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손으로 살아가기-149화 (149/156)

유통처를 찾아서 (1)

* * *

출근하는 길.

택시로 가고 있다. 어제 차는 사랑산성에 두고 갔다.

‘야! 이 상태에 큰일 나려고! 차는 놔두고 가!’

자연스럽게 차 문을 열자, 변 이사는 정색하고는 말렸고.

난 그의 손에 이끌려 강제로 택시를 타야 했다.

“하암~”

난 택시 뒷자리에 앉아서 크게 하품을 했다.

어제 정오도 안 되어 집에 들어와서, 오자마자 죽은 사람처럼 내내 잠만 잤지만.

피곤이 쉽게 가시질 않는다.

그래도 좀 자서 그런지, 어제처럼 꿈속을 걷는 기분은 아니었다.

이제 진짜 제정신.

어제는 정말 기분이 이상했다.

생명력이 소모된 기분이었달까?

“도착했습니다.”

“네~”

사랑 산성 앞에 택시는 섰다.

택시 기사는 두리번거리며 중얼거렸다.

“허허. 뭔 아침부터 단란주점을. 어제 놀다가 뭐 놓고 가셨나 봐요? 잠깐 기다릴까요?”

“하하. 아니요. 제 근무지입니다.”

택시 기사는 이상한 눈초리로 날 위아래로 훑어봤다.

“…….”

아…… 이제 이 반짝이는 간판은 좀 바꾸자고 해야지. 업종 바뀐 지가 언젠데.

아침 8시. 사랑산성 3번 룸.

덜컹.

“굿모닝~”

난 밝게 인사를 하며 들어섰고.

직원들은 모두 출근해 있었다.

― 사장님 안녕하세요~

―몸 좀 괜찮으세요?

―얼굴이 훨씬 나아지셨네. 어젠 좀 이상했어요.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난 변 이사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이사님? 저 왔어요.”

어젠 그렇게 날 보호하느라 난리를 쳤었다. 민망했는지 내 시선을 피했다.

“이사님? 아는 척 좀 해주세요?”

“맨날 보는 사이에 뭘. 흠!”

변 이사는 날 살짝 올려다본 후, 다시 시선을 모니터 화면에 두었다.

“어제 영업은 잘했어요? 음식 맛 똑같다고 고객 컴플레인은 없었어요?”

“그런 거 없었어. 한 번쯤은 괜찮을 거라고 했잖아.”

“다행이네요.”

그리고 3번 룸을 이리저리 돌며 직원들 일하는 걸 보고 있는데.

변 이사가 물었다.

“몸은 좀 어때? 괜찮아?”

“네~ 괜찮아요. 보시다시피.”

변 이사는 다시 날 힐끔 본 후, 불만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괜찮긴. 밥 좀 많이 먹어야겠구만. 얼굴이 그게 뭐야.”

옆에서 최경리도 한마디 거들었다.

“그러니까요. 도대체 3일간 뭘 하면 얼굴이 저렇게 갸름해질 수 있을까요.”

“…….”

“3일 굶는다고 해서 볼이 쏙 들어가진 않던데?”

설마…… 지금 이 타이밍에 다이어트를 고민하는 건가?

3일 만에 쪼그라든 내 모습이 부럽다는 건 아니겠지?

“혹시 보석 세공하신 게 아니라, 등산하다 오신 거 아니에요?”

“최 과장…… 그걸 농담이라고.”

온 힘을 다해 보석 세공하다 왔더니, 하는 소리가 참…….

어쩔 수 없이 내 눈빛이 곱지 않았고, 최경리는 눈을 내리깔며 중얼거렸다.

“농담 아닌데…….”

그게 더 기분 나뻐!

변 이사가 일어났다.

“그래, 말 나온 김에…… 우리 너무 궁금했거든?”

“네?”

“만들어 온 보석 좀 보자.”

이 말에 직원들도 눈을 빛내었다.

“어? 아직 안 보셨어요?”

“당연히 안 봤지. 사장 허락 없이 금고를 열면 되나.”

“…….”

나도 궁금하긴 하다.

어제 완성하긴 했지만, 나 또한 자세히 보진 못했다.

아니, 자세히 보긴 한 거 같은데. 잘 기억이 안 난다.

어제는 온종일 취해 있던 기분.

* * *

띠리리리~

금고 비밀번호를 눌렀다.

오래된 목각 상자를 들고나오자.

직원들은 침을 삼키며 긴장했다.

U형 소파 앞의 커다란 타원형 테이블.

원래는 각종 술과 안주가 올라가던 자리라 테이블이 굉장히 넓다.

이 커다란 테이블 중앙에 목각 상자를 놓았다.

“저 상자는 컨셉이예요? 왜 안 바꿔요?”

오 대리의 물음에 난 대답했다.

