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바흐는 계단에서 그대로 멈춰서 라희의 얼굴을 가만 들여다보았다. 빨려들어 갈 듯한 그의 검은 눈동자 속에 라희의 모습이 들어있었다.
“낯설지 않군.”
그가 나직한 저음으로 말했다. 라희는 그의 시선에 사로잡혀 가만히 그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처음, 미라와 함께 참석한 술자리에서 그를 보았을 때는 본능적으로 무섭다고 생각했다. 잠시 마주쳤던 그의 새카만 눈빛은 빨아들일 듯 강렬했고 라희의 온몸을 꼼짝달싹할 수 없도록 보이지 않는 검은 사슬로 옭아매는 듯 느껴졌다. 그 뒤로 마주칠 때마다 칠흑같이 어두운 눈빛의 그와는 감히 시선을 마주할 수 없었다.
그러다 그와 계약을 마치고 반얀트리 룸으로 같이 들어간 첫날, 라희는 처음으로 눈을 들어 그를 마주 보았다.그때도 계단이었다. 그와 처음 밤을 보냈던 반얀트리의 룸도 복층이었고,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그때도 지금과 같이 그와 계단 가운데에 멈춰 서 있었다.
처음으로 마주본 눈에 비친 우뚝 선 그는 객관적으로 잘생긴 얼굴이었다. 냉철하고 사려 깊고 이지적인 분위기의 그의 얼굴은 반듯하고 또렷한 이목구비였고 내내 같이 있는 동안 보여주었던 물 흐르듯 유려한 동작 속에는 깔끔한 매너가 배어있었다.
이렇게 그와 함께 또다시 계단 위에 서 있으니 어렴풋했던 첫날, 기억의 토막토막들이 생생히 떠올랐다. 낯뜨거운 장면들이 차례로 생각나면서 얼굴에 확 열기가 몰린 라희는 자기도 모르게 아랫입술 끝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런 라희를 가만 보고 있던 그가 손을 내밀어 손끝으로 그녀의 잇새에 짓눌린 붉은 입술을 꺼내 느리게 쓰다듬었다.
“기억이 떠올랐나 보지?”
그의 깊은 검은 눈동자의 눈매 끝이 부드럽게 휘었다. 그 눈빛에 라희의 가슴이 두근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아릿한 기억 속의 그때와 지금이 겹쳤다.라희의 시선이 바닥을 향해 내려앉았다. 이미 열기가 몰려있던 얼굴이 다시 한 번 화끈 달아올랐다. 그의 손아래서 도망치듯 몸을 비틀며 신음하던 기억이 생생히 떠올랐다.그때의 짜릿하고 아찔하고 몽롱했던 느낌이 순식간에 일깨워지듯 피어나 붉게 달아오른 뺨의 감촉과 함께 뜨겁게 전신을 잠식해 들어갔다.
끊어질 듯 가빠오며 거칠었던 숨소리, 거친 비틀림, 애원하듯 간절하게 내뱉었던 신음의 기억들이 한데 뒤섞여 머릿속이 어지러운 가운데, 또렷하게 들렸던 그의 음성이 혼탁한 의식 속에서 툭 튀어 올라왔다.
“섹스가 계단 오르기에 비유되는 것을 알고있어?”
심연의 나락 같은 검은 눈빛의 그가 입을 열었다.
“첫 단계는 터치, 다음은 키스, 그 다음 단계는 애무, 그리고 차례로 접촉, 삽입, 운동 뒤의 마지막으로 오르가즘.”
계단 위에서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며 입술 끝을 깨물던 라희의 발목을 잡아 활짝 벌리며, 검게 타오르는 눈빛으로 그는 그렇게 말했다.
“키스는 했으니, 이제 애무 차례야.”
저항할 수 없게 라희의 발목을 꽉 붙들어 고정시키고서, 그의 혀가 수풀을 헤치고 미끄러지듯 내려앉았다. 뾰족하게 세운 혀끝으로 은밀한 틈 사이를 스치듯 핥아 올렸다.
“흣........!”
라희는 순간 너무나 강렬한 느낌에 몸을 비틀었다. 그는 끝을 세운 혀를 붉은 속살 깊숙이 넣어 다시 길게 핥아 올렸다. 아래의 민감한 속살에 생생히 느껴지는 그의 뜨거운 숨결에 라희는 몸을 움찔거리며 가늘게 떨었다.
“으읏...”
