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손으로 살아가기-153화 (153/156)

런치 직원 채용 (1)

* * *

입금 후 이틀이 지났다.

어제 영웅 옥션에 위탁수수료를 송금하고, 세금 정리까지 마쳤다.

그리고 당연히 그날 저녁에는 제대로 회식했다.

솔러 루비 반지를 통해 최종 우리가 얻은 수입은 83억 원.

목표치 50억 원을 훨씬 상회했다.

아직 과정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입금됐으니까.

직원들과 신나게 즐기고 싶었다.

어제 소고기를 몇 인분 먹었는지 모르겠다.

직원들도 흥분해서는 하는 일마다 잘 되니 회사 다닐 맛 난다며 아주 기뻐했다.

한편으로는 다음 달 성과금을 기대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내 목표가 세계 최고의 갑부도 아니고, 돈 쌓아놓고 살고 싶지는 않다.

많이 번 만큼 내 사람들과 나누며 살아가고 싶다.

승승장구 중인 내 회사 ‘사랑산성’.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진일상사에서 나올 걸 그랬나 싶기도 하고…….

하지만 진일상사에서 부침을 겪어봤기에 직원들 마음을 잘 헤아릴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모든 일에는 다 뜻이 있다고 믿으니까.

“사장님 다 모였습니다.”

오 대리까지 3번 룸으로 들어오자, 김지안이 말했다.

“그래.”

난 노래방 기계 앞에 화이트보드를 가져다 놓았다. 그리곤 그 앞에 섰다.

“모두 주목.”

“4명 밖에 없는데 주목은…….”

변 이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나 또한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아직까지는 4명뿐이죠.”

“엇…….”

난 살짝 운을 떼었는데, 변 이사는 곧바로 눈치를 채고 눈을 반짝였다.

“강 사장님 설마…….”

“하하. 네.”

난 화이트보드에 썼다.

‘사랑산성 런치 직원 모집 계획’

이 글을 쓰자마자…….

―우와~

―만세!

―드디어 해방이닷!

직원들은 방방 뛸 정도로 좋아했다.

반응이 폭발적이다. 어제 소고기 사줄 때보다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최경리도 얼굴이 벌게질 정도로 좋아했는데.

“하아~ 나 정말 강 사장님 징하다고 생각했는데. 드디어 직원을 뽑네요! 앞으로 말조심하고 잘할게요~”

아주 반가운 소리였다.

“그래, 최 과장. 꼭 좀 부탁할게.”

“호호. 네~”

최경리가 웃는 모습. 참 오랜만에 본다. 아니, 본적이 있었던가? 처음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변 사장이 웃으며 물었다.

“근데, 강 사장님. 무슨 바람이 분 거야? 원래 계획은 사무실 이전할 시점에 레스토랑 직원 채용한다는 거였잖아?”

그는 손가락을 꼽으며 말했다.

“이제 분묘개장공고 만료까지 2주 남았으니까. 빨라도 7~8개월은 지나야 새 건물에 입주 할 텐데. 많이 빠른데?”

난 웃으며 말했다.

“네 맞아요. 원래 계획은 그랬죠.”

이번에 ‘보석 세공 사업’을 진행하면서 답답함을 많이 느꼈다.

사업 특성상 해외 출장을 가야 할 일이 생겼는데, 전 직원이 레스토랑에 묶여 있으니…….

결국엔 ‘솔러 루비’ 낙찰 현장에는 가보지도 못하지 않았는가. 그나마도 2박 3일간 스위스까지 갈 여력은 안 생기니.

“이번에 많이 느꼈어요. 저희 직원들은 레스토랑에 얽매여 있을 인물들이 아니란 걸.”

“…….”

난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고 직원들에게 말했다.

“막중한 책임감을 가질 각오를 하셔야 해요. 이제 우리 직원들은 더 가치 있는 과업에 집중합니다. 지금 기뻐하는 모습…… 오래갔으면 좋겠네요. 하하.”

이런 협박성 말에도 직원들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오히려 기대하는 눈빛이었다.

내 스타일 아니까. 사랑산성이 어떤 회사라는 걸 아니까.

* * *

과거부터 지금까지 변성준 선배에게 배웠다.

‘잘 모를 때는 상식대로 하면 된다. 가장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거기에 집중해라.’

“오늘 바로 채용사이트에 공고 올리고, 다음 주에 면접 볼 거야. 분묘개장공고 전까지 선발을 완료하는 계획이야.”

김지안이 말했다.

“좀 빠른 거 아니에요?”

난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빨리해야 해. 깨달음이 오니까 더 이상 망설이고 싶지 않아.”

변 이사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깨달음…… 하여간 도사처럼 말하는 거 하고는.”

“흠! 그래서 어떻게 할 거냐면.”

난 화이트보드에 그간 생각한 구상을 적었다.

