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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잠시 할 말을 고르려는 듯 멈칫거리다가 라희의 귀에 꽂힌 이어폰을 빼냈다. 음악으로 가득 찼던 세상이 일순 조용해졌다.
라희가 눈을 들어 그의 행동을 궁금해하자, 그는 작은 소리로 유식한 척할 만큼 꽤 긴 이야기라서. 라고 중얼거렸다. 휴대폰의 음악 앱을 종료하고 나서 이어폰을 둥글게 감아 호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이내, 라희의 귓가에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게, 음, 보통 아벨라르와 엘로이즈로 통칭되는데. 아벨라르가 남자 이름이고, 엘로이즈가 여자 이름이야. 아마 여자 집안이 지체 높은 귀족이었을 거야. 남자는 이름 높은 학자였고. 둘은 스승과 제자로 만나 개인 교습시간 중에 일찌감치 몸의 대화에 몰두해 정을 통했는데, 그걸 들키고 말지. 아벨라르는 분노한 여자 가문 사람들에게 거세당해. 그리고 성직자가 되지, 뒤따라 엘로이즈도 수녀원에 갇히고. 둘 사이 유일한 연락 수단이었던 편지로 사랑을 이어나가지. 서로 주고받은 연애편지가 총 12통인데 아주 애절해. 그런 것을 보면, 참 글의 힘은 위대한가 봐. 차이코프스키도 동성애자였지만, 후원자였던 폰 메크 부인과는 절절한 편지를 주고받았거든. 우리도 연애편지 주고받을까? 좀 더 애달퍼지게. 아, 하려던 말은 이게 아니고."
음, 이라고 작게 말하며 생각을 정리하려는 듯 망설인 그가 입술 끝을 조금 일그러뜨리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둘의 실상은 그다지 아름답지는 않은데, 겉보기에는 좋아 보이고 그래.“
뿔테는 기억을 떠올리듯 아련하게 눈빛을 들어 올렸다.
“국내에 한참 붐을 일으켜 둘의 편지와 스토리가 책으로도 많이 출판되어 나왔을걸. 중세 프랑스를 뒤흔든 세기의 로맨스라며 말이지. 들여다보면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은 관계였어. 특히, 아벨라르는 비겁했거든. 뭐, 하여튼 그런 스토리고 난 아벨라르같이 거세당한 것도 아닌데, 당분간 플라토닉 한 사랑을 해야 하고. 그렇다는 이야기지. 하지만 그들과 우린 입장이 정반대야.”
여기서 왜 느닷없이 우리가 튀어나오는 건지. 라희가 어색함을 느끼며 몸을 비틀자 뒤에서 뿔테가 단단한 힘으로 옭아매듯 감싸며 말했다.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의 강제 플라토닉 관계에서는, 여자 쪽이 더 정열적이었거든. 수녀가 되었던 엘로이즈가 보낸 편지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황후가 되어 세상에 군림하느니 차라리 당신의 창녀가 되고 싶다는 말이야. 수녀치고는 정말 대담하지 않아? 아벨라르가 거세 후 시종일관 엄숙한 모습을 지키려 했던 것과 달리, 그녀는 꽤나 뜨거운 가슴으로 열렬히 애정을 고백했지. 그런 그들과 달리”
그는 고개를 숙여 라희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자기는,”
등에 닿는 푹신하면서도 단단한 느낌. 약한 술 냄새와 함께 그의 체취가 훅 끼치자, 앞에 넘실대는 검은 강에 눈길을 던지고 있는 라희의 속눈썹이 바르르 떨렸다. 가만히 있어도 심장이 조여드는 느낌.
“이렇게 겉보기에는 아벨라르처럼 차갑고 냉담해.”
그의 뜨거운 입술이 라희의 차가운 피부 위에 닿았다. 그는 부드럽게 입술 끝으로 목덜미에 몇 개의 짧은 입맞춤을 남겼다. 뜨거운 입술 감촉이 목덜미에 닿아 피부 아래 느리게 흐르던 피를 빠르게 돌렸다.
“하지만 실상 안은, 뜨겁고 촉촉해하지. 난, 엘로이즈처럼 그곳에 들어가고 싶어 안달 나 있고 말이야.”
뿔테가 쓸쓸히 말하자, 라희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묻고 싶었다. 아까 술자리에서부터 줄곧, 궁금했던 거.
그날, 처음 바흐와 계약서를 쓰고 병원에 갔던 날. 라희는 혼자 간 것이 아니었다. 병원 대기실에는 바흐가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경황이 없어서 잘 기억나지 않았지만, 라희가 호명되어 진료실에 들어갔을 때 담당 의사는 책상에 없었다. 빈 진료실에 앉아서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자, 담당의는 잠시 후 문을 열고 진료실로 들어와 책상에 앉았었다. 혹시 진료실 밖에 있던 뿔테가 대기실에 앉아있던 바흐를 먼저 알아 본 것은 아니었을까.
