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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하얀색 털 뭉치가 “왕왕!” 짖으며 내게로 달려들었다.
“어이구, 우리 구찌!”
나는 쪼르르 달려와서 팡팡 뛰어오르는 털 뭉치를 냉큼 안아 들었다. 새까만 눈을 초롱초롱 뜨고, 분홍색 혀를 내 빼 문 녀석이 짧은 꼬리를 세차게 흔들며 헥헥거렸다.
내 품에 안긴 녀석은 좋아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내 얼굴을 미친 듯이 핥고, 낑낑대고, 아주 발광을 했다. 막내딸 같은 애완견이 다른 남자 품에 안겨 온갖 애교를 떠는 걸 보면서, 천달봉은 혀를 쯧쯧 찼다.
“저 녀석은 젊은 남자라면 누구나 다 좋아서 저러지. 얼마 전에 마누라가 가게에 녀석을 데리고 온 적이 있는데 젊고 잘생긴 남자 손님들이 있었거든. 이 녀석이 마누라 품에서 빠져나가서는 손님들한테 미친 듯이 달려가서 오줌을 질질 싸더라니까. 눈을 요래요래 게슴츠레 뜨고서?”
천달봉은 “요래 요래” 하면서 내 품에 안긴 강아지의 눈을 손가락으로 쭉 잡아 늘였다. 녀석 특유의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게슴츠레 뜬 눈을 말하려는 것이다.
“요 앙큼한 계집애야. 이렇게 남자를 밝혀서 어쩌려고 그래?”
강아지의 까맣고 촉촉한 코에 내 코를 비볐다. 그러자 혀를 내밀어 내 입술을 할짝할짝 핥았다.
“와하하! 구찌, 너 키스 끝내주게 잘한다.”
천달봉이 오만상을 찌푸리고서 내 품에서 구찌를 빼앗아 바닥에 내려놓았다. 하얀색 털 뭉치는 타닥타닥, 앙증맞은 발소리를 내며 어디론가 뛰어가더니 입에 뭔가를 물고서 다시 나한테 달려왔다. 입에 문 것은 녀석이 가장 사랑하는 삑삑 소리가 나는 고무공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언제 온대요?”
침으로 축축하게 젖은 공을 휙 던지자 녀석이 부리나케 그쪽 방향으로 튀어 갔다.
“곧 오겠지. 언제는 사람들이 약속 시간 딱 맞춰서 오더냐?”
“에이. 괜히 빨리 왔네. 저녁도 안 먹고 달려왔더니.”
“앉아 있어. 먹을 것 좀 줄 테니까. 커피 마실 거지?”
“그럼요. 커피야 없어서 못 마시죠.”
공을 입에 문 구찌가 다시 전력을 다해 내 쪽으로 달려오는 게 보였다. 공은 아까보다 더 축축했다. 침 범벅이 된 고무 표면에 녀석의 털이며, 바닥에 있는 먼지까지 잔뜩 붙어서 손으로 건드리기조차 겁난다. 손가락으로 표면을 살짝 집어 다시 있는 힘껏 던졌다.
공을 던지고, 털북숭이가 뛰어가고, 다시 공을 던지고, 털북숭이는 또 뛰고. 그 짓을 몇 번이나 반복한 뒤에야 천달봉이 커피와 음식을 내왔다.
커피와 샌드위치. 쿠키 몇 개. 달봉이 형님이 직접 만들어 파는 샌드위치는 양도 푸짐하고 맛있긴 한데, 이건 그냥 간식이다. 밥이 아니라. 돼지고기 팍팍 썰어 넣은 김치찌개나 먹었으면 소원이 없겠다.
“요즘 장사는 잘돼요?”
“안 그래도 죽겠다, 아주. 오다가 역 앞에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 하나 생긴 거 봤지? 그거 생긴 탓에 손님이 팍 줄어서 월세 내기도 벅차. 요새는 밤일 거리도 없어서 죽을 맛이다.”
천달봉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보긴 봤다. 역 앞에 커피 전문점 하나가 생겼더라. 요새 동네 목 좋은 곳마다 하나씩 생겨나는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이었다.
“죄송합니다, 형님.”
“왜 네가 미안해하는데?”
“그날 밤, 제가 귀면 놈들한테 뼈가 든 상자를 뺏기는 바람에 일거리가 뚝 끊겼으니까요.”
“그게 왜 네 탓이야? 어차피 누가 그 상자를 가지고 있었다 하더라도 뺏기고 말았을 거야. 그런 놈들을 상대로 싸우고서도 다들 멀쩡하게 살아 있는 것만도 감사해야지.”
그날 밤. 장어구잇집 안으로 뛰어들어 온 천달봉과 박천수, 기식이의 얼굴 위로 나타나던 표정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때, 그들은 분명 상자를 뺏긴 나를 탓하고 있었다. 천달봉의 말대로 어차피 누가 그 상자를 가지고 있었다 하더라도 빼앗기고 말았을 텐데.
“신경 쓰지 마라. 너 그날 정말 애썼다. 동수가 그러던데 그때 그러고 나서 크게 앓았다며? 오히려 내가 더 미안하지. 죽이라도 만들어 가지고 한번 찾아갔어야 했는데.”
우리들이 얘기를 나누느라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 주지 않자, 구찌가 끼잉끼잉 애처롭게 울었다. 나는 남은 샌드위치 반쪽을 우걱우걱 씹어 커피와 함께 목구멍 안으로 흘려 넣었다. 강아지의 울음소리가 한층 더 구슬퍼졌다.
보다 못한 천달봉이 구찌를 덜렁 들어 올려 무릎 위에 앉혔다. 가끔 보면 이 녀석은 개가 아니라 어린애 같다.
문이 열렸다. 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만 듣고서도 누가 왔는지 알 수가 있었다. 문짝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문을 열어젖히고 들어오자마자 “아으으! 추워 뒈지겠다! 불알 얼겠네!” 이따위 소리를 지껄이는 인간이 노금영이 아니면 누구겠는가.
천달봉의 무릎 위에 누워 소로록 잠이 들었던 구찌가 갑자기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그러고는 귀와 꼬리를 세우고 가게 안으로 들어온 불청객을 쳐다보는 것이다.
“섹섹아! 섹섹아! 삼촌 왔다아!”
노금영이 괴성을 지르며 천달봉, 정확히는 천달봉의 무릎 위에 앉은 구찌를 향해 달려왔다. 다행히 구찌는 재빨리 주인의 다리 아래로 뛰어내려 도망치는 데 성공했다.
“섹섹아, 삼촌이 섹섹이 주려고 뭘 사 왔게에?”
품에서 핫핑크색 날개가 달린 강아지 옷을 꺼내 흔들면서 노금영은 구찌가 도망친 가게 안쪽으로 뛰어가려 했다. 그 앞을 천달봉이 막아섰다.
“구찌 좀 괴롭히지 마. 자식아, 그리고 넌 왜 자꾸 우리 구찌를 섹섹이라 부르는데?”
“섹시 섹시, 죽여주게 섹시. 그래서 섹섹이에요. 구찌라는 이름보다 훨씬 낫구먼. 좀 비켜 봐요. 내가 거금을 들여서 섹섹이 옷까지 사 왔는데.”
“돈 줄 테니까 그냥 놓고 가. 쟤, 저기 숨어서 발발 떨면서 오줌 질질 싸는 거 안 보이냐? 애 저러다가 거품 물고 뒤로 나자빠지는 꼴 보고 싶지 않으면 제발 좀 자리에 앉아. 구찌한테 관심 좀 끄고.”
노금영은 입술을 삐죽이 내밀고 구시렁대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릇 위에 남은 쿠키를 오독오독 씹으면서도 그는 이글이글 불타는 눈으로 가게 안쪽 방을 노려보았다.
