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만나다 (2)
* * *
“미스터 떼인놰.”
“네. 미스터 강.”
난 잠시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한 뒤, 입을 열었다.
합법적인 거래로 진행할 것이며, 7.4캐럿 비둘기 핏빛 루비를 난 반드시 구매할 것이다.
“물건 좀 볼 수 있을까요?”
110만 불의 규모의 거래를 하는데, 물건도 보지 않고 구매할 수는 없다.
떼인놰는 웃으며 대답했다.
“안 그래도 직원이 가지러 갔습니다. 30분 정도 걸릴 거예요.”
“아…… 물건이 이 사무실 안에 없나 보죠?”
떼인놰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대답했다.
“전 중개인일 뿐입니다. 물건 소유자로부터 가져와야죠.”
“아…… 네.”
30분의 시간이 남았다.
떼인놰는 내 눈치를 보며 물었다.
“거래 방식은 결정하셨습니까?”
“…….”
“좀 전에 직원분들과 논의하시는 거 같던데…… 어렵게 생각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 나라만의 사정이 있는 거거든요. 이 정도 암거래는 아주 일반적입니다. 고객 대부분이 이 방식으로 진행을 합니다.”
그는 우리가 암거래 쪽으로 의견을 모았지만, 대답을 망설이는 걸로 생각 하나 보다.
보석 기다리는 동안 흥정을 먼저 해볼까.
“저…… 일단.”
난 손을 내밀었다.
“악수 한 번 하시죠.”
“네? 갑자기?”
“사장님 뵙고서 명함만 주고받고 악수를 못 한 것 같아서요. 하하.”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들어간다. 시작은 악수부터.
“아~ 네.”
떼인놰는 내 손을 잡았고.
난 두 손으로 그의 손을 꼭 감싸 쥐었다.
“엇…….”
떼인놰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난 양손으로 잡은 그의 손을 주물럭거렸다.
“손이 거치시네…….”
“아…… 네.”
“손바닥도 스트레칭을 하셔야 해요. 손가락이 아파지면 생활하기 불편합니다.”
주물. 주물.
난 그의 손을 계속 주물러주었고.
떼인놰는 고개를 뒤로 살짝 젖히고, 눈을 반쯤 감았다.
“아…….”
주물. 주물.
옆에서 이 모습을 보고 있던 최경리는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
“사장님 왜 저래? 갑자기 정신이 나가셨나?”
“…….”
“주무르려면 고생한 직원들부터 주물러줘야지. 갑자기 뭐 하는 거야. 그것도 남자끼리.”
김지안도 놀란 눈으로 입을 가리고 지켜보고 있었고.
“하아…….”
떼인놰의 탄식 소리가 징그럽게 들렸다.
오 대리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뭐야…… 이거 자리 피해줘야 하나.”
하지만 변 이사는 진지한 얼굴로 강태평과 떼인놰의 행동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다른 직원들은 인상을 쓰고, 더 못 보겠다고 두 눈을 가리고 난리였지만.
변 이사는 달랐다.
떼인놰의 표정과 태도의 변화를 유심히 관찰했고.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표정으로 떼인놰의 손을 주물럭거리고 있는 강태평의 표정을 살폈다.
“모두 가만히 있어 봐.”
변 이사는 소란스러운 직원들에게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고.
그때. 강태평의 입에서 이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너무나도 황당한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조금만 깎아 줘요.”
:
근데, 떼인놰의 대답이 더 걸작이었다.
“가격만 불러봐요. 맞춰 드릴게.”
* * *
떼인놰가 반쯤 감긴 눈으로 말했다.
부교감신경(이완)이 극대화 되어 완전 풀린 눈. 입가에 침도 약간 흘리고 있었다.
내가 손을 너무 썼나.
살짝 정신이 나간 듯 보여서, 그에게 물었다.
“혹시 여기 정수기 있습니까?”
“저쪽에…….”
난 잡고 있던 그의 손을 놓았고.
“아…….”
떼인놰의 아쉬운 듯한 탄식 소리가 들렸다.
난 정수기에서 가서 물을 내려 그에게 건넸다.
“자, 물 한잔 드세요.”
“목 안 마른데…….”
“그래도 드세요. 좋은 거예요.”
그의 눈이 컵 말고 내 손에 꽂혀 있다.
“어허. 자꾸 훔쳐보지 마시고.”
“아…… 죄송해요. 자꾸 시선이…….”
떼인놰는 물을 한 모금 마시더니.
“음?!”
이어서 걸신들린 듯 물을 꿀꺽꿀꺽 마셨다.
“와~ 아얀 까우네~”(와, 정말 좋은데요.)