“........혹시,”
라희가 입을 열자 그는 목덜미에 코를 묻고는 가만 기다렸다. 조용히 억누른 숨결이 귓가를 스쳐 들려왔다.
“처음, 절 병원에서 봤을 때요.”
“응.”
“그때, 대기실에 있던.........”
그를 뭐라고 지칭하지? 바흐는 라희가 제멋대로 부르는 명명한 이름이었으니 안 되고, 뿔테가 처음 말했던 대로 22층? 아니면, 한진욱 씨, 아니면, 휴 그랜트? 휴 그랜트는 빼야겠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본인 스스로를 산드라 블록으로 지칭하는 것이 되니까. 라희가 복잡 미묘한 심경으로 말을 흐리자, 눈을 들어 그녀의 표정을 유심히 살피던 뿔테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응.”
그는 흐린 말꼬리 속에 담긴 질문을 헤아렸다는 듯 짧은 답이었다. 순간 놀라 고개를 돌린 라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자, 의외로 그는 담백하게 인정했다.
“맞아. 봤어. 고등학교 1년 선배에다가 전교 학생회장까지 했으니 모르려야 모를 수 없는 얼굴이니까.”
놀라 삼킨 숨이 가슴 속에 가득 찼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걸까. 계속 알면서...
라희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그럼 대체 왜? 머릿속에 의문이 생기자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러다 눈을 재차 깜빡여 정신을 추슬렀다.
“그럼,”
라희는 손을 들어 어깨를 감싼 그의 팔을 풀어냈다. 그는 순순히 힘을 빼서 몸을 풀어주었다. 라희는 그를 향해 몸을 비틀어 돌렸다. 그의 얼굴을 마주했다.
“그가 유진 씨와 사귀는 사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나요.”
확인하듯 묻는 라희를 향해 그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알고 있어. 아까 민기가 말했다시피, 내 첫사랑이 그에게 빠져서 날 차버렸으니까. 누구와 함께 왔는지 데스크에 물어 확인해봤지.”
뿔테는 진료실에서 처음 마주했을 때부터 그와 라희의 관계를 알고 있었던 거다. 유진과 고등학교 때부터 연인관계였던 바흐와 함께 여성병원에 혼전 검사를 하고, 피임 시술을 받으러했다는 것을. 하얗게 굳은 라희가 그의 시선을 피해 바닥만 내려다보고 있자, 잠시 가만히 있던 뿔테가 입을 열었다.
“글쎄. 처음에는 호기심이었던 거 같아. 왜, 공개된 연인이 있으면서 다른 여자와 여길 왔을까. 젊고 예쁜 여자라서? 거기다 희망 검진 내역을 보면, 혼전 검사라는 이름의 산전 검사이고 말야. 더 웃긴 건 숫처녀인데 임플라논 시술을 희망한다는 거지. 무슨 목적인지 보이잖아.”
고개 숙인 라희의 귓가에 그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쓰린 추측이 사실로 밝혀지는 순간, 몸속의 피가 모조리 빠져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의문의 경계 저편, 차가운 사실을 깨닫는 순간 빠져나갔던 피가 되돌아와 머릿속을 터트릴 듯이 거꾸로 솟구치는 기분. 라희의 무표정을 가장한 굳은 얼굴에 미세한 균열이 생겼다.
“그리고, 자기는.”
그의 손가락이 어느새 라희의 턱에 와 닿았다.
“그날 내 눈을 단 한 번도 마주치지 못하고 바닥만 보고 있었지. 지금처럼.”
뿔테는 손바닥으로 라희의 턱밑에 손가락을 대고 고개 숙인 얼굴을 살짝 들어 올렸다. 라희의 막막한 심경을 담은 눈이 그를 향했다. 혼란스러워 이리저리 움직이는 연갈색 눈동자를 마주하자, 그는 입술을 조금 움직여 옅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이내 뭔가 기억을 떠올리는 듯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였다.
“직업 특성상, 환자를 기억해야 하는 것은 맞는데, 하루에 수십 명씩 보는 환자를 전부 기억할 수는 없지. 그래서 보통은 차트에 따로 세부사항을 메모를 해두거든. 데스크에서 접수가 끝나면 모니터로 차트가 넘어오니까 그때 메모 내용 보면서 아는 척을 하는 거지. 실제로는 얼굴도 잘 몰라. 지난 진료 때 감기로 고생 중이다, 라는 말을 들었으면 차트 메모란에 적어두었다가 다음 진료시 환자를 보며 자연스럽게 차트를 내용을 읽으며 묻는 거지. 지난번 감기는 다 나으셨냐고. 이런 사소한 관심을 보이는 것은, 라포(rapport) 형성에 좋거든.”
