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 (7/28)

- 04 -

기이한 곳이었다, 그곳은.

대낮인데도 온 세상이 불투명한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사방에 들어찬 안개는 마치 창에 달아 놓은 암막 커튼처럼 완벽하게 빛을 차단하고 있었다. 뿌옇게 물든 세상은 축축하고 서늘했다. 옷 밖으로 드러난 얼굴이며, 손이 사방에서 내뿜는 습기로 축축하게 젖었다.

그곳의 안개는 거대한 거미줄과도 같았다. 손으로 허공을 휘저으면 살갗에 흰 막이 찰싹 감겼다. 손에 감긴 건 흰 막이 아니라 물기였겠지만.

나는 조심스럽게 한 발 앞으로 내딛고, 또 한 발 앞으로 내디뎠다. 두 눈 크게 뜨고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보이는 것이라고는 흰색에 감싸여 하나의 덩어리로 보이는 나무나 잡초의 형체들뿐이었다.

<절대로 서둘러 걷지 마세요. 발밑을 조심해야 합니다. 자칫하면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도 있으니까요.>

어젯밤 묵었던 민박집 주인이 아침 일찍부터 자욱하게 안개가 낀 산속으로 들어가려 하는 내게 해 준 얘기였다. 그는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로 웃으면서 요긴하게 쓰일 거라며 등산용 피켈까지 빌려주었다. 내가 산속에 뭘 하러 가는지도 모르면서.

성수기도 아닌 이런 때에 이런 두메산골에는 웬일이냐고 묻던 민박집 주인에게는 우리나라에만 서식하는 야생 식물에 대해 공부하는 학생이라고 둘러댔다.

<하긴 가끔씩 야생 동물 보호 단체 어쩌고 하는 사람들도 찾아오곤 하지요. 이곳이 워낙 외진 곳이라 정말 별의별 것들이 다 있거든요. 계속 이곳에 산 지 벌써 10년째인데도 우리 집 뒷산에 뭐가 있는지 모를 정도예요.>

그렇죠. 별의별 게 다 있지요. 고라니도 있고, 멧돼지도 있고, 곰도 있고, 시체도 묻혀 있죠. 민박집 주인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나는 픽, 웃음을 흘렸다.

꼴 한번 우습다. 내가 지금 뭘 하는 건지. 대체 무엇 때문에 나는 지금 이 안개 자욱한 산길을 걷고 있는 것인가. 대체 무얼 위해서.

이곳까지 온 이유, 아침 일찍부터 귀신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이 꼬부랑 산길을 걷고 있는 이유는 확실하다. 찾아야 할 것이 있다. 찾아서 흔적도 없이 없애야 한다. 그게 목적이었다. 그게 내가 해야만 할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런 짓을 한다 해서 얻는 건 뭐지?

또 한 번 웃음이 비죽, 비어져 나왔다. 또다. 난 이곳으로 오는 버스 안에서 몇 번이나 이런 생각을 했더랬다.

내가 지금 뭘 하는 건지. 이렇게 한다 해서 내가 얻는 건 대체 뭐야? 아냐. 아니다. 내가 내 입으로 도와주기로 했다. 도와주고 싶었어. 내가 좋아하는 녀석을 위해서니까. 그 녀석이 더 이상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으니까.

그런데 그 녀석이 이런 내 마음을 알아주기나 할까?

여전히 이기적인 나와, 사랑하는 이를 위해 희생을 각오한 나는 몇 번이나 말다툼을 벌여 왔다. 누가 이기고 지는 싸움이 아니었다. 수없이 질문을 던져 보았지만 답은 없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대고 외치는 격이다.

됐다. 여기까지 와서 갈등해 봤자 뭐 하겠는가. 기왕 여기까지 온 거 확실하게 하자. 그 녀석이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으면 뭐 어떤가. 나는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두 손으로 축축하게 젖은 뺨을 찰싹, 후려쳤다.

얼마나 걸어 올라갔을까. 안개 사이로 팔랑팔랑, 흔들리는 뭔가가 보였다. 바람결에 따라 흔들리는 억새 잎이었다.

여기인가. 나는 억새밭으로 들어서는 입구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

석진경은 그랬다. 달 밝은 밤에 이곳에 서 있으면 보이는 것이라곤 온통 황금색으로 빛나는 억새 잎밖에 없다고. 스스스, 스스스, 소리를 내며 흔들리는 억새 잎을 보고 있노라면 앞으로 뭐든지 다 잘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다고.

분명히 그랬을 거다. 남들 다 알아주는 명문대 출신이니 무사히 졸업만 한다면 괜찮은 직장에 취직을 할 것이고, 그리 많지는 않지만 월급 따박따박 받으면서 한 푼 두 푼 모아 집도 사고, 지금까지 고생만 한 어머니 모시고 남부럽지 않은 인생을 살 터였다.

인생지사 새옹지마라 했던가. 사람 인생이란 어찌 흘러갈지 아무도 모른다. 녀석이라고 알았겠는가. 남들 다 가는 군대에 와서 이런 식으로 인생이 꼬일지.

석진경이 말한 대로 나는 억새밭 근처를 맴돌다 ‘지뢰. MINE’ 이라고 쓰인 빨간색 역삼각형 표지판이 매달린 철조망을 발견했다.

산등성이에 넓게 펼쳐진 억새밭이나 억새밭 근처의 지뢰 지대를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제부터가 문제지.

나는 주머니에서 종이를 끄집어냈다. 석진경이 그려 준 지도였다.

<고맙다. 동추야.>

죄지은 사람처럼 석진경은 고개를 푸욱 수그리고는 힘없이 중얼거렸다. 죄지은 사람이 맞긴 했다. 어쩔 수 없는 사고였다 할지라도 녀석은 사람을 죽였다. 녀석은 떨리는 손으로 지도를 그려 넣은 종이를 내밀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나를 빤히 바라보며 다시 한번 말했다.

<정말 고맙다.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을게.>

그러면서 석진경은 뜨거운 눈물을 콸콸 쏟았다.

녀석은 한순간의 실수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기 싫었던 모양이었다. 어차피 아무도 모르는 일이잖아. 나만 모른 척하면 돼. 나만 모른 척, 입 꾹 다물면 되는 일이야. 이런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어쩌면 내가 도와주겠다고 한 말에 마음을 바꿨는지도 모르겠다.

평생 살인자로 낙인찍혀 사는 것보다는 혼자 비밀을 꽁꽁 담아 두고 사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생각했던 건지도.

<너무 그러지 마라. 우린 친구잖냐, 인마. 친구를 위해서 이 정도 일도 못 해 줄까.>

눈물을 뚝뚝 흘리는 석진경의 앞에서 나는 온갖 폼을 다 잡고서 웃어 보였다. 녀석은 내 손을 덥석 붙잡고서 고맙다, 고마워, 같은 말을 반복하며 온몸을 떨었다. 내 옷에 뜨뜻미지근한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나는 그때 처음으로 상대방을 위로하는 척하며 녀석의 어깨를 감싸 안아 보았다. 지금까지 녀석을 좋아하는 내 시꺼먼 마음이 들키기라도 할까 봐, 장난삼아 어깨동무도 하질 못했었는데. 바짝 마른 녀석의 어깨는 내 품 안에 쏘옥 들어왔다. 내가 어깨를 감싸 안자 녀석은 허어어어, 오열을 하며 내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나는 깜짝 놀라 몸을 굳혔다.

금세 내 가슴께가 축축하게 젖었다. 나는 한참을 머뭇대다가 간신히 용기를 내 녀석의 떨리는 등을 토닥이다가 살짝 껴안았다. 녀석의 울음소리가 더 격해지자 그것을 기회 삼아 팔에 더욱 힘을 주어 녀석의 몸을 끌어안았다.

나를 좋은 친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대학 동기에게 나는 들리지 않게 속삭였다.

널 좋아한다. 진경아. 널 아주 많이 좋아한다.

내가 누군가를 이렇게 좋아해 본 건 네가 처음이야.

오리엔테이션 날, 널 처음 봤을 때 운명 같은 걸 느꼈어. 너에 대해 알아 가면 알아 갈수록 감정이 더 짙어지고 깊어져서 네가 나를 보고 아무렇지 않게 웃어 보일 때엔 가슴이 미친 듯이 뛸 정도였어.

술에 취해서 인사불성이 되어 비틀거리는 네 모습이 귀여워서 일부러 옆에 앉아 술을 더 먹이기도 했지. 네가 취하면 널 집까지 데려다주는 건 내 몫이었으니까. 이런 얘길 하면 넌 나를 변태라고 욕할까. 그럴 거야. ‘지금까지 날 그런 더러운 눈으로 본 거야!’ 하면서 화를 내며 나를 욕하겠지.

