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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그녀와 그와 나-72화 (7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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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울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충혈되어 부은 눈가가 화끈거리고, 코끝이 찡하고 막혀서 답답했다. 티슈를 뽑아 얼굴을 닦고, 코를 풀었다. 그리고 식탁 위 먹다가 만 정체불명의 요리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입맛도 떨어졌고 이 상태로 더 먹는 것은 무리였다.

그렇지만 역시, 제대로 된 음식을 먹었더니 배 속이 든든해 조금 힘이 났다. 자리에서 일어난 라희는 먹던 음식은 버리고, 냄비에 남은 음식은 저장그릇에 담아 냉장고에 넣고 싱크대 가득한 설거지까지 마저 해치웠다.

그 뒤 침실로 터덕터덕 걸어와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았다. 팔을 뻗어 더듬거리며 침대 머리맡에 놓여있던 리모콘을 들고 티브이를 켰다. 컴컴한 티브이 화면은 이내 다채로운 색깔들로 빛나며 색색이 변했다. 화면 위 짧은 광고들을 보며 이리저리 목적 없이 배회하던 시선이 문득, 옷장 옆에 걸린 루이비통 핸드백에 멈췄다.

돈.

결국, 돈 때문이다.

이렇게 한없이 초라해지고,

가슴을 후벼 파는 모멸감에 갉아 먹히는 이유.

라희는 핸드백을 들고 와서 침대 위에 펼쳐 놓고 열어 그 안의 내용물들을 꺼냈다. 그동안 생각조차 하기 싫어서 그냥 넣어둔 통장과 미처 은행에 입금하지 못한 돈 100만 원이 보였다. 찍혀있는 통장 잔고 580만 원. 앞에 놓인 현금 백만 원. 그리고 여행전 바흐가 입금한 돈, 천만 원. 총합 1680만원.

라희는 휴대폰을 켜 은행 앱을 실행했다. 이 통장과는 별개로 원래 쓰던 통장을 조회했다. 실시간 조회된 잔고는 60만 원가량. 마음 한구석 예상 했던 대로, 엄마가 부쳐준다던 돈은 입금되지 않았다. 지난 몇 년간 쌓인 과수원 부채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이기 때문에, 오빠 뒷바라지도 허덕이는 마당에 오백만 원이라는 가욋돈을 지출하기는 쉽지 않았으리라.

그렇다면 현재 1740만원. 이 돈이 가진 전 재산이다.

그것도 대부분은 바흐로부터 받은 돈.

오천만 원을 갚아준 데다가, 관계 후 돈까지 쥐어주다니, 정말 세상 어디에도 없을 너그러운 처사가 아닌가. 이토록 넉넉한 화대라니. 싸늘한 냉소가 입가에 스쳤다.

여기에 더해 그와의 계약을 파기하기 위해 필요한 돈은 3천만 원가량. 이제까지 그의 태도로 보아서는, 굉장히 희박한 가정이지만, 어쩌면, 약정한 날짜보다 먼저 계약을 파기하고 싶다고 통보하면 지금까지 추가로 지불한 모든 돈을 도로 내놓으라고 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5천만원에 1700만원, 그리고 최악의 경우 거기에 더해 백화점에서 사준 준 것들까지 계산에 넣어야 할지도.

라희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선물로 받은 물건은 빼야 했다. 스스로도 너무 야비한 생각이었지만, 선물은 말 그대로 선물이니까. 만약 받은 물건값까지 더한다면 액수 자체가 감당하기 힘들어진다. 죄다 이름 알려진 명품 구두, 옷, 가방. 일일이 셀 필요도 없다. 지난번 받은 목걸이 하나만 해도 대체 얼마인가. 이리 되면 가정 자체가 불가능하다.

라희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니까 현물이 아닌, 계약금액만 생각해보자면, 앞으로 약 3천만 원이 더 필요하다.

대출? 라희는 뾰로통하게 입술을 내밀었다. 대출이라고 해봤자, 학생인 지금으로써는 학자금 대출이 동원할 수 있는 전부다. 그런데 학자금 대출은 이미 올초 기숙사에서 나와 집 보증금을 충당하기 위해 받아썼다. 그리고 현재는 휴학 중으로, 학생도 아니니 추가 학자금 대출도 어렵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카드. 그런데 신용 카드는 아직 없다. 직장이 없으니까. 상대적으로 쉬운 카드회사에서 카드도 못 만드는 내게 깐깐한 은행이 대출해 줄 리는 만무하고.

