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와 그녀와 그와 나-88화 (88/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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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사 시간 줄곧 고개를 숙이고 있던 라희는 눈을 힐끗 들어 앞을 향했다. 눈을 들자마자, 식탁 바로 맞은편 그녀를 곧게 응시하고 있던 바흐의 낮은 시선과 부딪혔다. 라희는 재빨리 눈을 아래로 미끄러뜨렸다.

저녁을 먹으러 내려온 라희보다 한발 늦게 주방에 들어온 그는 보란 듯 라희의 맞은 편에 앉았다. 식사 도중 그의 짙은 눈빛은 줄곧 라희에게 머물렀다. 혹여라도 눈을 들라치면, 이내 시선이 엉켰다. 라희는 짧은 한숨을 내뱉던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어, 응. 그래? 알았어. 나야 하숙생이 많으면 좋지. 디너 때 직접 얼굴 보면 되겠네."

라희의 어깨너머 거실에서 사라가 전화받는 말 소리가 들려왔다. 저녁 시간이 되자 식탁에 같이 앉아 준비된 토마토 스파게티와 시저 샐러드를 먹던 사라는, 갑자기 울리는 전화 소리에 급히 거실로 나갔었다. 사라가 사라지고 단둘이 마주 앉아 남게 되자, 그는 한동안 묵묵히 음식을 먹더니 어느 순간 포크를 내려놓고 턱을 들어 고요한 눈빛으로 라희를 가만 응시했다.

그의 시선 속에 갇힌 라희는 마비된 듯이 꼼짝하지 못하고 그냥 고개만 떨구고 있었다. 그녀 위로 천천히 내려 앉은 깊은 시선은, 아래로 내리뜬 눈두덩이 위에 머물렀다가 코와 뺨을 훑고서 천천히 내려가 입술 위에 머물렀다. 낮아진 눈빛 속에 다문 입술 끝이 파르르 떨려왔다. 라희는 무의식적인 떨림을 누르려 안쪽 입술을 짓씹었다.

그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숙이고 있던 라희는 집중된 감각을 분산시키기 위해서 포크를 쥔 손에 괜스레 힘을 주었다. 연한 아이보리빛 옴팍한 접시에 담긴 주홍빛 토마토 밋 소스 스파게티 가닥가닥이 포크 끝에 엉켜 들어 둥글게 말렸다. 라희는 손가락 끝에 힘을 주어 포크를 시계방향으로 느리게 굴렸다가, 다시 그 반대 방향으로 천천히 굴렸다. 포크 끝에 돌돌 말린 스파게티는 둥글게 감겨들었다가 도로 풀어헤쳐 졌다가 다시 감겼다.

"스파게티는 어때요? 입맛에 맞는지요. 라일라는 내 음식맛에 어느 정도 적응했지만, 데이빗의 입맛은 아직 알 수 없어서 걱정했거든요."

사라가 주방으로 들어오며 라희의 맞은편 바흐를 향해 말을 건넸다.

"맛있습니다."

그가 짧게 대답했다.

휴우, 다행이었다. 라희는 자신을 곧게 주시하던 시선이 살짝 비켜 뒤에서 걸어들어오는 사라를 향한 것에 안도했다. 사라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고서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군요. 역시, 음식 솜씨가 워낙 좋다 보니 호호. 라일라, 고기를 둥글게 뭉친 미트 볼로 할까 하다가 네가 먹기 수월하게 그냥 밋 소스로 바꿨는데, 괜찮은 거 같니?"

"네. 아주 맛있어요. 사라."

라희는 작게 중얼거렸다. 힐끔 앞으로 보니 그의 접시는 어느덧 비어있었다. 라희는 자신의 그릇을 내려다보았다. 먹는 시늉만 한 것처럼 거의 손대지 않아서 절반 이상 남아있었다. 맞은편에서 쏘아지는 시선에 신경 쓰느라, 먹는 데 전혀 집중하지 못했다.

"좀 더 먹을 건가요? 데이빗."

사라는 비어있는 접시를 발견하고는 그에게 물었다.

"괜찮습니다."

그는 고개를 낮게 저으며 대답하고서, 식사를 마쳤다는 것을 알려주듯, 잘 먹었습니다 라고 덧붙였다. 사라가 자신의 자리에 앉아 포크를 들자, 그는 그대로 식탁에서 일어나서 접시를 내려다보고 있는 라희를 향해 시선을 짧게 던졌다가 거둬들인 후 그대로 주방을 벗어났다.

"........"

사방에서 옥죄어 오던 긴장이 스르륵 풀림과 동시에 긴 숨이 터져 나오는 것을 겨우 목구멍으로 삼켰다. 라희는 손을 뻗어 앞에 놓인 유리잔을 기울여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아까부터 목이 바짝 탔는데, 그가 지켜 보고 있었기에 미련스럽게도 참고 있었다.

