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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그들 (4)
저녁의 한강 공원은 사람들로 붐볐다. 드문드문 잔디밭 위에 돗자리들이 펼쳐져 있고 사람들은 그 위에 눕거나 앉아서 이야기하거나 편하게 휴대전화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강변의 길게 뻗은 산책로는 운동하러 나온 사람들로 붐볐다. 사람들은 오가며 분주히 돌아다녔고, 자전거와 스케이트보드, 인라인까지 뒤섞여 북적였다.
탁 트인 넓은 강 너머는 도시의 야경이 환히 불을 밝히고 강물에 비춰 일렁였다. 이제 여름도 끝자락이라 그런지, 저쪽에서부터 불어오는 강바람은 선선했고, 여름의 흔적인 습기를 슬그머니 머금고 있었다. 라희는 오랜만에 방문한 한강공원의 풍경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라희의 옆에 서서 깍지낀 손을 꽉 잡고 있는 뿔테는 전화 중이었다.
“예. 여기 신사 나들목 앞이고요. 후라이드 치킨이랑 양념치킨이요. 아니요, 현금 결제할 겁니다. 바싹 튀겨주세요. 바삭바삭하게요. 네.”
한 손으로는 전화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라희의 손을 잡은 뿔테는, 전화를 끊고 나자마자 라희를 내려다보았다. 뿔테와 함께 한강 공원에 서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이곳은 가족이나, 연인들의 전용 공간인데.
“진짜 안 먹을 거야? 혹시 몰라 두 마리 시켰는데. 후라이드 하나 양념하나. 조금 있다가 땡기면 먹어. 어, 저기 편의점 있다.”
뿔테는 신사 나들목에서 멀지 않은 세븐 일레븐으로 손을 붙잡아 끌었다. 편의점 안에서 뿔테가 이것저것 권했지만, 라희는 고개 저었다. 아까 먹은 떡볶이도 채 소화되지 않았기에 음식은 지금 그다지 먹고 싶지 않았다.
뿔테는 좁은 편의점 통로를 분주히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주워담았다. 라희는 그에게 이끌려 이리저리 끌려다녔다. 최종적으로 그의 손에 들린 물건은 포카칩 한 봉지와 캔맥주 4캔, 콜라, 그리고 사이다였다.
"어, 돗자리도요."
계산대에서 계산하려다 마지막으로 생각났다는 듯이 돗자리도 하나 추가해 구입했다. 편의점을 나와 주변과 떨어지고, 밝은 조명과도 거리가 있는 한적한 잔디밭에 자리를 깔고 뿔테가 손을 잡아당겼다. 라희는 그의 손에 이끌려 털썩 주저앉았다.
-치익,
캔 뚜껑이 들려 탄산이 새어나오는 소리가 시원하게 들렸다. 연달아 치익, 치익, 소리가 났다. 뿔테는 사이다, 콜라, 맥주를 따서 라희 앞에 죄다 늘어놓았다.
“어떤 걸 좋아할지 몰라서. 보통 탄산은 콜라 아니면 사이다잖아? 아님, 나랑 사이좋게 맥주 마셔도 되고.”
어서, 하나 들어보라는 듯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그의 시선을 느낀 라희는 그중에서 맥주를 골라 손에 들었다. 차갑다.
“……. 고맙습니다.”
라희는 조용히 입술을 달싹였다. 그러자 뿔테가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어, 그렇게 남처럼 말할 거야? 내가 누차 말했잖아. 우리, 이런 사이라니까.”
깍지낀 손을 위로 들어 올리며 뿔테가 외쳤다. 라희가 부끄러워하자 뿔테의 얼굴 가득 장난기가 어렸다. 시선을 피해 고개를 숙인 라희는 말없이 맥주 캔을 기울였다. 공개된 장소에서 남자와 단둘이, 거기다 조금 전 그렇게나 몸을 뒤섞었던 사이. 은밀한 감정을 내비치는 뿔테의 눈빛은 역시, 어색하고 감당하기 어렵다.
-꿀꺽.
편의점 냉장고에서 막 빠져나온 시원한 맥주가 목을 타고 꼴각이며 넘어갔다. 톡 쏘는 탄산에 답답한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다. 성인이 되어서 좋은 점은, 맥주를 마음껏 마실 수 있다는 것이다. 미성년의 끝자락, 고등학교 야자시간에 읽었던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속 주인공은 매일같이 맥주를 마셨다. 맥주를 마시면서, 찬양했다. 도대체 어떤 맛인지 그 맛이 궁금한 나머지 집 냉장고의 맥주를 몰래 마셔보았지만, 그저 씁쓸할 뿐 차라리 달달한 콜라가 더 맛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알 것 같다.
