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소식 (2)
* * *
딸그락.
숟가락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
새벽의 고요한 순댓국집이라 유난히 크게 들렸다.
식당 안에는 나 외에 손님은 없었다.
새벽 5시에 순댓국 먹으러 오는 사람은 잘 없을 테니.
“수저통 보세요.”
어디선가 누가 말하는 거 같은데.
TV에 정신이 팔려서 잘 들리지 않았다.
주방에서 숟가락 떨어지는 소리를 들은 아주머니가 말한 것이다.
지금 떨어진 수저가 중요한 게 아니다.
난 집중하여 TV 속 자료화면을 보고 있는데.
별 대꾸 없이 TV만 보고 있자.
탁!
아주머니가 수저를 꺼내어 내 앞에 거칠게 올려놓았다.
[10캐럿 이하 유색 보석 사상 최고가입니다. 이 보석의 특별한 점은 올해 제작된 반지라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2년 전에 낙찰된 모나코 왕족의 루비 반지보다 높은 낙찰가를 기록하여 관계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자료화면에 나오는 건 분명 솔러 루비 반지였다!
아무리 TV로 본다고 해도, 내 새끼를 못 알아보겠는가!
이럴 수가…….
최고가를 경신했다고?
더군다나 해외토픽? TV에 나와?!
꿀꺽.
난 낙찰가격이 궁금하여 더욱 더 TV에 집중했다.
[낙찰가액은…….]
꿀꺽.
다리가 떨렸다.
[940만 불로 알려졌습니다.]
:
내 눈이 사정없이 끔뻑였다.
빛의 속도로 암산을 시작했고.
940만 불이면…… 환율 1,150원이라 가정했을 때.
108억?! 씨바! 108억!
“우와아악!”
난 그 자리에서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났고.
“아이고머니나!”
옆에서 식탁을 닦고 있던 아주머니는 깜짝 놀라셨다.
“아, 아니. 왜 이래? 총각?!”
“하하하!”
가슴이 벅차오른다!
108억이라니!
다 끝났다!
다 해결됐다! 돈 문제는 끝났다!
“아주머니! 고마워요!”
“응? 뭐, 뭐가?”
아주머니는 날 보고 말했다.
“총각 왜 이래? 우, 울어?!”
“하하하!”
우는 거 아니다.
너무 기뻐서, 열이 올라서 습기가 차오르는 것이다.
“만세! 만세!”
난 아주머니 손을 들고 만세를 외쳤다.
일을 벌이긴 했지만, 내심 불안했던 것들.
가슴에 얹힌 수백 개의 돌덩어리가 한순간에 날아가 버렸다.
아주머니는 내 손에 이끌려 얼떨결에 함께 만세를 외쳤다.
“감사합니다!”
난 하늘을 향해 외쳤다.
* * *
순댓국을 마저 먹고, 집에 와서 바로 씻고 출근했다.
아침 7시.
평소보다 많이 일찍 출근했는데.
“사장님 오셨어요!”
신기하게도 직원들이 다 와 있었다.
“웬일들이야?”
오늘 새벽부터 놀라움의 연속이다.
평소 출근 시간에 딱 맞춰서 오던 변 이사와 오 대리도 와 있었다.
“웬일이긴. 소식 듣고서 집에 가만있을 수가 있어야지.”
변 이사가 웃으며 말했다.
“무슨 소식이요?”
난 짐짓 모른 척 물었지만.
변 이사는 손을 번쩍 들면서 소리쳤다.
“대박 났잖아! 하하!”
변 이사의 외침을 시작으로 직원들은 괴성을 지르며 좋아했다.
―하하!
― 사장님! 정말 축하해요!
―진짜! 어떻게 100억이 넘냐구요~
―사랑산성 만세!
나 또한 방방 뛰며 좋아했다.
아직 출근 시간도 안 됐는데, 전 직원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똑. 똑.
덜컹.
문을 열고 누군가 들어오는데.
설수민이었다.
“뭐에요? 시끄러워서 잘 수가 있어야지.”
설수민 포함 디너 여직원들은 2층을 숙소로 쓰고 있다.
김지안이 내게 작게 물었다.
“사장님, 얘기해도 돼요?”
난 잠시 고민했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얘기 하지 마.”
그리고 난 설수민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사랑산성 매출이 대박 나서요~”
“어머~ 진짜요? 그게 아침 8시에 확인됐어요?”
설수민은 웃으며 궁금하다는 듯 질문을 던졌지만.
나를 포함한 직원들은 웃고 말았다.