자, 임동추. 이제 그만 솔직해지자.

넌 뭘 바라고서 이런 짓을 하는 거냐? 친구를 돕고 싶어서? 짝사랑하는 녀석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서? 물론 겉으로는 그렇게 말하겠지. 지금까지 계속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했겠지.

여기까지 왔는데 까짓것 툭 까놓고 말해 보자.

난 석진경을 가지고 싶었다. 휴가 나온 석진경이 비밀을 털어놓던 때에, 난 이거야말로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석진경의 마음을 빼앗을 수 있는 기회라고.

물론 이런 자신이 한심하기야 하지. 끔찍하게 싫지. 이렇게까지 해서 그 녀석을 가지고 싶어? 몇 번, 수십 번이나 내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 봤는데 결국은 내 내면이 말하더라.

응, 가지고 싶어.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그 녀석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

“이기적인 새끼.”

나는 혼잣말을 흘리며 웃었다.

석진경이 그려 준 지도에 표시된 곳은 이 근처가 분명했다. 나는 눈앞에 있는 커다란 나뭇가지에 뭔가 매달려 있는 걸 발견했다. 안개는 그나마 많이 옅어져 암막 커튼 같던 것이 옅은 리넨 커튼 같은 색이 되어 눈앞을 가로막았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것은 찢어진 올리브색 천이었다. 석진경이 군복 끝을 뜯어서 리본 모양으로 묶어 두었다고 하더니, 바로 이건가 보다.

그렇다면 이 어디에 여자의 시체가 묻혀 있다는 건데.

가지에 리본 모양의 천이 묶인 나무 앞에서 나는 천천히 발아래의 땅을 훑어보았다.

축축하게 젖은 나뭇잎들이 깔린 땅은 식빵 속처럼 말랑말랑했다. 썩어서 부러진 나뭇가지들과 나뭇잎들 사이를 이름 모를 시꺼먼 벌레들이 기어 다니는 걸 보던 중, 나는 그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선 방향에서 약간 비스듬하게 위로 올라간 부분에 움푹 패어 있는 구멍을. 나는 얼른 구멍 쪽으로 다가갔다. 구멍은 들짐승이 파헤쳐 놓은 것 같은 형태였는데, 구멍 안에는 아까 보았던 시꺼먼 벌레들이 바글바글했다.

나는 그 구멍이 있는 장소가 바로 석진경과 놈의 군 고참이 여자의 시체를 파묻은 곳이란 것을 깨달았다. 구멍 주위에는 찢어진 꽃무늬 원피스 조각들과 여성용 샌들이 널려 있었으니까.

분명했다. 여기가 바로 석진경이 실수로 쏜 여자의 시체를 묻은 곳이다.

하지만 말이다. 대체 여자의 시체는 어딜 간 거지?

흙 속에 파묻혀 있어야 할 여자의 시체는 어딜 가고 찢어진 옷가지들과 신발들만 널려 있는 거지?

일순,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는 듯했다. 얼음물에 빠진 듯 온몸이 급격히 차가워졌다.

여자의 시체를 묻어 둔 장소를 알고 있는 것은 석진경과, 고참이라는 놈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 고참이란 놈이 시체를 옮긴 건가? 대체 왜? 여자를 죽인 건 석진경인데. 물론 자기와 함께 보초를 서던 중에 일어난 사고이니, 상부에 발각되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게 될 것이다.

석진경에게 시체를 파묻자던 고참 놈 얘기를 들었을 때에도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었다. 그런데 시체를 유기하는 것도 모자라 시체를 옮겨?

나는 무릎을 굽혀 앉아 흙투성이가 되어 널려 있는 여성용 샌들 한 짝을 집어 들었다. 시장 좌판에서나 팔 법한 싸구려 비닐 신발이었다. 뒤축이 닳아 있고 발등을 덮는 커다란 꽃이 달린 네 개의 끈 중 하나도 끊어져서 너덜너덜했다.

그때였다.

등 뒤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주위가 너무도 조용해서 나뭇잎을 밟는 그 작은 소리가 엄청난 파장이 되어 귓가에 울렸다.

나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눈이 마주쳤다. 내 뒤에 서서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한 아이의 시선과.

믿을 수가 없었다. 이런 깊은 산속에 웬 아이란 말인가.

아이도 적잖이 놀랐는지 석상처럼 빳빳하게 굳어서는 눈을 둥그렇게 뜨고는 나를 쳐다만 보았다.

아무렇게나 자란 까만 머리칼이 얼굴의 반을 뒤덮고 있고, 하얗다 못해 창백한 피부에 깡마른 팔다리를 지닌 애였다. 많아 봤자 여덟 살이나 아홉 살 정도일까. 커다란 스웨터에 바지, 운동화를 신고 있는 걸 봐선 사내애 같지만 또 모른다. 선머슴 같은 여자애일지도.

아이는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자연스럽게 내가 손에 들고 있는 여성용 샌들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아차 싶어 들고 있던 샌들을 등 뒤로 휙 내던졌다.

“저기, 꼬마야.”

내가 몸을 일으키자 아이는 흠칫 놀라 뒷걸음질 쳤다.

“피하지 마. 난 나쁜 사람 아니야. 너 혼자 온 거야? 부모님은?”

아이를 안심시키기 위해 만면에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효과는 없었다.

아이는 내가 한 발 앞으로 내딛자, 뒤돌아서 도망쳐 버렸다. 아이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법도 없이 들짐승처럼 잘도 험한 산길을 뛰어 내려갔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아이의 작은 뒷모습이 안개 속에 완전히 파묻혀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옷 속이 흘러내린 땀으로 흥건하게 젖었다. 두 다리가 덜덜 떨려 결국 버티지 못하고 나뭇등걸에 주저앉았다.

“젠장…….”

나는 잔뜩 목이 멘 소리로 지껄이면서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머리 위에서 이름 모를 새가 울었다. 산 채로 목을 비틀어 버리고 싶을 정도로 짜증 나는 울음소리였다.

*

*

산에서 내려온 나는 민박집 주인에게 산에서 봤던 아이에 대해 물었다.

“아, 걔요? 아마 저 위에 있는 식당집 애일 거예요. 할아버지랑 누나랑 같이 살고 있죠.”

“아직 어린애인데 산에서 막 돌아다니더라고요. 안개도 심하던데, 근처에 지뢰밭도 있던데 걔 보호자들이 애 혼자 돌아다니게 놔둬요?”

민박집 주인은 내 쪽으로 상반신을 바짝 들이밀고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걔 누나란 사람이 정신이 좀 이상한 사람이거든요.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그 애도 좀 이상해요. 좀 이상한 정도가 아니지. 난 걔 누나보다 그 애가 그렇게 무섭더라고요.”

“애가 무서워요?”

“걔는 말이죠. 귀신을 볼 줄 알아요.”

무슨 엄청난 비밀이라도 되는 양, 민박집 주인은 귀 기울여 듣지 않으면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의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 당시 나는 비어져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집어삼켜야 했다. 이 사람이야말로 정신이 이상한 양반이구먼. 요즘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나. 게다가 자기 몸집의 반도 되지 않는 작은 애를 ‘귀신 볼 줄 아는 이상한 애’로 취급하는 그의 사고방식이 혐오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 애 누나가 정신이 좀 이상한 여자라 해서 동생까지 그런 애로 몰아붙이는 건 너무하지 않은가.

좋게 봤던 민박집 주인이 혐오스러워지는 한편, 산에서 봤던 아이가 불쌍해지기도 했다. 더 이상 아이에 대해 얘기했다가는 그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몰라 나는 입을 닫았다.

그리고 나는 열흘 동안 더 그곳에서 머물기로 했다. 사라진 여자 시체의 행방을 밝혀내야 했으니까.

민박집 주인에게 열흘 치 방값을 미리 지불한 뒤, 늦은 점심을 먹고 마을을 산책하던 때.

나는 산에서 보았던 그 아이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 아이는 방치된 폐가 같은 마을 회관 옆에서 쭈그려 앉아 있었다.

“안녕, 꼬마야. 아까 산에서 만났지?”

가까이 다가가 말을 건네자 아이는 흠칫 놀라 나를 올려다보았다. 덥수룩하게 자란 머리칼이 얼굴의 반을 덮고 있어 날 쳐다보는 눈도 보이지 않았다.

“아까는 왜 도망쳤어?”

최대한 상냥하게 웃으며 물었지만 아이는 대답도 하지 않고 홱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다시 하던 일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나뭇가지로 바닥에 뭔가를 그리고 있었다.

“뭘 그리고 있는 거야?”

이번에도 대답은 없었다.

“이거 토끼지?”

