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와 그녀와 그와 나-116화 (116/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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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렇게 됐다. 라희는 런던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창밖을 보며 턱을 살짝 기울였다. 우연일까, 필연일까.

며칠 전 윌버리 하우스에서 소피가 떠나던 날 아침, 응접실에서 라희 역시 이곳을 떠나겠다고 엘리자베스에게 말했을 때, 엘리자베스가 간곡히 청하며 권유한 대로 12월 31일, 올해의 마지막 날은 더 샤드(The Shard)의 샹그릴라( Shangri-La) 스위트에서 보내게 되었다.

"어때요? 멋지죠?"

라희가 탁 트인 통유리창의 창밖에 비추는 런던의 화려한 야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 뒤에서 다가온 엘리자베스가 가느다란 샴페인 잔을 건네며 물었다. 라희는 손에 샴페인을 받아들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네. 정말 멋지다는 말 밖에는.."

라희가 지금 서 있는 샹그릴라 스위트는, 유럽에서 가장 높다는 308m의 층고를 가진 거대 유리 빌딩인 더 샤드(The shard)의 전체 72개 층 중에서 39층에 위치해 있었다. 더 샤드의 34층부터 52층까지가 샹그릴라 호텔이었는데, 샹그릴라는 17개의 스위트룸, 그리고 3개의 시그니처 스위트 룸이 있었다. 런던, 웨스트민스트, 샹그릴라 라고 이름 붙여진 3개의 스위트 중에서 샹그릴라 스위트는 여타 70제곱미터의 스위트와는 차별적인 232 제곱미터(71평)로 호텔 내에서 가장 큰 스위트다. 압도적인 크기만큼, 방 전체 외벽이 통유리여서 런던 시내를 바라다보는 거침없는 270도의 전망을 선보인다.

더 샤드는, 샹그릴라 호텔을 제외하고도 런던을 찾는 광광객들에게 68층의 전망대(The view)로 유명했다. 135미터인 런던 아이보다 더 높은 310미터에서 템스 강과 런던아이, 타워 브릿지, 국회의사당 (the Houses of Parliament), 런던 타워(Tower of London ), 세인트 폴 대성당( St. Paul’s Cathedral), 카나리 신도시( Canary Wharf), 테이트모던(Tate Modern), 셰익스피어 극장(Shakespeare's Globe Theatre), 그리니치 (Maritime Greenwich) 등을 비롯한 100여 개의 모든 광광명소를 한눈에 볼 수 있기 때문에, 전망대 입장료가 무려 25파운드(4만3천원가량)이나 하는데도 항상 사람들로 북적였다.

더군다나 오늘은, 올해의 마지막 날로, 속칭 NYE(New year's eve)라는 새해 이벤트가 템스 강과 런던아이에서 화려하게 펼쳐질 예정이었다. 런던의 상징인 빅벤이 자정을 알리는 종을 12번 치는 동안 런던 시에서 준비한 신년맞이 음악과 더불어, 조명을 환히 밝힌 런던아이 근처에서 솟구친 번뜩이는 섬광과 펑펑 터지는 불꽃이 어우러진 화려한 불꽃놀이가 시작된다.

장장 20분간 끊임없이 지속되는 불꽃놀이는 다채로운 빛의 생동적인 색으로 밤하늘을 수놓으며 호화스러움의 극치를 달린다. 불꽃놀이가 끝난 뒤에도 12시 45분까지 런던시에서 준비한 신년 맞이 프로그램이 계속되어 BBC1방송을 통해 전 세계로 생중계되기 때문에 런던의 NYE는 전세계에서 보러올 만큼 인기가 높았는데, 해마다 약 25만 명이 템스 강 변에서 구경을 한다고 했다.

