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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이 활짝 열린 테라스로 나가자, 마치 온실 같은 사방과 천정이 유리 벽으로 둘러진 공간이 있고 그 안은 호텔 카페처럼 고급스러운 소파와 테이블이 놓여있었다.
유리문은 열려 있어서, 아까 방으로 분 바람은 저쪽을 통해 들어온 듯 보였다. 글라스룸 밖에는 야외 카페처럼 노천 테이블과 의자가 있었다. 그 너머로 쭈욱 펼쳐진 모양이, 테라스는 그의 방뿐만 아니라 다른 방까지 연결되어있는 듯 보였다.
그는 글라스룸의 조명을 켜고 넓고 푹신한 소파에 앉았다. 그의 눈짓에, 라희도 곁에 다가가 앉았다.
조용한 침묵이 흘렀다. 라희는 고개를 돌려 글라스 룸 너머를 바라보았다. 깨끗한 유리벽 너머로는 서울 시내의 야경이 한눈에 보였다.
평창동 여느 주택과 마찬가지로 이 집 역시 산기슭에 위치해 있었고 3층이라서 테라스의 전망은 최고였다. 글라스룸 바깥의 야외용 테이블은 한여름에 쓰기에 유용해 보였다.
글라스룸과 집이 맞닿은 벽 쪽에는 사계절용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어, 여름에는 에어컨 겨울에는 히터로 쓰는 듯 보였다. 굳이 펜션을 찾아 도시 외곽으로 나가지 않아도 부자들은 이런 곳에, 이런 경치를 항시 즐기며 사는구나 싶었다.
지금 라희의 눈 앞에 펼쳐진 것은, 아무것도 막힘 없이 탁 트인 밤하늘 밑에 너울대는 서울 시내의 야경이었고, 주위는 어디선가 들리는 풀벌레 소리 외에는 고요했다. 라희는 고개를 들어 탁 트인 유리벽 너머 허공을 올려다 보았다. 도시의 빛 위로 검게 물든 하늘에는 드문드문 밝은 별 몇 개가 전부였다.
“여기도 별은 잘 안보이네요.”
라희는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아까 레스토랑에서 그가 말했던, 밤하늘을 수 놓은 별은 여기에도 없었다. 라희의 말을 끝으로 긴 침묵이 찾아왔다.
침묵은 익숙했다. 그와 함께하는 시간 동안 그는 늘 과묵했고, 말을 하는 것도 주위에서 듣는 것도 싫어하는 것처럼 보였다. 무게감 짙은 침묵은 답답하게 몸을 짓눌러 올 때도 있었으나, 조용한 풀벌레 소리 들리는 밤공기와 은은한 조명, 그리고 멀리 펼쳐진 야경은 긴장을 풀리게 했다.
아까 차에 앉아있을 때는 지치고 몸이 노곤거렸는데, 집 안에 들어올 때 바짝 긴장했던 탓인지 지금은 말짱했다. 푹신한 소파에 허리를 기대고 유리 벽 너머의 눈부신 야경을 넋 놓고 보고 있으려니, 저쪽 어두운 테라스 끝에서 쟁반을 든 여자가 다가왔다. 아까 30대 후반으로 보였던 여자였다.
그녀는 눈짓으로 인사를 하고 테이블 위에 와인과 와인잔 그리고 여러 가지 치즈와 색색의 과일이 한입 크기로 담겨있는 네모난 접시를 올려놓았다. 정갈한 플레이팅이 와인 전문점의 모둠 안주로도 손색없을 모양이었다.
“더 필요한 것은 없으신가요.”
“음. 이 시간 이후로 쉴 거니까 올라오지 말고.”
“네.”
여자가 가볍게 고개를 숙여 알겠다는 표현을 한 후 테라스 끝쪽으로 사라졌다. 아무래도 저 끝에 계단이 있는 모양이었다.
“자.”
그가 건네는 와인잔을 받아들고 라희는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진한 레드 와인이 우아한 곡선미를 자랑하는 와인잔을 반쯤 채우고 있었다.
와인잔대(stem)를 잡고 살짝 돌리니 은은한 조명 속에 진홍색 와인 위로 비친 조명이 황금빛으로 물결쳤다. 문득 궁금했다. 이 와인을 가져다준 여자와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 걸까. 물어봐도 될까, 망설여졌다.
“저 분은...”
와인잔을 만지작거리다가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에 라희가 말꼬리를 흐리자 그가 와인잔을 기울이며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집안일 돌봐 주시는 분 딸이야. 결혼해서 나갔다가 이혼 후 함께 지내고 있지.”
그럼 두 명 다 가족은 아니구나. 부모님 외 다른 가족은 없는 걸까? 그는 먼저 말하지 말라 했었지만, 대답해 주었으니 조금 더 용기를 내 볼까.
“다른 형제분들은..........”
라희가 작게 중얼거리며 그를 보자 낮게 가라앉은 눈빛과 마주쳤다. 조금 전과 달리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혹시 기분이 나쁜 걸까? 허락도 없이 계속 말을 걸어서. 그의 입을 굳게 닫혀 있었고, 무반응에 잔뜩 움츠러든 라희는 어색하게 와인을 만지작거리다가 한 모금씩 마시기 시작했다.
