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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희는 겁에 질렸다. 귓가에 시끄러운 소리가 울러 퍼졌다.
― 두두두두, 위잉 위잉
소리가 어찌나 큰지, 가슴 속 깊숙한 곳까지 울려서 심장이 떨려왔다. 라희는 시트의 손잡이를 꽉 붙잡았다. 맞은편에 앉은 바흐는 태연한 얼굴로 창밖을 내다보다가, 하얗게 질린 그녀를 응시했다.
“좋아할 줄 알았는데.”
그의 낮은 목소리는 시끄러운 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지만, 입 모양으로 무슨 말을 하는지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라희는 굳은 얼굴로 창밖을 쳐다보았다.
투명하고 커다란 유리창 너머로 까마득한 밑이 보였다. 에메랄드 빛 해변과 두바이 시내의 고층 건물들이었다.
“저기 보이는군.”
그는 턱으로 동이 터오는 창밖에 보이는 에메랄드 바다의 한가운데 우뚝 서 범선의 하얀 돛 모양의 높고 거대한 건물을 가리켰다. 라희는 헬리콥터가 둥글게 선회하며 건물에 다가가자 손잡이를 더 힘주어 잡았다. 지금 라희가 앉아 있는 곳은 헬리콥터 안.
새벽에 비행기가 두바이 공항에 착륙하고 나서 둘은 비행기에서 활주로로 바로 내렸다. 활주로에는 어스름 속에서도 광이 번쩍번쩍 나는 새하얀 벤츠 S 클래스 자가용이 대기 중이었다. 자동차에 올라타, 몇 분 가니 어떤 라운지에 내려주었는데 인천 공항에서 이용했던 아시아나 라운지같은 커다란 곳이 아닌, 원룸 같은 방으로 나누어진 개별 라운지 객실이었다. 거기서 준비된 스낵과 이름 모를 음료를 마시고 있으니 벤츠에서부터 동승한 쇼퍼(chauffeur)에 의해 입국 수속이 완료되었고 바로 대기 중이던 헬리콥터로 이동했다.
지금 라희는 두바이 상공을 날아 버즈 알 아랍 호텔의 28층 공중에 떠 있는 둥근 원반 같은 헬리패드(헬리콥터 이착륙장)로 가는 길이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자동차를 탈 걸 그랬나.”
“.......네?”
헬리콥터의 기체 소음에 묻혀 그의 목소리를 잘 들리지 않았다. 라희가 굳은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크게 묻자, 그가 그녀를 쳐다보며 조금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롤스로이스를 타면 40분 정도 걸리거든. 헬리콥터는 15분 내외고.”
그때, 헬리콥터가 녹색의 둥근 헬리패드에 다가갔다. H라는 글자 주위로 노란색 원이 그려져 있는 커다란 헬리콥터 정류장은 호텔의 삼각형 옥상의 끝에 둥글게 비죽 튀어나와있어 마치 바다 한가운데 둥둥 떠 있는 모습이었다. 라희는 헬리콥터가 랜딩을 시도하자 창밖을 내다보며 얼굴을 굳혔다.
“이제 도착했군.”
그는 짧게 말하며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라희는 바흐의 목소리를 들으며 딱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헬리콥터가 무사히 착륙했다. 프로펠러 소음이 점차 잦아지고, 마침내 멈추자, 안에 동승했던 쇼퍼(chauffeur)가 안전밸트를 풀어도 좋다는 신호를 했다.
무사히 도착 함에 대한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안전밸트를 풀어내자 헬기장에 기다리고 있던 대여섯 명의 호텔 직원이 다가와 헬리콥터의 문을 열었다.
“Welcome to Dubai and Burj Al Arabl, The World's best 7 star hotel. My name is Ammar Hila. I am the manager of this luxurious hotel. and This is Mr Hari, your private butler. We will do our best to serve you well, and take good care of you. Mr Han, Your room is expecting you. Please come this way..”
(두바이에 오신 것과 세계 최고의 7성급 호텔인 버즈 알 아랍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나는 호텔 매니저인 아마르 힐라입니다. 그리고 여기는 미스터 하리로 귀하의 버틀러입니다. 모시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미스터 한, 룸이 준비되어있으니 이쪽으로 오십시오.)깔끔한 정장 차림의 호텔 직원들 두 명은 호텔 고객 매니저와, 버틀러였고 그 뒤에는 유니폼을 입은 호텔 직원들이 꽃과 음료를 든 쟁반을 들고 서 있었다. 직원이 건네주는 꽃과 음료를 받아들고 헬리패드를 나와 꼭대기에 입구로 걸어 들어가니 바로 엘리베이터가 보였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버틀러의 안내로 방에 도착했다.
