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V. 일기
19. 일기 (1)
맞닿았던 입술은 천천히 떨어졌다. 몽롱하게 흐려진 시선 속에서 그의 입술은 방금 입 맞추기 전 단정했던 입매가 살짝 벌어져 있었다. 보드라운 입술 안쪽은 연한 분홍빛이고, 감미로웠던 만큼 촉촉했다. 나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민감해진 입술이 눌리면서 찌르르, 관능적 감각이 턱을 타고 내려와 몸이 미세하게 떨렸다.
“음.”
그가 나직하게 소리를 냈다. 그와의 키스는 매번 나를 애타게 했다. 하지만, 그는 좀처럼 키스해 주지 않았다. 격정적이고 숨 막혔던 관계 중에도 그의 키스는 드물었다. 나는 그의 촉촉한 입술을 올려다보고 있다가 그의 어깨 위로 팔을 둘렀다. 그는 내가 하는 행동을 가만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목에 양팔을 교차하고서는 턱을 위로 한껏 들었다. 키가 큰 그에게 닿기 위해 발뒤꿈치가 살짝 들렸다. 봉긋한 가슴 위를 덮은 티셔츠와 밀착된 그의 얇은 셔츠 아래로 묵직한 체온이 느껴졌다. 그의 온기.
그의 입술과 숨결이 닿을 만큼 가까워졌다. 나는 다시 그의 입술을 머금었다. 내 혀는 촉촉한 입술 사이의 틈으로 천천히 파고 들어갔고, 그는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여 따스함으로 감싸 나를 맞아주었다. 그의 목을 감싸고 있는 팔 안쪽을 통해 맥이 뛰면서 혈류가 흐르는 느낌. 살갗의 체온이 느껴졌다.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는 천정의 조명이 짙게 내려앉아 움푹 파인 눈매 속 깊은 음영을 만들어낸 긴 속눈썹 그늘 아래로 나를 응시했다. 그의 검은 눈동자는 모든 것을 삼켜버릴 듯이 짙었다. 빈틈없이 맞댄 입술 틈으로 빠져나오는 따스한 숨결 속에서 혀와 혀가 부드럽게 얽히고, 타액이 흘러들면서 체온과 체온이 섞였다.
“으응..”
나는 입술 안쪽으로 깊이 그를 빨아들였다. 그의 숨결까지 모조리 빨아들였다. 내 입술 안쪽을 가득 채운 그의 베르가못향은 목구멍을 타고 폐 안쪽으로 스며들었고, 맞댄 가슴을 통해 느껴지는 그의 온기가 나를 가득 채운 농밀한 숨결을 뜨겁게 달궜다. 나를 자극하는 느린 입맞춤이 황홀하다. 질척이는 혀의 나른한 움직임 속에서 혈관을 타고 흐르는 그의 체취가 말초까지 전달되면서 기분이 몽롱해지고 등허리가 찌르르 울렸다.
내가 먼저 시작한 키스. 그는 가만 서서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내가 애타게 그의 목에 두른 팔에 힘을 주어 묵직한 그의 가슴 위로 하느작거리며 파고들자, 커다란 손이 허벅지를 스치고 치마 위를 타고 올라가 내 허리를 감쌌다. 허리 뒤를 가득 덮은 손바닥이 묵직하게 살을 압박해 오면서, 내 몸은 그에게 더욱 밀착되었다.
"...."
배꼽 아래 얇은 옷감 사이로 빳빳한 면바지 아래 딱딱하게 성이나 있는 그의 남성이 느껴졌다.
도도하고 오만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유진이 사랑하는 그.
그가, 나와 키스하면서 나를 원하고 있다.
그건 묘한 쾌감이었다.
그녀가 와서 친절히 일깨워 주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기묘한 승리의 비틀린 달콤함.
나는 입술을 떼고, 억눌렀던 호흡을 길게 내쉬었다. 그에게 밀착된 몸이 뜨거웠다. 막혔던 호흡이 열리면서 가쁜 숨을 내뱉는 입술 끝이 가늘게 떨려왔다. 떨고 있는 입술과 숨으로 헐떡이는 좁은 턱을 내려다보던 그가, 두 손으로 허리를 감싸고 지그시 눌러 압박해오면서 다시 입을 맞춰왔다.