“원래 집이니까. 아무리 세공을 해서 갈고 닦아 멋있어져도, 집이잖아. 근본.”

“…….”

“난 저 목각 상자 때문에 보석이 더 빛난다고 믿거든. 내가 가지고 있는 동안은 케이스 바꿀 생각 없어.”

변 이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하여간 취향 참 특이해. 점점 도사 같은 말도 많아지고… 어서 보석이나 꺼내 봐~ 궁금해.”

딸깍.

난 목각 상자를 열었다.

살짝 열린 틈새로 빛이 새어 나왔다.

목각 상자 안에 랜턴을 넣어둔 것도 아닌데…….

―우와아~

직원들은 일제히 소리를 질렀고.

“오~”

어이없게도 나도 똑같이 소리 지르고 말았다. 마치, 남이 만든 작품에 놀란 것처럼.

꿀꺽.

목각 상자를 활짝 열었고.

상자 안에서 느껴지는 은빛과 붉은빛의 향연.

두 색깔이 겹쳐서 금빛처럼 보이기도 하고.

목각 상자 주변에 쌍무지개가 뜬 것 같았다.

“뭐야? 마술 부리는 거야? 그거 마술 상자 아니죠?”

김지안은 초점 없는 눈으로 중얼거렸고.

오 대리도 이상한 말을 했다.

“하여간 강 사장님은 사람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으시네요.”

변 이사는 헛웃음을 지었다.

“와…… 이거 참. 허허.”

그리고 내게 말했다.

“강 사장님 꺼내서 보여줘 봐. 자세히 좀 보게.”

“이사님이 꺼내서 보세요.”

변 이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야. 난 못 만져. 부담스러워.”

“…….”

사실 나도 만지기 부담스러워서 말한 거였다. 왜 이럴까. 내가 만든 건데.

“휴우~”

난 심호흡을 하고는 조심스럽게 반지를 목각 상자에서 꺼내었다.

“오…….”

루비 반지의 밑부분까지 다 보이자, 직원들의 얼굴이 흥분으로 붉어졌다.

루비 반지…….

‘비둘기 핏빛 칼라’라고 불리는 신비로운 색상의 버마산 7.4캐럿 루비가 센터 스톤, 즉 헤드의 정중앙에 자리를 잡았고.

그 루비를 잡아주는 난발은 까르티에 스타일(4발 세팅)로 되어 있었다.

난발이 꽃봉오리 모양으로 받치고 있는데, 유난히 붉게 빛나는 루비 덕분에 마치 성화 봉송처럼 보였다.

쉥크, 즉 반지 부분의 밴드 부분은 아주 얇지도 두껍지도 않았지만, 안정감이 있었다. 회백색으로 빛나는 백금 역시 아주 단단해 보였다.

숄더(어깨), 헤드 부터 반지의 중간 부분까지는 엑센트 스톤으로 세팅되어 있다. 이 부분에는 의도적으로 사이드스톤을 넣지 않았는데, 그건 루비를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함이었다.

1mm의 다이아몬드가 엑센트 스톤으로 숄더 부분을 은하수처럼 채우고 있었다.

이 반지는 마치 태양계. 은하수 속에 있는 붉은 태양 같았다.

“이름 정했네요.”

내 동공에 루비 반지가 아른거렸다.

처음에 어색함은 사라지고, 내 손에서 탄생한 이 루비를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봤다.

“이번엔 제발 이름에 ‘사랑’은 넣지 말자.”

변 이사의 말에 일부 직원이 킥킥대었지만.

난 웃을 정신이 아니었다. 태양계를 떠올렸을 때, 번뜩 생각난 이름.

“Solar Ruby.”(태양의 루비)

“…….”

“태양을 닮았다고 해서 지은 건데. 어때 괜찮죠?”

오 대리는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보통 solar는 태양열을 의미할 때 많이 쓰기는 하는데…… 뭐 이렇게 써도 크게 이상하진 않네요.”

난 반지를 직원들에게 내밀며 물었다.

“좀 더 자세히 볼 사람?”

“에헤이~”

다들 손사래를 치며 피했다.

아직도 부담스럽나?

난 피식 웃고는 물었다.

“다 본 거죠?”

“네.”

“그럼 집어넣습니다~”

난 루비를 목각 상자에 넣으며 말했다.

“자~ 그럼 담에 보자~”

‘The Solar Ruby Ring’

* * *

이후 우리는 점심 영업을 준비하였고.

레스토랑 영업을 모두 마친 후.

오후 3시에 우리는 3번 룸에 다시 모였다.

물건을 확인했으니, 이제 잘 팔아야 한다.

직원들의 표정을 보니, 팔아도 될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하지만…… 일하는 내내 김지안의 표정이 어두워 보였다.

부담스러워하는 표정이 역력했는데.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보석 세공’사업의 담당자이니까.

