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손으로 살아가기-150화 (150/156)

유통처를 찾아서 (2)

* * *

김정식의 눈빛이 번쩍였다.

입 밖으로 내지는 않지만, 우리는 서로가 무엇을 가졌는지 알고 있다.

김정식의 금안.

원래 눈빛이 범상치 않은데.

지금은 유독 노란빛이 번쩍거렸다.

“와…… 어떻게 이런걸…….”

김정식다운 침착한 표정은 완전히 사라졌고.

심지어 턱까지 떨고 있었다.

나 또한 솔러 루비는 볼 때마다 놀라기는 하지만, 지금은 김정식의 이런 모습을 보는 게 더 신기했다.

그만큼 기괴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김정식은 보석에서 시선을 뗀 후, 날 바라봤다.

동공 속에 뭔가가 일렁이고 있었다.

고양이 눈깔 같기도 하고…… 난 그의 눈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걸…… 진짜 파시려고요?”

“네? 아 네.”

꿀꺽.

김정식은 침을 삼키고 말했다.

“혹시 이거 외부에 보여주신 적 있으십니까?”

“아니요. 직원들과 김 의원님 외에는 아무도 보지 못했습니다.”

옆에서 오 대리가 말했다.

“지국쥬얼리 분들 있잖아요.”

“아~”

난 기억을 떠올려 봤다.

그때 제정신이 아니라서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내가 작업하는 모습만 지켜봤겠지만, 아마 정확히 본 직원은 없었을 거야. 파티션으로 가려져 있었고, 반지가 작잖아. 뭐 반지 실루엣 정도는 봤을 수도 있지.”

“다행이네요.”

김정식은 안도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역사를 좌우하는 보석에 대해 들어 본 적 있으십니까?”

“네?”

“세상에서 가장 비싼 다이아몬드를 얻기 위해, 추기경을 유혹하여 죽이려는 음모를 꾸민 여자가 있었죠. 그 여자가 마리 앙투와네트인데, 역사적 사실은 아무 죄도 짓지 않은 걸로 드러났었죠.”

난 갑자기 김정식이 뭔 소리인가 싶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금과 은, 에메랄드를 얻기 위해 잉카인을 죽였던 에스파냐. 영국과 국가적 동맹 관계를 맺기 위해 라 페레그리나라는 진주를 선물하기도 했죠.”

무슨 말을 하려고 역사 얘기를 하는 걸까.

“너무 찬란하게 빛나는 아름다움은 위험한 법입니다. 아름다움도 선을 지켜야 하는 거예요.”

이 낯 간지러운 말을 김정식은 참 진지하게도 했다.

잠자코 듣던 오 대리도 옆에서 손이 오그라지고 있었다.

하지만 김정식은 매우 진지했다.

“이 반지 이름이 있나요?”

“솔러 루비 반지입니다.”

“솔러 루비…….”

김정식은 잠시 생각하고는 말했다.

“최대한 빨리 손에서 떠나보내셔야 합니다.”

* * *

“어떻게요?”

나도 모르게 반문했다.

김정식의 말처럼 거창하게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나도 빨리 팔고 싶다.

종이공예 작품과는 달랐다.

돈이 급하기도 하지만.

솔러 루비…… 내 손으로 낳은 자식인데도, 참 부담스럽다.

김정식 얘기를 듣고 나니, 더 부담스러워졌다.

“하아~ 글쎄요.”

김정식은 이리저리 궁리하는 모습만 보일 뿐,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어설프게 내놨다가는 큰일 날 텐데…….”

알아듣지 못 할 말을 중얼거리더니.

“태평님, 혹시 경매나 귀금속 쪽에 신뢰할만한 분이 있습니까?”

“신뢰요?”

“네, 제 주변에도 전문가들은 있지만, 섣불리 말을 못 꺼내겠네요. 더욱이 혹시나 잘 못 된다면…… 제 것도 아닌데.”

난 곰곰이 생각하고는 대답했다.

“네모씨?”

“네모튜브 크리에이터 말씀 하시는 거죠?”

“네, 맞아요.”

귀금속 쪽으로는 배병규가 있다. 그 사람의 귀금속 촬영 의뢰를 맡으면서 이쪽 일을 알게 되었는데.

얘기 몇 번 안 해보기도 했고…… 그 사람은 신뢰하기 어려워서 이름을 들진 않았다.

“네모씨는 좀 그렇네요. 그분 주변이 노출되기에 너무 좋은 환경이라.”

난 곰곰이 생각하다가.

“아!”

그때, 한 사람이 딱 떠올랐다.

