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4. 조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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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생물이 빼액빼액, 소리 높여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찬 바람이 매서운 겨울밤, 골목 어귀에 숨어 오들오들 떨며 울어 대는 새끼 고양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고양아. 너도 혼자냐. 나도 혼자인데. 외로운 솔로끼리 살 부대끼며 살아 볼래?
언젠가 온몸을 떨며 울어 대는 새끼 고양이를 발견하고 손을 내민 적이 있었다. 하지만 고양이는 구석에 숨어 나오지 않았다. 불안한 눈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며 덜덜 떨기만 했다.
왜 그러고 있어. 얼른 그 춥고 어두운 곳에서 나와. 우리 집에 가서 나랑 살자. 우리 집이 좁긴 해도 그곳보다는 따뜻하고 아늑할 거야.
얼어붙은 손가락을 까딱까딱 움직여 고양이를 불러내려 했지만 녀석은 점점 더 깊고 좁은 구석으로 숨어들었다.
결국 녀석은 끝까지 거기서 나오지 않았다. 고개만 빠끔히 내밀어 나를 쳐다만 보았다. 내가 포기하고 돌아설 때까지. 등 돌려 걸어가던 내가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볼 때까지도.
그때 그 녀석은 아직 살아 있으려나. 아마 죽었을 것이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다. 어미 잃은 손바닥만 한 생물이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 목청껏 울어 내는 저 녀석도 곧 죽을 거다. 올해 겨울은 내가 지금까지 겪어 왔던 28년 동안의 겨울 중, 가장 추우니까.
나는 얼다 못해 아프기까지 한 손가락을 움직여 보았다. 부츠 속 발가락도 꿈틀꿈틀 움직였다. 차가운 흙바닥에 누워 있어 몸 전체가 냉동 생선처럼 얼어붙어 있긴 했지만 멀쩡했다. 뼈가 부러지거나 하진 않은 듯했다.
정신을 잃은 지 얼마나 지났을까.
여전히 밤하늘 위에는 초승달이 위태롭게 걸려 있었다.
목에 힘을 주어 위를 쳐다보자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검은 헬멧을 뒤집어쓴 놈들이 보였다. 놈들에게서는 썩은 악취가 뿜어져 나왔다. 두꺼운 옷과 헬멧으로 가리고 있어서인가. 콧속으로 스며드는 악취는 참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완전히 제정신이 들자 빽빽대는 고양이 울음소리가 더욱 크게 들렸다. 작은 생물의 필사적인 울음소리에 누군가의 말소리가 섞여 들었다.
“네, 놈들입니다. 밤일꾼 놈들요.”
원래는 거실이었을 뻥 뚫린 공간에 어떤 놈이 뒤돌아서 있는 게 보였다. 까만색 패딩 점퍼를 입은 등이 크게 부풀어 있고, 점퍼 아래로 뻗은 다리는 길고 늘씬하다.
운동화를 신고 있어 발끝이 시린지 놈은 한쪽 발을 세워 바닥에 콩콩 찧었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뒤돌아서서 있는 저놈이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인간으로 보였다. 학원에서 지겹도록 보는 아이들. 친구와 통화하며 낄낄거리는 녀석들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저놈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부류일 것이라 생각했다.
동수 놈이 데려온 영감은 놈을 귀면을 부릴 줄 아는 ‘도사’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난 ‘그럼 그렇지. 역시 보통 인간은 아니잖아’ 이런 생각을 했더랬다.
그런데 놈은 패딩 점퍼를 입고, 학생들 같은 운동화를 신고서 핸드폰으로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다. 추위에 얼어붙은 발끝을 바닥에 찧어 가면서.
우리와 비슷한 복장을 하고, 문명의 도구를 능숙하게 활용할 줄 알고, 추위를 느끼는 인간이었다. 우리와 다를 바 없는.
“그건 아닙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니까요.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놈들이 나타날 줄 알았다면 일을 다음으로 미뤘을 겁니다.”
나는 다시 한번 놀랐다. 저놈이 깍듯하게 존댓말을 쓰다니. 게다가 놈의 목소리는 불안정했다.
수화기 너머의 상대와 통화하는 갈색 가면은 마치 아이 같았다. 어른에게 크게 혼난 아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어설픈 변명을 늘어놓는 것처럼 들렸다.
“그놈들의 목적도 토끼 1호 같습니다. 그놈들이 토끼 1호를 쫓아갔습니다. 어차피 토끼 1호는 나중에 손봐 줘도 되니까요.”
토끼 1호. 빨간 패딩 박하신을 말하는 건가. 놈의 말 한 마디도 놓치지 않기 위해 나는 숨소리까지 죽였다. 계속해서 울려 퍼지던 고양이 울음소리가 어느 순간 멈췄다. 신경을 거슬리게 하던 소음이 사라지자 육중한 적막이 쿵 내려앉았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짧은 적막을 찢고 놈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통화는 끝났다. 놈이 귀에서 핸드폰을 떼어 내는 것을 보며 나는 얼른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흙바닥에 얼굴을 대고 눈을 질끈 감았다. 저벅저벅, 가까이 다가오는 놈의 발소리가 들렸다.
나를 내려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 쳐다봐도 보이는 건 검은 헬멧을 쓴 얼굴뿐이겠지만.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는 소리만이 한동안 이어졌다. 놈은 그 자리에 서서 꼼짝도 하지 않고 나를 내려다보기만 했다.
놈의 온몸을 불태우던 폭발적인 분노는 사라졌다. 그러나 여전히 놈은 반복적으로 숨을 내쉬며 조용히 분노하고 있었다. 차라리 내게 욕을 해 대며 발길질을 퍼붓는 게 나았다. 내리깔리는 침묵은 무거웠다. 침묵이라는 거대한 납덩이가 내 몸을 짓눌렀다.
“난 아무도 죽이지 않았어.”
