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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 트래킹을 마치고 리조트로 돌아오는 길에는 해가 지고 있어 지열이 한풀 꺾인 대지 위로 한 떼의 가젤이 무리 지어 달려갔다. 가느다란 다리가 메마른 땅 위를 치고 지나갈 때마다 흙먼지가 조그맣게 일었다. 조금 더 가다보니 어디선가 새도 비상해서 어둑어둑한 하늘을 날아갔다.
라희는 고개를 들어 어둠이 내려앉고 있는 사막 하늘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낙타 위에 올라타 흔들리며 보고 있어도 여기가 사막이라는 것이 도무지 실감나지 않았다. 마치 아라비안 나이트 소설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좀 전에 그와 보았던 가없이 펼쳐진 대지 위를 붉게 물들이고 하늘 역시 뜨거운 오렌지빛으로 물들였던 석양의 잔상은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되었다. 그것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던 어딘지 쓸쓸한 그의 얼굴도.
낙타 행렬이 리조트 로비 건물에 도착하자 일행은 모두 흩어졌다. 몇몇은 로비 건물 안으로 들어갔지만 라희는 그와 함께 버기를 타고 숙소 방으로 돌아왔다.
침실 문을 여니 바깥 테라스 너머는 이제 어둑어둑해졌다. 어스름이 깔린 밤하늘 아래 리조트 건물 내의 조명이 환히 불을 밝혔다. 저 멀리 사막이 펼쳐진 수영장 속 물에 비친 은은한 조명은 신비롭고 몽환적이었다. 끝없이 펼쳐져 있고 구름 한 점 없이 투명한 맑은 대기는 신비한 페르시안 블루 빛으로 빛나는 밤하늘을 담아 보여주었다.
그는 방안에 도착하자 성큼성큼 걸어가 테라스 밖으로 나갔다. 라희가 뒤 따라가며 보니, 그가 데크 위의 테이블 앞에 서서 뭔가를 살피는 모습이 보였다. 아까 낮에 수영장에 빠트린 휴대 전화였다.
“다 말랐어요?”
라희가 묻자 그는 배터리와 본체와 뚜껑을 만지작거리더니 고개를 저으며 제 자리에 다시 내려놓았다.
“물기는 없지만, 혹시 모르니. 내일 오후쯤 켜보면 될 것 같군.”
그는 플런지풀(버틀러는 빌라 내 수영장을 그렇게 불렀다) 옆의 선베드에 누웠다. 라희도 드의 옆에 놓인 선베드에 몸을 기댔다.
가벼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어떠한 인공적인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한 정적이 어스름이 내린 밤하늘 아래의 대기를 감쌌다. 그는 그저 먼 밤하늘을 보며 생각에 잠겨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먼 하늘에서는 하나, 둘, 보석처럼 영롱한 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주변은 고요에 묻히고, 하늘 위 모든 것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검푸른 하늘 속에 박힌 별들은 마치 부드러운 푸른색 벨벳 양탄자 속에 들어있는 은장식과 금장식처럼 반짝이며 빛났다.
볼 위로 미지근한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열풍이 가신 사막의 바람은 그저 건조했다. 저 위의 별 들은 마치 서로에게 신호를 보내듯 반짝였다.
둘은 어둑어둑해지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각자의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라희의 머릿속에는 오만가지 생각들이 교차했다. 그와 여행 후에 어떻게 할 건지, 뿔테는 현관 문 앞에 적어놓은 메세지를 받아 보았을까 하는 소소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때 정적을 깨고 꼬르륵,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고요한 분위기를 깨는 적나라한 생리현상에 당황하며 라희는 급히 손바닥으로 배를 감쌌다. 좀 전 낙타 트레킹에서 먹은 것은 간단한 스낵과 음료였기에, 저녁 시간이 다가오자 배가 조금씩 고파왔는데 이제는 뭔가를 먹으라고 뱃속이 아우성이었다. 라희가 민망한 마음에 배꼽 위를 꾹 손바닥으로 누르자, 잠자코 침묵하던 그가 라희 쪽으로 고개를 돌려 입을 열었다.
“지금쯤 준비되었을 거야. 밥 먹으러 가지.”
저녁도 점심때처럼 룸서비스가 아닌, 레스토랑에서 먹으려나 보다라고 생각한 라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인터폰으로 버기를 불렀다.