그의 혀끝이 닿을 때마다 라희의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튕기듯 움직였고, 그에게 발목이 잡혀 고정된 다리는 이리저리 뒤틀렸다.그의 촉촉하고 부드러운 혀끝이 힘주어 누르듯 닿은 열점들은 형용할 수 없이 뜨거웠다. 미끈한 그의 혀가 뜨거운 속살 위로 미끄러지듯 쓸리고 눌리며 움직일 때마다 흠뻑 젖은 꽃잎 안쪽이 수축하며 바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흐읏....”
라희가 수치심에 입술을 꽉 깨물고 고개를 숙이며 어쩔 줄 몰라 하자 그는 은밀한 즐거움을 주는 장난감이라도 되는 듯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너무나 부끄럽게도, 그의 혀끝은 긴 은실 같이 끈적이는 애액과 타액이 섞여 음란하게 걸려있었다.
“하읏..읏..”
이내, 라희는 허벅지 안쪽으로 고개 숙인 그 때문에 꽉 깨문 잇새 사이로 터져 나오는 신음을 힘겹게 참아야 했다. 찌릿찌릿한 느낌에 감전이라도 된 듯 솜털이 거꾸로 솟구쳐 일어서는 것 같았다.끈적이는 타액이 질척이는 소리를 내며 혀와 맞닿아 달아오른 꽃잎에 적셔졌다.
은밀한 부분은 위에서 아래로 눌리듯 핥아지고, 다시 깊게 파고든 혀끝에 의해 미끌거리며 쓸렸다. 혀끝으로 아래에서 위로 핥아 올릴 때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짜릿함이 척추를 타고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미칠 것 같았다. 허리를 틀어 피하려 해도, 그에게 붙잡혀서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갈라진 은밀한 틈 사이로 타액을 흠뻑 적신 혀끝이 파고들어 움직여 희고 미세한 거품을 만들어내며 문질러졌다. 놀람과 부끄러움 때문에 고개를 들 수 없었던 라희의 숨결이 가빠졌다. 이제 참는 것도 한계였다.라희의 붉게 벌어진 입술에서는 멈출 수 없는 신음이 연신 터져나왔다.
“하앗..하윽...핫....흐읏..”
그의 말캉하면서도 찐득거리는 혀가 주는 희열의 떨림으로 몸이 비틀리고 손끝이 떨려왔다. 탱탱하게 부풀어 오른 은밀한 속살의 세세한 틈마다 더운 열락의 숨결이 내려앉아 끈적하고 미끈하게 흠뻑 젖은 피부 안쪽으로 스며들었다.
라희의 끊어질 듯 이어지는 가쁜 신음에, 그는 혀끝을 깊숙이 은밀한 안쪽으로 밀어 넣어 더욱 노골적으로 자극하기 시작했다.그와 맞닿은 열기가 야릇한 기운으로 변해 온몸으로 퍼져들어갔다.점점 라희의 기분은 몽롱해졌고 신음은 제어할 수 없이 가빠졌다.비밀스러운 그곳이 그에 의해 적나라하게 핥아지고 있는데 부끄러우면서도 아찔한 느낌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현기증이 나는 것처럼 어질어질했다.
“꿀벌은 2초, 고양이는 8초, 곰은 최장 3분, 지렁이는 4시간이야. 섹스에서 가장 강한 동물은 밍크로, 8시간 동안 교미를 한다고 하지.”
정신을 차릴 수 없는 가운데 그의 음성이 들려왔다.
“너와 난, 인간이지.”
그가 고개를 들어 라희의 귓가에 탁하게 잠긴 저음으로 말했다.
“인간은 얼마나 할 수 있는지, 알고 있어?”
그의 나직한 속삭임에 뇌수가 녹아버릴 것 같았다. 그는 계단 위 활짝 벌린 라희의 허벅지 안쪽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꽃잎을 누르듯 위아래로 몇 번 쓸어내리던 그의 혀는 이제 위쪽으로 올라와 부풀어 솟아올라 딱딱해진 클리토리스를 살살 문질렀다. 그러다 혀끝으로 부푼 돌기 주위를 빙글 돌며 휘감아 입술 안쪽으로 지그시 빨아들이기 시작했다.너무도 강렬한 자극에 라희는 헉, 깊은 숨을 들이켰다.
