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2. 임충식의 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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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장까지 얼어붙을 것 같은 추위였다.
뉴스에서는 몇십 년 만의 강추위라고 했다. 하지만 뉴스에선 언제나 그런다. 몇십 년 만의 더위, 몇십 년 만의 기록적인 폭설.
<어째 우리나라 날씨는 매년 신기록을 세우지 못해서 안달 난 것 같지 않냐?>
대학 동기 중 한 놈이 술자리에서 지껄이던 말이 떠올라 난 픽, 코웃음을 쳤다.
손을 번갈아 가며 점퍼 주머니에서 꺼내 호오호오 불며 약속 장소를 향해 열심히 달렸다. 운동화 속 발가락 끝까지 꽁꽁 얼어붙었지만 벌겋게 언 얼굴엔 미소만 가득했다.
이윽고 약속 장소가 눈앞에 나타났다. 야구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담배를 피우고 있는 비쩍 마른 녀석이 그 앞에 서 있었다.
“야! 석진경!”
크게 소리쳐 녀석의 이름을 부르자 녀석이 고개를 돌려 나를 비스듬히 쳐다보았다. 한달음에 달려가 녀석의 앞에 섰다. 쓸개 빠진 놈처럼 싱글벙글 웃으면서.
진경이 녀석은 마지막 한 모금을 깊게 빨아 마시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담배꽁초를 버릴 쓰레기통을 찾는 것이리라.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 이렇게 추운 날씨에 밖에서 뭐 하는 짓이냐, 이게?”
나는 녀석의 팔을 잡아끌었다. 번쩍번쩍한 광택이 도는 싸구려 점퍼 겉면은 바짝 얼어붙어 있었다. 쓰레기통을 찾던 녀석은 다시 담배 끄트머리를 입술 사이에 물고는 안으로 끌려 들어왔다.
“어유, 어서 와요. 추우니까 안쪽으로 들어가 앉아요.”
빈 접시들을 치우던 중년의 여자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며 안쪽 자리로 안내했다. 나는 점퍼도 벗지 않고 벽에 매달린 전열 기구에 얼어붙은 손을 갖다 대며 콧물을 훌쩍거렸다. 석진경은 테이블 위의 재떨이에 물고 있던 담배를 비벼 끄고는 음식을 주문했다.
삼겹살 2인분에 소주 한 병. 우리들이 고깃집에 오면 늘 주문하던 메뉴였다. 양이 너무 적은 거 아니냐고 말하려다, 먹다가 모자라면 추가 주문하면 된다는 생각에 입을 닫은 채 자리에 앉았다.
간단한 밑반찬 몇 가지와 함께 주문한 소주가 나왔다. 난 소주병을 들어 마개를 따고는 두 개의 잔에 술을 따랐다. 진경이 놈은 건배하자는 소리도 없이 홀랑 술을 털어 넣기 바빴다.
“너 인마, 왜 이래? 술도 잘 못 마시는 놈이. 그렇게 초장부터 달리다가 너 또 그때처럼 바닥에 엎어져서 개구리헤엄 친다?”
대학 신입생 환영회 때 있었던 일이다. 선배들이 억지로 권하는 술을 묵묵히 받아 마시던 녀석이 갑자기 뒤로 넘어가더니, 바닥에 엎어져 팔다리를 허우적대며 개구리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아직도 선배들과 술을 마실 때마다 나오는 단골 우스갯소리였다. 술자리에서 이 얘기를 들을 때마다 허허허, 웃던 녀석이었다.
하지만 녀석은 웃지 않았다. 내가 실실 웃으며 지껄인 말에는 관심도 갖지 않고서,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소주병만 들어 올렸다.
잔에 콸콸콸 부어 톡 털어 넣고, 또 넘치도록 부어 단숨에 훅 털어 넣는다. 보다 못한 나는 녀석의 손에서 소주병을 낚아챘다.
“미쳤냐? 술 처마시다가 골로 가고 싶냐?”
“그래, 개새끼야! 술 처마시다가 뒈질 거다! 씨발!”
녀석은 눈을 부릅뜨고 날 노려보며 육두문자를 내갈겼다. 핏발 선 두 눈에선 살기마저 느껴졌다. 나는 깜짝 놀랐다. 술에 취한 동기 녀석이 온갖 욕을 내갈기며 시비를 걸 때에도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주정뱅이를 타이르던 녀석이었다. 언제나 웃고 있고, 어떤 상황에서건 큰소리 한 번 내는 법이 없어 동기들이 진경 보살이라는 별명까지 붙여 주던 놈이었다.
내게서 다시 소주병을 가져간 놈은 아예 병나발을 불었다. 소주병 입구에 입술을 대고서 남은 술을 물처럼 들이켰다. 말릴 새도 없이 녀석은 순식간에 병을 비웠다. 그러고는 빈 병을 허공에 흔들며 “아줌마, 소주 한 병 더 줘요!”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가게 안 손님들은 다들 한 번씩 이쪽을 쳐다보았다. 나이 지긋한 손님들 중에는 인상 쓴 얼굴로 우리들을 쳐다보며 혀를 끌끌 차는 사람도 있었다.
점원이 소주와 고기를 가져왔다.
놈은 말없이 소주병 마개를 땄고, 나는 불판 위에 고기를 올렸다. 고기 옆에 잘 익은 김치와 양파, 마늘도 가지런히 올려 뒀다. 진경이 놈은 불판 위에 구운 양파를 제일 좋아했다.
“그래그래, 이 자식아. 군 생활 한번 거지 같지? 더럽게 좆같지? 군대 갔다 온 복학생 선배들 말 들어 보면 죽을 만큼 힘들다 하더라. 하지만 아무리 힘들고 더러워도 어쩌겠냐. 버텨야지. 자, 먹어. 일단 배불리 먹고, 이 형님한테 속에 있는 말, 다 털어놔라. 안 그래도 오늘은 날밤 깔 작정하고 나왔으니까.”
익은 고기를 죄 녀석 쪽으로 밀었다. 노릇노릇 잘 구워진 김치와 양파도 함께 고기 위에 얹었다. 그러고서 나도 구운 김치에 돌돌 만 고기를 입 안에 넣었다.
그때, 입 안에 넣은 고기를 우물우물 씹던 때.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놈은 그 좋아하던 구운 양파엔 손도 대지 않고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취기가 올라 벌겋게 충혈된 눈을 하고서. 나는 깜짝 놀랐다. 벌건 눈으로 나를 노려보는 석진경의 얼굴이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야, 석진경. 너 무슨 일 있냐?”