“이정수 팀장님!”

한결같은 모습으로 내 작품을 자기 작품처럼 소중히 해줬던 사람.

종이공예를 그만두기로 마음먹으면서, 그와의 인연이 끝나는 것 같아서 아쉬웠었다.

“이정수 팀장? 영웅 옥션의 경매사 말씀이십니까?”

“네, 맞아요.”

톡. 톡.

김정식은 검지로 탁자를 두들기며 궁리하더니.

“진짜 믿을 만한 사람인가요?”

“저희 직원 최경리보다 더 믿을 만합니다.”

가만 듣고 있던 최경리가 발끈했다.

“어머, 뭐에요?”

“하핫. 농담이야.”

“기분 나뻐, 진짜.”

그리고 확 일어나서 나가버렸다.

“…….”

젠장, 실수했다. 농담 상대를 잘 못 골랐구나.

방 안 분위기가 갑자기 싸늘해졌다.

오 대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말씀드렸죠. 사장님은 웬만하면 농담하지 마시라고.”

그래…… 농담한 내가 잘못이구나.

민망함에 얼굴이 벌게져 있는데.

김정식이 날 도와주었다.

“흠! 어쨌든 그만큼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거죠. 저도 이정수 팀장 압니다. 꽤 괜찮은 사람이죠. 일 처리 깔끔하고.”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 얘기해줘서 고마웠다.

김정식이 일어나면서 말했다.

“그럼 지금 가시죠. 제 차로 가실까요?”

“네? 아, 아니에요. 이제부터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유통처에 대한 정보를 얻어볼 생각으로 김정식을 부른 거였다.

더 이상 폐 끼치기도 싫고, 함께 다니는 것도 부담스럽다.

“어서요. 저도 바쁜 사람입니다. 보석 챙겨서 나오세요. 우선 은행 금고에 보관하죠. 여기 저 조그만 금고 안에 두는 건 너무 위험합니다.”

“아…… 네.”

“제 주 거래처에 미리 연락을 해놓겠습니다. 바로 개설할 수 있도록요.”

“금고에 맡기고 가자고요? 이정수 팀장님께 보여드려야 하지 않아요?”

“사진으로 보여드려도 돼요. 그리고 삼자의 시각으로 옆에서 제가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으니까요.”

“아…… 네.”

난 김정식을 따라나서다가 그가 했던 질문이 떠올랐다.

“김 의원님.”

“네.”

“김 의원님은 제가 신뢰해도 되는 분인가요?”

이 물음에 김정식은 살며시 웃고는 날 바라봤다.

“태평님 마음의 소리를 따르세요.”

영웅 옥션.

이정수 팀장이 로비에서 정자세로 기다리고 있었다.

“팀장님~”

오랜만에 얼굴 보니 반가워서 난 한껏 손을 흔들었다.

“안녕하십니까.”

이정수 팀장은 날 향해 깍듯이 인사했다. 하여간 언제나 한결같다.

그리고 옆에 있는 김정식 의원에게도 인사했다.

“의원님 안녕하십니까.”

“어, 잘 지냈나?”

“네. 두 분 연락받고 기다렸습니다. 자, 이쪽으로…….”

회의실.

자리에 앉자마자, 거두절미하고 솔러 루비 사진부터 보여줬다.

“이게 뭡니까?”

“이번에 제가 만들었어요.”

“아…….”

이정수 팀장은 무슨 괴물 보는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그리고 사진과 나를 번갈아 보더니.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농담하지 마시고요.”

“진짠데…….”

솔러 루비 반지의 각 부분을 자세하게 촬영했고.

이정수 팀장은 화면을 넘겨 갈수록, 눈이 커졌다.

“맙소사…….”

그는 턱이 빠지려고 했고.

옆에서 김정식이 주의를 주었다.

“비밀 유지하시게. 다른 사람 나오지 말고, 자네만 마중하라는 건 이유가 있어.”

“아…… 네.”

그는 화면을 넘기며 중얼거렸다.

“보석이 제 분야는 아니지만…… 엄청나네요. 수많은 예술작품을 보다 보니 그 정도는 느낄 수 있습니다. 이래서 종이공예를 그만두신다고…….”

“아. 보석 세공하려고 종이공예를 그만둔다는 건 아니었습니다.”

화면으로 솔러 루비를 다 보고 난 뒤, 이정수 팀장은 숨을 골랐다.

“일단, 영웅 옥션에서 핸들링할 수준은 아니네요. 김 의원님과 같이 계시니 그건 아마 알고 오셨을 거 같고.”

날 가만히 보고 물었다.