그렇지만, 만약 어떻게든 대출을 받아서 바흐에게 갚고 나면? 그뒤에는 합법적인 빚을 갚는 인생이 되려나. 그렇게 되면 적어도 누군가에게 24시간 얽매이지도, 타인으로 부터 싸늘한 경멸과 혐오의 눈초리를 받고 마음 한 구석 자리잡은 모멸감에 시리도록 에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 라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대출금으로 그와의 계약을 파기하고 나서 일해서 갚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될까.

일.

라희는 무작위로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하느라 눈동자를 위로 들어 분주히 굴렸다.

지금 당장 시작 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하고 고수익이 되는 일이 뭐가 있지. 먼저, 유흥은 제외해야 한다. 몸 파는 여자 취급은 오늘 충분히 겪어봐서 지긋지긋하니까.

아르바이트, 혹은 단순 사무원, 전처럼 학원 파트타임, 혹은 공장숙식?

과학우들이 학기 중 아르바이트로 제법 많이 했었던 주말 마트 파견이나 비교적 건전하고 고소득인 나레이터 모델도 있다. 나레이터 모델은 친하게 지낸 과친구도 했었다. 코엑스에서 하는 전시회에 도우미로 뽑혀 일하기도 해서, 할 일 없었던 과동기들 따라 일부러 가보기도 했었다.

진한 화장에 탱크탑과 미니스커트를 입고 발랄한 표정으로 서 있거나 깔끔한 흰색 블라우스에 검은색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하이힐로 늘씬한 각선미를 뽐내며 전시회장을 찾은 방문객들을 친절히 안내하는 일을 했다. 하루종일 서서 웃느라 힘들다고 들었지만, 급료가 당일 현찰로 바로바로 입금되니까 그걸 보고 일한다고 했다.

하루 얼마라고 했더라. 라희는 기억을 되돌려 보았다. 모르긴 몰라도 10만 원 내외였던 거 같다. 당장 떠오르는 그 친구는 캐나다에서 살다 와서 외국계 업체에 고용되어 도우미와 통역까지 동시에 하느라 삼일 일 하고 50만 원정도 받았다고 자랑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큰 금액을 급료로 지급 받기는 불가능하다. 영어를 대충 알아듣기는 해도, 유창하게 말하는 것은 무리니까.

하루 일당이 10만 원 내외라 치면, 매일 매일 일한다고 하면 대충 300만 원.

아니. 라희는 고개를 저었다. 이것은 그저 이론상의 가정일 뿐, 급여가 높은 대신, 단기 고용 프리랜서 개념이라 한 달 내내 일이 있지는 않는다 했다. 기껏 일주일에 삼사일. 물론 예외도 있었지만, 평균을 낼 거니까 사일로 잡고 4주면, 160만원에서 가감될 것이다.

160? 턱없이 부족하다. 라희는 다시 머리를 굴렸다.

지금 당장 한 달 동안 벌 수 있는 돈은 최대 얼마일까. 보습 학원 아르바이트는 파트타임으로 80가량이었고, 전일로 한다면 150만 원. 대학 졸업도 하지 않았으니 전임이더라도 급료는 더 낮을지도 모른다. 교육부에 정식 강사로 등록하려면 대학 졸업증이 있어야 하니까.

일단 전임으로 일할 수 있다 치고 낮에 하는 시간제 아르바이트까지 겸한다면, 얼추 200만원. 200만원으로 한 푼도 쓰지 않고 일 년 동안 모은다 해도 2400. 이미 계산이 나오질 않는다. 집세, 생활비가 꼬박꼬박 달마다 나가는 마당에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을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또 뭐가 있지? 라희는 뻐근한 목를 둥글게 돌리며 생각해 봤다.

골프장 캐디? 그건 몸을 직접 쓰는 일이기에 급여가 좀 더 높지만, 교육도 있고 현장에 투입된다면 수습기간이 삼 개월가량이라 들었다. 일도 해가 막 뜨는 새벽부터 해 질 녘까지 있고. 피부가 상하기는 하지만 벌이도 괜찮다. 하지만, 특유의 이미지 때문에 젊은 아가씨가 하기에는 조금 꺼려지는 건 사실이었다.

대학 졸업 후 가질 수 있는 정규직에, 정년 보장된 직업을 제외하고, 알고 있는 선에서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일들은 한 달에 200을 넘지 못했다.

그냥, 시간이 흘러가길 바라면서 가만 앉아있는 편이 가장 편하고 좋은 방법이긴 하다. 오천만 원이 ELW(주식워런트증권)도 아닌데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내재가치인 금액이 감가 상각되니까. 그 사이 바흐는 유부남이 되겠고, 나는 이유진에게 간통으로 고소당하지 않길 마음 졸이겠지.