나는 기절한 척하는 걸 포기하고 입을 열었다. 어차피 놈도 내가 깨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바닥에 눌려 있던 얼굴을 떼고 몸을 틀었다. 고개를 들어 갈색 가면을 올려다보았다.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은 놈뿐만이 아니었다. 놈과 똑같은 헬멧을 쓴 귀면들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네놈 귀에는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진짜야. 난 네 누나라는 사람을 본 적도 없어.”
“당신은 그때도 그런 얼굴로 내게 태연하게 거짓말을 했지.”
또다시 욕설이 터져 나오고 발길질이 퍼부어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놈은 그러지 않았다. 화르륵 타올랐던 분노가 잦아든 듯, 놈의 목소리는 낮고 무거웠다.
“그때 당신은 울며 달라붙는 내게 금방 돌아와서 나를 서울로 데려가 준다고 했었어. 그러니까 딱 한 달만 기다리라고. 난 그 말만 철석같이 믿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어. 당신이 돌아올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어. 혹시 당신이 왔나 싶어서 민박집 앞에서 알짱대다가 민박집 주인에게 혼나기도 했었지. 바보같이.”
나는 미간에 힘을 주어 인상을 썼다. 기억나긴 한다. 서울에 가 봐야 한다고 하자 식당집 아이는 울면서 내게 매달렸다.
겨우 친해진 형이 떠난다니까 슬퍼서 저러는 거지, 그동안 얼마나 외로웠으면 저럴까 싶어서 딱하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 그만 내가 살던 곳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어른들은 울며 떼쓰는 아이를 달랠 때 보통 이렇게 한다.
저건 다음에 사 줄게. 다음에 해 줄게. 다음에 꼭 데려가 줄게. 자, 약속.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했으니까 이제 그만 울어.
아이들은 어른들이 하는 능청스러운 거짓말에 언제나 속는다. 그리고 뒤돌아서면 약속 따위 까맣게 잊어버린다. 난 그랬다. 난 어른들이 하는 약속을 믿어 본 적이 없었다. 어른들은 한 번도 나와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으니까.
“당신이 가고 난 또 혼자가 됐지. 그거 알아? 쭈욱 혼자일 땐 외롭다는 것 자체를 모르는데, 누군가와 함께 있다가 혼자가 되면 외로움이 지독한 고통이 되어 뼈에 사무친다는 거.”
놈의 목소리는 김빠진 맥주처럼 싱거웠다. 목소리가 점점 축축 처지고 말끝이 늘어지는 것이 굉장히 피곤해 보였다. 줄곧 헬멧을 쓰고 있어 그런 것일 거다. 가면은 그래도 낫지 저 무거운 걸 쓰고서도 잘도 지껄이고 잘도 움직인다 싶었다.
얼굴 쪽에 있는 무지개 광채가 나는 덮개를 올리면 숨통이라도 트일 텐데.
“어쨌든 돌아오긴 했지. 이번에야말로 내 누나를 확실히 죽이기 위해서.”
“너 이름이 뭐냐?”
상대방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난 질문을 날렸다.
“당신은 내 이름도 묻지 않았어. 열흘 동안이나 같이 있었으면서. 당신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난 그냥 이름도 없는 식당집 애였지.”
자욱이 낀 안개 속에서 발견한 지저분한 아이. 시골 아이답지 않게 창백한 피부를 한 비쩍 마른 사내애.
사내애는 내 옆에 찰싹 붙어 다녔다. 까만 눈을 굴리며 빤히 쳐다보기에 불쌍해서 빵 한 조각을 던져 주자, 어디든 꼬리를 흔들며 졸졸 쫓아다니는 똥개처럼.
<나 혼자 두지 마. 날 버리지 마. 싫어. 형, 혀엉. 나 혼자 있기 싫어. 나랑 같이 살자. 나랑 같이 있자.>
아이는 내게 달라붙어 펑펑 울었다. 서울로 올라가기 위해 짐을 싸 들고 마을버스를 기다리던 날 붙잡고서. 더러운 손으로 내 옷깃을 움켜쥐고, 양 뺨을 온통 축축하게 물들이고는 서럽게도 울어 댔다.
그런 녀석이 딱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부담스럽기도 했다. 불쌍한 애. 귀여운 동생 같은 애. 내게 있어 사내애의 존재 가치는 딱 그 정도였다.
난 서울로 올라가야만 했다. 서울로 가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사라진 여자의 시체를 되찾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 했다.
석진경을 위해서. 그 당시 내 머릿속, 내 마음속에 빽빽하게 들어차 있던 존재는 오직 석진경뿐이었다.
그런데 아이에게 나는 신이었던 모양이다. 도시에서 온 구세주였던 모양이다.
“이름이 뭐냐? 너.”
나는 다시 한번 입을 열어 물었다.
“웃기는군.”
“우습냐? 난 전혀 웃기지 않은데.”
나는 힘없이 중얼거리며 상반신을 일으켰다. 그러려고 했다. 하지만 갈색 가면이 발로 내 복부 아랫부분을 눌렀다. 이 새끼, 이거 일부러 배 아랫부분을 누르는 거다.
“난 네 누나를 죽이지 않았어.”
사타구니 사이에 느껴지는 발끝의 무게에 나는 약하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동안 온갖 못된 짓을 하고 다니긴 했지만, 사람을 죽이진 않았어.”
놈이 발끝에 힘을 실었다.
“거짓말이 아냐. 네 누나를 죽인 건…….”
“석진경이지. 누나를 첫 번째로 죽인 놈.”
다리 사이의 살덩어리를 짓이겨 버릴 기세로 놈이 발끝에 더욱 힘을 주었다.
“당신과 그 새끼들은 누나를 두 번 죽였어.”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사람 같은 소리를 지껄이더니 또 무슨 헛소리인가. 사람의 목숨은 하나다. 사람은 한 번 죽는다. 한 번 죽고 두 번 죽고, 이런 일은 절대로 없다.
7년 전, 내가 강원도로 내려가기 전부터. 그곳에 내려갔던 때부터 여자는 죽어 있었다. 죽어서 지뢰밭 근처에 묻혀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어떻게 한 번 죽은 여자가 또다시 죽는단 말인가.