“형, 추워 죽겠는데 히터 좀 틀어 봐요. 어찌나 추운지 불알까지 꽁꽁 얼었다니까?”
“저 자식, 커피 한 잔 안 팔아 주면서 바라는 건 더럽게 많아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천달봉은 온풍기로 다가가 동작 버튼을 눌렀다.
누군가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박천수나 동수, 혹은 기식이라고 생각했지만 안으로 들어선 것은 낯선 남자였다. 남자는 까만색 정장에 까만색 코트, 장갑까지 낀 엄숙한 차림을 하고 있었다.
“죄송한데 오늘 영업은 끝났습니다, 손님.”
천달봉이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정중하게 말했다.
“아, 전 손님이 아닙니다.”
남자도 장갑을 벗으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남자의 입술 위에 번진 미소는 누군가 억지로 입술 양 끝을 잡아 올린 것처럼 부자연스러웠다.
“제 친구예요, 형님. 제가 얘기했잖아요. 오늘 누구 한 명 데리고 가게 될 거라고요. 똘추, 너한테도 얘기했었지.”
발끝을 까딱이며 쿠키를 씹던 노금영이 말했다. 나와 천달봉은 인상 쓴 얼굴로 노금영을 노려보았다. 언제 네놈이 그런 얘길 했냐, 이 자식아.
“인사들 해요. 이 녀석은 백단영이라고, ‘해결사’ 일 하는 놈이에요. 그리고 이 녀석은 임동추, 저 형님은 이 가게 주인인 천달봉 형님.”
노려보는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노금영은 발랄한 어조로 지껄였다.
“안녕하십니까. 백단영이라고 합니다. 금영이한테서 두 분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남자도 어색하나마 미소를 머금고는 가벼운 어조로 인사했다. 하지만 나와 천달봉은 그들처럼 가볍고 경쾌하게 인사를 할 수가 없었다. 천달봉은 아예 입을 떠억 벌리고서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 버린 상태였다.
그도 그럴 것이 노금영이 저 남자, 백단영을 소개할 때 뭐라고 했던가. ‘해결사 일 하는 놈’이라고 했다, 분명히. 그게 어디 콧구멍 후벼 파듯이 심드렁하게 지껄일 소리인가.
우리들 같은 밤일꾼들은 이 세상을 ‘낮 세계’, ‘밤 세계’로 나눈다.
나나 다른 밤일꾼들은 대부분 낮과 밤의 모습이 다르다. 좋게 말해서 먹고살기가 힘들어서 투잡을 뛰는 거다.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으며 일을 하는 서민들이 퇴근 후, 혹은 주말에 아르바이트를 뛰는 것처럼.
‘낮 세계’에 수십 가지 직종들이 존재하듯이 ‘밤 세계’에도 여러 가지 직업군들이 있다.
우리가 말하는 ‘밤 세계’의 직업군 중에서 유흥업은 제외된다.
유흥업에 종사하는 부류들은 우리들과는 아무런 접점이 없는 사람들이니까. 또 그 사람들은 굳이 낮과 밤의 세계를 구분하지도 않는다. 그 사람들에게는 밤에 하는 유흥업 관련 일이 유일한 생계 수단이니까.
‘해결사’와 우리들 ‘밤일꾼’, 그리고 ‘심부름꾼’.
이 세 가지가 우리가 나눈 ‘밤 세계’ 직업군의 분류다.
하는 일은 다 비슷하다. 의뢰인에게 돈을 받고 그들이 해 달라는 일을 해 주는데, 단어 뜻 그대로 해결사는 일을 ‘해결’해 주고, 밤일꾼들은 시키는 ‘일’을 하고, 심부름꾼은 ‘심부름’만 해 준다.
우리들 밤일꾼들은 그래도 밤일만 열심히 하면 그럭저럭 먹고살 순 있지만, 심부름꾼들이 버는 돈은 용돈 벌이에 불과하다. 맡는 일의 위험도 자체가 다르니 그만큼 버는 액수가 다르게 마련이다.
하지만 해결사들, 놈들이 버는 돈은 어마어마하다. 들리는 소문으론 해결사 짓을 하는 놈들은 거의 대부분 서울 한복판에 집 몇 채씩은 가지고 있다고 한다.
밤일꾼이나 심부름꾼들이 한 번씩 모여 술판을 벌일 때마다 나오는 소리가 ‘진짜로 돈 왕창 벌고 싶으면 해결사 일을 해야지’ 이 소리다.
하나, 놈들은 엄청난 돈을 받고 엄청나게 나쁜 짓을 한다.
우리들 밤일꾼들이나 심부름꾼이나 가끔씩 손에 똥오줌을 묻힐 때가 있지만, 해결사 놈들은 피를 묻힌다. 더럽긴 매한가지이지만 더러움의 급이 다른 거다.
해결사들은 사람을 해치고 죽이기도 한다. 의뢰인들은 사람 하나 찌르고 쑤셔 달라고, 목을 따 버리라고,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이 세상에서 소거해 버리라고 해결사에게 그 많은 돈을 안기는 거다.
돈 왕창 벌고 싶으면 해결사 짓을 해야 한다고? 그건 범죄자, 살인자가 되라는 소리다.
그런 피비린내 물씬 풍기는 일을 하는 놈이 지금 우리의 눈앞에 있다.
천달봉이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굳어 있는 것도 당연하다. 놈들에 대한 소문은 숱하게 들었지만 해결사 놈을 직접 눈으로 보는 건 처음일 테니까.
“무슨 미팅해? 분위기 왜 이래?”
노금영이 특유의 빈정대는 어투로 어색한 침묵을 깼다.
“좀 놀랍네요. 해결사가 이렇게 생겼구나 싶은 게. 그런데 의외로 멀쩡하게 생겼네요?”
내가 던진 무례함을 뒤집어쓴 직구에 옆에 앉아 있던 천달봉이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하, 멀쩡하게 생겼다는 말 많이 듣습니다.”
백단영은 넉살 좋게 웃으며 내 말을 자연스럽게 맞받아쳤다.
“그러게 말입니다. 확실히 돈 받고 사람 죽이는 놈처럼은 생기지 않았네요.”
“이래서 소문이 무섭단 겁니다. 해결사 전부가 사람을 죽이거나 하진 않습니다. 간혹 그런 악랄한 놈들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 살인은 하지 않아요.”
“사람을 죽이진 않아도 찌르고 쑤시는 정도는 한다?”
“그렇다고 건달 깡패 놈들처럼 무고한 사람을 해치진 않습니다. 그게 요즘 해결사 단체에서 만들어진 규칙 중 하나입니다. 단체에 속해 있는 이상 살인 의뢰도 받아들이면 안 되지요. 해결사들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해결사 일 해서 강남에 빌딩을 사고, 아파트를 사고, 해외에 별장을 사고, 이런 건 다 옛말이에요. 살기 힘든 건 우리들도 마찬가지죠.”
“돈 벌고 싶으면 해결사 단체인지 뭔지에서 나오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럼 아예 일을 할 수가 없어요. 우리 단체는 거래처를 확보해야 먹고살 수 있는 기업과 마찬가지예요. 단체, 그 자체가 하나의 회사가 되는 거지요. 의뢰인들이 그 큰돈을 선뜻 내주고서 일을 맡길 수 있는 것도 우리 단체를 전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뭘 믿고 개인에게 그런 큰일을 맡기겠습니까? 단체에 일을 맡기면 그쪽에서 알아서 모든 일을 해결해 주는데요. 그건 당신들, 밤일꾼들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건 그렇지. 하긴 그래. 노금영과 천달봉이 동시에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해서 당신네들이 하는 짓이 정당해지는 건 아닙니다.”
“구린내 나는 일 하는 건 그쪽이나 우리들이나 피차 마찬가지지요. 당신들이 깨끗한 일만 하는 거라면 왜 스스로를 ‘밤일꾼’이라고 구분하겠습니까?”