"소금을 너무 많이 쳤나? 간이 짜니?"

사라가 그 모습을 보고는 약간 놀라 물었다. 라희는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그냥 목이 말라서. 맛있어요."

"흐음. 그래. "

사라는 둥글게 말린 스파게티를 입가로 가져가려다가 무언가 생각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방금 케이트에게서 전화가 왔었는데, 아무래도 조만간 하숙생이 한 명 더 늘 수도 있을 거 같아."

"그래요?"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었다. 바흐와 단둘이 사라의 집에서 기거하는 일은 숨 막혔다. 라희가 관심을 보이자, 사라는 밝은 표정으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이번에 바스 대학을 졸업하고 시청에 근무하게 된 소피라는 아가씨인데 아주 성격이 싹싹하고 좋다나 봐. 대학 졸업하고 나면 기숙사에서 나와야 하는데 마땅히 묵을 장소를 찾지 못해서 고민했다더구나. 찰스가 이번 크리스마스 디너에 데려올 거라나 봐. 원래는 런던에 있는 소피 집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려고 했는데, 갑자기 부모님이 이번 크리스마스에 둘이서만 태국으로 놀러 가버렸다지 뭐니. 결혼 25주년 기념이라나 리마인드 웨딩이라나 뭐 그렇다더구나. 음, 결혼 25주년이면 아무래도 리마인드 웨딩이 아니라 은혼식(silver wedding anniversary)이겠지."

"은혼식? 그런 날이 따로 있나요?"

어디선가 그 단어를 들어본 적은 있어도 정확하고 자세한 의미는 알지 못하는 라희가 궁금해하면서 묻자, 사라가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 결혼하고 나면 해마다 결혼기념일을 세잖니. 그런 특정 해마다 따로 지칭하는 명칭이 있단다. 기념일에 주고받는 선물의 이름을 딴 거지. 예를 들어, 5주년에는 나무에 관련된 선물을 주고 받으니까 목혼식(Wooden:나무), 10주년은 석혼식(Tin:주석), 15 주년은 수정혼식(Crystal:수정), 20주년은 도혼식(China:도자기), 25주년은 은혼식(Silver:은), 30주년은 진주혼식(Pearl:진주), 50주년은 금혼식(Gold:금), 60주년은 금강혼식(Diamond: 다이아몬드)라고 불리지."

거기서 잠시 말을 멈춘 사라는 포크 끝을 내려보다가 중얼거렸다.

".....나와 피터는 진주혼식까지였지. 그이는 기념으로 헤로드 백화점에서 산 진주 목걸이를 선물해 주었단다."

아련한 눈빛을 담은 사라의 눈가가 이내 촉촉해졌다. 손가락 끝으로 눈매를 가볍게 훔친 사라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천천히 다물린 입으로 묵묵히 남은 식사를 했다. 식탁 위 공기가 착 가라앉아 무겁게 느껴졌다. 올해로 작고한 지 2년째인 피터의 빈자리는 불쑥 드러나 종종 예기치 못한 순간에 사라를 우울하게 했다.

사라는 피터가 생각 날 때면 눈가가 촉촉이 젖어들거나, 갑자기 말이 없어지곤 했다. 그만큼 두 사람의 사랑이 깊었으리라. 조용히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마침내 라희의 스파게티 접시가 비워졌다. 포크를 내려놓는 라희를 보며 사라가 고개를 들어 말했다.

"스파게티 양이 생각보다 많았나 보구나."

사라는 라희가 평소보다 식사를 늦게 마친 것을 신경 쓰는듯했다. 스파게티 양은 예전과 다름없었다. 실상은 다른 일 때문에 식사가 늦어졌는데. 라희가 뭐라 답해야 할지 몰라 조금 머뭇거리고 있자, 사라가 입매를 어색하게 끌어올리고서 입을 열었다.

"소화가 잘 되는 민트티를 타 줄 테니 거실에서 기다리렴."

사라는 자신이 입을 다물어 버려 식탁의 분위기가 무거웠던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었다.

"고마워요. 사라."

라희는 작게 대답하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방에서 벗어나서 모퉁이를 돌면 거실이 펼쳐진다. 거실에 발을 디딘 라희는 우뚝 멈춰 섰다. 아까 식사를 마치고 자신의 방으로 올라간 줄로만 알았던 바흐가 소파의 정 가운데에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그냥 자리를 피해 올라가고 싶었어도 사라가 차를 준비하고 있는 소리가 들려서 그럴 수 없었다. 라희는 잠시 멈춰있다가, 그가 고개를 들고 흥미로운 시선으로 바라보자 그에게서 가장 멀리 떨어진 구석 자리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그나마 다행인점은, 그가 미리 앉아있었기에 이런 식으로 멀찌감치 떨어져 앉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만약 라희가 먼저 소파에 앉아있었더라면, 방에서 내려온 그가 다가와 바로 옆에 앉았을 거였다. 그랬으면 사라가 없을 때라면 몰라도, 사라가 있는 자리에서는 이목을 신경 쓰느라 쉽사리 다른 곳으로 움직이지도 못했을 거니까.

