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와 그녀와 그와 나-16화 (16/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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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그들 (6)

“흣...”

라희는 신음을 삼키기 위해 입술을 꽉 깨물었다. 밀폐된 화장실 안. 숨소리조차 크게 울린다.

"하, 앗."

한쪽 무릎이 세면대 위에 걸쳐졌다. 남은 한 다리가 바닥에 닿아있지만, 지탱하기 힘들 정도로 후들거렸다. 뒤에서 밀려드는 힘 때문에 허리가 아래로 휘면서 밑의 거뭇한 수풀이 세면대 모서리에 맞닿았다. 검은색 원피스는 엉덩이 위로 밀려올라가 허리에 구겨져 걸쳐졌다. 배꼽 아래와 검은 수풀 위로 구겨 올라간 옷감은 대리석으로 된 차가운 세면대와 라희 몸 사이를 완충하는 역할을 했다. 세면대를 짚고 있는 손가락에 하얗게 힘이 들어간다.

"..아."

힘겹게 고개를 드니 세면대 앞 벽에 있는 거울에 라희의 모습이 비쳤다. 뒷 지퍼가 활짝 열린 검은색 원피스가 훤히 드러난 둥근 어깨 아래 팔뚝에 성긴 모양으로 걸쳐 있었고, 드레스 어깨 라인이 헐렁하게 내려온 앞쪽은 브래지어 위로 모습을 드러낸 둥근 젖가슴이 봉긋 솟아나 있었다.

그 가운데 방금 전 바흐가 물로 빨고 깨물었던 유두는 새빨갛게 달아올라 색정적으로 번들거렸다.

“....흐읏!”

라희의 하얀 엉덩이 위를 움켜쥔 그가 성난 남성을 촉촉하게 젖은 여성 안으로 거칠게 삽입했다. 쿡, 뒤에서 푹 찌르듯 안으로 쑤욱 밀려들어오자 젖은 질구가 움찔거리며 그를 감싸 쥐었다. 미끄러지듯 안으로 깊게 맞물려 들어 단단하게 채워주는 느낌에 라희는 엉덩이를 끝을 움츠렸다.

"핫-."

뒤에서 그녀를 찔러대는 바흐의 한쪽 손은 허리의 리듬에 맞춰 흔들리고 있는 둥근 가슴을 가득 움켜쥐었다. 뜨거운 손바닥이 가슴에 와 닿았다. 꼿꼿하게 선 유두 위를 스친다. 라희는 열띤 신음을 내뱉으려다 안으로 삼켰다. 그 어떤 소리도 밖으로 새어나가면 안 된다.

두근. 혹시 사람들이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긴장감에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다. 짜릿한 긴장 가운데, 단단히 움켜쥔 가슴과 거칠게 아래를 채우며 흠뻑 젖어 찐득하게 드나드는 그의 기둥이 주는 충만한 쾌감에 몸이 잘게 떨려왔다. 허리가 깊게 휘고, 열기가 차오른다. 견딜 수 없는 쾌감에 눈앞이 흐려진다.

"........."

거울에 비친 라희는 터져 나오는 신음을 참으려 입술 끝을 힘들게 깨물고 있었고, 조금 벌어진 양옆 입가에서는 헐떡이는 숨소리가 연신 터져 나왔다. 커다란 손아귀 아래 하얀 가슴이 꽉 쥐어 있어 터질 듯 부풀어 올라 있었다. 그가 가슴을 쥐었다 폈다 하며 자극하자, 죄여오며 압박해 오는 손아귀 아래 짓눌린 유방이 찌릿찌릿했다. 거친 남성의 힘에 온몸이 사로잡혀 전율했다.

"...으흣..."

뜨거운 열기를 내뿜으며 압박하듯 안으로 밀려들었다가, 빠져나왔다가 쉴새 없이 드나드는 그의 물건. 맞닿아 젖은 속살이 꿈틀거리며 그에게 들러붙었다. 짜릿한 밀착. 충만한 쾌감이 아래를 지배했다. 제어할 수 없이 아래가 제멋대로 죄었다 풀어졌다가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며 그의 남성을 받아들였다.

"흣!"