이런 화려한 연례축제를 더 샤드에서 보게 되면 북적이는 사람들 틈에서 살을 에는 겨울밤 추위로 오들오들 떨 필요 없이 실내에서 아주 편한 상태로 이 모든 광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특히, 방안의 모든 창은 바닥에서부터 천정까지의 전면 창( the floor to ceiling windows)으로 얇은 흰색 프레임을 제외하면 거의 공중에 떠 있는 거나 마찬가지여서 탁 트인 런던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여기, 3개월 전에 미리 예약해둔 거 알아요? 샹그릴라가 지난 3월에 개장했는데, 스위트 룸은 오픈을 안 했었거든요 지난 9월에 오픈 되자마자 오빠가 제일 먼저 전화 걸어 예약했을 걸요?"

엘리자베스는 뒤로 돌아 소파에 느긋하게 기대앉아 바흐와 이야기 중인 제임스를 힐끗 보고 나서 말을 이었다.

"보시다시피, 우리 오빠는 변변한 연애도 하지 않는 불쌍한 독신남이라서 굉장히 사소한 것들에 집착하죠. 특히, 화약과 관련된 것에 비상한 흥미를 보이는데요. 지난번에 사냥에 대한 집착의 광기는 목도하셨을 테고, 오늘 밤 자정에 있을 불꽃놀이도 아주 광적으로 좋아하는 것 중 하나랍니다. "

엘리자베스는 샴페인을 기울여 마시고서, 피식 웃었다.

"화약과 관련된 것을 제외하면, 돈과 체스, 그리고 친구들을 가장 좋아하거든요. 아까부터 오늘 데이빗 오빠와 둔 체스에서 8:2로 이겼다고 어찌나 자랑에 자랑을 하던지, 귀가 따가울 정도예요. 보이시죠? 저기 데이빗 오빠 지친 표정."

"그렇네요."

라희는 들고 있던 샴페인 잔 너머의 바흐를 건너다보았다. 엘리자베스의 말대로 조금 피곤한 표정이었다. 아침부터 시작된 체스 10판은 헤러즈 쇼핑을 마치고 돌아올 때엔 이미 끝나 있었는데 무슨 이유 때문인지 몰라도, 오늘 바흐는 제임스에게 꼼짝을 못했다. 체스가 끝났음에도 옆에 붙들려서 제임스가 끊임없이 떠드는 것을 지루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인상을 찡그리며 가만 듣고 있었다.

"어휴. 헤러즈에서 컵케이크를 괜히 사왔나 봐요. 저녁밥 먹고도 계속 집어먹었더니 속이 더부룩하니 달아서 힘드네요. 그나마 다행인 건, 이제 자정까지 20분도 채 남지 않았다는 거에요. 내일이 되고 해가 바뀌면 마법처럼 소화가 되어있지 않을까요?"

깔깔거리며 웃던 엘리자베스는 창가 옆 탁자 위에 놓인 쌍안경을 집어 들어 눈을 가져다 대 창밖을 유심히 살폈다.

"역시. 사우스뱅크 쪽이 가장 많이 붐비네요. 올해부터 런던시에서 불꽃놀이 티켓을 판매한다고 들었는데, 저 많은 사람들을 보니 올해 시의 재정이 풍족해지겠는걸요."

호텔 측에서는, 더 샤드에 위치한 만큼 런던의 전망을 즐기라는 뜻으로 방마다 쌍안경(binoculars)이 들어있는 검은색 케이스를 비치해두었다. 샹글릴라 스위트는, 거기에 더불어 긴 망원경도 한 대 놓여있었다.

"사람들의 들뜬 표정이 보이네요. 이제 곧 시작하겠죠? 정말 기대되는 걸요. 저도 샤드에서 불꽃놀이를 관람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엘리자베스 말에 라희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방안에 들어설 때부터 모든 시설이 범상치 않다 느꼈는데, 오픈한지 3개월도 채 되지 않은 최신이라서 그랬나 보다. 가장 큰 스위트 룸답게, 방안은 밝은색의 나무와, 대리석, 그리고 실크가 한데 어우러져 베이지와 황금빛 색상을 주 테마로 인테리어되어 있었는데, 당연한 말이겠지만, 고급스러움은 물론이고 모던하면서도 호화스러워 보였다.

