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와 그녀와 그와 나-43화 (43/214)

43

차는 황량한 고속도로를 계속 달렸다. 이렇게 달린지 거의 30분도 넘은 거 같아서 라희는 휴대전화로 시간을 확인했다. 어느덧 정오였다.

창밖을 보니 66번 고속도로라고 보였다. 라희는 휴대전화 구글맵으로 위치를 확인했다. 아무것도 없는 지도가 보였다. 지금 차가 있는 곳은 두바이에서 남쪽으로 뻗어있는 고속도로였다.

조금 있으니 계속 직진하던 차가 샛길 같은 곳으로 향했다. 거기서 조금 더 가니 야자수 같은 나무가 도로 주변으로 심어진 구역이 나타났다. 그 앞은 차단바가 내려와 있는 도로였다. 도로이 양옆으로 물결치는 너울 파도 모양의 모래 색깔 벽이 보였다. 사슴 같은 뿔 달린 짐승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 벽에는 한쪽에는 영어로 다른 한쪽에는 아랍어로 쓰여있었는데, 아랍어는 당연히 짐작조차 할 수 없었고, 영어는 DESERT CONSERVATION RESERVE라고 적혀있었다.

차가 차단바 앞에 멈추자 하얀 제복을 입고 검은 모자를 쓴 아랍인 가드가 손에 새하얀 서류를 들고 차량으로 다가왔다. 가드는 운전기사와 말을 주고 받았다. 그 동안 라희는 이 이상한 곳을 둘러보다 불안한 얼굴로 바흐 쪽을 바라 보았다. 그는 태연하게 휴대폰 액정화면을 보고 있었다. 라희의 시선을 느낀 그가 고개를 들었다.

"........기다리면 안으로 진입할 거야."

안이라면? 저 벽 너머를 말하는 건가. 그의 말에 라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사막보존지구 안으로요?"

"그래. 여기부터 리조트 사유지야. 알 마하 (AL MAHA)."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차단바가 올라가고 차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라희가 고개를 뒤로 돌려 지나온 벽을 바라보자 바깥 쪽과 달리 안쪽에는 그의 말대로 AL MAHA A LUXURY COLLECTION DESERT RESORT & SPA라고 쓰여있었다. 라희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앞은 온통 황톳빛 모래와 흙더미가 펼쳐진 황무지에는 듬성듬성 덤불 같은 것이 있었고 앙상한 나무가 드문드문 심어져 있었다. 라희가 타고 있는 하얀 롤스로이스는 그 가운데 좁게 이어진 아스팔트 포장길을 달렸다. 한 15분 정도 메마른 황무지를 지나 달렸을까. 멀리 하얀 천막 같은 건물이 드문드문 보이기 시작했다.

마침내, 차는 중동 스타일의 커다란 천막이 드리워진 리조트 현관 앞에 정지했다. 현관 앞은 하얀 셔츠와 검은색 바지와 치마를 입은 리조트 직원들이 대기 중이었다. 기사의 도움으로 차에서 내리자 그중 한 명이 다가와 밝게 인사했다.

"Good afternoon. Mr, Han. We are very glad to welcome you Al Maha Desert Resort. I am the general manger and this is your Butler."

그들의 안내에 따라 갈색 육중한 나무 현관을 지나 로비로 향했다. 로비 안은 심플했다. 황금칠 한 버즈 알 아랍과는 달리, 하얀색 회칠한 벽과 기둥이 늘어서 있었다. 직원은 로비 옆에 위치한 방으로 안내해 주었다. 방안은 테이블과 소파가 있었다. 소파에 앉자 웰컴 드링크가 나왔는데 주황색 과일 주스였다. 맛은 달고 밍밍한 맛이었다. 라희가 주스를 마시고 있는 사이, 바흐는 체크인을했다. 그는 테이블 위의 서류를 보며 직원에게 물었다.

“Is there any room bigger than Bedouin Suite?”

