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깨우는 소리 (2)
* * *
탕! 탕!
깜깜한 익산의 밤.
적막한 지국쥬얼리 공장 안에는 강태평의 망치질 소리만 가득하다.
먼저 백금을 네모반듯하게 모양을 잡은 뒤, 다시 열을 가했다.
그리고 다시 벼림질.
백금(플래티넘)은 높은 밀도와 경도 때문에 열을 가하고 벼림질을 하는 과정을 수차례 반복해야 한다.
벼림질은 당연히 처음이다.
근데도 손에 너무나 익숙했다.
조금도 헤매지 않고, 숙련된 사람처럼 해나갔다.
“이 부분이 뾰족하니까, 좀 더 두들기고…… 이쪽은 표면이 매끄럽지 않네.”
그저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눈에 보기 좋도록 망치를 활용해 나갈 뿐이었다.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을 위해.”
지국쥬얼리에서 눈으로 보고 익혔던 것을 떠올리며, 이 과정을 계속 반복해 갔다.
마음에 들 때까지.
다이아몬드나 루비를 세팅하기에 백금이 가장 좋다. 단단한 물리적 특성 때문에 흔들리지 않게 고정할 수 있으며, 변하지 않는 회백색이 가장 화려한 보석과 잘 어울리기도 한다.
벼림질을 더해갈수록 백금 특유의 색상이 살아나기 시작했고, 이제야 왜 ‘비둘기 핏빛 루비’ 보석은 대부분 백금 위에 올려졌는지 이해가 되었다.
이젠 열풀림(재료를 가열, 냉각하여 굳기 따위의 기계적 성질을 변화) 작업을 벼림질과 함께 했다.
백금이 조금씩 형태를 갖추어갔고.
쇠망치를 이제 나무망치로 바꿔서 벼림질을 했다.
이제 형태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쇠기둥에 동그랗게 말아서 형태를 잡고, 나무망치로 두들기며 모양을 잡아갔다.
그리고 반지 모양으로 연결해서 땜질했다. 사이즈를 맞춰야 하는데…….
“일단 내 손가락 사이즈로 하자.”
사이즈야 추후에 조정할 수 있으므로, 일단 내 손가락 사이즈에 맞췄다.
얼추 반지 모양은 만들었다.
이제부터가 진짜다.
먼저 줄질(갈아내기)로 디테일한 모양을 만드는데.
‘주변이 너무 화려하면 주인공이 눈에 띄지 않는 법이지.’
루비와 다이아몬드를 받치는 백금은 너무 화려하지 않게 하려 했다.
매끈하게…….
칡넝쿨이 손가락에 감긴 것처럼.
얇으면서도 견고한 느낌이 들도록 모양을 잡아갔다.
‘너무 특이하지 않도록…… 안정적으로 보여야 해.’
줄질로 모양을 잡은 후, 텀블링(광내기) 작업으로 반지 형태는 마무리했다.
“아! 그래도 흔적은 남겨야지.”
반지 뒷부분에 새겼다.
‘Love Fortress’
이제…… 다이아몬드와 비둘기 핏빛 루비 차례.
작업대 위에 두 보석이 반짝였다.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 * *
눈앞에 확대경을 장착했다.
미세한 클립을 들고, 1mm의 다이아몬드를 하나씩 들었다.
다이아몬드가 들어갈 자리를 만들었던 곳에 하나씩 갖다 붙였다.
총 붙여야 할 다이아몬드는 50여 개.
난 내 손은 믿지만, 눈은 못 믿는다.
너무 미세한 곳에 수작업을 해야 하는데…… 손은 조금도 떨리지 않는다.
마치 로봇처럼 눈이 의식한 곳에 정확히 갖다 붙일 뿐.
다만 눈의 초점이 흔들릴 뿐이다.
그렇게 20여 개쯤 완료되었을 때.
꼬끼오~
닭 울음소리가 들렸다.
어깨가 찌뿌듯하다.
손만 쓰는 거였으면 금세 끝날 일인데.
이 작업에서는 눈도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해서, 시간이 오래 걸렸다.
눈이 손을 못 따라온다.
밝아 오는 여명을 보며, 이곳에 여유 있게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곤하니 눈이 침침하다.
이러다가 다이아몬드를 엉뚱한 곳에 붙일 것 같아서, 멈추고 소파에 누워서 잠을 청했다.
주말이라 직원들도 없고, 잠자기는 좋았다. 맘 편하게 작업하기도 좋고.
늦은 오후에 일어나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그렇게 다이아몬드 붙이는 작업은 일요일 새벽에 끝났다.