풀렸던 눈이 다시 올라갔고, 얼굴이 밝아졌다.
그는 자세를 고쳐잡고 말했다.
“얼마에 해드려요? 맞춰 준다니까?”
합법적 거래로 110만 불이라고 했다.
거래할 때 너무 과하게 깎으면 나중에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일단 보기 좋게, 자릿수만 두 자리로 바꿔보자.
일단 90만 불로 불러보고…… 안 된다고 하면 99만 불로 흥정하는 거로.
난 머릿속으로 이렇게 정리하고, 던졌다.
“90만 불 가능할까요?”
“90만 불이요?!”
옆에서 최경리와 오 대리가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20만 불을 깎아달라고? 사장님 미쳤나 봐.
―약간 이상하긴 해요. 좀 전에 계속 손 주무르던 것도 그렇고.
―더위 잡수셨나? 귀국하기 전에 병원부터 들리셔야 하는 거 아니야?
―최 과장님, 과장님은 혼잣말하면 다 들리는 거 아세요?
―아, 몰라.
분명, 방금 말한 ‘아, 몰라’의 뜻은, 신경을 쓰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그녀의 말이 거슬린다고 생각하려는데, 떼인놰가 대답했다.
“그렇게 하시죠.”
“아…… 좀 그렇죠? 네, 네?!”
90만 불에 하겠다고?!
난 깜짝 놀랐고, 직원들도 어이없어했다.
“해드릴게요. 가격 맞춰 드린다고 했잖아요.”
“진짜…… 괜찮아요?”
“네, 괜찮아요.”
떼인놰는 날 향해 씩 웃었고, 난 말했다.
“아…… 감사합니다.”
“하하. 보석 도착하면, 물건 확인하고 바로 계약서 쓰시죠.”
“네.”
너무 쿨 하게 받아들여서 조금 불안한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의 행동은 이유가 있는 거였다.
내 금손의 터치.
* * *
7.4캐럿의 비둘기 핏빛 루비.
크기가 딱 내 엄지손톱만 했다.
이게 110만 불…… 아니지, 이제 90만 불. 원화로 10억 정도 한다는 거지.
떼인놰는 정품 인증서를 보여주었다.
“공인 기관에서 인증받은 문서입니다.”
난 인증서를 받아서 김지안에게 건네며 말했다.
“김지안 대리. 문서와 물건 확인해봐.”
“네.”
김지안은 문서 먼저 확인했다.
그리고 확대경으로 국내 루비, 모조품, 팬톤 색상과 7.4캐럿 비둘기 핏빛 루비를 비교했다.
한참을 비교해보던 김지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는 것 같습니다.”
“음…… 그래.”
김지안은 전문가가 아니므로 확정적으로 대답은 못 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자신 있다는 걸, 그녀의 표정과 말투에서 알 수 있다.
그리고 난 김지안이라면 믿는다.
“자, 그럼 거래 방식은 어떻게 할까요?”
떼인놰는 선금 50% 방식을 제안했는데, 변 이사가 옆에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강 사장, L/C(letter of credit)로 가자. 뭘 믿고 선금을 45만 불이나 보내.”
난 고개를 끄덕이고는 떼인놰에게 L/C 거래를 제안했다.
그는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현재 한국에서는 저희 국가와 L/C거래가 어려운 걸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나 보석류는요. 이건 다른 무역회사 통해서 확인하시면 아실 거예요. 안 해드리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거예요.”
표정을 보아하니, 거짓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변 이사와 눈빛을 교환하고서 난 다시 말했다.
“그럼 선금을 30%로 하시죠. 잔금은 물건 받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송금하겠습니다.”
“아…….”
떼인놰는 난감한 표정을 짓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시죠.”
난 그의 난감해하는 표정이 마음에 걸려서 말했다.
“아니면 지금 일시불 송금해 드리고, 보석을 바로 가져가도 되는데. 90만 불 지금 송금할 수 있거든요.”
“합법적인 거래를 원하셔서…… 거쳐야 할 절차 있기에 바로는 어렵습니다. 아니면 직원분 중 한 명이 이곳에 기다렸다가 가져가시면 될 텐데.”
난 직원들을 돌아봤다.
모두 다 내 눈을 피했다.
“아닙니다. 선금 30%로 하시죠.”
“네.”
계약서를 쓰다가 궁금하여 물었다.
“근데 물건은 어떻게 운송됩니까?”
“잠금장치 철저히 해서, 사람이 직접 전달할 겁니다. 핸드캐리(Hand―Carry)라고 하죠.”
“아~”
근데 보석이 90만 불이다. 배달하던 사람이 딴마음 품고서 튀면?!