(베두인 스위트보다 큰 방이 있습니까?)체크인 수속을 하던 직원은 상냥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I'm sorry. sir, we're fully booked at the moment”

(아니요. 지금 마감되었습니다.)직원이 내민 서류의 하단에 사인을 마치자 직원은 장황하게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라희가 대충 들어보니 액티비티 프로그램과 레스토랑, 바에 대한 안내 같았다.

오 분여간의 설명이 끝나고, 직원은 현관 밖에 세워져 있던 흰색 버기로 안내했다. 버기는 보통 골프장에 있는 것과 같은 모양이었다. 흰색 버기는 일행을 태우고 포석으로 포장된 좁은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리조트 바깥이 황무지이었던데 비해 리조트 건물이 있는 안쪽은 나무들과 관목이 심어져 있어 황량한 느낌이 덜 했다.

구불구불한 포석길 주변으로는 드문드문 빌라라 불리는 숙소 건물이 있었다. 버기는 어떤 건물 앞에 도착했다.

베이지색 석벽 위로 커다란 천막이 드리워진, 마치 팬션의 독채 같은 크기의 빌라였다. 육중한 나무문 앞에 내리자, 동승한 버틀러가 문을 열고 열쇠를 그에게 건네 주었다. 보통 카드키인데 비해 아날로그 적인 열쇠에는 오릭스가 새겨진 나무패가 달려 있었다. 문을 열자 현관문 앞에는 책상과 거울, 그리고 네스프레소 머신이 있는 공간이 있었고 옆으로는 욕실이 보였다. 버틀러는 현관 복도 바로 앞에 있는 방문을 열었다. 침실이었다.

순간, 라희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문이 열린 침실 앞은 탁 트인 투명창 너머 넓은 테라스가 보였다. 놀랍게도 테라스 앞 쪽은 상당한 크기의 수영장이 있었는데, 맑고 푸른 물이 가득채워져 넘실거리고 있었다. 라희가 보며 감탄하자, 버틀러가 미소를 띠며 말했다.

“Each suite has its own private infinity pool, temperature-controlled.”

(모든 스위트에는 개인 풀이 있습니다. 수영장 온도 조절도 되죠.)라희는 테라스 앞으로 다가갔다. 탁 트인 수영장 앞은 온통 사막이었다. 시야에 가릴 것이 하나도 없이, 오로지 모래와 사구, 듬성듬성 초록 덤불만이 끊임없이 펼쳐져 있었다.

버기 기사가 여행 가방을 옮기는 사이 버틀러는 빌라 안에는 무엇이 있는지 어떻게 사용하면 되는지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했다.

"We are on call at any hour. we hope you will Enjoy your stay. If we can be any further service, please don't hesitate to get in touch.“

언제든 호출하라는 당부와 함께 편히 쉬라는 말을 남기고 버틀러는 떠났다. 라희는 현관 문을 열고 건물 주위를 살폈다. 옆 건물과의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어 마치 사막 한 가운데 뚝 떨어져 있는 것 같은 기분이어서 갑자기 사막을 여행하는 탐험가가 된듯 했다.

"뭐라도 마실래?”

그는 현관 앞에 아랫단에 위치한 냉장고를 열며 물었다.

“아니요. 아까 로비에서 음료를 마셔서 괜찮아요.”

“혹시 먹고 싶으면 마음대로 먹어. 술을 제외한 모든 것은 무료니까.”

그는 냉장고 문을 닫고 침실로 걸어 갔다. 라희도 곧 뒤따라 침실로 향했다. 그가 침대와 테라스 사이에 놓인 앤틱해 보이지만 호사스러워 보이는 푹신한 붉은색 롱체어에 앉아 테이블 위에 놓인 액티비티 리스트를 읽는 동안 라희는 빌라를 마음껏 둘러보려 발걸음을 옮겼다.

침실 중앙 커다란 침대를 중심으로 양옆의 공간이 있었는데, 오른편은 현관과 연결된 통로였고, 왼편은 욕실이었다.