# 사랑산성 런치 직원 모집 계획

1. 모집인원 : 총5명, 주방장(1), 홀 서빙+주방보조(4)

2. 경력, 학력 등 무관.

3. 평가 중점 사항

1) 주방장

철저한 블라인드. 음식 영상보고 따라 만들기.

2) 홀써빙+주방보조

― 외모(인상) 매우 중요.

― 얼굴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3명), 규율적인 사람(1명)

― 몸에 밴 친절(돌발상황 제시)

3) 공통사항 : 오랜 기간 근무 가능자.

4. 기타 : 보육원 및 고아 출신 우대.

쓰다 보니 꽤 많은 내용을 적었다. 그냥 빔 프로젝터로 쏠 걸 그랬나.

쓸 내용을 미리 준비했던 건 아니고, 평소에 구상해놨던 것을 바로 적은 거였다.

“…….”

직원들은 아무 말 없이 한참을 보기만 했다.

몇 분 지났다. 이 정도면 한 3번은 읽어봤을 거 같은데.

난 누군가 먼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봐도 돼.”

“…….”

내가 그렇게 요약을 잘했나? 궁금함이 없도록?

괜히 불안해져서, 스스로 부연 설명을 시작했다.

“우리가 필요한 주방장은 음식을 잘하는 주방장이 아니라, 내가 보내준 영상을 보고 얼마나 잘 따라 만들 수 있느냐거든. 그런 관점에서 평가 방법을 정 한 거고.”

“…….”

“홀 서빙에서 외모를 본다는 건, 인상과 분위기 등을 보겠다는 거야. 손님을 상대해야 하는 서비스직이니까.”

김지안이 살짝 손을 들었다.

“홀 서빙 평가 중 ‘돌발상황’은 뭐예요?”

이 부분은 좀 더 생각이 필요하다.

“겉모습만 친절한 거 말고. 몸에 친절이 배어있는 사람 있잖아. 그런 걸 평가하고 싶은데, 돌발상황을 만들어서 보면 되지 않을까 싶거든? 근데 뭘 어떻게 할지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진 못했어.”

“아~ 네.”

그리고 난 직원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이대로 가면 되는 거예요? 이의 없는 거죠?”

잠자코 있던 변 이사가 손을 들었다.

“나 한 가지 궁금한 거 있어.”

“네.”

“오랜 기간 근무한다는 걸 어떻게 확인 할거지?”

“아, 그거요.”

변 이사가 물었다.

“뭐, 계약기간을 연간으로라도 할 생각인가? 사람 쉽게 변해~ 들어올 때야 열심히 하겠다고 하지만, 언제 그만둘지 모르는 거지.”

난 그의 말에 피식 웃었다.

아무래도 날 시험하고자 묻는 말인 것 같다.

그거야 뭐, 뻔한 거 아닌가?

“못 그만두게 해야죠.”

“그러니까. 어떻게?”

변 이사의 눈이 살짝 차갑게 빛났다.

“내가…… 우리 직원들한테 하듯 하면 되지 않을까요?”

“…….”

“월급 많이 주고, 보너스 잘 주고, 마음껏 일하게 해주고. 그러면 되는 거잖아요.”

이 대답에 변 이사는 이제야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 잘 알고 있네. 그럼 모집공고에서 저 문구는 지워. 없어 보여.”

난 씩 웃고는 변 이사의 말대로 아래 문구는 화이트보드에서 지웠다.

‘3) 공통사항 : 오랜 기간 근무 가능자.’

난 직원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더 질문 없어요?”

이상하다. ‘4번 기타’에 대한 질문이 있을 만한데.

‘4. 기타 : 보육원 및 고아 출신 우대’

직원들은 이에 대해선 묻지 않았다.

난 괜히 켕겨서 오 대리를 향해 물었다.

“오 대리.”

“네.”

“4번 기타 사항 괜찮아? 안 이상해 보여?”

그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쿨 하게 대답했다.

“뭐 어쩔 거예요. 이 회사 사장님 맘이죠. 사장이 우대하고 싶다는데,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해요.”

약간 무리해서 쓴 항목이었는데.

오 대리의 말에 자신감을 얻었다.

“오케이! 이상!”

* * *

1주일 뒤.

지원자는 어마어마했다.

김지안이 피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짧은 근무시간에, 월급 빵빵하고. 누군들 지원 안 하겠어요.”

혹시 지원자가 없을까 봐. 모집공고에 월 급여까지 써놓았었다.

사랑산성 정직원들은 성과급을 많이 받는 구조지만, 레스토랑 직원은 월 급여 중점을 두었다.

‘주방장 : 500만 원’

‘홀 서빙 : 350만 원.’

‘근무시간 : 오전 10시 ~ 오후 3시.’

“사장님, 저도 레스토랑 직원으로 보직 바꾸면 안 돼요?”