맥주는 맛있다.
맥주 특유의 톡 쏘는 쌉쌀함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면 청량한 느낌이 들면서 기분이 점점 좋아진다. 특히, 단맛 전혀 없는 구수한 맛이 혀끝에 감돌고, 두 캔 정도 마셔서 몸이 알딸딸해지면 이제는 정말 맥주 맛에 익숙해져버렸어, 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지금이야 부정할 필요도, 애써 근거를 찾을 필요 없는 성인이지만. 갓 스무 살. 그때는 그랬다. 맥주를 마시거나, 담배를 거리낌 없이 공공장소에서 피울 수 있으면 마침내 다 큰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좋다."
뿔테가 중얼거렸다. 앞에 펼쳐진 새카만 강물 위에 넘실거리며 부서지는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며 둘은 맥주를 마셨다. 어두운 조명 아래 주변의 작은 소음들이 귓가를 간질이고 어디선가 멀리서 개 짖는 소리도 들렸다. 선선한 강바람이 차게 식힌 맥주와 함께 몸을 서늘하게 낮춰주었다. 유일하게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는 한쪽 손. 여전히 그에게 붙들린 채다.
"........"
라희는 조용히 맥주 캔을 홀짝였다. 뿔테가 그런 그녀를 가만 바라보았다. 시선을 느낀 라희가 눈을 들어 그를 쳐다보자, 눈이 마주쳤다. 뿔테는 곧 입가에 단정한 미소를 피워 올렸다. 라희는 급히 시선을 돌렸다. 물론, 객관적으로 그는 잘생겼다. 평생 공부만 했을 것 같은 희멀건 얼굴에 깨끗한 피부, 짙고 검은 눈썹과 입체적으로 생긴 이목구비.
댄디한 스타일의 검은색 뿔테 안경을 걸친 그의 눈매는 외국인처럼 깊었다. 마치 미국 월스트릿 증권가에 출근하는 세련된 도시 남자처럼 생겼다. 그런 그가, 왜 하필 나에게 다가온 걸까. 뿔테의 눈길 속에서 라희는 조용히 맥주를 들이켰다.
“자기, 전공이 뭐야? 대충 짐작은 가. 방에 전공서적이 보였거든. 상경 쪽?”
뿔테의 물음에 라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실대로 말해야 하나? 실상 그의 질문에 대답할 이유는 없었다. 단지 몇 번 만나서 몸을 섞었을 뿐 아무 관계도 아니다. 그냥, 뒤돌아서 서면 잊혀지는 관계. 아무것도 아닌 사이.
“........경영이요.”
거짓말은 내키지 않아서 솔직하게 답했다.
“어쩐지, 그렇구나.”
그가 알겠다는 듯 작게 중얼거렸다.
“그렇다는 게 무슨 뜻이에요?”
라희가 살짝 잠긴 목소리로 묻자 뿔테는 피식 입꼬리를 올렸다.
“계산적인 거.”
뜬금없는 대답.
“네?”
계산적이라니? 무슨 뜻이지. 라희는 혼란스러웠다. 평소 계산적인 성격이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오히려 과 동기 사이에서는 어리바리한 지방출신 둔팅이였지. 처음 지방에서 서울로 대학 진학 후 제일 먼저 충격이었던 것은 물론, 인간관계였다. 벽, 혹은 거리. 대학 친구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과 심리적 거리가 존재했다. 물론, 그것은 성년과 미성년의 차이일 수도 있다.
고등학교 친구들처럼 스스럼없이 가족사의 흉금을 털어놓거나, 집에 놀러 가거나 친구들 부모님을 뵙고 인사한다는 것은 대학에서는 불가능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벽이 있어서 다들 그 안에 안전하게 갇혀 있는 것을 원했다.
대학 저학년 때는, 그런 것도 모르고 사람들 사이의 벽에 부딪힐 때마다 혼자 서운해하고 속상해했었다. 같은 학과, 첫 오리엔테이션 때부터 친해진 친구와 함께 모든 일상을 보내고 싶었는데 그녀의 첫 마디는 시간을 같이 보내려면 먼저 약속을 잡으라는 것이었다.
대학교 이외의 장소에서 만나려면 미리 약속을 잡아서 정해진 시간에만 만나자는 이야기. 적잖은 충격이었다. 라희에게 친구란 그저 심심할 때 집 앞에 가서 어느 때고 불러내면 같이 아이스크림도 먹고 깔깔거리며 이야기도 하고 팔짱을 끼고 거리를 돌아다닐 수 있는 친근한 존재일 줄 알았는데 다들 저마다 바빴다. 인맥관리니, 학원이니, 동아리 활동이니, 취미활동이니. 눈코 뜰새 없이 바빴다.