생각해 보면, 단 한 번도 그를 먼저 바란 적 없었다.
처음 눈이 마주친 순간부터 무섭고 두렵기만 했던 사람이었고, 사는 세상이 달라 접점 따윈 생각할 수도 없었다.
아래에 딱딱하게 곤두서있어 위협적인 물건과 달리, 키스는 부드러웠다. 정욕으로 가득 차 주체할 수 없는 거친 입맞춤이 아니었다. 새털처럼 가벼운, 그러면서 감미로운. 벌린 입술 안쪽으로 그의 혀끝이 들어와 나의 혀와 마주 닿았다. 혀끝이 서로에게 감기면서, 입술 안쪽이 진득한 소리를 내며 흡착되었다. 촉촉한 소리를 내며 맞닿은 입안으로 혀와 혀가 닿았다가 애태우며 떨어졌다가 다시 서로를 감싸 안았다.
단지 무섭기만 했던 그. 그랬던 그가, 이렇게 내게 달콤하게 입 맞추고, 따스한 타액을 나누고 있다.
바흐의 키스는 산들거리며 피부 위를 간질이는 미풍같이 부드럽고, 설레도록 몽실몽실했다. 그의 혀가 점점 안으로 깊이 파고들수록, 그의 농밀한 체향이 강하게 나를 덮어올수록, 솜사탕 같이 말캉거리며 슈크림처럼 보들보들한 감각이 주는 몽환적인 느낌이 들어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배꼽 아래에서 뜨끈한 열기가 뭉쳤다. 내 마음이나 뒤죽박죽된 심리 상태와는 별개로, 적어도 내 육체는 그에게 길들여져 있었다.
어느덧 달뜬 숨결을 내뿜는 내 목구멍 아래, 미끌거리며 젖은 안쪽의 좁은 틈은 그의 단단하고 굵은 남성을 원했다.
내가 발꿈치를 더욱 높게 들어 올려 그에게 애타게 매달리자, 순간 허리를 감싼 그의 손이 아래로 내려가 엉덩이를 둥글게 감싸 쥐면서 내 몸이 위로 들렸다.
그가 나를 매단 채 움직이면서 벽을 짚었다. 컴컴한 오피스텔의 전원 스위치가 켜지는 소리가 들리고, 눈부시도록 환한 조명이 어둠에 익숙했던 내 눈동자 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나는 갑자기 엄습하는 날카로운 자극을 못 이겨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눈꺼풀 덮인 환한 어둠 속에서, 내 입안으로 뜨거운 혀가 침입했다. 말캉말캉한 키스의 따스한 감각에 취하듯 매달렸다. 그 사이, 엉덩이 아래 딱딱한 느낌이 들었다. 엉덩이와 허벅지 피부 아래에 닿은 차갑고 딱딱한 감각. 그가 내 앞에 서 있었으니 소파는 아니었다. 앉아 있는 발끝이 허공에 떠 있다.
그의 어깨에 매달려 있는 나에게서, 몸을 내게 기울여 키스하던 그의 입술이 천천히 떨어져 나갔다. 등허리를 감싸 쥐었던 큰 손바닥은 티셔츠 옷자락을 밑에서부터 돌돌 말아 올리며 등을 타고 어깨까지 올라왔다. 나는 맨살 위에 맞닿은 생경한 외기를 느끼며 눈을 떴다. 순식간에 벗겨져 버린 내 티셔츠가, 그의 손끝에서 흘러내려 바닥으로 떨어졌다.
환히 불 켜진 거실 안에서 그는 식탁 위에 앉아 있는 나를 곧은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마주 보는 침묵 속, 새카만 그의 눈동자에 갇혀 있는 사이, 그의 손이 내 옆구리를 느리게 쓸면서 등위로 향했다. 맨살과 맞닿은 손바닥의 온기는 거부할 수 없이 피부 안으로 스몄다.