이것도 물어볼까 하고 잠시 고민했는데, 떼인놰가 알아채고 먼저 말했다.
“물건은 안전하게 전달 될 겁니다. 배달원은 보증된 사람이 하니까요.”
“어떻게요?”
떼인놰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배달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최소 6촌까지의 배달원 가족들은 관리받게 되거든요. 게다가 원석 판매자가 군부에 있는 사람이라. 총이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습니다.”
“아…….”
“또한 저희는 반드시 자녀가 있는 사람을 배달원으로 씁니다. 아무리 돈 욕심이 생겨도, 자녀의 신변은 걱정하더라고요.”
꿀꺽.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
물건 잘 전달 받겠구나.
지금 시각 오후 4시.
어느덧 시간이 이렇게 됐다.
“그럼 마지막까지 깔끔한 거래가 되길 바랍니다.”
떼인놰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바라는 바입니다. 미얀마 사람 거짓말 안 합니다. 믿으셔도 돼요.”
난 악수하고 사무실에서 일어났다.
떼인놰는 우리 차가 떠날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었다.
* * *
“하아……개 쩔어.”
성실하고 고운 말만 쓰는 김지안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다음 날 아침 10시.
우리는 사랑산성에 도착했다.
어제 모곡에서 만달레이까지 5시간 차를 타고, 만달레이에서 양곤까지 2시간 비행, 양곤에서 인천공항까지 6시간 비행.
그리고 도착하여 입국 수속하고, 사랑산성까지.
“와…… 씨바. 군대에서도 이렇게는 안 했다.”
오 대리의 투덜거리는 소리도 들렸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고객과의 약속이고, 레스토랑은 열어야 하기 때문에.
더군다나, 우리 레스토랑은 주말 장사를 안 하기에 월요일 영업을 안 하면 난리가 난다. 또한 디너에도 영향이 가고…….
난 힘찬 목소리로 말했다.
“자자, 조금만 힘내자. 오늘 점심 영업만 끝내고 3시에 퇴근하는 거로 할 테니까.”
최경리의 혼잣말이 들렸다.
“오후 3시까지 몇 시간 남은 거야. 아 피곤해. 이빨 흔들리는 거 같아.”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다.
참아야지 어쩌겠는가. 리더가 항상 직원들 칭송만 받고 지낼 수는 없는 거잖아.
“아~ 애들 보고 싶어~ 심지어 아내도 보고 싶네. 이게 얼마 만이야.”
그래도 변 이사만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그는 여유가 있었다.
직원들은 이제 음식 손질을 하기 시작했다. 습관의 무서움이다. 아무리 피곤해도 주방에 들어 오면 몸이 움직이는…….
난 앞치마를 두르고 있는 변 이사에게 살며시 다가갔다.
“변 이사님.”
“응?”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해요?”
“뭐가?”
“직원들 모두 입이 엄청 나왔잖아요. 이런 적은 처음이라 당혹스럽네요.”
“아~ 하하.”
변 이사는 웃었다.
그리고 내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다.
“강 사장님 좋은 경험 하네. 모두가 싫어해도 때로는 필요한 일을 하는 게 리더 아니겠어?”
“그래도요…… 이러다가 담부터 어디 가자고 하면 아무도 안 나서겠어요. 그냥 이렇게 흘러가면 안 될 거 같은데.”
난 변 이사에게 조언을 구했고, 변 이사는 웃으며 말했다.
“답은 강 사장님이 이미 알고 있어.”
“네?”
“예전에 강 사장님이 직원일 때를 떠올려 봐. 항상 좋아하는 일만 하고 지냈어? 사실 그 반대의 경우가 더 많지 않았나?”
“아…… 그렇긴 하죠.”
“그때, 강 사장의 리더들이 했던 행동들 생각해 봐. 어떤 액션이 좋았는지.”
“…….”
“핵심은…… 얼렁뚱땅 넘어갈 생각을 하지 마. 여기 돈 버는 회사잖아.”
툭. 툭.
그리고 내 어깨를 두들기고는 샥스핀 손질하러 갔다.
오후 3시.
완전히 파김치가 된 직원들이 집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흠!”
난 헛기침을 하고는 3번 룸에 들어왔다.
그리고 직원들에게 봉투를 건네며 말했다.
“출장 간에 고생 많았어. 집에 가서 소고기라도 사 먹어.”
난 괜히 멋쩍어서 봉투를 건넨 후, 대답도 듣지 않고 곧바로 나갔다.
‘50만 원씩 넣었는데…… 적당했겠지?’
잠시 후.
[우왓! 하하. 대박~]
문 안쪽에서 직원들의 환호성 소리가 들렸다.
이제야 마음이 좀 편해지는 것 같다.