“제가 뭘 도와 드리면 되겠습니까?

* * *

“아…….”

김정식에게 했던 설명을 이정수 팀장에게도 그대로 해주었다.

그는 탄식을 내뱉은 후 고민에 빠져들었다.

“유통처…… 유통처라.”

그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이거…… 꼭 국내에서 해결하셔야 합니까?”

“네?”

이정수 팀장의 말에 난 반문했다.

“아, 아니요. 이왕이면 국내가 편하기는 하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죠. 근데 왜요?”

이정수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건 유통처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이 정도 보석을 구매할 수 있는 소비자는 어느 정도 정해져 있습니다. 즉, 소비자는 특정 소수라고 할 수 있죠. 그분들이 주목하는…… 경매로 가야 할 것 같은데.”

“아…… 경매요.”

경매라는 말에 난 약간 실망했다.

종이공예 때문에 두 번을 경험해봤지만, 그 스트레스가 대단했었다.

웬만하면 우리가 원하는 수준의 가격에 맞춰서, 심플하게 팔 수 있는 곳을 바랐는데.

“혹시 소더비 경매라고 들어 보셨나요?”

“소더비…….”

들어 본 것 같기도 하고…….

아~ 반지 모양 구상하려고 인터넷 뒤질 때 봤던 거 같다.

과거에 ‘비둘기 핏빛 루비’를 사용한 보석들이 주로 경매로 나왔던 곳.

“네, 이름은 들어봤어요.”

이정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뉴욕의 크리스티와 더불어 세계 2대 경매 회사인데요. 그 정도 회사는 되어야 작가님의 보석 작품을 소화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세계 2대 경매 회사…….

난 재빨리 인터넷에 검색해 봤다.

얼마 안 되어, 바로 느낌이 왔다.

아…… 이거, 판이 너무 커지는데.

소더비에서는 고대 귀금속이나 골동품 등 국보급 물품들 거래되며.

금액 규모도 장난이 아니었다.

이런 곳이 내 작품을 받아주기나 할까?

“아니…… 뭐 의뢰하는 건 둘째치고요. 여기서 작품을 받아줄까요?”

이정수 팀장은 솔러 반지를 띄운 화면의 한 곳을 가리켰다. 잼스톤. 즉 반지 헤드의 보석.

“이 보석…… 비둘기 핏빛 루비라고 하셨죠?”

“네, 아세요?”

“그럼요. 미술품이 아니라도 경매에서 기네스를 기록한 작품들 정도는 알거든요.”

이정수 팀장은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유색 보석 중에서는 나올 때마다 신기록을 세웠던 보석입니다. 물론, 그때 낙찰된 ‘비둘기 핏빛 루비’를 사용한 보석들은 역사도 깊고, 사연 있는 보물들이었지만…… 어쨌든 ‘pigeon’s blood ruby’라는 점은 같죠.”

음……. 일단은 찔러봐야 할 타이밍인 거 같긴 하다.

“다른 방법은 없겠죠?”

“네, 적어도 제값 받으시려면 이 방법 말고는 없습니다. 너무 잘 만드셨어요. 그게 문제에요.”

너무 잘 만들어서 문제라…….

어쩌란 말인가. 손 쓰다 보면 눈이 돌아가는데.

“알겠습니다. 그럼 의뢰 방법은…….”

“그건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보석 소개서만 간략히 적어주시면 나머진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어차피 작가님 정보는 제가 다 관리하고 있으니까요.”

“감사합니다.”

김정식 의원은 옆에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아마, 이번에도 급한 일이겠죠? 강 작가님은 돈 필요할 때만 작품 만드시잖아요.”

“하하. 절 너무 잘 아셔.”

난 펜을 들었다.

“그럼 지금 바로 적을게요.”

# 솔러 루비 반지 간략 설명서

이름 : Solar Ruby Ring(솔러 루비 반지)

제작일 : 2021년 9월

Center gemston : 7.4캐럿 버마(미얀마) 루비. 비둘기 핏빛 레드.

원산지 : 버마산(미얀마)

칼라 : “pigeon’s blood” color

설명: 헤드는 비둘기 핏빛 레드 칼라 루비이며, 플래티넘(백금)에 마운트 됨. 50개의 다이아몬드 엑센트 스톤으로 장식. 성화 봉송의 모양.

그리고 한가지 내용을 더 넣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넣었다.

‘제작사 : Love Fortress(사랑산성)’

소개서를 넘긴 후, 난 바로 회사로 복귀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이정수 팀장에게 연락이 왔다.

[강 작가님~ 소더비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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