기름기 잔뜩 묻은 손가락을 물티슈에 닦으며 물었다.
녀석의 눈매가 일그러졌다. 벌건 눈에서는 축축한 물기까지 배어 나왔다. 소주잔을 쥔 녀석의 앙상한 손가락이 애처롭게 떨렸다. 앙다문 입술도 허옇게 각질이 일어나 껍질이 까지고, 터져서 피딱지가 말라붙어 있었다.
무엇이 녀석을 이렇게 만들었나. 그 총기 넘치고 생명력이 넘쳐흐르던, 건강하고 싱그럽던 내 자랑스러운 대학 동기를. 내 친구를. 내가 처음으로 좋아하고 사랑했던 소중한 이를.
“이 자식아, 너 지금 얼굴 꼴이 어떤지 아냐? 꼭 피죽 한 그릇 못 얻어먹은 피란민 같다. 무슨 일 있는 거지? 군대에서 고참 새끼가 괴롭히기라도 하냐? 대체 어떤 새끼야?”
녀석을 저렇게 만든 게 어떤 씹어 죽일 새끼라면, 그 새끼를 잡아 쳐 죽일 생각이었다. 그 정도로 분노했다. 내 친구의 눈에 핏발 선 절망만을 가득 채운 그놈을 잘게 찢어 죽이고 싶었다. 녀석이 저렇게 마른 고목나무같이 말라비틀어진 이유가 군대 내에서의 흔한 괴롭힘 때문이었다면.
“나…… 사람을 죽였다, 동추야.”
하지만 그런 단순한 이유가 아니었다. 녀석이 피고름처럼 쥐어짜 낸 고백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농담이지? 나 웃기려고 농담한 거지?”
“농담하는 거라면 얼마나 좋겠냐. 이 모든 게 거짓이라면.”
녀석은 술잔을 홱 들어 올려 술을 단숨에 비웠다. 급하게 들이마신 술이 독이 되어 녀석의 배 속을 뒤집어 놓은 듯했다. 녀석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찡그린 눈꼬리에 닿은 속눈썹 위에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나도 덜덜 떨리는 손으로 소주잔을 들어 올렸다. 한 번에 술을 들이마신 뒤, 우선 녀석의 빈 잔에 술을 따라 주고 내 잔에 술을 부었다.
우리는 건배도 하지 않고 각자의 술을 위 속에 들이부었다. 한참 동안 말도 없이 우리는 술만 들입다 퍼부었다. 경쟁이라도 하듯이. 어느 순간부터 술을 마시는 것인지, 술이란 이름의 독을 퍼붓는 것인지 모를 정도가 되었다. 속이 쓰렸다. 뒤집히고 뒤틀렸다. 한 번씩 신 위액이 역류해 목구멍을 태웠다.
“거기는 밤이 되면 주위엔 억새 잎밖에 보이지 않아. 바람이 불 때마다 달빛을 받아 노랗게 발광하는 억새 잎들이 살랑살랑 흔들려. 사사삭 사사삭, 조심스럽게 소리를 내면서. 장관이지. 나 혼자만이 거기에 존재하는 것 같아. 그래서 그만큼 위험한 거야.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까. 뭔가가 살금살금 다가와서 내 뒤를 덮쳐도 모를 테니까.”
석진경은 술에 만취해 배배 꼬인 혀를 열심히 놀리기 시작했다. 친구들과의 술 내기에서 한 번도 져 본 적 없던 나도 취기가 오르기 시작했을 즈음이었다.
“소리가 났어. 억새 잎이 바람에 흔들려 나는 것과는 다른 소리가. 들짐승이라 생각했지. 원래 거기는 짐승들의 세상이었으니까. 평소였다면 그렇게 생각했을 거야. 하지만 그날은 어째서인지 들짐승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뭔가가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자꾸만, 자꾸만 다가오는 거야. 겁이 덜컥 났어. 저게 들짐승이 아니면 어떻게 하지? 고참들 말대로 위에서 내려온 간첩이라면? 나를 죽이기 위해서 다가오는 거라면? 나는 총을 꽈악 움켜쥐었어. 대체 무슨 생각으로 총을 장전한 건지 모르겠어. 아마 본능이었겠지.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졌어. 총구를 소리가 나는 방향에 겨누고서, 빌고 또 빌었어. 지나가는 들짐승이길. 제발 아무 일 없기를. 그런데 어느 순간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딱 멈췄어. 그리고 난 억새들 틈 사이로 번쩍이는 두 개의 눈을 봤어. 마치 수풀 속에 숨어서 먹이를 노리는 맹수처럼 숨을 죽이고 나를 노려보더라고. 난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당장 거기서 두 손 들고 나와. 쏴 버리기 전에’ 이렇게 지껄였어. 후욱후욱, 거칠게 내쉬는 숨소리가 들리더라. 그건 사람의 숨소리였어. 들짐승의 숨소리가 아니라. ‘당장 나와!’ 소리를 치자, 갑자기 그게 ‘크아앙!’ 소리를 지르면서 내게 달려들었어. 나는 본능적으로 방아쇠를 당겼지. 어쩔 수 없었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그게 날 죽일 수도 있었으니까. 난, 나는…… 그냥 살고 싶어서 그런 거야. 내가 먼저 쏘지 않았으면 내가 당했을 테니까…….”
“정당방위야, 그건. 넌 너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그런 거잖아.”
“내가 쏜 건 인근 마을에 사는 여자였어. 동네에서 유명한 미친 여자였어. 밤이고 낮이고, 들짐승처럼 이 산 저 산으로 뛰어다니는.”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커다란 망치로 머리를 두드려 맞은 것 같았다. 떨리는 입술 사이로 비어져 나오는 깊고 깊은 한숨이 술잔 위로 떨어졌다.
“총소리를 듣고 땡땡이치던 고참 놈이 뛰어왔지. 그리고 봤어. 피를 콸콸 흘리면서 죽어 있는 여자를. 그놈이 묻더라. ‘네가 이랬냐?’ 난 그 자리에 선 채로 눈물 콧물, 오줌까지 지려가면서 고개를 끄덕였어. 고참 놈은 소름 끼치도록 침착하더라. 아무 말도 없이 쭈그려 앉아서 여자가 죽은 것을 확인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한다는 말이 뭔지 아냐? ‘묻어 버리자.’”