백단영은 한 마디도 지지 않고 내 말을 맞받아쳤다. 놈에게 쏘아붙이려 입을 열자, 천달봉이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사정없이 찔렀다.
“똥 싸고 있다, 똥 싸고 있어. 똘추, 네놈이 뭐 경찰이라도 되냐? 민중의 지팡이라도 돼? 똥 묻은 개새끼 겨 묻은 개새끼보고 지랄한다더니. 똥냄새 나는 건 둘 다 마찬가지다, 새끼야.”
“그럼 저 사람이랑 손 맞잡고서 깔깔깔, 호호호 미친년처럼 웃으면서 강강술래라도 해야 해요? 언제 우리가 해결사 놈들하고 친했다고. 형이 오늘 저 사람을 안 데려왔으면 평생 얼굴 볼 일 없었을 종자들 아닙니까. 그놈들은. 안 그래요? 달봉 형?”
주방에서 커피를 내리는 중인 천달봉은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야, 임똘추. 너 오늘 왜 이렇게 까칠해? 귀신 바가지 놈들한테 당한 화풀이를 빽가 놈한테 하는 거냐?”
“거기서 왜 그 얘기가 나와요!”
“그런 거 아니면 입 닥쳐라. 오공 본드로 붙여 버리기 전에. 빽가 놈이라고 이런 데 오고 싶어서 왔겠냐? 나와 20년 지기 친구만 아니었으면 제발 와 달라고 매달려서 부탁했어도 오지 않았을 거다.”
“그러니까 왜 이 사람을 불렀어요? 다른 날도 아니고 하필 회의하는 날에.”
“하하, 이 새끼! 오늘 유난히 귀여운 짓만 하는 게 그냥 조동아리를 확 찢어 버리고 싶어지네?”
노금영이 헛웃음을 치며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팔짱을 끼고서 가만히 앉아 있던 백단영이 입을 열었다.
“김태민이란 자가 우리 해결사 단체에 일을 의뢰했습니다.”
무거운 납덩이처럼 낮게 팍 내리꽂히는 목소리였다.
“뭐요? 김태민이 해결사 단체에 일을 의뢰했다고요?”
“예전 일이니까 의뢰했었다는 표현이 맞겠군요. 두 달 전인가 김태민이라고 이름을 밝힌 자가 커다란 나무 상자를 배달해 달라고 하더군요. 회장은 그런 일은 우리가 아닌, 밤일꾼이나 심부름꾼들에게 부탁하는 게 어떻겠냐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자는 꼭 우리들에게 일을 맡기고 싶다고 하더군요. 우선 선금으로 작은 거 두 장을 주겠다고 하면서요.”
백단영이 손가락 두 개를 활짝 펼쳐 들어 보였다.
“작은 거라면…… 백?”
“그럴 리가요. 우리 쪽에선 큰 거는 억, 작은 거는 천 단위로 칩니다. 작은 거 두 장이니 2천만 원이지요.”
은근히 사람 무시하는 말투였다. 너희는 작은 거 한 장을 백으로 치나 보지? 이러면서 깔아 보고 뭉개는 시선으로 우리들을 쳐다봤다.
선금으로 2천! 억, 소리가 나올 판이었지만 난 애써 태연한 척했다.
억 단위 돈 받고 일하는 입장에서 보면, 기껏해야 백만 원도 안 되는 돈 받고 일을 하는 우리가 우스워 보이긴 할 거다. 돈을 받아도 함께 일한 사람 수대로 나누어야 하니, 개인에게 돌아가는 돈은 고작 몇십만 원 정도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우리들은 ‘단체’나 ‘사무소’ 같은 게 따로 없어 중개 업체에 수수료를 떼일 염려가 없다는 것일까. ‘서울 지역’ 대표인 박천수가 대표로 나서서 일을 받아 오는 대가로 얻는 건 중간에서 떨어지는 떡고물 정도다. 간혹 의뢰인들이 일을 잘 처리해 줘서 고맙다며 백화점 상품권이며, 돈 봉투며, 한우 갈비 세트 같은 걸 보내오곤 하는데 그걸 전부 다 박천수가 받아먹고 입 싹 닦아 버리는 것이다.
박천수가 중간에서 받아 챙기는 게 사실 떡고물 수준이 아니란 걸 알고는 있지만, 아무도 대놓고 불평하지 않는다.
“그런데 나무 상자 하나 배달해 달라면서 그 돈을 주겠다고요? 그 자식, 미친 거 아닙니까?”
“저희들도 그렇게 생각했지요. 기껏해야 상자 하나 날라 주는 데 그 돈을 주겠다니 마다할 이유도 없고 해서, 회장이 일단 배달할 상자 사진부터 보내 보라고 했습니다. 솔직히 하는 일에 비해 너무 많은 돈을 주려 해서 의심도 됐지요. 바로 몇 분 뒤에 메일이 왔는데, 사진에 찍힌 상자가 뭐였는지 아십니까?”
나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관이었습니다.”
“관? 사람 죽으면 들어가는?”
“네, 바로 그 관요.”
천달봉이 그릇 위에 컵 몇 개를 담고서 부리나케 뛰어왔다.
“잘 마시겠습니다. 향이 참 좋네요.”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한 뒤에야 백단영은 컵 하나를 들어 올렸다.
“두 달 전이라면 우리한테 일을 의뢰하기 전의 일이잖아?”
“네, 그렇지요. 회장이 사진에 찍힌 관을 보고 그쪽 일은 못 하겠다고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회장 말이, 사진에 찍힌 관을 보는 순간 이건 아니란 느낌이 들더랍니다. 우리 쪽에서 거절당하자 당신들에게 일을 의뢰한 걸 겁니다.”
“하지만 그자가 우리에게 맡긴 건 과일 상자 배달 일이었는데요? 제주 감귤 박스, 나주 배 박스. 그런 종류요. 일을 맡긴 자들의 이름도 다 다릅니다. 전부 ‘태’ 자 돌림이라 동일인이 아닐까 의심은 했지만요.”
“당신들 생각대로 그자들 모두 동일인물일 겁니다.”
“그런데 당신네들한테는 커다란 관 하나를 배달해 달라고 의뢰했다면서 왜 우리들한테는 작은 과일 상자 몇 개를 배달해 달라고 의뢰했던 걸까요?”
천달봉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백단영이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놀란 토끼처럼 눈 동그랗게 뜨고서 어서 백단영이 입을 열기만을 기다리는 천달봉과는 달리, 나는 조용히 생각에 잠겨 있기 때문이리라.
“상자 안에 든 것은 뼈였지요.”
나는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정확히 두 번 두드리면서 입을 열었다.
“그래, 기식이 말로는 사람 뼈라고 하더라.”
“그럼 그 전에 우리들이 배달했던 상자 안에도 사람 뼈가 들어 있었지 않을까요?”
“그거야 알 수 없지. 그땐 상자를 열어 볼 생각도 안 했으니까.”
“만약에 말입니다. 처음, 귀면들을 맞닥뜨렸던 때. 우리들 각자가 배달했던 상자들 속에 들어 있었던 게 뼈라면요. 혹시 그건 한 사람의 뼈가 아니었을까요?”
천달봉이 양손을 짜악, 소리 나도록 마주쳤다.
“그럼 혹시 해결사 사무소 회장의 메일로 전송해 왔던 사진 속의 관은…….”
“네, 그렇습니다. 김태민은 관 속의 사람 뼈를 하나씩 해체해 작은 상자에 옮겨 담아 당신들에게 일을 의뢰했던 것입니다. 가명까지 써 가면서요.”
드디어 백단영의 입에서 속 시원한 대답이 나왔다.
“관을 배달해 달라고 하면 또 거절당할까 봐 그런 짓을 한 거군요.”
천달봉의 말에 백단영은 고개를 얕게 끄덕였다.
