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손으로 살아가기-147화 (147/156)

새벽을 깨우는 소리 (1)

* * *

미얀마 출장의 여파는 꽤 길었다.

2박 3일간…… 비행기에서 잔 시간까지 치면 3박 4일간의 미얀마 출장.

대부분이 이동하는 시간이었고, 일한 시간은 10시간도 채 되지 않는다.

“거참 이상하단 말이야. 앉아서 이동만 했는데도 왜 이렇게 피곤한 걸까….”

내 말에 오 대리가 대답했다.

“원래 그래요. 시차 영향도 무시 못 하고요. 이동한다는 건 몸이 움직이지 않더라도 정신이 움직이거든요. 어쨌든 공간이 바뀌는 거니까.”

“오~ 그래? 신기하네. 검증된 얘기야?”

“아니요. 제 뇌피셜이에요. 그래도 다년간 여행 경험을 통한 뇌피셜이니까, 뭐 검증되었다고 할 수도 있죠.”

개뻥을 꼭 진짜처럼 말하네.

가만히 보면 오 대리는 참 능청스럽다.

최근에 오 대리는 여자친구가 또 바뀌었다고 들었는데.

저런 말도 안 되는 말에 귀 기울이는 여성들도 좀 이해가 안 되고…….

“여보세요? 네. 네? 누구요?”

미얀마에서 복귀한 후, 약 일주일이 지난 화요일.

3번 룸에서 직원들과 노가리 까는 중이었는데.

김지안이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자꾸 되물었다.

“말씀을 좀 또박또박하세요!”

보다 못한 나는 김지안에게 물었다.

“도대체 뭔데 그래?”

“자꾸 혀 꼬인 목소리로 뭐라 말을 하는데, 술 취한 사람 같기도 하고, 문제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한국말인데?”

“네, 분명 한국말인데,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혹시 외국인 아니야?”

“외국인?!”

김지안은 눈을 번쩍 떴고.

“아…….”

김지안은 핸드폰을 들고, 영어로 몇 마디 했는데.

더 답답해했다.

곧바로 핸드폰을 내리고 내게 말했다.

“영어로 하니까, 더 못 알아듣는데요? 오히려 한국어가 더 나아요.”

“잘못 걸린 전화는 아니고?”

“아니에요. 제 이름 얘기하고, 사랑산성이냐고 묻는 거 보면…….”

혹시…….

핸드캐리?

핸드캐리는 보통 사업자가 운영을 한다.

사랑산성에서 핸드캐리 업체를 쓸 일이 없었지만, 진일상사 시절에는 간혹 써본 적이 있다.

“김지안 대리. 지난주에 수입신고 했다고 했지?”

“네, 인보이스 받고 세관에 수입신고 완료하긴 했는데…….”

어제 이메일로 BL(bill of lading)과 인보이스를 받았었다.

핸드캐리로 받지만, 우리는 정식 통관으로 진행했다.

미얀마 원석 수입은 관세 면제 대상(한―아세안 FTA)인 보석에 해당하기에 세관 신고도 딱히 꺼릴 이유가 없었다.

출장 가기 전에 확인했던 사항이다. 그래서 보석 협상을 좀 더 공격적으로 할 수 있었다.

핸드캐리 업체에서 곧 연락이 올 것으로 기다리고 있기는 했지만…… 이렇게 개인이 그것도 외국인이 연락할 줄은 생각 못 했다.

“스피커 폰으로 바꿔봐.”

“네.”

난 핸드폰 번역기를 켰다.

우선 미얀마 인사말 먼저 해봤다.

“밍글라바.”(안녕하세요.)

“호~ 밍글라바!”(네~ 안녕하세요!)

역시…… 미얀마인이 맞구나.

그래도 확인차 물었다.

“미얀마 루묘라?”(미얀마 사람이에요?)

“호께바~ 쩐노 아쿠 코리야마 야우케데.”(맞아요~ 저 지금 한국에 도착했어요.)

그리고 이어진 대화에서 그가 매우 불안해한다는 게 느껴졌다.

“어디로 가야 해요?”

“지금 어딘데요?”

“인천공항입니다.”

아무래도 한국이 처음인 것 같다.

90만 불의 비둘기 핏빛 루비를 가지고 있다.

이야길 나누다 보니 나까지 불안해져서, 아무래도 직접 찾으러 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희가 갈게요. 잠시만 기다려요.”

“아~ 그래 줄래요? 정말 고맙습니다.”

난 곧바로 오 대리와 변 이사를 불렀다.

“남 직원들! 지금 바로 공항으로 갑니다.”

다른 일을 하고 있던 변 이사가 물었다.

“나도 꼭 가야 해?”