“누나는 정신이 좀 이상하긴 해도 순진한 동물 같은 여자였어. 개미 새끼 한 마리 밟아 죽이지도 못하는 여자였어.”
“아냐, 난 안 죽였어.”
“왜 누나를 죽였지? 누나는 당신들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난 아니라고! 네 누나를 죽인 건 내가 아니라 석진경이야. 내가 아니라!”
피를 토해 내듯 고함을 쳤다. 배 속에서부터 끓어오른 덩어리를 토해 내느라 목구멍이 따끔따끔 쑤셨다. 놈은 자신의 발아래 짓눌려 빽빽대며 버둥대는 내 모습을 보는 게 재미있는 듯했다. 말없이 나를 빤히 바라보면서 놈은 내 다리 사이를 누르던 발을 떼어 냈다.
“아니, 당신이야.”
낮은 목소리가 내리꽂혔다.
“내 누나를 죽인 건 당신이야, 임동추.”
놈은 다시 한번 중얼거렸다. 바닥에 드러누워 씩씩대는 날 세뇌하듯이.
놈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놈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어떤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을지 미치도록 궁금했다. 그 어느 때보다도 가면, 아니, 헬멧 아래에 숨은 놈의 얼굴을 보고 싶다는 열망이 강해졌다. 지금 당장 저 빌어먹을 헬멧을 벗겨 내 놈의 얼굴을 확인하지 않으면 미쳐 버릴 것 같았다.
난 다시 상반신을 일으켰다. 놈의 발이 가슴을 눌렀지만, 두 손으로 놈의 발목을 움켜쥐고 밀어붙이는 강한 힘에 필사적으로 반항했다.
“이제 그만 얼굴 좀 보여 줘라.”
놈이 코웃음 치는 소리가 귓속에 생생하게 스며들었다.
“얼굴 좀 보여 달라고, 새끼야!”
가슴을 누르던 놈의 발목을 밀어내는 데 성공했다. 내 손에 한쪽 발을 잡힌 놈이 중심을 잃고 휘청댔다. 난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휘청대며 뒤로 넘어가는 놈에게 온몸을 이용해 달려들었다.
이번에야말로 놈의 위에 올라탈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주인이 공격당하자 귀면들이 이를 드러내고 컹컹 짖어 댔다. 한꺼번에 달려들어 나를 에워싸 사지를 옭아맸다. 난 붉어진 얼굴로 씩씩대며 바닥에 쓰러져 천천히 일어나는 갈색 가면을 바라보았다.
“놀아 달라고 발악하는 거야?”
“그래, 놀자. 놀고 싶어 죽겠다. 아악! 누르지 좀 마, 새끼들아!”
나는 들러붙은 귀면 놈들 틈에서 불판 위의 새우처럼 펄떡대며 발광했다. 일어서서 옷에 묻은 흙을 탈탈 털어 내던 갈색 가면이 정신 나간 새끼처럼 웃어 댔다. 헬멧 안에서 새어 나오는 놈의 웃음소리는 끼끼끼, 이런 소리로 들렸다. 더럽게 기분 나쁜 소리였다.
“그렇게 놀고 싶다면 확실히 놀아 드려야지.”
놈이 손으로 자기 아랫도리를 슬슬 문지르며 다가왔다. 귀면 놈들에게 붙잡혀 꼼짝도 하지 못한 채로 나는 입 안에 들어갔던 흙을 바닥에 내뱉었다.
가까이 다가온 놈이 분명히 흙투성이가 되어 있을 내 볼을 만졌다.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게 아니라 거친 손바닥으로 뽀득뽀득 소리가 나게 문질렀다.
“난 네 누나를 죽이지 않았다.”
난 놈의 얼굴을 똑바로 보며, 오늘 하루만 해도 몇 번이나 지껄였던 말을 다시 한번 입에 담았다. 광택이 도는 놈의 헬멧 덮개에 내 얼굴이 비쳤다. 더러워진 얼굴에 산발이 된 머리칼, 부릅뜬 두 눈. 흉했다. 헬멧에 비친 내 얼굴은.
“내가 그딴 짓을 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 보이마.”
“쓸데없는 짓 하지 마.”
“쓸데없는 짓 하지 않게 하려면 지금 당장 날 죽여. 네놈이 아무리 악랄하게 날 괴롭혀도 난 끄떡도 하지 않을 거다. 지금까지 날 지켜봐 왔다니 알 거 아냐? 내가 얼마나 독한 새끼인지.”
놈은 아무 말도 없었다.
“난 지금부터 내 무고함을 증명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할 거다. 그리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네놈을 잡아 주마. 네놈은 날 한 번에 죽이지 않고 천천히 시간을 들여 괴롭혀 주겠다고 했지? 난 네놈을 죽일 기회가 주어진다면 절대로 망설이지 않을 거다. 그러니까 죽여, 지금 당장.”
입을 열어 말을 하는 대신 놈은 손바닥으로 내 뺨을 찰싹, 소리 나게 쳤다. 나는 맞은 쪽 뺨, 입 안 점막을 혀로 굴리며 씩 웃었다. 눈앞에 선 놈을 비릿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당신 오늘따라 더럽게 시끄러워.”
“지껄이라고 뚫린 입이니까.”
갑작스럽게 핸드폰 벨 소리가 울렸다. 내 것은 전원이 꺼져 있으니 갈색 가면의 것일 터였다. 놈은 전화번호만 확인하고는 낮게 욕을 하며 핸드폰을 다시 품 안에 쑤셔 넣었다.
“시간이 다 됐어. 실컷 놀아 주지도 못하고 미안해서 어쩌나.”