“탈바가지를 쓴 귀신들이 나타난다는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과일 상자 속에 든 어떤 물건을 노리고 물안개처럼 나타났다가 연기처럼 사라진다고 하더군요. 귀신 바가지, 당신들은 그것들을 ‘귀면’이라 부르지요? 어쨌든 귀면들이 노리는 것은 상자 속에 든 물건, 즉 해체된 누군가의 뼈였습니다.”
“그럼 대체 처음, 관 속에 들어 있던 건 누구의 뼈였던 겁니까?”
“임충식이란 자의 뼈라고 밝혀졌습니다.”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대답이 나올 것이라 생각했던 나는 적잖이 놀랐다. 이 남자, 백단영은 모든 걸 알고 있었다. 우리들이 골머리 앓아 가며 고민하고, 고민해 봐도 밝혀낼 수 없었던 진실을.
“그건 또 어떻게 알아낸 겁니까?”
“영 능력자를 불러다 우리들이 가지고 있던 관 사진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자 바로 관의 주인이 누군지 말해 주더군요.”
“그럼 귀면들은 왜 임충식이란 자의 뼈를 모으는 걸까요?”
내가 하려던 질문을 천달봉이 대신 해 주었다. 백단영이 천천히 커피를 마시며 뜸을 들였다. 그는 지나치게 느긋했다. 우리들은 그의 입에서 연신 비어져 나오는 충격적 진실에 표정이 일그러지고, 목소리까지 떨리는데. 백단영은 짜증이 날 정도로 여유로웠다. 카페에 커피 한잔 마시러 온 손님처럼.
“귀신 바가지들이 왜 임충식의 뼈를 모으냐고? 그거야 임충식이 그놈들 대빵이었으니까!”
드디어 대답이 나왔다. 하지만 이번의 대답은 백단영의 것이 아니었다.
딸랑거리는 문소리가 들리는 순간 웬 노인네 하나가 목구멍에 핏대를 올려 소리친 것이다. 검은 머리칼 한 올 없는 백발에 흰 수염, 외출용 두루마기까지 곱게 차려입은 노인이 성큼성큼 팔자걸음으로 우리들에게 다가왔다.
노인은 내 앞에 우뚝 멈춰 서서 내 머리 위에서 팔을 휘휘 저었다. 노인의 소매 끝에선 짙은 향냄새가 났다.
“너는 뭔 놈의 귀신들을 이렇게 많이 달고 다니냐? 한둘도 아니고 액세서리처럼 주렁주렁. 어럽쇼? 이거 봐라? 가만 보니 네놈 게 아니라 네놈 아비한테 붙어 있던 놈들이구먼? 자기들을 그렇게 만든 네놈 아비가 죽어 버렸으니 아들인 네놈한테 철썩 붙어 있는 게로구나.”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는 노인의 두 눈이 맑게 빛났다. 나이가 들어 흰자위의 색은 누렇게 변해 있고, 핏발이 서 있지만 두 개의 동공에는 알 수 없는 빛이 반짝거렸다.
나는 눈앞에 선 이 무례한 노인에게 한 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나를 빤히 바라보던 노인의 두 눈이 천천히 위로 향하더니, 내 머리 위를 바라보았을 때엔 숨이 멈춘 듯했다. 노인은 내 머리 위쪽 허공을 매서운 눈으로 노려보았다. 그 위에 뭔가 있다는 듯이.
“웬 정신 나간 노인네야?”
노금영이 다리를 꼬고 앉아 접시 위, 쿠키 부스러기를 껌처럼 씹으며 지껄였다.
노인이 홱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마주치자 노금영은 깜짝 놀라 어깨를 움찔 떨었다.
딸랑딸랑, 신경 거슬리게 하는 방울 소리가 울렸다. 잔뜩 몸을 움츠린 동수 놈이 “으으, 춥다, 추워”를 연발하며 안으로 들어섰다.
“동수야. 이 어르신, 아는 분이냐?”
그래도 나이 많은 영감이라고 어르신 대접해 주는 건 천달봉밖에 없었다.
“네, 일전에 얘기한 적 있잖아요. 제 이름을 휘림이라고 지어 주신 분요.”
“아아! 그 사이비 영감탱이!”
노금영이 호들갑스럽게 외쳤다. 나도 얼마 전까지 노금영과 마주 앉아 그놈의 사이비 영감탱이 손 좀 봐 줘야겠다고 이를 갈았었다. 하지만 나는 이를 득득 갈게 만들었던 사이비 영감탱이를 눈앞에 두고서도 말 한 마디 제대로 하질 못했다.
아버지 얘기를 했다, 저 영감이.
지금까지 내가 아버지 얘기를 누군가에게 말한 적이 있던가. 누구에게도 얘기한 적 없다. 난 아버지가 없는 사람이었다. 내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셔서 얼굴도 모른다고 말하고 다녔다. 그런데 몇 분 전에 처음 만난 저 영감이 내 아버지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는가 이 말이다.
온풍기를 틀어 놓아 가게 안의 공기가 꽤 훈훈해졌음에도 내 몸은 차갑게 식었다.
동수가 의자 두 개를 우리 쪽 테이블로 가져왔다. 쿠션이 푹신한 의자에는 노인을 앉히고, 딱딱한 나무 의자에는 자기가 다리를 쩌억 벌리고 쭈그려 앉아 눈알을 도록 도로록 굴렸다. 저놈도 백단영의 존재가 신경 쓰이는 거다.
“그런데 어르신, 아까 뭐라고 하셨습니까? 귀면들이 임충식이란 자의 뼈를 모으는 이유가, 임충식이란 자가 놈들의 우두머리여서라고 하셨지요?”
“어허! 요즘 젊은 놈들은 기본예절을 몰라, 기본예절을. 어른을 불러다 앉혀 놨으면 차라도 내와야 할 거 아닌가. 마실 거 한잔 내오지 않고 대뜸 질문부터 던지는 건 어느 나라 예의인고!”
“아이고. 죄송합니다, 어르신. 제가 미처 그 생각을 못 했네요. 얼른 가서 따뜻한 차 한잔 내오겠습니다.”
천달봉은 가게에 찾아오는 손님들한테 하듯이 허리를 굽실대며 후다닥 주방으로 뛰어들어 갔다.
평소답지 않은 떠들썩한 분위기에 어딘가 숨어 있던 구찌 녀석이 슬금슬금 기어 나왔다. 하지만 노금영이 무서워서 가까이 오진 못하고 벽 사이로 고개만 빠끔히 내밀어 우리들을 쳐다보았다.
구찌를 발견한 백단영의 얼굴에 푸근한 미소가 번졌다.
동물을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동수도 뒤돌아보며 쭈쭈쭈, 혀 짧은 소리를 내면서 손가락을 까딱였지만 구찌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좋아하는 동수가 부르는데도 꼼짝하지 않는 걸 보면 노금영이 어지간히 무서운가 보다.
금세 가게 안에 커피 향기가 가득 찼다. 안이 건조한 탓일까. 입 안이 바짝 말라붙었다. 하지만 내 몫의 커피는 한 방울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다.
내가 빈 커피 잔만 만지작거리는 걸 본 동수 놈이 소리도 없이 슬쩍 일어섰다. 그러고는 커다란 유리컵 한가득 물을 담아 와서는 내 앞에 내려놓았다.
“목마른 거 같아서요.”
빤히 놈을 바라보니까 불퉁한 어조로 툭 내뱉는다.
“그래, 고맙다.”
동수 놈은 두 손을 파카 주머니에 쑤셔 넣고는 고개를 푹 떨궜다. 부끄러움에 몸이 배배 꼬이는 10대 소년처럼. 망할 자식. 아주 대놓고 나 동추 형 좋아해요, 하고 광고를 해라. 광고를 해. 노금영이 가자미눈을 뜨고서 이쪽을 흘겨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일부러 노금영 쪽에는 시선도 주지 않고서 물만 홀짝홀짝 마셨다.