현관에 나가 문을 잠그고 기다리고 있으려니, 하얀색 버기가 조용한 소리를 내며 빌라 앞에 멈췄다. 어스름이 깔린 리조트 안의 길은 수목의 사이사이 밝혀진 조명과 어울려 이국적인 느낌이 들었다.
꼬불꼬불한 길을 통과한 버기는 본관 건물 앞에 도착했다. 그가 먼저 내렸고 그 뒤를 따라 라희가 내려 아까 점심 먹으러 들린 레스토랑 쪽으로 발걸음을 막 떼려고 했을 때, 불쑥 내밀어 진 손이 라희의 손목을 붙잡았다. 라희는 고개를 돌려 그를 올려다보았다.
“.......?”
“거기가 아니야.”
그는 턱으로 레스토랑으로 통하는 입구 쪽이 아닌 본관 앞에 서 있는 리조트 전용 SUV차량을 가리켰다. 그 앞에는 리조트 직원이 단정하게 서서 상냥한 미소 짓고 있었다.
직원이 SUV 뒷좌석을 열어주자, 바흐가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을 잡고 라희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차위에 올라앉았다. 뒤따라 바흐가 라희 옆에 앉았다. 리조트 SUV는 캄캄한 모래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나요?”
물론 답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그와 여행하는 동안 무수히 던진 동일 질문에 그는 항상 답하지 않았으니까. 라희의 물음에 그는 자동차 헤드라이트 비추는 컴컴한 앞을 응시하며 답했다.
“밥 먹으러.”
차는 계속해서 어둠 속을 달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사막 한복판에 레스토랑이 있을 리 만무해 보였다. 바닥은 매끈하게 포장된 도로가 아닌 모래였기에 노면이 울퉁불퉁 튀어나와 좌석 위의 라희 몸은 이리저리 흔들렸다. 바퀴가 깊은 구덩이라도 만났는지 몸이 푹 가라앉았다가 위로 통 튀어 올랐다. 라희는 차량 뒷좌석의 손잡이를 꽉 붙잡았다.
10 여분 정도 달렸을까. 저 멀리 어둠 속에 환히 빛나는 지점이 보였다.
라희는 앞에 보이는 대상에 집중하기 위해 눈매를 가늘게 해 불이 밝혀진 지점의 정체를 살폈다. 4개의 횃불이 긴 기둥에 꽂혀 활활 불타고 있었고 그 가운데 돗자리 같은 것이 깔려 있었다.
차량이 서서히 그곳에 다가가 앞에 멈췄다. 그러자 횃불 안쪽에서 작업하고 있던 리조트 직원들 중 한 명이 차량으로 다가와 문을 열어 주었다.
“여기는..”
차에서 내린 라희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컴컴하고 어두운 사막의 모래 한가운데 사방으로 사람 키만 한 막대 위에 꽂힌 4개의 횃불이 활활 타올라 주위를 밝혔다. 그 가운데는 커다란 페르시안 양탄자가 깔려있고, 그 위에는 하얀 테이블보가 깔린 널찍한 상과 푹신하고 두툼한 쿠션이 네 개 놓여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명절에나 쓸법한 큰 잔칫상 위에는 한창 음식이 놓이는 중이었다. 상 옆에 놓인 커다란 피크닉 바구니에서 음식을 내어 놓는 직원의 손길이 바빠졌다.
마지막 세팅까지 다 마친 직원은 활짝 웃으며 다가왔다. 그는 바흐에게 작은 전화기를 건넸다.
“Here is a cell phone. Please call us when you wanted to be picked up. hope you are having a good time dining in the dunes.”
(휴대 전화기로 데리러 오기를 원하는 시간에 전화 주세요. 사막에서 저녁 식사를 즐기시길 바랍니다.)테이블을 세팅했던 직원들과 함께 라희가 타고 왔던 SUV가 떠났다. 사방을 밝힌 횃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어 주변은 밝혔지만, 그 너머는 적막한 어둠이었다. 낯선 환경에 라희가 머뭇거리며 서 있는 동안 그는 먼저 횃불 가운데 놓인 양탄자 쪽으로 걸어가 앉았다.
“앉지. 배고플 텐데.”
그가 맞은편 자리를 턱으로 가리켰다.