"제임스, 데이빗 오빠. 이제 곧 시작하려나 봐요!"

엘리자베스가 큰 소리로 소파에 앉아있는 두 사람을 불렀다. 그리고 리모콘을 켜 BBC1에 채널을 맞추고 볼륨을 올렸다. 조용했던 방안은 순식간에 시끌시끌하게 변했다. 텔레비전 화면에서는 들뜬 런던 시민들의 모습이 연신 비추고 있었다. 제임스는 손목을 들어 올려 시간을 확인하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어슬렁거리며 걸어왔다. 바흐도 소파에서 일어나 천천히 창으로 걸어왔다.

"런던의 NYE의 불꽃놀이를 구경하다가 다른 도시의 것들을 보면 마치 어린애 폭죽처럼 보인다더군."

제임스가 턱을 치켜들고 오만하게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러자 엘리자베스가 고개를 저었다.

"친구들 말로는 두바이와, 뉴욕, 시드니도 못지 않다고 하던걸요."

엘리자베스의 반박에 제임스를 미간을 찡그리며 손가락 끝을 세워 가볍게 흔들었다.

"아니. 런던이 최고야. 불꽃을 터트리며 뱅글뱅글 돌아가는 거대한 둥근 휠은 런던밖에 없잖니."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위에서 펼쳐지는 불꽃놀이도 정말 장관이래요."

"런던의 NYE가 최고라는 것은, 티켓 판매에서도 드러나지 않니? 전 세계에서 NYE를 보기 위한 티켓을 파는 곳은 런던 밖에 없을 거다. 거기다 올해 준비된 10만 석 모두 매진이라더구나."

두 사람이 의미 없는 논쟁을 계속하는 동안 라희의 뒤에 가까이 다가온 바흐가 어깨를 가볍게 감싸 안았다. 어젯밤 이후 갑작스러운 접촉. 가슴은 걷잡을 수 없이 뛰기 시작했다. 말없이 가만 어깨를 가볍게 감싸 쥔 커다란 손이 포근하게 감겨왔다.

-댕, 대댕, 댕, 댕...

갑자기 묵직한 종소리가 들려오자, 모두의 시선이 안개꽃처럼 야경이 수 놓인 창밖으로 향했다. 빅벤이 멜로디 같은 종을 연달아 치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수업시간 전에 울려 퍼지는 것과 같은 멜로디가 끝나자, 10, 9, 8, 7, 6....

사람들의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었다. 런던 아이 뒤편의 커다란 건물 전체가 프로젝터 전광판으로 변해 숫자를 비췄다. 동시에 런던아이에 매달린 화려한 조명들도 숫자의 카운트에 맞춰서 색깔을 달리해 깜빡였다.

5, 4, 3, 2, 1.

그리고 바로 이어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환히 웃으며 터져 나온 말.

"Happy New Year!"

방 안에 함께한 일행과, 티비에서 비춘 사람들이 저마다 크게 소리치는 가운데, 자정을 알리는 빅벤의 첫 번째 종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 대엥.

육중한 저음과 함께 마침내 펑, 펑, 터져 나온 화려한 불꽃이 환하게 터뜨려지기 시작했다. 런던 아이에서 쏘아낸 눈부신 레이저 광선들이 밤하늘을 수놓고 그 위로 빛으로 만든 꽃다발 같은 불꽃들이 터지기 시작했다. 불꽃놀이 소리가 어찌나 큰지, 퍼엉, 퍼엉, 소리에 맞춰 하늘이 진동하고 머릿속까지 울리는 것 같았다.

-댕, 댕, 댕....

