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20. 일기 (2)
“이렇게.”
그의 손이 내 턱을 감쌌다.
“나를 마주 보면서,”
그는 내 턱을 위로 올려 그의 눈동자에 고정하듯 맞췄다. 그와 시선이 부딪쳤다. 검은 눈동자가 뚫어지게 나를 응시했다. 그의 눈동자는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이 깊고 어두웠다. 눈을 뗄 수 없었다. 나는 암흑 같은 그를 응시한 채로 멈춰 있었다. 그의 좁혀진 시선은 내 입술 위로 내려가 머물렀다. 그는 천천히 몸을 내게 기울였다. 그와 닿아 있는 얇은 셔츠의 감촉이 피부 위에 느껴졌다. 따뜻한 체온이 어렴풋이 느껴진다.
천천히 다가온 그의 입술은 바로 앞, 내 입술과 닿을 듯 말 듯한 거리에서 딱 멈췄다.
그가 눈을 들어 조용히 나를 응시했다.
끝이 가늘어진 눈빛이 흥미로운 듯 이채를 띄고 있었다. 묻는 것 같았다. 어떻게 할 거냐고.
촉촉한 입술의 온기가 닿을 듯, 말 듯 내 앞에서 멈춰서 약을 올렸다. 키스해 줄까, 말까. 고요하게 나를 응시하는 차분한 눈빛은 먼저 다가오지는 않을 기색이 분명했기에, 나는 그를 쏘아 보면서, 그에게 잡힌 턱을 앞으로 내밀어 얄미운 입술에 먼저 입을 맞췄다.
부드러운 입술 위에 마침내 내 입술을 얹고 혀를 섞었다. 사르르 녹아내리 느낌. 그가 먼저 입술을 떼자, 나는 아쉬워하며 그를 원망했다. 검은 눈동자는 나를 향해 낮아졌다.
“유혹해봐.”
그가 내 귓가에 속삭였다. 지독히도 낮고 은밀한 목소리.
당신을, 어떻게 유혹해야 할까. 고민에 빠졌다.
내 복잡한 표정을 읽은 그가, 마치 이렇게 하라고 알려주듯이, 한쪽 턱을 붙들어 시선을 고정시킨 채로 다른 한 손으로는 내 오른손을 붙잡았다.
그의 얼굴에 시선이 고정 당한 채로, 그의 손에 이끌린 오른손은 배꼽 아래 활짝 벌린 허벅지 사이의 정중앙으로 움직였다.
그가 내 손 위에서 힘주어 가운뎃손가락을 아래로 눌렀다. 뜨끈하다. 손끝에서 축축이 젖은 꽃잎의 감촉이 생생히 느껴졌다. 나는 내 손을 덮고 있는 그가 이끄는 대로 젖은 속살 가운데 비죽 솟은 클리토리스를 지그시 내리눌렀다.
찐득한 애액에 흠뻑 흐드러진 예민한 속살은 손끝에 실린 무게에 따라 우릿하게 눌리고 짓이겨져 둥글게 쓸리면서 움찔거렸다. 그는 나를 곧게 응시하며 내 손을 덮고 있는 손을 느릿하게 움직였다.
그가 직접 만지는 것도 아닌데, 내 손가락 끝에 자극된 야릇한 감각이 달아오른 돌기를 타고 한껏 피어올랐다. 아래의 샘에서 미끌미끌, 끈적한 액을 잔뜩 묻힌 손끝이 음핵을 계속 누르듯 문지르며 위아래로 연신 쓸어 올렸다.
“흐읏..”
그의 손에 의해 아래위로 왕복하던 손끝이 클리토리스를 빙글, 원을 그리듯 둥글게 비비자 나도 모르게 허벅지 안쪽이 움츠러들면서 신음이 새어나왔다. 그와 동시에 살살 비벼대기만 하던 가운데 손끝에 좀 더 힘이 실어졌고, 원을 그리듯 돌리고 있을 때 옆에서 잘 지탱 해주던 검지와 약지도 따라서 상하운동을 시작했다.
"하, 아...하읏..."
이상야릇한 느낌이었다.
분명 그의 손이 움직이고 있는데, 아래에 눌린 내 손가락이 나를 적시고 있었다.
한 손으로 그가 내 턱을 고정하고 있었기에 나는 꼼짝 없이 그의 시선 속에서 허벅지를 활짝 벌리고, 그의 손길에 따라 내 은밀한 곳을 비비다가, 건드리다가, 끈적이는 애액을 흠뻑 문지르고 있었다. 몸이 점점 더워지고 있었다.
흥분과 더위가 나를 감싸고 돌았다. 탱탱하게 열린 과실처럼 볼록 솟은 돌기가 내뿜는 열기는 허리를 타고 올라와 등 뒤를 데웠다. 마치 들끓는 활화산처럼, 뜨거운 클리토리스는 끊임없이 건드려지길 원하며 달아올랐다.
“하윽..”
나도 모르게 허벅지를 양옆으로 그를 향해 활짝 벌리면서 아래의 젖은 속살에 힘이 잔뜩 들어가고 있었다. 순간, 내 손을 덮고 있던 그의 손의 무게가 사라졌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의 시선은 낮게 타오르고 있었고, 나는 이미 뜨거워진 열기를 달래기 위해 하던 행위를 멈출 수가 없었다.