"Is this your fist visit to Dubai, Sir?“
(두바이에는 처음이십니까?)
버틀러가 물었다.
"Yes.“
그가 짧게 대답하자, 버틀러는 상냥하게 미소 지으며 말하기 시작했다.
"It's very nice place. I hope you enjoy your stay here, world's only 7 star hotel. There are a lot of wonderful places to visit in Dubai. There is no shortage of fun things to do and see while your holidays or stay. Best thing about Dubai is that almost everything is very close to each other, In Fact there is a saying that Dubai is a city where almost everything is only a minute away from Burj Al Arab. Let me recommend these to you. you can enjoy Jet-skiing, snow skiing, desert safari, scuba diving and hot air balloon ride.“
바흐는 그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짧게 대답했다.
"Ok. I see. That sounds really interesting. Thank you for the information."
(네. 알겠습니다. 흥미롭군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It's my pleasure. sir. Honestly, my only interest is in serving you all.“
(천만에요. 저의 유일한 관심사는 귀하를 잘 모시는 거랍니다.)방안에서 바흐는 버틀러와 함께 체크인 수속을 밟았다. 버틀러는 뒤에 서 있던 호텔 직원에게 눈짓해 황금빛 나는 네모난 물건을 건넸다.
“This is 24 carat Gold iPad for use throughout your stay. Sir. Also We offer you complimentary Wi-Fi, a 21-inch iMac, a range of 42-inch and 32-inch wide screen interactive HD TVs, Bose iPod/iPhone docking station and media hub, remote controlled environment including curtains, TV, in-suite music and lights and a private all in one printer, copier, scanner and fax.”
(24캐럿 순금으로 된 아이패드가 지내는 동안 제공됩니다. 와이파이가 무료이며, 21인치 아이맥 노트북이 비치되어있습니다. 42인치와 32인치의 와이드 스크린의 상호소통 가능한 텔레비전이 있고, 보스 스테레오 덱크가 있어 음악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리모트 컨트롤를 이용하며 커튼, 티비, 음악과, 조명을 제어할 수 있지요. 또한 프린트, 복사기, 스캐너와 팩스가 가능한 복합기가 구비되어있습니다.)바흐는 영어에 능통했기에, 라희가 할 일은 없었다. 버틀러가 말하는 동안 라희는 호화스러운 방안을 둘러보았다. 언듯 버틀러가 소개하길 클럽 원 베드 스위트라고 들은 것 같았다. 탁 트인 통 창 너머 에메랄드 빛 고요한 아라비안만이 펼쳐져 있는 방은, 멋들어진 문양의 계단이 깔린 높은 복층이었다. 정 중앙에 거대한 황금빛 둥근 기둥이 서 있고, 그 옆은 반원형의 미니 바였다. 바닥은 진푸른색 바탕에 테두리가 황금빛인 화려한 카펫이 대리석 위로 깔려있었다.
지금 라희가 앉아있는 소파에서는 가운데 기둥과 바에 가려서 그 너머는 잘 보이지 않았다. 라희는 기둥 너머가 궁금했지만, 버틀러가 설명하고 있었기에 가만 앉아 있었다.
그가 준비된 서류에 싸인을 마치자, 버틀러인 Mr. Hari가 어떻게 리모컨과 방안 시설물을 사용하는지 알려주었는데, 약 15분에서 20분 정도 걸렸다. 버틀러는 차례로 리모트 콘트롤러 사용법과 조명, 티비, 커튼, 라디오, DVD, 욕실 사용법을 알렸다. 라희도 옆에서 듣기는 했으나, 영어라서 몇몇 문장은 들렸고 나머지는 듣지 못했다. 버틀러가 아랍권인 만큼 평소 익숙한 영어 발음이 아니었을뿐더러 특유의 악센트가 섞여 있었기 때문에 그게 최선이었다.
버틀러가 그에게 이것저것 알려주는 동안 라희는 쇼파 앞 테이블 위에 준비된 웰컴 푸드를 먹었다. 딱딱한 과자와 비행기에서도 맛보았던 큼지막한 꿀절임 대추가 준비되어 있었다. 달디 단 대추와 와인을 함께 먹으니 혈당이 올라가 여기까지 헬리콥터를 타고 온 놀란 가슴이 어느정도 진정되었다.
라희는 뒤에 펼쳐진 에메랄드 빛 바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동이 터오고 있었다. 헬리콥터 위에서 볼 때는 빠져들 것 같아 아찔했는데, 이렇게 커다란 통 창 너머로 펼쳐진 이국적인 색깔의 끝없는 바다는 정말 아름다웠다.