“.........가버리네요.”
라희는 차가 떠난 저 어둠 너머를 향해 불안한 듯 말했다. 그는 상 옆에 놓인 커다란 바구니에 눈짓을 주었다.
“흔히 로맨틱 디너라 불리지만, 알 디완(Al Diwaan)레스토랑에서 예약할 때의 메뉴 이름은 피크닉이니까. 아무도 없는 사막 한가운데서 이렇게 식사를 하는 거지.”
어서 앉으라는 그의 눈빛에 라희는 맞은편 푹신한 양탄자 위에 앉았다. 바닥의 모래가 느껴지지 않는 두꺼운 바닥의 양탄자는 정사각형, 다각형, 팔각형, 별 모양이 복잡하게 뒤얽힌 아랍 특유의 문양이었다. 바닥에 깔린 양탄자는 푹신하고 촉감이 좋았다. 도톰하고 보드라운 감촉이 손바닥에 느껴졌다. 라희는 모래위에 깔린 양탄자를 살펴보다가 눈을 들었다. 음식이 잔뜩 차려져 있는 앞의 상은 평상시 집에서 쓰는 상보다 높이가 조금 높았다.
“쿠션을 방석처럼 깔고 앉으면 높이가 맞을 거야.”
그의 말에 따라 상 옆에 놓인 쿠션에 손을 뻗어 끌어당겼다. 이곳이 아니면 세계 어디서도 볼 수 없을 것 같은 크고 두툼한 쿠션은 포도덩굴 같은 기하학적 문양이 정교한 패턴으로 엮여있었다. 엉덩이 아래 쿠션을 깔고 앉자 어느 정도 상과 높이가 맞았다.
새하얀 테이블보가 깔려있는 넓은 상위에는 음식이 한가득 차려져 있었다. 마치 우리나라 전통 한정식 한상 차림처럼 모든 요리가 한꺼번에 놓여있었는데, 얼음 통에 든 차가운 샴페인과 함께 샐러드와 콜드 푸드, 핫 푸드, 디저트 이렇게 네 종류가 구획별로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먹지.”
그는 그렇게 말하며, 상위에 놓인 빈 잔에 샴페인을 따라 건넸다. 라희는 샴페인을 받아들고 한 모금 마셨다. 빈속에 단 음료가 들어오자 허기졌던 속이 요동쳤다. 그는 바구니에 담긴 빵을 시작으로 식사를 시작했고, 라희는 앞에 놓인 여러 음식들 중 뭘 먼저 먹어야 하나 고민했다.
하얀 상 가운데 레스토랑에서 보았던 작은 병에 담긴 잼과 마요네즈 케첩이 들어있는 바구니를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타파스라 불리는 작은 접시에 담긴 햄, 올리브, 토마토 피클, 레몬이 듬뿍 뿌려진 차가운 새우등의 애피타이저와 양념한 해산물 파스타 차가운 녹색 오이 스프와 토마토 크림 스프가 앞에 놓여있었고, 왼쪽에는 버터로 구운 치킨과 은은한 자스민향이 나는 쌀밥, 그리고 빈대떡과 비슷하게 생긴 야채 파라타, 그 아래에는 달걀이 들어간 타이 라이스 파스타와 녹색 채소볶음이 곁들여진 소고기 스트로가노프와 황금색 윤기나는 버터 뇨키, 생선구이와 해산물 스튜 각각 크기가 다른 하얀 접시 위에 정갈하게 담겨있었다.
오른쪽 아래에는 디저트 코너인 듯 보였는데, 다양한 한입 크기의 과일과 아라비안 스위트라 불리고 어디에나 빠지지 않는 말린 대추, 살구 등의 쫀쫀한 건과류 그리고 부드러워 보이는 코코넛 망고 라이스 푸딩과, 호두가 들어간 촉촉한 초코 브라우니가 있었다.
