탁 위의 포크를 손에 쥐었다. 포크를 쥐고 있으려니, 팔꿈치 안쪽이 당기고 저릿했다.
라희는 얼굴을 미미하게 찡그리고서 가만 기억을 되짚어보았다. 어제 새벽 이 넓은 식탁에서도 그와 관계를 했었다. 등에 닿던 차갑고 서늘한 대리석의 감촉이 뜨거운 몸을 식혀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이렇게 후폭풍 심한 통증을 느끼며 앉아서 밥을 먹으려니 기분이 묘했다.
".........?"
라희가 포크만 들고 가만 앉아 있으니, 바흐의 의아한 시선이 곧게 쏟아졌다.
"근육이.. 조금.."
작게 중얼거리며 새어나오는 목소리. 라희는 그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푹 숙였다. 이 식탁 위에서 저질렀던 행동을 떠올리니 도저히 그를 똑바로 마주 볼 수가 없었다. 어제 여기서 누운 상태로 관계를 가지다가 비스듬히 몸을 일으켜 앉은 상태로 그를 깊게 받아들였었다. 뒤 쪽으로 뻗어 몸통을 지지하던 팔과 손바닥이 그가 쳐올릴 때마다 저만치 뒤로 밀릴 만큼 행위가 격렬했었다. 거기까지 떠올리자, 화륵, 뺨에 열감이 뻗치면서 얼굴이 달아올랐다.
"자."
그의 목소리가 가까이서 들렸다? 눈을 힐끔 들어보니, 어느새 라희의 바로 옆의 의자에 그가 앉아있었다. 식탁의 중앙에 놓여있던 토스트 한 조각에 버터를 얇게 펴 발라 라희를 향해 내민 채였다.
".... 잘, 잘 먹을게요.."
라희는 엉거주춤 토스트를 받아 들어 어색하게 입가로 가져갔다. 하지만 한입 베어 씹자 토스트가 잘게 바삭거리면서 고소하고 짭짤한 버터가 혀끝에 녹아든다.
마침 시장했던 터라, 순식간에 토스트 한 조각을 다 먹었다. 먹고 나니 조금 목이 메었다. 뻑뻑한 목구멍에 침을 삼키려 애쓰고 있는데, 불쑥 얼굴 바로 앞에 우유가 들이밀어 졌다. 눈을 들어보니 그의 손에 들린 투명한 유리잔 가득, 새하얀 우유가 담겨있었다.
"마셔."
나직한 목소리와 함께 의사와 상관없이 입술 위에 유리잔의 가장자리가 차갑게 닿고, 시원한 우유가 입안으로 흘러들어왔다.
뭐, 뭐지. 환자도 아닌데. 그가 옆에서 음식을 하나하나 먹여주고 있다니. 주는 대로 우유를 마시고 나자, 조금 젖어있는 입술 가를 긴 손가락 끝이 스쳤다.
".......!"
입매에 묻었던 우유를 가볍게 훔쳐내는 아주 지극히 일상적인 간단한 움직임이 만든 접촉에도 속절없이 찌르르한 짜릿한 감각이 등줄기를 훑고 지나갔다. 순간적으로, 아주 솔직한 몸의 반응에 너무 당황한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입술 안쪽을 짓씹었다.
톡톡, 갑자기 그가 손끝으로 입술 끝을 건드렸다.
"그러지 마. 염증이 생기거나 상처 나니까.
"아....!"
입술 위에 마주 닿은 손가락의 감촉에 살결이 잔뜩 예민하게 달아올라 찌릿했다. 감각에 저 스스로 놀라 멍한 입술이 살며시 벌어지자, 그가 옅은 미소를 입가에 피워올렸다.
"자, 아."
이번에는 스푼 가득 올려진 노랗고 부들부들 촉촉한 스크램블드 에그였다. 라희는 잔뜩 난처한 표정으로 스푼을 응시했다. 그러자 그가 눈썹을 살짝 들어 올리며 스푼을 입가로 슬며시 가져다 댔다. 떨떠름하게 눈매를 좁힌 라희의 표정이 점차 곤혹스럽게 변해가자, 그는 살며시 미소 띤 눈매로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흐음. 이런 재미였군."
***
뜨끈한 물속에 몸이 담기자 전신이 나른하게 풀렸다. 라희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스위트 룸에는 욕조가 2개 있었는데, 하나는 유리 욕실 안 대리석 욕조였고 다른 하나는 욕실 문밖 런던 시내가 내다보이는 전면 창 옆에 덩그러니 놓인 하얀색 둥근 욕조였다.
아까 어색하게 후다닥 식사를 마치고 나서, 근육의 통증 때문에 도저히 몸을 일으킬 자신이 없어 가만 식탁 의자에 앉아있는데 잠시 식당에서 나갔던 그가 돌아와 라희의 몸을 번쩍 들어 올리더니 욕조로 데려갔다. 욕조 안에는 따스한 물이 찰랑하게 받아지는 중이었다. 그의 손길에 의해 가운이 스르르 벗겨지고 공중에 들린 알몸이 조심스럽게 욕조 바닥에 뉘어졌다.
"온도는?"