“허허! 네놈이 코오피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타는구나!”
천달봉이 정성껏 만들어 온 커피를 한 모금 입에 댄 노인이 테이블을 탕, 치며 요란하게도 감탄했다.
“입맛에는 맞으신지요?”
“그래그래. 이렇게 맛있는 코오피는 처음 마셔 본다. 맛나다, 참 맛나. 신이 내린 손재주다. 신이 내린 재주야. 어떻게 코오피를 타기에 이렇게 향이 입 안에 착착 감기누. 이렇게 맛난 코오피, 매일 두고 마셨으면 소원이 없겠구먼.”
“하하, 제 재주가 뛰어난 게 아니라 원두가 좋아서 그렇지요. 가실 때 원두 좀 드리겠습니다.”
저 영감, 남에게 뭘 얻어 내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사람 재주를 칭찬하면서 자기가 원하는 걸 얻어 내는 저 능수능란한 말솜씨 좀 보라지.
“야, 한똥수. 대체 저 사이비 영감은 왜 데려온 거야?”
성질 급한 노금영이 둘둘 만 휴지 덩어리를 동수에게 내던지며 짜증을 냈다.
“형이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귀면들에 대한 정보를 모으라면서요?”
“그래, 그랬지. 그렇다고 저런 정신 나간 영감을 데려오면 어떻게 하냐! 이 자식아.”
“예끼! 이놈! 어른한테 하는 말본새 좀 봐라!”
보다 못한 노인이 빽 소리를 내질렀다. 그야말로 기차 화통 삶아 먹는 소리에 고막이 터져 나가는 줄 알았다.
“에라이, 망나니 같은 놈아. 천하에 몹쓸 놈아. 네놈이 이렇게 싸가지를 밥 말아 처먹었으니 식구들조차도 짐 싸들고 도망쳤지!”
연이은 노인의 꾸짖음에 노금영이 얼굴이 허옇게 질렸다.
노금영의 유일한 피붙이인 누이, 노춘자가 더 이상 남동생 뒤치다꺼리 못 하겠다며 집을 나간 게 벌써 5년 전 일이다. 지금도 그리 똑바로 된 인간은 아니지만, 그 당시의 노금영은 인간 망종에 개망나니였다.
“어르신은 진짜예요. 시시껄렁한 사이비가 아니에요, 금영 형.”
동수가 어울리지 않게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믿고 따르는 어르신을 사이비라 욕하는 노금영에게 화가 나 있는 듯했다.
“에이! 니미!”
노금영은 벌게진 얼굴로 씩씩대며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자식, 성질머리하고는. 곧 화장실 문틈으로 담배 연기가 솔솔 새어 들어왔다.
박천수와 기식이가 도착했을 8시가 조금 넘은 시각. 바깥에선 눈이 내리고 있었다.
*
*
귀면의 등장에 밤 세계가 발칵 뒤집어졌다. 기이한 탈을 뒤집어쓴 존재들. 칼로 찔러도, 차로 짓뭉개도 죽지 않는 귀신들의 등장으로 가뜩이나 좋지 않던 ‘밤 세계’ 경기가 쨍쨍하게 얼어붙어 버렸다.
밤 세계 피라미드 가장 위에 존재하는 해결사들도 죽겠다, 죽겠어, 앓는 소리를 할 정도라는데 우리들이나 심부름꾼들은 오죽할까.
하지만 귀면 놈들 때문에 가장 많은 피해를 본 것은 다름 아닌 우리였다.
다행히 다들 본업이 있어 길거리에 나앉는 일은 없었지만 간간이 들어오던 수입이 사라지자 허리가 휘청거렸다. 그나마 나나 동수, 노금영처럼 혼자 벌어서 먹고사는 놈들은 좀 낫다. 식구들 줄줄이 딸린 한 집안의 가장들 입에선 나 죽겠다, 소리도 나오질 않았다. 앓는 소리, 약한 소리 할 것도 없이 그냥 딱 눈뜨고서도 죽을 맛일 터였다.
천달봉의 가게는 역 앞에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이 들어서서 매출이 반으로 줄었고, 동네에서 마트를 하는 박천수의 사정도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이런 상태가 계속 유지된다면 천달봉이나, 박천수나 순식간에 빚더미에 올라앉을 게 분명했다. 살기 어려워진 건 나 같은 총각들도 마찬가지였지만, 형님들 앞에선 앓는 소리 한 번 속 시원하게 낼 수가 없었다.
당장 생계가 위협받다 보니 우리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탈바가지들을 육시를 해서 잘근잘근 씹어 먹어도 모자랄 판이었다.
놈들을 잡아 없애야만 했다. 놈들을 이곳에서 싸악 몰아내, 고객들에게 이제 더 이상 놈들은 나타나지 않을 터이니 안심하시고 우리에게 일을 맡겨 달라. 우리들은 전보다 더 확실하게 고객님들이 맡기신 일을 처리해 드리겠다. 대대적인 홍보를 해야 할 것이다.
일일이 단골 고객들에게 선물 사 들고 찾아가 일을 따 오든,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어 광고를 하든 다시 밤일을 할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인들 못 할까.
적을 치려면 우선 적에 대해 알아야 하는 법.
우리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있어 보았자 시간 낭비에 불과할 것이라는 자체적인 판단하에 노금영은 해결사 친구에게 도움을 청했고, 동수는 자신의 이름을 개명해 준 노인을 찾아갔다.
그래서 오늘 우리들 밤일꾼과 해결사, 박수무당. 어울릴 것 같으면서도 어울리지 않는 존재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천달봉은 백단영이 우리들에게 해 주었던 얘기를 동수와 박천수, 기식이에게 해 주었다. 백단영이 해결사라는 사실을 알고 나처럼 노골적인 불쾌함을 드러낸 기식이가 가장 요란하고, 호들갑스럽게 놀라워했다.
“그럼 김태민이란 놈은 임충식이란 사람의 뼈를 해체해서 우리들에게 배달을 의뢰했다는 거예요? 우와아, 무서워라. 나 팔뚝에 소름 돋은 것 좀 봐.”
그러면서 기식이 놈은 좁쌀 같은 소름이 돋은 팔뚝을 옆에 앉은 동수에게 보여 주었다.
“어르신, 아까 임충식이란 자가 귀면들의 우두머리였다고 하셨는데요. 그 얘기를 좀 더 자세하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새롭게 밝혀진 사실에 사람들이 놀라워하건 말건, 백단영의 관심은 벌써 두 잔째 커피를 마시고 있는 노인에게 쏠려 있었다.
“그래, 그놈들은 임충식을 따르던 부하였다.”
“그런데 어르신은 그 사실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저놈이 귀면 놈의 손가락을 가져왔더군. 그걸 보고 알아냈다.”
노인이 곁눈질로 아직도 팔뚝을 벅벅 긁고 있는 기식이를 바라보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자 기식이 놈이 이를 드러내고 씨익 웃어 보였다.
“한 놈이 내 얼굴을 움켜쥐고 잡아당기기에 손가락을 물어뜯어서 가져왔지. 푹 썩어서 그런지 쉽게 잘리더라. 말린 육포 같은 게 짭짤한 맛도 제법이었고.”
놈이 그때 그 맛을 못 잊겠다는 듯 쩌업, 하고 입맛을 다셨다. 방금 전 먹은 샌드위치가 올라오려 했다. 속이 뒤틀리는 건 나뿐만이 아닌지 다들 큰 거 싸고 뒤 안 닦고 나온 사람들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임충식이와 그를 따르던 놈들은 민란을 일으키려 했던 것 같아. 그런데 믿었던 누군가가 관청에 밀고한 모양이다. 결국 그들은 민란이고 뭐고 해 보지도 못하고 처형당한 것 같아.”