".........."

비록 장소는 식탁에서 소파로 바뀌었지만, 아까와 다름없는 그의 집요한 시선 속에서 어색한 침묵이 짙게 내리깔렸다. 차라리 민트티를 타준다는 사라의 제안을 거절할 걸 하는 뒤늦은 후회가 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대체 여기서 뭐 하는거냐고 어서 한국으로 돌아가 버리라는 말을 크게 외치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무슨 말을 들을지 몰라서 입을 다물었다.

유진의 말대로 손바닥이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이쪽에서 먼저 말을 시작하면 그가 말을 받아서 할 테고, 그러면 의도와 상관없이 그에게 먼저 연락하거나 액션을 취한 셈이 된다. 머릿속에 떠오른 2억이라는 숫자의 8개 0을 하나씩 하나씩 마음속으로 지우면서 라희는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마음이 무거웠다.

바흐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손에 들고 집중해서 읽고 있던 두꺼운 책을 덮어 옆자리에 내려놓고 본격적으로 라희를 주시했다. 라희는 아래로 눈을 굴리고 있다가 소파 테이블에 손을 뻗어 리모콘을 들고서 꾹 전원버튼을 눌렀다. 이내, 거실 한가운데 걸린 커다란 텔레비전 화면이 팟 하고 켜졌다. 마지막으로 사라가 보았던 채널이 BBC인 듯, 화면 가득 뉴스가 흘러나왔다. 영국 각지의 성대한 크리스마스 상황과 화려하게 장식된 크리스마스 트리를 소개하는 리포터가 영국 특유의 고저가 있는 억양으로 빠르게 말했다.

라희는 그의 시선을 깨끗이 외면하면서 고개를 홱 돌려 티비에 시선을 고정했다. 눈길이야 화면을 향하고 있었지만, 신경은 온통 한곳에 몰려있어서 티비 내용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곧게 쏟아지는 짙은 그의 눈빛이 또렷이 자각되면서 리포터의 말이 소음처럼 웅웅거리며 귓가를 맴돌았다.

"자, 마시렴. 페퍼 민트티야. 지난여름 정원에서 직접 기른 거라 100% 오게닉이고, 향이 아주 좋아."

주방에서 쟁반을 들고 나온 사라가 테이블 위로 뜨거운 찻잔을 각각 내려 놓았다. 로얄 알버트의 황금빛 테두리를 두른 붉은 장미문양의 홍차잔에 담긴 맑은 녹색의 민트티에서 청량한 향이 가득 퍼져 나왔다.

"훌륭하군요."

그가 찻잔을 기울이고 나서 예의 바르게 말했다. 사라는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그이가 좋아하던 차랍니다. 무거운 고기요리나 이탈리아 요리처럼 기름진 음식을 먹고 난 뒤에는 항상 입가심으로 페퍼민트 티를 즐겼거든요. 라일라, 어서 마셔보렴. 소화에 도움이 될 거야. 페퍼민트티는 소화를 촉진하고 감기 예방에 아주 좋단다. 더군다나 잠을 방해하는 카페인도 없어서 저녁 식사 후 마시기로도 적격이지."

사라의 권유에 라희는 테이블 위에서 찻잔을 들어 입가로 가져가 기울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연한 녹색이었던 페퍼민트 티는 이제 약간 노란빛으로 바뀌어 있었다. 입술에 뜨거운 차가 흘러들었다. 입안 가득 상쾌한 맨톨향이 맴돌았다. 차 맛은 청량하고 깔끔했다. 향이 익숙해서 기억을 되짚어 보니 한국에서 흔히 맡던 박하향과 같았다.

"박싱데이(12월 26일 크리스마스 다음 날)가 결혼기념일이어서 그런지, 요맘 때가 되면 피터가 자주 생각나는군요."

사라는 현란한 크리스마스 장식이 가득 클로즈업된 화면에 시선을 던졌다가, 이내 거두고는 손에 든 찻잔을 내려다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이렇게 저녁에 페퍼민트 차를 마시고 있으면 그이가 피아노를 연주해주었거든요."

사라의 시선이 창가에 놓인 피아노로 향하자, 찻잔을 기울이던 바흐도 테이블 위에 민트티를 내려놓고서 잠시 피아노를 바라보았다.