이어지는 그의 농도 진한 터치에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그가 쾌락의 정점을 혀로 핥고 입술 안쪽으로 흡입하듯 빨아대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라희는 창피함과 부끄러움과 쾌락의 희열에 못 이겨 눈을 감았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예민해진 자극들은 더욱더 또렷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계속되는 그의 혀 놀림에 아래는 흥분이 몰려들어 움직일 수 없는 쩌릿한 통증마저 느껴졌다. 아래로부터 찌르듯 엄습해오는 아찔한 쾌감에 라희는 견딜 수 없어 입술을 다시 꽉 깨물었다.
“아흣..아읏....하... 아흑..”
그가 자극하는 부위마다 신경이 곤두서고 격한 쾌감의 열기가 몰렸다. 순간, 라희의 허리가 공중으로 튕기듯 높이 튀어올랐다. 한데 뭉쳤던 열기는, 갑자기 전신으로 통증과 쾌감의 전율이 퍼져나갔다. 격렬한 환희의 축제 끝에 뭉쳐있던 열기가 움찔움찔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며 부서져 내렸다. 그 후, 곤두섰던 신경들이 가닥가닥 끊어지며 나른해지는 느낌과 함께 말초와 손끝의 힘이 속절없이 풀리기 시작했다.
계단까지 흠뻑 젖신 아래에서는 전기라도 흐르는 것처럼 계속해서 찌릿거리며 아찔한 쾌락을 피어올렸다.처음 이 방에 들어와 그와 함께 섰을 때는, 이런 감각과 쾌락의 제국이 존재하는 줄 결코 몰랐었다. 라희는 감았던 눈을 뜨고 나른하게 풀린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는 처음 키스 했던 그때와 같은 변함 없는 고요한 검은 눈동자로 그녀를 응시했다.
라희는 방에 처음 들어와 그와 키스했을 때까지만 해도, 감미롭고 애타는 키스가 남녀 사이의 쾌락의 정점인 줄 알았다. 조금 전, 그는 여기에 서서 이렇게 말했다.
"이쪽으로 와."
그가 계단 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난생처음 서울 반얀트리의 넓은 방에 들어와 놀란 눈으로 방문 앞에 서 있던 라희는 그의 손짓에 몸을 돌려 계단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다가 고개를 들자, 중간쯤 서 있던 그의 새카만 눈동자와 마주쳤다. 마주 보는 시선 속의 그의 검은 눈동자는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가 더 가까이 오라는 눈짓을 했다. 라희는 조금 더 걸어 올라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그의 앞에 섰다. 라희는 눈앞의 그가 너무 두려웠다. 그가 계약서를 작성하기 전에 말했다시피, 앞으로 이곳에서 무슨 일을 하려 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인지도 몰랐다.변호사 입회하에 계약서에 서명을 마치자 돈을 건네준 그와 함께 백화점을 갔다가 지금 이렇게 호텔로 들어왔다. 처음 와보는 남산자락의 꼭대기에 위치한 으리으리한 특급호텔의 맨 윗층은 단 둘이서 지내기에 지나치게 넓고 화려했다.
라희가 시선을 피해 계단 아래 펼쳐진 방안을 둘러보자, 그녀를 바라보던 그의 눈동자가 더 검고 날카로워졌다. 비록 그의 앞에서 서서 시선을 피하고 있었지만, 그의 눈빛이 따갑게 찔러오는 바늘처럼 전신에 쏟아지고 있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천천히 라희의 몸을 위에서 아래로 훑어 내렸다. 옷을 입고 있는데도 마치 알몸인 것 같은 느낌에, 라희의 얼굴은 열기로 확 달아올랐다.라희는 입술 끝을 깨물고 고개를 숙였다. 그 바람에, 머리카락 한 올이 그녀의 뺨 위로 흘러 떨어졌다. 그가 천천히 손을 내밀어 라희의 뺨 위에 흘러내린 머리카락 한 가닥을 집어 귀 뒤로 넘겨주었다. 그리고 손끝으로 귀의 윤곽을 따라 서서히 스치듯 문지르다가, 귓볼을 거쳐 턱 끝으로 향했다.
턱 끝에 멈춘 그의 검지손가락 끝은, 라희의 고개 숙인 얼굴을 느린 동작으로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라희는 턱이 들려 그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그와 눈이 마주치자, 새카만 눈빛에 사로잡혀 버렸다.
라희는 얼어 굳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압박하듯 옭아매는 짙은 시선 속에 꼼짝달싹할 수 없었다. 그의 손이 맞닿은 턱 끝이 타는 것 같이 뜨겁게 느껴졌다. 그는 엄지손가락을 펼쳐서 라희의 입술의 가운데를 지그시 눌렀다.