라희가 시선을 피해 외면하자, 그는 가늘고 좁은 턱을 붙잡아 시선을 고정했다. 그리고 라희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며 말을 이었다.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길을 지나다 환자를 마주쳐도 단골이 아닌 이상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어. 그를 보고 내 관심이 자기에게 집중된 것은 맞아.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야. 그건 단지 작은 호기심의 시발점이었을 뿐이지. 그 이후로는 순전히 우연이었어.”
라희는 뿔테와 만남이 엘리베이터에서가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때 분명 22층에 드나드는 거 알아, 라고 속삭였지. 생각해 보면 집도 무작정 찾아왔었고. 뿔테는 그대로 라희를 가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라희의 떼어지지 않는 입술은 겨우 달싹거리며 작게 움직였다.
“........그 이후요?”
낮게 잠긴 목소리로 묻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 그 뒤로 한두 번, 자기 봤거든. 쉬는 시간에 커피 사러 1층으로 내려갔다가, 딱딱한 얼굴로 굳어서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오피스텔 입구로 걸어가는 모습하고, 언젠가는 멍하니 스타벅스 창가 자리에 앉아서 거리의 풍경을 보고 있던 거. 그렇게 두 번 정도 봤나 보다.”
첫째 형이 운영하는 여성 병원은 3층이고, 건물의 1층과 2층은 스타벅스다. 심지어 그는 그 위 오피스텔에 살고 있지 않은가. 부지불식 간에 그의 눈에 띄어 버렸던 걸까.
“사랑해서 드나드는 사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아서 특이했지. 스타벅스에 앉아있을 때는 당장이라도 죽을 사람처럼 바스러진 절망을 가득 담고 있어 지나다니는 차에 뛰어들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지켜보게 되는 그런 표정이었어. 자기 그런 모습이 신경 쓰이고, 눈에 밟히고, 머리에 남고, 마음에 걸리던걸. 근데, 자기 외부에 둔감하더라. 한참 지켜보고 있었는데도 전혀 모르던걸.”
머릿속이 복잡해서 누군가 지켜보고 있을 거라고는 미처 생각조차 못 했다. 그곳은, 아는 사람 한 명도 없는 낯선 장소였으니까. 라희가 미간을 좁히자, 뿔테는 팔을 뻗어 라희의 허리를 감싸며 끌어당겼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우리 처음 한 날.”
뿔테는 고개를 숙여 라희의 귓가에 더욱더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어쩐지, 그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정말로 참을 수 없는 없는 기분이었어. 그날, 자기 살아있더라. 절망으로 흔들리면서 바스러져 부서질 듯한 아슬아슬한 분위기가 아니라 뜨겁게 살아 숨 쉬는 있는 여자던데. 그것도 무척 치명적인 색기를 풍기면서. 한 마리 짐승으로서 거부할 수 없는 본능으로 움직이게 되었지. 맞물리자 숨도 쉴 수 없을 만큼 좁고 뜨겁고 매끈하던걸. 포근하면서도 따스하고 세심하게 움직이며 감겨 와서 바로 사로잡혀 버렸지.”
그날을 떠올린 라희의 얼굴이 화르륵 달아올랐다. 뿔테의 단정한 입술에서 흘러나온 노골적이고 원색적인 말에 라희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떨어뜨리자, 그는 만족스러운 기색으로 여유롭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날, 저녁 관리 사무실 찾아가서 CCTV삭제하느라 진땀 뺀 거 알아? 아마 관리소장님과 아는 사이가 아니었으면 어림없었을 거야.”
유진에게 들어서 알고 있다. 그가 살고 있는 오피스텔 건물이 아버님의 소유라는 거. 넌지시 암시를 해도 될 텐데 아무렇지 않은 듯 넘어가는 그를 보며 라희는 생각에 잠겼다. 가로등 불빛 그늘진 어둠 속에서 그가 싱긋 미소 지었다. 라희가 침묵하자 뿔테는 생각을 고르는 듯 잠시 말을 멈추고 한강 너머를 바라보았다.