"지금도 귓가에 들리는 거 같아요. 크리스마스 때면 피터가 쳤던 곡들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거든요."

사라는 피아노에 시선을 고정하고서 추억을 거니는 눈빛으로 말했다.

".....어떤 곡이었습니까."

잠자코 있던 바흐가 물었다. 라희는 조금 놀란 얼굴로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거의 말이 없는 그로서는 드물게 던지는 질문이었다. 사라는 피아노를 향한 아련한 눈빛으로 답했다.

"글쎄요. 피터는 워낙 연주를 즐겨했거든요. 요맘때는 크리스마스니까 주로 캐럴을 연주해주었지요. Have yourself a merry little christmas 나 Let it snow 같은 곡이요. 아, 내가 피아노를 칠 수 있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어릴 때 두 달 가량 레슨을 받다가 도망치듯 그만둬 버린 게 이 나이 되어서야 후회가 되더군요. 한동안 음반 가게를 돌아다니며 남편이 연주했던 곡들을 담은 피아노 CD를 사서 모아 아무리 들어 보아도 직접 들었던 그 느낌은 절대 아니더군요."

"음."

바흐는 창가에 놓여있는 검은색 피아노를 한참 바라보고 있다가, 앉아있던 자리에서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느린 발걸음으로 피아노를 향해 다가가 연주용 의자를 빼내고 그 위에 곧은 자세로 앉았다.

"혹,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그가 사라를 향해 정중히 물었다. 사라는 그의 행동이 갑작스러웠는지, 얼굴 가득 놀람을 담고서 대답했다.

"어머, 데이빗. 피아노를 칠 줄 아나 보군요. 나야 그저 연주를 들을 수만 있다면 고마울 따름이지요."

이내, 사라의 눈짓을 받은 라희가 리모콘의 음소거 버튼을 눌러 티비 소리를 죽였다. 그사이 바흐는 손을 뻗어 굳게 닫혀있던 피아노 뚜껑을 열었다. 사라가 매일매일 남편을 추억하며 닦아놓아 반질반질한 건반 위에 가볍게 손을 얹었다가, 갑자기 무언가 생각 난 듯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그리고 버튼을 눌러 무언가를 검색하더니 악보 대에 휴대폰을 가로로 뉘여 올려놓고서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휴대폰 화면에 손끝으로 악보를 넘기듯 몇 번 움직여 한참을 들여다보던 그가 마치 오랜 습관처럼 손가락 마디를 꾹꾹 눌러 매만지고 나서 건반 위에 다시 손을 얹었다.

-따다, 딴딴딴...

그의 손끝에서 울려 퍼지는 피아노 소리는 어딘지 모르게 어색했다. 조금 소리가 컸고 툭툭 끊어지듯 딱딱하기도 했고 서투르게 들리기도 했다. 이내, 둔탁한 느낌으로 건반을 두드리던 손가락을 멈춘 그가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마음에 안 드는 듯 유심히 피아노를 내려다보던 그는, 다시 손가락 마디 마디를 힘주어 만져서 풀고, 손목을 빙글 돌리더니 건반 위에 손가락을 얹어 연주를 시작했다.

-따다, 다 다다 다라라 단

가볍게 눌린 여린 음이 그의 손끝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선율이 끊김 없이 부드럽게 이어졌다. 그가 발을 움직여 피아노 페달을 깊게 밟자 풍부한 울림을 담은 음들이 거실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천천히, 부드럽게 흘러나오는 곡은 높고 여린 음으로 시작된 Have Yourself a merry little christmas 였다. 리딩하는 오른손이 만들어내는 멜로디를 수줍게 따라가듯, 왼손이 반주를 받쳐서 멋진 화음을 만들어냈다.

귓가에 감미롭게 감겨오는 피아노의 높고 여린 음은 투명하게 들렸다. 마치, 한겨울 밤 가로등 아래서 하염없이 쏟아지는 하얀 눈을 올려다보고 있는 듯한 그런 기분이 들었다.

창가에 곧은 자세로 앉은 그가 피아노를 유려하게 연주하는 모습을 사라는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길고 우아한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음은 가벼운 깃털처럼 공기 중에 떠돌아다니다가, 스르륵 내려앉아 깊은 여운을 남겼다. 라희 역시 사라와 마찬가지로 바흐가 연주하는 선율을 귓가에 가득 담고서 눈을 떼지 못했다.

마치, 예기치 못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사라는 미세히 흔들리는 눈으로 아련한 기억 속을 걸었다. 소파 테이블 위에 올려둔 페퍼민트 티가 식어가는지도 알지 못하는 채 그렇게 저녁 시간은 감미롭고 매혹적인 선율 속에 녹아 깊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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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ve yourself a merry little Christmas piano 라고 유투브에서 치면 들을 수 있습니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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