하하, 정말, 비참을 넘어.

............끔찍하다.

라희는 생각을 멈추려 고개를 흔들었다. 또다시 도돌이표였다. 그래, 애당초 생각 자체를 하지 않으려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다.

답이 없으니까.

앞을 향해 걸어나가면 어느새 뒤가 되어 다시 출발지점으로 돌아오는 뫼비우스 띠 같았다.

―띠링.

문자 메시지 알림 벨이 울렸다. 생각에 잠겨 멍하니 통장과 돈을 바라보던 라희는 소리가 울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휴대폰 액정 화면에 메시지가 떠 있는 것이 보였다.

「별일 없지? 」

오빠다. 라희는 액정화면을 손끝으로 꾹꾹 눌렀다.

『...응. 시험은 언제야?』

「11월 초에 원서접수 시작해 시험은 12월 초」

『곧 이네 꼭, 잘 봐.』

꼭이라는 단어를 힘주어 눌러 전송 버튼을 찍었다. 만약 이번 해에 오빠가 임용시험을 패스해 교사가 된다면, 교직원 대출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신분 대출이니만큼 한도가 높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차곡차곡 갚아야 하는 빚이긴 피차 마찬가지다. 같은 빚이지만, 그토록 바라던 마음의 위안은 얻을 수 있겠지. 라희는 꺼진 액정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띠링, 꺼진 액정 화면이 켜지면서 문자 알림 벨이 다시 울렸다.

「야, 근데.」

근데? 그 뒤로 바로 올 거처럼 뒷말이 댕강 잘린 문자는 오지 않았다. 무슨 문자가 이리도 짧지? 무슨 말을 하려던거야? 급한 일이라도 생겼나.

라희가 다음 문자를 기다리며 휴대폰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을 때였다.

―띵동.띵동.띵동.띵동.

현관 초인종 소리가 요란히 울렸다. 급박하게 다다다 누르는 초인종 소리. 이제는 굳이 인터폰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 것만 같다.

라희는 이마에 손을 짚고 깊은숨을 몰아쉬었다. 앞으로 마주할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피곤에 지친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져 오는 것 같다. 오늘은 좀 일찍 잠들어 편히 쉬려고 했더니, 나영 말대로 한 식구라서 그런지 합심하여 날을 잡고 몰아붙이기로 작정을 했나.

―띵동 띵동 띵동 띵동.

이번에는 간격조차 두지 않고 연속으로 초인종을 누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지만, 곧 일 거다. 건물 떠나가라 이름을 불러 대겠지. 라희는 힐끗 벽에 걸린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8시. 애매한 시간이다. 퇴근 후 저녁은 이미 먹었을 테고, 술에 취하기는 이른 시각이고. 뿔테가 맨정신이기를 바랐다. 그래야, 따끔하게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똑똑히 말해 줄 수 있을 테니까.

라희는 몸을 일으켜 핸드백을 제자리에 걸어 두고서 옷장 옆에 걸려있는 거울을 살펴 보았다. 언제 울어냐는 듯, 얼굴은 눈가에 옅은 붉은 기를 빼면 거짓말처럼 멀쩡하다. 거울을 보던 라희는 마음을 죄어오는 갑갑증을 떨치기 위해 심호흡을 몇 차례 하고서 현관문을 향해 걸어갔다. 가다가 혹시 몰라 인터폰을 켜보았다. 좁고 침침한 흑백 모니터 너머로 잔뜩 찡그린 채 모니터 렌즈를 노려보고 있는 뿔테가 보였다.

뿔테는 인터폰 렌즈 밑에 붉은 불이 들어온 것을 알리기라도 하려는 듯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는 시늉을 했다.

라희는 현관 문고리를 잡으려고 손을 뻗다가, 우뚝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는 원룸. 더군다나 혼자 사는 공간이다.

만약, 그와 여기서 이야기하다 감정이 격해진다면?

오늘 할 이야기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듣기에 좋은 말은 아닐 거다.

감정이 상한 남자란 어찌 돌변할지 모른다. 엄마가 하늘처럼 떠받들어 키운 오빠가 그랬으니까. 어릴 때부터 오빠는 별거 아닌 것을 말꼬리를 잡아 자신의 심기에 거슬리는 말을 했다며 가차 없이 발로 걷어차기도 하고, 엄마가 외출했을 때 라희가 대신 차려 놓은 밥상을 엎기도 했고, 건방지게 말대꾸했다며 무자비한 주먹을 날리기도 했다.