빅벤이 만들어낸 12번의 종소리가 끝나자, 신나는 음악과 함께 쉴 새 없는 불꽃들의 향연이 템스 강을 배경 삼아 눈부시게 펼쳐졌다. 런던의 NYE불꽃 놀이는 화려하고 웅장했다. 아니, 어마어마한 불꽃들이 유서 깊은 고풍스러운 도시를 수놓는 경관은 차라리 장엄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어두운 밤하늘 위로 피어올라 만개한 불꽃은 바로 아래 템스 강물에 투영되어 거울처럼 비췄다.

뒤에 켜진 초대형 티비 화면과, 앞에 펼쳐진 실제의 경관은 약간의 시차를 두고 비쳐 묘한 재미를 느끼게 해주었다. 방금 눈앞에서 터진 불꽃은, 아주 짧은 시간차를 두고 텔레비전 화면 가득 비췄다. 텔레비전 화면에 간간이 모습을 드러낸 관중들은 입을 크게 벌린 채 눈을 커다랗게 뜨고 넋을 잃고 불꽃놀이에 몰입해 있었다.

관광객들을 환영하기 위한 멘트인지, 런던시에서 고심해서 선정한 신나는 리믹스 음악에 맞춰서 Welcome to London 이라는 말이 수시로 흘러나와 흥을 돋우었다. 불꽃놀이가 중반에 이르자, 주위는 대포같이 쏘아 올린 불꽃으로 환하게 밝아져 낮인지 밤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였다.

런던아이에도 불꽃이 설치되어서 둥근 휠 안팎으로 회전하듯 보이는 불꽃이 사방으로 터져 나왔다. 푸른색, 붉은색, 황금색, 은색, 녹색, 그리고 연이어 부케 같은 다양한 색상이 밤하늘을 수놓았다.

이런 광경이면 늘상 흔한 감탄과, 환호의 외침은 터져 나오지 않았다. 모두가 밤하늘에서 잘게 부서져 금가루처럼 흩날리다 흩어지는 빛의 유희에 정신을 빼앗긴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흥겨운 음악과 맞춰서 세심하게 조율된 불꽃놀이는 공연에 가까웠다. 각양각색의 불꽃이 주인공이 되어 음악에 맞춰서 노래를 부르는 뮤지컬이었다.

미처 자각할 새도 없이, 15분여간 지속된 불꽃놀이가 끝나갈 막바지 무렵이 되자, 런던아이 주변은 그야말로 전쟁이라도 난 것처럼 마구잡이로 불꽃들이 터지기 시작했다. 템스 강둑에서 불이 번져 런던 시내 전체를 태우기라도 할 것 같은 기세로 맹렬한 불꽃들이 사방에서 터져 나와 어두운 밤하늘을 하얗게 불태웠다.

"정말, 찰나의 화려한 빛의 소멸과 그 잔상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은 즐거운 일이로군. 아, 난 정말 부질없는 영원의 순간이 좋아."

마지막 피날레가 끝나자, 제임스는 런던아이 상공과 주위에 하얗게 연무처럼 남은 불꽃놀이의 진한 흔적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이내 BBC1에서는 한해를 마감하고 새로운 한해를 여는 Auld lang syne(올드 랭 사인:우정을 기리는 오래된 스코틀랜드 노래로 새해 전날 밤 자정에 부름)이 흘러나왔다. 아련한 선율로 화한 불꽃놀이가 남긴 가슴 벅찬 감동의 여운을 음미한 엘리자베스는 약간 멍한 표정으로 밖을 바라보고 있다가, 오빠가 하는 말에 정신을 차리고서 고개를 느리게 끄덕였다.

"정말, 대단하네요. 처음으로, 샹그릴라를 새로운 NYE 장소로 잡은 오빠의 탁월한 선택에 감탄이 절로 나왔어요."

동생의 말에 기분이 우쭐해진 제임스는 바흐에게 시선을 던졌다.

"흐음. 어떤가? 세계 최고의 NYE와 한국을 비교해보면."

제임스가 눈썹을 들어 올리며 바흐에게 물었다. 바흐는 어깨를 감싸 안은 라희의 정수리에 가볍게 턱을 얹고서 귀찮은 듯이 말했다.