“아, 아뇨. 곰이에요…….”

그제야 아이의 입이 열렸다. 나는 얼른 아이의 옆에 앉아 산책을 하며 먹으려고 가지고 나왔던 초코바를 내밀었다. 초콜릿으로 유명한 외국 어디에서 수입한 초코바는 이런 시골에선 구할 수 없는 귀한 것일 터였다.

“이거 먹을래?”

아이는 나를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이거 되게 맛있어.”

내가 껍질을 까 먹는 시늉을 하자 아이의 작은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나는 벌어진 아이의 입술에 껍질을 깐 초코바를 밀어 넣었다. 아이는 깜짝 놀라 어깨를 흠칫 떨었지만 입에 물린 초코바는 절대로 떨어뜨리지 않았다. 녀석은 내 눈치를 슬슬 살피면서 두 손으로 초코바를 움켜쥐고는 오물오물 빨아먹었다.

손은 허옇게 터 있고 불룩불룩 움직이는 통통한 뺨도 허연 버짐이 가득했다.

누가 빼앗아 먹기라도 할까 봐 내게서 반쯤 등을 돌리고 초코바를 먹는 아이의 모습에, 내 어릴 때의 모습이 겹쳐졌다.

“더 먹고 싶으면 놀러 와. 형은 저기 있는 민박집에서 머물고 있으니까.”

동정심 때문이었다, 아이에게 친절하게 대해 준 것은. 이미 내 머릿속에서 녀석은 마을 사람들한테조차 사랑받지 못하는 불쌍한 아이가 되어 있었다.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해 준 내가 마음에 들었던 것일까. 아니면 초코바가 또 먹고 싶었던 것일까. 아이는 내가 그곳을 떠날 때까지 매일같이 나를 찾아왔다.

*

*

나는 머그컵을 테이블에 타악, 일부러 소리 내 내려놓았다. 언제나 가지고 다니는 다이어리 빈칸에는 여백을 찾아볼 수 없을 만치 작은 글자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강원도 두레 식당. 석진경. 민간인 피살 사건.

그 세 개의 단어들에는 밑줄을 좍좍 그어 놓았다.

저 세 개의 단어가 갈색 가면 놈이 준 힌트다.

<내가 누군지 궁금하지?>

그 새끼는 빈정대며 바짝 약을 올렸더랬지. 찢어 죽일 새끼.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의 일이다.

7년 전의 일인데도 바로 몇 달 전 겪은 일처럼 모든 게 생생하게 기억난다.

불알까지 꽁꽁 얼어붙을 것 같던 맹추위. 눈물을 물줄기처럼 줄줄 쏟으며 끔찍한 비밀을 털어놓던 석진경의 목소리. 퉁퉁 부은 얼굴. 고기 굽는 냄새 자욱했던 가게 안의 풍경.

녀석이 털어놓은 얘기를 묵묵히 듣고 있던 나는 이렇게 말했었다.

<널 위해 내가 뭘 어떻게 해 줘야 하냐?>

너한테 뭘 어떻게 해 달라고 말한 게 아냐. 석진경은 그렇게 말했다. 그냥 동추, 너한테 털어놓고 싶었어. 부어터진 얼굴만큼이나 부어터진 목소리로 지껄였더랬다.

하지만 석진경은 결국 내게 도움을 청했다.

<날 도와준다고 했었지? 그 말 진심이야?>

녀석이 내게 전화를 한 것은 토할 때까지 술을 마시고 헤어졌던 바로 다음 날 밤이었다.

석진경. 너도 인간이었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부처, 웃는 얼굴의 보살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녀석이었건만 놈도 그냥 우리와 다를 거 없는 이기적인 인간이었다.

실망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평소 녀석의 성품으로 보건대 자수해서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벌을 받겠다고 나올 거라 생각했으니까. 녀석이 불과 몇십 시간 만에 나를 도와줄 수 있냐고 손을 내밀 줄은 몰랐다.

실망하는 한편 안심도 됐다. 녀석이 이기적인 인간이 되기로 마음먹은 이상, 나도 이기적인 놈이 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우선 그 여자의 시체를 없애는 게 좋지 않겠어? 아예 증거 인멸을 하는 거야.>

알아주는 명문대에 다닌 놈 머리에서 나온 생각은 이러했다. 석진경도 내 의견에 침묵으로 동의했다. 동의한 게 아니라 당황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던 거겠지만.

바보였다, 나는. 시체를 없애자. 증거 자체를 없애는 거야. 이런 생각만 했지 어떤 방법으로 시체를 처리할 건지는 생각해 보지도 않았었다. 차도 없이, 이렇다 할 도구도 없이, 혼자서 대체 뭘 어떻게 하려고 했던 것일까. 그 당시의 난.

그냥 무작정 여자의 시체를 묻어 놓았다는 곳으로 찾아갔다. 석진경이 그려 준 지도만 하나 달랑 들고서.

‘민간인 피살 사건’ 옆에 ‘여자의 시체’라 적힌 부분에 ‘사라졌다’ 이 문장도 적어 넣었다.

여자의 시체는 그 장소에 없었다. 이미 누가 파내서 어디론가 옮긴 후였다. 여자의 시체를 파낸 것은 정말 석진경의 고참이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누가 여자의 시체를 옮긴 건지 알아내야 할 이유도 없었으니까.

내가 안개 자욱이 낀 산속을 누비고 다녔던 것도. 아무런 도구도 없이, 오로지 맨몸으로 여자의 시체를 땅속에서 파내 없애 버리겠다는 말도 안 되는 결심을 하게 된 것도. 다 석진경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석진경.

그 자식은 부대 내에서 소총을 입에 물고 방아쇠를 당겨 자살했다.

결국은 죄책감에 못 이겨 생의 끈을 놔 버린 것이었다.

망할 자식…….

생각하기도 싫은 악몽 같은 과거의 일을 떠올리자 뜨거운 뭔가가 목구멍을 꽉 메웠다. 절로 콧잔등이 시큰해지고 눈구멍 안이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나는 얼른 손가락으로 눈 사이를 꾸욱꾸욱 눌렀다.

녀석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한밤중에 대학 동기로부터 그 전화를 받았을 때. 그때 내가 느꼈던 참담한 기분, 끓어 넘치던 슬픔, 몸속의 피가 죄 방바닥으로 콸콸 쏟아지는 것 같던 그 기분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떠올리기도 싫다.

그래서 지금도 한밤중에 전화벨 소리가 울리면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 집에서 전화기를 아예 치워 버렸고 한동안은 핸드폰도 들고 다니지 않았다.

석진경, 내 첫사랑을 보내고 난 나는 미쳐 버렸다.

반미치광이가 되어서 거의 매일같이 술만 퍼마셨다. 입 구멍에서 피를 토하면서 쓰러지고, 술을 처마시고 가게에서 난동을 피우다 건달 놈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기도 하고. 소주병 들고 밤새도록 한강 다리를 걸으면서 웃고, 울고, 토하고, 픽 쓰러져 잠이 들고. 여기서 자면 얼어 죽는다고 말하던 경찰, 멱살을 붙잡고 지랄을 하다가 유치장에 갇히고. 그 안에서도 미친 듯이 고함을 꽥꽥 지르면서 발광을 하고.

내 인생은 한여름 아스팔트 위에 떨어진 아이스크림처럼 흐물흐물 녹아 버렸다.

한순간에 골로 갔다. 그야말로 훅 갔다.

그렇게 잊었다. 그렇게 서서히 잊었다. 시간이 약이라고 하루 스물네 시간 내내 피를 콸콸 쏟으며 쓰리고 쑤시던 심장도 시간이 지날수록 천천히 아물었다.

이제 겨우 대학 동기들이 석진경의 이름 석 자를 말해도 아무렇지 않게 웃어 보일 수 있을 정도가 되었건만.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만 같은 이상한 새끼가 간신히 아문 상처를 쑤신다. 송곳으로 후벼 파고 쿡쿡 찌른다.

강원도 두레 식당.

7년 전, 산에 올라갔을 때 만난 아이가 식당집 아이라고 했다. 아이의 할아버지가 하는 식당 이름이 두레 식당이었던가.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다른 이름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만약 내가 그곳에 있던 약 열흘 내내 나를 찾아왔던 아이가 두레 식당이란 곳의 애였다면. 그 애는 갈색 가면과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 혹시 그때 만난 그 아이가 갈색 가면인 걸까.

<난 이 세상에서 당신을 가장 사랑하고, 가장 증오하는 놈이야.>

갈색 가면이 내 귀에 대고 속삭이던 목소리가 떠올랐다.