그가 물었다. 라희는 푹 숙인 고개를 돌려 창밖에 시선을 던지고는 작게 중얼거렸다.
"따뜻해요."
"그래. 담그고 있으면 조금 괜찮아질 거야."
제발 욕조에 내버려두고 어디론가 멀리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사라져주길 바랐는데, 그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소매 단추를 풀어 팔을 걷어 올리더니 손가락을 물 안으로 담가 온도를 체크했다.
"미지근한걸. 좀 더 뜨거운 편이 낫겠어."
그가 수도 레버를 돌렸다. 하얀 김이 피어오르면서 좀 전 보다 조금 더 뜨거운 온도의 온수가 새하얀 거품처럼 쏴아 흘러나와 욕조로 떨어져 내렸다.
움찔.
라희는 갑자기 몸에 닿은 생소한 감각에 몸을 잔뜩 움츠렸다. 이내, 몸에 닿은 그의 손끝이 라희의 팔을 매만지기 시작했다. 잔뜩 긴장한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태연한 손길이 이어졌다.
미끈한 물에 젖은 손끝이 팔목을 가볍게 움켜쥐고 꾹꾹 누르더니 점차 팔을 타고 위로 올라왔다. 가는 팔꿈치와 그 안쪽 팔뚝의 말랑한 살 속 작게 뭉친 근육을 지그시 눌렀다. 단단히 긴장된 근육을 길고 세심한 손끝으로 천천히 매만져 풀어주기 시작했다.
뭉친 근육들이 지긋하게 눌리며 부드럽게 매만져지는 느낌 자체는 아주 좋았다. 하지만, 어쩐지 그 행위는 말할 수 없이 부끄럽고 어색했다. 옷을 입은 그가 소매를 걷어 올리고서 물에 담긴 알몸을 매만지고 있는 것 자체는 아주, 이상했다.
쭈뼛거리면서 잔뜩 굳어있는 몸에 그의 손길이 살짝 살짝 힘주어 닿았다가 떨어지면서 매만져 주는 느낌은, 그가 하지 말라던 입술 깨물기를 무의식 중에 하게 만들었다.
느릿하게 살갗이 쓸어 내려지면서 쓸어 올려지고 천천히 눌리면서 손끝과 닿아 뭉근하게 힘이 실렸다. 뜨끈한 김을 피어 올리는 욕조의 수위가 점차 올라감에 따라, 물 온도 때문인지, 아니면 손길이 주는 야릇한 흥분 때문인지 숨이 차츰 가빠져오고 이마에는 송글거리는 땀이 진득하게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의 손가락이 누르고 쓸고 문지른 자리마다 이상야릇한 감각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어깨를 둥글게 감싸 문지르던 손바닥은 어깻죽지를 타고 등허리를 훑어내렸다. 찌릿거리는 감각이 등줄기를 타고 내달렸다. 허벅지 안쪽이 뭉클하게 조여 들었다.
".......읏"
라희는 자기도 모르게 목구멍을 타고 올라와 터져 나오는 신음을 겨우 삼켰다. 그러자 등 근육을 저릿하게 눌러 쓸어내리던 손길이, 일시에 거두어졌다.
"........?"
갑자기 사라진 손길에 놀란 라희가 고개를 들자, 그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젖은 손가락을 수건으로 닦아내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묘한 감각이 몸을 들뜨게 하기 전에 그만둬서.
라희가 안도의 숨을 내쉬며 창밖으로 시선을 던져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을 때였다. 물기를 닦은 그가 몸을 돌려 저만치 걸어가 곧 멀어질 줄 알았는데, 여전히 옆에 서 있는 느낌이 들었다.
-사락.
바닥에 가벼운 천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셔츠를 벗어 맨 웃통을 드러낸 그가 이제는 바지를 벗고 있었다.
"뭐, 하는 거에요?"
깜짝 놀란 라희가 높은 소리로 묻자, 그는 라희를 쓱 내려다보더니 짧게 답했다.
"근육 풀어주려고."
그 말과 함께 알몸이 된 그가 욕조 안을 비집고 들어왔다. 욕조 속에 길게 누워있는 라희를 옆으로 살짝 비끼고서 자리를 차지한 뒤, 라희의 몸을 껴안아 자신의 허벅지 위에 올려 눕혔다. 등에 맞댄 그의 탄탄한 가슴과 복부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의 허벅지 가운데 느껴지는 뜨거운 심볼도 엉덩이 뒤쪽으로 생생히 와 닿았다.
찰박, 찰박,
근육이 당기는 고통도 잊은 채 놀라 버둥거리자, 욕조 안 물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하지만 움직임은 오래가지 않았다. 라희의 팔과 허리를 단단한 팔로 옭아매 감싸 안은 그가, 여린 뒷목덜미에 턱을 기대고 자신을 향해 깊이 끌어당겼다. 훅, 귀 뒤로 그의 뜨거운 숨결이 닿자 찌르르한 감각이 등줄기를 타고 전기처럼 흘러 순식간에 발끝까지 내달렸다.
".........하, 아.."