정말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작업이었다.
“아오, 눈 떨려.”
손은 멀쩡한데, 눈두덩이가 파르르 떨린다.
50개의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는 반지를 보았다.
“휴~ 좋아. 90%는 끝났어.”
이제 반지의 정 가운데.
메인 보석의 자리만 남겨놓고 있다.
‘비둘기 핏빛 루비’의 자리.
금고에서 목각을 꺼내어, 조심스럽게 뚜껑을 열었다.
번쩍!
“오…….”
볼 때마다 진기하다.
참 오묘한 색깔.
핏빛 바다 같다고 해야 할까.
두께가 5mm도 되지 않는 보석인데, 가까이에 눈을 대고 보면 보석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무한대의 핏빛 바다.
멍하니 보고 있다 보면 빠져들 것 같다.
벌써 일요일.
늦어도 오늘 중에는 서울에 올라가야 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난 가만히 루비를 바라보았다.
원석에 살짝 광택만 냈다고 들었는데.
이 상태만으로도 꽤 괜찮다.
그대로 마운트(보석장착)할까 하다가…….
“아니야. 더 가치를 올려야지.”
난 루비를 블루팅 기계 위에 올려놓았다. 보석 표면을 조금씩 깎여 나가게 하여 가공 면을 내는 작업인데…….
“…….”
올려놓기는 했지만, 막상 기계 작동을 시키려니 겁이 더럭 났다.
무려 90만 불짜리 루비.
까딱하다가 실수라도 했다가는…….
꿀꺽.
기계에 올려놓은 채, 30분 정도를 망설였다.
이 상태로 반지에 올려도 충분한 값어치를 받아낼 것 같은데.
손 한번 보고.
블루팅 기계 한번 보고.
90만 불. 원화로 10억.
좀 후달리네…….
에라이~!
난 어금니를 꽉 깨물고 기계를 작동시켰다.
부아앙~
지금까지 해 온 것들이 있는데. 그래도 못 믿어?
내게 일어났던 일들이 있는데.
문득 성당에서 들었던 엘리야 이야기가 떠올랐다.
‘손바닥만 한 작은 구름 한 조각에도 비가 올 것이라고 믿었다.’
난 구름 한 조각도 아니고, 숱하게 직접 경험을 해왔는데도 왜 믿지 못한단 말인가.
분명히 잘 될 텐데.
부아앙~
10억 원을 보지 말고, 내 손을 보아야 한다.
정신을 집중하여 ‘비둘기 핏빛 루비’를 세공해 나갔다.
* * *
월요일 아침. 8시.
지국쥬얼리 직원들은 출근 중이었다.
사각. 사각.
―무슨 소리지?
―벌써부터 작업 중인 사람이 있어?
정규 출근 시간은 오전 9시.
일부 직원이 좀 일찍 온 것인데…….
이 시간에 한창 작업 중인 소리가 나는 곳으로 직원들은 모여들었고.
파티션으로 구분된 ‘사랑산성’ 작업장에서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이상한데.
―도둑 든 거 아니겠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이 시간에 그것도 임대 작업장에서 소리가 들린다는 게.
파티션의 높이는 170cm 정도였고.
성인 남성의 키로 까치발 들면 안이 쉽게 보일 수 있는 높이였다.
직원들은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안을 들여다보았고…….
―헉!
―뭐, 뭐야?!
한 광인이 미친 듯 텀블링(광내기)을 하고 있는데.
머리는 산발에 볼은 움푹패였고, 눈두덩은 퀭했다.
손이 보이지 않았다.
텀블링은 섬세함이 필요한 작업인데, 그의 손놀림은 그냥 대패질하는 것 같았다.
꿀꺽.
직원들은 넋 놓고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 광인도 주변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눈빛에 현실감이 없었다. 물아일체.
완전히 몰두하여, 눈가에 핏기가 어리다 못해 피눈물이라도 쏟을 것 같았다.
사람들은 그저 멍하니 구경했고.
9시가 가까워질수록 구경하는 직원들은 점점 더 많아졌다.
―와…… 저 반지 봐봐.
―달인이 온 건가? 보통 세공 기술이 아닌데?
―말도 안 돼…….
마치 반지에 불이라도 켜진 듯, 태양을 닮은 노란빛과 붉은빛이 반짝였다.
슥삭. 슥삭.
“뭔데 이렇게 모여 있어?”
출근한 채 사장이 직원들 틈을 가로지르고 이 광경을 보았다.
그리고 광인…… 강태평을 발견했다.
“아…… 아니. 계속 굶은 거야?”