그때 기억이 떠오르자, 라희는 흠칫 어깨를 굳혔다. 이 끔찍한 모든 것의 시작은 무심히 대꾸한 말 몇 마디였다. 그걸 구실삼아 갑자기 안색이 변했다. 물론, 그전에 다른 것으로 기분이 나빴던 상태였을 것이다. 그저 스트레스를 풀어낼 꼬투리가 필요했을 뿐. 무작정 날아드는 오빠의 폭력에 몸을 웅크리고 그저 이 시간이 지나길 바라며 덜덜 떨었다.

오빠를 돌이켜 생각해 보아도 남자란, 눈이 뒤집혀 흥분했을 때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나중에 오빠가 정신을 차리고 어색한 태도로 말뿐인 시답잖은 사과를 했어도, 이미 멍든 상처는 치유되지 않았다.

그 점은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평소에는 과묵하고 온화한 성격의 아빠였지만, 한 번씩 욱하는 성질이 있어서 몇 년에 한번, 엄마와 대판 싸울 때에는 집안이 온통 초긴장 상태였다. 씩씩거리며 분노한 아빠 앞에서 엄마는 눈물 흘리며 잘 못 했다고 무릎 꿇고 빌었고, 라희는 아빠의 신경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방에서 불 끄고 자는 척 이불을 뒤집어쓴 상태로 숨죽이며 공포의 시간을 견뎌야 했다.

거기까지 떠올린 라희는 현관 문앞에서 몸을 돌려 다시 방으로 걸어 들어가 옷장 문을 열었다. 낮에 입었던 니트 스웨터를 고르려던 손을 비껴 옆에 걸린 두툼한 모직 코트를 골랐다. 해가 비치는 낮에도 제법 쌀쌀했던 날씨였는데 밤이니 더 추워졌을 거다.

베이지색 모직 코트를 몸에 껴입고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사이 조급하게 마구 눌러진 초인종 소리는 방안을 울리며 계속 시끄럽게 들려왔다. 이제는 귀가 쟁쟁할 정도다.

현관문 앞에서 크게 다시 심호흡한 라희는 문고리를 돌렸다.

"라희야."

문이 열리자, 열린 문틈으로 뿔테가 다정하게 이름을 불렀다. 라희는 고개를 들어 그를 싸늘히 바라보았다.

"이야기 좀 해."

"그만, 가요. 할 이야기 없으니까."

사실이었다. 지난번 말했던 대로 그와 더이상 할 이야기도 들을 이야기도 없었다. 라희가 쏟아지는 시선을 외면하며 문을 닫으려 하자, 그가 문을 닫지 못하게 한 발을 디밀었다.

"아니. 안 가. 우리, 할 이야기 있잖아."

라희는 고개를 들어 뿔테를 쏘아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그가 굳은 표정으로 내려다보았다. 쉽게 물러서지 않겠다는 고집이 보였다. 그가 곧은 시선으로 얼굴을 살피자, 라희는 눈을 피했다. 혹 울었던 흔적을 들킬까 싶어서였다.

".....자기야."

대치 중인 침묵을 깨고, 토라진 어린아이를 달래는 것같이, 솜사탕처럼 부드럽고 포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라희는 대답 없이 입술만 잘근 깨물었다.

"......"

어제부터 다시 찾아올 거란 예상은 은연중에 했었다. 그는 명백히 납득하지 않은 태도였으니까. 구구절절 설득까지는 아니더라도 더이상 만나고 싶지 않다는 말을 다시 해야겠지. 이럴 줄 알고 미리 외투까지 걸쳐 입었으니 미루지 말고 말해야 한다. 결자해지니까.

하지만, 막상 뿔테와 마주하고 이야기할 것을 생각하니, 속이 먹먹했다. 지금은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나영에게 시달리다 집까지 걸어와 한바탕 울고 났더니 신경이 너덜너덜했고 몸은 지칠 대로 지쳤다. 그냥 이대로 누워 잠들고만 싶은 마음만 한 가득이였다. 라희는 아래로 반쯤 내려 뜬 눈을 느리게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냥, 제발 좀 내버려 두었으면 좋겠는데.

"...하아."

라희는 자기도 모르게 긴 한숨을 내뱉었다. 그러자 축 쳐진 어깨 위로 그의 커다란 손이 닿았다. 그가 부드럽게 어깨를 어루만졌다. 물에 젖은 솜처럼 축 늘어진 몸과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것 같은 무게가 느껴졌다.

라희는 곁눈질로 어깨에 올려진 그의 손을 보다가 다시 짧은 한숨을 쉬고서, 힘없이 중얼거렸다.

"...... 근처 대로변에 있는 커피숍으로 가요."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 모레 이틀간 출타해요 ㅠㅠ 업데이트 없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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