모든 음식들이 식욕을 자극하는 탐스러운 모양새였기에 라희는 조금 고민하다가 고소하고 묵직한 맛의 버터 치킨을 시작으로 앞에 놓인 앞접시에 각각의 음식들을 조금씩 덜어 먹었다. 허기진 가운데 이것저것 맛본 음식들은 각기 다른 맛과 이국적인 향으로 입과 코를 즐겁게 했다. 식사 중간중간에 곁들인 황금빛 향긋한 샴페인은 톡 쏘는 콜라처럼 특유의 청량감으로 식욕을 촉진했다. 정신없이 먹다 보니 어느덧 앞에 차려진 접시들은 절반쯤 비워졌다. 둘이 먹기에는 음식 종류나 양이 마치 잔칫상처럼 풍성한 편이라 모두 다 먹는 것은 어림없어 보였다.
아쉽지만, 이제는 위장을 가득 압박해 오는 묵직한 포만감으로 기분이 조금 불쾌할 지경에 이르자, 라희는 부들부들하고 아찔할 정도로 단 푸딩과 찐득하면서 고소한 호두가 바삭하게 씹히는 초코 브라우니로 식사를 마무리했다. 브라우니를 먹고 나서 목이 메어 샴페인 잔을 찾으니 안은 비어있었다. 라희는 슬쩍 고개를 들었다. 그는 아이스 버킷에 든 샴페인 병을 꺼내 라희의 빈 잔에 황금빛 음료를 가득 따라주었다.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 가득 차있던 버킷 안의 얼음은 이제 반 정도 녹아있었다.
“......남은 음식이 너무 많네요.”
라희의 말에 그는 상을 가만 내려다 보다 입을 열었다.
“베두인(Bedouin).”
“.......네?”
뜬금없는 그의 말에 라희가 되물었다. 그는 한동안 앞에 놓인 상을 보고 있다가 샴페인을 기울이며 말을 이었다.
“베두인 스타일이라 하더군. 이곳의 유목민들을 베두인이라고 부르는데, 그들은 사막에 이렇게 두꺼운 양탄자를 깔고 천막을 치고 생활해. 베두인은 사막을 통과하다 만난 낯선 이방인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으로 유명하지. 아무리 가난할지라도 이방인을 만나면 신분과 국적을 따지지 않고 심지어 범죄자로 의심되어도 3일간은 풍족하게 먹여주고 재워준다더군. 이곳은 에미레이트 왕족의 사유지 안에 있는 사막이니 우린 사막에서 베두인 왕족의 환대로 식사를 한 거라 생각하면 되겠지.”
그의 말에 라희는 빌라의 이름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플런지풀 위로 넓은 천막이 드리워진 빌라의 이름은 베두인 스위트였다.
“그렇네요.”
그의 말을 듣고 보니 사막에서의 저녁 식사는 그저 야외의 피크닉이 아닌 베두인 족장의 환대의 느낌으로 다가왔다. 아까 오후처럼 낙타를 타고 뜨겁고 낯선 사막을 여행하다 밤이 되자 어둠 속에서 만난 베두인 족장의 환대로 풍성한 저녁식사를 대접받는다. 마치 아라비아를 여행하는 외국인 초보 여행자의 모험담 같은 이야기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라희는 횃불이 밝히는 어둠 너머의 먼 사막에 눈길을 돌렸다. 마치 잠들기 전 머리맡에 앉아 부모님이 읽어주는 동화 속 이야기들처럼, 어디선가 마신을 불러내는 반지나 램프가 사막의 모래 아래 반쯤 묻혀서 별빛에 반사된 몸체를 드러낼 것 만 같은 마법적인 밤이었다. 저 어둠 너머 사막을 정처 없이 걷다 보면‘열려라 참깨’같은 단순한 주문으로 열리는 모래 속 동굴을 만나게 되지 않을까? 상 바닥에 깔려있는 이국적인 아라비안 양탄자를 타고 검푸른 하늘을 날아가다 보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막을 지나고 강을 건너 황금빛 둥근 아이스크림 스쿱 모양의 호화스러운 아랍 궁전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의 고요한 침묵 속에서 라희는 그런 생각을 하며 샴페인 잔을 기울였다. 고요가 낮게 깔린 위는 사막의 밤하늘이었다. 활활, 주변에서 횃불이 타오르는 소리를 제외하면 아무런 소리도 기척도 없었다. 적막감. 혼자 있는 듯한 고요와 조용함이 주위에 깔렸다.
“.........걸을까?”