“민란요? 국사 시간에 배웠던 홍경래의 난, 뭐 그런 거 말입니까?”
“그래. 제대로 죽어서 땅속에 묻혔으면 이미 오래전에 흙이 되어 사라졌을 놈들이야. 죽음을 각오하고 한데 뜻을 모았는데, 날개를 펼쳐 보기도 전에 시궁창 쥐새끼 한 마리의 밀고로 그리되었으니. 얼마나 원통하고 억울했으면 죽어서도 편히 쉬질 못하고 저런 꼴로 구천을 떠돌까. 그런데 놈들은 어떻더냐? 매가리가 하나도 없어서 금방이라도 픽 쓰러질 것 같지 않던?”
기식이가 냉큼 대답했다.
“아뇨, 쌩쌩하던데요. 아주 날고 기더라고요?”
“허어, 거참. 이상한 일일세.”
노인이 엄지손가락으로 턱밑을 살살 긁으며 혀를 찼다.
“죽은 놈들이야. 썩어서 흙이 되어 사라졌을 놈들이라고. 그런 것들이 산 사람처럼 살아서 움직인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돼. 그런데 매가리가 없는 것도 아니고 펄펄 뛴다고? 날고 기면서 사람들을 공격해? 혼백은 남아서 이승을 떠돌지언정 육신은 사라져. 몸뚱이란 건 혼이 빠져나가면 썩어 없어진단 말이다.”
노인은 이상하다, 이상해, 이 소리를 연발했다.
이미 두 번이나 마주쳤던 귀면들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놈들의 육신은 썩어 있었다. 썩어서 끔찍한 악취를 풍겼다. 간신히 사지가 붙어 있고, 뼈가 덜렁거리는 꼴을 해 가지고선 지치지도 않고 우리를 공격했다. 놈들은 오히려 멀쩡하게 살아서 움직이는 우리들보다 더 기운이 넘쳤다.
“설마 혼 덮어씌우기를 한 것인가.”
“혼 덮어씌우기라면 빙의를 말하는 겁니까?”
“빙의는 죽은 자의 영혼이 다른 사람의 몸으로 들어가는 현상을 말하는 거지. 혼 덮어씌우기란 건 죽은 자의 혼을 죽은 자의 몸에 덮어씌우는 거다.”
“그, 뭐냐.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그런 거요?”
“그것과 비슷하긴 해. 하지만 혼 덮어씌우기는 죽은 사람 자신의 혼이 아닌, 다른 이의 혼을 불러들여 시체에 덮어씌우는 거지.”
“그러니까 어르신 말씀을 종합해 보면 말입니다. 다른 이의 혼을 다른 이의 시체에 불러들여 덮어씌운다는 건데요. 대체 그런 짓을 해서 얻는 게 뭐랍니까?”
“아무 혼이나 끌어들이는 건 아냐. 시꺼먼 원한이 똘똘 뭉쳐서 자신이 인간이었음을 망각하고, 악귀가 되어 버린 혼을 덮어씌우는 거지. 그렇게 하면 떠도는 영에 불과하던 악귀가 살아 움직일 수 있으니까. 그렇게 만들어진 인형은 주로 도구로 쓰이곤 하지. 귀면들의 정체는 그렇게밖엔 설명이 안 되는군. 그런데 말이다. 분명 그것들을 부리는 도사가 놈들과 함께 있었을 텐데…….”
숨이 턱 막히는 듯했다. 사람들에게 들킬세라 나는 눈을 내리깔고 물을 마시는 척했다. 귀면 놈들을 부리는 도사라면 갈색 가면을 말하는 것이 분명했다.
“네, 있었어요. 제가 봤습니다.”
하지만 갈색 가면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낮고 굵은 목소리가 무겁게 내리깔린 침묵을 깼다. 빌어먹을 한동수였다.
“도사라면 살아 있는 사람을 말씀하시는 거지요? 그렇다면 제가 본 그놈이 맞을 거예요. 귀면 놈들처럼 가면을 뒤집어쓰고 있었지만, 그놈은 인간이 분명했어요.”
물 잔을 쥔 내 손에 힘이 들어갔다. 흰 관절이 도드라져 살갗을 뚫고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잔뜩 굳은 어깨마저 약하게 떨렸다. 사람들의 관심이 모두 동수에게 쏠려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래? 어떤 놈이었냐? 그놈은?”
“놈은 갈색 가면을 쓰고 있었습니다. 둥그런 눈 네 개가 뚫려 있고, 귀가 얼굴의 반만 한 가면요. 옷차림은 지금 제가 입고 있는 옷차림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키가 꽤 컸고 호리호리했어요. 저와 비슷한 20대로 보였어요.”
“예끼. 이놈아. 놈들을 부리는 도사가 20대 젊은이라고? 분명 네놈이 잘못 본 거겠지.”
“아뇨, 분명히 젊은 놈이었어요. 뭐라 딱 잘라 설명할 순 없지만 왜, 그 젊은 놈들 특유의 분위기란 게 있잖아요. 제가 다른 건 몰라도 사람 나이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맞혀요.”
“네놈 말대로 그놈들을 부리는 도사 놈이 20대 젊은 놈이라면…… 허허. 허허허! 모두에게 이 사실을 말해 주면 한바탕 난리가 나겠군!”
노기 띤 눈으로 테이블 바닥만 바라보던 눈을 들어 올린 순간, 맞은편에 앉아 있던 동수 놈과 눈이 마주쳤다. 먼저 눈을 돌려 딴청을 피울 줄 알았건만 놈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서 나를 바라봤다.
“그럼 어르신, 갈색 가면 그 새끼를 잡으면 모든 일은 해결되는 거겠지요?”
여전히 나를 바라본 채로, 동수 놈은 노인에게 질문했다. 연신 허공에 헛웃음을 치던 노인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그놈을 잡는다고? 네놈이?”
“못 잡을 것도 없지요.”
“이놈아! 귓구녕 박박 닦고 내 말 잘 들어라. 어설픈 애송이가 같잖은 실력으로 혼 덮어씌우기 따위를 했다간 어찌 되는지 아느냐? 혼을 덮어쓴 시체에게 산 채로 잡아먹힌다. 혼을 덮어쓴 시체는 인간이 아니다. 놈들은 굶주린 짐승이고, 아귀다. 혼 덮어씌우기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지만, 나는 절대로 그런 짓은 안 한다. 난 내 자신의 깜냥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알고 있으니까. 혼을 덮어쓴 시체를 만드는 것보다 그놈들한테 잡아먹히지 않고 끌고 다니는 게 더 어려운 법이다. 먹어도 먹어도 굶주려 있고, 조금만 틈을 보여도 달려들 게 분명한 아귀 새끼들을 끌고 다닌다고 생각하면 되는 거다. 그것도 열한 마리씩이나! 그런데 네놈이 그런 놈을 잡겠다고? 네놈이 대체 무슨 수로?”
“그래 봤자 그놈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잖아요!”
“에라, 이 돌대가리야. 그런 놈이 우리와 똑같은 사람일 리가 없지 않느냐. 그놈은 사람이 아니다. 인간이 아니란 말이다.”
“제가 사람이라서 그 새끼를 못 잡는다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럼 저도 사람 안 하렵니다. 사람 안 하고 그 새끼랑 똑같은 새끼가 될 겁니다! 어르신도 혼 덮어씌우기인가 뭔가를 하실 수 있다면서요? 그럼 귀면들 같은 새끼들을 만들어 주세요. 아니면 저한테 그 방법을 알려 주시면……!”
얼굴이 시뻘게져서 빽빽 외쳐 대던 동수 놈이 물벼락을 맞았다. 막내 놈이 형님들 앞에서 주제도 모르고 깝죽거리던 꼴을 지켜보고만 있던 노금영이 놈에게 컵 속의 물을 퍼부은 것이다.