하지만 설수민은 센스가 있었다.
말하기 꺼린다는 걸 눈치채고는 더 묻지 않고.
그냥 함께 기뻐해 주었다.
“호호. 그럼 축배를 들어야지. 샴페인 가져올까요?”
난 웃으며 물었다.
“아침 8시에?”
“뭐 어때요~ 가볍게 마시면 되죠~ 잠시만 기다려요!”
설수민을 포함하여 사랑산성 직원들과 함께 오전 10시까지 샴페인을 들었다.
노래방 기기 가려놓은 검은 천도 치워놓고, 노래도 한 곡씩 부르고.
아침부터 신나게 놀았다.
샴페인도 열 잔을 넘게 먹으니 취기가 돌았지만.
영업이고 뭐고 지금은 여러 생각하기 싫었다.
그냥 마음껏 기쁨을 만끽하고 싶었다.
레스토랑 영업만 아니면, 그냥 오늘 하루 쉬는 건데…….
오전 11시.
다들 얼굴이 벌게져서 점심 영업을 준비하고 있는데.
위이잉―
핸드폰 진동음이 들렸다.
난 소고기 안심 손질하던 걸 멈추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강태평 작가님 되십니까?]
[아, 네 누구십니까?]
[안녕하세요. 영웅 옥션 홍보팀입니다.]
[네? 아, 네. 잠시만요.]
왠지 중요한 전화 같아서 난 손을 씻고 자리를 옮겼다.
[말씀하세요.]
[네, 다름이 아니라. 혹시 낙찰 소식 들으셨습니까?]
[직접 연락은 못 받았고요. 뉴스 통해서 봤습니다. 그거 맞는 건가요?]
안 그래도 궁금했었다. 계속 이정수 팀장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
[네, 맞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이정수 팀장님이 아직 연락을 못 드렸나 보군요. 저희는 소더비 공식 채널을 통해서 통보받았습니다.]
[아, 네. 근데 이정수 팀장님께 무슨 일 있습니까? 왜 연락이 없죠?]
[경매가 어젯밤 늦게 끝난 거 같던데, 경매 이후 과정 진행 때문에 아마 정신이 없으셔서 그런 것 같습니다.]
[아…… 네.]
낙찰가가 108억이라는 걸 알고 나니, 약간 후달린다. 이정수 팀장을 믿기는 하지만…… 뭐 별일 없겠지.
[그거 알려주시려고 전화 주신 겁니까?]
[아, 아닙니다. 전화를 드린 용건은…… 공식적으로 중개인은 영웅 옥션으로 되어 있기에, 각 언론사에서 저희 쪽에 문의가 오고 있거든요. 한국 언론사뿐만이 아닙니다.]
[아, 네.]
[특히 보석 소유자에 대한 문의가 빗발쳐서요. 신분을 오픈해도 될지 여쭤보려고 전화를 드렸습니다.]
[아…….]
잠시 생각했다.
네모의 신으로 유명해지면서 이미 경험이 있다. 이름이 알려지는 것엔 분명 장단점이 있는데.
지금 상황에서는…….
[신분은 비밀로 해주셨으면 합니다.]
보석 세공 사업을 얼마나 더 하게 될지 모르는 일이고, 아직 ‘사랑산성’은 확고한 반석 위에 서지 않았다.
관심을 많이 받는다는 건 그만큼 시샘하는 세력도 생긴다는 뜻.
지금도 충분히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아…… 정말요? 여러 좋은 기회가 생기실 수도 있는데.]
영웅 옥션 홍보실은 아쉬운 듯 말했다.
[전 말씀 드렸습니다. 그럼 더 용건 없으시면…… 사실 제가 지금 일하는 중이라서.]
고기를 손질하다가 멈추면 굳는다.
하던 거 빨리 마치고, 샥스핀 탕 재료 준비를 해야 한다.
[아― 네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이정수 팀장님에게 빨리 연락 달라고 해주세요. 궁금하다고.]
[네, 저희도 기다리는 중입니다. 연락 오면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뚝.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까똑창을 열었다가.
아무 메시지가 없는 걸 확인하고는 창을 닫았다.
* * *
오후 5시 퇴근 시간.
직원들은 하나둘씩 사랑산성을 나섰고.
변 이사도 나가려다가 물었다.
“강 사장님은 안 가?”
“네. 좀 더 정리할 게 있어서요.”
“이정수 팀장님은? 연락 없어?”
“네…… 아직이요.”
시간이 갈수록 초조해졌다.