천천히, 등줄기를 더듬던 손가락은 브래지어 후크에 닿았다. 툭, 하는 소리와 함께 가슴을 덮고 있던 브래지어가 헐렁해졌다. 어깨끈이 풀리고 브래지어는 바닥에 떨어졌다. 허리에 닿은 손길은, 마지막으로 입고 있던 치마를 아래로 끌어내렸다. 치마와 함께 딸려 내려간 속옷이 발목을 스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눈부시게 환한 조명 아래, 하얀 대리석 식탁 위에서 나는 알몸으로 앉아 있었다.
그의 옭아매는 듯한 검은 시선 안에 갇히자 저절로 마른 침이 삼켜졌다. 검은 눈동자와 마주한 얼굴 위로 알 수 없는 열기가 몰려 온몸이 화끈거렸다.
식탁 앞에 선 그는 마치 미술 작품을 감상하듯, 내 몸을 샅샅이 살폈다. 나의 눈과 마주치고 있던 그의 시선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살짝 벌린 내 입술 위를 지나 턱 끝에 머물렀다가, 목을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쇄골 아래 부푼 두 가슴 위로 꼿꼿하게 서 있는 분홍빛 유두에 멈췄다가 다시 아래로 향했다.
그의 시선이 느리게 내 나신을 훑어 내리는 것이 생생히 피부에 와 닿았다. 뜨거운 눈빛이 닿는 곳마다 예민해진 신경이 바싹바싹 타올랐다. 잔뜩 모아진 허벅지 가운데를 스쳐 무릎 위에 머무른 그의 까만 눈동자는 위로 올라와 다시 내 얼굴로 곧게 쏘아져 내렸다.
나와 마주한 검은 불꽃이 타오른다. 낮게 일렁이는 불꽃은 나를 삼킬 듯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는 숨 막힐 듯한 냉혹의 열기로 나를 죄여왔다. 바흐 앞에서 나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나를 가만 바라보던 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생각에 잠긴 표정. 그러다가 그는 의아하다는 듯이 턱을 살짝 비틀었다. 뭔가를 고민하는 표정이 된 그는 내 얼굴에서 시선을 돌려, 아까 내가 앉아 있던 소파를 바라보았다.
나의 시선도 그의 시선을 따라 그 끝이 향하는 곳에 멈췄다.
소파 테이블 위에는 빈 샴페인 잔 두 개, 그리고 그 옆에 빈 로리나 한 병이 놓여 있고 빈 병과 빈 잔 옆에는 개봉하지 않은 프렌치 베리 로리나 한 병이 보였다.
“흐음.”
그의 턱이 비스듬히 기울였다. 그러다가 고개를 돌려 나를 다시 바라보면서, 조금 전 키스했던 단정한 입매를 옅게 끌어 올렸다. 그는 똑바로 나를 응시했다. 벌거벗은 나신 위로 무거운 침묵이 짓눌러왔다. 내가 불편해하는 어색한 몸짓으로 식탁 위의 몸을 움직이려 하자, 그가 말했다.
“거기 가만있어.”
멈칫. 나는 움직임을 멈춘 채로 그의 시선에 갇혔다. 그는 천천히 팔을 뻗어왔다. 그의 두 손이 내 닫혀 있는 양 무릎 위에 얹어졌다. 그는 손으로 감싼 무릎에 힘을 주어 천천히 벌렸다. 허벅지에 힘을 주고 잔뜩 버텨보았지만, 역부족이었다. 이내 마주 보고 있는 그를 향해 다쳤던 흰 허벅지가 활짝 벌려졌다.
그는 내 발목을 붙잡아 식탁 위로 올렸다. 양 발꿈치가 식탁 위에 올라갔고, 나는 무릎을 세워 벌린 채 발바닥을 식탁 위에 붙이고선, 그를 향해 안을 활짝 벌리고 앉아 있었다. 가랑이 아래의 은밀한 곳을 향한 그의 시선 속에서 나는 입술 끝을 잘근 깨물었다.
움찔.