놈은 날 증오한다고 했다. 세상에서 날 가장 사랑하고, 증오한다고 했다. 만약 7년 전에 만났던 그 아이가 갈색 가면이라면 말이다. 그 아이가 내게 그 정도의 증오를 품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때 자신에게 한없이 친절하고 자상하게 대해 주었던 형을 아직도 계속 좋아하고 있다면 몰라도.

아무렇게나 자란 덤불 같은 머리칼이 얼굴의 반을 가리고 있었던 녀석. 나를 바라보고, 쳐다보고, 나만 졸졸 따라다녔던 애. 녀석은 새벽부터 민박집으로 쪼르르 달려와 내 방 앞을 기웃거렸었다. ‘형’, ‘형아’ 하면서.

하얗고 말라서 여자애처럼 보이기도 했던 귀여운 애였는데.

그 아이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아직 그곳에 살고 있는 걸까. 귀신 볼 줄 아는 아이라면서 손가락질하는 마을 사람들 틈에서? 정신 이상한 누나와 장사도 되지 않는 식당을 꾸려나가는 성질 포악한 할아버지와 함께?

형아, 형아, 하면서 부르던 아이의 목소리 같은 건 확실히 기억이 나는데 아이의 모습은 뿌옇게 흐려진 채로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마치 7년 전의 그곳을 뒤덮었던 자욱한 안개 속으로 보이던 형체처럼.

옷 속에 넣어 둔 핸드폰이 울렸다. 원장의 호출이다.

“네네. 아뇨. 안 그래도 점심 먹고 있던 참입니다. 네. 지금 곧 올라가겠습니다.”

나는 다이어리와 핸드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고 서둘러 일어섰다. 내가 가르치는 반 학생 부모가 찾아왔다는 전화였다.

학교도 아니고 학원에 애들 부모가 찾아오는 일은 거의 드물다. 초, 중등 학생도 아니고 고등학생씩이나 된 애들인데 말이다.

사무실 앞을 초조하게 서성이던 원장이 복도로 접어든 나를 발견하고는 한달음에 달려왔다.

“무슨 일입니까? 학부모님이 저를 찾아오셨다니요?”

“임 선생, 혹시 학부모들한테 메일 보낸 적 있어? 학부모님 몇 분이 우리 학원 강사가 보낸 메일을 봤다면서 찾아오셨어.”

“네? 메일이라뇨? 무슨 말씀이세요?”

“우리 학원 강사 하나가 모의고사 성적 상위권인 학생들 학부모한테 명문대 입학 희망자들을 위한 소수 정예 고액 과외 멤버를 모집한다는 메일을 보냈다는 거야. 자기는 T 대학 출신이라고 말하면서. 우리 학원에서 T 대학 강사가 임 선생밖에 더 있나?”

“T 대학 출신이 왜 저뿐입니까? 신영 선생님도 T 대학 나오셨잖아요.”

“아니, 그게…….”

원장은 눈을 굴려 주위 눈치를 보더니 내게 바짝 얼굴을 들이밀어 속삭였다.

“그 사람은 사실 T 대학 중퇴야. 대학을 중퇴하고 미국 가서 학위를 따 온 거지.”

기가 막혔다. 매달 학교 근방에 뿌리는 학원 전단지에도 신영 선생의 학력란에는 T 대학 출신이라고 떠억 적혀 있건만. 신영 선생이 미국 가서 학위를 따 왔다는 사실도 거짓말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어쨌든 그건 그거고. 겉으로는 신영 선생도 T 대학 출신으로 되어 있으니 신영 선생이 메일을 보냈을지도 모르는 거 아닙니까.”

“몰라? 신영 선생, 모친상 당해서 거제도에 갔잖아.”

“그럼 전화를 해 보셨어야죠.”

“전화를 했는데 안 받는 걸 어쩌나. 학부모들은 당장 T 대학 출신 강사를 만나야 되겠다고 사무실에서 진을 치고 나갈 생각을 않는데.”

“아, 미치겠네. 그나저나 고액 과외는 불법 아닙니까?”

“하지만 다들 암암리에 하고 그래. 일단 임 선생이 학부모들하고 얘기 좀 해 봐.”

“잠깐만요. 제가 무슨 말을 해요? 학부모님들한테 메일 보낸 건 제가 아니라니까요.”

들어가. 들어가서 얘기해, 하면서 원장은 내 등을 억지로 떠밀었다. 원장실 안, 소파에 앉아 있던 중년 여성 서너 명의 시선이 전부 내게로 꽂혔다.

하고 있는 옷차림이나, 생김새만 봐도 돈깨나 쌓아 두고 사는 집 마나님들이었다.

나는 습관처럼 얼굴 근육에 각인된 서비스용 미소를 만면에 지어 보이며 여자들의 맞은편에 앉았다.

“이분이 T 대학 나오신 임동추 선생이라고 합니다.”

원장이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여자들에게 나를 인사시켰다. 여자들 중, 가장 기가 세고, 가장 말솜씨 좋게 생긴 여자가 나를 빤히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선생님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우리들한테 메일을 보내신 거예요?”

피차 시간 아까우니 괜히 질질 끌지 말고 본론부터 얘기하자, 이거다.

“저도 본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메일을 보낸 건 제가 아닙니다.”

“선생님은 T 대학 출신이시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저는 어머님들께 그런 메일 보낸 적이 없어요.”

다들 믿지 않는 눈치였다. 보아하니 배울 만큼 배우고, 교양 좀 있는 사람들 같은데 오늘 하루만 바보가 되어 보자고 약속이라도 한 건가. 머리라는 게 있으면 생각을 해 보라 이거다. 고액 과외는 엄연한 불법이다. 단속이라도 뜨면 경찰에 붙잡힌다 이거다. 그런데 불법이란 걸 빤히 아는데 학부모들에게 대놓고 메일을 보낼까. 덜미가 잡힐 증거가 될 게 뻔한데.

“기왕 이렇게 된 거, 하시는 게 낫지 않겠어요?”

아주 잠깐의 침묵 뒤, 여자가 지껄인 말은 생각지도 못한 내용이었다.

“개인 과외를 해 보시는 게 어떻겠냐고요.”

원장의 얼굴이 눈에 띄게 일그러졌다. 정말 대단하신 사모님들이다. 고용주 앞에서 이 직장 그만두고 개인 과외를 해 보라니.

“임동추 선생님 소문은 들어 알고 있어요. 제가 덕진이 엄마랑 친한데, 그 집 첫째 아들을 4년제 대학에 보내셨다면서요? 그 집 첫째 아들이 알아주는 꼴통이었잖아요. 그 집 엄마가 아들 대학 보내겠다고 과외 시킬 때, 다들 돈만 버리는 짓이라고 수군거렸을 정도였는데요.”

“혹시 그 집 첫째 아들 이름이 덕민이입니까?”

“네, 덕민이요. 선생님이 덕민이랑 그 애 친구들 몇 명을 가르치셨다면서요.”

덕진이가 누군지 이제야 알겠다. 얼마 전 휴게실에서 내게 인터넷상에서 떠도는 풍기 문란 단속 위원회 사이트에 대한 소문을 말해 준 애였나 보다.

“그 집 엄마가 선생님이 이 학원에서 애들 가르치신다는 소문 듣고, 둘째 애도 이 학원에 보낸다 하더라고요.”

전 꼭 형보다 더 좋은 대학 가야 돼요, 선생님. 비장한 어조로 지껄이던 안경 녀석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래도 다행히 녀석은 형인 덕민이보다는 머리가 좋아 보였다.

이쯤 되니 족집게 과외를 해 보지 않겠냐는 메일을 받았다는 건 핑계고, 내게 이참에 과외를 다시 시작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하러 온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어머님, 죄송하지만 저는 이제 과외는 하지 않습니다.”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깍지 낀 팔을 양 무릎 위에 얹고서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제가 덕민이 팀을 가르치면서 받은 돈이 좀 됩니다. 덕민이나 같이 과외 했던 애들이 아주 많이 안 좋은 상태에서 시작을 해서요. 덕민이와 애들 어머님께서 돈은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으니 아들 녀석들 대학 좀 가게 해 달라고 통사정을 하시기에, ‘네, 그럼 제가 책임지고 아드님 대학 보내 드리겠습니다’ 하면서 과외비를 좀 세게 불렀습니다. 그런데 어머님들도 아시겠지만, 고액 과외란 게 불법입니다.”

“보니까 대부분 안 걸리고 잘도 하던데요.”