“변 이사님은 꼭 가야죠. 여기서 유일한 유단자잖아요.”

난 시동을 걸러 먼저 나갔다.

변 이사는 강태평이 나간 문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와…… 그걸 기억하네. 태권도 1단 가지고 유단자는 무슨…….”

* * *

내곡동에서 인천공항까지 30분 만에 도착했다.

내 차로 갔고, 빨리 가야할 것 같아서 좀 밟았다.

“하아…… 다신 강 사장님 차 안 탈 거야…….”

오 대리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는 차에서 내렸다.

“도대체 속도를 얼마나 낸 거예요. 도로가 뻥 뚫린 것도 아닌데…… 고속도로 들어서부터는 진짜……와~ 이건 곡예 운전 수준 이상이에요. 그냥 서커스.”

내 운전 실력을 아는 변 이사도 얼굴이 좀 질려 있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이번 건 진짜 역대급이었어.”

난 피식 웃고는 말했다.

“자, 어서 가시죠.”

인천공항에서 전화한 사람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동남아시아인 세 사람이 딱 붙어서서 사주경계를 하고 있었다.

난 조심스럽게 다가가 물었다.

“혹시…… 모곡에서 왔어요?”

그는 이 말에 대답 대신 엉뚱한 미얀마어를 했다.

“칫데 바테 네야.”

사전에 안내받은 암구호였다.

난 약속된 대로 미얀마어로 대답했다.

“레 타 코아 사메.”

미얀마인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휴~ 다행이다.”

그는 내게 여권을 요청했고, 난 보여주었다.

그는 꼼꼼히 내 얼굴과 여권을 대조한 후.

“지금 드릴까요?”

여긴 인천공항 로비 중앙이었다. 완전히 개방된 장소.

좀…… 그런가?

장소를 옮겨야 할까 싶어서 두리번거렸는데.

“강 사장님, 그냥 여기서 받아.”

변 이사가 말했다.

“네? 너무 공개된 장소 아니에요? 위험하지 않을까 싶은데.”

변 이사는 고개를 저었다.

“막힌 장소가 더 위험한 법이야. 어떠한 일이 벌어져도 주변 사람들이 모르잖아.”

“아…….”

“꺼릴 게 없는 거래인데. 뭐 하러 숨어서 해. 확 트인 곳에서 물건 받아.”

변 이사는 이 세 명의 미얀마인도 경계하는 눈빛이었다.

난 고개를 끄덕이고 미얀마인에게 말했다.

“여기서 받을게요. 주세요.”

변 이사와 오 대리는 낯선 사람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사주경계를 하였고.

미얀마인은 내게 조심스럽게 목각 상자를 건네었다.

“이거 하나 때문에 세분이 함께 오신 거예요?”

“셋도 부족하죠. 이 성스러운 보석을…….”

정품인증서 내용을 확인 후, 실물을 꺼내보았다.

미얀마에서 헤어질 때 받았던 모래알 크기의 비둘기 핏빛 루비와 확대경으로 비교해봤는데.

같은 색깔이 맞다.

“자, 이건 확인했으니까 돌려줄게요.”

모래알 크기더라도 가치가 크다.

미얀마인은 조심스럽게 받았다.

“그럼 저희는 무사히 전달했습니다. 떼인놰 사장님께 연락 부탁드립니다.”

“네, 알겠어요.”

무사히 전달을 마친 미얀마인 3인은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자, 빨리 움직이죠. 확실하게 해야죠.”

우리는 곧바로 종로의 한 보석감정사를 찾아갔고.

비둘기 핏빛 루비를 본 감정사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말도 안 돼…… 이 귀한 걸 어떻게…… 와~ 빛깔, 사이즈…….”

90만 불 짜리 비둘기 핏빛 루비가 맞다는 걸 확인했다.

보석감정사는 우리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했지만, 우리는 대답을 피했다.

그렇게 해달라고 떼인놰에게 요청을 받았고, 헤어지기 전 웃돈을 얹어주며 말했다.

“보석 검증은 비밀 유지하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꼭 지켜주세요.”

“네, 염려 마세요.”

검증도 완벽히 끝냈고.

7.4캐럿 비둘기 핏빛 루비. 완벽히 접수했다.

모든 재료는 완벽해졌고.

이제부터는…… 내 손에 달렸다.

잘 만들기만 하면 된다.

우리는 곧바로 차에 탔고, 사랑산성으로 향했다.

이 보석을 금고에 넣을 때까지 안심할 수가 없었다.

뒷자리에 앉아서 조용히 가던 오 대리가 말했다.

“강 사장님.”

“응?”

“아까 암구호 뭐예요? 궁금해요.”

“아~ 그거.”