어어, 그러냐. 아쉬워서 어쩌냐. 그럼 일단 궁둥이나 까 봐라. 이 형이 기념품으로 네놈 궁둥짝에 찐한 밀크티 좀 쏴 줄게. 요따위 농담 같지도 않은 농담을 입 밖으로 꺼내려는 때. 예고도 없이 놈의 차가운 손이 옷 속으로 기어들어 왔다. 차갑게 얼어붙은 손이 맨살에 닿자 감전이라도 된 듯 온몸이 찌르르 울렸다.
놈의 손은 옆구리를 지나 가슴께로 슬슬 올라와 유두를 잡아 비틀었다. 나는 비어져 나오는 신음을 간신히 참았다. 잡아 비트는 자극에 의해 금세 부어올라 화끈거리며 쑤시는 유두를 손톱 끝으로 긁으며 놈은 제 얼굴을 내 머리칼에 묻었다.
“이, 이런 짓 할 거면 모텔이라도 데려가라. 찌질한 새끼야…….”
뚫린 입이라고 나오는 대로 지껄이자 놈은 이상한 소리를 내며 웃었다. 시간이 없다던 말이 농담은 아닌 듯 가슴 돌기를 긁어 대던 놈의 손이 떨어져 나갔다. 일부러 손톱 끝을 세워 탱탱 부어오른 돌기를 찌이익 긁으면서. 망할 변태 새끼.
놈이 뭐라고 중얼거렸다. 뭐라고 씨부렁대기는 했는데 들리지 않았다. 놈이 두어 마디 내뱉은 순간 엄청난 굉음이 울린 탓이다.
뭔가가 대문을 요란하게 박차고 뛰어들었다. 문짝을 뜯어 버리기라도 할 듯이 안으로 튀어 들어온 그놈은 날아든 거대한 포탄 같았다. 예고도 없이 나타난 침입자의 등장에 놀랄 새도 없이 문 앞을 지키던 귀면 한 놈이 쿠웅, 소리를 내며 뒤로 넘어갔다.
재빨리 상황 파악을 끝낸 다른 놈들이 붙잡고 있던 나를 내팽개치고 쳐들어온 침입자에게 달려들었다.
키이이익! 공포 영화에서 나오는 괴수 같은 소리를 내면서 달려드는 놈들을 향해, 그놈은 손에 든 무언가를 부우웅 휘저었다. 칼도 아니고 곤봉도 아니었다. 그놈이 휘두르고 있는 것은 녹슨 골프채였다.
귀면들이 괴이한 비명을 내지르면서 휙휙 날아갔다. 침입자가 사정없이 휘두르는 골프채에 맞아 헬멧을 쓴 머리통이 터지고, 팔이 부러지고, 몸통이 부서졌다.
침입자는 무시무시했다. 달려드는 놈은 모조리 죽여 버리겠다는 듯 온몸으로 독기 어린 살기를 뿜어내며 일갈했다.
“동추 형한테서 떨어져라, 개새끼야아아!”
동수다.
겨우 자유의 몸이 된 내가 어떤 행동을 취하기도 전에 동수 놈이 “으아아아!” 쓸데없이 괴성을 내지르면서 갈색 가면에게 달려들었다. 갈색 가면은 동수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적잖이 놀란 모양이었다. 놈은 이렇다 할 행동도 취하지 못한 채 달려드는 동수와 한 덩어리가 되어 바닥에 쓰러졌다.
그 큰 덩치로 갈색 가면을 깔아 눕힌 동수 놈은 씩씩대며 갈색 가면의 헬멧을 벗기려 했다. 갈색 가면은 필사적으로 버둥댔다.
하지만 갈색 가면은 혼자가 아니었다. 귀면들이 흐느적거리며 동수 놈에게 다가들었다. 나는 방금 전까지 동수 놈이 휘두르던 골프채를 집어 들었다.
감히 흉내도 내지 못할 소리로 울부짖으며 달려드는 한 놈의 머리통을 박살 내는 데 성공했다. 반쯤 깨진 헬멧 사이로 까맣게 썩은 얼굴을 드러낸 한 놈의 머리도 사정 봐주지 않고 터뜨린 순간. 등 뒤에서 짧은 신음이 들렸다.
고개를 돌린 난 선 채로 굳었다. 동수 놈이 옆구리를 움켜쥐고서 바닥에 뻗어 있었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 동수 놈 아래에 깔려 버둥대던 갈색 가면은 피 묻은 칼을 들고 서 있었다.
눈앞이 빙그르르 회전했다.
보이는 모든 게 시뻘겋게 변하며 이명이 울렸다. 발아래 땅바닥이 물결처럼 넘실댔다.
“이, 미친 새끼가……!”
난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놈에게 달려들었다. 귀면들이 앞을 가로막았다. 놈들에게 에워싸인 사이, 갈색 가면은 칼을 바지 자락에 문질러 닦았다. 놈은 깨끗해진 칼을 품 안에 집어넣고는 천천히 뒷문으로 걸어 나갔다.
“야! 개새끼야! 너 씨발, 죽인다. 내가 꼭 죽이고 만다! 새끼야!”
귀면 놈들에게 둘러싸인 채 악을 쓰며 발버둥 쳤다. 뒷문 밖으로 나가던 갈색 가면이 날 흘긋 봤다. 검은 헬멧 속, 놈의 얼굴은 웃고 있을까. 그럴 것이다. 날 비웃고 있을 게 틀림없었다. 주인이 나가자 귀면들도 담 위로 뛰어올랐다.
“쿨럭쿨럭! 드럽게에 아프네.”
동수가 기침을 하며 앓는 소리가 들렸다.
“괜찮냐? 한동수?”
얼른 녀석에게 다가가 상처 부위를 살폈다. 옆구리를 움켜쥔 녀석의 손가락 사이가 시뻘겋게 물들어 있는 게 보였다.
“씨, 씨이발. 쪼, 쪽팔려……. 형 앞에서 멋지게 폼 좀 잡아 보려고 했더니.”
“멋졌다. 무지 멋있었어, 너.”
“지, 진짜? 멋졌어요, 나?”
“그래, 새끼야.”
“지, 진짜 멋져 보였으면 뽀뽀해 줘요.”