“시작이야 어쨌든 지금은 난, 자기가 좋아. 휴 그랜트와는 말 못할 사정이 있어서 계속 만나는 것 같기도 하고. 이번 여행 갔다 와서 분위기가 좀 달라졌지만, 난 상관없어. 자기가 좋아. 그러니, 자기가 하고 싶을 때까지 옆에서 기다릴게. 아벨라르처럼 욕망의 원천이 제거된 게 아니라서 조금 참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그는 가만 라희를 내려다보았다. 허리를 감싸던 그의 손길이 등줄기를 타고 위로 서서히 올라왔다. 등을 감싼 그의 커다란 손바닥이 전해주는 온기 때문에 열기가 피어올랐던 얼굴이 더 뜨거워졌다. 그가 한 손을 위로 들어 라희의 뺨을 감쌌다. 그의 눈빛이 닿은 입술이 화끈거렸다. 열망을 가득 담은 눈으로 한참을 바라보던 그가 낮은 목소리로 부드럽게 속삭이듯 말했다.
“........대신 키스는 계속해도 되는 거지?”
가늘게 떨리던 라희의 입술 위에 그의 뜨거운 숨결이 먼저 와 닿고 그 보다 더 뜨거운 입술이 내려앉았다. 뺨을 감싸 쥔 손에 힘이 들어가 라희의 얼굴을 가까이 끌어안았다. 달아오른 열기로 포개진 입술을 달콤하게 핥아 맛보던 촉촉한 혀는, 순식간에 입술의 틈을 가르고 안으로 파고들어왔다. 온몸을 사르르 녹여버릴 것 같은 뜨겁고 부드러운 혀가 입안으로 깊숙이 침입해 들어와 갈증에 시달린 사람처럼 라희를 휘감고 깊이 빨아들였다.
어지러웠다. 약한 술 향기를 풍기는 그의 체취에 흠뻑 취해버린 듯 라희가 살짝 휘청이자, 그는 등을 감싼 팔을 내려 라희의 몸을 무릎 위로 들어 끌어안았다. 엉덩이를 움켜쥔 그의 손길 아래 서로의 몸이 한 치의 틈도 없이 밀착되었다. 허리 아래 그의 불끈대는 남성이 생생히 느껴졌다. 피부 위에 닿는 서늘한 밤공기가 무색할 만큼 맞물린 육체가 피워내는 열기로 더웠다.
“하아..”
그가 입술을 떼고, 짙은 숨을 내뱉었다. 그의 낮아진 시선은 라희의 붉게 달아오른 촉촉한 입술 위에 머물렀다. 참지 못하겠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던 그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
뜨거운 혀가 입안을 가득 채우며 들어왔다. 흘러드는 따스한 타액과 함께 거침없이 파고 들어온 말캉한 혀는, 라희의 혀를 순식간에 옭아매 칭칭 감았다. 깊게 빨아들이며 갈구하는 그의 몸짓에 라희는 눈을 감았다. 혀끝을 감아올리며 설키고 얽히고 비벼대는 말랑말랑하면서 말할 수 없이 부드럽고 용광로처럼 뜨거운 감각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그는 숨 쉴 틈도 없이 타액으로 젖어 미끈한 혓바닥 위를 혀끝을 세워 쓸어내리고 쓸어 올렸다가, 애타게 감아들어 깊이 빨아드렸다가 다시 미끌거리는 타액에 젖은 살덩이를 헤집으며 파고들어 얽혀왔다. 서로의 숨결과 숨결이 섞여서 달아오른 열기에 삼켜졌다. 복잡했던 머릿속은 본능적인 감각에 사로잡혀 텅 비어버렸다. 맞물린 입술 사이로 질척이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헤아릴 수 없이 긴 시간 동안 서로의 혀가 맞닿아 뜨겁게 미끌거리면서 얽히고설키는 깊고 진한 농밀한 키스가 이어졌다.
“하아, 정말. 고행이군.”
천천히 입술을 뗀 그가 타액으로 번들이는 입매를 힘들게 끌어올려 쓰게 미소 지었다. 그는 가만 라희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라희는 거친 호흡을 가라앉히며 시선을 피했다. 분명 깊은 곳에서는 본능이 그를 원하고 있었지만, 어쩐지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그는 후, 하고 열기 섞인 깊은 숨을 억누르며 내쉬었다.
“정말 아쉽지만, 이만 가자.”
뿔테는 라희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밤공기가 차다. 더 있다가는 우리 자기, 감기 걸리겠어. 그러면 나야 좋지. 자기가 꼼짝할 수 없게 팔에다가 IV꼽아 놓고 병원 침대에 뉘여 놓으면 정말, 덮칠지도 몰라.”
그는 따라서는 라희를 향해 한쪽 눈을 찡긋했다.
“나, 짐승인 거 알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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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하루종일 머리를 쥐어짜며 쓴듯 ㅠㅠ한글날 세종대왕님께 민망한 글이네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