“그분들은 개인 과외 교습자 신고를 하시고 그런 일을 하시는 분들이겠죠. 학생들에게 받는 교습비도 그리 많지 않을 테고요. 만약 교육청에 신고도 하지 않은 데다 주거용 주택이 아닌 오피스텔에서 교습을 한다, 신고한 과목 이외의 과목을 더 가르친다, 한 교습소에서 두 명 이상의 강사가 교습을 하고 있다, 이런 건 다 불법입니다. 뭐, 똑같이 불법 고액 과외를 해도 어떤 놈은 걸리고, 어떤 놈은 요리조리 잘도 빠져나가긴 하지요. 그렇지만 결국 재수가 없으면 옴팡 뒤집어쓰게 된다는 거지요.”

“그럼 선생님도 교육청에 신고를 하고 애들을 가르치시면 되잖아요?”

“그렇죠. 그럼 되긴 하죠. 한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신경 쓸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개인 주거 공간에서 애들을 가르치다 보면 소음이 발생하게 마련인데, 이런 거에 예민한 사람들이 끊임없이 민원을 넣기도 하고요. 또 제가 요즘 부모님 문제로 골치 아픈 일이 생겨서 다른 데 신경 쓰고 싶지가 않습니다.”

이런 때에 둘러대는 변명으로는 ‘부모님 문제로 골치 아픈 일이 생겼다’라는 말이 최고로 잘 먹힌다. 다행히 여자들은 더 이상 끈질기게 매달리지 않았다.

“메일 보낸 사람한테 두 번 다시 그런 짓 하지 말라고 말씀해 주세요. 다음에 또 그런 메일 보내면 신고해 버린다고요.”

그녀들은 나가기 전 원장에게 단단히 충고해 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쨌든 여자들이 찾아온 목적은 이것이었으니까. 사모님들을 엘리베이터까지 배웅하러 나갔던 원장이 돌아왔다. 원장은 허리 보호 쿠션에 치질용 도넛 방석까지 장착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서는 한숨만 폭폭 내쉬었다.

“신영 선생이겠지?”

“확실한 건 신영 선생님께 들어 봐야 알겠지만, 일단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대체 뭐가 불만이래? 해 줄 수 있는 건 다 해 줬는데.”

뭐가 불만이냐고? 불만이 뭐겠는가. 당연히 돈이지. 신영 선생은 틈만 나면 원장 욕을 했다.

“임 선생은 어쩔 거야?”

원장이 기가 팍 죽은 목소리로 물었다.

“어쩌긴요. 아까 옆에서 다 들으셨지 않습니까.”

“그만두는 건 임 선생 마음이니까 나도 별말 안 해. 하지만 우리 학원 애들을 빼 가는 짓만은 하지 말아 줘. 똑같이 애들 가르쳐서 먹고 사는 입장인데 그런 짓은 하지 말아 줬으면 해. 임 선생한테 양심이 있다면.”

임 선생한테 양심이 있다면. 이 말에 묘하게 강세를 두어 말하는 원장이었다. 네네, 물론이지요. 저도 양심이 있는 인간인데 어떻게 그런 짓을 하겠냐면서, 웃는 얼굴로 둘러대고 원장실에서 나왔다.

상대방에게 양심 운운하는 사람치고 실제로 양심적인 인간 못 봤다. 내가 보기엔 원장도, 신영 선생도 똑같은 인간이었다. 원장도 그렇고 신영 선생도 돈 밝히는 속물인 건 마찬가지다.

사실 나도 돈 생각 하면 당장 학원 그만두고 과외를 시작하는 게 낫긴 하다. 오늘 사모님들 얘기를 들어 보니 아직 ‘알아주는 꼴통, 수도권 지역 4년제 대학 보낸 과외 선생’이란 명성은 그대로인 것 같은데. 이미 입소문이 났으니 개인 과외를 시작한다고 광고만 하면 금방 학생들을 모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게 귀찮다.

사모님들에게도 말했듯, 지금의 난 다른 데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눈앞에 닥친 일만으로도 머릿속이 꽉 차서 미쳐 버릴 지경이다.

커피나 한잔 마실 요량으로 휴게실로 가려다가 막 엘리베이터에서 뛰어내린 여자애 한 명을 발견했다. 나민이와 몇 번 정도 함께 있는 것을 봤던 여자애였다. 여자애는 창백하게 질려서는 주위를 미친 듯이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나를 발견하고는 “선생니이임!” 외치면서 내게로 달려왔다.

“무슨 일인데 이렇게 반갑게 뛰어와? 나한테 뭐 주려고?”

입으로는 농담을 하면서 눈으로는 습관적으로 여자애 주위를 살폈다. 혹시 나민이가 함께 왔을까 싶어서.

“서, 선생님. 크, 큰일……!”

급하게 뛰어오느라 바짝 마른 목구멍으로 갑자기 외치려니 사레가 드는 게 당연하다. 여자애는 눈물까지 쏟으면서 격하게 기침을 해 댔다.

“물 좀 가져올게. 기다려.”

“돼, 됐어요. 이러고 있는 시간에 걔들이 나민이를…… 콜록콜록!”

내 얼굴이 확 굳었다. 불길한 예감이 순식간에 온몸을 휘감았다.

“나민이가 뭐 어쨌다고? 진정하고 얼른 말 좀 해 봐.”

“걔, 걔들이요. 나민이 막 괴롭히고 하는 애들이요. 걔들이 학원 앞에서 나민이를 데려갔어요. 나민이가 풍기 문란 단속 위원회 사이트에 자기들을 신고한 거라 생각했나 봐요. 그런데 그 사이트 사람들이 드디어 걔들한테 찾아갔나 봐요. 걔들 패거리 애가 그 사람들한테 맞아서 입원했고요. 그래서 나머지 애들이 나민이를…….”

여자애는 격하게 기침을 하느라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며 덜덜 떨었다.

“일단 너는 아무 생각 말고 수업 들어가. 그리고 이 얘기는 아무한테도 하지 말고.”

“어떻게 되는 거예요, 나민이?”

“별일 없을 거야. 걱정 마. 선생님만 믿어라.”

덜덜 떠는 여자애를 내버려 두고 나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오늘따라 이놈의 고물 엘리베이터가 유난히 느리다. 엘리베이터를 타는 걸 포기하고 나는 비상구 문을 박차고 나가 한달음에, 쉬지도 않고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미친 발발이 새끼들. 너 이 새끼들, 오늘 다 죽었다!

뱃속에서 끓어오른 분노가 불꽃이 되어 눈알을 이글이글 태우는 듯했다. 심장이 뛰쳐나가기라도 할 듯이 쿵쾅쿵쾅, 요란한 소리를 내며 뛰었다. 이가 빠득빠드드득 갈리고, 주먹 쥔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

*

놈들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학원 앞에서 애를 데려갔다기에 설마 싶어 가 보았더니, 역시 거기가 맞았다. 일전에 나민이와 빨간 패딩 무리들을 처음 마주쳤던 바로 거기 말이다.

퇴로가 막힌 구석에 먹이를 몰아넣고 으르렁대며 협박하는 건 짐승이나 사람이나 똑같다. 알록달록 색깔별로 맞춰 입은 패딩 놈들 너머로 한 녀석이 주저앉듯이 쓰러져 있는 게 보였다. 멀리서 보이는 하얀 얼굴만 봐도 그게 누군지 알겠다.

검은 패딩을 입은 한 놈이 주저앉은 나민이를 발끝으로 약 올리듯 툭툭 치며 뭐라 씨부렁거렸다. 나민이도 뭐라고 중얼거렸다. 그러자 패딩 놈들의 입에서 거의 동시에 온갖 종류의 육두문자들이 튀어나왔다. 놈들은 번갈아 가며 나민이에게 발길질을 해 대고, 머리를 치고, 주먹질을 해 댔다.

패딩 대가리들의 우두머리 발발이, 빨간 패딩은 자기 똘마니들이 나민이를 번갈아 가며 두들겨 패는 꼴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만해라! 새끼들아!”

크게 외치자 녀석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봤다. 자기가 무슨 폭력 조직 두목이라도 되는 것처럼 팔짱을 끼고서 모든 걸 지켜만 보고 있던 박하신도 나를 쳐다보았다.

난 한 놈 패 죽일 기세로 씩씩대며 걸어갔다.

“뭐 하는 짓이냐, 이게?”

“선생님은 꺼져요, 좀. 이건 우리끼리 문제니까.”

한 놈이 개기름 좔좔 흐르는 못생긴 얼굴을 들이밀며 쫑알거렸다. 나는 예고도 없이 개기름 흐르는 놈의 상판을 후려쳤다. 짜악, 하는 찰진 마찰음과 함께 녀석의 얼굴이 홱 돌아갔다.

“이 썅! 이게 미쳤나!”