불쑥 그가 꺼낸 말에 라희는 고개를 끄덕여 일어났다. 묵직한 배도 꺼트릴 겸 움직임이 필요하던 차였다. 그는 횃불 기둥 너머로 발걸음을 옮겼다. 걸어 감에 따라 점점 빛이 사그라지자, 어두운 사막이 드러났다. 밤의 사막은 매혹적이었다. 한낮의 뜨거운 열기가 가신 사막의 밤공기가 뺨을 스쳤다. 살랑거리며 불어오는 메마르고 건조한 바람의 느낌이 좋았다.
먼저 앞서 걷던 그가 발걸음을 멈추고 밤하늘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모습을 따라 라희도 고개를 들어 위를 보았다. 머리 위 검은 하늘과 맞닿는 느낌. 이렇게 깊은 어둠 속에서 가장 밝은 별빛을 볼 수 있었다. 하늘에 드리워진 검은 장막 위 눈부시게 총총히 빛나는 별들의 향연이 시작되었다. 누구라도 점성술사가 될 수 있는 곳. 조용한 공간에서는 별들이 반짝이며 소곤대는 비밀스러운 속삭임이 들릴 것만 같았다. 비밀스럽고 신비한 기운이 총총한 별 아래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가 한동안 그 자리에 서서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기에, 검은 어둠 속에 흡수되어버릴 것 같은 그의 모습을 가만 바라보았다. 그가 서 있는 가운데 고요한 별빛이 사막을 타고 흘렀다. 고독의 숨결이 그를 감쌌다. 마치 그가 사막의 밤하늘로 사라져버릴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저 멀리 떨어진 색색 깔의 별들은 지구과학 시간에 광년에 따라 빛이 달라진다고 들었다. 지구에 닿는 시간이 몇 백 광년일지도 모르는 별들을 보며 라희는 어깨를 감쌌다. 이 기분을 말로 표현하려 한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게 느껴졌다.
한참을 서 있던 그가 몸을 돌렸다. 그리고 왔던 길을 되돌아 걷기 시작했다.
라희도 그의 뒤를 따라 어둠 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신발 아래 모래가 눌리면서 부드럽게 이지러졌다. 단지 어두운 밤하늘 아래를 걷고 있는데 뭔가 마음이 뻥 뚫리는 듯한 기분이 느껴졌다. 아무것도 없는 탁 트인 공간을 걷는 느낌. 알 수 없는 자유로움이었다.
라희는 걷다가 멈춰 서 발아래 펼쳐진 모래에 손을 대보았다. 보기에도 부드러워 보였던 사막의 건조한 모래는 마치 집의 싱크대 선반에 놓인 하얀 설탕같이 고왔다. 라희는 손가락을 뻗어 컴컴한 모래 위에 낙서를 했다.
손끝으로 미세한 모래 알갱이를 문지르다가 문득,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걸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해변을 걷는 여행객처럼, 바다 대신 드넓게 펼쳐진 불모의 사막은 검은 모래 언덕이 굽이치듯 흐르고 있으니까.
라희가 신발을 벗으려 몸을 구부리자, 앞쪽에서 나지막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벗지 마."
라희는 그의 말에 멈칫해서 멀리 비추는 횃불의 빛으로 어둠 속에서 윤곽을 드러낸 그를 바라보았다.
"아래에는 드물지만 사막 뱀과 전갈, 혹은 독거미가 있을지도 몰라. 실제로 리조트 안에는 의사와 앰뷸런스가 상시 대기 중이라더군. 종종 사고가 난다고 듣기도 했고.“
그 말에 라희는 소스라치게 놀라 주위를 살폈다. 흐릿한 바닥은 울퉁불퉁 고운 모래들이 깔려있었는데 그 안에서 뱀이나 전갈이 기어 나올 거란 생각이 들자 소름이 끼쳤다. 라희가 놀라 굳어있자 가까이 다가온 그가 안심시키듯 라희의 손목을 잡고 원래 식사를 하던 횃불 밝은 양탄자 위로 이끌었다.
라희는 양탄자 위에 올라서자마자 쿠션으로 올라가 불안한 눈으로 주위를 살폈다. 방금 전까지 매혹적이었던 사막은 이제 뱀과 전갈과 독거미가 있는 위협의 공간으로 느껴졌다. 그는 라희의 모습에 피식, 가벼운 웃음을 흘리다 상위에 있던 휴대 전화기로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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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라희와 함께 즐거운 사막 데이트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