난 오 대리의 말을 못 들은 척했다.

최경리의 푸념 섞인 말이 들렸다.

“이거 어떡해요. 겨우 5명 뽑는데, 지원자 수가…… 수백 명 다 면접 볼 수도 없고…….”

결국 우리는 대상자를 서류에서 추리느라, 이틀 밤을 새워야 했다.

―아…… 빡세. 개빡세.

―하아…… 사장님이 마이더스의 손이 맞긴 맞아.

―손대면 일복까지 터져.

귀가 간지러웠다.

어쨌든 겨우 면접대상자를 선정하였다.

면접은 이틀에 걸쳐서 보는데.

첫째 날은 홀 서빙, 둘째 날은 주방장이다.

홀 서빙 면접 날.

각 면접대상자에게 시간 배정을 해주었다.

그리고 평가사항으로, 미리 와도 안 되며 정확하게 시간 맞춰서 와야 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라고 했었다.

오 대리는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면접자를 기다렸다.

각 잡힌 위아래 검은 정장을 입고, 마을버스에서 대낮에 내곡동에서 내리는 사람은 잘 없으므로 알아보기 어렵진 않았다.

오 대리는 사진으로 얼굴을 확인하고 다가갔다.

“실례합니다.”

1번 면접대상자는 오 대리의 대답을 못 들은 척하고 지나치려 했다.

“저 좀 도움이 필요해서…….”

“…….”

보청기가 필요한 건지, 귓구멍이 막힌 건지.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허…….”

쌩하고 사라지는 면접대상자를 보며 오 대리는 고개를 저었다.

대부분의 면접대상자는 1번과 비슷했다.

그냥 못 들은 척하거나, ‘바빠서요’라고 한마디 하고는 가버렸다.

말을 들어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내가 도를 아십니까로 보이나?”

사랑산성 3번 룸에서 면접대상자를 기다리고 있던 직원들은.

‘대화조차 못 함.’

오 대리의 이 메시지를 확인한 경우는 면접을 최대한 빨리 끝냈다.

바쁘신 것 같아서, 빨리 집에 보내드리려고.

“이게…… 불가능한 일인가? 평가를 잘 못 잡았나.”

오 대리는 입맛을 다시며 이제 11번 면접대상자를 기다렸다.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다가가 말을 걸었다.

“실례합니다.”

11번 면접대상자는 달걀형 얼굴에 얼굴이 하얀 사람이었는데.

오 대리의 물음에 바로 대답했다.

막 상냥한 말투는 아니었다.

“네, 무슨 일이시죠?”

“다름이 아니라. 제가 너무 급한 일이 있는데, 핸드폰을 두고 와서…….”

“아…….”

“잠깐 전화기 좀 써도 될까요? 정말 잠깐이면 됩니다.”

면접 시간 15분 전.

여기서 사랑산성까지 10분 정도 걸어가야 한다.

11번 면접대상자는 시계를 보고는 말했다.

“네, 저도 중요한 일이 있거든요. 빨리해주세요.”

그리고 대뜸 핸드폰을 건네었고, 오 대리는 인사를 하며 말했다.

“네! 감사합니다.”

오 대리는 통화를 시도했다.

“어머니…… 저예요. 죄송해요. 어머니 가시기 전에 뵈어야 하는데…… 하필 핸드폰에 문제가 생긴데다가…… 너무 멀리 계셔서…….”

임종 전, 어머니와의 마지막 통화.

오 대리는 처연한 목소리로 통화를 계속했다.

11번 면접대상자는 안절부절못했지만, 차마 임종 전 어머니와의 통화를 끊으라고 하지는 못했다.

면접대상자는 시계를 한번 보며 기다렸다.

15분이 흘렀다.

오 대리는 초등학교 시절 이야기를 시작으로 해서 고등학교 때 속 끓였던 이야기까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20분이 지난 뒤.

“어머니. 죄송해요. 그래도 통화하니 좀 안심이 되네요. 미래에 뵙게 되겠죠. 조금만 기다리세요.”

뚝.

“핸드폰 잘 썼습니다.”

11번 면접대상자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오 대리에게 손수건을 건네었다.

“닦으세요.”

오 대리는 흠칫 놀랐다.

‘아니, 손수건까지? 프리패스 가야겠는 걸.’

오 대리는 억지로 눈물 닦는 시늉을 하며 물었다.

“감사합니다. 근데, 급히 가실 일 있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오래 핸드폰을…….”

11번 면접대상자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마음 잘 추스르세요. 근데 어머님이 많이 멀리 계시나 봐요.”

“네, 하늘나라에 계세요.”

“네?!”

앤더슨 오는 어머니를 고등학생 때 여의었다.

당황한 표정의 11번 면접대상자.

오 대리는 악수를 건네며 말했다.

“축하드립니다. 합격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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