뺨을 맞은 놈은 육두문자를 갈기면서 내게 달려들었다. 우선 달려드는 똥개 놈의 배에 크게 한 방 먹여 주고, “켁!” 목 졸린 닭 같은 소리를 내면서 휘청대는 놈의 목을 움켜쥐고서 찰싹 찰싹 찰싹 쉴 새 없이 뺨을 후려갈겼다. 숨도 쉴 틈 없이 뺨을 얻어맞으면서 녀석은 욕도 제대로 내갈기지 못했다.

씨…… 짜악! 바알…… 짜악! 이 개새…… 짜악! 죽여 버린…… 짜악! 뭔 말만 할라 치면 철썩철썩 후려치니 똥개 놈은 나중엔 커헝, 커허엉, 커흐흐흥…… 콧소리로 절규하면서 눈물이며 코피를 좍좍 쏟았다.

“그만 좀 때려! 새끼야!”

그래도 이딴 놈도 친구라고 보다 못한 한 놈이 달려들기에 그놈 상판에도 주먹 한 방을 먹여 주었다. “아오오!” 목청껏 괴성을 지르면서 나머지 한 놈이 뛰어왔다. 그놈은 특별히 오늘 새로 신고 나온 구둣발로 날려 보냈다.

순식간에 세 마리 똥개가가 끄응끄응 앓는 소리를 내면서 바닥을 뒹굴었다.

나민이는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 구석 한쪽으로 물러서 있었다. 흙 묻은 가방이며, 벗겨진 코트를 품에 가지런히 안고서. 저 꼴이 뭐냐, 저 꼴이.

“당신은 왜 자꾸 우리 일에 끼어들어요?”

박하신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새파랗게 어린 새끼가 어른한테 하는 말본새 좀 봐라.

“끼어들 만하니까 끼어들지. 니들이 쟤 괴롭히는 걸 보는 게 이번이 두 번째다. 네놈들은 대체 왜 이렇게 쟬 괴롭히냐? 나민이 쟤가 너보다 형 아니냐?”

“저딴 병신 새끼가 무슨 형이야. 맞을 짓만 하니까 때리는 거지.”

박하신이 눈을 흘겨 뜨고서 골목 구석에 우두커니 선 나민이를 홱 째려보았다.

“죽여 버린다, 병신 새끼야.”

이를 드러내 으르렁대면서 사람 협박하는 꼴이 이 짓,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다. 더 이상 못 참겠다. 나는 빨간 패딩 놈의 머리통을 빠악, 소리가 나도록 후려쳤다.

“이게 어디서 되지도 않는 협박질이야? 협박질이?”

“당신 미쳤어?”

“그래. 미쳤다!”

빽 소리 지르며 난 다시 한번 놈의 머리통을 쳤다.

“씨발! 좆같은 게! 선생이 이래도 돼?”

“넌 그럼 씨발, 학생이 이래도 되냐! 네 부모가 학교 가서 애들 두들겨 패고, 삥 뜯고, 조폭 흉내 내고 다니라고 그러시던? 너 같은 새끼 낳고도 너네 엄마는 미역국 말아 드셨대? 그리고 난 학교 선생이 아니니까 상관없다!”

“우리 엄마 욕은 왜 하는데!”

“어이구. 효자 났다, 효자 났어. 엄마 욕하는 게 듣기 싫으면 욕 먹일 짓을 하지 마, 새끼야!”

녀석의 뺨을 짜악, 세게 후려쳤다. 녀석의 얼굴이 홱 돌아가며 코피가 팍 터졌다.

“아오오! 진짜 씨발, 좆같네!”

놈이 크게 외치며 안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봉두난발을 하고 시뻘겋게 부은 얼굴로 쌍코피를 줄줄 흘리면서. 당장 누구 한 놈 모가지를 베 버릴 망나니 꼴을 하고 있긴 하다. 놈이 품에서 꺼내 든 것도 흉기는 흉기였다.

군용 나이프도, 회칼도 아닌, 장난감 같은 접이식 칼이다.

사과 하나 제대로 깎지 못할 칼을 꺼내 들고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씩씩대는 꼴을 보고 있자니 기가 차서 웃음도 나오질 않았다.

으아아아! 겨우 작은 칼 하나 움켜쥔 주제에 목청만큼은 적진 앞으로 뛰어드는 장수 못지않다.

단 몇십 초 만에 상황은 종료됐다. 사내가 칼을 빼 들었으면 무라도 베어야 하는 법이거늘. 놈은 무는커녕 내 옷깃 하나 스치지 못하고서 똘마니들과 같은 꼴로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녀석이 휘두르던 장난감 칼은 저 멀리 날아가 버리고 없다.

한참 전에 내게 얻어터져 쓰러진 애들은 이미 슬금슬금 일어나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눈치만 살피고 있는 중이었다. 도망가자니 쪽팔리고, 그렇다고 또 내게 달려들자니 맞을까 봐 무섭고.

“더 해 볼래? 누구 또 칼 갖고 있는 놈 있으면 덤벼 보든가.”

팔을 걷어붙이고 지껄이자 녀석들은 흠칫 놀라 고개를 붕붕 저었다. 녀석들 중 하나가 내게 KO 패 당해 쓰러진 박하신을 부축하기 위해 다가갔다. 하지만 놈은 친구의 손을 매정하게 쳐 내고는 끄응, 소리를 내면서 일어섰다.

“이제 친구 좀 괴롭히지 말자, 응? 네놈들이 하고 있는 짓이 얼마나 비겁한 짓인지 알기나 하냐? 너희들은 다수지만 당하는 애는 혼자잖아. 다구리가 멋있냐, 새끼들아? 1 대 50으로 싸워야 멋있는 거지 쉰 명이 한 놈 잡아 족치는 건 멋있는 게 아니라 쪽팔린 거지.”

쪽팔린 짓 더 이상 하지 말고 이런 짓은 하지 마라. 하지만 놈들은 내가 하는 설교는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내가 열심히 지껄이는 동안 박하신의 살기등등한 눈은 줄곧 나민이에게 향해 있었다.

“야, 한나민. 씨발 새끼야, 너 이 새끼한테도 일러바쳤냐? 여기저기 아주 잘도 일러바치고 다니는구나. 좆나 비겁한 새끼.”

“몇 번이나 말했지만 그 사이트에 너희들을 신고한 건 내가 아냐.”

지금까지 입 꾹 다물고 있던 한나민이 입을 열었다.

“그래. 아주 많이 봐줘서 풍기 문란, 그 좆같은 사이트에 신고한 게 네놈이 아니라 치자. 그럼 이 꼰대한테 일러바친 것도 네놈이 아니냐?”

적당한 말로 둘러대면 될 일인데 나민이는 침묵했다. 저 녀석은 너무 솔직해서 탈이다.

“너 요즘 어디서 살고 있냐?”

“박하신, 너 또 우리 집에 들어왔었어?”

“묻는 말에나 대답해, 새끼야!”

이건 대체 무슨 상황이냐. 이건 친구끼리 하는 대화가 아니다. 애인 사이에서나 오고 갈 대화지.

그런 예감이 들긴 했었다. 혹시 박하신, 저 녀석은 나민이를 좋아해서 더 악랄하게 괴롭히는 게 아닐까, 하는 예감.

“선생님 집에서 잠깐 신세 지고 있어.”

“선생님? 선생님, 누구?”

일그러진 얼굴로 나민이를 몰아붙이던 빨간 패딩이 ‘설마’ 하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저 꼰대네 집에서 살고 있는 거냐?”

나도, 나민이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놈에게도 눈치란 게 있으니 금방 알아챘을 터였다. 박하신이 허공에 대고 헛웃음을 쳤다.

“미쳤구나, 한나민.”

당사자도 아닌데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누가 누구더러 미쳤대? 나민이가 누구 때문에 멀쩡한 자기 집 놔두고 남의 집에 얹혀사는데.

“나민아, 가자!”

이대로 뒀다간 저 자식이 또 무슨 험한 말을 지껄일지 몰라 나는 일부러 크게 소리 내 나민이를 불렀다. 나민이가 나를 쳐다봤다. 동그랗게 뜬 눈이 꼭 잔뜩 겁을 집어먹은 송아지 눈 같다.

무서워하지 마. 선생님이 여기 있잖아. 내가 널 보호해 줄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에게 내 마음이 전해지면 좋으련만.

“나민아.”

다시 한번 이름을 부르자 그제야 녀석이 꿈지럭대며 움직였다. 박하신은 조용히 나민이의 움직임에 따라 눈알을 굴렸다. 놈은 말없이 보고만 있다가 나민이가 자신의 옆을 스쳐 지나가려 하자, 나민이의 팔을 홱 움켜잡았다.

“너 저 꼰대랑 원조 교제 하냐?”

팔을 붙잡힌 나민이의 표정이 확 구겨졌다.

“웬 헛소리야, 그게? 내가 무슨 여고생이야? 원조 교제를 하게?”