라희는 먼저 지금 서 있는 침실부터 살펴보기로 했다. 방안은 앤티크한 고급 가구들로 채워져 있었고, 침대는 라지 킹사이즈로 일반 2미터 킹사이즈보다 조금 더 컸다.

침대 앞 커다란 롱체어 뒤로는 그림용 이젤이 놓여있었는데, 실사용을 유도하듯이 새 스케치북과 밀봉된 파스텔 한 세트가 함께 있었다. 그림 용품을 보자, 이젤을 놓고 방안에 앉아 주변 사막의 멋진 풍경을 그려 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으려니 어쩐지 하프시코드를 연주하던 바흐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의 그림 실력은 어떨까? 라희는 뒤 돌아 롱체어 쪽을 바라보았다. 그의 뒷모습이 보였다. 하프시코드를 연주 실력은 수준급 이상이었는데. 지금도 그의 건반을 두드리는 손끝 아래 피어오르던 섬세한 선율이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그리고, 그의 얼굴. 한동안 멍하니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그 모습. 지금과 마찬가지로 뒷모습뿐이었지만 평소 그의 얼굴에서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 아마 그가 그림을 그린다면 연주할 때의 표정이 나오겠지.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던 라희는 고개를 돌렸다. 이젤 옆에는 책상이 있었다. 책상 위에는 호텔이면 흔히 접할 수 있는 안내서와 팸플릿 그리고 편지지와 엽서 따위가 들어있는 박스가 놓여있었는데, 박스 옆에 특이하게도 쌍안경이 있었다. 아마도 멀리 펼쳐진 사막을 살펴보는 용도 같았다. 그 외에는 온통 아랍풍의 화병이라던가, 이국적인 그림, 벽에 걸린 칙칙한 색의 태피스트리와 아랍풍의 나무 조형물이 방안을 장식하고 있었다.

침실을 둘러본 라희는 욕실로 갔다. 욕실은 커다란 욕조와 세면대로 그저 그랬다. 욕실에 놓여있는 어메니티는 불가리 제품이었다. 샴푸, 헤어 컨디셔너, 샤워젤, 칫솔, 바디로션이 있었다. 그의 오피스텔에서 본 것이 생각나, 반가운 마음에 샴푸 뚜껑을 열어 향을 맡아 보았다. 그 향이 맞았다. 어쩐지 기분이 좋아진 라희는 욕실 옆 투명한 유리문을 열었다. 유리문 앞은 나무 데크가 있고 그 아래는 바로 야외로 연결되어 있었다. 흙을 밟기에 앞서 나무 데크 위를 걸었더니 침실 앞 테라스와 바로 맞닿아 있었다.

버즈 알 아랍이 고층의 호사스러운 방안에서 바깥을 그저 관망하는 분위기였다면, 이곳은 사막 한가운데 있어 바로 문만 열면 부드러운 모래를 밟을 수 있었다. 라희는 테라스 앞으로 나가 수영장을 살폈다.

라희가 머무는 스위트는 사막의 유목민족인 베두인의 이름을 딴 그대로 수영장 위쪽에는 유목민 야영지 지붕처럼 커다란 흰색 천막 쳐있었다. 맑은 물이 가득 채워진 푸른색 사다리꼴 모양의 넓은 수영장은 옆이 원만한 곡선이라 부드럽고 이국적인 아랍 특유의 느낌이었다. 앞에 탁 트인 사막의 하늘과 끝없이 연결된 듯 보여 버틀러가 말한 그대로 인피니티 풀(Infinity pool) 같았다.

수영장을 둘러싸고 있는 데크는 매우 넓었다. 수영장을 중심으로 한쪽에는 선베드가 두 개 있었고 다른 편에는 야외에서 식사를 즐길 수 있도록 식탁과 의자가 놓여있었다.

좀 더 경치를 즐기며 서 있고 싶었으나,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방을 벗어난 야외는 한낮의 땡볕이 이글거리는 사막이니만큼 엄청나게 더웠다.