왜 연락이 없을까.
퇴근하려 했지만, 쉽사리 발이 안 떨어져서 좀 더 있다가 가려 했다.
변 이사는 잠시 날 바라보다가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 그럼 나 먼저 갈게. 내일 봐~ 강 사장님.”
“네, 들어가세요.”
내 집무실. 4번 룸에 혼자 앉아서.
핸드폰만 만지작거렸다.
똑. 똑.
덜컹.
“어? 아직 계셨네?”
설수민이 들어왔다.
“저희 저녁 영업 준비해야 하는데…… 할 일 많으세요?”
“아, 벌써 시간이.”
런치 퇴근 시간이 곧 디너 영업 시작 시각이다. 통상 5시 반쯤부터 룸 정리를 하는데, 어느새 30분이 훌쩍 지난 것이다.
설수민이 말했다.
“어쩌죠? 장소 필요하시면 2층에 제 방 내어드릴 수 있는데.”
“하하. 농담도.”
“농담 아니에요~ 괜찮아요. 자고 갈 건 아니잖아요.”
이 말에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자, 설수민이 웃으며 말했다.
“이건 농담. 호호.”
“아이~ 사장님도 참.”
초절정 미인에게 이런 농담을 들으니, 잡생각이 좀 사라졌다.
“그럼 자리 비워드릴게요~ 수고하세요~”
“호호~ 미안해요~”
사랑산성을 나왔다.
내 차 운전석에 앉아서 막 시동을 걸었는데…….
위이잉―
‘00105890…….’
처음 보는 아주 긴 배열의 숫자가 핸드폰에 떴다.
“뭐지?”
이런 경우 스팸 전화일 가능성이 높지만…… 때가 때인지라 일단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여… 여…….]
말이 끊겨서 들렸다.
[여보세요? 잘 안 들립니다!]
[ㅈ…… 작가님! 이정수입니다! 지금도 안 들리세요?]
난 눈이 부릅떠졌고.
휴우~
이정수 팀장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안도의 한숨부터 나왔다.
[네! 이제 들려요! 왜 이렇게 연락이 늦었어요! 계속 기다렸잖아요!]
[아~ 죄송합니다. 전화기가 먹통이기도 했고, 일 처리를 빨리하려고 서두르다 보니…….]
[네? 뭘 서둘러요?]
이정수 팀장은 이 말에는 대꾸하지 않고, 급한 듯 말했다.
[강 작가님, 영어 좀 하실 수 있으십니까?]
[영어요?]
[네, 소더비 관계자가 신분 확인이 필요하다고 해서요. 잠시만요~]
[자, 잠깐만.]
근데 갑자기 음성이 바뀌면서, 영어가 들렸다.
[hello?]
난 기본적인 영어 회화는 곧잘 한다. 다만, 아직 비즈니스 업무를 본 적은 없지만.
[Can you speak slowly?](천천히 말해줄래요.)
[Are you Mr. Kang Tae Pyong. Right?](강태평씨 맞나요?)
[yes, I am.](네 맞습니다.)
[okay. I'm on the Sotheby's funding team. Let me check your identity.](네, 전 소더비 자금팀 직원이에요. 신분 확인 좀 할게요.)
그리고 내게 몇 가지 질문을 하였고.
난 충실히 답해주었다.
소더비 관계자는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을 들은 후.
[That's it. Thank you.](이상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정수 팀장이 전화를 받았다.
[강 작가님!]
[팀장님! 뭐예요? 갑자기?!]
[자금이 급히 필요하다고 하셨잖아요.]
[네?]
[한―EU FTA로 관세 면제받을 수 있거든요. 원산지 증명만 하면 되는데, 그건 제가 처리했으니까요. 입금된 후에 부가세만 정리하시면 됩니다. 저희 영웅 옥션 수수료도요.]
[네?!]
[특히, 세금은 꼭 정리하셔야 해요. 일단, 낙찰가에서 소더비 수수료만 제하고 입금됩니다.]
[…….]
[전화기도 또 먹통이 될까 봐 빨리 설명해 드렸는데요. 추후에 다시 상세하게 말씀드릴게요.]
도대체 뭔 말을 이렇게 급하게 하는지.
대꾸할 새도 없었다.
이렇게 전화가 끊겼나 싶었는데.
[아, 맞다. 강 작가님!]
[네.]
[정말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전화가 끊겼다.
잠시 후.
띠링!
핸드폰 알림음에 화면을 봤더니.
‘입금 : $8,460,000’(약 97억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