풀벌레 소리 들리는 고요한 테라스 위로 침묵이 짙게 내려앉았다.
“......없어.”
오랜 침묵을 깨고 그가 말했다.
라희는 고개를 돌려 그를 슬쩍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그가 고요하게 가라앉은 검은 눈동자로 응시했다.
그의 묵묵한 눈빛을 피해 라희는 손에 쥐고 있는 와인잔을 다시 기울였다. 묵직하고 약간 쓴맛이 나는 레드 와인이 목을 타고 넘어갔다.
마실수록 단맛이라고는 전혀 없는 이런 쌉쌀한 맛이 와인 상식 사전에 나오는 풀바디의 맛인가 싶었다. 강한 알콜의 부드러운 목 넘김과 함께 입안에 감도는 향기는 화려했으나 맛 자체는 무겁고, 중후하고 입안을 조여드는 것 같은 타닌 맛이 떫고 씁쓸했다.
어느덧 잔이 비워지자, 그가 와인병을 기울여 잔을 채워주었다. 조로록, 은은한 부케향을 피워올리는 진한 핏빛의 레드 와인이 잔에 채워져 매혹적으로 빛났다.
그럼, 앞으로 마주칠 가족은 없는 거구나. 알콜 덕분에 신경이 느슨해져 어색함 지나간 자리에는 안도감이 몰려왔다. 그에게는 슬프고 안된 일이지만, 지금의 라희에게는 다행이었다. 하지만, 이내 유진이 한 말이 생각났다.
―...외로워하거든요.
라희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차가운 석조의 커다란 집. 굳이 팬션을 찾지 않아도 야외 분위기에서 즐길 수 있는 탁 트인 서울의 야경, 인적 드문 조용한 고급 주택가.
이곳에서 그는 혼자다. 부모님이 중학교 때 돌아가셨다고 했으니 라고 했으니, 줄곧 그때부터 혼자? 이 커다란 성채 같은 집에서 아무도 없이 혼자서 지내면 무슨 생각이 들까.
라희는 와인을 홀짝이며 유진이 했던 말을 곰곰이 떠올려 보았다.
바흐와 뿔테 둘다 H고 출신이라고 했는데 H고는 강남에 있다. 이곳은 종로구로 강북이고, 그럼 중학교 이후 강남에서 산 걸까? 그 때도 혼자서?
바흐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투성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는 과묵했고, 특유의 중압감으로 라희가 먼저 말하게 내버려 두지도 않았다.
유진은 본가에 와 보았을까? 그와 만난 지 한 달이 겨우 지난 라희도 왔으니 고등학교 때부터 인연이 있었던 것 같은 그녀가 안 와 봤을 리는 없겠지만, 슬쩍 치밀어오르는 호기심이 라희의 고개를 들게 했다.
고개를 들자, 줄곧 라희를 보고 있던 그의 검은 눈동자와 마주쳤다. 겨우 한 잔 반을 마셨을 뿐인데도, 가벼운 샴페인과는 다르게 진한 레드와인은 몸의 감각을 약간 둔하게 만들었다. 무의식적으로 와인을 홀짝이며 생각에 잠겨 있다 보니 시간이 오래 지난 것 같았다. 주위에 시계가 없어서 알 수 없었지만, 아마 자정이 지나거나 그쯤이 아닐까.
고요한 한밤중에 마주 보고 있는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새카만 눈동자는 알콜 탓인지, 은은한 조명과 풀벌레 소리 섞인 고요 속에서 이상할 정도로 두렵지도 옥죄어 오는 것처럼 답답하지도 않았다.
검은 눈동자는 새카만 밤하늘을 닮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그의 눈을 가만 보고 있는데, 순간, 그가 손을 뻗어 라희의 허리를 감싸왔다.
그는 천천히 그녀를 끌어당겨 그의 위로 올렸다. 그에게 이끌려 라희는 무릎을 벌리고 그의 허벅지 위에 올라앉았다. 그와 마주한 자세로 다리가 벌어져서 원피스가 들려 허벅지가 드러났다.
허리를 감싸는 그에 의해 라희의 등이 깊게 몸통을 향해 끌어 당겨졌다. 벌린 허벅지 사이 얇은 팬티 아래에 그의 딱딱하게 일어서있는 심볼이 느껴졌다.
라희의 손은 감각이 둔해 휘청이는 몸의 균형을 잡기 위해 그의 어깨 위에 놓였다. 손끝에 닿은 그의 어깨의 감각은 둔탁했다. 손끝이 어릿한걸 보니 방금까지 마시고 있던 와인은 도수가 생각보다 꽤 쎈 편이었나 보다.