뒤로 사정없이 파고들어 오는 단단한 그의 기둥은, 뭉툭한 끝이 살을 꿰뚫어 닿을 듯, 깊게 삽입되었다. 그를 향해 활짝 벌려진 꽃잎 위로 미끈하게 맞닿은 부드러운 고환이 젖은 속살에 일정한 간격으로 찰싹 붙었다가 떨어졌다가 하며 애를 태웠다. 그럴 때마다 짜릿한 찐득거리는 느낌. 스멀스멀 야릇한 전율이 여성을 달군다.

퍽퍽, 거칠게 살이 맞부딪히는 소리와 골반이 비틀리며 만들어내는 찔걱거리는 음습한 마찰음이 화장실 안에 가득 울려 퍼졌다.

'설마,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가지는 않겠지?'

라희는 쾌락으로 흐려진 가는 눈매로 유리창에 비친 그를 응시했다. 그와 시선이 마주치면서 아래가 깊게 박히는 아득한 느낌. 질끈 눈이 내리 감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와 이곳에서 마주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흐흣...하,.."

아까 1층 멀리서 노려보는 바흐의 눈길을 받은 라희는 어찌할지 몰라 딱딱하게 굳어 숨조차 멈춘 채 석상처럼 서 있었다. 마침 옆에 서 있던 뿔테에게 그의 형이 바삐 다가와 단둘이 조용한 곳에서 잠시 이야기하자고 말했고, 뿔테는 라희를 보며 미안한 표정으로 양해를 구했다. 라희의 끄덕임 속에 그의 형을 따라 뿔테가 자리를 비웠다. 라희는 그 틈을 타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바흐와 함께 왔던 그녀는 어쩐 일인지 보이지 않았다.

".........!"

그때 쏘아보는 짙은 암흑 같은 눈동자와 다시 마주쳤다. 그의 눈짓을 따라 그가 먼저 자취를 감춘 계단으로 따라 올라왔다. 2층에서 라희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넓은 내부, 몇 사람이 서성이고 있던 2층에는 그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어디지?'

주위를 살펴다가 고개를 돌려 3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바라보니 그 앞에는 와 가 쓰인 노란 플라스틱 표지판이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라희는 다시 주위를 조심스럽게 두리번거리다가 지켜보는 시선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조용히 3층으로 향했다.

마지막 3층 계단을 밟아 서자마자, 옆에서 라희를 끌어당기는 강한 힘에 이끌려 3층 안쪽 깊숙한 곳에 위치한 화장실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

화장실 문이 닫히고, 바흐는 라희를 벽으로 찍어 누르며 허리를 거칠게 감싸 안았다. 등이 벽에 부딪혀 아팠다. 하지만, 고통을 표현할 새도 없이 앞에서 몰아붙이는 그와 몸이 맞닿자마자 라희의 입술을 가르고 뜨거운 그의 혀가 파고들어 왔다. 뜨겁다. 진하고 매혹적인 베르가못 향이 혀끝에 감돌았다.

"아, 흐..."

혀와 혀가 진뜩하게 엉키고 말캉한 살을 맞대지며 휘감았다. 작은 혀끝에서부터 무섭도록 짜릿한 전율이 전해졌다. 질척하며 달콤하다. 거부할 수 없는 부드러운 감각이 몸을 감싼다. 따뜻하고 감미로운 타액이 목구멍을 타고 흘렀다. 연하디연한 살덩이가 찰박거리는 물기 속에 질척이며 맞대어졌다. 미끈거리는 관능이 실처럼 칭칭 몸을 휘감고 뒤엉키며 옭아맸다. 동시에 아래도 미끈하게 흐르는 물기에 옴죽거리면서 속절없이 촉촉이 젖어갔다. 그의 격렬한 키스에 숨이 할딱였다.

"하, 하아. 하..."

바흐의 커다란 손은 라희의 등을 타고 올라가 목 뒤쪽의 지퍼를 삽시간에 끌어내렸다. 동시에 숨도 못 쉬도록 몰아붙여 진다. 입안을 가득 채운 그가 라희의 혀를 빨아들였다. 아찔한 감각. 허리가 크게 들썩이며 낮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아...”