“야, 한똥수. 이 새끼가 쥐약이라도 처먹었나. 이게 감히 어디서 지랄 깽깽이 짓이야, 지랄 깽깽이 짓이!”
“하지만 전 그 새끼를 잡고 싶다고요!”
“입 안 닥치냐!”
당장에라도 달려들 기세로 의자를 박차고 일어난 노금영을 옆에 있던 박천수와 기식이가 뜯어말렸다. 동수 놈은 퉁퉁 부푼 얼굴로 씩씩댔다. 놈의 얼굴에선 물이 뚝뚝 떨어졌다.
“너 이 새끼, 이딴 식으로 지랄할 거면 당장 꺼져!”
동수 놈도 더 이상은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섰다. 녀석은 씨익씨익 거친 숨을 내쉬면서 가게 밖으로 나가 버렸다.
“아오! 요즘 저 새끼 대체 왜 저런대요?”
“화도 나고 짜증도 나서 그렇겠지.”
“누군 짜증 안 나는 줄 아나. 귀면 새끼들 때문에 아주 미쳐 버리겠구먼!”
이제 그만해. 형인 네가 참아라. 박천수는 아이에게 하듯 잔뜩 흥분한 노금영을 달랬다. 동수가 뛰쳐나간 문가를 눈을 가늘게 뜨고 쳐다보던 노인이 길게 혀를 찼다.
“저 새끼, 저거, 저러다가 곧 죽는다. 이름을 바꿔 봤자 뭐 하누. 타고난 성격이 저 모양인데.”
그건 내 생각도 같았다. 동수 놈처럼 살다가는 제 명에 못 죽는다. 나도 저 나이 대에는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내가 노력만 하면 뭐든지 다 해결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세상에는 노력으로도 안 되는 일이 존재하더라. 분명 안 되는 일인데, 절대로 할 수가 없는 일인데 난 분명히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덤벼들다간 말이다, 골로 간다. 자신도 모르게 훅 간다. 진짜로.
“하지만 아까 한동수 씨가 말씀하신 대로, 갈색 가면을 쓴 ‘도사’를 잡으면 귀면들을 무력화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잠깐의 침묵을 깬 것은 백단영이었다.
“놈들을 부리는 놈을 어떻게 한다고 해서 그 아귀 새끼들이 갑자기 픽 쓰러지거나, 재가 되어 사라지거나 하진 않아. 먹이를 주고 살살 달래 가며 자기들을 부리던 놈이 없어졌으니 한층 더 포악해지겠지.”
“그렇다면요. 그 갈색 가면이라는 도사를 잡으면 그자가 귀면을 부리는 방법을 알아낼 수도 있겠지요?”
백단영은 사람들 눈치도 보지 않고 직구를 던졌다. 놈이 이곳에 온 목적은 저거였나. 친구인 노금영의 부탁으로 우리들에게 정보를 주기 위해 온 게 아니라, 해결사 ‘대표’로 정보를 얻기 위해 온 것이다.
“그걸 알아낸다고 해서 네 녀석들이 그것들을 부릴 수 있을 줄 아느냐?”
노인은 코웃음을 쳤다. 백단영도 씨익 웃었다.
“불가능할 것도 없지 않겠습니까. ‘도사’라 불리는 사람이 그자밖에 없는 것도 아닌데요.”
동수 놈이 목에 핏대를 올려 우기던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말대답이었다. 동수 새끼는 아무 생각 없는 철부지 애새끼인 거고, 저놈은 푹 삭은 구렁이다. 아니, 푹 삭은 구렁이는 저놈 뒤에 떠억하니 자리 잡고 있는 해결사 단체 회장인지 나발인지 하는 늙은이겠지.
“아까 내가 말했었지? 시체는 썩게 마련이라고. 그것들도 썩는다. 아마 지금도 계속 썩고 있을 거다. 곧 푹 썩어서 영 못 쓰게 될 날이 올 게다.”
노인이 입을 열어 중얼거렸다. 백단영은 이번에도 노인의 말을 즉각 받아쳤다.
“몸뚱이가 낡아 못 쓰게 되면 버리고 새 몸뚱이로 갈아 치우면 되는 것이지요.”
“사진에 찍힌 관만 보고도 그 관의 주인이 누군지 알아맞힌 영 능력자가 있다고 했겠다? 그래, 그놈이 그러더냐? 놈들을 부리는 방법만 알아내면 자기가 귀면들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노인의 말에 백단영은 대답 없이 웃기만 했다. 노인의 주름 자글자글한 입가에도 비릿한 미소가 번졌다.
나와 노금영을 제외한 사람들은 두 사람의 눈치만 살폈다. 어느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았다. 다들 조용히 백단영이나 노인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노금영이 코웃음을 치며 입을 뗐다.
“어쩐지 이상하다 싶었다. 빽가, 이 새끼가 분명히 아무 대가 없이 날 도와주겠다고 하는 놈이 아닌데 웬일인가 싶었다. 역시 아니나 다를까.”
“이 세상의 모든 기본 이치는 기브 앤 테이크다, 자식아. 우리가 너희들한테 돈 받고 정보를 파는 것도 아닌데 얻어 가는 거라도 있어야지.”
노금영은 대체 뭐가 그리 웃긴 건지 백단영의 어깨에 손을 대고 낄낄낄거리며 웃어 댔다.
슬슬 상황 정리가 필요할 때라 생각했는지 박천수가 “크흠 크흠 크흠흠!” 하고 요란하게 헛기침을 해 댔다.
“어쨌든 귀면들의 정체와 놈들이 노리는 뼈의 주인이 누군지, 그리고 놈들을 부리는 자의 존재는 뭔지 알아냈어.”
알아낸 게 아니라 밝혀진 거다. 그것도 우리들 ‘패밀리’에게서가 아닌 외부인들의 입에서.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일단 김태민, 그 새끼를 잡죠?”
박천수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노금영이 불쑥 끼어들었다.
“무슨 소리야? 갈색 가면 놈부터 잡아야지.”
“생각해 보세요. 귀면들은 우리들이 임충식의 뼈가 든 상자를 배달할 때만 나타났어요. 김태민이가 우리한테 뼈 배달 일을 의뢰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그놈들을 만날 수가 없는 거잖아요.”
커흠흠흠! 박천수는 아까보다 더 크게 헛기침을 해 댔다. 노금영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 아닌가.
“그래. 금영이, 네 말이 맞다. 김태민을 찾는 게 우선이겠구나. 그런데 그 자식을 무슨 수로 찾지? 얼굴도 모르는 놈을 찾으러 전국 팔도를 뒤지고 다닐 수도 없잖아.”
“김태민은 우리가 찾아낼 수 있습니다.”
눈 번쩍 뜨이는 말을 꺼낸 것은 백단영이었다.
“그렇습니까? 다행이네요. 덕분에 놈을 찾는 시간을 아낄 수 있겠군요.”
“하지만 저희도 흙 파먹으면서 이 짓을 하는 건 아니라서 말입니다.”
“아! 그, 그렇지요. 저희도 염치가 있지 어떻게 공짜로 그런 일을 부탁드리겠습니까!”
말을 듣고 있던 노인도 질세라 손으로 테이블을 탕탕, 쳤다.
“허어! 허어어! 주는 게 있으면 받는 것도 있어야 하거늘!”
결국 자기도 우리들이 원하는 정보를 주었으니 돈을 달라 이거다. 박천수의 표정이 눈에 띄게 일그러졌다. 생각지도 않은 돈이 나가게 생겼으니 울상이 되는 게 당연하다.
“자자, 심각한 얘기는 끝났지요? 이렇게 다 같이 모이는 것도 쉽지 않은데 그냥 헤어지기 아쉽지 않아요?”
기식이가 특유의 유쾌한 화법으로 분위기를 환기했다.