김지안이 주관할 수 있도록 지시를 내렸다.

“김지안 대리?”

“네.”

“유통처는 알아봤어?”

“…….”

분묘공고가 끝나는 대로, 우리는 건축사사무소에 대금 지급을 하고 곧바로 건설착수를 해야 한다.

김지안 또한 지금 시간이 금이라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죄송합니다.”

“왜…… 마땅한 곳이 없어?”

“몇 군데 알아보기는 했는데…….”

김지안은 불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오늘 솔러 루비를 보고 부족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응?”

루비 원석이 10억 원이고, 희망 판매가는 5~60억 원 정도로 잡았었다.

이건 사전에 공유했던 부분인데…… 부족할 것 같다고?

“우리가 이미 설정했던 가격…….”

내 말이 끝나기 전에 김지안이 대답했다.

“네, 알고 있습니다. 그에 맞는 유통처들을 알아봤었어요. 근데 100억 원 상당의 보석을 매입할 수 있는 유통처는 찾지 못했어요.”

“웬 100억? 무슨 소리야.”

김지안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사장님, 저 공부 많이 했어요. 제가 맡은 개인 과업이고, 지금 시점에서 회사의 중요한 전략이라서 정말 많이 연구했단 말이에요. 루비에 한해서는 보석 감정도 자신 있을 정도예요.”

“…….”

“지금 몇 달간 보석만 질리게 보고 다녔는데, 대략 보면 알죠.”

나와 직원들은 묵묵히 김지안의 말을 들었다.

“적어도…….”

김지안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가 아는 한 솔러 루비를 소화할 수 있는 국내 유통처는 없습니다.”

그리고 날 원망하는 눈초리로 바라보며 말했다.

“왜 이렇게 잘 만드셨어요. 사장님……. 적당히 하셨어야죠.”

“뭐야, 이거…….”

황당하다.

그러니까…….

너무 잘 만들어서 팔 때가 없다는 건가?

뭔 이런 경우가…….

최경리나 오 대리라면 일을 제대로 못 해놓고 헛소리한다고 의심할 만한데.

김지안이라면…… 맞는 거다.

일을 시키면 항상 기대한 것 이상으로 해온 똑똑하며 노력파인 직원이다.

변 이사는 헛웃음 지으며 중얼거렸다.

“참나, 별일이 다 있네.”

사랑산상 3번 룸.

전 직원은 머리가 멎어버렸다.

반지 하나는 기가 막히게 만들었는데.

저걸 어떻게 처리한다?

그냥 제 가치를 못 받더라도 싸게 팔아야 하나?

한참을 서로 아무 말 없이 고민하던 와중에.

“저기 말이야. 강 사장님.”

변 이사가 날 조심스럽게 불렀다.

“김정식 의원님한테 한번 물어보는 게 어때?”

“네? 김 의원님이요?”

“그래. 그분이 정보력이 뛰어나더만. 보육원 토지 매입 건도 그랬었고.”

“…….”

난 대꾸하지 않았고. 변 이사는 내 눈치를 살피다가 다시 말했다.

“자기가 김 의원님이랑 엮이고 싶지 않아 하는 건 나도 아는데, 딱히 방법이 없잖아. 정보 정도야 좀 얻으면 어때.”

묵묵부답인 날 보다가 변 이사가 다시 한마디 했다.

“아, 누가 이렇게 잘 만들래?”

너무 잘 만든 내 탓인가.

난 잠시 고민하다가…….

한숨을 쉬고 말했다.

“오랜만에 연락 한번 해보죠. 뭐.”

다음날 오후 3시.

김정식 의원이 사랑산성으로 왔다.

“의원님 어서 오세요. 잘 지내셨어요?”

“태평님. 잘 지내셨습니까.”

그는 항상 그랬던 것처럼 내게 깍듯하게 인사했다.

그를 금고가 있는 4번 룸으로 안내했다.

4번 룸에는 사랑산성 직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서로 가볍게 인사를 나눈 뒤.

“근데 어쩐 일로…….”

난 그를 앉히고는 말했다.

“일단, 물건 보고 얘기하시죠.”

“물건이요?”

난 솔러 루비를 꺼내며 말했다.

“제가 루비 반지를 하나 만들었거든요. 적절한 유통처를 못 찾아서…… 도움 좀 받을 수 있을까 해서요.”

난 목각 상자를 열었고.

김 의원의 눈이 빛을 내며 커졌다.

“마, 맙소사.”

난 혹시나 김 의원이 사겠다고 할까 봐, 미리 얘기했다.

“종이접기 경매 때 그랬던 것처럼, 김 의원님께는 판매할 의향이 없습…….”

“아니요.”

김 의원은 내 말을 잘랐다.

“이건…… 제가 살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