좋다. 좋아서 견딜 수 없다. 순식간에 지퍼가 열려 헐렁해진 원피스가 물 흐르듯 아래로 흘러내려 오며 팔뚝에 걸렸고, 브래지어 사이로 모인 가슴골에 그의 코가 닿았다. 그가 숨을 깊이 들이마신다. 맨살 위에 와 닿는 뜨거운 숨결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고개가 뒤로 꺽인다.

“흐윽..”

브래지어 밖으로 내밀어 진 유두 끝이 빳빳하게 섰다. 그의 혀가 붉은 유두를 감아올리며 빨아들였다. 촉촉한 혀끝이 유두를 할짝대며 톡, 톡, 건드렸다. 그럴 때마다 아릿아릿한 감각이 가슴 끝을 타고 몸 안으로 흘러들었다. 처음부터 그에게 길들여진 몸은 주인을 애타게 그리워했다. 그가 입술 끝으로 유두를 깊게 빨아 삼키자, 마치 마비된 듯 저릿한 감각에 아래가 뜨거워지면서 미끈거렸다.

라희는 열기로 달아오른 가슴을 그에게 밀착하면서 연신 몸을 들썩였다. 온몸을 덮쳐오는 쾌감에 헐떡이면서, 라희는 흐린 의식 속 힘들게 말을 꺼냈다.

“흣...그녀는, 요...”

간신히 말을 했지만, 바흐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살살 빨아들이던 유두 끝을 잇새로 물고 꽉 비틀어 깨물었다.

“아, 앗...!”

찌르는 듯한 통증과 동반된 짜릿한 감각에 몸이 크게 움츠러들었다. 그는 붉게 달아오른 유두에서 입술을 떼고, 라희의 허리를 잡고 몸을 뒤집어 돌렸다. 세면대 앞으로 밀치듯 뒤로 몰려서는, 거울을 마주 보게 되었다. 라희의 뒤에는 바흐가 우뚝 서 있었다. 그가 허리를 숙였다.

"하윽...!"

목덜미부터 등줄기를 길게 핥아 내리는 그 때문에 등이 저절로 오그라들며 앞으로 굽혀졌고, 그 사이 그의 한쪽 손이 라희의 한쪽 무릎을 잡고 세면대 위로 들어 올렸다. 무릎 안쪽 살과 맞닿은 대리석의 모서리는 젖은 살에 깊게 박혔고, 몹시 차가웠다. 하지만, 이내 질퍽거리며 찰진 살덩이를 드나드는 그의 남성이 용광로처럼 뜨겁게 맞대어지자, 온몸의 감각이 송두리째 날아가 버렸다.

머릿속이 새하얬다. 연신 죄어드는 야릇한 감각에 허리가 바들바들 떨렸다. 전신을 꽉 채우며 뒤흔드는 그 때문에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원초적인 감각만 남아 계속되는 자극으로 몸을 뒤틀게 했다.

“으..읏..”

그의 물건을 흠뻑 적실 듯이 뿜어져 나온 끈적이는 액은, 벌어진 속살의 깊은 주름을 타고 찐득하게 맺혔다가 아래로 흘러내렸다. 활짝 벌어진 꽃잎 아래 붉은 꽃술을 타고 흘러가 톡 튀어나온 클리토리스에 맺혀서 방울졌다.

"하아, 핫!"

세면대 위로 벌려져 걸친 무릎과 골반뼈 아래가 딱딱한 세면대의 차가운 대리석과 부딪히는 느낌은 색달랐다. 애액에 젖은 클리토리스가 서늘한 대리석의 표면과 맞닿아 뒤에서 파고드는 힘에 그 끝이 거칠게 비벼졌다. 아찔한 감각이 몸을 할퀸다. 깊게 받아들이는 그의 남성이 주는 쾌락과 앞의 정점이 차갑게 맞닿아 부벼지며 등줄기를 타고 아득한 쾌락이 전신을 휘감아 올라왔다. 목덜미 끝까지 찌릿찌릿했다.

“하흣...!”

순간, 바흐의 손가락이 클리토리스에 닿았다. 그는 손끝으로 지그시 누르면서 미끌거리는 돌기를 쓰다듬었다. 차가운 대리석표면과 마찰되어 잔뜩 민감해진 정점에 따스한 그의 손끝이 닿으니 표면을 뒤덮은 미끈거리는 액이 체온에 데워져 끈적이며 질척였다. 빳빳하게 솟아오른 살덩이가 그의 손끝에 경련하며 움찔 움찔거렸다.