“내숭 떨고 자빠졌네. 여고생만 원조 교제 하는 줄 아냐?”

“야, 박하신. 난 너 같은 미성년자가 아냐. 난 어엿한 성인이야.”

“꼴에 지가 성인이란다. 중딩보다 더 좆 밥 같은 새끼가. 저 새끼 변태야, 사내새끼 좋아하는 변태라고. 너도 알잖아?”

이마에 굵은 핏줄 두어 개가 튀어나오는 느낌이 들었다. 패딩 입은 똥개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저 새끼한테 몸 대 주고 용돈 받고 그러냐? 옆구리에 철썩 달라붙어서 ‘잉잉, 혀엉, 나 요즘 너무 힘들어요오’ 눈물 찍찍 쏟으며 우는소리 좀 했더니 집도 제공해 주고 널 지켜 주겠다고 해? 저 변태 새끼가?”

“함부로 말하지 마. 선생님은 그런 분 아냐.”

“그동안 저 새끼한테 정들었나 보네. 저놈이랑 몇 번이나 잤냐? 어째 오늘따라 엉덩이가 두둑한 거 같던데 생리대 차고 있는 거 아냐? 영화에서 보면 사내새끼한테 후장 뚫리면 계집애처럼 기저귀 차고 다녀야 한다던데.”

한나민은 조용히 반대쪽 손으로 나불거리는 박하신의 얼굴을 후려쳤다. 그것도 주먹을 꽉 움켜쥐고서.

놈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얻어맞아 중심이 흐트러진 사이, 나민이는 놈에게 붙잡힌 팔을 빼냈다.

“더러운 새끼.”

그리고 놈의 면전에 대고 낮고 위압적인 목소리로 한 마디 내던지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야비하고 악랄한 새끼란 건 알았지만 더럽기까지 하구나, 너. 금수만도 못한 새끼라고 욕했었는데 말을 바꿔야겠다. 너 같은 새끼랑 비교당하는 금수가 불쌍하니까, 쓰레기 같은 새끼야.”

나민이도 사내애였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나민이가 놈에게서 홱 등을 돌려 성큼성큼 걸어왔다. 내게로 걸어오긴 했지만 나를 그냥 스쳐 지나간다. 거의 뛰듯이 걷는 녀석을 따라가기 위해 발걸음을 뗀 순간, 등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야, 씨발. 꼰대! 너 그때 클럽에서 저 자식 꼬셔서 모텔…….”

난 미친 듯이 뛰어가 박하신의 주둥이를 틀어막았다. 읍, 으읍, 하면서 팔다리를 붕붕 휘젓는 놈을 더 구석진 골목,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정도로 좁아터진 벽과 벽 틈으로 끌고 갔다.

웃긴 게 이놈, 산발이 된 머리칼이며 옷에서 향수 냄새를 폴폴 풍기고 있다. 고등학생 사내놈이 몸에서 땀 냄새를 풍겨야 정상이거늘. 메이커 패딩이며, 쫙 다려 입은 교복 바지며, 질 좋은 운동화에 향수까지. 산발이 되기 전에는 머리 모양도 꽤 예뻤던 것 같다. 넌 겉모습에 신경 쓰는 만큼 정신 수양에도 신경 좀 써야겠다.

퇴로는 내 몸으로 막고 요상한 물웅덩이가 고인 바닥에 놈을 내팽개쳤다. 쓰러진 놈이 욕을 씨불이며 발딱 일어나려 하기에, 발끝으로 녀석의 가슴을 짓눌러 일어나지 못하게 막았다.

“죽고 싶냐? 아가야?”

녀석의 핏발 선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너도 나와 같은 부류잖아. 그런데 동족끼리 이러면 되겠냐? 이 형이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무슨 개소리야?”

“클럽 사장이 나랑 같은 대학 출신이다. 무슨 클럽인지 기억 안 날까 봐 말해 주는데 러스트 있잖냐. 요즘 끝내주게 물 좋은 거기. 거기 사장이 나와는 대학 다닐 때 형, 아우 하던 사이였다고. 사장 형님이 그러던데 너, 몇 번이나 클럽에 들락거렸다면서?”

녀석의 확 일그러진 얼굴 표정이 모든 걸 말해 주고 있었다.

“붕어 똥처럼 따라다니는 친구 놈들은 너 그러는 거, 알고 있냐?”

“그 새끼들은…… 알고 있어.”

“그래? 그러면 너 다니는 학교 애들, 선생님들도 다 알고 있겠네? 부모님도 알고 계시나 모르겠다? 언제 한번 부모님 만나 뵙고 일대일 면담을 좀 해야겠다.”

“그럼 나도 당신이 변태 새끼란 거 밝혀 버릴 거야!”

“그래라. 난 상관없다. 커밍아웃한다고 날 호적에서 파 버릴 가족도 없고. 학원에서 잘려도 먹고살 순 있을 테고. 여차하면 시골에 처박혀 살지, 뭐.”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씨익 웃었다.

나는 정말로 내 성적 취향이 밝혀진다 해도 잃을 게 없었다. 녀석의 얼굴이 구겨지다 못해 짓이겨졌다. 머리는 나빠도 지금 자기 처지가 어떤지 자각은 되나 보다.

“나도 그런 야비한 짓까진 하고 싶지 않다. 나도 그런 놈이니까 네 성적 취향을 존중해 주고 싶다 이거야. 그런데 자꾸 이딴 식으로 나오면 곤란하지 않겠냐? 그리고 나민이가 너한테 피해 준 게 뭐 있다고 자꾸 괴롭히냐? 나민이가 형인데, 형한테 그딴 식으로 싸가지 없게 굴면 돼? 형 동생 하면서 사이좋게 지내야지.”

“당신, 한나민이랑 사귀는 거 맞지?”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진짜. 결국은 돌고 돌아 원점이다.

“그때 당신, 그 자식을 데리고 나갔잖아. 근처 모텔에 가서 더러운 짓 하려고.”

“그걸 빤히 보고 있으면서 왜 안 말렸냐?”

“내가 왜 말려? 그 자식도 좋아서 당신 따라 나간 걸 텐데.”

“넌 이 자식아, 네가 억지로 걜 그런 데 끌고 갔으면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할 거 아냐. 고삐리 새끼가 발랑 까져서는 벌써부터 그런 델 드나들기나 하고. 그리고 나민이가 좋아서 따라 나왔던 거 아냐. 뭐 네 눈에는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겠지만, 걔한테 작업 걸던 이상한 새끼들 때문에 걔가 잔뜩 겁을 먹어서 빨리 나가고 싶었던 걸 거야. 내가 나가자고 하기도 했었고.”

“나한테 억지로 끌려간 거라고? 그 자식이 그래? 인터넷인지 어디에서 봤다면서 클럽에 같이 가자고 한 건 그 자식이야.”

“믿을 만한 거짓말을 해라, 자식아.”

나는 코웃음을 쳤다. 이게 어디서 어른을 속여 먹으려 들어?

“콩깍지가 씌어도 제대로 씌었네. 당신 눈엔 그 자식이 하얗고 마른 강아지로만 보이나 봐?”

“너, 사실 나민이 좋아하지?”

“뭐어어? 누가? 내가? 내가 그 자식을? 미쳤어? 내가 왜 그딴 새끼를 좋아해!”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 했다. 얼굴 시뻘게져서 발악하는 걸 보니 진짜인 모양이다. 한참을 펄떡펄떡하며 씩씩대던 녀석이 곧 제 풀에 지쳐서는 축 늘어졌다.

“어쨌든 풍기 문란 사이트에 우리를 신고한 건 분명 그 새끼야.”

“안 되겠다. 넌 좀 더 맞아야겠다.”

“그 자식이 분명하다고. 당신이 그 자식을 몰라서 그래. 당신이야 지금 눈에 대형 콩깍지가 씌어서 아무것도 안 보이겠지만. 그 자식 내숭에 속지 말라고. 외모에 속지 마. 생긴 거는 하얗고 마른 게 순한 강아지 같지? 그런데 한번 자세히 봐. 그 자식 눈이 얼마나 무서운데.”

나민이의 눈을 본 적 있다. 반짝반짝 빛나던 크고 맑은 눈. 참 예뻤다. 몇 시간이고 계속 뚫어지게 바라보고만 싶을 정도로. 그 눈이 무섭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자기는 속까지 시꺼먼데 나민이 눈은 너무 맑고 깨끗해서 무서워 보이는 거겠지.

“헛소리 그만 지껄이고. 두 번 다시 나민이 괴롭히지 마라. 난 분명 경고했다.”

“아악! 죽여 버릴 거야, 그 자식!”

“죽는다, 진짜!”