“미친놈.”
“히히히히.”
이상한 소리로 웃는 놈의 눈가에 눈물이 맺히는 게 보였다. 놈의 얼굴이 밀가루 반죽처럼 허옇게 질려 갔다.
눈물이 맺혀 있던 놈의 눈에서 초점이 사라지더니 눈꺼풀이 스르륵 감겼다.
히히거리며 웃던 놈의 입이 떠억 벌어졌다. 나는 동수 놈의 이마를 찰싹 쳤다. 어깨를 흔들어 보기도 했다. 하지만 놈은 힘없이 흔들리기만 했다.
“한동수, 뽀뽀해 줄 테니까 눈 떠 봐. 장난하지 말고. 나, 이런 장난 싫어하는 거 알잖아. 야, 똥수야. 똥수야. 야, 한휘림!”
그토록 불러 주길 원하던 이름을 외치는데도 놈은 눈을 뜨질 않았다. 바싹 말라붙은 콧속으로 스며드는 피비린내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죽음. 그 단어가 머릿속에 떠오른 순간 내 주위의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져 버리는 것 같았다.
*
*
병원 복도는 우울한 회색을 띠고 있었다.
“어우, 약 냄새. 내가 이래서 병원이 싫어요.”
잠깐 자리를 비웠던 기식이가 언제 다가왔는지 내게 캔 커피를 내밀었다. 나는 커피를 받아 들어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캔 커피를 쥔 손이 약하게 떨렸다.
“형, 동수는 괜찮을 거예요. 운이 좋았어요. 의사 선생님도 그랬잖아요. 옷이 두꺼워서 칼끝이 스친 정도라고.”
기식이가 축 처진 내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했다.
형이란 놈이 동생 놈을 다독이면서 위로를 해 줘야 할 판인데, 도리어 내가 위로를 받고 있다. 바보 같은 새끼. 병신 같은 새끼. 언제나 이렇지. 늘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똑똑하고 머리 좋은 놈인 것처럼 굴면서 매번 이렇지.
내가 그딴 바보 같은 계획을 세우지만 않았더라면. 얼빠진 계획을 세웠더라도 아무도 몰래 혼자서 했어야지, 어쩌자고 동수 놈을 끌어들인 건가. 내 머릿속에 있는 계획을 말하면 동수 놈이 자기도 함께하겠다고 할 것을 빤히 알고 있었으면서.
난 그냥 오토바이를 빌리고 싶었을 뿐이야. 이딴 거지 같은 변명은 하지 말자. 난 일부러 동수에게 말한 거다. 혼자서 그 일을 하기엔 께름칙했으니까. 동수는 날 좋아하니까. 날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놈이니까. 난 그런 동수의 마음을 이용한 것이다.
캔 커피를 쥔 내 손에 힘이 들어갔다. 입 안에서 윗니와 아랫니가 맞물려 빠드드득 갈리는 소리가 났다.
중년 여자 한 명이 복도를 뛰어오는 게 보였다. 동수의 어머니였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주위를 마구 두리번거리던 아줌마가 우리를 발견하고 달려왔다.
“동수. 동수. 내 새끼. 내 새끼…….”
아줌마는 내게 매달려 숨을 헐떡이며 중얼거렸다. 주름 자글자글한 눈가는 눈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내 옷깃을 움켜잡은 통통한 손이 경련하듯이 떨렸다.
“동수는 괜찮아, 엄마. 아무 이상 없대. 그냥 몇 바늘 꿰매고 진통제 맞고 잠들었어.”
나 대신 기식이가 아줌마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기식이는 동수네 어머니를 늘 친근하게 엄마라고 불렀다. 아줌마도 엄마 엄마 하면서 사근사근하게 구는 아들놈 친구를 자기 자식처럼 귀여워하셨다.
아줌마가 무릎에 힘이 풀렸는지 크게 휘청댔다.
“엄마!”
기식이가 얼른 아줌마를 부축했다.
“동수 어딨나. 우리 동수. 내 새끼 봐야 한다.”
아줌마는 말을 더듬거리며 눈물을 쏟았다. 기식이가 아줌마를 부축해 응급실 쪽으로 향했다.
숨고 싶었다. 이 모든 상황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기식이의 말대로 운이 좋았을 뿐이었다.
동수가 입고 있던 옷이 두껍지 않았다면. 복부로 파고든 칼날의 길이가 조금이라도 더 길었다면. 갈색 가면이 악에 받쳐 쓰러진 동수 놈 위에 올라타 칼을 휘둘렀다면. 정말로 동수는 두 번 다시 깨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병원으로 달려온 아줌마가 싸늘하게 식어 버린 동수의 시체 위에 엎어져 숨이 넘어갈 정도로 울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발걸음을 뗐다. 도망쳐야만 했다. 적어도 이 숨 막히는 공간에서만큼은 달아나야 했다. 지금 내게는 신선한 공기가 필요했다. 내 머릿속은 온갖 것들로 찌들어 녹은 엿가락 상태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막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 한 남자와 마주치고 말았다. 지금 이 순간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
동수의 아버지다.
동수의 것이 분명할 모자에 털이 달린 바람막이 점퍼를 입고, 무릎 튀어나온 추리닝에 운동화를 신고 있는 그는 나를 보고도 아무 말이 없었다.
“나가서 담배나 한 대 피우자.”
그는 나를 병원 밖으로 이끌었다. 그는 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내게 건넸다. 내가 두 손으로 공손하게 받아 입술에 끼우자 그가 라이터로 불을 붙여 주었다.
그도 내가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사소한 것까지 헤아릴 정신이 없는 듯했다. 난 애써 담배 피우는 시늉을 했다.
“동수, 저놈이 태어났을 때 동네 무당이 그러더라고. 태어난 애기한테 동수라는 이름을 지어 줘야 애가 안 죽고 살 수 있다고. 글쎄 애가 얼마 못 살고 곧 죽을 팔자라는 거야. 그래서 속는 셈 치고 동수란 이름을 지어 줬지. 애가 그렇게 안 보여도 어렸을 땐 병치레가 많아서 몇 번이나 죽을 뻔했거든. 그런데 무당 말대로 이름을 동수라고 지어서 그런지 앓을 대로 다 앓고서도 어떻게든 살더라고.”