난 피식 웃고는 말했다.

“별 내용 없어~ 그냥 암구호.”

“그래도 궁금해요. 말해줘요.”

난 잠시 생각하고는 말했다.

“암구호 내가 지은 거 아니야. 떼인놰가 정해 준거야. 오해할까 봐. 미리 얘기해.”

“아, 알았어요~ 뭔데요.”

문 : 사랑이 꽃피는 곳에

답 : 산성을 짓겠습니다.

* * *

지금 강태평에게 시간은 금이다.

보석을 만드는 것은 처음 해보는 일이며.

이걸 만들어서 유통하고 판매하는 과정에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는 모른다.

그래서 바로 다음 단계를 진행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비둘기 핏빛 루비’가 오는 동안 어떤 보석을 만들지 이미 그려놓은 것이다.

이 루비 원석으로 만들어진 유명한 보석의 모양을 각종 책자와 인터넷으로 확인하였고.

가장 많이 만들었던 것.

특별함보단 잘 될 확률이 높아 보이는 것으로 정했다.

반지.

루비 반지를 만들 것이다.

“강 사장님, 익산 공장에 재료 준비 완료했습니다.”

김지안에게 보고받고 며칠 더 기다렸다.

금요일 오후에 익산 공장으로 가서, 3일간에 작업을 끝낼 생각이다.

‘내 금손이라면 2박 3일이면 가능하지 않을까?’

강태평은 자기 손의 능력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드디어 그날은 왔고.

금요일 오후 3시.

사랑 산성의 전 직원은 경건한 마음으로 강태평을 마중했다.

“진짜 보조 필요 없어?”

변 이사의 물음에 강태평은 고개를 저었다.

“이제 웬만하면 주말 근무는 안 시키려고요. 그리고 어차피 저 혼자 해야 할 일인데, 굳이 같이 가서 뭐 해요.”

김지안이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하다못해 식사라도 넣어드릴 수 있잖아요.”

“나 무슨 깜빵 가니?”

이 말에 김지안은 배시시 웃었다.

“그 정도는 알아서 해결해.”

오 대리도 한마디 했다.

“사장님 능력에 숟가락만 얹어 가는 것 같아서, 영~ 마음이 불편하네요.”

“그런 생각하지 마. 나도 당신들한테 도움받는 거 많아.”

벤츠 위에 손을 올리고 말하는 강태평.

손에서 은은한 빛이 나는 것 같았다.

변 이사가 말했다.

“그래, 가서 조심하고. 뭐든 필요한 거 있으면 연락하고.”

웬일로 최경리도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사장님 수고하세요.”

“그래.”

강태평은 차에 탄 후 창밖으로 손을 흔들었다.

“갔다 올게요~”

지국쥬얼리. 금요일 저녁.

차 소리가 들리자, 채 사장은 바로 공장 밖으로 나왔다.

“사장님 오셨어요?”

“아, 네 안녕하세요.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강태평은 채 사장과 악수를 한 뒤 말했다.

“전화로 말씀드렸다시피, 지금부터 작업을 바로 했으면 하는데요.”

“아, 네. 임대하신 작업 공간은 불 켜놨습니다. 근데 이 넓은 곳에 밤에 혼자 계셔도 괜찮으시겠어요? 관리인 한 명 말고는 아무도 없는데.”

강태평은 씩 웃으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한 번 죽다 살아났고, 손도 빠져봐서 웬만한 건 무섭지도 않습니다.”

“네?”

채 사장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지만, 강태평은 씩 웃고 말았다.

“식사는요?”

“오면서 대충 했습니다.”

채 사장은 함께 식사하자고 말하고 싶었지만, 강태평의 표정이 급해 보여서 관두었다.

“그럼, 전 가보겠습니다. 일 잘 마무리하시고 식사하시죠.”

“네, 사장님 고맙습니다.”

지국쥬얼리의 작업실.

강태평은 ‘백금’(Platinum)을 먼저 꺼내었다.

“백금의 녹는점은 1768.3도라고 했지.”

지국쥬얼리를 오가며 눈으로 익혔던 것을 머릿속에 그렸다.

그리고 천천히 토치를 집어 들었다.

“이걸 이렇게 하면…….”

푸화악~!

토치는 강태평의 손을 만나자.

잔뜩 미쳐 성이 난 것처럼 불길을 뿜어냈다.

백금은 녹는점이 높고, 경도와 밀도가 높아서 가공하기 어렵지만.

그건 일반인에게 해당되는 얘기고.

강태평의 손아귀에서는 녹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탕! 탕!

강태평은 망치로 두들기며 ‘벼림질’을 시작했다.

탕! 탕!

망치질 소리가 고요한 익산의 밤공기를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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