그래서 중고등 때처럼 하릴없이 편하게 어울리며 지낼 수 있는 친구는 드물었다. 그런 점에서 미라가 좋았다. 비록 학교는 달랐지만, 아무 때고 전화해서 이야기하다가 불쑥, 우리 지금 만나서 커피 마실까? 라고 먼저 말해주기도 하고, 수업 끝날 시간쯤 문자를 보내 지금 정문 앞이야 라며 놀래키기도 했다. 연락을 자주 했기에 서로의 스케줄을 대강 파악하고 있어서인지 심심할 때마다 만나자는 미라가 라희는 마냥 좋았다.
그래서일까. 미라가 워킹홀리데이로 떠나버린 지금, 이렇듯 예고도 없이 불쑥 다가오는 뿔테가 싫지 않다. 훌쩍 사라졌다가 중간에 연락도 없이 갑자기 나타나도 어색하지 않은 느낌은 미라 때문일지도 몰랐다.
“……. 계산적으로 보여요?”
라희가 조용히 묻자, 뿔테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계산적이야. 절대 먼저 다가오지 않잖아. 게임의 법칙을 아는 거지.”
뿔테는 도통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게임? 라희는 맥주를 돗자리 위에 내려놓고 그를 진지하게 응시했다.
“게임의 법칙……. 요?”
고개를 갸웃 이며 되물었다.
“자기가 지금 하고 있는 거.”
뿔테는 피식,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무슨 게임이지? 유일한 취미는 미드 보는 거랑 책 보는 것이 전부인데. 가끔, 취미로 초급만 배운 바이올린도 켜고. 라희의 의아한 눈빛을 받은 뿔테가 남아 있는 맥주를 꼴깍, 마시고 나서 빈 캔을 구겼다. 꽈지직, 알루미늄이 우겨지는 소리가 났다.
“나는 앞뒤 안 가리고 빠져드는데, 자기는 차가운 두뇌 플레이만 하고 있잖아. 이 프로게이머 같으니라고.”
듣다 보니 대충 알 것 같았다. 그는 지금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거다. 인간관계, 특히 연애에서 남과 여의 권력싸움. 일명 밀당이라 불리는. 라희는 턱을 비스듬히 기울였다. 하지만, 명백히 오버다. 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다.
“상관없어. 난, 좋으니까.”
딸깍, 그는 새 맥주캔을 땄다. 그리고 턱을 살짝 기울여서 뿔테 안경 너머 라희를 건너다보고 나서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절대 나한테 연락 안 하잖아? 지난번 엘리베이터에서도 내 이름, 연락처조차 묻지도 않았지. 지난주 자기 집에 찾아갔을 때도. 지금도. 나에 대해서 전혀 안 궁금해? 난 몹시 궁금한데. 자기가.”
라희는 뿔테의 넋두리 같이 읊조리는 중얼거림을 들으면서 가만, 뿔테에 대해 떠올려 보았다. 일단, 직업은 의사다. 여성 병원에서 직접 임플라논 시술도 해주었고, 시술 전에 그에게 산전 검사를 받았다.
바흐와 계약서를 썼던 그날, 오피스텔 3층에 위치한 여성의원에 들러 혈액을 채취한 후 부인과 검진을 받았었다. 여성의원 자체가 낯설었기에, 진찰실 검진 대에 종아리를 걸쳐 올리면서 극도로 긴장했었다. 그때 하필 담당 의사가 젊은 남자라서 더 그랬었다. 낯선 병원에서, 의사이기 전에 남자인 그에게 은밀한 부위를 내보인다는 사실이 치욕스러워서 줄곧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뭔가가 아래를 살짝 건드리는 느낌이 났고 옆에 서 있던 간호사의 지시대로 일어나 검사 후 별 이상 없고, 깨끗하다는 설명을 듣는 동안 내내 바닥만 내리 쳐다보았었다.
"...."
라희는 고개를 들어 눈앞의 뿔테를 바라보았다. 진료 중일 때는 안경을 쓰지 않았는데, 바깥에서는 안경을 착용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아니, 뿔테가 스스로 자신을 밝히지 않았더라면 영영 몰랐을 것이다. 라희는 평소 사람의 얼굴을 눈여겨보는 타입이 아니었다. 하루, 그것도 병원 내에서 짧게 두 번 마주쳐서는 얼굴을 기억하기 힘들다. 흰 가운을 걸치고 의사라는 타이틀로 정의된 상태에서는 더더욱.
“……. 의사시죠.”
라희의 중얼거림에 뿔테는 살짝 턱을 끄덕였다.