녀석이 자기 가게에서 고기를 좀 가져왔다며 운을 띄웠고, 박천수가 이럴 줄 알고 술도 좀 가져왔다면서 엉덩이 들썩들썩하는 사람들을 눌러 앉혔다.
“흣흠흠, 밤이 늦어서 슬슬 가 봐야 하는데.”
“시골 어머니께서 술을 직접 담가 보내셨는데 맛이 아주 기가 막힙니다. 맛이라도 보고 가세요.”
“직접 담근 술이라고?”
일행 중 가장 술 잘 마시게 생긴 노인이 새치름한 표정으로 내숭을 떨자, 박천수는 비장의 카드를 내밀었다.
아니나 다를까, 노인의 눈이 번쩍 빛났다. 술 좋아하게 생긴 양반치고 시골에서 직접 담근 술에 안 넘어가는 양반 못 봤다. 노인에게 맛난 술을 먹여 옆에서 살살거리며 돈을 좀 깎아 보려는 심산이 분명했다.
“저는 가 보겠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들 왜 가냐고, 술판은 이제부터 시작인데 어딜 가냐고 나를 눌러 앉히려 했다.
“몸 상태가 영 안 좋아서요. 그리고 집에 있는 애가 제가 들어가기 전까진 절대로 안 잡니다. 아마 아직 밥도 안 먹고 있을 거예요.”
“집에 있는 애? 너 여자랑 동거하냐?”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럼 전 갑니다. 고기는 형님들끼리 맛있게들 드세요.”
다른 때에는 몰라도 술자리에선 집요할 정도로 붙잡고 놔주질 않는 인간들이다. 일행 중 가장 끈질기고 집요한 노금영이 나서기 전에, 나는 얼른 마지막 인사를 하고는 가게 밖으로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밖으로 나온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온 세상이 순백색이었다. 8시 무렵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은 아직도 펑펑 내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몸을 잔뜩 웅크리고서 발길을 재촉하는 모습이 보였다. 구두를 신고 있는 터라 몇 걸음 걷지도 않았는데 금세 발이 축축하게 젖었다.
길옆 훤히 불을 밝힌 가로등 밑에 떡볶이며 어묵, 튀김 등을 파는 포장마차가 있었다. 포장마차에서 새어 나오는 음식 냄새에 배 속이 요동을 쳤다. 저녁으로 먹은 거라곤 샌드위치와 커피밖에 없으니 당연했다.
어묵이라도 하나 먹고 갈까. 아냐. 됐어. 그냥 가자. 그래도 어묵 하나만, 아니면 어묵 국물이라도 좀 먹었으면 좋겠는데.
나는 고개를 크게 흔들어 유혹을 떨쳤다.
집으로 가야 한다. 오늘은 나 혼자가 아니니까.
나민이가 학원에서 돌아왔을 시간이다. 밤늦게 집에 돌아와서 배가 고플 텐데도 녀석은 아무것도 먹질 않는다. 자기가 사 들고 온 과자나 라면 같은 걸로 주린 배를 채우고는 내가 마련해 준 작은 방에 들어가 공부를 하며 나를 기다린다. 내가 그렇게 나 없어도 밥해 먹고, 뭘 만들어 먹고, 나 기다리지 말고 잘 때 되면 자라고 해도 말을 들어 먹질 않는다.
얹혀살게 된 사람 입장에서는 집주인 눈치를 보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만, 녀석의 조심스러움에는 질릴 정도다. 오늘도 또 컵라면이나 소시지 따위를 먹고서 날 기다리겠지.
어린놈이 좀 뻔뻔한 구석이 있어야지. 왜 그렇게 눈치를 봐? 눈치를 보긴. 사람 부담스럽게.
하지만 내 입가에는 미소가 번져 있었다.
은근히 좋은 거다. 솔직하게 말하자. 진짜로, 정말로 좋다.
집에 누가 있다는 거, 내가 들어갈 때까지 누가 날 기다려 준다는 거.
나는 핸드폰을 꺼내 집에서 날 기다리고 있을 나민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두어 번의 수신음이 이어진 뒤, 녀석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울려 퍼졌다.
“나민아, 저녁은 먹었어?”
[네, 대충 먹었어요. 선생님은요?]
“아니, 난 아직 안 먹었다. 배고파 죽을 것 같은데. 너 요리할 줄 안다고 했지? 그럼 김치찌개도 끓일 수 있나?”
[만들 수 있어요. 맛은 보장 못 하지만요.]
“그럼 김치찌개 좀 만들어 줄래? 얼큰한 김치찌개가 먹고 싶어 죽을 것 같다. 냉장고 열어 보면 재료는 다 있을 거야.”
[알았어요. 만들어 놓을 테니까 빨리 오세요. 그리고 눈이 많이 오니까 조심해서 오시고요.]
만들어 놓을 테니까 빨리 오세요. 녀석은 아무렇지 않게 한 말이겠지만 듣는 나는 왜 이렇게 부끄러운지 모르겠다. 어린 녀석의 낭랑한 목소리가 닿는 귓가며, 가슴께가 막 간질간질하다.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더니, 포장마차 앞에 누군가 서서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어묵 꼬치를 씹으면서 나를 멀뚱히 보고 선 저놈은 동수다.
기가 막혀서. 형님들 앞에서 목청 높여 소리 지르다가 물벼락 맞고 쫓겨난 놈이 근처 포장마차에서 어묵이나 씹고 있다. 당장 뭐라도 때려 부술 기세로 뛰쳐나갔던 놈이.
놈의 멍청한 얼굴을 보기도 싫어서 이번엔 내가 먼저 시선을 돌렸다. 역을 향해 걷고 있으려니 뽀득뽀드득, 요란스러운 발소리를 내며 동수 놈이 쫓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벌써 집에 가는 거예요? 기식이 형이랑 천수 형님이 고기랑 술 준비했던데.”
금세 따라와 옆에 서서는 놈은 내게 아무렇지 않은 척, 툭 말을 던졌다.
고개를 돌려 옆에 선 동수 놈을 바라보았다. 털이 잔뜩 달린 점퍼 모자를 뒤집어쓰고 있는 놈은 한 마리 곰처럼 보였다.
“왜 말했냐? 내가 분명 형님들한테는 말하지 말라고 했냐, 안 했냐?”
“갈색 가면, 그 새끼 얘기를 말하는 거예요? 어차피 조만간 다 알게 될 사실이잖아요.”
“됐다. 네놈을 믿은 내가 병신이지. 꼴도 보기 싫으니까 꺼져라. 한 대 쥐어 패기 전에.”
옆에서 후우욱, 깊게 내쉬는 숨소리가 들렸다.
“그놈은 내가 잡을 거예요.”
“아까 노인도 말했었지. 네놈이 대체 무슨 수로?”
녀석을 보고 소리를 내 비웃음을 흘렸다. 내가 내뿜은, 혹은 녀석이 내뿜은 하얀 입김 사이로 녀석의 굳은 얼굴이 보였다.
“형, 나요, 한다면 하는 놈이에요.”
난 대놓고 코웃음을 쳤다. 웃기지 마, 새끼야. 지금은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지? 마음먹은 대로 뭐든지 다 될 것 같지? 하지만 이 자식아, 세상은 잔인하다. 네놈이 생각하는 것보다 몇 배, 수십 배, 수백 배 잔인하고 차갑다. 네놈처럼 생각 없이 무모하게 덤벼드는 놈은 정글 곳곳에 숨어 있는 육식동물들에게 잡아먹히기 십상이다.
동수 놈은 더 이상 나를 따라오지 않았다. 내가 두 갈래 길로 접어들 때까지 놈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털 달린 커다란 점퍼 모자를 뒤집어쓴 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걸었다. 옷깃을 여미고, 축축하게 젖어 차갑게 얼어 가는 발을 열심히 움직여 집으로 향했다. 이렇게 열심히 집으로 향한 적은 성인이 된 이후,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