눈을 크게 부릅뜨고 발길질을 하는 시늉을 하자, 발광하던 녀석은 움찔 떨며 팔로 머리를 감쌌다.

“어디 한번 믿는 도끼에 발목 찍혀 보시지!”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겠지. 이 무식한 자식아.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애들 삥이나 뜯지 말고 공부 좀 해라, 공부 좀.”

마지막으로 딱 한 대, 마음 같아선 아주 목을 졸라 어디 파묻어 버리고 싶지만 꾹 참고 딱 머리통 한 대만 후려갈겼다.

“죽인다, 꼰대! 한나민, 그 새끼랑 당신이랑 다 죽여 버릴 거야.”

박하신이라 이름 붙은 똥개는 지치지도 않고 짖어 댔다. 더 이상 상대할 가치도 없어서 나는 홱 뒤돌아섰다. 저런 놈들한테는 백번 말해 봐야 쇠귀에 경 읽기다. 백번 설교하고 협박하는 것보다 한번 몸으로 경험하게 해 줘야 세상 무서운 줄 알지.

한나민은 학원이 있는 건물 앞에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개를 푸욱 수그리고, 두 손을 주머니에 쑤셔 넣고는 발끝으로 땅을 툭툭 차고 있다. 입고 있는 코트가 너무 커서 애가 유난히 마르고 약해 보인다. 저 코트, 저거 대체 몇 년 전 디자인이냐. 무슨 애가 요즘 유행하는 거라곤 하나 가진 게 없다.

메고 있는 가방도, 코트도, 신발도, 동네 구석마다 있는 재활용 박스에서 꺼내 입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케케묵었다. 보니까 가방 안에 넣고 다니는 필통이나 필기구도 낡아빠진 건 마찬가지더라.

나민이가 고개를 들어 자신에게 걸어가는 나를 발견했다. 나를 보고도 녀석은 당당하게 고개를 펴질 못했다.

“내가 괜한 짓을 했나?”

녀석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뒤통수를 긁적이면서 입을 열었다.

“아뇨. 괜한 짓을 하셨다니요. 절대로 그런 거 아니에요.”

나민이 녀석은 깜짝 놀라 두 손을 허공에 붕붕 저었다.

“선생님 아니었으면 오늘 전 병원에 입원했을지도 몰라요. 어제 풍기 문란 사이트에서 나온 사람들이 패거리 애들 중 한 놈한테 찾아갔었나 봐요. 그래서 오늘 그 자식들, 머리끝까지 열이 올라 있더라고요.”

“그런데 아마 오늘 나 때문에 더 열이 올랐을 거다. 그런 놈들이 건드리면 더 날뛰는 법인데.”

“그건 그렇겠지만…….”

녀석이 말끝을 흐리며 시선을 아래로 푹 떨궜다. 박하신의 뺨을 후려치고 한 마디 쏘아붙이던 매서운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풍기 문란 사이트에서 사람들이 더 나올까요?”

“그러지 않을까. 어제 겨우 한 놈 잡아 족쳤다며? 똘마니 한 놈 잡아 족치라고 그 사이트 사람에게 돈을 준 건 아닐 거 아냐.”

“그래도 만약에…….”

“내가 손봐 줄까?”

녀석의 말을 중간에서 딱 잘랐다. 어느 한곳에 고정되어 있지 않고 불안하게 흔들리던 나민이의 시선이 내게로 고정되었다.

“그 사람들을 기다릴 거 없이 내가 그놈을 손봐 주면 되는 일 아니냐.”

“하지만 선생님.”

“생각해 보니까 그런 거야. 언제 그 사람들이 놈들을 손봐 주러 올 줄 알고 넋 놓고 기다리고 있냐. 어차피 그 사이트에 놈들을 신고한 녀석 목적도 그놈들한테 매운맛 좀 보게 해 주려는 거잖아. 그런 거라면 내가 해도 상관없지 않겠어?”

방금 전에 결심했던 일이다. 학원 건물 앞에서 고개 푹 수그리고 나를 기다리고 선 나민이를 본 순간. 무엇 하나 세련된 것 없이 우중충한 것들로 치장한 어두침침한 녀석. 어깨 좀 펴고 살게 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까짓것 그런 발발이 새끼들, 내가 손봐 주면 그만 아닌가. 나민이 같은 애들한테야 무서운 존재지 내 앞에선 한낱 하룻강아지에 불과한 놈들인데.

한나민은 아무 말도 없이 나를 바라만 보았다. 무슨 말이든 해야겠는데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몰라서 입만 뻐끔대고 있다. 나는 손을 뻗어 녀석의 헝클어진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녀석의 머리칼은 매끄럽고 보들보들해서 만지면 참 기분이 좋아진다. 언제까지고 손끝에 느껴지는 보들보들한 감각을 느끼고 싶었지만 적당히 만지고 손을 뗐다. 아쉬운 기분에 보드라운 느낌이 나는 손가락 끝을 비볐다.

“자, 안으로 들어가자. 춥다.”

문을 열고 들어서서 꼭대기 층까지 올라가 있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한발 늦게 녀석이 따라 들어왔다. 나란히 서긴 했지만 어깨가 맞닿지 않는 거리를 유지하고 서서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기 선생님…….”

“응. 왜?”

“제가 선생님께 뭘 해 드려야 할까요.”

“무슨 소리야, 그게? 네가 나한테 왜 뭘 해 줘?”

“선생님은 절 이렇게 도와주시는데 저는 선생님께 아무것도 해 드리질 못하잖아요. 제가 아직 입시 공부 중이라 돈도 없어서 선물을 사 드리지도 못하고요.”

“딱 한 대만 맞자, 한나민.”

본능적으로 눈을 질끈 감은 녀석의 이마에 딱밤을 먹였다.

“다음에 또 그런 말 하면 맞는다. 진짜. 아까 박하신이 한 말 때문에 그러는 거냐?”

하신이 놈이 원조 교제를 들먹였었다. ‘너 저 꼰대랑 원조 교제 하냐?’ 빈정대는 놈의 말에 사실 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하긴 신경 쓰이지 않는 게 이상한 거겠지. 나한테는 전적이 있으니까.”

“그렇게 말씀하지 마세요. 원조 교제란 건 그렇고 그런 관계가 포함되는 건데 선생님과 전 그런 거…… 안 하잖아요.”

그런 거, 하면서 살짝 목소리를 떠는 게 못 견디게 귀여워서 웃음이 비어져 나오려 했다.

“어쨌든 이 일은 얼른 해결 보자. 이 일이 해결되면 너도 너희 집으로 돌아가고. 그리고 나한테 뭘 해 주고 싶으면 우리 집에 있을 동안 그때 바지락 넣고 끓여 줬던 순두부찌개 좀 끓여 줘라.”

“맛있었어요, 그거?”

“기가 막히더라. 우리 나민이가 공부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요리 솜씨도 아주 제법이야.”

“그 정도라면 언제든지 만들어 드릴게요.”

녀석이 배시시 웃으며 볼을 붉혔다. 칭찬을 들으니 못 견디게 좋은 모양이었다. 이렇게 귀엽고 순진한 녀석을 뭐? 내숭에 속지 말라고? 순한 외모에 속지 말라고?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힐 거라고? 말도 안 되는 헛소리.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다.

직사각형 철제 상자 위에 올라탄 나는 숫자 계기판 앞에 섰다. 그리고 한나민은 자연스럽게 가장 구석진 곳에 자리 잡았다. 엘리베이터가 소름 끼치는 기계 소리를 내며 느릿느릿 위로 올라갔다. 아무렇지 않게 시선을 돌리다가 벽에 붙은 거울을 쳐다보게 됐다. 거울 속에는 구석에 탄 나민이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벽에 기대서서 표정 없이 엘리베이터 안 어딘가를 멍하게 응시하던 녀석이 거울을 통해 바라보는 내 시선을 느낀 모양이었다.

녀석이 웃었다. 허옇게 각질이 일어난 입술을 예쁘게도 말아 올리고선.

집에 가는 길에 립밤이라도 하나 사서 줘야겠다. 가방이랑 옷, 신발도 다 사 주고 싶지만 그렇게까지 하면 정말 원조 교제 비스무리한 상황이 될 것 같으니 그건 관두고. 집에 있는 안 입는 옷들이나 챙겨서 줘야지. 그리고 사 놓고 어울리지 않아서 신지 않던 운동화도 있을 거다, 분명히.

입던 옷이라도 고맙다면서 진심으로 기뻐할 나민이의 모습을 떠올리니 기분이 좋아졌다. 16748446320547.jpg

*****************************************************

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웹에서 실시간으로 편리하게 감상하세요

http://novelagit.xyz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