내 손가락은 끈끈하게 흠뻑 젖은 꽃잎을 벌리고 가운데 땡땡하게 열기가 몰린 그곳을 손끝으로 매만졌다. 잔뜩 달아오른 몸속이 부푼 열기로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저 끝에 뭔가가 있는 것 같은데 닿을 듯 말듯, 애태우며 원하는 감각의 끝까지 닿을 수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눈을 감고선 솟아오른 음핵을 아래에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지그시 짓누르면서 빠르게 문질렀다가, 좌우로 원을 그리며 비볐다. 그가 보고 있는 것을 똑똑히 알고는 있었지만,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허벅지 안쪽이 죄이면서 점점 발끝에 힘이 들어갔다. 온몸에 치솟아 오르는 열기로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
“하아, 아..”
머릿속이 새하얘지면서, 활짝 벌려진 허벅지 안쪽이 부들부들 잘게 떨려왔다. 오싹한 전율과 같은 쾌감이 허리를 타고 흘렀다. 뭔가가 서서히 풀리는 기분. 동시에 미끌거리며 뜨겁게 아래를 짓누르던 손 끝에 힘이 풀려갔다. 온몸을 꽉 쥐었다가 관통하는 찌릿한 느낌이 퍼져 나가면서, 점차 아래에 몰린 열기가 전신으로 흩어졌다.
“아..아..”
벌린 입술은 뜨거운 숨결로 달싹거렸다. 숨을 몰아쉬고 있는데 입술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대리석 식탁과 맞닿은 엉덩이 안쪽이 흠뻑 젖은 물기로 흥건했다. 전신을 압도하는 감각의 후폭풍 속에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손끝은 찐득거리는 애액으로 번들거렸고 몸이 축 늘어지며 힘이 빠져나갔다. 그때였다.
"읍,"
그의 손에 쥐인 내 턱 끝이 들리면서, 벌린 입술 안쪽으로 뜨거운 혀가 파고들어 왔다. 촉촉하게 젖은 부드러운 혀. 열기와 흥분으로 가쁜 숨을 내쉬느라 갈증에 시달리던 건조한 내 입속을 그가 촉촉이 적셔주었다.
“...으응...”
나는 그에게 매달리며 그가 내뿜는 뜨거운 숨결에 흠뻑 취했다. 진한 베르가못 향이 나는 감미롭고 관능적인 움직임 속에 찐득한 혀가 엉켜 들었다. 그윽한 그의 내음에 몽롱했던 정신이 아찔하게 죄여왔다. 그의 혀는 나를 감았다가 슬쩍 놓아줬다가 또다시 부드럽게 옭아맸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좀 전의 열기에다가 뜨거운 키스가 더해져 온몸이 찌릿찌릿했다.
'방금, 그가 보는 앞에서 뭘 한 거지. 도대체.'
머릿속 복잡한 심경과는 별개로, 나른한 몸은 그의 혀가 움직이며 감아올 때마다 전신이 오그라드는 쾌감에 움찔거렸다. 그는 입술을 떼었다가 다시 다가와 입 안 곳곳을 핥아가며 혀를 휘어 감았다가 풀어주고, 또다시 세차게 빨아들였다. 몇 번이나 입술이 부딪혔다가, 떨어졌다가 다시 맞닿았다.
이윽고, 부드러운 혀가 나를 벗어나 멀어져갔다. 나는 키스에 취해 눈을 스르륵 감은 채였다. 혀끝으로 전 해졌던 그 짜릿하고도 찌릿찌릿했던 감촉이 맛있었다. 나는 입맛을 다셨다. 아직도 나른한 전율이 가시지 않는다.
“눈을 떠.”
그의 나직한 음성이 죽은 듯 잠들어 있는 신경을 깨웠다. 나는 감각의 여운에 잠겨 있는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려 힘들게 눈을 떴다. 가늘게 벌어진 시야 사이로 환한 조명이 쏟아 들어온다. 나는 미간을 찡그리며 눈을 몇 번 깜빡였다.
그러다가 순간, 나를 응시하고 있던 새카만 눈동자와 마주쳤다. 나는 곧 시선을 비켜 피했다. 조금 전 내가 한 적나라한 행위가 생각이나 두 뺨에 열기가 화르르륵 몰렸다. 민망했다. 어색하고 부끄러워서 그를 마주 볼 용기가 없었다. 조금 전 내가 했던 행위와 방금 전 키스로 아래는 흥건하게 젖어서 차가운 대리석 바닥의 물기가 살과 맞닿아 피부를 차게 자극했다.
“나를 봐."
그의 명령. 나는 천천히 고개를 올려 그를 바라보았다. 깊고 검은 눈동자는 나를 향해 있었다. 저절로 휘말려 들어갈 듯한 심연이 나를 응시했다.
“이제 막, 시작한 거 아니었나?”
그가 말했다. 지독히도 은밀한 말투.
"기대하는 중인데."
그는 나를 향해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는, 뒤돌아 소파로 걸어갔다.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식탁에서 벗어나 바닥에 섰다. 딱딱한 맨바닥이 발바닥 아래 느껴진다.
털썩, 그가 널찍한 가죽 소파 한가운데 앉았다. 그는 고개를 돌려 식탁 앞에 서 있는 벌거벗은 나를 응시했다. 그와 시선이 얽혀들었다. 나는 입술 끝을 지그시 깨물었다.
"시작해.”
언제나처럼 나직하지만 명료한 목소리였다. 그와의 관계에서는 너무나 익숙한 그 말.
내가 머뭇거리고 서 있자, 그는 희미한 미소 띤 얼굴로 입술을 동그랗게 만들어서, 덧붙였다.
"Amuse me."
(나를 즐겁게 해봐.)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1편도 저 말로 시작하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