순간, 서늘한 외기에 노출된 아래가 뜨뜻했다. 원피스 치마 아래에서 허벅지 바깥쪽과 엉덩이로 연결하여 천천히 쓰다듬는 그의 손바닥의 온기가 느껴졌다. 손길이 계속 피부 위에 와 닿자, 라희는 숨 억누르며 천천히 내 쉬었다. 두근, 심장소리가 머릿속에 울려퍼지며 들리기 시작했다.
그의 다른 한 손은 허리와 등을 매만지듯 쓸어내리다가, 천천히 등 뒤 원피스의 지퍼를 내리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놀라서, 라희는 눈을 깜빡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똑바로 그녀를 마주 보는 그가 보였다. 밤하늘을 닮은 새카만 눈동자에 라희의 얼굴이 보였다. 깊은 눈매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
순간, 지퍼가 활짝 열린 등 뒤로 서늘한 밤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등 뒤가 벌어진 모습이 부끄러워서 시선을 피하려고 다시 한 번 눈을 감았다 뜨자, 턱 아래 가까이 다가온 그의 곧은 코가 보였다.
포만감과 취기 때문일까, 은은한 조명 아래 그의 얼굴은 평소 무섭고 어색하기 보다는 숨 막히게 잘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시선이 다시 마주치자, 팬티 아래에 닿은 단단한 느낌이 생생해지는 것과 함께 아까부터 두근거리던 심장이 시끄럽게 뛰기 시작했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흣...”
보드랍고 민감한 목덜미 맨 살에 그의 얼굴이 닿자, 라희의 목이 뒤로 젖혀졌다. 그는 그녀의 목에 얼굴을 파묻고 숨을 깊게 들이마시면서,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하얀 원피스의 두 어깨 자락이 그의 손에 의해 천천히 내려갔다.
이미 뒤쪽의 지퍼는 아래 허리까지 내려져 있어, 어깨에 걸쳐진 원피스는 마치 하얀색 사탕 포장을 벗기는 것처럼 쉽게 내려가 접힌 그녀의 팔꿈치 안쪽에 걸렸다.
헐렁하게 앞품이 벌어진 원피스 사이로 오늘 백화점에서 사 입은 브래지어와 그 아래 모인 가슴이 드러났다. 가슴 위로 그의 더운 숨결이 지척에서 느껴졌다.
라희는 몽롱하고 야릇한 느낌에서 정신을 차리기 위해 입술을 깨물면서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폈다.
투명한 글라스룸 바깥은 인기척이 없었으나, 정원에 의해 건물 간격이 벌어져 있다고 해도 주택가 안이다. 여긴 탁 트인 옥외로 야외나 마찬가지인 공간이었다.
공개된 장소에서 남자의 다리 위에 올라 앉아 반쯤 옷을 걸친 민망한 자세로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도 잠시, 그의 입술이 봉긋한 브래지어 중앙 깊은 가슴골에 닿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맨살에 닿은 부드러운 입술이 천천히 가슴의 정점을 향해 움직였다. 그와 동시에 등 뒤를 더듬는 손길에 툭, 소리가 나고 브래지어가 풀렸다.
단단한 팔에 허리가 감겨들면서 그의 입술이 느슨한 속옷의 안쪽을 더듬어 들어가는 촉감은, 부드러우면서도 뜨거웠고, 야릇했다.
부드러고 잔잔한 입맞춤으로 움직이던 그가, 정점에 이르자 갑자기 뭉클한 유방 안쪽으로 입술을 찍어 눌렀다.
“흐읏..”
라희의 핑크빛으로 도드라진 유두가 그의 입술 안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촉촉한 혀끝이 유두를 감아 당기는 짜릿한 느낌에 라희는 고개를 젖히며 그의 어깨를 꽉 잡았다.
뜨끈한 체온이 느껴지는 촉촉한 입술 안쪽이 지분거리며 유두를 빠는 느낌은 정신을 차릴 수 없게 했다. 그는 입술을 떼고선, 촉촉한 혀를 내밀어 타액으로 번들거리며 붉게 변한 유두를 혀끝으로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핥아냈다.
라희의 벌어진 입술에서는 이내, 헐떡대는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의 손길에 의해 브래지어가 벗겨지고, 원피스도 허리에 걸쳐져 상반신은 완전히 벗겨졌다.
“하아.... 읏..”
입술 안쪽으로 자석의 극이 끌어당기듯, 순식간에 짧고 강하게 빨아당겼다가 다시 놓아주고선 유두 끝을 혀끝으로 애타게 간질였다. 흰 유방 가운데 축축한 타액에 감겨 붉게 솟아난 산딸기 같은 유두가 은은한 황금빛 조명 아래 번질거렸다.
그가 유두를 빨아들일 때면, 강한 흡입감에 가슴 안쪽에서부터 타고 흐르는 짜릿한 느낌으로 정신이 아득해지고 숨이 멈춰졌다. 그러다 혀끝으로 감미롭게 할짝대며 핥아내리면, 몽롱한 열감이 몸 중앙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면서 아래가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아래에서 퍼져나오는 열기는 그가 감싸 쥔 허리를 타고 올라와 미세한 떨림으로 등골을 지나 머리끝까지 번졌다.
============================ 작품 후기 ============================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