온몸에 소름이 쫘악 돋았다. 뒷덜미까지 찌르르 울렸다.
고참이란 놈은 닭똥 같은 눈물만 뚝뚝 흘리면서 덜덜 떠는 석진경을 억지로 잡아끌고서 여자의 시체를 엎고 인근 야산으로 향했다고 한다. 그러고서 석진경에게 망을 보라고 시키고는 여자를 파묻었단다.
<오늘 일은 없었던 일이다. 다 잊어. 뒈지기 싫으면 무조건 잊어. 알았냐? 오늘 일에 대해서 입이라도 뻥끗했다간 내가 네놈 머리통을 깨부술 거다.>
온몸이 땀투성이가 된 고참은 석진경을 협박했다.
석진경은 똑똑히 기억한다 했다. 고참 놈의 희번덕거리던, 비린내 풍기던 두 눈을. 그는 석진경을 위해서 그 일을 덮어 주려 했던 것일까.
“난 봤어. 죽은 그 여자의 머리가 깨져 있는 걸. 희게 질린 얼굴이 피 떡이 돼서 일그러져 있는 걸. 입고 있는 옷은 찢어져 있었고, 다리 사이에도 피가 말라붙어 있었어. 그 여자는 내가 쏘기 전, 누군가에게 몹쓸 짓을 당했던 거야. 그 여자야말로 살기 위해서 도망쳤던 거지.”
결국 축축하게 젖은 녀석의 눈에선 눈물이 또르륵 굴러떨어졌다. 녀석은 끄윽끄윽 소리를 내며 오열했다. 앙상하게 마른 어깨가 경련하듯이 떨렸다.
“내가 그 불쌍한 여자를 도와줬어야 했는데, 제길. 그런데 난 살려 달라고 소리를 지르면서 달려드는 여자를 쏴 죽이기나 하고……. 미친 새끼. 다 큰 사내새끼가 뭐가 그리 겁이 나서. 뭐가 그리 무섭다고…….”
놈은 한참을 그렇게 울었다. 나는 그저 말없이 앉아만 있었다. 온갖 감정들, 생각들이 빠르게 교차했지만 말을 아꼈다.
손님들이 하나둘씩 일어나 사라지고, 또 다른 손님들이 들어와 자리를 채웠다가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중년의 여점원은 우리들에게 무슨 사정이라도 있겠거니, 지레짐작하고서 우리들의 테이블 쪽으로는 일부러 발걸음 하지 않았다. 밑반찬으로 나오는 미역국을 따뜻한 새것으로 가져다주기만 했다.
“내 얘기 들어 줘서 고맙다, 동추야.”
울음이 잦아들기 시작할 무렵, 석진경이 얼굴만큼이나 퉁퉁 부은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한껏 토해 내고, 한껏 쏟아 내자 좀 홀가분해졌는지 녀석의 얼굴에 그제야 서글픈 미소나마 번졌다.
지금까지 애써 참았던 눈물이 왈칵 터져 나올 것 같았다. 나도 오열하는 녀석을 붙잡고서 울고 싶었다. 지금 녀석이 지고 있을 죄의 무게를 감히 짐작도 할 수가 없어서 마냥 슬펐다.
대학 교정에서 석진경을 처음 보는 순간 사랑에 빠졌고, 녀석에 대해 알아 가면 알아 갈수록 더더욱 사랑의 감정은 깊어지기만 했다.
녀석이 좋았다. 한없이 푸근하고, 자상하고, 따뜻하기만 한 동갑내기 친구가 정말로 좋았다. 빛으로 둘러싸여 있는 것만 같은 눈부시게 반짝이는 친구가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그런데도 그토록 사랑했던 녀석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해 줄 수 있는 것이라곤 말없이 앉아서 녀석이 쏟아 내는 고백을 들어 주는 것뿐.
“진경아, 널 위해 내가 뭘 어떻게 해 줘야 하냐?”
녀석은 잠깐 동안 말이 없었다. 물기 촉촉하게 어린 눈으로 가만히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너한테 뭘 어떻게 해 달라고 말한 게 아냐.”
알고 있었다. 녀석은 그냥 누군가에게 고백하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그 누군가가 나였다. 녀석의 20년 지기 친구라던 맹식이인지 봉식이인지 하는 놈도 아니고, 사촌 형도 아니고, 학교 선배들도 아니고, 어머니도 아니고 나였다. 녀석은 나를 선택했다.
“줄곧 동추, 너한테 털어놓고 싶었어.”
“그 사건은 그냥 사고였잖아. 어쩔 수 없는 일이었잖아.”
“내가 그 여잘 죽였어. 사고건 어쨌건 난 사람을 죽인 놈이야. 난 살인자야.”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 친구 석진경은 사람을 죽였다. 눈앞에서 파랗다 못해 흙빛으로 질려서 덜덜 떠는 놈이 어떤 여자를 죽였다.
죽은 여자가 내 가족이라 해도 그건 사고였다고 말할 수 있는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어느새 주위는 텅 비어 있었다. 점원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영업시간이 끝났음을 알렸다. 나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석진경을 부축하고서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밤거리를 걸었다.
척 봐도 30대는 되어 보이는 삐끼가 새파랗게 어린 우리들에게 “형님들. 나이트 안 가실랍니까? 오늘 물 끝내주는데” 하면서 다가왔다. 털모자를 뒤집어쓴 중년 여자가 건네주는 반나체의 여자 사진이 인쇄된 안마방 전단지를 받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내 점퍼 주머니는 곧 각종 유흥업소 전단지들이 가득 들어찼다.
가게에서 소주와 과자 봉지 몇 개를 들어 계산하고, 유흥가 골목이라면 어디에나 존재하는 여관으로 기어들어 갔다.
퀴퀴한 곰팡이 냄새 나는 여관방에 놈을 내팽개치듯 내려놓자, 석진경은 물속의 개구리처럼 헤엄쳐 다녔다. 그 꼴을 보고도 웃을 수가 없었다. 한숨만 비어져 나왔다.
우리는 옆방에서 들려오는 자지러지는 여자의 교성을 배경 음악 삼아, 다시 소주잔을 기울였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긴 걸까. 나, 정말 착하게 살았던 것 같은데. 우리 엄마, 어디 가서 자식 자랑이라도 실컷 하라고 착하고 바르게 살려고 무진장 노력했는데…….”