“의대를 졸업하긴 했지. 의사 자격증은 있지만, 전문의는 아니야. 고로 의사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의대를 졸업했는데 의사인지는 모르겠다고? 라희는 고개를 갸웃했다. 주변에 의사도 없을뿐더러 고등학교 내내 문과였던 라희는 지인 중에 의대에 진학한 사람이 없어서 그쪽 지식은 전무했다.
“전문의하고 의사가 달라요?”
라희의 질문에 뿔테는 눈썹을 살짝 들었다가 내리더니 미간을 좁혔다.
“그렇지. 6년 차에 국시를 치고 합격하면 의사 자격증이 나와. 그러고 나서 인턴 1년, 레지던트 4년 이렇게 하고 나면 전문의 시험을 치고, 전문의가 되지. 난 인턴 하다 말아서.”
“그럼 저번에...”
말끝을 흐리며 묻는 듯한 말에, 그는 조용히 맥주를 마셨다. 라희는 궁금한 눈으로 뿔테를 넌지시 바라보았다. 한참의 침묵 뒤에 그가 라희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좋은데? 그런 뜨거운 눈빛. 계속 그렇게 바라봐줘.”
그가 시선을 고정한 채로 커다란 손을 내밀어 라희의 얼굴에 가까이 댔다. 턱에 손끝이 닿았다. 라희가 고개를 뒤로 빼려 하자, 순식간에 그의 입술이 닿았다. 열린 입술 안에서는 쌉싸름한 맥주 맛이 났다. 차가운 맥주 때문인지 서늘한 혀가 입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와 작은 혀를 감싸 안았다. 그러다 혀끝을 살짝 빨아들였고, 약하게 빨리는 감촉에 알코올의 기운과 섞여 머릿속이 멍해졌다.
뺨을 간질이는 강바람은 서늘한데 입안을 채우고 있는 그의 숨결은 점점 따뜻해졌다. 혀가 엉기는 부드러운 감촉에 온기가 점점 차오르고, 아래가 뜨거워지는 기운을 느낀 라희가 몸을 뒤로 빼려 하니, 그가 아쉬운 듯 아랫입술을 지그시 빨다가 놓아 주었다.
“심야에 한강에서 데이트하다 키스라니. 꼭 해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하게 되네. 거기다 내가 좋아하는 맥주 맛이라니. 좋다.”
그가 손끝으로 라희의 입술을 그리듯 가볍게 문질렀다. 손끝에 닿은 입술이 뜨거워서, 라희는 그가 손을 떼자마자 입술 끝을 살짝 깨물었다.
“난 이렇게 자기 입술 끝이 발그레해지면 좋더라. 키스하고 나면, 항시 그래. 그래서 더 하고 싶나.”
다시 그의 입술이 내려앉았다. 그가 손으로 끌어안아 뒷목을 받치고 있어서 고개를 돌릴 수도, 얼굴을 뺄 수도 없었다. 좀 전의 키스로 뜨거워졌던 혀는, 곧장 입안으로 파고들어 왔다. 쌉싸름한 맥주의 향이 코끝을 간질이고, 따스한 타액이 부드러운 혀와 함께 입안으로 흘러들었다. 감미롭게 어루만져주는 느낌에 스르륵 눈이 감겼다.
그의 말랑한 입술이 닿는 감촉이 좋았다. 따스한 혀가 입안을 채우면서 타액과 부딪혀 질척이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입술 안을 휘감은 말캉한 느낌을 음미하며 라희는 그대로 멈춰 있었다. 그때, 뒤에서 오토바이 멈추는 소리가 들리고 뿔테의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막상 촉촉하고 뜨거운 입술이 떨어져 나가자, 조금 아쉬웠다.
-띠리리. 띠리리.
그는 가만히 라희의 입술을 내려다보다가 시끄럽게 울리는 핸드폰을 들었다. 라희는 윗입술 끝을 살짝 빨아보았다. 키스로 민감해진 얇은 피부는 찌릿한 느낌이 났다.
“어, 치킨 왔다는데? 저기다.”
뿔테가 앉은 채로 핸드폰을 든 손을 흔들자, 저 멀리 오토바이에서 배달맨이 다가왔다. 근사한 냄새를 풍기는 치킨 박스가 돗자리 앞에 차려지고, 뿔테는 나무젓가락을 열어 라희에게 건넸다.
“이번엔, 맥주 맛이 아니라 양념치킨 맛을 느끼고 싶은데? 자, 아- 해봐.”
그의 젓가락에 들려 새빨간 윤기가 주륵 흐르는 양념치킨 한 조각을 보며 라희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뿔테가 미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거 먹으면, 알려 줄게. 왜 거기서 일하고 있었는지 말이야. 자, 아?”
라희는 눈앞에서 흔들리고 있는 치킨 조각을 가만 노려 있다가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역시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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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