순간, 라희는 움찔했다. 그저 손가락이 닿았을 뿐인데도, 찌릿한 감각이 입술을 타고 몸 안으로 흘렀다. 입술 가운데를 누르고 있던 그의 손끝은 천천히 움직여 붉은 입술 위를 부드럽게 문질렀다. 그의 손끝이 보들보들한 입술 위를 누르며 움직이는 야릇한 느낌에 라희는 굳게 다문 입술 안쪽을 윗니와 아랫니로 지그시 깨물었다. 그런 라희의 행동을 저지하기로 하려는 듯, 그의 손끝이 순간, 입술 안쪽을 파고들어 왔다.
라희는 낯선 침입에 놀라 눈을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키가 큰 그의 고요한 검은 눈동자가 뿜어내는 강렬한 눈빛은 라희를 향해 쏟아내려 지고 있었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그녀에게 점점 다가오는 그의 모습은, 라희의 미동하지 않고 굳어있는 눈동자에 각인되듯이 새겨졌다.입술 위를 지그시 누르던 그의 손가락이 떼어지면서 스치듯, 라희의 목덜미를 뒤로 감싸 안았다. 그리고 바로, 그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을 가만히 덮었다.
따뜻한 그의 입술은, 그녀의 입술 위에 닿아, 감촉을 음미하듯 천천히 눌러왔다. 그 낯선 느낌에 라희의 온몸은 가늘게 떨려왔다. 이내, 그의 입술이 벌어지고, 촉촉한 혀가 그녀의 입술 가장자리를 자극해 왔다. 따스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입술의 틈새에 전해지자, 라희는 자기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미끈하고 따뜻한 감촉이 라희의 벌어진 입술 안쪽을 채우기 시작했다. 스쳐 지나가듯 살짝 다가왔다가, 그녀가 움찔하며 달아나자 다시 조심스럽게 다가온 혀와 혀가 마침내 만났다. 그리고 부드럽게 얽힌 혀를 통해 따스하고 낯선 타액이 흘러들었다.
키스는 부드러웠으나, 라희의 두근거리던 심장은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으응...”
혀와 혀가 닿은 부분에서 찌릿한 느낌이 퍼져나갔다. 그에게서는 그윽한 베르가못 향이 났다. 심장이 온혈관 속에 들어있기라도 한듯, 몸 안 전체가 쿵쿵거리는 느낌이었다. 그가 감싸 쥔 등줄기를 타고 오싹한 한기같은 짜릿한 전율이 흘렀다.
라희는 눈을 감고 그의 혀를 받아들였다. 미끈거리며 촉촉한 혀와 혀가 맞대어졌다. 농밀하고 말캉한 혀가 그녀를 옭아매자 마치 얼그레이 홍차를 마실 때 처럼, 그의 키스가 전해주는 은은한 향취가 입안에 스며들었기에, 그 몽롱하고 따스한 기분에 라희의 감은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그와의 키스는 감미로웠다.따스한 혀가 보드랍게 감겨오는 키스는 딱딱하게 굳어있던 그녀의 몸을 서서히 풀기 시작했다. 혈관을 따라 흐르는 낯선 열기에, 라희는 힘이 몸을 단단히 경직시키고 있던 긴장이 풀려가는 것을 느꼈다. 그의 혀는 포근하고 부드럽게 그녀를 감싸 안았고 밀착된 입술 사이로 흘러들어온 은은한 향의 타액이 주는 미끌거리며 끈적이는 관능이 입술 안 여린 살점들의 감각을 일깨웠다.
키스를 통해 그윽한 베르가못향이 몸 전체에 스미는 것 같았다. 그의 따스한 입술과 휘감아오는 혀의 느낌은 뜨거운 숨결과 섞여 라희의 몸을 나른하게 풀어지게 했다.혀와 혀가 뒤엉키면서 타액이 섞이며 열기를 만들어 냈다. 꼼짝 못 하도록 옭아매며 휘감아 라희를 정신 못차리게 만들었던 그는, 서서히 움직임을 멈추더니 천천히 멀어져 갔다.
입술을 덮고 있던 따스한 감촉이 사라지자, 라희는 감았던 눈을 떴다.
그리고 지금, 한 달도 더 지난 이 낯선 땅의 이국적인 호텔 방의 계단에서 그와 다시 이렇게 마주하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