석진경은 세상을 탓하고, 무심한 하늘을 탓하고, 이 세상 모든 것을 탓하다가 불쌍한 엄마 얘기를 하고, 또 울고, 또 중얼거리고, 또 펑펑 울어 댔다.
녀석은 어느 순간 픽 쓰러져서는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나는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쓰러지듯 잠이 든 녀석을 지켜보았다. 술기운에 함락되어 완전히 넋이 빠진 상태로 엄마 배 속 태아처럼 몸을 둥글게 웅크려 만 석진경을 밤새도록 쳐다보았다.
갖가지 감정들이 치밀어 올랐다.
보기만 해도 안쓰러운 녀석의 동그란 머리를 쓰다듬고 싶었고, 녀석의 왜소한 어깨를 안고서 내 몸의 온기를 나눠 주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지금 녀석의 몸에 손을 댔다간 참지 못하고 녀석의 입술에 키스할 것이 분명했으니까.
지금 이 순간을 기회라고 생각하는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지금이 바로 저 녀석을 네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회라고 속삭이는 내 마음속, 악마를 찢어 죽이고만 싶었다.
어둠의 수면 위로 새벽의 빛이 천천히 떠올랐다. 창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새벽빛에 비친 녀석은 갓 태어난 알몸뚱이의 동물 새끼 같았다.
*
*
칼끝으로 쿡쿡 쑤시는 것처럼 속이 쓰려서 눈을 떴다. 주위엔 온통 까만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나는 손을 뻗어 베개 근처에 놓아두었던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그런데 어째 버튼을 아무리 눌러 봐도 화면에 불이 들어오질 않는다. 배터리가 다 되어 저절로 꺼진 거다.
나는 끄으응, 길게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침대 아래에 어지럽게 얽힌 전선들 중 핸드폰 어댑터 선을 찾아 기계 끝에 연결했다. 화면이 밝아진 뒤 한동안 끊임없이 알림 음이 울려 퍼졌다. 전원이 꺼져 있는 동안 전화나 문자가 도착했음을 알리는 소리였다.
걸려 온 전화, 문자는 모두 윤영이에게서 온 것이었다.
애가 탈 만도 하지.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통을 붙잡고 시답잖은 얘기를 나누던 연인이 아예 핸드폰까지 꺼 놓고 잠적하고 있으니. 그래도 부재중 통화 20여 통에, 문자함이 터져 나갈 정도로 몇십 분 간격으로 문자 폭탄을 날리는 건 좀 심하지 않나 싶다. 원래부터 좀 집요한 구석이 있는 녀석이었지만 이 정도 되니 좀 무섭다.
[형!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통화 버튼을 눌러 뚜르르, 뚜르르 수신음이 울리기가 무섭게 수화기 너머에서 째지는 외침이 터져 나왔다.
“미안해. 감기 몸살에 걸려서 오늘 하루 종일 끙끙 앓았었거든.”
[그럼 그렇다고 전화라도 해 주지, 뭐예요? 하루 종일 걱정이 돼서 아무 일도 못 했단 말이에요!]
“진짜 미안하다. 약 먹고 자느라 핸드폰이 꺼져 있는지도 몰랐어.”
[그렇게 많이 아파요? 밥은 먹었고요? 제가 죽 사 들고 병문안 갈까요?]
“아냐. 그럴 필요 없어. 그냥 감기 몸살인데 뭘. 약 먹고 푹 자면 금방 나아.”
[진짜 싫다. 형은 왜 늘 혼자만 멋진 척하려고 해요?]
비아냥대는 듯한 말투에 일순 짜증이 확 치밀었다. 평소였다면 웃으며 받아 주었겠지만 오늘은 몸도, 정신도 극도로 피곤한 날이었다.
[우리 사귀는 사이잖아요. 그런데 왜 형은 언제나 나한테 멋있는 모습만 보여 주려고 하는 건데요?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고, 힘들면 힘들다고 하소연도 하고, 어리광 부려도 되잖아요.]
당장 전화를 끊고 뭔가 좀 먹고 싶었다. 어제부터 지금까지 먹은 거라곤 시꺼멓게 색이 변한 바나나 몇 개와 우유, 딸기 잼 바른 식빵이 전부였다.
[내 말 듣고 있어요?]
“어, 듣고 있어.”
[그런데 왜 대답이 없어요?]
“피곤해서…….”
아마 녀석은 이 말을 듣고 발끈했을 것이다. 내가 일방적으로 대화를 거부하는 것처럼 보였겠지. 실제로 그랬다. 마냥 피곤했다. 배가 고팠다. 뭔가를 좀 먹고, 다시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 가 자고만 싶었다.
[몸이 피곤한 거예요? 아니면 나랑 대화하기가 피곤한 거예요?]
내가 대답을 하지 않자 녀석은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가끔 형이 눈앞에 있어도 보이지 않을 때가 있어요. 나는 내 모든 걸 형한테 보여 주려 하는데 형은 나한테 아무것도 보여 주질 않네요.]
녀석은 다시 한번 아까보다 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푹 쉬어요” 힘없이 중얼거리고는 전화를 끊었다. 녀석은 내가 다시 전화를 걸어 주기를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럴 것이다. 난 자상한 연인이었다. 다정하고 배려심 많고, 언제나 윤영이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이상적인 연인 상을 연기하려 무던히도 애썼다.
하지만 녀석은 간파하고 있었던 것일까. 자신에게 보여 주었던 내 모습이 모두 거짓이라는 것을?
녀석은 내가 자신의 눈앞에 있어도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고 했다. 하나, 나 역시 녀석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었다. 내 눈에는 녀석 외에 아주 많은 것들이 보였으니까 말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금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전화를 끊은 어린 연인은 생각하고 있지도 않다. 내 머릿속에는 온갖 무겁고 시꺼먼 것들이 꽉꽉 들어차 있어서 윤영이 녀석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는 것이다.
목이 말랐다. 사실 목이 마른 게 아니라 배가 고픈 거다. 뭔가 먹어야 하는데. 냉장고에 며칠 전에 사다 둔 삼겹살이 있을 텐데. 그거랑 신 김치랑 구워서 먹으면 정말 맛있겠다. 속에서 요동이 치고 입 안엔 침이 고였다. 정신도, 육체도 만신창이가 된 이런 꼴로도 삼겹살에 구운 김치 생각을 하자 침이 줄줄 흐르는 인간 특유의 습성이 우습다.