잠시 말을 멈추고 그는 담배 연기를 세차게 뿜었다.
“얼마 전에 동수가 웬 이상한 영감이 자기한테 새 이름을 지어 줬다고 말했을 때, 난 쓸데없이 돈만 날리고 왔다면서 애를 두들겨 팼지. 근데 그 영감 말이 사실이었나 봐.”
그의 입술 사이에서 새어 나오는 헛헛한 웃음소리에 내 고개는 더욱 무겁게 가라앉았다.
“동추야, 고맙다.”
잠깐의 침묵을 깨고 그가 바닥에 담배를 비벼 끄며 입을 열었다. 나는 불시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깜짝 놀라 그의 둥근 얼굴을 쳐다보았다.
“철딱서니 없는 아들 새끼 때문에 매번 너한테 폐만 끼치는구나. 내 자식이지만 참 한심해. 내가 대학은 못 갔지만 그래도 학창 시절엔 머리 좋다는 소리 듣고 살았는데. 마누라도 집안 형편 때문에 고등학교도 졸업 못 했지만 머리가 나쁜 편은 아니고. 그런데 저놈은 대체 누굴 닮아서 저렇게 꼴통인지 모르겠어.”
“아뇨, 아저씨. 폐만 끼치다니요. 동수가 사춘기 때 좀 방황하긴 했지만 그래도 고등학교 졸업하고는 어른이 다 됐던데요.”
“어른은 무슨. 저놈의 자식은 어른 되려면 아직 한참 멀었어. 그래서 말인데, 동추야. 우리 동수 옆에서 잘 좀 지켜봐 줘.”
“아저씨…….”
“덩치만 커다랗지 코 찔찔이 어린애 같은 놈이라 제대로 된 생각이란 걸 할 줄 몰라. 위험한 짓, 허튼짓 하려고 하면 옆에서 좀 말려 주고. 저놈이 대가리 좀 커졌다고 이제 내 말은 들으려 하지도 않아. 그렇다고 다 큰 자식을 가둬 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 우리 애 좀 부탁해. 염치없는 거 잘 알지만 그래도 동수 걔가 동추, 네 말이라면 껌뻑 죽잖아.”
어느새 그는 내 손을 꼬옥 움켜쥐고 있었다. 그의 손바닥이 땀에 젖어 흥건했다. 나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서 동수의 모습이 겹쳐졌다. 당연하다. 두 사람은 부자지간이니까.
동수는 밤일을 하는 것을 부모님에게 알리지 않았다.
떳떳하게 이런 일 해서 돈 번다고 말할 수 없는 일이긴 하다. 놈은 부모님 몰래 밤일을 하며 한 푼 두 푼 돈을 모았다.
동수 녀석은 돈 모아서 좁아터진 아버지 가게를 더 큰 데로 옮겨 주고, 오래된 주방 기구 같은 것들을 번쩍번쩍 빛나는 최신식 도구들로 바꿔 줄 거라고 했다.
하지만 아저씨는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었을 것이다. 자기 아들이 밤마다 몰래 빠져나가 무슨 짓을 하는지. 밤에 나가 친구들과 술이나 마시러 다니는 게 아니라는 것을.
갑자기 가슴 한구석이 송곳으로 찔린 듯 아파 와 나는 슬쩍 그의 손아귀에서 손을 빼냈다.
“이건 얼마 안 되지만…….”
내가 손을 빼낸 것이 자신의 부탁이 부담스러워서라고 생각한 모양인지, 그는 품 안에서 꼬깃꼬깃 접힌 만 원짜리 몇 장을 꺼냈다.
“잠깐만요. 이러지 마세요.”
“진짜 얼마 안 되는 돈이니까 받아 줘.”
“아저씨, 이러시면 저 정말 화낼 겁니다.”
“아냐. 내가 미안해서 도저히 가만히 못 있겠어.”
그는 기어코 내 점퍼 주머니에 지폐를 쑤셔 넣었다.
“그럼 나중에 동수 깨어나면 맛있는 거 사 먹일게요.”
“그럴 거 없어. 그 돈으로 동추 너나 맛있는 거, 몸에 좋은 거 사 먹어. 요즘 좀 말랐다, 너.”
나는 차갑게 얼어붙어 감각도 느껴지지 않는 입술을 억지로 비틀어 미소를 지었다. 밤바람에 노출된 머리통이 시린지, 동수네 아버지는 손으로 정수리 부분을 쓰다듬었다. 몇 년 새에 아저씨의 머리숱이 반으로 확 줄었다.
처음 미미네 치킨 사장인 그를 봤을 땐 머리숱이 제법 풍성했던 것 같은데. 얼굴에도 주름이 가득하고 불룩 튀어나온 배가 만삭의 임신부 배 같다.
많이 늙으셨다, 아저씨도.
부자는 아니지만 책임감 있는 부친과, 말투는 거칠어도 정이 철철 흘러넘치는 엄마. 부모님 앞에서 마음껏 어리광을 부릴 수 있는 동수 놈이 난 언제나 부러웠다.
지금도 그렇다. 아들놈 좀 잘 부탁한다며 새파랗게 어린 놈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쌈짓돈 뭉치를 쥐여 주는 아버지를 둔 동수가 미치도록 부러웠다. 그리고 나를 믿는 아저씨 아줌마, 두 분께 미치도록 미안했다.
“죄송합니다, 아저씨.”
힘겹게 내뱉은 소리에 아저씨는 웃어 보였다.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집에 가서 자라, 동추야. 많이 피곤해 보인다.”