그의 손가락이 벌린 분홍 속살에 와 닿았다. 샘의 입구가 진득하게 젖은 그곳은,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그의 손끝이 닿자 흠칫 놀라며 꼬물락거렸다. 그의 손가락은 내 안쪽 속살을 가르듯이 아래에서 위로 서서히 튕겨 올렸다. 그의 손길에 뜨거운 불꽃에 데인 듯, 묘한 열감이 피어오르며 오싹하면서도 야릇한 느낌에 허리가 뒤틀리고, 깊은숨이 목구멍 안으로 삼켜졌다.
"흣!"
내가 등을 뒤로 펴면서 무릎을 오므리려 힘을 주자, 그는 한 손에 힘을 주고 움직임을 저지했다. 다른 한쪽 무릎은 그의 몸에 눌렸다.
다시, 그의 손가락이 촉촉이 젖어서 달아오른 속살에 닿았다. 그의 길고 곧은 손가락이 물기를 머금은 입구 쪽으로 천천히 가르듯 움직이며 위아래로 자극했다. 미끄러지듯 위로 움직이는 손끝을 달아오른 살들이 끈적거리며 달라붙었다. 손끝 아래 눌린 세포들이 파르르 떨렸다.
"하...흐읍!”
나는 허리를 비틀었다. 그는 손가락 하나를 물기 어린 살 속에 깊숙이 찔러넣으면서, 몸을 기울여 내 입술을 그의 입술로 막았다. 뜨거운 혀가 입안으로 들어와, 목구멍에 닿을 듯 꿈틀거리며 입안을 가득 채웠다. 동시에 젖은 동굴 안으로 들어온 손가락도 습기 어린 마찰음을 내며 묵직하게 속살 안쪽으로 깊게 파고들어 왔다.
금세 팽팽하게 부푼 살덩이들이 질퍽거리며 고운 진흙처럼 그의 손가락을 감싸고 부드럽게 감겨들어 갔다. 아래를 건드리는 아찔한 감각은 심장 안쪽을 간질였다.
“흣...아..으..”
열기가 차오른다. 아까와 달리 키스는 매우 거칠었고, 아래를 채우며 드나드는 손가락의 움직임도 차츰 빨라졌다. 거센 움직임. 몸이 들뜨기 시작했다. 손가락이 뜨거운 살점 안을 쓸고 들어갔다가, 반쯤 빠져나왔다가, 다시 안으로 밀고 들어간다. 몇번이고 드나들면서, 주변의 살점들이 깊이 말려들어가, 눌린 자리마다 쾌감이 열꽃처럼 피어올랐다.
혓바닥을 자극하는 그의 농밀한 키스와 함께 아래의 예민한 살덩어리가 눌리듯 쓸리면서 머릿속의 생각들이 하얗게 비워진다. 기분이 들뜨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부들부들, 야릇야릇한 느낌이 온몸을 가득 채운다. 벌린 허벅지 안으로 드나드는 손길. 찌르르,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아득한 감각. 등이 절로 움츠러든다. 온몸을 불태울 것 같은 더운 열기는 내 입술을 크게 벌렸다. 그 사이로 달뜬 신음을 내질렀다. 야들야들한 살과 단단한 살이 얽혀들면서, 찔걱이는 마찰음이 조용한 공기를 깨운다.
“핫!”
그의 손끝이 미끌거리는 질벽을 부드럽게 긁어 내리며 빠져나가고 있었다. 나는 애타게 움찔거리며 그를 붙잡아 보았지만, 조일 듯 오므려진 움직임은 그보다 한발 늦었다. 아래를 파고 들어와 채워주며 드나들던 단단한 것이 갑자기 쑤욱 빠져나가자, 허전했다.
그와 동시에 내 입술 위를 뜨겁게 눌러오던 체온의 무게가 사라졌다.
"흣..."
나는 아쉬워 하며 혀끝으로 입술을 핥았다. 찌릿찌릿한 감각이 예민한 살갗 위에 감돈다. 나처럼 붉어진 입술을 느리게 뗀 그가 내 귓가에 더운 숨결을 가득 뿜어냈다. 등줄기로 찌릿한 감각이 내달렸다. 내가 몸을 잘게 떨며 그를 바라보자, 그는 나직한 음성으로 속삭이듯 말했다.
“더 원한다면 아까처럼, 먼저 날 유혹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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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