"흐, 읏..하...!"

그가 계속 거기를 만져주기를 원했다. 그의 손끝이 정점을 스칠 때마다 목구멍에서 흐느낌에 가까운 신음이 새어나왔다. 미끈미끈하면서 닿을 듯, 닿지 않는 쾌락의 저 끝을 향한 감각의 질주로 어지러웠다.

버튼을 누르듯 강하게 눌러서 비벼주자, 엉덩이가 움츠러들면서 골반이 튀틀렸다.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 세포가 온통 어지럽게 춤을 췄다. 그의 물건이 깊게 삽입된 안쪽도 덩달아 꿈틀거리면서 끈끈한 액으로 적셔냈다.

손끝으로 돌기를 누르며 위 아래로 비비면서 건드리던 그가, 흥건한 액을 묻히고는 기둥을 감싸 쥔 은밀한 아래 까지 손가락 끝으로 길게 스치듯 내려갔다. 애가 탔다. 그의 손길이 주는 찌릿한 감각에 라희는 골반 아래와 허벅지를 튕겨내듯 움직이며 그를 꽉 죄었다.

“흐읏..”

유백색 미끌거리는 액이 잔뜩 묻은 손가락 끝이 올라와, 출렁이는 가슴 끝에 매달린 붉은 유두를 잡아 비틀었다.

".......!"

찌릿 거리는 느낌에 숨이 멈췄다. 달아오른 젖꼭지 끝을 검지와 엄지로 잡은 그가 입꼬리를 올리며 천천히 반대 방향으로 비틀었다. 동시에 아래를 드나드는 허리를 빠르게 움직였다. 그의 손끝에 젖꼭지가 음란하게 매달린 채로 아래를 파고들며 꿈틀꿈틀 조이는 동굴 안쪽을 가득 채워오는 단단한 느낌에 라희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얼굴이 음탕하게 제멋대로 일그러지면서 숨이 끊어질 듯 할딱였다.

“하읏..하..”

거울에 비춘 그녀의 모습은 스스로가 보기에도 색정적이다. 반쯤 벌어진 붉은 입술은 뜨거운 숨결을 헐떡이며 색스러운 열기를 뿜어냈다. 거의 벗겨져 허리와 가슴 아래 걸려 있는 검은색 드레스 위에 흔들리고 있는 하얀 둥근 유방 끝은 새빨갛게 달아오른 유두 끝이 그의 손가락 사이에 쥐어 잡혀 비틀려 있었다. 허리를 들썩이면서 한쪽 다리는 세면대 위에 걸쳐져 벌려 있고, 그 사이를 그의 굵은 기둥이 쉴새 없이 드나들었다. 그럴 때마다 온몸이 수축하고, 젖은 질벽이 밀려 박혔다.

그의 얼굴이 라희의 허리 앞으로 내밀어 지면서 애액에 번들거리던 손가락 끝으로 비틀던 유두를 입술 안쪽으로 쪽 빨아들였다.

"하앙!"

목구멍 깊은 곳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교성. 그의 뜨거운 입술 안쪽에 깊게 흡입 당하는 젖꼭지의 말초가 예민한 쾌락으로 단단하게 움츠러들었다. 찌르르한 느낌이 발목에서부터 타고 올라왔다. 라희는 둔탁하게 뒤에서 찔러오며 전신을 뒤덮어오는 날카로운 쾌감에 몸을 뒤틀며 신음했다.

“으..”

그 바람에 아래를 사정없이 조여버렸는지, 그가 낮은 신음을 내 뱉으며 빠르게 허리를 움직였다. 터질 듯한 열기 속에서 아래를 꽉 채우면서 꿀럭, 꿀럭하며 열락을 토해내는 그의 물건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아득한 절정감. 신경이 끊어질 듯 앞이 새하얗다. 아래의 옴죽거림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잠시 뒤 싸한 느낌이 아랫배를 감돌았다.

“하아..하..”