아저씨는 점퍼 주머니에 손을 쑤셔 넣고서 터덜터덜, 병원 건물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가 안으로 들어간 뒤에도 나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얼굴이며, 손가락이 얼어붙고 몸 전체가 차갑게 식었다. 피부를 꿰뚫는 살벌한 추위는 몸의 통증을 경감시켜 주었다. 두들겨 맞은 지 며칠이 지난 것처럼 몸 여기저기가 둔중하게 쑤셨다.
추웠다. 그리고 아프다. 누군가의 따뜻한 품에 안겨 죽은 듯이 잠들고 싶은 밤이었다. 나를 안아 주고 쓰다듬어 주는 포근한 손길, 나를 불러 주는 다정한 목소리, 살냄새가 나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몸이 그리웠다. 복잡한 생각 따위 머릿속에서 지워 버릴 수 있게 사람 품에 안겨 어린애처럼 펑펑 울고도 싶었다.
머릿속으로 윤영이의 해사한 얼굴이 떠올랐다. 하지만 내가 무슨 염치로 그 애에게 연락을 할 수 있나. 좀 더 깊은 관계가 되기 위해 무던히도 애쓰던 뽀얗고 예쁜 애를 온몸으로 밀어내고 거부한 건 난데. 나는 머리를 흔들어 떠오른 윤영이의 모습을 애써 지워 버렸다.
배터리가 다 되어 완전히 죽어 버린 핸드폰을 습관처럼 끄집어내 만지작댔다. 불이 들어오지 않는 새까맣게 죽은 액정 화면을 보며 나는 한나민을 생각했다. 이유도 없었다. 그냥 너무도 자연스럽게, 아무렇지 않게 나민이의 이름이 입 안에 맴돌았다.
꼬물거리는 강아지처럼 귀엽고 사랑스럽기만 한 아이가 보고 싶어졌다. 그 애가 ‘선생님’ 하고 부르는 달콤한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너 제정신이냐?”
하지만 머리 위로 내리꽂히는 그 목소리는 전혀 달콤하지 않았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분노가 그대로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고개를 들자 노금영의 일그러진 얼굴이 눈앞에 있었다. 그는 다짜고짜 주먹부터 날렸다.
“미친놈아,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이야! 핏덩이 새끼들 끌고 다니면서 골목대장 노릇이라도 하고 싶었냐! 망할 새끼야!”
한 대 얻어맞으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런 게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면, 뭔데? 우리 몰래 새 사업 시작했냐? 풍기 문란인지 풍기 똘똘인지 하는 새끼들이, 10대 애기들 코 묻은 돈 받아 처먹고 그 짓 하는 게 그렇게 좋아 보였냐? 그래서 네놈도 돈 좀 벌어 보자 싶었어?”
“그런 게 아니라고 했잖아요!”
“이 새끼가 뭘 잘했다고 큰소리야!”
노금영이 눈을 벌겋게 뜨고 다시 한번 주먹을 날렸다. 한 대는 맞아 줘도 두 대까지는 못 맞아 주겠다. 난 노금영의 손목을 덥석 움켜쥐고서 눈 부릅뜨고 그를 노려봤다. 하지만 겨우 손목 잡혔다고 얌전해질 양반인가. “아오, 이 새끼!” 하면서 노금영은 나머지 한 손을 움켜쥐어 내 복부에 꽂아 넣었다.
이 인간은 한번 눈이 뒤집히면 눈에 뵈는 게 없다. 내장이 터지는 것 같은 고통에 나는 배를 움켜쥐고 끙끙대야 했다.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는지 노금영은 내 멱살을 움켜쥐고 주먹을 쳐들었다.
“그, 그만 좀 해요. 진짜 죽일 셈이에요?”
“그냥 뒈지게 맞을래? 아니면 딱 두 대만 더 맞고 어떻게 된 일인지 말할래?”
“딱 두 대만…….”
말이 끝나는 것도 기다리지 않고 노금영의 칼날 같은 주먹이 얼굴에 박혔다. 그는 말한 대로 딱 두 번만 주먹을 휘둘렀다. 노금영은 바닥에 주저앉아 헐떡이는 날 일으켜 질질 잡아끌고 병원 안으로 데려갔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문 앞에 서 있던 기식이가 우리를 맞이했다.
“어이구. 동추 형, 귀면 놈들 상대하느라 상태 영 별로였는데 좀 봐주지 그랬어요.”
이 자식은 문 앞에 서서 노금영이 날 두들겨 패는 것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지켜본 거다. 노금영을 병원으로 부른 것도 기식이일 터였다.
“동수 부모님은 오셨냐?”
“네, 동수 옆에 계세요.”
노금영은 동수의 부모님이 와 계신다는 얘기에 곧장 휴게실로 걸어갔다. 동수의 부모님은 노금영을 그리 좋아하지 않으신다. 이유는 뻔하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학교 선생은 아니더라도 애들 가르치는 선생인 나와 나이 서른에 제대로 된 직장도 없는 노금영. 나이 든 어르신들은 그래서 노금영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신다.
하지만 노금영도 자신의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놀고먹는 것처럼 보여도 그는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밤일을 하고 있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부업도 겸하고 있는 듯하다.
<저 자식, 저거, 모아 놓은 돈이 꽤 될 거야. 요즘은 집 산다고 여기저기 알아보고 다니더라.>
박천수가 엄청난 비밀 얘기라도 하듯이 속삭이던 때가 벌써 반년 전이다. 노금영이 술에 취해 자기 입으로 떠든 적도 있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사실은 자기 소유의 집이라고.
사람들 대부분이 좋게 봐 주는 나는 사실 겉모습만 그럴듯한 빈 껍질에 불과하다. 노금영, 동수, 기식이, 박천수, 천달봉. 그 사람들은 모두 살아가는 목적이 확실한데, 나는 그냥 그럭저럭 흘러가는 대로 살고 있다.
나는 픽 웃으며 딱딱한 플라스틱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밤늦게 호출된 탓에 노금영도 졸린 모양인지 입이 찢어지도록 하품을 해 댔다.