"자네의 우월한 대영 대국의 집착에 아부를 해주겠네. 훌륭하네. 그리고 이젠 자네가 약속을 지킬 시간이 된 거 같은데."

바흐의 말에 제임스는 입술 끝을 살짝 오므리더니 실망했다는 표정으로 삐죽거렸다.

"하룻밤 14,000파운드의 방을 홀랑 날로 먹으려 드는군. 알겠네. 약속을 지키지."

"무슨 약속이요? 오빠."

엘리자베스가 묻자, 제임스가 눈매를 가늘이며 말했다.

"오늘 체스 10판과 그 이후 놀아주는 대가로 NYE 불꽃 놀이 이후 방을 양도하기로 했거든. 어차피, 런던에 안락한 집이 있는 우리에겐 더 이상 필요없는 방이긴 하지만, 이렇듯 신년 인사도 없이 당당하게 쫓아내니 조금 괘씸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구나."

"오늘 공을 많이 들였군요. 데이빗 오빠. 저는 데이빗 오빠의 뜻에 군말 없이 따를래요. 오늘 헤러즈에서 꽤 비싼 뇌물을 접수했거든요."

엘리자베스가 밝게 말하자, 제임스는 미간을 찡그렸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어쩐지 내가 손해인 거 같단 말이지. 샹그릴라 스위트는 런던에 딱 하나밖에 없고, 내가 첫날 예약하지 않았으면, 오늘 이 자리에 함께 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을 텐데 너무 싸게 넘긴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단다. 더군다나 오늘부터 새해이지. 한 해 새로이 시작하는 날에, 런던 상공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아침을 맞아 근사한 조찬을 먹는 일도 의미 있는 새해 의식이 될 텐데.."

제임스가 입꼬리를 늘이며 길게 말을 이어가자,

"제임스. Happy New year."

바흐가 시끄러운 소리 말고 꺼지라는 말투로 이름을 낮게 부르며 짧은 새해 인사말을 건넸다. 제임스는 그를 바라보며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알겠네. 약속은 약속이니, 신사의 나라 귀족답게 지켜야겠지. 엘리자베스, 이만 훼방꾼들은 가자꾸나. 저 두 연인들이 토끼처럼 안달나 있으니 자리를 비켜줘야겠지."

제임스는 시니컬하게 말을 툭 던지고서 창가에서 몸을 돌려 소파 위에 얹어진 겉옷을 팔에 들고 곧장 현관 입구 쪽으로 향했다. 엘리자베스는 라희와 데이빗을 향해 호선을 그린 푸른 눈으로 인사하고서 밝게 손을 흔들었다.

"Happy new year! 좋은 시간 되길 바라요. 두 사람 모두."

엘리자베스도 오빠의 뒤를 따라 현관 쪽으로 걸어나가던 차에, 스위트 현관문 고리를 비틀어 열어 밖으로 나가려던 제임스가 뭔가 생각난 표정으로 몸을 돌려 바흐를 향해 외쳤다.

"소파 테이블에 선물이 있으니까 신경 쓰도록! Happy New year, My Friend!"

"Happy New year!"

두 사람이 나간 현관문이 스르륵 닫히면서 뒤따라 소리 친 엘리자베스의 외침이 잦아들었다.

"......."

바흐는 라희의 정수리에서 짧은 한숨을 쉬면서 어깨에서 손을 내려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스위트 룸의 넓은 거실 한가운데 홀로 켜져 있는 BBC1채널에서는 각지의 새해맞이 행사를 보여주고 있었다. 정적이 흐르는 조용한 방 한가운데 TV 소리만 웅웅대며 울려 퍼졌다.

"이제 마침내 둘 만 남았군."

잔뜩 두근거림으로 긴장한 정수리 위로 그의 나직한 중얼거림이 내려앉았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유투브에서 2014 NYE London을 검색하시면 불꽃놀이가 나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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