그렇다고 이대로 죽을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꾸역꾸역 처먹고, 자고, 또 먹고, 또 퍼먹고, 얼른 힘을 비축해서 그 새끼 멱을 따 버려야지. 내가 죽긴 왜 죽어?
그야말로 용틀임을 해 대며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허리 아랫부분에 힘이 없어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었지만 두 발로 단단히 버티고 섰다. 숨을 쉴 때나 몸을 움직일 때, 엉덩이 사이가 쑤시고 쓰리긴 해도 견딜 만은 했다.
엉덩이 구멍 좀 쓰리다고 죽진 않는다. 가끔씩 화장실 가서 구렁이 한 마리씩 생산할 때에도 찢어졌다 아무는 게 그쪽 구멍인데. 그냥 기분만 끝내주게 더러울 뿐이지.
이를 북북 갈면서 냉장고 문을 연 순간, 나는 하마터면 뒤로 넘어갈 뻔했다. 삼겹살이 없었다. 김치랑 식은 밥, 버섯과 상추까지 존재하는데 가장 중요한 고기가 없었다! 며칠 전에 TV 보면서 홀랑 다 구워 먹어 버렸지.
“아, 젠장……삼겹살…… 내 고기…….”
너무나도 허탈해서 눈물이 찔끔 비어져 나왔다. 오랜만에 계란 프라이를 만들고, 김치찌개도 끓이고, 제일 좋아하는 두부조림까지 해서 한 상 차려 놨는데 밥솥이 텅텅 비어 있을 때. 그때와 맞먹는 허탈감과 충격, 울분과 분노가 치밀어 올라 목까지 꽉 메어 왔다.
나는 아예 방바닥에 털썩 드러누웠다. 정말 손가락 하나 까딱할 기운도 없었다. 고기가 없으면 근처 마트에 사러 가면 되는데도 움직이기가 싫었다. 그냥 이대로 누워 자고만 싶은데 배가 너무 고파서 잠도 오질 않으니 짜증만 치민다.
침대 위에 내팽개쳐 둔 핸드폰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현관문이 텅텅, 울렸다. 집들이 따닥따닥 붙어 있는 다세대 주택이라 텅텅 울리는 소리에 아랫집 개가 미친 듯이 짖고, 옆집 쌍둥이들이 빽빽 울고 아주 난리가 났다.
“형, 형! 동추 혀엉!”
안에서 아무 반응이 없자 문밖에 선 손님이 소리까지 질러 댔다. 똥수 놈이다.
거의 방바닥을 구르다시피 거실로 나가 억지로 몸을 일으켜, 문을 확 열어젖혔다. 시꺼먼 패딩 점퍼에 털 숭숭 달린 모자를 뒤집어쓰고 머플러까지 둘둘 만 곰 한 마리가 눈만 말똥말똥 뜨고는 나를 쳐다봤다. 차림새를 보니 또 이 추운 날씨에 배달용 오토바이를 타고 온 모양이었다.
문을 열고 서자 순식간에 온몸이 얼어붙어 나는 어깨를 부르르 떨며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동수 놈이 말없이 뒤를 따라 들어왔다.
“눈 온 뒤에는 웬만하면 오토바이는 타고 다니지 말랬지?”
“배달 갔다가 바로 온 거라 그래요.”
녀석은 잔소리가 듣기 싫은지 퉁퉁 부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점퍼와 머플러를 벗었다. 그러고는 주인 허락도 없이 바로 주방으로 향했다.
나는 주인 만난 개처럼 놈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 들어갔다. 사실은 놈이 들고 있던 비닐봉지에서 풀풀 풍기는 음식 냄새 때문이었다.
그 큰 덩치로 놈은 작은 싱크대 앞에 서서 봉지 안에 든 것들을 꺼냈다. 싱크대 위의 낯익은 박스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동수네 부모님이 하시는 미미네 치킨 박스였다. 굶주린 짐승, 위장 융털까지 오소소 떨리게 하던 끝내주는 냄새의 정체는 이것이었나.
“형 좋아하는 양념 치킨이에요. 배고프면 일단 그거부터…….”
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박스를 열고 먹음직스러운 닭다리부터 입 안에 쑤셔 넣었다. 날씨가 추워서 좀 식긴 했어도 여전히 맛있다.
동수네 치킨집은 이 근방에선 알아주는 맛집이다. 작년에는 호텔 주방장 경력 XX년이라는 셰프가 직접 고급 올리브유에 튀겼다는, 한 마리 2만 원 돈 하는 유명 치킨집이 이 동네에 생겼었는데 얼마 못 가 망했다. 바로 맞은편에 동수네 치킨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동수네 아저씨가 튀기는 치킨 맛은 세계 최고라고 자부할 수 있다. 동수 놈이 고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공부 봐준다는 핑계로 들락거리면서 공짜 치킨 많이도 얻어먹었었는데 말이다.
닭을 쑤셔 넣고, 씹지도 않고 넘기다 보니 목이 꽉 막혀 컥컥대자 동수 놈이 콜라 캔을 내밀었다. 미미네 치킨에 닭 한 마리 시키면 서비스로 주는 거다.
“좀 천천히 먹어요. 아무도 안 빼앗아 먹어요. 설마 그동안 계속 굶은 건 아니죠?”
“안 굶었다. 내가 왜 밥을 안 먹냐?”
“아니긴 뭐가 아니에요? 계속 쫄쫄 굶었구먼, 뭘. 밥 해 먹은 흔적이 없는데.”
놈은 남의 집 전기밥통까지 열어 밥솥에 말라붙은 밥알까지 떼서 먹어 봤다. 그러고 보니 마지막으로 밥을 해 먹은 게 언제더라. 그 일이 있은 지 오늘로 사흘째다. 학원에는 독감이 폐렴으로 번졌다고 둘러대고는 사흘 내내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었던 것이다.
저놈은 지난 사흘 내내 내 집 앞을 서성였을 것이다. 전화를 해 볼까, 문자라도 보내 볼까 몇 번이나 전화기를 붙잡고 고민하고 또 고민했을 것이다. 그 추운 데서 손발 꼼지락거려 가면서 한참을 불 꺼진 내 집 창문을 바라보고 서 있었을 게다.