“나랑 동수, 동추 형이 풍기 문란 놈들인 척하고 어떤 발발이 양아치 새끼들을 손봐 주려고 했는데…….”
“그러니까 풍기 문란 단속 위원회, 그놈들이 귀면이었단 말이지?”
노금영은 기식이의 말을 중간에서 딱 잘라먹었다. 졸려 죽겠으니 잡소리 다 필요 없고 본론만 간단히 지껄이라 이거다.
“네, 그렇더라고요. 나랑 동수가 도망친 애새끼들을 쫓아가서 구석에 몰아넣었거든요. 기왕 손봐 주는 거 다시는 못된 짓 못 하게 확실히 매운맛을 보여 주려고요. 그런데 그 새끼들이 나타났어요. 우리 같은 가짜가 아니라 진짜배기 놈들이요.”
“놈들이 너희를 알아보고 시비 걸더냐?”
“아뇨. 우리도 헬멧을 쓰고 있어서 그냥 우릴 적으로만 인식한 것 같더라고요. 처음엔 놈들이 귀면들인지도 모르고 대화를 시도해 봤죠. 그런데 그놈들이 그냥 괴성을 지르면서 달려들더라고요. 나도 모르게 가지고 있던 삼단봉을 휘둘렀는데, 맞은 놈이 조금도 아파하지 않는 거예요. 분명히 휘두른 삼단봉이 놈이 쳐들어 올린 손가락을 박살 냈단 말이죠.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비명을 지르면서 발광했을 텐데 그놈은 앓는 소리도 내지 않고서 내게 달려들더란 말이죠. 그때 알았어요. 아, 이놈들. 귀면이구나.”
“그럼 귀면 놈들을 부리는 도사인지 뭔지 하는 놈은? 그놈도 있었냐?”
“아뇨. 우리가 있던 곳에는 없었어요.”
앉아서 반쯤 졸고 있는 내게 두 사람의 시선이 꽂혔다.
“야, 임동추. 너, 그놈과 만났냐?”
나는 얻어맞은 등을 문지르며 인상을 썼다.
“네, 만났어요.”
“그놈이 뭐라더냐?”
내 누나를 죽인 건 당신이야. 임동추, 당신을 사랑하고 증오해. 한 번에 죽이지 않고 천천히, 공을 들여 괴롭혀 줄게. 갈색 가면이 지껄인 말 중 한 마디라도 입에 담을 수가 없었다. 노금영은 눈을 가늘게 뜨고서 나를 노려봤다.
“그놈도 생각지도 못한 우리의 등장에 적잖이 놀란 것 같았어요. 그리고 놈이 누군가와 통화하는 걸 들었어요.”
“통화를 했어? 누구랑?”
“그것까진 모르겠고요. 존댓말을 쓰는 걸 봐선 그놈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인 듯했어요.”
“그놈도 혼자가 아니란 거군.”
노금영이 중얼거린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놈과 나누었던 대화 내용에 정신이 나가 버려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지 못했었다.
“그놈한테도 조력자가 있다는 거네요.”
기식이가 낮은 목소리로 노금영이 지껄인 말을 이어받았다.
“백단영이 그러더군. 그 도사라는 놈은 혼자가 아닐 거라고. 분명히 옆에서 놈을 도와주고 보조해 주는 놈들이 있을 거라고. 나도 그럴 거라고 생각은 했었어. 생각해 봐. 귀면들은 물건을 배달하던 우리 앞에 홀연히 나타났어. 그놈들이 순간 이동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우리가 지나가는 길목에서 잠복하고 기다리고 있었거나…….”
“누군가 놈들을 우리가 있는 곳으로 이동시켰겠네요.”
“그래, 바로 그거야. 난 계속 그게 궁금했거든. 귀면은 열한 마리야. 그리고 도사라는 놈까지 합치면 열두 명이란 말이야. 그 많은 놈들은 대체 어떻게 움직일까. 그놈들은 순간 이동술을 쓸 수 있는 걸까. 아니면 하늘을 휙휙 날아다닐 수 있는 걸까.”
“놈들만의 이동 수단이 있었던 거군요.”
“그래, 놈들한테도 전용 버스나 전용 봉고차가 있었던 거야. 어쩌면 그놈들은 우리나 해결사 같은 하나의 조직이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내 예상이 맞았어. 풍기 문란 단속 위원회라는 조직이 귀면 놈들의 ‘팀’이었던 거야.”
노금영과 기식이는 오랜 시간 동안 호흡을 맞춰 온 운동선수처럼 말을 주고받았다. 나는 입을 떠억 벌리고 두 사람의 얘기를 들었다.
나는 거기까지는 생각해 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내 머릿속에 들어찬 것은 귀면이 아니라 갈색 가면이었다.
갈색 가면은 대체 누구인가. 그놈은 왜 나를 미워하고 괴롭히는가. 내게는 그런 것들을 밝히는 것만이 중요했다.
“망할. 우리는 그것들 때문에 밤일도 못 해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인데, 그것들은 썩은 시체들을 가지고 장사를 해 처먹어? 게다가 고객들이란 게 10대 애새끼들이라고? 우리나 해결사나 심부름꾼, 그 누구도 미성년자하고는 거래 안 해. 성인이 되지 않은 꼬꼬마 애기들하고는 거래하지 않는다는 게 우리들 밤 세계 일꾼들의 규칙이잖아.”
“그리고 우린 절대로 밤 세계 일꾼들을 다치게 하지 않죠!”
“상도덕도 없는 발발이 똥개 새끼들 주제에 감히 우리 막내 배에 칼빵을 만들어? 아오오오, 개새끼들.”
노금영과 기식이는 동시에 활활 타올라 이를 뿌드득 갈며 눈을 벌겋게 뜨고 주먹을 움켜쥐었다.
“씨발, 풍기 문란 단속 위원회. 일단 거기부터 조진다.”
노금영의 목소리가 음산하게 착 깔렸다. 그는 지금 당장 한 놈 잡아 족치기라도 할 기세로 무시무시한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