라희는 잔뜩 참고 있던 숨을 어쩔 수 없이 몰아 쉬었다. 그가 감고 있는 허리와, 맞닿은 살결들이 미칠 듯이 예민해져 잔뜩 달아올랐다.
그 역시 라희의 몸에 반응하는지, 허벅지 사이의 기둥이 점차 힘이 들어가 불끈거리며 일어서고 있었다. 엉덩이골 밑에 눌린 그의 기둥이 금방이라도 곧추서 안으로 파고들어올것만 같아서, 라희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래도 굳어 안겨있었다.
그의 존재로 인해 이미 수위가 한계치까지 올라간 욕조는 자동으로 수도꼭지가 닫혔다. 더 이상 물이 흘러나오지 않자, 방안은 정적이 흘렀다. 이내, 짙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또르르, 이마에 묻어있던 물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 턱 끝에 맺혔다가 투둑, 하고 수면 위로 떨어져 내렸다. 그런 작고 미세한 소리까지 또렷이 들리는 고요 속에서 미동도 하지 못한 채 그에게 안겨있었다.
뜨끈한 물속 수면 아래, 살결에 와 닿은 물 온도보다 한층 더 뜨겁게 느껴지는 그의 기둥이 힘이 들어가 속살에 맞닿았다. 라희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가, 마른 목을 축이기 위해 침을 꼴깍 삼켰다.
꿀꺽, 목울대가 움직이면서 삼켜지는 작은 침 넘김 소리까지 고요한 공기를 미세히 가르고 귓가에 쟁쟁하게 울려 퍼진다. 정말로 어색했다. 이자세는, 아무리 가만히 있으려고 해도 이대로 있다가는.......
".......어제."
힘없이 떨궈진 고개에서 작은 소리가 새어나왔다. 입술 위 맴도는 목소리는 점점 안으로 오그라드는 것 같다.
".....다... 썼잖아요."
그는 반응하지 않았다. 단지, 허리를 감싼 팔에 힘이 더 들어갔다. 몸이 더 깊이 밀착된다. 라희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여기 와서, 병원에 입원했을 때."
수면 아래 맞닿아있는 뭉툭한 살덩이가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뜨끈한 느낌이 보드라운 속살을 눌러 비볐다. 야릇한 느낌이 선하게 느껴진다.
"....뺐어요. 그거."
라희는 잔뜩 멈춰진 숨을 억누르며 조금 큰 목소리로 말했다.
"제거 했다구요."
스르르륵. 몸이 아래로 내려가는 느낌. 그가 허벅지를 벌려 욕조 벽으로 양쪽 다리를 붙이자, 라희의 몸은 욕조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여전히 등 뒤 꼬리뼈 근처에서 뜨끈한 살덩이가 느껴졌지만, 방금 전처럼 아슬아슬한 위치는 아니었다.
"........"
이윽고 그의 따뜻한 손바닥이 젖은 등에 맞닿았다. 욕조에 들어오기 전과 같이 부드럽게 매만지는 손길은 천천히 근육의 결을 따라 움직이며 살갗 아래 굳어서 뭉친 근육을 꾹꾹 누르고 느릿하게 쓸어내렸다. 이미 뛰고 있던 심장은 점차 박동이 빨라졌다.
한참이나 등 전체를 눅진하게 풀어주던 그의 손길은 다시 어깨를 향해 어루만지다가 겨드랑이 안쪽으로 손을 집어넣어, 둥글게 부푼 젖가슴을 살포시 감싸 쥐었다.
"......!"
불에 덴 듯 뜨겁다. 물 온도보다 훨씬 더 뜨겁고 손바닥에 눌린 피부는 예민하게 곤두섰다. 가슴을 감싼 커다란 손바닥 안에 갇혀 짓눌린 유두가 저릿했다. 뛰고 있는 심장 박동이 맞닿은 그에게 바로 전해지는 것 같아 얼굴이 샛빨갛게 달아오르고 미칠 듯이 부끄럽다.
"앗..."
그가 힘을 주어 가슴 위 덮혀있던 손을 끌어당기자, 몸통 전체가 그의 품 안에 포옥 안겼다. 등 전체를 감싸오는 묵직한 감각에 라희는 눈을 질끈 내리감았다. 온몸이 빳빳하게 굳었다. 이젠 정말 심장이 미칠 듯이 뛰었다.
그가 라희의 몸을 힘주어 끌어안았다. 깊게 내쉬는 숨결이 관자놀이 부근에 와 닿는 것이 느껴졌다. 지독한 열기. 숨 막힐듯한 열기로 몸이 잔뜩 죄여왔다. 질끈 감은 두 눈가에 뜨끈한 호흡이 내려앉아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라희의 뒷머리에 얼굴을 기댄 그가, 한참이나 침묵하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뉴욕."
귓속을 파고드는 단어에 라희는 감은 두 눈을 번쩍 떴다. 뉴욕? 방금, 뉴욕이라고 한 거 맞나? 대체 왜?
동그랗게 뜬 눈을 연신 깜빡이며 숨죽인 채로 귀 기울이고 있을 때, 다시 그의 나직한 목소리가 귓가를 자극하며 들려왔다.
"..... 같이 갈래?"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