라희는 아래를 파고들던 움직임이 멈추어지자 긴 숨을 토해냈다. 스르르 힘이 풀려 앞으로 엎드려 휜 허리 아래를 채우던 그의 물건이 미끄덩거리며 빠져나갔다. 동시에 막혔던 아래가 뚫리면서 주르르, 뭔가가 살결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찰싹

바흐가 그녀의 엉덩이를 살짝 치자, 땀에 젖은 흰 엉덩이가 잘게 흔들렸다.

“나와. 그리고 곧장 오피스텔로 가서 기다려.”

바지를 끌어올린 그가 땀에 젖어 흐트러진 짧은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거울에 그의 모습이 비친다. 호흡을 고른 후, 옷매무새를 다듬은 그의 모습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단정했다. 라희는 나른하게 풀린 눈동자로 거울 너머의 그를 바라보았다.

거울 속의 새카만 눈동자는 라희를 향해 곧게 쏘아지며 대답을 요구하고 있었다. 라희는 간신히 고개를 들고 턱을 작게 끄덕였다. 그는 라희의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누르듯 쓰다듬고 한번 꽉 움켜쥐었다 놓아주었다.

―딸깍

그가 사라진 자리에 3층 화장실 문이 닫히고, 라희는 홀로 남았다. 라희는 세면대 위에 걸쳤던 한쪽 다리를 내려 마침내 두 다리로 섰다. 젖은 아래는 간질거리며 미끌거렸고 온몸은 나른해져 다리가 후들거렸다. 라희는 몸을 돌려서 엉덩이를 세면대에 기대고 잠시 숨을 골랐다. 차가운 대리석과 맞닿은 손끝과 손바닥은 조금 전 열기로 화끈거렸다. 시선을 내려 아래를 보니, 허리에 걸쳐진 검은색 드레스는 구겨져서 온통 엉망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시폰인 만큼 적당히 매만지면 옷매무새야 어찌 든 될 터였다.

아래를 향한 그녀의 시선이 멈췄다. 물기라고는 하나 없는 화장실 바닥 아래에는 희고 번들거리는 불투명한 액체가 납작하게 떨어진 자국이 제법 크게 남아 있었다. 라희는 고개를 들어 열린 화장실 변기 칸을 바라보았다. 거기 걸린 흰 두루마리 휴지로 바닥과 아직까지 뜨거운 열기를 내뿜으면서 끈적이며 야릇한 느낌을 주는 밑을 닦아내야 했다.

-휘청,

갑자기 발걸음을 움직이려 하니 온몸에 힘이 빠져 흔들거렸다.

"하아...."

라희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당장은 손끝 까딱할 힘조차 없었다. 이대로 조금만, 더 쉬어야겠다.

***

“어디 갔었어? 한참을 찾았는데.”

한참만에야 1층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라희를 발견한 뿔테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물었다. 라희 계단 앞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저쪽 끝에서 그녀의 옆에 서 있는 바흐가 보였다. 바흐가 시선을 돌려 라희를 바라보자, 라희는 눈빛이 마주치기 전에 재빨리 고개를 아래로 수그렸다. 굳은 표정으로 고개 숙인 채 서 있는 라희를 보던 뿔테가 조심스레 안색을 살폈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라희는 입술 끝을 살짝 깨물었다.

“.........갑자기,...”

잠긴 그녀의 목소리를 가까이 들으려고 뿔테가 가까이 고개를 숙이자, 라희는 재빨리 말했다.

“그날인가 봐요. 준비를 못해서 지금 가야 해요. 검정색이지만 곧 얼룩이 비칠거에요.”

속삭이듯 빠르게 말하는 라희를 보며 뿔테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라희의 지친 표정을 한 번 더 살폈다. 그러다가 마침내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래. 근데...”

그의 시선이 라희의 팔뚝을 향했다. 라희는 몸을 가늘게 떨고 있었다. 떨림이 멈추지 않는다. 저쪽, 라희를 향해 따갑게 쏟아지는 시선을 이마 위로 느낄 수 있었다. 뿔테와 함께 있는 것을 바흐가 보고 있다. 머릿속이 아득해 지면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여기를, 벗어나야한다.

“이식하고 나면 무월경이 흔할 텐데. 아직 아닌가 보구나. 알았어.”