비행기에서 내려 두바이의 낯선 냄새가 코끝을 스칠 때는, 그저 외국인가 보다라고 생각하며 그 외에는 아무 생각 없이 그의 팔이 이끄는 대로 걸었는데 막상, 이 엄청난 규모의 호텔에 와서 앉아있으니 정말 외국의 낯선 공간에 와 있다는 것이 실감 났다. 라희는 테이블 위의 와인을 들어 다시 한 모금 마셨다. 에어버스의 라운지 바에서 마셨던 것과 별 다를 게 없는 맛이었다. 하긴, 와인 맛은 거기서 거기이지 않은가.
이윽고 버틀러가 설명을 마쳤다. 24시간 대기 중이니 언제든 불러달라고 말을 마친 후, 공손히 인사하고서 방을 나갔다. 짐은 직원들이 2층의 방에 올려 둔 상태였다.
라희는 버틀러가 나가자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기둥 뒤로 펼쳐진 방안을 둘러보았다. 한쪽에는 커다란 당구대가 놓여있고 그 뒤쪽으로는 작은 부엌과 식당이 있었다. 부엌은 주방답게 식기와 나이프, 커피, 물과 높은 과일 접시가 있었는데, 과일이 가득 담겨 있었고, 식당에는 6인용 둥근 식탁과 의자가 놓여있었다.
라희는 1층을 전부 살펴보고 나와, 기둥의 맞은 편에 위로 길게 뻗어 올라간 계단을 올려다 보았다. 역시 대리석에 화려한 푸른 카펫이 가운데 깔린 계단은 디즈니 만화인 알라딘의 자스민 공주가 드레스를 입고 내려오면 아라비안 나이트의 배경처럼 보일듯한 화려한 모양새였다. 침실은 위층인 모양이었다.
마치 놀이 공원 안 백설공주의 성에 놀러 온 기분으로 올라가 볼까 망설이고 있는데 저쪽 창가에 서 있던 바흐가 보였다. 그는 짱장을 끼고 뒤돌아서서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을 느낀 듯, 그가 고개를 천천히 돌리자 라희와 눈이 마주쳤다.
그의 검은 눈빛은 탁 트인 아라비안 만의 초록색 배경과 함께 라희에게 쏟아져 내렸다. 강렬하면서도 대담한 고요한 눈빛을 에메랄드빛 바다의 배경으로 보고 있으려니 어쩐지 뇌쇄적이었다. 그의 검은 눈동자는 이 방안에 가득 찬 금빛 화려함을 모조리 흡수해 버릴 것만 같았다.
그는 가만 바라보고 있다가 라희를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피곤하겠군. 배고프지 않아?”
낮은 그의 목소리에 라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괜찮아요.”
비행기에서 잠시 눈을 붙였고 깨어나서는 라운지 바에서 이것저것 주워 먹었을뿐더러 두바이 공항에 착륙 하기 전 기내식으로 아침 식사가 제공되었기 때문에 지금은 배가 고프지 않았다.
라희는 어쩐일인지 역광으로 아침 햇살이 가득 비추고 있는 그의 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의 반듯하고 또렷한 이목구비의 윤곽선이 눈부시게 빛났다. 그런 라희를 바라보던 그의 눈매 끝이 살짝 가늘어졌다.
“흐음.”
그는 라희가 서 있는 쪽을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데, 라희는 곧게 쏘아내는 새카만 시선에 사로잡혀 그저 보고만 있었다. 그는 라희의 바로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는 눈짓으로 계단을 가리켰다.
“올라 가 볼 건가?”
라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라희의 허리를 잡아서 계단으로 이끌었다. 한 계단, 두 계단, 둥글게 구부러진 계단을 올라가면서 탁 트인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계단의 중간쯤에, 그가 돌연 발걸음을 멈췄다. 가만 서서 움직이지 않는 그를 올려다보니, 그는 저 멀리 바다를 향해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말이야.”
그는 시선을 낮춰 라희를 내려다 보며 나직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창밖은 바다 뿐이군.”
라희는 의아한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그가 한쪽 입매를 서서히 올리며 말했다.
"커튼을 열어 둔 채로 여기서 무엇을 하든 볼 사람이 없다는 뜻이지."
============================ 작품 후기 ============================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방이 궁금하신분. 그리고 헬기 트랜스퍼가 궁금하신분.
https://www.jumeirah.com/en/hotels-resorts/dubai/burj-al-arab/suites/club-one-bedroom-suite/참고하세요. 헬기 트랜스퍼는 350만원정도 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