며칠 새에 완전 메말라 버린 몰골.
말려야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도저히 입을 뗄 수가 없었다.
지금 방해하면 무언가 큰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채 사장과 직원들.
9시가 지났지만, 일할 생각도 못 하고 그저 멍하니 지켜보았다.
9시 30분경.
뚝.
강태평의 손길이 멈췄다.
후우―
그리고 그는 깊은 한숨을 뱉어내었다.
“하하.”
반지를 손 위에 올려놓고 그는 웃었다.
“으하하.”
그의 웃음소리가 음산하게 들렸다. 약간 울음기도 섞여서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하하! 믿었습니다. 믿었어요! 하하.”
강태평은 큰 소리로 웃으며 소리쳤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는 계속 웃으며 하늘을 보았다. 감사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 * *
어떻게 사랑산성에 왔는지 모르겠다.
운전해서 온 것 같기는 한데.
아니, 분명 운전을 하고 온 건데.
꿈에서 운전을 한 건지, 실제로 운전을 한 건지.
조수석에 놓인 목각 상자를 확인했다.
그래, 꿈꾼 게 아니야.
제대로 했고, 무사히 왔어.
반지 만드느라 너무 집중해서, 그냥 좀 정신이 혼미한 것뿐이야.
“어머.”
주방으로 들어왔더니.
날 가장 먼저 발견한 최경리가 깜짝 놀랐다.
“사장님! 괜찮으세요?”
“응? 왜? 뭐가?”
“얼굴이 왜 이래요? 아픈 사람처럼?!”
덜컹. 그때 변 이사가 주방으로 들어왔다.
“이야~ 강 사장님 고생 많았…… 응?!”
변 이사가 기괴한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다녀왔습니다.”
“야…… 태평아~!”
그는 내 얼굴을 찬찬히 살피고는, 눈빛이 급격하게 흔들렸다.
내가 뭘 잘못했나?
“적당히 좀 해라! 적당히!”
“네? 제가 뭘…….”
휘청.
순간 어지러워서 다리가 풀릴 뻔했다.
“사장님! 조심하세요!”
오 대리가 재빨리 다가와 날 부축했다.
“어머…… 사장님 어떡해.”
김지안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날 바라봤고.
난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어서…… 영업준비 해야지. 오 대리, 나 괜찮아. 이거 놔.”
그때, 변 이사가 내 어깨를 거칠게 잡았다.
“태평아. 이 상태로 무슨 장사냐!”
“그럼 어떡해요. 전 요리를 해야 하는데.”
난 멍하니 말했고.
변 이사의 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젠장.”
그는 거칠게 눈가를 훔쳐내고 중얼거렸다.
“대신 할 수 없다는 게, 이런 게 마음 아픈 일이었냐?”
“훗. 이사님 무슨 말씀이세요. 언제는 회사에서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사람이 되라고. 그래야 자리가 안전하다고…….”
변 이사는 고개를 젓고는 대답했다.
“아니야. 내 생각이 짧았어. 그 말은 잊어.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해.”
“…….”
변 이사는 한숨을 한번 쉬고는 뭔가 궁리하더니.
“김지안 대리. 디너 주방장님 연락처 알아?”
“네, 알고 있습니다.”
“오늘만 점심 영업 좀 해주실 수 있는지 여쭤봐. 아니, 꼭 해주셔야 한다고 말해. 못 한다고 하시면 사랑산성 오늘 문 닫는다고.”
“네.”
김지안은 바로 통화를 시도했고, 난 변 이사에게 말했다.
“이사님, 그럼 어제와 맛이 같을 텐데요. 우리 레스토랑 특징이…….”
“괜찮아. 한 번쯤은.”
“고객 컴플레인 오면…….”
“컴플레인 오면 좀 받지 뭐! 그게 중요해?! 너무 완벽히 하려고 하지 마!”
변 이사는 주방 한켠에 놓은 내 가방을 들었다.
“혼자 다 짊어지지 말라고! 그거 주변 사람 위하는 거 아니야!”
“…….”
변 이사는 내 어깨를 감싸 안고, 주방 밖을 향해 걸어갔다.
“태평아, 어서 들어가 쉬자. 여기는 나한테 맡겨두고.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선배님…….”
지난 이틀간 익산에서 하얗게 불태웠다.
이상하다.
체력과 정신을 너무 소모해서일까.
변 이사의 몇 마디 말이 왜 이렇게 가슴에 꽂히는지.
고맙고, 미안해서 자꾸 울컥거렸다.
“고맙습니다.”
“고맙긴. 내가 미안하지.”
변 이사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어두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