뿔테는 라희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 쥐며 말했다. 라희는 어깨에 닿는 또 다른 느낌인 뿔테의 손길을 느끼며 몸을 미세하게 떨었다. 아직 열기가 가라앉지 않은 밑이 미치도록 화끈거렸다.

“형이랑 이야기도 끝냈으니까 집까지 바래다줄게.”

“아니요.”

라희가 짧게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택시 타고 혼자 갈 거에요. 지금 급해서.”

“그러니 더더욱, 바래다준다니까.”

"혼자 갈 거에요."

라희와 뿔테가 데려다 주는 문제로 실랑이하고 있을 때, 갑자기 옆에서 가까이 다가온 건조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련님.”

오늘의 주인공이자 뿔테의 형수, 나영이었다. 귀밑에 세련된 커트 머리가 찰랑거렸다.

“저쪽 형님이 부르시네요. 아까 형님과 따로 이야기했겠지만, 납득이 안가나 봐요. 같이 한자리에서 이야기해 보자더군요.”

나영의 출현으로 라희와 실랑이하던 뿔테가 입을 굳게 다물었다.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든 라희와 눈이 마주친 나영은 입술 끝을 가늘게 올렸다.

“그런데 벌써 가시려고요? 라희씨.”

“네.”

라희가 작게 대답하자 나영이 건조하게 말을 이었다.

“아쉽네요. 이따 식사라도 같이 하면서 이야기하려 했는데. 저쪽, 제 친구가 라희씨에게 관심을 보이더군요.”

나영이 눈짓하며 말하는 시선 끝에는 바흐의 그녀가 벽에 비스듬히 기대 서 있었다. 라희는 쏘아보는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급히 시선을 아래로 떨궜다.

“혹시 차 가져오셨어요?”

나영이 물었다. 아니요, 낮게 달싹거린 라희를 보며 뿔테가 다시 입을 열었다.

“형수님, 안 그래도 지금 데려다 주려고......”

“저쪽 데스크에 콜택시 불러 놓을게요. 요 앞이 백화점이니 금방 올 거에요”

나영은 차갑게 뿔테의 말을 잘랐다. 나영과 눈이 마주친 뿔테는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저쪽에서 뿔테를 바라보며 턱 짓 하고 있는 형을 바라보았다. 형이 손짓했다.

“......감사합니다.”

라희가 고개를 수그리며 말하자, 나영은 당연하다는 듯 턱을 까닥했다.

“뭘요. 또 봬요.”

나영이 자리를 훌쩍 떠나고, 뿔테는 짜증 난 표정으로 저쪽 멀리 있는 형과 같이 있는 형수를 노려보듯 응시했다.

“아, 진짜. 마음에 안 드네. 자기 데려다 줘야 하는데 하필 이때, 진짜 귀찮게. 이거 정말.”

그의 불만 어린 목소리에 라희는 잠자코 있었다. 바흐의 그녀와 뿔테의 형수는 친구인가? 갑작스레 바흐와 맞닥뜨려 정신없이 시간이 지났는데, 머릿속은 추가 입력된 정보로 복잡하고 몸은 말할 수 없이 불편했다. 잠시 뒤, 단정한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가까이 오더니 정문 앞에 택시가 대기 중이라고 알렸다.

“먼저 가볼게요.”

라희는 재빨리 말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불편한 장소. 이곳에서 곧게 쏟아지는 시선은 평소 소극적이던 라희를 재촉했다. 뿔테는 형과 형수 쪽을 쏘아보며 노골적으로 인상을 찌푸리다가, 라희 뒤를 따라 걸어 나와 택시 앞에 선 라희를 향해 손을 내밀며 말했다.

“폰.”

라희가 물끄러미 뿔테가 내민 손끝을 바라보자 그가 달라는 듯이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폰 줘볼래? 나 아직 번호도 모르잖아. 진료부에 기재되었던 연락처는 없는 번호라던데.”

라희는 대답 없이 택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쾅. 닫힌 차 문 앞에서 뿔테가 미간을 좁히면 한숨을 쉬었다.

“......나도 참.”

재빨리 목적지를 말하자, 라희가 탄 택시가 바로 출발했다. 뿔테는 그 자리에 서서 멀어져가는 택시의 뒷모습을 보며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뭐하는 짓인지.”

============================ 작품 후기 ============================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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