사흘이 지났으니까 이젠 내가 찾아가도 되지 않을까. 제 나름대로 생각하고서 오늘 아침부터 계속 변비 걸린 똥개 새끼처럼 안절부절못했을 게 틀림없다.
“수산 시장에 가서 장어 사 왔어요. 형, 장어 좋아하잖아요. 양념 발라서 구워 줄게요. 얼른 밥이랑 해서 먹어요. 나도 아직 저녁 안 먹었어요.”
“야, 한똥수.”
“한휘림이거든요.”
“야 인마, 한똥수. 나 좀 봐라.”
“이젠 휘림이라고 불러 줘요, 좀.”
꿍얼대면서 놈이 고개를 돌렸다. 한 손에는 축 늘어진 장어 대가리를 움켜쥐고서.
“너 인마, 형들한테 말한 건 아니지?”
“어, 어떻게 형들한테 그런 말을 해요!”
“그래, 금영이 형보다 네가 더 입이 무겁긴 하지. 절대로 말하지 마라. 그때 일은 너 혼자만 알고 있어. 알았냐?”
싱크대 앞에 선 놈은 고개를 돌리고 있었지만 나와 눈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이 추운 날씨에 수산 시장까지 직접 갔다 오고, 밥해 주려고 찾아와 주기까지 하고. 고맙긴 한데, 오버하지 좀 마. 나 진짜 멀쩡하거든? 멀쩡한 사람 환자 만들지 마라.”
“멀쩡할 리가 없잖아요.”
“괜찮다니까? 이것 봐. 그새, 치킨 한 마리 뚝딱 해치운 걸 봐라.”
“전혀 괜찮지 않아 보이는데 괜찮은 척 좀 하지 마요!”
놈이 일갈했다. 여전히 한 손엔 물이 뚝뚝 떨어지는 장어를 움켜쥐고서. 오늘, 어째 어린 새끼들이 번갈아 가며 훈계하려 드네. 난 픽, 비어져 나온 비웃음을 콜라 캔 안으로 흘려 넣었다.
“괜찮다고요? 멀쩡하다고요? 근데 왜 죽 한 그릇 못 얻어먹은 폐인 꼴을 하고 앉았어요? 그런데 왜 밥도 차려 먹지 않고, 일하러 가지도 않고, 골방에 콕 틀어박혀 있었어요? 형은 지금 멀쩡하지 않다고요. 괜찮지 않다고요!”
“그래서? 나 이제 시집은 다 갔네, 꺼이꺼이, 소복 입고 대성통곡이라도 하리? 별거 아닌 일이야.”
“그게 형한테는 별거 아닌 일이에요? 그 새끼가 한 짓이 형한테는 별거 아닌 일이라고요?”
“그래, 나한테는 별거 아닌 일이야. 뒷구멍 한 번 뚫린 게 뭐 대수라고.”
동수 놈은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이고는 부르르 떨고 있었다. 이를 사리물고, 살기등등한 눈을 번쩍번쩍 빛내면서.
“나, 남자 좋아하는 족속이다. 그때 만났던 윤영이, 걔랑 사귀고 있고.”
드디어 동수가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녀석의 핏발 선 눈을 빤히 응시했다. 험악하게 부릅뜬 눈알이 축축하게 젖어서는 뒤통수를 툭 치면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았다.
“알고 있었지? 나 게이란 거.”
대답은 없었지만 일그러지는 녀석의 표정이 모든 걸 말해 주고 있었다.
“그리고 똥수, 너 나 좋아하지?”
“그, 그런 거…… 아니에요.”
“다 알고 있어. 어느 순간부터 금영이 형이랑 사우나 갈 때마다 일 있다고 빠질 때부터 알아봤다, 짜식아.”
녀석은 참다못해 싱크대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그러고는 일부러 달그락달그락,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 가며 움켜쥐고 있던 장어를 손질했다. 벽돌 두 개를 얹어 놓은 것 같은 놈의 어깨가 약하게 떨리는 게 보였다.
난 빈 캔 모서리 부분을 손가락으로 긁으며 두 다리를 쭈욱 뻗었다.
저 녀석이 마른 멸치처럼 비쩍 곯아 있던 때부터 보아 왔다. 녀석의 부모는 나를 자기 아들의 친구가 아닌, 사촌 형제쯤으로 생각한다.
하도 얻어먹은 게 많아서 그 보답으로 중학생이던 녀석의 과외 선생을 자처한 적이 있었는데, 내가 집에 갈 때마다 동수네 어머니는 상다리 휘어지도록 저녁 식사를 차려 주시곤 했다.
공부하기 싫다고 강짜 부리는 놈을 두들겨 팼다가 크게 상처를 입힌 적이 있었는데, 아저씨 아줌마는 오히려 미안하다고 했다. 자식 놈 교육을 잘못했다면서 자기 아들 병원에 입원하게 만든 가해자에게 허리를 숙였다. 자식뻘 되는 새파랗게 어린놈한테.
그런 집 아들내미다. 그런 분들의 자식이다.
동네에서 알아주는 구제불능 꼴통이라도 그 집에선 하나밖에 없는 귀한 아들이다. 그런데 놈이 나를 좋아한다고 해서 그 마음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었겠는가. 놈이 아무리 내 취향의 보송보송하고 뽀얀 미소년이었을지라도 놈만은 절대로 건드리지 않았을 거다. 털끝 하나 건드릴 수가 없었을 거다.
“넌 날 좋아하는 게 아니라 동경하는 거다, 한동수. 네놈이 덜떨어져서 호감과 동경을 구분하지 못하는 거야. 그냥 귀엽고 예쁜 또래 여자애랑 사귀어라. 너, 귀여운 여자애 좋아하잖냐.”
치지직 소리와 함께 장어가 익어 가는 냄새가 폴폴 풍겼다. 능숙한 솜씨로 장어를 뒤집고 자르는 모습이 꼭 요리사 같다.
“친구들이랑 나이트를 가든 클럽을 가든, 그런 데 가서 자연스럽게 여자애들도 꼬셔 보고. 번호도 따 보고, 작업도 걸어 보고, 여자애한테 오빠 오빠 소리도 좀 들어 보고.”
어째서 이렇게 쉴 새 없이 쫑알쫑알 떠들어 대고 있는지 모르겠다. 난 이토록이나 대화가 고팠던 건가. 사람이 그리웠던 건가.