라희는 테라스 유리문을 열고 시원한 에어컨이 풀가동 중인 방안으로 들어왔다. 바흐가 롱체어에서 눈을 들어 라희를 쳐다보았다.

“해가 저물어야 바깥을 즐길 수 있을 거야.”

그는 라희 뒤에 펼쳐진 수영장에 호기심 어린 눈길을 주며 덧붙였다.

“밖은 그늘이니 물속에 있는 다면 상관없겠군.”

라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랬다. 밖은 엄청나게 더웠지만, 수영장 위 천막 때문에 그늘이 져서 물 안에 들어가 있으면 시원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덥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래도 한낮에는 야외 활동을 자제하는 편이 나을 거야. 리조트 내 액티비티 프로그램도 오후에 시작하니까. 참, 액티비티는 뭐 할래?”

그의 물음에 라희는 고개를 갸웃했다. 해야 하나? 슬쩍 본 그의 눈빛은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어떤 것이 있는 데요?”

“음.”

그는 탁자 위에 놓인 브로셔를 보며 입을 열었다.

“사막 사파리, 낙타 트래킹, 매사냥. 승마, 활쏘기”

전부 낯선 것들뿐이라 라희는 망설였다.

“어떤 것이 좋을까요?”

라희가 조심스럽게 묻자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거나. 바깥은 열린 공간이지만 한낮에 나갈 수 없으니 종일 실내에 있는 것은 지루할 테니까.”

그의 말을 듣고 보니 그랬다. 여기 며칠이나 머무를지는 모르겠지만, 방금 그가 지루할 거라 말하는 것으로 보아 일박 이상일 듯싶었다.

“낙타하고, 음.. 사막 사파리가 좋을 거 같아요.”

마침내 라희가 고르자 그는 알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리문을 열고 테라스로 나간 그의 뒤를 따라 나가려는데, 갑자기 위잉위잉 낮은 진동 소리가 들렸다. 라희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았다. 바로 눈에 보였다. 방금 그가 앉아있던 롱체어 앞 테이블에 놓인 휴대 전화기가 만들어낸 진동이었다.

라희는 고개를 돌려 테라스로 나간 바흐를 바라보았다. 그는 저 멀리 인피니티 풀 앞에 서 있었다. 전화 진동벨은 끊임없이 계속 울렸기에, 무시할 수 없었다. 라희는 테이블 앞으로 걸어가 휴대전화를 손에 들었다. 그리고 테라스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손 안의 핸드폰은 한 번 멈췄다가 다시 요란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라희는 그에게 건네기 위해 수영장으로 가까이 갔다. 그는 고개를 들어 멀리 사막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기..”

라희가 건네는 휴대전화를 받으려고 그가 몸을 돌려 손을 내밀었다. 그 순간, 그의 손 위에서 미끄러진 휴대 전화는 풍덩, 하고 수영장 수면아래 진입 계단 위로 빠져버렸다.

“아...!”

라희가 놀라 몸을 수그리기에 앞서, 그가 재빨리 손을 뻗어 수면 아래 가라앉은 휴대전화를 꺼냈다. 새카만 화면과 함께 진동은 멈춰있었다.

그는 젖은 핸드폰을 손에 들자마자 뒷커버를 분리해 배터리를 빼냈다. 걱정하는 표정으로 안절부절못하는 라희를 힐끗 본 그가 데크 한켠의 식탁으로 걸어갔다. 그늘 진 식탁 위에 젖은 휴대전화를 분리해 올려 놓으며,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물에 빠지자마자 바로 건져낸 거라, 별 이상 없을 거야. 하루나 이틀 건조시키면 되겠지.”

“....전화가 왔었는데...”

그와 지내는 동안 전화벨이 울린 적은 처음이었다. 그만큼 중요한 전화가 아니었을까 싶어 라희가 말꼬리를 흐리자 그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잠시 침묵하던 그가 고개를 들어 라희를 바라보며 말했다.

“....... what's done, is done. 액티비티도 신청하고, 점심도 먹을겸 로비로 가지.”

============================ 작품 후기 ============================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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