지난 사흘간 난 줄곧 어둠에 갇혀 있었다. 아니, 지난 7년간 그랬다. 아니다. 생각해 보니 어릴 때부터 쭈욱 그랬던 것 같다. 갇혀 있는 내내 외로웠고, 고독했고, 쓸쓸했다. 지금까지 늘 그랬었다. 난 단 한 번도 외롭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동수 놈이 묵묵히 냉장고 옆에 끼워 둔 상을 폈다. 상 위에 구운 장어와 깻잎이 든 그릇을 내려놓고, 집에서 가져왔는지 김치가 가득 든 통도 올려놓았다. 놈이 수저를 내려놓기가 무섭게 난 장어 한 조각을 입 안에 던져 넣었다. 프라이팬에 대충 구운 것인데도 살이 제법 통통하니 맛있다.
동수도 상 맞은편에 앉았다. 깻잎에 장어 조각을 올려서 둘둘 말아 입 안에 넣고는 우적우적 씹는다. 장어와 깻잎, 김치만이 덜렁 놓인 이상한 식탁 풍경이다.
“나이트에도 가 봤어요. 클럽도 몇 번 갔었고요. 여자애들이랑 나가서 술도 마시고, 한 여자애랑 마음이 맞아서 몇 번 만나기도 했어요. 걔랑 자 보기도 했고요.”
“그래? 좋았냐?”
“아뇨. 별로였어요. 걔 거시기를 보면서, 형 거 고추를 떠올렸어요. 그때 알았어요. 난 여자애 거시기보다는 형 거 고추가 더 좋은 거구나. 여자애 말랑말랑한 가슴을 주무르고 싶은 게 아니라, 형 거 몰캉몰캉한 거시기 움켜잡고 흔들고 싶은 거구나.”
반 정도 씹어 먹던 장어가 상 위로 툭 떨어졌다. 저 자식, 깻잎에 장어를 싸서 우적거리면서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나 말이에요. 딸딸이 칠 때마다 형이랑 붙어먹는 상상했었어요. 형 엉덩이를 쫙 잡아 벌리고 그 사이에 있는 쪼그만 구멍에 내 걸 쑤셔 박는 상상을 하면서 쌌어요. 난 벌써 몇백 번이나 머릿속에서 형을 강간했어요.”
심각한 얼굴로 방바닥을 노려보면서 장어를 오물오물 씹던 놈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러고는 험악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나를 쳐다보면서 깻잎 조각 붙은 입술을 오들오들 떨면서 고백했다.
“나…… 형을 조, 조, 좋아해요.”
고추를 움켜잡고 흔들고 싶다느니, 항문에 쑤셔 박는 상상을 했다느니, 머릿속으로 강간했다느니 별의별 헛소리를 지껄인 주제에 좋아한다는 고백 하나만큼은 정석을 따른다.
“형이 좋아요. 정말이에요. 동경 따위가 아니라 진짜 좋아해요. 이성에게 느끼는 것 같은 그런 종류로 형을 좋아해요. 그러니까 형한테 그딴 짓 한 새끼. 꼭 형 앞에서 죽여 버릴게요. 그 새끼를 잡으면 제일 먼저 거시기를 뭉개 줄게요. 눈알을 파 버리고, 팔다리를 찢어 버릴게요.”
동수 놈은 알고 있을까. 지금 자신의 눈이 얼마나 잔인하게 빛나고 있는지.
수줍게 양 볼을 발갛게 물들이고서 말까지 더듬어 가며 사랑을 고백했던 녀석은 온데간데없고, 웬 짐승 한 마리가 내 앞에 앉아 있다.
놈은 내게 향한 감정을 온몸으로 뿜어내듯이, 시뻘건 살의 역시 사방으로 뿜어냈다. 나는 속으로 쓰게 웃었다. 지금의 녀석은 7년 전의 나와 소름 끼치도록 닮아 있었다. 그때의 나도 저 녀석처럼 한 마리 짐승 같았었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만 봐도 알겠다. 저 녀석은 날 정말로 좋아하는구나. 내게 좋아한다는 것 이상의 감정을 품고 있었구나.
생각해 보면 똥수 자식은 언제나 나를 바라봤다.
허세 가득 찬 어린놈이 보기에 그 당시의 나는 최고로 멋있어 보였을 거다. 우와, 저 형 끝내주게 멋있다, 이랬을 거다.
동수를 처음 만났던 당시의 나는 울분과 분노로 가득 찬 짐승 새끼였으니까. 솜털 보송보송한 어린것이 보기에 언덕 위에 우뚝 서서 이글이글 불타는 눈으로 언덕 아래의 세상을 내려다보는 시꺼먼 짐승이 얼마나 멋있어 보였겠는가.
어린것이 언덕 위 짐승에게 품었던 순수했던 동경의 감정이 사랑의 감정으로 변질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무엇이 계기였을까. 나의 어떤 점이 저 녀석의 심장을 쑤셨던 걸까.
내 외모? 내 몸? 내 성격? 그 모든 게 우중충하고 시꺼먼 내 알맹이를 감싼 화려한 껍데기일 뿐인데.
“웃기지 마, 새끼야.”
나는 동수의 얼굴에 대고 비웃음을 날렸다. 녀석의 낯짝이 코 풀고 버린 휴지처럼 구겨졌다.
“네놈이 나에 대해 대체 뭘 안다고 좋아한다 어쩐다, 함부로 지껄여? 네놈이 날 알아? 내가 어떤 놈인지 알고서 좋아하는 거야?”
“내가 왜 형을 몰라요? 내가 지금까지 형을 보아 온 게 몇 년째인데. 그리고 생각 없이 함부로 지껄이는 거 아니에요. 난 진심으로 형을…….”
“난 너 싫다.”
녀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말허리를 뚝 잘랐다. 놈은 구겨진 얼굴 그대로 눈만 커다랗게 떴다. 금방이라도 내게 달려들 것처럼 눈을 크게 치뜨고, 이를 앙당그려 물고는 몸을 바르르 떨었다.
“아는 동생, 동네 친구 사이로는 괜찮은 놈이야. 하지만 그런 쪽으로는 별로야, 너. 무엇보다 넌 내 취향 아니다.”
“윤영이 그 새끼처럼 계집애 같은 놈이 좋아요? 형은?”
“그래. 난 작고, 귀여운 애가 좋아. 넌 전혀 귀엽지도 않고, 너무 커. 난 나보다 키 크고 덩치 좋은 놈은 딱 질색이야.”
치뜬 녀석의 두 눈엔 눈물이 가득이다. 울보 자식.
덩치는 곰만 한 게 시도 때도 없이 질질 짠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가도 울고, 길거리에서 다리 저는 동물을 봐도 울고. 손 꼭 붙잡고 떡볶이 가게 앞에서 군침만 줄줄 흘리는 남루한 옷차림의 어린 남매들을 보면 질질 울면서, 있는 돈 없는 돈 다 털어서 떡볶이며 튀김이며 다 사 주는 바보 새끼다.
“하지만 윤영이, 그 자식은 형한테 그딴 짓 한 변태 새끼, 못 죽이잖아요. 그냥 고양이처럼 작고 귀엽기만 하잖아요. 난 작고 귀엽진 않아도 그 새끼를 잡아 죽일 수 있는데요.”
“내가 언제 너한테 그 새끼 죽여 달라고 매달려 부탁이라도 했냐?”
“그리고 난 옆에서 형을 지켜 줄 수도 있어요! 난 형이 원하는 건 뭐든지 다 해 줄 수 있고요!”
“그러니까 왜 네놈이 날 지켜?”
“왜 나는 안 되는데요? 형이 운동 열심히 하라고 해서 단백질 파우더 퍼먹어 가며 운동해서 헬스클럽에서 알아주는 몸짱도 됐어요. 형은 몰라서 그렇지, 어딜 가든 나 좋다는 여자애들 수두룩해요. 나보고 되게 멋있대요. 되게 몸도 좋고, 키도 크고, 스타일 죽인대요. 내가 그 계집애 같은 새끼보다 못한 게 뭔데요!”
“그만 좀 해! 이 자식아!”
참다못해 난 주먹으로 상을 내리쳤다. 상다리 하나가 부서져 상이 동수 놈 쪽으로 크게 기울었다. 동수는 김치 국물이며 남은 장어 조각에 뒤덮여 축축하게 젖은 허벅지를 손으로 북북 문질러 닦았다.
“장어 사느라 남은 용돈 다 썼는데…….”
나는 일부러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감정의 동요를 들키지 않기 위해 두 눈에 껍데기 한 겹을 덧씌웠다. 지금 나의 눈은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은 파충류의 눈알처럼 보일 터였다.
“정말 난 안 되는 거예요?”
눈앞에 앉은 덩치 커다란 놈이 온갖 감정이 축축하게 달라붙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저 어린놈은 저런 식으로 애원하는 거다. 주인이 자기를 봐 주기만을 기다리며 그 뒷모습만 바라보는 똥개처럼. 어린 나이를 이용해 내 마음을 움직여 보려는 게다.
저 멍청한 자식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나이 많은 사람 앞에서 자신의 어린 나이가 충분히 무기가 될 수 있음을.
“너무 늦었다. 집에 가라. 아저씨 아줌마, 걱정하시겠다.”
하지만 내 마음은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뒤집어쓴 강철 껍데기는 엄청나게 견고하다. 웬만해선 벗겨지는 법이 없다.
동수 놈은 어깨를 추욱 늘어뜨리곤 힘없이 일어섰다. 저 울보 자식이 또 우는 건지 머리칼 사이로 언뜻 비치는 눈가가 축축하다. 난 동수가 내 곁을 스쳐 지나가 점퍼를 입고, 머플러를 둘둘 감고, 신발을 꿰어 신을 때까지 뒤돌아보지 않았다.
“형, 이번 주 일요일 저녁에 달봉이 형님네 가게에서 다들 모이기로 했어요.”
내가 이렇다 할 대답이 없자, 녀석도 말없이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끼이익, 기름칠을 하지 않은 쇳소리와 함께 소름 끼치는 찬 바람이 열린 문틈으로 새어 들어왔다. 문은 곧 닫혔지만 이미 내 몸은 꽁꽁 얼어붙고 말았다.
동수 놈이 터벅터벅,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와 대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 그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짖어 대는 개 소리가 연이어 터져 나왔다. 곧 탈탈탈, 오토바이 시동을 거는 소리가 이어졌다. 시원하게 시동이 걸리는 소리가 아니라, 어딘가 이상이 생겨 내는 불쾌한 소리였다.
나는 무릎에 힘을 주어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대문 앞, 내린 눈이 그대로 얼어붙은 좁은 골목 사이에서 동수 놈은 시동이 걸리지 않는 오토바이와 씨름을 하고 있었다. 놈은 오토바이를 걷어차면서 동네가 떠나가라 “씨발, 니미!” 육두문자를 내갈겼다.
결국 몇 번의 시도 끝에 오토바이에 시동이 걸렸다. 동수는 배달용 오토바이에 간신히 몸을 싣고서 사라졌다.
녀석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을 때에야 나는 다시 거실로 돌아왔다. 바닥에 떨어진 장어와 김치 쪼가리들, 그릇들을 치우고 부서진 상도 곱게 접어 제자리에 끼워 넣었다. 부엌으로 들어가 깨끗이 설거지도 했다.
그리고 습관처럼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나는 그 안에 든 커다란 검은 비닐봉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봉지 안에는 유리로 된 밀폐 용기가 들어 있었는데, 그 안에는 온갖 반찬들이 꾹꾹 눌러 담겨 있었다. 담은 꼴을 보니 동수 놈이 또 엄마 몰래 반찬들을 훔쳐 온 게 분명했다.
병신 같은 새끼. 바보같이 착한 놈. 올바른 부모님 밑에서 나름 사랑 듬뿍 받고 자라서 정을 사방으로 아낌없이 뿌리고 다니는 놈.
<정말 난 안 되는 거예요?>
놈이 눈물 그렁그렁 매단 눈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그래, 너니까 안 되는 거다. 다름 아닌 미미네 치킨 막내아들 똥수, 너니까.
나는 반찬이 가득 든 밀폐 용기를 냉장고에서 꺼냈다. 쌀을 씻어 밥을 했다. 그리고 김 모락모락 나는 밥을 밥그릇 가득 퍼서 동수 놈이 가져온 반찬과 함께 TV를 보며 꾸역꾸역 먹었다.
온 세상이 무서울 정도로 고요했다. TV 소리만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소음이었다. 시꺼먼 무언가가 나를 천천히 덮쳐 오는 것 같아, 나는 얼른 TV 볼륨을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